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상권
후한(後漢) 안식(安息) 안세고(安世高) 한역 / 後漢安息三藏安世高譯
佛說大安般守意經卷 上 3
何以故數息?用意亂故。何以故不得?用不識故。何以故不得禪?用不棄習盡證行道故也。
무슨 까닭으로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하는 것인가? 뜻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얻지 못하는 것인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선(禪)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습(習)을 다 버리고 도(道)를 증득하여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數息爲地,相隨爲犂,止爲軛,觀爲種,還爲雨,淨爲行,如是六事,乃隨道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은 땅이 되고,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는 보습이 되며,
지(止)는 멍에가 되고, 관(觀)은 씨앗이 되며, 환(還)은 비가 되고, 정(淨)은 행함이 되나니,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육사(六事)로써 마침내 도를 따르는 것이다.
數息斷外,相隨斷內,止爲止罪,行觀卻意,不受世閒爲還,念斷爲淨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으로써 바깥을 끊고, 그에 따라서 안을 끓으며,
지(止)는 죄를 멈추는 것이고, 관(觀)을 행하여 뜻을 제거하며,
세간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환(還)이 되고, 생각이 끊어짐은 정(淨)이 되는 것이다.
意亂當數息,意定當相隨,意斷當行止,得道意當觀,不向五陰當還,無所有當爲淨也。
뜻이 어지러우면 마땅히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할 것이요,
뜻을 정하려면 마땅히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를 할 것이며,
뜻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멈춤의 지(止)를 행할 것이요,
도의(道意)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관(觀)할 것이며,
오음(五陰, 오온)을 향하지 않으면 마땅히 돌아오는 환(還)이요,
무소유(無所有)이면 마땅히 청정(淨)하여 지는 것이다.
多事當數息,少事當相隨,家中意盡當行止,畏世閒當觀,不欲世閒爲還,念斷爲淨也。
일이 많으면 마땅히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할 것이요,
일이 적으면 마땅히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를 할 것이며,
가가(家家)의 뜻을 다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멈춤의 지(止)를 행할 것이요,
세간을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관(觀)할 것이며,
세간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환(還)이 되는 것이며,
생각이 끊어지면 깨끗한 정(淨)이 되는 것이다.
何以故數息?不欲隨五陰故。何以故相隨?欲知五陰故。何以故止?欲觀五陰故。何以故觀陰?欲知身本故。何以故知身本?欲棄苦故。何以故爲還?厭生死故。何以故爲淨?分別五陰不受故。
무슨 까닭에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하는 것인가? 오음(五陰)을 따르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를 하는 것인가? 5음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멈춤의 지(止)를 행하는 것인가? 5음을 관(觀)하고자 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5음을 관(觀)하는 것인가? 몸의 근본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몸의 근본을 알고자 하는 것인가? 고(苦)를 버고자 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돌아오는 환(還)이 되는 것인가? 생사를 싫어하기 때문이요,
무슨 까닭에 청정한 정(淨)이 되는 것인가? 5음(陰)을 분별하여 받아들이지 않기 위함이다.
