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1권 4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4

 

▶釋曰:此中所知依殊勝殊勝語者, 所應可知, 故名所知, 所謂雜染淸淨諸法,卽三自性.

依是因義,此所知依,卽是殊勝,故名所知依殊勝,由此殊勝,故語殊勝.

▷설명한다; ‘이 중에서 알아야  바의 의지처의 뛰어남인, 소지의수승(所知依殊勝)과 뛰어난 말의 수승어(殊勝語)’란,

마땅히 알아야  바이기 때문에 ‘알아야  바의 소지(所知)’라 하는 것으로,

이른바 잡염과 청정의 법이  의타기성ㆍ변계소집성ㆍ원성실성의  가지 자성(三自性)인 것이다. 

 

*삼자성(三自性), 3성(三性)은 의타기성ㆍ변계소집성ㆍ원성실성이다.

진제(眞諦)의 역본에는 의타성ㆍ분별성ㆍ진실성으로 되어 있다.

 

此依卽是阿賴耶識,如是持業釋,乃至彼果智殊勝亦爾,謂彼果智卽是殊勝,故名彼果智殊勝等.

‘의지의 의(依)’는 원인(因)의 의미이니, 이 알아야  바의 의지처인, 소지의(所知依)는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소지의(所知依)의 수승(殊勝)’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말도 뛰어난 수승어(殊勝語)가 되는 것이다. 

 의지처(依)는  아뢰야식(阿賴耶識, 제8식)이며, 이와 같은 것은 지업석(持業釋)이고, 나아가 그것의 증과인 지혜의 뛰어남의 지수승(智殊勝)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증과(果)인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果)인 지혜의 뛰어남인, 지수승(智殊勝)’ 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범어 ālaya-vijāna의 음역으로서 8식(識) 가운데 제8식이며, 유정의 근본적인 식체(識體)이다.

ālaya는 저장ㆍ집착ㆍ무몰(無沒)의 의미로써,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제7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는 것이다.

근본식ㆍ본식ㆍ장식(藏識)ㆍ이숙식(異熟識)ㆍ일체종자식ㆍ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하며,

진제는 아리야식(阿梨耶識)ㆍ아려야식(阿黎耶識)으로 음역하고, 무몰식(無沒識)으로 의역하였다.

*지업석(持業釋), 지업(持業)은 어떤 체(體)가 그 용(用)을 능히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지업석은 6합석(合釋)의 하나로서, 앞절(前節)의 문언(文言)이 뒤의 절(後節)의 문언에 대해 형용사ㆍ부사 또는 동격의 명사의 관계를 갖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장식(藏識)이라고 할 경우에 장(藏)은 용(用)이고 식(識)은 체(體)로서, 식(體)이 장(用)을 갖고 있으므로 지업석인 것이다.

 

所知相者,是所知自性義.所知卽是相,故名所知相,謂三自性. 入所知相者,謂於所知相,若能入若正入,卽唯識性.

‘알아야  바의 상인 소지상(所知相)’이란 알아야  바의 자성의 뜻이니, 알아야  바는  상(相)이기 때문에 알아야  바의 소지(所知)의 상(相)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가지 자성인, 삼자성(三自性)인 것이다. 

‘알아야  바의 상에 들어가는 입소지상수승(入所知相殊勝)’이란, 알아야  바의 소지(所知)의 상(相) 대해서 능히 들어가거나 혹은 바르게 들어가는 것이니, 곧 유식성(唯識性)이다.


彼入因果者,謂能入彼,故名彼入, 卽是悟入,唯識理性. 因,謂加行時, 世閒施等波羅蜜多. 果,謂通達時, 出世施等波羅蜜多.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과 결과, 입인과(入因果)’란 능히 그것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곧  유식의 진여성인 유식이성(唯識理性)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원인의 인(因)’은 가행위(加行位)에서의 세간의 보시 등의 바라밀이고, 

‘결과의 과(果)’는 통달위(通達位)에서의 세간을 벗어나는 보시 등의 바라밀이다. 

