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6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4. 입소지상분(入所知相分) 2
又於此中,三種練磨心者,謂諸菩薩, 善根無缺`善根力持,由此力故,則能三種練磨其心,心無退屈. 初當顯示第一練磨心,謂人趣中,無量世界,無量有情,剎那剎那,能證無上正等菩提, 云何我今獨不能證?
또한 여기서 세 가지 마음을 연마함의 삼종연마심(三種練磨心)은 모든 보살이 선근(善根)을 빠뜨리지 않고 선근력(善根力)을 지니며, 이러한 힘에 의하여 능히 세 가지로 그 마음을 연마하고, 퇴굴함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처음에는 마땅히 그 첫째의 제일연마심(第一練磨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인취(人趣, 인간세계)의 무량한 세계의 수많은 유정(有情)은 찰나찰나마다 능히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하거늘,
어째서 나 혼자만이 증득하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며,
次當顯示第二練磨心,謂諸菩薩,作是思惟: 我此意樂離諸障㝵, 波羅蜜多慳等障㝵, 皆無有故,不由功用,波羅蜜多,當得圓滿,此圓滿故,證佛菩提.
다음으로는 둘째로 제이연마심(第二練磨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보살이 사유하기를 “나의 이 의요는 모든 장애를 떠났으며, 바라밀다에도 인색 등의 모든 장애가 없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의 공용(功用)없이도 바라밀다가 장차 원만해질 수 있으니, 이 원만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한다”라고 하는 것이며,
後當顯示第三練磨心,有障善者,謂由世善而成其善.此有障善,尚命終時,卽便可愛一切自體圓滿而生,況我今者,由無障善而成其善,不當成佛無上菩提,無有是處.
다음에 마땅히 셋째로 마음을 연마함의 제3연마심(第三練磨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장애 있는 선의 유장선(有障善)’이란, 세간의 선에 의거해서 그 선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이 장애 있는 유장선(有障善)도 오히려 목숨이 다할 때에는 사랑할 만한 모든 것을 자체에서 원만히 생겨나게 하거늘, 하물며 나는 지금 장애 없는 무장애선(無障㝵善)에 의거해서 그 선을 이루려 하나니, 장차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의 무상보리(無上菩提)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論曰:此中有頌:
▷ 논문; 이러함에 게송이 있으니,
“人趣諸有情, 處數皆無量, 念念證等覺, 故不應退屈.
인취(人趣, 인간세계)의 모든 유정은 처소도 숫자도 무량하거늘,
생각 생각의 염념(念念)에 등각(等覺)을 증득하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퇴굴하지 않아야 하리라.
등각(等覺), 등각위(等覺位)라 하고,'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등각위를 무구지(無垢地)라 한다.
첫째, 등각(等覺), 완전한 깨달음은 부처님의 십호 가운데 하나이며, 또한, 성문 · 연각 · 보살의 모든 수행계위에서 최후의 단계인 부처의 깨달음 즉 구경각(究竟覺)을 말한다. 여기서의 '등(等)'은 한결같이 평등하다 또는 동등하다 또는 동일하다는 뜻으로, 모든 부처 또는 여래의 깨달음은 각자마다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평등하기 때문에 즉 모두 동등한 또는 동일한 깨달음이기 때문에 등각이라고 한다. 평등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에서 등정각(等正覺) 또는 정득각(正等覺)이라고도 하며, 묘각(妙覺) ·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불지(佛地) 또는 불지(佛智)와 동일한 지위 또는 계위이다.
둘째, 등각(等覺)은 지극히 비슷한 깨달음, 거의 같은 깨달음, 거의 동등한 깨달음은 52위 등의 보살 수행계위 즉 대승불교의 수행자 또는 보살승의 수행자의 수행계위에서 최후의 단계인 부처의 깨달음 즉 구경각 직전의 단계를 말한다. 여기서의 '등(等)'은 지극히 비슷하다 또는 거의 같다는 뜻으로, 구경각 즉 묘각과는 1등급의 차이가 있지만 그 깨달음 즉 지혜[覺]가 온갖 공덕이 원만한 부처의 지혜[覺]와 지극히 비슷하다 또는 거의 같다는 뜻에서 등각이라고 한다.
셋째, 조선시대에 편찬된 불교대장경인 '월인석보'에서 설하고 있는 58위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구경각의 2단계 전의 계위로 보고 있다.
諸淨心意樂, 能修行施等, 此勝者已得, 故能修施等.
모든 청정한 마음의 의요(意樂)로, 능히 보시 등을 수행하네.
뛰어난 승자(勝者)는 이미 증득하였으니, 그러므로 능히 보시 등을 수행하네.
善者於死時, 得隨樂自滿, 勝善由永斷, 圓滿云何無?”
