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상권
佛說大安般守意經卷 上 1
강승회(康僧會) 서문(序文)
강승회(康僧會, ?-280년)는 중국 삼국시대 오(吳) 나라의 강거(康居)출신의 역경승이다. 지겸에 이어 3세기 중반부터 활동한 역경승이며, 오의 손권(孫權)에 이어 손호(孫皓)에 이르기까지 수도였던 건업(建鄴, 남경)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강승회의 조상은 강거사람으로 인도에 살고있었다. 승회의 아버지는 상인으로 베트남으로 건너가 정착하였으며, 승회는 부모와 사별한 후 출가수도를 시작했다. 또한 천문학, 참위학(讖緯学)에도 밝아서. 적오10년(247년)에 오의 수도 건업 (建業)으로 들어가 손권(孫権)의 지지를 얻어 강남지방에 최초의 불교사원 건초사(建初寺)를 건립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단 강승회보다 앞서 지겸(支謙)이 이미 20년전에 강남에서 선교 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건초사에 대한 에피소드는 승회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속설로 생각된다.
그 후 경전을 한역하는 일에 종사하며 그중에서도 『육도집경(六度集経)』은 역경된것이 아니라 강승회 자신의 저술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손권 손호(孫皓)와의 사이에 펼쳐진 인과응보에 관한 대론이 그 전기에 기제되고있어 초기의 중국 불교와 유교적인 관념과의 접촉, 교섭의 단서로서 주목할만 하다. 서진(西晋)의 태강원년(280년)에 원적(円寂). 저서로는 『육도집경』외에 『오품경(呉品経)』、『잡비유경(雑譬喩経)』등이 있다.
夫安般者,諸佛之大乘,以濟衆生之漂流也。其事有六,以治六情。情有內外:眼、耳、鼻、舌、身、心,謂之內矣;色、聲、香、味、細滑、邪念,謂之外也。經曰諸海十二事,謂內外六情之受邪行,猶海受流。
안반(安般, anapana, 안나반나, 수식관)이라는 것은 여러 부처님들의 큰 가르침인 대승(大乘)으로, 세속에서 표류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안반의 선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것으로 6정[六情]을 다스리는 것이다.
정(情)에는 안과 밖의 내외(內外)가 있으니,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마음(心)은 안(內)이고,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감의 세활(細滑) ⋅ 사념(邪念)은 바깥(外)이라 한다.
경(經)에서 “여러 바다의 12가지 현상의 십이사(十二事)”라고 한 것은, 안과 바깥의 6정이 삿된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바다가 온 세상의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안반(安般) : 범어 ‘anapana’를 음사한 말로 아나파나(阿那波那) 혹은 안나반나(安那般那)로 표기되던 것을 줄여 안반이라 고 한 것이다. 같은 말로 수식관(數息觀)이라고도 하는데, 수를 헤아리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집중시키는 관법이다.
餓夫夢飯,蓋無滿足也。心之溢盪,無微不浹;怳惚髣髴,出入無閒;視之無形,聽之無聲;逆之無前,尋之無後;深微細妙,形無絲髮。梵釋僊聖所不能照明,默種于此化生乎。
굶주린 사람이 꿈에서도 밥을 먹는 것은 대개 만족하지 못한 때문이니,
마음이 이렇게 만족을 모르고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은, 마음의 아주 작은 것에도 6정이 작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너무나 흐릿하고 어렴풋하며, 그 작용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아도 그것을 그릴 수 없고, 들어도 소리로 나타낼 수 없으며,
이것을 맞닥뜨려서 알고자 하여도 그 앞에는 아무 것도 없고,
이것을 좇아서 탐구한 뒤에도 남는 것이 없으니,
지극히 은밀하고 너무나 오묘하여서 그 모습을 터럭만큼도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범천(梵) · 제석(釋) ·신선(仙) · 성자(聖)도 육정(六情)의 실체를 밝힐 수 없었으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나, 마음에 심어져서 고요히 생겨난 것이다.
