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제 5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3. 소지상분(所知相分) ② 3

 

▶論曰:『阿毘達磨大乘經』中,薄伽梵說,法有三種:一雜染分`二淸淨分`三彼二分.依何密意, 作如是說?

於依他起自性中,遍計所執自性,是雜染分,圓成實自性,是淸淨分,卽依他起,是彼二分.依此密意,作如是說.

▷논문; '아비달마대승경(阿毘達磨大乘經)'에서 박가범(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잡염분(雜染分)이고, 둘째는 청정분(淸淨分)이며, 셋째는 그 두 부분의 이분(二分)이다”라고 하셨으니,

어떠한 비밀스런 뜻에 의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인가?

의타기자성 중에서 변계소집자성은 잡염분이고, 원성실자성은 청정분이며, 의타기자성은 그 두 부분이니, 이러한 비밀스런 뜻에 의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於此義中,以何喩顯?以金土藏,爲喩顯示.譬如世閒金土藏中,三法可得:一地界`二土`三金.

이러한 뜻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유로써 나타내는 것인가?

금을 함장한 흙덩어리인 금토장(金土藏)으로 비유하여 나타내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세간의 금을 함장한 흙덩어리에 세 가지의 법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첫째는 지계(地界)이고, 둘째는 흙(土)이며, 셋째는 금(金)이다.

 

於地界中,土非實有,而現可得.金是實有,而不可得.火燒鍊時,土相不現,金相顯現.又此地界,土顯現時,虛妄顯現,金顯現時,眞實顯現,是故地界,是彼二分.

지계(地界) 가운데에서 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현재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금은 실제로 있는 것이지만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불로 제련한 때에는 흙의 상은 나타나지 않고 금의 상이 현현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이 지계(地界)는 흙이 현현할 때에는 허망되게 현현하고, 금이 현현할 때는 진실되게 현현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지계는 그 두 부분이 되는 것이다.

 

識亦如是,無分別智,火未燒時,於此識中,所有虛妄遍計所執自性顯現,所有眞實圓成實自性不顯現. 此識若爲無分別智,火所燒時,於此識中,所有眞實圓成實自性顯現,所有虛妄遍計所執自性不顯現. 是故此虛妄分別識, 依他起自性,有彼二分,如金土藏中,所有地界.

식(識) 역시도 이와 같아서, 무분별지(無分別智)의 불이 아직 타지 않을 때에는, 이 식 안에 있는 허망된 변계소집자성이 현현하고, 진실된 원성실자성은 현현하지 않으나,

만약 이 식이 무분별지혜의 불에 탈 때에는, 이 식 안에 있는 진실된 원성실자성이 현현하고, 허망된 변계소집자성은 현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허망된 분별식인 의타기자성에는 그 두 가지 부분 모두가 있어서, 금을 함장한 흙덩어리에 있는 지계(地界)와 같은 것이다.


▶釋曰:『阿毘達磨大乘經』中,由此密意,說有三法:一雜染分,謂遍計所執自性,是雜染故;二淸淨分,謂圓成實自性,是淸淨故;三彼二分,謂依他起自性,通彼二故.爲顯此義, 以金土藏,爲其譬喩. 此中藏者,是彼種子.

▷해석한다; '아비달마대승경'에서 이 비밀스런 뜻에 의거해서 세 가지의 삼법(三法)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잡염분으로서, 변계소집자성을 말하는 것이니, 변계소집은 잡염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청정분으로써, 원성실자성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청정함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 두 부분 모두로써, 의타기자성을 말하는 것이니, 그 두 가지 모두에 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금이 함장된 흙덩어리인 금토장(金土藏)으로써 그 비유를 삼은 것이다.

여기에서 저장의 장(藏)은 그것의 종자이고,

ㅡ여기서 종자라는 것은, 흙에 함장되어 있는 금의 분자(分子)로서 아직 금의 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종자라 하는 것이.

 

言地界者,是堅硬性.土之與金,是所造色.於此喩中,三法可得,謂此藏中,先時有土相貌顯現,後時金相方乃可得.爲顯金相後方可得,說火燒鍊後可得故,金眞實有.