착한 선자(善者)는 죽을 때에, 기꺼이 즐거움을 따라 스스로 원만해질 수 있으니,
뛰어난 승선(勝善)은 영원히 단절하거늘, 어찌 원만함이 없겠는가?
▶釋曰:復以伽他,顯如是義.故不應退屈者,由上因緣,策持其心,令不怯弱,謂生是心: 我不能證無上菩提.
諸淨心者,是非不善無記心義.謂或有人,以其散亂無記之心,而行施等,如是外道,以不善心,而行施等.若求無上正等菩提,是最勝善,故名淨心.
▷해석한다; 다시 게송으로써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었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퇴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란, 위에서 말한 인연으로 인하여 그 마음을 책려하여 “나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할 수 없다”는 이러한 겁약한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모든 청정한 마음’이란 불선이나 무기심(無記心)의 뜻이 아니다.
어떤 이는 그 산란된 무기심으로써 보시 등을 행하는 것과 같이 외도들은 불선심으로써 보시 등을 행하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구하는 이것이 가장 뛰어난 최승선(最勝善)이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의 정심(淨心)이라 하는 것이다.
此勝者已得,故能修施等者,最勝菩薩,名爲勝者,此之意樂,菩薩已得,是故能修施等諸度.卽是已得能斷慳等所治心義 等者,取始從尸羅,乃至般若波羅蜜多. 善者於死時,得隨樂自滿者,是乃至得非想非非想處義.
‘이 뛰어난 승자(勝者)는 이미 증득하였으니, 그러므로 능히 보시 등을 수행한다네’란,
가장 뛰어난 보살을 뛰어난 승자라고 부르고, 이 의요를 보살이 이미 얻었기 때문에 능히 보시 등의 여러 바라밀을 닦는 것이니, 이것은 곧 인색함 등을 능히 끊어서 다스려진 마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등(等)’이란, 처음에 지계바라밀다로부터 나아가 반야바라밀다에 이르기까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착한 선자(善者)가 죽을 때에 기꺼이 즐거움을 따라서 스스로 원만해질 수 있네’는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얻는다는 뜻이다.
ㅡ범부가 세간의 선을 행하면 색계ㆍ무색계의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고, 나아가 무색계의 최고의 하늘인 비상비비상처에도 날 수 있다는 뜻이다.
勝善由永斷,圓滿云何無者,是由永斷障,而成勝善,圓滿佛果.云何無義?
‘뛰어난 승선(勝善)은 영원히 단절하거늘, 어찌 원만함이 없겠는가?’는 영원히 장애를 단절하였으므로 뛰어난 승선을 이룬 까닭에 부처님의 증과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論曰:由離聲聞`獨覺作意,斷作意故.由於大乘諸疑離疑,以能永斷異慧疑故.由離所聞`所思法中,我`我所執,斷法執故.由於現前現住安立一切相中,無所作意,無所分別,斷分別故.此中有頌:
▷ 논문; 성문ㆍ독각의 작의를 떠남으로써 작의(作意)를 끊은 까닭이며,
대승에 관한 모든 의심에 대한 의심을 여읨으로써 능히 다른 견해(삿된 견해)와 의심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며,
듣고 사유한 법 가운데에서 나(我)ㆍ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여읨으로써 법집(法執)을 끊은 까닭이며,
현재 눈앞에 머물러서 안립한 모든 일체의 상(相)에 대해서 작의하는 바도 없고 분별하는 바도 없음으로써, 분별을 끊은 때문이다.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現前自然住, 安立一切相, 智者不分別, 得最上菩提.”
현재 눈앞에 자연히 머물러, 안립한 모든 일체의 상(相)을
지혜로운 이는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인 최상보리(最上菩提)를 얻는다네.
▶釋曰:今當顯示斷除四處. 斷作意故者,謂斷聲聞等, 諸作意故.以能永斷異慧疑故者,謂於大乘甚深廣大,能永斷除異慧及疑.此中異慧,謂鄙惡慧,於理動搖.疑謂猶預.
▷해석한다; 이제 마땅히 네 가지를 끊어 없애는 것을 나타내 보이겠으니,
‘작의(作意)를 끊기 때문’이란, 이른바 성문등의 모든 작의를 끊는 것이며,
‘능히 다른 견해와 의심을 영원히 끊은 때문’이란, 이른바 대승의 매우 심오하고 광대함에 대한 다른 견해와 의심을 영원히 끊어 없애는 것이니, 여기에서 다른 견해는 비루하고 잘못된 이해로서 바른 도리에 대해서 흔들리는 것이며, 의심은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由於大乘諸疑離疑者, 謂於大乘,安立法相三自性教,謂若說諸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諸如是等,永無異門.依遍計所執自性而說,若說諸法如幻`陽炎`夢相`光影`影像`谷嚮`水月`變化,諸如是等,虛妄異門.依依他起自性而說,若說諸法眞如`實際`無相`勝義`法界`空性.諸如是等眞實異門,依圓成實自性而說, 於此一切異慧及疑永無復轉.
