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二種死
何以故(하이고) 有二種死(유이종사) 何等爲二(하등위이)?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죽는 것이 있사오니,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하면,
[왜냐하면 두 가지 종류의 생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오니]
謂分段死(위분단사) 不思議變易死(불사의변이사)
하나는 육체적 죽음=分段死이고, 다른 하나는 부사의 하게 변화하여 죽는=不思議變易死입니다.
[그것은 중생이 겪는 분단생사와 2승과 보살이 보이는 부사의 변역생사입니다.]
分段死者(분단사자) 謂虛僞衆生(위처위중생)
육체적 죽음=분단사는 허망한 중생을 일컫는 말이요,
[첫째 분단생사란, 중생의 업이 다르기 때문에 신체와 수명이 차별이 벌어지는 허망한 생사의 모습을 말하며,]
不思議變易死者(불사의변이사자) 부사의 하게 변하여 죽는 것은
謂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意生身(위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의생신)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나 대력 보살들의 마음대로 태어나는 몸=意生身으로부터
[두 번 째는 부사의 변역생사이니, 즉 아라한과 벽지불인 2승의 몸과 그리고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춘 대력보살 등이 원력에 따라 나툰 몸인 의생신과,]
乃至究竟無上菩提(내지구경무상보리)
위없는 보리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궁극적으로 위없는 깨달음입니다)
[보살행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얻은 구경(究竟)의 위없는 보리인 부처님의 참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방편으로 나투는 생사의 모습을 말합니다.]
二種死中(이종사중) 以分段死故(이분단사고)
두 가지 죽음에서 육체적 죽음이 없어졌으므로 말미암아
[두 가지 종류의 생사 중에서 아라한과 벽지불은 지혜로써 중생이 겪는 분단생사를 뛰어넘었으므로]
說阿羅漢辟支佛智(설아라한벽지불지) 我生已盡(아생이진)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를 일러서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我生已盡(태어남을 다하였다)을 설하며,
['나의 삶은 이미 번뇌가 다했다'고 했습니다.]
△ 고제(苦諦)의 지혜
得有餘果證故(득유여과증고) 說梵行已立(설범행이립)
업의 잔재가 남음이 있는 과=有餘果]=를 증득하였으므로 청정한 행=梵行이 已立=이미 완성했다고 설하며,
[또한 아직 더 닦아야 되지만, 그래도 유한한 과보를 증득했기에 '청정한 행동=범행이 이미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 멸제(滅諦)의 지혜
凡夫人天所不能辦(범부인천소불능판) 七種學人先所未作(칠종학인선소미작)
범부와 인간 천상의 사람의 과보를 얻을 중생은 능히 판단하지 못하며,
아라한이 되기 전의 일곱 단계 성자=七種學人들은 앞서 끊지 못하였던
[윤회의 세계인 사람과 천인이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고, 일곱 종류의 학인들이 아직 끊지 못한]
虛僞煩惱斷故(허위번뇌단고) 說所作已辦(설소작이설)
허망한 번뇌를 끊었으므로 所作=지어야 할 바를 已辨=모두 마쳤다고 설하며,
[허망한 번뇌를 끊었으므로 '수행을 이미 이룩했다'고 했습니다.]
△도제(道諦)의 지혜
阿羅漢辟支佛所斷煩惱(아라한벽지불소단번뇌) 更不能受後有故(갱불능수후유고)
아라한과 벽지불이 끊은 바 번뇌는 다시 後有=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으므로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은 어느 정도 번뇌를 끊어 다시는 후생을 받지 않기 때문에]
說不受後有(설불수후유)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不受後有라고 설하는 것이나,
['미래에 중생과 같이 생사 윤회하는 몸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만]
△집제(集諦)의 지혜
非盡一切煩惱(비진일체번뇌) 亦非盡一切受生(역비진일체수생)
그러나 모든 번뇌를 다 끊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시 受生=모든 생(윤회하는 삶)을 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故說不受後有(고설불수휴유)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일체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였으니, 즉 일체 번뇌로 인해 변화하는 허망한 삶을 완전히 정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 수행한 만큼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미래에 중생과 같이 생사 윤회하는 몸은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有煩惱是阿羅漢辟支佛所不能斷(유번뇌시아라한벽지불소불능단)
왜냐하면, 어떤 번뇌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는 끊지 못할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끊지 못한 근원적인 무명인 번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二種煩惱
煩惱有二種(번뇌유이종) 何等爲二(하등위이)
(이와 같이 아라한과 벽지불이 능히 끊지 못한) 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謂住地煩惱及起煩惱(위주지번뇌급기번뇌)
잠재적 번뇌=住持번뇌와 현재적 번뇌=起번뇌이며,
[번뇌에는 각종 번뇌가 생겨날 수 있는 근본적인 바탕인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와 그 주지번뇌로부터 생겨난 갖가지 종류의 번뇌인 기번뇌가 있으며]
住地有四種(주지유사종) 何等爲四(하등위사)
잠재적 번뇌=住持번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그 넷인가?