지계(地界)는 견고함의 속성이며, 흙과 금은 지계(地界)로 만들어진 색법(色法, 물질)의 소조색(所造色)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 세 가지의 삼법(三法)을 얻을 수 있으니,

이 금토장(金土藏) 중에서 우선 흙의 모습이 현현하고, 나중에는 금의 모습을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니, 금의 모습을 나중에 비로소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불로 제련한 후에 얻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따라서 금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論曰:世尊,有處說一切法常,有處說一切法無常,有處說一切法非常非無常.依何密意, 作如是說?

謂依他起自性, 由圓成實性分,是常,由遍計所執性分,是無常,由彼二分,非常非無常.依此密意,作如是說.

▷논문; 세존께서는 어떤 곳에서는 일체법은 항상한 상(常)이라 말씀하시고, 어떤 곳에서는 일체법은 무상(無常)이라 말씀하셧으며, 어떤 곳에서는 일체법이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고 말씀하셨으니,

어떤 비밀스런 뜻에 의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인가?

의타기자성은 원성실성분으로 말미암아 항상한 상(常)이고,

변계소집성분으로 말미암아서는 무상(無常)한 것이며,

그 두 부분에 모두로 인한 것은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닌 것이니,

이러한 이런 비밀스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如常無常無二, 如是苦樂無二`淨不淨無二`空不空無二`我無我無二`寂靜不寂靜無二`有自性無自性無二` 生不生無二`滅不滅無二`本來寂靜非本來寂靜無二`自性涅槃非自性涅槃無二,生死涅槃無二亦爾.如是等差別一切諸佛密意語言,由三自性,應隨決了,如前說常無常等門.此中有多頌:

항상함(常)ㆍ무상(無常)함ㆍ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닌 것과 같이,

괴로움(苦)ㆍ즐거움(樂)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과,

청정ㆍ부정ㆍ청정도 부정도 아닌 것과,

공(空)ㆍ불공(不空)ㆍ공도 불공도 아닌 것과,

자아ㆍ무아ㆍ자아도 무아도 아닌 것과,

적정(敵靜)ㆍ부적정(不寂靜)ㆍ고요함도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과,

자성이 있는 유자성(有自性)ㆍ자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ㆍ자성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과,

생(生)ㆍ불생(不生)ㆍ생겨남도 생겨나지 않은 것도 아닌 것과, 소멸ㆍ불멸ㆍ소멸도 불멸도 아닌 것과,

본래 적정(敵靜)ㆍ본래 적정(敵靜)하지 않음ㆍ본래 적정함도 아니고 본래 적정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과,

자성열반ㆍ자성열반이 아님ㆍ자성열반도 자성열반이 아닌 것도 아닌 것과,

생사ㆍ열반ㆍ생사도 열반도 아닌 것 역시도 그러한 것이니,

이와 같은 차별이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런 뜻의 말씀으로서, 삼자성에 의거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항상함ㆍ무상함 등의 법문과 같은 것이다.

이러하다는 것에 많은 게송이 있으니, 


“如法實不有, 如現非一種, 非法非非法, 故說無二義.

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현재 한 종류가 아닌 무량한 종류인 것과 같이,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둘이 아닌 무이(無二)의 뜻을 말씀하셨네.

ㅡ법은 실재하지 않으나, 무량한 종류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依一分開顯, 或有或非有, 依二分說言, 非有非非有.

한 부분에 의해서 열어 보인다면, 혹 존재(有)이거나 혹은 비존재(非有)이나, 

두 부분에 의해서 말한다면, 존재(有)도 아니고 비존재(非有)도 아닌 것이네.


如顯現非有, 是故說爲無, 由如是顯現, 是故說爲有.

현현하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이니, 그러므로 비존재의 무(無)라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현현하므로, 따라서 존재(有)라고 말한다네.


自然自體無, 自性不堅住, 如執取不有, 故許無自性.

자연과 자체에 비존재(無)로서, 자성이 견고히 머물지 않는 것이니, 

집착하는 것과 같이 존재하지 않는 불유(不有)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음을 인정하네.


由無性故成, 後後所依止, 無生滅本寂, 自性般涅槃.”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이후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니, 

생겨남도 소멸함의 생멸(生滅)도 없는, 본래 고요한 자성이 완전한 열반이라네.


