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하

후한(後漢) 안식(安息) 안세고(安世高) 한역 後漢安息三藏安世高譯

佛說大安般守意經 卷下  2

 

安般守意有十八惱,令人不隨道:一爲愛欲,二爲瞋恚,三爲癡,四爲戲樂,五爲慢,六爲疑,七爲不受行相,八爲受他人相,九爲不念。 十爲他念,十一爲不滿念,十二爲過精進,十三爲不及精進,十四爲驚怖,十五爲强制意,十六爲憂,十七爲悤悤,十八爲不度意行愛,是爲十八惱。不護是十八因緣不得道,以護便得道也。

안반수의에 열여덟 가지 번뇌의 십팔뇌(十八惱)가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나니, 

첫째는 애욕(愛欲), 둘째는 성냄의 진에(瞋恚), 셋째는 어리석음의 우치(愚癡), 

넷째는 재미와 즐거움의 희락(戱樂), 다섯째는 아만(我慢), 여섯째는 의심, 

일곱째는 받아 행하지 않는 불수행상(不受行相), 여덟째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아홉째는 생각하지 않음이며, 열째는 엉뚱한 생각의 타념(他念), 열한째는 불만스런 생각의 불만념(不滿念), 

열두째는 과도한 정진, 열셋째는 미급한 정진, 열넷째는 놀라고 두려워하는 경포(驚怖), 

열다섯째는 뜻을 강제로 억제하는 강제의(强制意), 

열여섯째는 걱정, 열일곱째는 조급하게 서두르는 총총(悤悤), 

열여덟째는 뜻을 헤아리지 않고 행하는 사랑, 

이러한 것이 바로 열여덟 가지 번뇌의 십팔뇌(十八惱)이니, 이 열여덟 가지의 인연을 호지(護持)하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하니, 호지함으로써 도를 얻는 것이다.


不受行相者,謂不觀三十二物,不念三十七品經,是爲不受行相。

받아 행하지 않는 불수행상(不受行相)이라는 것은, 이른바 32가지 물(物)을 관(觀)하지 않고, '37품경(37 조도품)'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받아서 행하지 않는이다.


受他人相者,謂未得十息,便行相隨,是爲受他人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이라는 것은, 이른바 아직  번째 숨을 얻지 못하였는데 곧바로 서로 따름의 상수(相隨)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이다.

 

他念者,入息時念出息,出息時念入息,是爲他念。

엉뚱한 생각의 타념(他念)이라는 것은, 이른바 들이쉴  내쉬는 숨을 생각하고, 내쉴 때는 들이쉬는 숨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엉뚱한 생각이다.

 

不滿念者,謂未得一禪,便念二禪,是爲不滿念。

불만스런 생각의 불만념(不滿念)이라는 것은, 이른바 아직  번째 선(禪)을 얻지 못하였는데 곧바로  번째 선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불만스런 생각이다.


强制意者,謂坐亂,意不得息,當經行、讀經,以亂不起,是爲强制意也。

뜻을 강제로 억제하는 강제의(强制意)라는 것은, 이른바 앉았을  뜻이 어지러워 숨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경행(經行)과 경을 읽어 어지러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뜻을 강제하는 것이다.


精進爲黠,走是六事中,謂數息、相隨、止、觀、還、淨,是爲六也。

정진으로 지혜를 삼아  여섯 가지  가운데서 달릴 것이니, 숨을 세는 수식 서로 따르는 상수와 멈춤의 지(止)와 관(觀)과 돌이킴의 환(還)과 정(淨),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다.


何等爲喘?何等爲息?何等爲氣?何等爲力?何等爲風?喘者,爲意息,爲命守,爲氣,爲視聽風,爲能言語,從道屈伸力,爲能擧重瞋恚也。

무엇이 빠른 숨(헐떡이는 숨)이며? 무엇이 느린 숨이며? 무엇이 기운이며? 무엇이 힘이며? 무엇이 바람인가? 

빠른 숨(헐떡이는 숨)이란, 제어하는 것이 뜻이 되고, 숨은 명궁(命宮)이 되고, 기운은 보고 듣는 것이 되며, 바람은 능히 말하는 것이 되나니, 도(道)를 좇아서 굽혔다 펴지며, 힘은 능히 무거운 성냄의 진에(瞋恚)를 들어 올릴  있는 것이다.