[무명주지번뇌에는 다시 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謂見一處住地(위견일처주지)
현상 사물을 보고 들음에 있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見一處住持煩惱=견혹(見惑)과,
[첫째, 현상 사물을 보고 들음에 있어 무지하여 사물의 진리, 도리를 파헤치지 않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편견에서 생기는 지식상의 번뇌인 견일체처주지번뇌=견혹과]
欲愛住地(욕애주지) 욕망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욕계의 사혹)=欲愛住持煩惱,
[둘째, 욕계에 대한 무지[思惑]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욕계의 사혹인 욕애주지번뇌]
色愛住地(생애주지) 육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색계의 사혹)=色愛住持煩惱,
[셋째, 색계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색계의 사혹인 색애주지번뇌]
有愛住地(유애주지) 윤회 생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무색계의 사혹)=有愛住持煩惱가 그 네 가지입니다.
[넷째, 무색계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인 무색계의 사혹인 유애주지번뇌의 네 종류를 말합니다.]
此四種住地(차사종주지) 生一切起煩惱(생일체기번뇌)
이 네 가지 잠재적 번뇌=주지번뇌가 일체 모든 현재적 번뇌=기번뇌를 일으키는 것으로,
[이상의 네 가지 주지번뇌가 갖가지 종류의 기번뇌를 일으키는 것으로]
起者剎那心剎那相應(기자찰나심찰나상응)
현재적 번뇌=기번뇌란 찰나의 마음과 찰나에 相應=서로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니,[이러한 기번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따라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과 서로 번뇌로써 상응해 복잡한 심적 작용인 번뇌를 일으킵니다.]
世尊(세존) 心不相應無始無明住地(심불상응무시무명주지)
세존이시여, 心不相應=마음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은 無始無明=시작을 알수 없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住持煩惱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 마음과 외부의 경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항상 존재하는 번뇌의 근본인 무명주지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世尊(세존) 此四住地力(차사주지력) 一切上煩惱依種(일체상번뇌의종)
세존이시여, 이러한 네 가지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번뇌의 힘은 모두 부수적 번뇌=上煩惱의 의지할 종자이지만,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일체의 선한 행위를 방해하려는 번뇌인 상번뇌가 의지할 곳이며 종자이지만]
比無明住地(차무명주지) 筭數譬喩所不能及(산수비유소불능급) 筭 셈 산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큰 힘에 비교하면 산수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주지번뇌에 비하면 다른 여타의 번뇌는 숫자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이 세력이 약합니다.]
世尊(세존) 如是無明住地力(여시무명주지력)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무명의 잠재적 번뇌= 주지번뇌의 힘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於有愛數四住地(어유애수사주지) 無明住地其力最大(무명주지기력최대)
네 가지의 욕망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보다 매우 큰 것이니,
[무색계(無色界)에서 일어나는 번뇌인 유애주지번뇌(有愛住地煩惱)와 색계나 욕계에서 일어나는 번뇌인 수번뇌 등 네 가지 종류의 주지번뇌의 세력보다 더 큰 것이니]
譬如惡魔波旬(비여악마파순) 於他化自在天色力壽命(어타화자재천색력수명)
마치 악마 파순이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 타화자재천에서 육체적인 능력과 수명과 권속과
[비유하면, 마치 악마 파순(Pāpiman)이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 육체적인 능력과 수명과 권속과]
眷屬衆具自在殊勝(권속중구자재수승)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 및 장신구를 가장 잘 이용하듯이,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生活必需品) 및 장신구(裝身具)를 가장 잘 이용하듯이,]
如是無明住地力(여시무명주지력) 於有愛數四住地(어유애수사주지)
이러한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은 네 가지의 윤회 생존의 집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주지번뇌 보다
[이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저 네 가지 종류의 주지무명의 세력보다 강합니다.]