彼非凡所睹,謂之陰也,猶以晦曀種夫深芬,闓手覆種,孳有萬億,旁人不睹其形,種家不知其數也。一朽乎下,萬生乎上,彈指之閒,心九百六十轉;一日一夕,十三億意。意有一身,心不自知,猶彼種夫也。
육정의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음(陰)’이라 하나니,
마치 그늘진 곳에 농부가 땅을 깊게 파서 손수 씨앗을 덮어주면 씨앗이 셀 수 없을 만큼의 열매를 맺으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 이루어진 과정을 알 수 없고, 씨를 뿌린 사람도 그 수(數)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래에서 하나가 썩어도 위에서는 만 가지가 생겨나는 것과 같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짧은 시간의 탄지지간(彈指之閒)에도 마음은 960번을 변하는 것이니,
하루 밤낮이면 13억의 생각(意)이 생겨나는 것이다.
생각생각마다 하나의 몸통인 일신(一身)이 있으나 마음(心)은 스스로가 알 수가 없으니, 씨를 뿌린 농부와 같은 것이다.
是以行寂,繫意著息,數一至十;十數不誤,意定在之;小定三日,大定七日,寂無他念,怕然若死,謂之一禪。
이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이 날뛰지 않게 꽉 붙잡고 호흡을 시작하여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세는 것이니, 열을 셀 때까지 잘못되지 않으면 생각이 고요한 상태가 되어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짧은 입정인 소정(小定)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키며,
소정(小定)은 3일을 하고, 긴 입정의 대정(大定)은 7일 동안 하는데,
고요히 다른 생각의 염(念)이 없어지고 죽은 듯이 생각이 맑아지나니, 이를 첫 번째 선인 일선(一禪)이라 하며,
禪棄也,棄十三億穢念之意。已獲數定,轉念著隨,蠲除其八。正有二意,意定在隨,由在數矣!垢濁消滅,心稍淸淨,謂之二禪也。
선(禪)은 버린다는 뜻이니, 13억의 더러운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수를 세어 생각을 고요히 하였으면,
뜻(念)을 바꾸어서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따르니, 더러운 생각은 열에 여덟이 제거되어서,
바로 두 가지 생각의 이의(二意)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이 고요하여지고 뜻이 부처님의 법을 따르게 되는 것은, 수를 세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래서 모든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고 마음이 점점 맑아지게 되나니, 이를 일러 두 번째 선인 이선(二禪)이라 하며,
又除其一,注意鼻頭,謂之止也。得止之行,三毒、四走、五陰、六冥,諸穢滅矣,㷡然心明踰明月珠。婬邪污心,猶鏡處泥穢垢污焉;偃以照天,覆以臨土;聰睿聖達,萬土臨照。雖有天地之大,靡一夫而能睹,所以然者,由其垢濁。衆垢污心,有踰彼鏡矣!
다시 그 나머지 하나를 제거하는 것은, 코끝인 비두(鼻頭)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지(止)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는 지(止)의 선법을 얻으면,
탐진치의 삼독(三毒)과 마음이 사방으로 치닫는 상태 등의 사주(四走)와、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음(五陰, 오중)과
지옥도(地獄道)·아귀도(餓鬼道)·축생도(畜生道)·아수라도(阿修羅道)·인간도(人間道)·천상도(天上道)의 육명(六冥) 등의 모든 더러운 것이 소멸하게 되어서, 찬란하게 빛나는 마음의 밝은 빛이 명월주(明月珠)의 빛보다 더 밝을 것이니,
음탕하고 거짓된 더러운 마음은 거울이 아주 더러운 진흙탕에 놓인 것과 같은 것으로, 눕히면 하늘을 비출 것이고 엎어두면 땅만 마주할 것이다.
그러나 총명하고 지혜롭고 성스러우며 이치에 통달한 마음은 온 세상을 비출 것이니, 하늘과 땅이 광대하여서 평범한 사람은 엿볼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어 혼탁해져 있기 때문이니, 일체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은 저 진흙탕에 놓인 거울보다 심한 것도 있는 것이다.