 

要從守意得道,何緣得守意?從數轉得息,息轉得相隨,止觀還淨亦爾也。

반드시 수의(守意)를 좇아서 도를 얻을 것이니, 무슨 연(緣)으로 수의를 얻게 되는가?

세는 것으로부터 굴려서 숨을 얻고, 숨을 굴려서 서로 따름의 상수를 얻으며, 멈춤의 지(止)와 관(觀)과 돌이킴의 환(還)과 정(淨) 또한 그러한 것이다.


行道欲得止意,當知三事:一者、先觀念身本何從來,但從五陰行有,斷五陰不復生;譬如寄託須臾耳,意不解,念九道以自證。二者、自當內視心中隨息出入。三者、出息入息念滅時,息出小輕。

도를 행함은 뜻을 멈추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가지를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우선 몸이 본래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관하고 생각하되, 다만 5음(陰)의 행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5음을 끊어서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잠깐 동안 맡겨놓은 듯 한 것일 뿐이니, 뜻으로 풀지 않고, 아홉 가지 도를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증지(證知)하는 것이며,  

둘째는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내관(內觀)하여 숨의 나고 듦을 따름이요, 

셋째는 숨을 내쉬고 들이쉬다가 생각이 사라졌을  숨의 나고 듦이 조금 가벼운 것이다.


念滅時,何等爲知無所有?意定便知空,知空便知無所有。

何以故?息不報便死,知身但氣所作,氣滅爲空,覺空墮道也。

생각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소유(無所有)라는 것을 아는 것인가? 

뜻이 안정(定)되면 문득 공(空)을 알게 되나니, 공을 알면 곧바로소유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숨을 쉬는 것인가? 숨을 쉬지 않으면 바로 죽기 때문이다. 

몸은 다만 기(氣)가 지은 바라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기가 없어지면 공(空)이 되고, 공을 깨달으면 도(道)에 떨어는 것이다.


故行道有三事:一者、觀身;二者、念一心;三者、念出入息。復有三事:一者、止身痛痒;二者、止口聲;三者、止意念行,是六事疾得息也。

그러므로 도를 행하는 것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을 관하는 관신(觀身)이요, 

둘째는  마음을 생각하는 염일심(念一心)이요, 

셋째는 나고 드는 숨을 생각하는 염출입식(念出入息)이다. 

다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통양(痛痒)을 멈춤이요, 둘째는 입의 소리를 멈춤이요, 셋째는 뜻의 염행(念行)을 멈춤이니,

 여섯 가지로서 빠르게 숨을 얻게 되는 것이다.


要經言:一念謂一心,近念謂計身,多念謂一心,不離念謂不離念。身行是四事,便疾得息也。

경(經)을 의거하여 말한다면, 한 생각의 일념(一念)을  마음의 일심(一心)이라 이르고, 

가까이 생각함을 몸을 헤아린다고 이르며, 많은 생각을  마음의 일심(一心)이라 이르고, 

생각을 여의지 않음을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고 하나니, 몸소   가지를 행한다면 빠르게 숨을 얻게 되는 것이다.


坐禪數息,卽時定意,是爲今福;遂安隱不亂,是爲未來福;益久續復安定,是爲過去福也。

좌선하면서 숨을 세는 수식을 하여서 즉시 뜻을 정(定)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복(福)이요, 

마침내 안온하여져서 어지럽지 않음이 바로 미래의 복이며, 

더욱 오래되어서 계속 다시 안정되는 것이 바로 과거의 복이 되며, 


坐禪數息不得定意,是爲今罪;遂不安隱亂意起,是爲當來罪;坐禪益久遂不安定,是爲過去罪也。

좌선하면서 숨을 세는 수식을 하여서 뜻을 정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죄요, 

마침내 안온하지 못하여사 어지러운 뜻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미래의 죄며, 

좌선하여 더욱 오래되었으나 마침내 안정하지 못한 것은 바로 과거의 죄가 된다.


亦有身過、意過:身直數息不得,是爲意過;身曲數息不得,是爲身過也。

또한 몸의 잘못인 신과(身過)와 뜻의 잘못인 의과(意過)가 있으니, 

몸은 바르되  세는 수식 얻지 못한다면 이것은 뜻의 잘못인 의과(意過)요, 

몸이 굽어서  세는 수식 얻지 못한다면 이것은 몸의 잘못인 신과(身過)이다.