便隨黠慧八種道得,別爲得所願也。行息時爲隨數,相隨時爲隨念,止時爲隨定,觀時爲隨淨,還時爲隨意,淨時爲隨道,亦爲隨行也。
곧바로 지혜를 따르면 여덟 가지 도(道)를 얻고 또한 따로 소원을 얻게 되나니,
숨(息)을 행할 때에는 세는 것을 따르며, 서로 따를 때는 생각을 따르며,
멈춤의 지(止)에서는 정(定)을 따르며, 관(觀)을 할 때에는 정(淨)을 따르며,
돌이킴의 환(還)일 때에는 뜻(意)을 따르며, 정(淨)일 때에는 도(道)를 따르고 또한 행(行)을 따르며,
數息爲四意止,相隨爲四意斷,止爲四神足念,觀爲五根、五力,還爲七覺意,淨爲八行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은 4의지(意止, 사념처)가 되고,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는 4의단(意斷, 사정단)이 되며,
멈춤의 지(止)는 4신족념(神足念, 사신족)이 되고,
관(觀)은 5근(根)과 5력(力)이 되며,
돌이킴의 환(還)은 7각의(覺意, 칠각지)가 되고, 정(淨)은 8행(行)이 되며,
得息不相隨,不爲守意;得相隨不止,不爲守意;得止不觀,不爲守意;得觀不還,不爲守意;得還不淨,不爲守意;得淨復淨,乃爲守意也。
숨을 세는 것을 얻고서도 서로 따르지 않는다면 수의(守意)가 되지 못하고,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를 얻고서도 멈추지(止)지 않으면 수의가 되지 못하며,
멈춤의 지(止)를 얻고서도 관(觀)하지 않으면 수의가 되지 못하고,
관(觀)을 얻고서도 돌이키지(還) 않는다면 수의가 되지 못하며,
돌이킴의 환(還)을 얻고서도 청정하지 않으면 수의가 되지 못하나니,
청정함의 정(淨)을 얻고서도 다시 청정하여야 마침내 수의(守意)가 되는 것이다.
已念息,惡不生,復數者,爲共遮意,不隨六衰故。行相隨爲欲離六衰,行止爲欲卻六衰,行觀爲欲斷六衰,行還爲欲不受六衰,行淨爲欲滅六衰。已滅盡,便隨道也。
이미 숨을 생각하는 염식(念息)하여서 악(惡)이 생겨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세는 것은 함께 뜻을 막아 6쇠(衰, 육입이 쇠퇴하는 것)를 따르지 않고자 하는 때문이며,
서로 따름의 상수(相隨)를 행하는 것은 6쇠의 행을 여의고자 하는 것이요,
멈춤의 지(止)는 6쇠의 행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며,
관(觀)은 6쇠의 행을 끊고자 하는 것이요,
돌이킴의 환(還)은 6쇠의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자 하는 것이며,
청정함의 정(淨)은 6쇠를 멸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미 소멸하여 다하고 나면 문득 도(道)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數息欲遮意,息中有長短,當復遮是長短意也。何以故守意?欲止惡故。惡亦可守,亦不可守。
何以故?惡已盡,不當復守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은 뜻을 막고자 하는 것으로, 숨에는 길고 짧음이 있으니, 마땅히 다시 이 길고 짧은 뜻을 막아야만 하나니, 왜냐하면, 수의(守意)는 악(惡)을 멈추고자 하기 때문이니, 악은 또한 가히 지킬 수도 있고 또한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니, 왜냐하면, 악이 이미 다하면 마땅히 다시 지킬 것이 없기 때문이다.
數息有三事:一者、當坐行;二者、見色當念非常不淨;三者、當曉瞋,恚、疑、嫉,念過去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에 세 가지의 삼사(三事)가 있으니,
첫째는 마땅히 앉아서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색(色)을 보고 마땅히 비상(非常)과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이요,
셋째는 마땅히 성냄ㆍ의심ㆍ질투함을 분명히 알고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다.
數息亂者,當識因緣所從起,當知是內意。一息亂者是外意過,息從外入故;二息亂者是內意過,息從中出故。三、五、七、九屬外意,四、六、八、十屬內意。嫉、瞋、恚疑、是三意在內;殺、盜、婬、兩舌、惡口、妄言、綺語,是七意及餘事屬外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이 어지러운 것은 마땅히 인연을 좇아 일어나는 바임을 알아야만 하고,
이것은 안의 뜻인 내의(內意)라는 것을 알아야만 하나니,
첫 번째의 일식(一息, 들숨)이 어지러운 것은 바로 바깥 뜻인 외의(外意)의 허물이니, 숨이 밖으로부터 들어오기 때문이요,
두 번째의 이식(二息, 날숨)이 어지러운 것은 바로 안의 뜻인 내의(內意)의 허물이니, 숨이 가운데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요,
3ㆍ5ㆍ7ㆍ9번째는 바깥 뜻인 외의(外意)에 속하고,
4ㆍ6ㆍ8ㆍ10번째는 안의 뜻인 내의(內意)에 속한다.