 

*가행위(加行位), 유식학에서는 보살의 수행 계위(階位)를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ㆍ불지(佛地)의 41단계로 인정하고, 이것을 자량위ㆍ가행위ㆍ통달위ㆍ수습위ㆍ구경위의 5위(位)에 배대한다.

가행위(加行位)는 제2위로서 수행심을 더욱 경책해서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이며,

이 지위에서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위(世第一位)의 네 가지 선근을 닦는다.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며, 이 지위에 오르면 진여성(眞如性)을 관찰하게 된다.

10지의 초지初地, 환희지)에서 입심(入心)의 수행위이다.

 

彼因果修差別者,卽彼因果, 故名彼因果,卽於此中,修之差別.

그것의 원인(因)과 결과(果)의 수행의 차이인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수승(殊勝)이란 그것의 원인ㆍ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因)과 결과(果)’라고 말하는 것이니,  곧  가운데에서 그것을 수행의 차이인 것이다. 

 

修,謂數習,卽此數習於諸地中, 展轉殊勝, 故名差別, 卽是十地.

‘수행의 수(修)’는 누누이 익히는 삭습(數習)이며, 이렇게 삭습(數習)으로 익히는 것은 모든 지위에서 전전하여 뛰어나게 되어서 수승(殊勝)하게 되기 때문이며, ‘차별(差別)’라고 이름하는 것은  10지(地)인 것이다. 

 

卽於如是修差別中, 增上戒者, 謂十地中,依戒而學, 故名增上戒, 卽諸菩薩所有律儀, 於諸不善, 無復作心.

‘이와 같은 수행의 차이에서의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의 수승(殊勝)’이란, 10지 중에서는 계율에 의지해서 수학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라 이름하는 것으로, 모든 보살은 지니 율의로써 모든 불선(不善)에 대하여 다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즉 계율을 호지(護持)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을 짓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增上心者, 謂在內心, 或卽依心而學 , 故名增上心, 卽諸三摩地.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이란 내면에 머무는 내심(內心)으로, 혹은 그 마음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이라 하는 것이니,  모든 삼마지인 것이다. 

 

增上慧者, 謂趣證慧, 故名增上慧, 或依慧而學,故名增上慧,卽是無分別智.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란 깨침에 나아가는 지혜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라 하며,

혹은 지혜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라고 말하나니,

 분별이 없는 지혜의 무분별지(無分別智)인 것이다.


斷殊勝者,謂最勝品別,自內棄捨煩惱及所知障,卽是無住涅槃.

‘단멸의 뛰어남의 과단수승(果斷)의 수승(殊勝)’이란, 전의(轉依)의 증과인 멸이 제법에 있어서 가장 승묘(勝妙)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남의 수승이며,

전의(轉依)의 품류(品類)의 차이와 스스로 내면에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버리는 것이니,  무주열반(無住涅槃)인 것이다. 

 

*번뇌장(煩惱障), 중생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로 인한 장애이다. 여기서 번뇌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의 견분을 대상으로, 그리고 의식이 5취온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집착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아집의 번뇌로 인해 열반을 장애하고 생사에 유전하게 하므로 이렇게 부른다.

*소지장(所知障), 알아야 할 소지(所知)의 모든 대상을 덮어서 바른 지혜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번뇌로 인한 장애이다. 즉,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인식대상인 소지(所知)의 참다운 모습의 법공(法空)을 그대로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들 번뇌를 소지장(所知障)이라 한다. 

법집(法執)을 근본으로 하며 보리를 장애하며, 참다운 지혜가 발현함을 장애하는 점에서 지장(智障)ㆍ보리장(菩提障)이라고도 한다.

*무주열반(無住涅槃), 무주처열반ㆍ무주상열반이라고도 하며, 진여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모두 벗어난 열반으로, 본래자성청정열반ㆍ유여의열반ㆍ무여의열반ㆍ무주처열반의 4 가지 열반에서 최상의 경지이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으나,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智殊勝殊勝語者,謂無障智名智殊勝,彼無分別智,有所對治;

今此佛智已離一切障及隨眠, 是名於彼無分別智佛智殊勝.