坐禪自覺得定意,意喜爲亂意,不喜爲道意。

좌선하여 스스로 깨달아 뜻을 정(定)할  있으니, 뜻으로 기뻐하면 뜻을 어지럽히고, 기뻐하지 않으면 도의(道意)가 되며, 


坐禪念息已止便觀,觀止復行息。人行道,當以是爲常法也。

좌선하여서 생각과 숨이 이미 멈추면 곧바로 관(觀)하고, 관하여 멈추면 다시 숨을 행하니, 사람이 도(道)를 행하되 마땅히 이로써 떳떳한법(常法)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佛說有五信:一者、信有佛有經;二者、去家下頭髮求道;三者、坐行道、四者、得息;五者、定意。所念不念爲空,難不念爲空。

부처님께서 5신(信)을 설하셨으니, 첫째는 부처님이 계시고 경이 있음을 믿음이요, 

둘째는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도(道)를 구함이요, 셋째는 앉아서 도를 행함이요, 

넷째는 숨을 얻음이요, 다섯째는 뜻을 정(定)함이니, 

생각할 바를 생각하지 않음도 공(空)이 되고 어려운 난(難)을 생각하지 않음도 공이 되는 것이다.


何以故念息?報曰:息中無五,色貪、婬、瞋恚、愚癡、愛欲,是亦爲空也。

무슨 까닭에 숨을 생각하는 염식(念息)을 하여야 하는 것인가? 

숨에는 5색(色)과 탐과 음ㆍ진에ㆍ우치ㆍ애욕이 없으니, 이것이 또한 공(空)이 되는 것이다.


可守身中意者,謂意在身觀,是爲身中意。人不能制意:故令數息,以黠能制意,不復數息也。

 가운데에서 뜻을 지킬  있다는 것은, 이른바 뜻을 몸에 두고 관하는 것이니,

이러한 몸 가운데 뜻을 사람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을 헤아리게 하여서 지혜로써 능히 뜻을 제어하고 다시 숨을 헤아리지 않는 불수식(不數息)이 되는 것이다.


問:何等爲自知?何等爲自證?

報:謂能分別五陰是爲自知,不疑道是爲自證也。

묻겠습니다; 무엇이 스스로 아는 자지(自知)이며, 무엇이 스스로 증득하는 자증(自證)입니까?

답하나니; 5음(陰)을 능히 분별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아는 자지(自知)이고, 

도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스스로 증득하는  자증(自證)이다.


問曰:何等爲無爲?

報:無爲有二輩:有外無爲,有內無爲。眼不觀色,耳不聽聲,鼻不受香,口不味味,身不貪細滑,意不志念,是爲外無爲;數息、相隨、止、觀、還、淨,是爲內無爲也。

묻겠습니다; 무엇이 무위(無爲)입니까? 

답하나니; 무위에  가지가 있으니, 밖의무위(外無爲)가 있고 안의 내무위(內無爲)가 있으니, 

눈으로 색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코로 냄새를 맡지 않고, 입으로 맛을 맛들이지 않으며, 몸으로 부드러움을 탐내지 않고, 뜻으로 망령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밖의 무위인 외무위(外無爲)가 되고, 

숨을 세는 수식과 서로 따르는 상수와 멈춤의 지(止)와 관(觀)과 돌이킴의 환(還)과 정(淨)이 바로 안의 무위인 내무위(內無爲)이다.


問:現有所念,何以爲無爲?

報:身口爲戒,意向道行,雖有所念,本趣無爲也。

묻겠습니다; 현재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어떻게 무위가 되는 것입니까? 

답하나니; 몸과 입으로 계(戒)를 삼고 뜻으로 도행(道行)을 향한다면, 아무리 생각하는 바가 있을지라도 본래 무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問:何等爲無?何等名爲?

報:無者,謂不念萬物;爲者,隨經行 指事稱名,故言無爲也。

묻겠습니다; 무엇을 무(無)라고 하며, 무엇을 위(爲)라고 하는 것입니까가?

답하나니; 무(無)는 만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위(爲)는 경을 따라 행하는 것이니, 이러함으로 이름하여서 무위(無爲)라 하는 것이다.


問:設使宿命對來到,當何以卻?

報:行數息、相隨、止、觀、還、淨,念『三十七品經』能卻。難:宿命對不可卻,數息行『三十七品經』。

묻겠습니다; 만약 숙명(宿命)의 대(對, 대응)가 온다 무엇으로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까? 