육명(六冥) : 직역하면 여섯 가지 어둠을 뜻하나 명확하지 않다. 이전의 번역에서는 6도(六道)로 번역해 두었으나 근거는 알 수 없다. 육도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불교에서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으로, 지옥도(地獄道)·아귀도(餓鬼道)·축생도(畜生道)·아수라도(阿修羅道)·인간도(人間道)·천상도(天上道)를 말한다.
若得良師剗刮瑩磨,薄塵微曀,蕩使無餘;擧之以照,毛髮面理,無微不察;垢退明存使其然矣!
情溢意散念,萬不識一矣。猶若於市,馳心放聽,廣採衆音;退宴在思,不識一夫之言。心逸意散,濁翳其聰也。若自閑處,心思寂寞,志無邪欲,側耳靖聽,萬句不失,片言斯著,心靖意淸之所由也。行寂止意,懸之鼻頭,謂之三禪也。
만약 좋은 스승을 얻어서 더러운 것을 깎아내고 마음을 잘 닦아내면, 마음에 남아 있던 작은 흠과 아주 작은 얼룩까지도 시원하게 씻기어 남은 것이 없게 되나니,
이러한 마음을 들어서 온 세상을 비춘다면 터럭과 머리카락 같은 아주 작은 이치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살피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마음에 뭏어있던 흠들이 없어지고 밝은 마음만이 남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정(情)은 생각(意)을 요동치게 하고, 뜻(念)을 어지럽게 하여서, 만 가지의 이치 중에서 하나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마치 시장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제멋대로 들으면 많은 소리들을 들으나, 집에 돌아와서 들은 것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말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이 풀어지고 생각(意)이 흩어지면 그 총명함이 흐려지고 어두우나,
만약 스스로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마음과 생각(意)을 고요하게 한다면,
그 뜻(志)에 거짓된 욕망이 없게 되고, 귀를 기울여 고요히 듣게 되어서, 들은 불법의 모든 구절의 만구(萬句)를 조금도 잃지 않게 되며,
부처님의 한 마디 말씀인 편언(片言)까지도 분명하게 깨우칠 것이니,
마음(心)이 고요하여지고, 생각(意)이 맑아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고요하게 생각을 모아서 코끝에 집중하는 것, 이것을 세 번째의 선인 삼선(三禪)이라 하며,
還觀其身,自頭至足,反覆微察;內體污露,森楚毛豎,猶睹膿涕。於斯具照天地人物,其盛若衰,無存不亡。信佛三寶,衆冥皆明,謂之四禪也。
다시 그 몸을 관찰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반복하여 세밀히 살펴보면, 몸 안의 더러운 농과 빽빽하게 곤두선 머리털을 마치 눈물이나 고름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한 방법으로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과 사물(物)을 모두 관찰하여 본다면,
그 흥성함은 쇠망함과 같은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쇠망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나니,
부처님의 삼보(三寶)를 믿게 되고, 모든 어두움의 명(冥)은 전부 밝아질 것이니, 이를 일러 네 번째의 선인 사선(四禪)이라 하는 것이다.