‘지혜의 지수승(智勝殊)과 뛰어난 말의 수승어(殊勝語)’란 장애가 없는 지혜를 ‘지혜의 뛰어남의 지수승(智勝殊)’이라 이름하며, 그것의 무분별 지혜에는 다스려지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제  부처님의 지혜는 이미 모든 장애와 수면(隨眠, 잠재번뇌)을 떠났으니, 이러한 부처님의 분별 지혜를 부처님 지혜의 뛰어남인 불지수승(佛智殊勝)이라 하는 것이다.

 

*수면(隨眠), 번뇌의 종자로써 번뇌의 잠재세력이다. 이에 대해 현재 작용하는 번뇌를 전(纏)이라 한다.


▶論曰:復次云何能顯? 由此所說十處, 於聲聞乘, 曾不見說, 唯大乘中, 處處見說, 謂阿賴耶識, 說名所知依體

三種自性:一依他起自性`二遍計所執自性`三圓成實自性,說名所知相體. 唯識性,說名入所知相體.

六波羅蜜多,說名彼入因果體.菩薩十地,說名彼因果修差別體.

▷논문에서; 또한 능히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러한  가지의 의지처인 십처(十處)는 일찍이 성문승에서 설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직 대승의 여러 곳에서만 설하셨음 볼 수 있으니,

이른바 아뢰야식을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인 소지의(所知依)의 체(體) 이름하는 것이다. 

 가지의 삼자성(三自性),  첫째는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이고, 둘째는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이며, 셋째는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을 알아야  바의 소지상(所知相)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유식성(唯識性)을 알아야  바의 상에 들어감의 입소지상(入所知相)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육바라밀다를 말하여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ㆍ결과의 입인과(入因果)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보살의 10지 그것의 원인ㆍ결과의 수행 차이인,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체(體)라고 이름한다.


菩薩律儀,說名此中增上戒體. 首楞伽摩`虛空藏等諸三摩地, 說名此中增上心體.

無分別智,說名此中增上慧體. 無住涅槃, 說名彼果斷體.

三種佛身,一自性身`二受用身`三變化身,說名彼果智體.

由此所說十處,顯於大乘異聲聞乘, 又顯最勝世尊, 但爲菩薩宣說, 是故應知但依大乘,

諸佛世尊,有十行相殊勝殊勝語.

보살의 율의를 여기에서 매우 높은 계율인, 증상계(增上戒)의 체(體) 이름하며,  

수능가마(首楞伽摩)ㆍ허공장(虛空藏) 등의 여러 삼마지를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의 체(體) 이름하며, 

무분별지  가운데 매우 높은 지혜인 증상혜(增上慧)의 체라고 이름하며,

무주열반 그것의 증과인 과단(果斷) 체(體)라고 이름하며,

삼불신(三佛身),  첫째는 자성신(自性身)이고, 둘째는 수용신(受用身)이며, 셋째는 변화신(變化身)을 그것의 증과의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 이름한다.

여기에서 말한  가지의 의지처인 십처(十處)로 인하여 대승은 성문승과 다름을 나타내고, 또한 가장 뛰어남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만 보살을 위해서만 널리 말씀하셨으므로, 다만 대승에 의지하는 모든세존(佛世尊)에게만  가지의 십행상(十行相)의 수승(殊勝)과 뛰어난 말씀의 수승어(殊勝語)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수능가마(首楞伽摩), 범어 śūraṁgama의 음역으로서, 수능엄(首楞嚴)이라고도 하며, 건상(健相)ㆍ건행(健行)ㆍ일체사경(一切事竟)이라고 의역(意譯)한다.

부처님께서 증득한 삼매의 이름으로, 건상이란 당기(幢旗)가 견고함에 비유한 것으로서, 부처님의 덕이 견고하여 모든 마군에 의해 파괴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일체사경은 불덕(佛德)의 구경(究竟)을 나타낸다.