답하나니; 숨을 세는 수식을 하고 서로 따르는 상수하며 멈춤과 관(觀)과 돌이킴과 정(淨)을 행하며, '37품경'을 염하여 능히 어려움을 물리칠  있으니, 숙명의 대를 물리칠  없다면 수식과 '37품경'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何以故能卻?

報:用念道故消惡。設使數息、相隨、止、觀、還、淨不能滅惡,世閒人皆不得道,用消惡,故得道。數息、相隨、止、觀、還、淨,行三十七品經尚得作佛,何況罪對,在十方積如山,精進行道,不與罪會。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여서 능히 물리칠  있는 것입니까? 

답하나니; 도를 생각하기 때문에 악이 소멸하는 것이니, 만약 수식을 하 상수하면서, 멈추고 관(觀)하고 돌이키고 정(淨)하여서 능히 악을 소멸하지 못한다면, 세간 사람들이 모두 도를 얻을  없을 것이지만, 

악을 소멸하기 때문에 도를 얻는 것이니, 수식을 하고 상수하면서 멈추고 관하며 돌이키고 정(淨)하며, '37품경(37 조도품)'을 행한다면, 오히려 부처도  것이거늘, 하물며 죄대(罪對)이겠는가? 

시방에 산처럼 쌓였을지라도 정진하여 도를 행한다면 죄와 만나지 않을 것이다.


問曰:經言作是何以故不會?

報:用作是故也。數息爲墮十二品。何謂十二品?數息時,墮四意止;息不亂時,爲墮四意念斷,得十息;有時爲墮四神足,是爲墮十二品也。

묻겠습니다; 경(經)에서 무슨 까닭에 만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까?

답하나니;  이것을 짓기 때문이니, 숨을 세는 수식을 하면 12품에 떨어지게 되나니, 무엇이 12품인가? 

수식을 할 때에는 4의지(意止)에 떨어지고, 숨이 어지럽지 않을 때에는 4의념단(意念斷)에 떨어지며,  번째 숨을 얻으면 4신족(神足)에 떨어지게 되나니, 이것이 바로 12품에 떨어지는 것이다.


問:何等爲念『三十七品經』?

報:謂數息、相隨、止、觀、還、淨,行是六事,是爲念三十七品經也。行數息,亦爲行三十七品經。

묻겠습니다;  무엇이 '37품경(37 조도품)'을 생각하는 것이 됩니까? 

답하나니; 숨을 세는 수식과 서로 따르는 상수와 멈춤의 지(止)와 관(觀)과 돌이킴의 환(還)과 정(淨)의 행이 바로 여섯 가지의 육사(六事)이며, 이것이 바로  '37품경(37 조도품)' 생각하는 것이니, 

수식을 행하는 것은 또한  '37품경(37 조도품)' 행하기 위한 것이다.


問:何以故爲行『三十七品經』?

報:數息爲墮四意止。

何以故?爲四意止,亦墮四意斷,用不待念,故爲四意斷;亦墮四神足,用從信,故爲神足也。

묻겠습니다; 무슨 까닭에  '37품경(37 조도품)' 행함이 되는 것입니까? 

답하나니; 숨을 세면 4의지(意止)에 떨어지게 되나니, 

무슨 까닭에 4의지가 되고, 또한 4의단(意斷)에 떨어지는 것인가? 

생각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4의단이 되고, 또한 4신족(神足)에 떨어지게 되며, 

신(信)을 따르기 때문에 4신족이 되는 것이다.


數息爲墮信根,用信佛意喜,故生信根;亦墮能根,用坐行,故爲墮能根;亦墮識根,用知諦,故爲識根:亦墮定根,用意安,故爲定根;亦墮黠根,用離癡意解結,故爲黠根也。

수식을 하면 신근(信根)에 떨어지게 되나니, 부처님을 믿어서 뜻으로 기뻐하는 까닭에 신근이 생기며,

또한 능근(能根)에도 떨어지나니, 앉아서 근(根)을 행하는 까닭에 능근에 떨어지는 것이며,

또한 식근(識根)에도 떨어지나니, 진리의 제(諦)를 아는 까닭에 식근이 되며,

또한 정근(定根)에도 떨어지나니, 뜻이 편안한 까닭에 정근이 되며,

또한 혜근(慧根)에도 떨어지나니, 어리석은 뜻을 여의고 묶임의 결(結)을 푸는 까닭에 혜근이 되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