◎ 如來有二種不受後有智 - 여래의 윤회하지 않는 두 가지 지혜

 

世尊(세존) 不受後有智有二種(불수후유지유이종)

세존이시여, 不受後有=‘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뒤의 몸을 받지 아니하는)’ 지혜에 두 가지가 있사오니,

[세존이시여, 후세에 생사의 고통을 받는 중생과 같은 몸을 받지 않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지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사오니]

謂如來以無上調御降伏四魔(위여래이무상조어항복사마)

이른바 여래께서는 無上調御= 위없는 방법으로 四魔=네 가지 악마를 항복 받고, 

[부처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번뇌를 잘 다스려[調御]서 번뇌마(煩惱魔)․음마(陰魔)․사마(死魔)․천마(天魔)인 네 가지의 장애로부터 벗어났기에] 

出一切世閒(출일체세간) 爲一切衆生之所瞻仰(위일체중생지소첨앙)

모든 세간을 뛰어나서, 모든 중생의 존경을 받는 

[일체 모든 중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得不思議法身(득불사의법신) 於一切爾焰地得無㝵法自在(어일체이염지득무애법자재)

불가사의한 법신을 얻었으며, 온갖 지혜를  만한 경계에 대하여 걸림이 없는 법의 자재를 얻었으며,

[또한 영원한 생명을 갖춘 불가사의한 법신(法身)을 증득하였기에 일체의 지혜를 낼 수 있는 경지[爾焰地]에서 어떠한 장애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힘을 얻었으며]

於上更無所作(어상갱무소작) 無所得地十力勇猛(무소득지십력용맹)

이 위에 더 지어야 할 바도 없으며, 얻어야 할 바도 없는 경지(지위)에서 십력이 용맹하시어, 

[그리고 이미 수행과 지혜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수행할 것도 없고, 얻을 지혜도 없는 지위에서는 부처님께서 갖추신 열 가지 지혜의 힘인 십력(十力)이 용맹하시어] 

昇於第一無上無畏之地(승어제일무상무외지지)

제일이며 위없는 無畏=두려움 없는 지위에 오르셨으며, 

[이 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법을 설함에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경지에 오르셨으며]

一切爾炎無㝵智觀不由於他(일체이염무애지관불유어타) 不受後有智師子吼(불수후유지사자후)

모든 알아야 할 대상 경계를 걸림 없는 지혜로 관찰하되, 다 이를 말미암지 아니하고 뒤의 몸을 받지 않는 지혜로 사자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체 알아야 할 대상[爾炎]을 자유자재한 지혜로써 관찰하되 그러한 지혜 이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으시며, 더 이상 생사의 고통을 받아 윤회하는 몸을 후세에 받지 않는다는 그러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로써 중생들을 생사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사자후를 하십니다.]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度生死畏(아라한벽지불도생사외) 次第得解脫樂(차제득해탈락)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생사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차례로 해탈의 즐거움을 얻어서,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중생과 달리 생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차례로 해탈의 즐거움을 얻고는]

作是念(작시념) ‘我離生死恐怖(아이생사공포) 不受生死苦(불수생사고)

생각하기를 ‘나는 생사의 공포를 벗어났으므로 생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으리라’ 하나니,

[다음과 같이 생각하나니 ‘나는 생사의 공포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생사의 고통을 받지 않으리라’]

世尊(세존) 阿羅漢辟支佛觀察時(아라한벽지불관찰시)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관찰한 바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다시는 생사의 고통이 있는 몸인 후생을 받지 않게 되어] 

得不受後有(득불수후유) 觀第一蘇息處涅槃地(관제일소식처열반지)

가장 뛰어난 안식처=蘇息處인 열반의 경지를 관하는 것입니다.

[번뇌를 모두 없앤 제일의 소식처(蘇息處)인 열반의 경지를 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蘇 차조기 소, 향할 소, 되살아날 소. 蘇息소식=끊어질 듯이 막혔던 숨을 돌려서 되쉼

 

世尊(세존) 彼先所得地(피선소득지) 不愚於法(불우어법) 不由於他(불우어타)

세존이시여, 저들이 앞에 얻은 바 열반의 경지는 법에 어리석지 않아서,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도

[세존이시여, 그들은 이미 앞에서 소승의 가르침을 깨달은 경지를 얻었기 때문에 진리[法]에 어둡지 않으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亦自知得有餘地(역자지득유여지) 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필당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스스로 有餘地=불완전한 지위(남음이 있는 지위)를 얻었지만, 반드시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것을 아는 것입니다.