*허공장(虛空藏), 무색계의 네 가지 선정의 사공처정(四空處定) 가운데 하나로서,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ㆍ허공처정(虛空處定)ㆍ허공기삼매(虛空器三昧)라고도 한다.

물질의 색법(色法)에 얽매임을 싫어하여 마음에 색상(色想)을 버리고 무한한 허공을 관(觀)의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다.


▶釋曰:云何能顯者,是問何緣義. 六波羅蜜多說名彼入因果體者,謂由唯識性,

入三自性時,世閒施等波羅蜜多名淸淨因,由能引發出世閒故.

▷설명한다; ‘무엇을 능히 나타내는 능현(能顯)인가?’란, 무엇을 반연(緣)으로 삼는것인가를 묻는 것이며, 

‘육 바라밀다를 말하여서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ㆍ결과의 입인과(入因果)의 체(體)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유식성(唯識性)으로 인하여 삼자성(三自性) 들어갈 때를 세간의 보시 등의 바라밀다를 청정인(淸淨因)이라 이름하나니, 능히 세간을 벗어남의 출세간(出世間)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入地已去,卽彼施等波羅蜜多, 成出世閒,名淸淨果. 菩薩十地說名彼因果修差別體者,

謂菩薩十地, 是前所說波羅蜜多,因果二位,修差別性. 無分別智說名此中增上慧體者, 若諸聲聞,

離四顚倒分別, 名無分別;若諸菩薩,離一切法分別,名無分別,二無分別差別如是.

10지의 지위에 들어간 이후에는,  보시 등의 바라밀다가 출세간(出世間) 이루는 것을 청정과(淸淨果)라고 이름한다.

‘보살의 10지를 그것의 원인ㆍ결과의 수행 차이의,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체(體)라 이름한다’는 것은, 보살의 10지가 앞에서 말한 바라밀다의 원인ㆍ결과의  지위에서 수행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무분별지를  가운데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의 체(體)라고 이름한다는’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성문들은  가지의 사전도(四顚倒)의 분별을 여의는 것을 무분별이라 이름하고, 

보살들은법의 분별을 여의는 것을 무분별이라고 하는 것이니,  가지의 무분별(無分別)의 차이인 것이다.

 

사전도(四顚倒), 현상계의 존재인 유위법(有爲法)들의 실상(實相)이 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고(苦)ㆍ부정(不淨)임을 알지 못하고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전도(顚倒)된 견해를 일으키고, 또한 열반계가 상ㆍ낙ㆍ아ㆍ정인 것을 무상ㆍ무아ㆍ고ㆍ부정이라고 망령되게 집착하는 것이다.


無住涅槃說名彼果斷體者, 謂三學果, 故名彼果.彼果卽斷, 名彼果斷. 此性名爲彼果斷體, 卽是煩惱`所知二障斷義.

‘무주열반(無住涅槃)을 계ㆍ정ㆍ혜 3학 증과인 과단(果斷) 체(體)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삼학(三學)의 증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라 이름하는 것이며, 그것의 증과가  단멸(斷)이므로 과단(果斷)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성품을 그것의 증과인 과단(果斷) 체(體)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2장(二障)을 단멸한다는 뜻이다.

 

三種佛身說名彼果智體者,彼三學果, 故名彼果,彼果卽智,名彼果智, 此性名爲彼果智體.

此中若無自性身, 應無法身,譬如眼根;

‘삼불신(三佛身)을 그것의 증과인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고 부른다’라는 것은, 3학의 증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라고 이름하며, 그것의 증과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의 증과인 과지(果智) 이름하며,  

 성품을 그것의 증과인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 이름하는 것이다. 

 가운데 만약 자성신(自性身)이 없다면 마땅히 법신(法身)도 없어야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안근과 같은, 즉 안근에 의지해서 안식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자성신(自性身), 2공(空) 소현(所顯)의 진여로서의 자성을 말한다. 자성신은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 이전부터 본래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성품이 현현된 상태이다.