攝心還念,諸陰皆滅,謂之還也。穢欲寂盡,其心無想,謂之淨也。得安般行者,厥心卽明,擧明所觀,無幽不睹。往無數劫,方來之事,人物所更,現在諸剎,其中所有;世尊法化、弟子誦習,無遐不見,無聲不聞;怳惚髣髴,存亡自由;大彌八極,細貫毛氂。制天地,住壽命;猛神德,壞天兵;動三千,移諸剎,八不思議,非梵所測;神德無限,六行之由也。
마음을 다잡아서 고요히 하고 바른 뜻(念)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육정의 음(陰)이 다 소멸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환(還)이라 하며,
그리고 더러운 욕심이 소리 없이 사라지면, 그 마음은 곧바로 대상을 구분하여서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의식 작용의 상(想)이 없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정(淨)이라 하나니,
안반의 선법을 얻은 사람은 그 마음이 곧장 밝아지고, 그 밝음으로 온 세상을 관찰한다면 아무리 깊이 감추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관찰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니,
셀 수 없는 겁(劫)의 지나온 시간, 현재와 미래의 일들, 사람(人)과 사물(物)의 변화, 현재 존재하는 방방곡곡의 모든 세상인 제찰(諸刹),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을 모두 알 수 있으며,
또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세존(世尊)의 가르침과 교화와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외고 학습하는 것을 보지 못함이 없으며, 그 소리를 듣지 못함이 없게 되어서, 6정의 흐릿하고 어렴풋한 모습도, 존재와 소멸의 시작과 그 이유도 깨닫게 되나니,
그것이 커지면 온 세상의 팔극(八極)에 두루 미치게 되고, 가늘어지면 머리카락보다 가는 모희(毛釐)도 꿸 수 있으며,
하늘과 땅을 바로잡고, 수명(壽命)을 주관하며, 거룩한 신덕(神德)을 발휘하고, 수 많은 군사의 천병(天兵)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세상의 방방곡곡을 옮겨 다닐 수 있으니,
이 여덟 가지의 팔불사의(八不思議)는 범천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니, 이런 신묘한 덕의 무한함은 안반의 여섯 가지 선법인 육행(六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世尊初欲說斯經時,大于震動,人天易色,三日安般,無能質者。於是世尊化爲兩身,一曰何等、一尊主,演于斯義出矣。大士、上人、六雙、十二輩,靡不執行。
세존께서 처음 이 경전을 말씀하시고자 하실 때, 큰 진동(震動)이 있어, 사람과 천신이 얼굴색을 바꾸어 이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였으며, 세존께서는 3일 동안 안반(安般)의 선법을 하셨으며,
일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 바로잡는 질(質, 질정 質正)이 없게 되었다.
이 때에 세존께서 변화되어 두 몸이 되셨으니, 하나는 하등(何等)이라고 불렸고, 다른 하나는 존주(尊主)라고 불렀으며, 이 당시의 일로 인하여 그 뜻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대사(大士), 상인(上人), 육쌍(六雙), 십이배(十二輩) 모두가 안반의 선법을 굳게 행하였다.
십이배(十二輩)는 십이천(十二天)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십이천은 인간을 수호하는 열두 하늘이란 의미로 그곳을 지키는 열두 신(神). 사방(四方), 사유(四維)의 팔천(八天)에 상, 하의 2천(天) 및 일(日), 월(月)의 2천(天)을 더한 것이다.
곧 동에 제석천(帝釋天), 동남에 화천(火天), 남에 염마천(閻魔天), 서남에 나찰천(羅刹天), 서에 수천(水天), 서북에 풍천(風天), 북에 비사문천(毘沙門天), 동북에 대자재천(大自在天), 상(上)에 범천(梵天), 하(下)에 지천(地天), 그리고 일천(日天), 월천(月天)을 이른다.
有菩薩名安淸,字世高,安息王嫡后之子。讓國與叔,馳避本土;翔而後集,遂處京師。其爲人也,博學多識,貫綜神摸、七正、盈縮、風氣、吉凶、山崩、地動、鍼脈諸術。睹色知病,鳥獸鳴啼,無音不照。懷二儀之弘仁,愍黎庶之頑闇。先挑其耳,卻啓其目,欲之視明聽聰也。徐乃陳演正眞之六度,譯安般之秘奧,學者塵興,靡不去穢濁之操,就淸白之德者也。
이름이 안청(安清)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자(字)는 세고(世高)이며, 고대의 이란계 왕국인 파르티아의 왕인, 안식왕(安息王)의 정실 왕후의 자식이었다.