其力最勝(기력최승) 恒沙等數上煩惱依(항사등수상번뇌의)
그 세력이 강하니, 항하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부수적 번뇌=상번뇌의 의지하는 바가 되며,
[그러므로 무명주지번뇌는 갠지스 강(恒河)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선한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상번뇌가 의지할 대상인 것이며]
亦令四種煩惱久住(역영사종번뇌구주) 역시 네 가지 잠재적 번뇌=주지번뇌를 오래 머물도록 하므로,
[또한 그것은 네 가지 종류의 번뇌를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阿羅漢辟支佛智所不能斷(아라한벽지불지소불능단)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지혜로도 능히 끊지 못하며,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로는 이 무명주지번뇌를 끊을 수 없으나]
唯如來菩提智之所能斷(유여래보리지소능단)
오직 여래의 깨달음의 지혜=菩提智라야 능히 끊을 수 있는 것이니,
[오직 여래의 보리 지혜로써만 끊을 수 있습니다.]
如是世尊(여시세존) 無明住地最爲大力(무명주지최위대력)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의 잠재적 번뇌=주지번뇌의 힘이 가장 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무명주지번뇌의 세력은 저 네 가지 종류의 주지무명의 세력보다 강한 것입니다.]
◎ 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 - 佛菩提智所斷(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는 번뇌)
世尊(세존) 又如取緣有漏業(유여취연유루업) 因而生三有(인이생삼유)
세존이시여, 또 마치 번뇌의 연(取緣)과 번뇌가 있는 업=유루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삼계= 三有를 낳는 것과 같이,
[루(漏)'= 번뇌]
如是無明住地(여시무명주지) 緣無漏業因(연무루업인)
이러한 무명의 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因=원인으로 말미암아
生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三種意生身(생아라한벽지물대력보살삼종의생신)
아라한, 벽지불, 대력 보살들의 세 가지 의생신을 내는 것이니,
[삼계가 번뇌와 유루업인에 의해 펼쳐지는 것처럼 무명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意生身)이 나오는 것이니]
[의생신(意生身)= 범어 마노말야(摩奴末耶), 의성신(意成身), 화생신(化生身), 변화신(變化身)]
此三地(차삼지) 彼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피삼종의생신생급무루업생)
이러한 세 가지 지위와 세 가지 의생신이 낢과 무루업이 나는 것이
依無明住地(의무명주지) 有緣非無緣(유연비무연)
모두 무명주지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연이 있는 것이지, 연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이 세 가지,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도 모두 무명주지에 의지하므로 연이 없는 것이 아닌,]
是故三種意生及無漏業(시고삼종의생급무루업) 緣無明住地(연무명주지)
그러므로 세 가지 의생신 및 무루업은 모두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 가지 의생과 무루업이 모두 무명주지를 반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의생신은 범부중생의 의생신과 불보살의 의생신이 다른 것으로, 범부는 번뇌의 생활을 영위함에 반하여 2승(阿羅漢과 辟支佛)과 보살과는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무루의 업을 쌓고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상이(相異)가 있다. 그렇지만 2승과 대력보살은 무명주지를 완전히 이탈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이미 설한바와 같다.]
世尊(세존) 如是有愛住地數四住地(여시유애주지수사주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유애주지 등 네 가지 주지는
不與無明住地業同(불여무명주지업동)
무명주지로 업이 같지 않나이다.
無明住地異離四住地(무명주지이리사주지) 佛地所斷(불지소단)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번뇌는 네 가지 잠재적 번뇌를 떠나는 것과 달라서 불지(佛地)에서 끊는 바이며,
佛菩提智所斷(불보리지소단) 何以故(하이고)
부처님의 菩提智=깨달음의 지혜로써 끊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阿羅漢辟支佛斷四種住地(아라한벽지불단사종주지) 無漏不盡(무루불지)
아라한과 벽지불도 네 가지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는 끊었지만 무루업은 다 끊지 못해서
不得自在力(불득자재력) 亦不作證(역불작증)
자재력을 얻지 못하며, 역시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無漏不盡者(무루불진자) 卽是無明住地(즉시무명주지)
무루업을 다 끊지 못하였다는 것은 곧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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