[소승의 깨달음인 유여열반의 경지를 증득하여 앞으로 대승의 가르침을 따라 보살행을 하면 최고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何以故(하이고) 聲聞緣覺乘皆入大乘(성문연각승개입대승)

왜냐하면, 성문승과 연각승이 모두 대승에 들어가는 것이니

[왜냐하면 성문과 연각은 언젠가 반드시 대승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때문이며] 

大乘者卽是佛乘(대승자즉시불승) 是故三乘卽是一乘(시고삼승즉시일승)

대승은 곧 부처님의 길=佛乘이며, 그러므로 삼승(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 곧 일승이며 

[대승이란 곧 오직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친 불승이므로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3승으로 나누어 설했지만 삼승이 곧 일불승입니다.

得一乘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일승자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일승을 얻은 이는 위없이 바른 깨달음=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는 것이 되며,

[따라서 1승을 얻은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며]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卽是涅槃界(아뇩다라삼막삼보리자즉시열반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열반의 경지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곧 열반의 세계이며] 

涅槃界者卽是如來法身(열반계자즉시여래법신) 열반의 경지는 곧 여래의 법신이므로 

[열반의 세계가 바로 청정한 여래의 법신입니다.] 

得究竟法身者則究竟一乘(득구경법신자즉구경일승) 無異如來(무이여래)

究竟法身=완전한 법신을 얻은 이는 곧 완전한 일승을 얻음이니, (법신은) 여래와 다르지 않으며, 

[즉 궁극적인 목표인 구경(究竟)의 법신을 얻는 것이 절대 깨달음인 1불승을 증득[究竟]하는 것이지 이것 이외에 다른 여래나 법신은 없습니다.]

無異法身(무이법신) 如來卽法身(여래즉법신) 得究竟法身者(득구경법신자)

(여래는) 법신과 다르지 않으며, 여래가 곧 법신이니, 究竟法身=완전한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則究竟一乘(즉구경일승) 究竟者卽是無邊不斷(구경자즉시무변부단)

완전한 일승을 얻는 것이며, 究竟=궁극적이라는 것은(완전함이라는 것은) 끝이 없으며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래가 곧 법신이니, 완전[究竟]한 법신을 증득하는 것이 곧 1불승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불승을 증득한 상태인 구경(究竟)이란, 시간적인 혹은 공간적인 차별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 歸依第一義者是歸依如來 -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여래에의 귀의

 

世尊(세존) 如來無有限齊時住(여래무유한제시주)

세존이시여, 여래는 한량없는 시간 동안 머무시며, 

如來應等正覺後際等住(여래응등정각후제등주)

여래, 응공, 등정각은 後際=끝없는 미래와 같이 머무시니,

如來無限齊大悲(여래무한제대비) 亦無限齊安慰世閒(역무한제안위세간)

여래는 한량없으며, 크게 자비로우심=大悲 또한 한량없으며 또한 세간을 편안하게 위로하십니다.

 

無限大悲(무한대비) 無限安慰世閒(무한안위세간)

한정이 없는 자비로 한정이 없는 세간을 위로하시니, 

作是說者是名善說如來(작시설자시명선설여래)

이러한 설을 하는 이를 이름하며 여래를 잘 설하는 것이라하며,

若復說言無盡法(약부설언무진법) 常住法(상주법) 一切世閒之所歸依者(일체세간지소귀의자)

만약 다시 ‘다함이 없는 법과 항상 머무는=상주하는 법은 모든 세간의 귀의할 바이라'고 설한다면

亦名善說如來(역명선설여래) 是故於未度世閒(시고어미도세간) 無依世閒(무의세간)

또한 이름하여 잘 설하는 것이라 하며, 그러므로 여래는 아직 제도를 얻지 못한 세간과,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 대하여

與後際等(여후제등) 作無盡歸依(작무진귀의) 끝없는 미래=後際 같이 다함이 없는 귀의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모든 중생이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1불승의 가르침=道를 설한 것이니, 그러므로 아직 번뇌가 두터워 부처님으로부터 제도되지 못한 세상의 중생들과 아직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적어 진정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지 못한 중생들이 있다면 앞으로 차츰 부처님께 귀의해야 하며]

常住歸依者(상주귀의자) 謂如來應等正覺也(위여래응등정각야)

상주하는 귀의가 되는 이를 일컬어 이른바 여래, 응공, 등정각이라 합니다.