▶釋曰:伽他義中,如法實不有,如現非一種者,如其次第,釋非法非非法因緣,由實不有故非法,由現非一種故非非法,以非法非非法,故說無二義.

▷해석한다; 게송의 뜻 중에서

‘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현재 한 종류가 아닌’것이란, 법이 아닌 것ㆍ법이 아님도 아닌 것의 인연을 그 순서대로 해석한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아닌 것이고, 현재 한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법 아님이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에 둘이 아닌 무이(無二)의 뜻을 말한 것이다.

 

依一分者,謂依一邊.開顯者,說示也.或有或非有者,或是有性`或是無性.依二分說言,非有非非有者,取依他起,具二分性,說爲非有及非非有.如顯現非有者,如現所得,不如是有.是故說,爲無者,由此義故,說之爲無.由如是顯現者,由唯似有,相貌顯現.是故說,爲有者,卽由此義說之爲有.

‘한 부분에 의한다는 의일분(依一分)’이란, 한쪽에 의지하는 것을 말하며,

‘열어 보인다는 개현(開顯)’이란, 말로 나타내는 것이며,

‘혹은 존재이거나 혹은 비존재’란 혹은 존재의 성품이거나 혹은 비존재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며,

‘두 부분에 의해서 말하면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라는 것은, 의타기자성이 두 부분의 성품을 갖춘, 즉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며, 

‘현현하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란, 현재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비존재라고 말한다’는 것이란, 이러한 의미로 인하여 그것을 비존재로 삼는 것을 말하며,

‘이와 같이 현현한다’는 것은, 오직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현현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존재라고 말한다’는 것이란, 곧 이러한 뜻으로 인하여 그것을 존재로 삼는 것음을 말한다.


說一切法無自性意,今當顯示.自然無者,由一切法無離衆緣自然有性, 是名一種無自性意.自體無者,

由法滅已不復更生,故無自性, 此復一種無自性意.

'일체법에 자성 없다는, 일체법무자성(一切法無自性)'의 뜻을 지금 마땅히 나타낼 것이니,

'자연의 비존재인 자연무(自然無)'란, 일체법이 여러 조건의 중연(衆緣)을 떠나서는 자연에 자성이 없으므로, 일종의 무자성(無自性)의 뜻이며,

'자체의 비존재, 자체무(自體無)'란, 법이 소멸하면 다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자성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 역시 일종의 무자성(無自性)의 뜻이다.

 

自性不堅住者,由法纔生一剎那後 無力能住,故無自性. 如是諸法無自性理,與聲聞共. 如執取不有故,許無自性者,此無自性不共聲聞. 以如愚夫,所取遍計所執自性,不如是有,由此意故,依大乘理,說一切法皆無自性.

'자성은 견고하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법이 생겨난 한 찰나 이후에는 힘(力)이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자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을 말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일체법의 무자성(無自性)의 이치는 성문과 공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착하는 것과 같이 존재하지 않는 불유(不有)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음을 인정하네.’에서의 자성 없음은 성문과 공통되지 않은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취한 것은 변계소집자성이므로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 인하여 대승의 도리에 의지해서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는 개무자성(皆無自性)이라 말하는 것이다.

 

由無性故,成者,由一切法無自性故, 無生滅等皆得成就.所以者何?由無自性故無有生,由無生故,亦無有滅,無生滅故,本來寂靜,本寂靜故,自性涅槃.後後所依止者,是後後因此,而得有義.

‘자성이 없는 무성(無性)이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란, 일체법이 자성이 없기 때문에 생겨남도 소멸함의 생멸(生滅)도 없고 불생불멸 이후의 ‘본래적정 자성열반’등이 다 성취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무슨 까닭에서인가? 자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생겨남도 없는 무생(無生)이고, 무생이기 때문에 역시 소멸함도 없는 무멸(無滅)이며, 무생 무멸이기 때문에 본래 고요한 본적정(本寂靜)이고,

본래 고요한 본적정이기 때문에 자성이 열반인 것이다.

‘이후의 의지처인 후후소의지(後後所依止)’란, 이후에는 이것에 근거해서 존재의 의미인 유의(有義)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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