질투ㆍ성냄ㆍ의심의 세 가지 뜻인 내의(內意)은 안에 있고,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의 일곱 가지 뜻과 나머지는 밖인 외의(外意)에 속한다.
得息爲外,不得息爲內。息從意生,念息合爲一,數息至盡數,爲一亦非一,意在外,息未盡故。譬如數錢,意在五,數爲一也。數息所以先數入者,外有七惡,內有三惡,用少不能勝多,故先數入也。
숨을 얻을 수 있는 득식(得息)은 밖이 되고, 숨을 얻을 수 없는 불득식(不得息)은 안이 되며,
숨은 뜻을 좇아 생기므로 생각과 숨을 합쳐 하나라고 세나,
숨이 다 하면 하나를 세기도 하고 또 하나를 세지 않기도 하는 것은, 뜻은 밖에 있으나 미처 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비유자면, 돈을 세면서 뜻은 다섯 번째에 있는데, 세기는 하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숨을 세는 수식(數息)에서, 세는 것보다 먼저 들어오는 이유는, 밖에는 7악(惡)이 있고 안에는 3악(惡)이 있으므로 적은 것이 능히 많은 것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셈이 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이다.
數息不得者,失其本意故。本意,謂非常、苦、空、非身。失是意墮顚倒故,亦爲失師。師者,初坐時,第一入息得身安便次第行;爲失其本意,故不得息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본래의 뜻인 본의(本意)를 잃었기 때문이니,
본래의 뜻은 비상(非常)과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의 이치이니,
이 본래의 뜻을 잃고 뒤바뀜의 전도(顚倒)에 떨어진 까닭에 또한 사(師)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사(師)는 처음 앉았을 때 첫 번째 들이 쉬는 숨의 제일입식(第一入息)에서 몸의 편안함과 차례대로 행함을 얻는 것이니, 그 본래의 뜻을 잃었기 때문에 숨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數息,意常當念非常、苦、空、非身,計息出亦滅,入亦滅。已知是得道疾,當持非常恐意。得是意,卽得息也。
숨을 세는 수식(數息)에 뜻으로 항상 마땅히 비상(非常)과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을 생각해야 하며,
숨이 나와도 또한 없어지고 들어가도 또한 없어짐을 헤아려야 하나니,
이것을 이미 안다면 도를 얻음이 빠를 것이니, 마땅히 비상(非常)과 공(恐)의 뜻을 가져야만 하며,
이 뜻을 얻으면 곧 숨(息)을 얻는 것이다.
入息、出息所以異者,出息爲生死陰,入息爲思想陰;有時出息爲痛痒陰,入息爲識陰。用是爲異,道人當分別是意也。
들이쉬는 입식(入息)과 내쉬는 출식(出息)이 다른 까닭은, 내쉬는 출식은 생사음(生死陰)이 되고, 들이쉬는 숨은 사상음(思想陰)이 되며,
때로는 내쉬는 출식은 통양음(痛痒陰)이 되고, 들이쉬는 입식은 식음(識陰)이 되나니
이러한 까닭에 다른 것이니, 도인(道人)은 마땅히 이 뜻을 분별해야만 한다.
入息者爲不受罪,出息者爲除罪,守意者爲離罪。入息者爲受因緣,出息者爲到因緣,守意者爲不離因緣也。
들이쉬는 입식은 죄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함이요, 내쉬는 출식은 죄를 제거하기 위함이요,
뜻을 따르는 수의(隨意)는 죄를 여의기 위함이며,
들이쉬는 입식은 인연을 받아들이기 위함이요, 내쉬는 출식은 인연에 이르기 위함이요,
뜻을 따르는 수의(隨意)는 인연을 여의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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