본래의 자성청정세계ㆍ진여 법성이 전의(轉依)에 의해 드러난 세계,  깨달음의 세계  자체인 것이다.

 

若無法身,應無受用身,譬如眼識.

만약 법신(法身)이 없다면 마땅히 수용신(受用身)도 없어야 하나니, 수용신(受用身)은 법신에 의지하면서 불국토에서 법락을 향수하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안식과 같은 것으로, 안근이 있기 때문에 안식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應知此中所依`能依,爲同法喩.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중에서 의지처인 소의(所依)와 능히 의지하는 것의 능의(能依)를 동일한 법의 비유로 삼은 것이다, 

ㅡ감각기관의 근(根) 의지처인 소의(所依)이고 식이 의지의 주체인 능의(能依) 것과 같이 법신(法身)과 자성신(自性身)도 역시 각각 소의(所依)와 능의(能依)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若無受用身,已入大地諸菩薩衆,應無受用法樂;若無受用法樂,菩提資糧應不圓滿;譬如見色.

만약 수용신(受用身)이 없다면 이미 대지(大地), 즉 10지 중의 초지위(初地位) 들어간 모든 보살들에게는 법락을 수용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법락을 수용하는 일이 없다면 깨달음의 자량은 원만하지 않은 것이어야 할 것이니,

비유하면 빛깔(色)을 보는 것과 같은, 즉 안근에 의지하여 안식을 일으켜서 빛깔(色)을 봄으로써 인식작용이 완료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수용신(受用身), 수용(受用) 향수(享受) 의미이다. 보살이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여 청정국토와 대법락(大法樂) 향수함을 말하는 것으로, 수용신은 복덕과 수행을 닦아서 성취되는 불신(佛身)으로서, 스스로 대승 법락을 향수할 뿐만 아니라 지상(地上) 보살을 위해 대승법을 설하여 법락을 수용하게도 한다.

 

若無化身,勝解行地諸菩薩衆`諸聲聞等劣勝解者,最初發趣皆不應有, 是故決定應有三身.

顯於大乘,異聲聞乘者,聲聞乘中,不說此故.又顯最勝者,顯大乘中,此亦最勝.

만약 화신(化身)이 없다면 승해행지(勝解行地)의 모든 보살들, 모든 성문등 승해가 열등한 자가 최초로 발심하여 나아감은 모두 없어야 한다. 따라서 결정적으로 마땅히 3신(身)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승이 성문승과 다른 것을 나타낸다’는 것은, 성문승에서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가장 뛰어난 최승(最勝)을 나타낸다’는 것은 대승 안에서도 이것이 역시 가장 뛰어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승해행지(勝解行地), 10주(住)·10행(行)·10회향(廻向)을 닦는 지위로서 자량을 쌓고 가행하는 시기이다.  

아직 유식의 진여를 증득하지 못하였으나 승해(勝解)의 힘에 의지해서 여러 가지 뛰어난 수행으로 자량위와 가행위에 든 것을 승해행지(勝解行地)라고 한다.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1권 3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3

 

ㅡ아비달마(阿毘達磨, 논장)을 해석한다.

對故`數故`伏故`通故`應知名阿毘達磨. 謂阿毘達磨,亦名對法, 此法對向無住涅槃,能說諦`菩提分`解脫門等故.

阿毘達磨,亦名數法, 於一一法數數宣說訓釋言詞, 自相`共相等, 無量差別故.

阿毘達磨, 亦名伏法, 由此具足論處所等,能勝伏他論故.

阿毘達磨,亦名通法, 由此能釋通素怛纜義故.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상대함의 대(對)이기 때문이고, 헤아리는 수(數)이기 때문이며, 

조복의 복(伏)이기 때문이고, 통달이기 때문에 아비달마(논장)라고 이름한다. 