[즉 앞으로 부처님의 정법에 머물러 항상 의지해야할 대상은 바로 여래․응공․정변지이신 부처님 뿐이십니다]

 

法者卽是說一乘道(법자즉시설일승도) 僧者是三乘衆(승자시삼승중)

법이라 함은 곧 一乘=하나의 길이고 승이라 함은 三乘=세 가지의 대중을 말하는 것이니,

[또한 승가(僧伽)는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4성제(四聖諦) 법을 듣고 깨달은 성문과 12인연법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은 연각과 6바라밀을 닦는 보살의 3승을 말하는 것이니]

此二歸依非究竟歸依(차이귀의비구경귀의) 名少分歸依(명소분귀의)

이 두 가지에 귀의함은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므로 少分歸依=부분귀의(불완전한 귀의)라 이름하니,

[위에서 말한 법과 승가에 귀의하는 것은 완전한 귀의가 못되는 부분적인 귀의라 이름하므로,] 

何以故(하이고) 說一乘道法(설일승도법) 得究竟法身(득구경법신)

왜냐하면, 일승의 법을 설하는 것은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 것이며, 

[부처님의 최고 가르침인 1승도(一乘道)를 설하는 까닭은 구경법신(究竟法身)을 증득하는 데 있으니]

於上更無說一乘法身(어상갱무설일승법신) 그 외에 다시 일승의 법신을 설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이것 이외에 다른 1승법신(一乘法身)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三乘衆者有恐怖(삼승중자유공포) 歸依如來(귀의여래)

삼승의 대중들은 공포가 있으므로 여래에게 귀의하여 

[3승들은 아직 번뇌의 때가 남아 있어 삶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님께 귀의해야 하며] 

求出修學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구출수학향아뇩다라삼막삼보리)

벗어나기 위하여 修學=도를 닦아, 위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삶에서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발원하여 수행함으로써 최고 깨달음의 경지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是故二依非究竟依(시고이의비구경의) 是有限依(시유한의)

그러므로 이 둘에 귀의하는 것은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며 한계가 있는 귀의이니,

[그러므로 법과 승가 이 두 가지에만 귀의하는 것은 완전한 귀의가 아닌 불완전한[有限] 귀의라고 한것이니]

若有衆生(약유중생) 如來調伏歸依如來得法津澤(여래조복귀의여래득법진택) 津 나루 진, 澤 못 택, 

만약 어떤 중생이 여래에게 조복하여 여래에게 귀의하면, 불법의 은혜를 얻게 되고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으로부터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법문을 듣고 마음의 번뇌를 항복받아 부처님께 진실로 귀의한다면,]

生信樂心歸依法僧是二歸依(생신락심귀의법승시이귀의)

불법을 믿는 즐거움의 마음을 내어 법과 승에 귀의한다면, 

[그리고 법문을 듣는 것에 대해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을 낸 뒤에 법보(法寶)와 승보(僧寶)에 귀의한다면,] 

非此二歸依是歸依如來(비차이귀의시귀의여래)

이는 그 둘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고,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단순히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됩니다.]

 

歸依第一義者是歸依如來(귀의제일의자시귀의여래) 此二歸依第一義(차이귀의제일의)

왜냐하면,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이니, 이  가지에 귀의하는 것과 제일의는 

是究竟歸依如來(시구경귀의여래) 何以故(하이고)

구경에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은 법인 제일의(第一義)에 귀의하는 것은 바로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니, 이상의 즉 먼저 부처님께 귀의한 후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두 가지 귀의와 부처님께서 깨달은 절대 진리인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이 마침내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無異如來無異二歸依(무이여래무이이귀의) 如來卽三歸依(여래즉삼귀의)。

여래는 두 가지 귀의와 다르지 않으므로, 여래는 곧 삼귀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과 환희심을 내어 법과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즉 진실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불․법․승 3보에 귀의하는 3귀의(三歸依)인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說一乘道(설일승도) 如來四無畏成就師子吼說(여래사무외성취사자후설)

왜냐하면, 일승의 도를 설하는 것은, 여래께서 四無畏= 가지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여, 사자후로 설하시는 것이니,

[또한 부처님께서 1승도(一乘道)를 설하신 까닭은 ‘여래께서는 법을 설함에 있어 전혀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자유자재로 연설하는 네 가지 무소외(四無所畏)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사자후(獅子喉)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며]

若如來隨彼所欲而方便說(약여래수피소욕이방편설) 卽是大乘無有三乘(즉시대승무유삼승)

만일 여래께서 그들의 욕망을 따라 방편으로 설하신 것이라면 곧 대승이며 삼승이 없는 것이니, 

[가령 부처님께서 저희들의 욕망을 살펴서 교묘한 수단〔方便〕으로 법을 설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승의 가르침일 뿐 방편으로서의 3승은 진실이 아니므로] 

三乘者入於一乘(삼승자입어일승) 一乘者卽第一義乘(일승자즉제일의승)

삼승이 일승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승이라는 것은 곧 제일의의 승(길)이 되는 때문입니다.

제일의 [第一義]= 근본이 되는 첫째 의의
[즉 방편으로써 3승을 설한 까닭은 결국 모든 중생이 최고의 깨달음을 향한 1승으로 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일승이란 완전한 진리의 세계인 제1의승(第一義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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