‘대승에 관한 모든 의혹에 대하여서 의심을 여읜다’는 것이란, 대승에 있어서 법상(法相)의 세 가지 자성의 가르침을 안립함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제법이 모두 무자성(無自性)으로서, 생겨남도 없고 소멸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본래 적정한 자성열반이라 말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본래부터 비존재인 까닭에 영원한 비존재의 이문(異門, 다른 견해)로서 변계소집자성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며,
만약 제법이 요술ㆍ아지랑이ㆍ꿈의 모습ㆍ그림자ㆍ영상ㆍ메아리ㆍ물에 비친 달ㆍ변화와 같다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것들은 허망된 다른 견해로서, 의타기자성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며,
만약, 제법이 진여ㆍ실제ㆍ무형상ㆍ승의ㆍ법계ㆍ공성이라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것들은 진실의 다른 견해로서, 원성실자성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 다른 견해와 의심이 영원히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이다.
由離所聞`所思法中,我`我所執者,此中意說斷除法執.
‘듣고 사유한 법 가운데 나(我)ㆍ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여읜다’는 것은 법집을 끊어 없앰을 의미하며,
ㅡ아집이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오직 법집 끊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斷法執故者,乃至所聞`所思法中,執我`我所,終不於彼,如實悟入. 由於現前現住安立一切相中,無所作意,無所分別者,謂加行無分別智轉時,如理作意,住一切定心,諸相作意,分別皆斷.斷分別故者.謂於現前色等現住,及骨鎖等定所安立,一切所緣,諸境界相,皆不作意,無所分別,由無分別方便能入,若異分別,終不能入.現前自然住等頌,唯顯最後所斷義.
‘법집을 끊기 때문’이란 나아가 듣고 사유한 법에 대해서 나(我)ㆍ나의 것(我所)에 집착한다면, 끝까지 진리 그대로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눈앞에 머물러서 안립한 일체의 모든 상에 대해서 작의하는 바도 없고 분별하는 바도 없다’는 것이란,
가행하여 무분별지혜가 작용할 때, 이치 그대로 작의하여 모든 선정의 마음에 안주하고 모든 상에 대한 작의 분별도 모두 끊는 것이며,
‘분별을 끊기 때문’이란 현재 눈앞에 빛깔(色) 등이 머물고 있는 것과 같이, 산란된 마음 밖에서 현재 눈앞에 머물고 있는 모든 법과 골쇄(骨鎖, 부정관의 골쇄관) 등의 선정이 안립한 모든 소연(所緣, 인식대상)의 경계상(境界相)에 대해서 전혀 작의하지 않고 분별하는 바가 없는, 무분별의 방편에 의해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다른 분별이라면, 종내 깨달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눈앞에 자연히 머물러’ 등의 게송은 오직 최후에 단절되는 소단(所斷)의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골쇄관(骨鎖觀), 부정관(不淨觀)의 하나로서 신체에 대한 애착을 끊기 위해서 신체가 죽어서 백골(白骨)이 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論曰:由何云何而得悟入?
▷논문; 무엇에 의거해서, 어떻게 깨달아 들어갈 수 있는가?
ㅡ제2위인 가행위에서의 수행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는 수행심을 더욱 경책하여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이며, 제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위(世第一位)의 네 가지 가행을 닦는 단계이다.
▶釋曰:爲顯由此如是悟入,故爲此問.
▷해석한다; 이것에 의거해서 이와 같이 깨달아 들어갈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다.
▶論曰:由聞熏習種類,如理作意,所攝似法 似義,有見意言.
▷논문; 들어서 훈습되는 문훈습(聞熏習)의 종류에 의거하는 것이니,
이치 그대로의 여리작의(如理作意)에 포섭되는 법과 비슷하게 현현하고
대상(義)과 비슷하게 현현하는 유견(有見, 견분)의 의언(意言)이다.
ㅡ유견(有見)만 말하고 유상(有相)을 들지 않은 것은, 이 관법이 내부의 식을 반연하고 외부 대상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釋曰:由此悟入,今當顯示.此中由聞熏習種類者,謂由聞熏習爲因,
卽前所說悟入任持大乘熏習等所生故,應知是圓成實自性所攝.
▷ 해석한다; 이것에 의거해서 깨달아 들어감을 이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 중에서, ‘들어서 훈습되는 문훈습(聞熏習)의 종류에 의거한다’는 것이란, 이른바 들어서 훈습되는 것을 원인으로 삼는 것에 의하는 것이니, 곧 앞에서 말한 깨달아 들어가는 오입(悟入)은 대승의 훈습 등을 보전하여 지녀서 생겨나기 때문이니,
이것은 원성실자성에 포섭된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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