그는 나라를 숙부에게 양보하고 고국을 떠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상이후집(翔而後集)하다가, 드디어 경사(京師)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또한 그는 널리 배우고 아는 것이 아주 많았으니,
신묘한 모사의 신모(神摸) ⋅ 천체 운행의 칠정(七正) ⋅ 세상의 온갖 변화하는 현상의 영축(盈縮) ⋅ 풍기(風氣) ⋅ 길흉(吉凶) ⋅ 산사태의 산붕(山崩) ⋅ 지진의 지동(地動) ⋅ 침술의 침맥(鍼䘑) 등의 여러 기술에 통달하여서,
얼굴 빛을 보면 병을 알았고, 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있었으며,
또한 하늘과 땅, 양과 음의 이의(二儀)와 같이 넓고 어진 마음으로 백성들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걱정하여서,
먼저 스스로의 귀를 세우고 스스로의 눈을 열어서, 백성들의 모든 것을 잘 보고 듣고자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천천히 백성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님이신 정진(正眞)의 6도(六度, 육바라밀)를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고, 안반의 비밀스럽고 오묘한 뜻을 번역하여 주었으니, 배우는 자들이 크게 늘어났으며, 그들의 더럽고 탁한 생각이 모두 없어지면서 맑고 깨끗한 덕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었다.
* 상이후집(翔而後集) :『논어』「향당(鄕黨)」의 “새가 사람의 기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날아올라 빙빙 돌며 살펴보고 나서 내려앉는다[色斯擧矣 翔而後集〕”는 내용에서 나온 말.
* 칠정(七正) : 일(日)ㆍ월(月)과, 수(水)ㆍ화(火)ㆍ금(金)ㆍ목(木)ㆍ토(土)의 오성(五星)인데, 순 임금이 이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여 길흉을 판단하여 정사를 행하였다고 한다.
* 영축(盈縮) : 진퇴(進退)ㆍ굴신(屈伸)ㆍ다소(多少)ㆍ장단(長短)ㆍ수요(壽夭)ㆍ영허(盈虛) 등 온갖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余生末蹤,始能負薪,考妣殂落,三師凋喪;仰瞻雲日,悲無質受;睠言顧之,潛然出涕。宿祚未沒,會見南陽韓林、穎川皮業、會稽陳慧。此三賢者,信道篤密,執德弘正;烝烝進進,志道不倦
。余從之請問,規同矩合,義無乖異。陳慧注義,余助斟酌,非師所傳,不敢自由也。言多鄙拙,不究佛意,明哲衆賢,願共臨察;義有肬腨加聖刪定,共顯神融矣。
나는 말세에 태어나 땔감을 짊어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을 여의었고, 세 분의 스승님도 모두 돌아가셨으니, 구름과 해를 우러러보았지만 슬프게도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는, 질정(質正)을 받을 곳이 없게 되었고,
머리를 돌려 바라보아도 눈물만이 주르륵 흐를 뿐이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복이 다 없어지지 않아서, 남양(南陽)의 한림(韓林) 선생님, 영천(潁川)의 피업(皮業) 선생님, 회계(會稽)의 진혜(陳慧)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세 분의 현자(賢者)들은 독실하고 철저하게 불도를 믿으셨고, 넓고 바른 덕을 지니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정진하셨으며 불도에 뜻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셨다.
내가 이 분들을 좇아 물음을 청하면, 세 분의 대답은 모두 진리에 딱 들어맞았고 그 의미도 서로 어긋남이 없으셨다.
그리고 지혜를 베푸시고 불법의 의미를 해석해주셔서 내가 불도를 따져서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니, 나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말이 비루한 데가 많고, 부처님의 뜻을 궁구하지도 못하였기에, 삼가 명철한 많은 현인들께서 함께 꼼꼼히 살펴봐주시고, 불법의 의미를 해석함에도 군더더기가 많으니, 성인들께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다듬어서 감추어진 부처님의 신묘한 뜻을 드러내 주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머리를 돌려 바라보아도 눈물만이 주르륵 흐를 뿐 이었다. :『시경(詩經)』「대동(大東)」에 “주나라가 가는 길은 숫돌처럼 판판하여 그 곧기가 화살과 같도다. 군자가 밟는 길이요 소인들이 우러러보는 것이니, 내가 머리를 돌려 그 길을 돌아보며 줄줄 눈물을 흘리노라.[周道如砥 其直如矢 君子所履 小人所視 睠言顧之 潸焉出涕]”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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