또한 아비달마(논장)를 대법(對法)이라 이름하는 것은,  법이 무주열반(無住涅槃)을 향하는 것으로,

능히 4성제ㆍ37가지 보리분법ㆍ삼해탈문(三解脫門) 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아비달마(논장)를 또한 헤아림의 수법(數法)이라 이름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법에 대해서 용어의 자상(自相)ㆍ공상(共相) 등의 수많은 차이를 누누이 널리 해석하여서 설명하기 때문이며,  

아비달마(논장)를 역시 조복의 법인 복법(伏法)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것이 갖춘 논처소(論處所, 칠인명七因明)로써 능히 다른 논을 승복시키기 때문이며,  

아비달마(논장)를 역시 통달의 통법(通法)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로 인하여 능히 소달람(素怛纜, 경전)의 의미를 해석하고 통달하기 때문이다.

 

*무주열반(無住涅槃), 무주처열반ㆍ무주상열반이라고도 하며, 진여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모두 벗어난 열반으로, 본래자성청정열반ㆍ유여의열반ㆍ무여의열반ㆍ무주처열반의 4 가지 열반에서 최상의 경지이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으나,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삼해탈문(三解脫門), 해탈에 들어가는 세 가지 선정으로, 

첫째,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사람과 법의 본성이 공함을 관조하는 것이고, 

둘째,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차별상을 떠나는 것이고, 

셋째,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자상(自相)은 그것만의 고유하고 특수한 상으로서 불공상(不共相)이라고도 하고,

*공상(共相)은 다른 것과 공통되는 일반적인 상을 말하는 것으로, 낱낱의 색법의 공상은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 등이고, 또한 승의제(勝義諦)인 진여는 유위법의 진실한 성품으로서 모든 법에 공통되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공상이라고 한다.

*논처소(論處所),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칠인명(七因明)을 가리키는 것으로, 논의를 결택함에 있어서의 일곱 가지의 요건을 말한다.

첫째는 논의(論義)의 체성(體性), 둘째는 논의의 처소, 셋째는 논의의 의지처인 소의(所依),

넷째는 논의의 장엄, 다섯째는 논의에 지는 타부(墮負), 여섯째는 논의의 벗어나는 출리(出離),

일곱째는 논의의 다소작법(多所作法)이다.

 

 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을 해석한다.

犯罪故`等起故`還淨故`出離故, 應知名毘奈耶. 此中犯罪者,謂五衆罪. 等起者,謂無知故

`放逸故`煩惱盛故` 不尊敬故, 而犯諸罪. 還淨者,謂由意樂, 不由治罰, 如受律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범죄(犯罪)이기 때문이고, 함께 일어나는 등기(等起)이기 때문이며, 

다시 청정하여지는 환정(還淨)이기 때문이고, 벗어남의 출리(出離)이기 때문에 율장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죄를 범한다는 범죄(犯罪)는 다섯 가지의중죄(五衆罪)를 말하며,

함께 일어나는 등기(等起) 무지하기 때문이고, 방일하기 때문이며, 번뇌가 치성하기 때문이고, 존경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며,  

다시 청정해진다는 환정(還淨)이란, 벌로 다스려서 율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지로써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등기(等起)는 범어 samutthāna의 번역어로서, 신(身)ㆍ구(口)ㆍ의(意)의 3업(業)에서 의업(意業)이 원인이 되어서 신업과 구업을 이끌어 내어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중죄(衆罪), 비구ㆍ비구니의 죄를 다섯 부문의 오과(五科)로 분류한 것으로,

째, 바라이(波羅夷)는 살생ㆍ음행 등 가장 무거운 죄로서 다시는 비구ㆍ비구니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승잔(僧殘)은 이 죄를 범하면 죽게 되어 있으나 겨우 목숨이 살아남아 있는 정도의 죄로서, 대중에게 참회하고 남은 생명을 보존한다.

셋째, 바일제(波逸提)는 지옥에 떨어지는 죄이다.

넷째,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는 다른 비구ㆍ비구니에게 참회하면 없어짐을 받는 죄이다.

다섯째, 돌길라(突吉羅)는 그 지은 바가 나쁘지만 가장 가벼운 죄이다.

 

出離者, 有七種:一各各相對,說悔所犯;二誓受治罰,謂授學等;三等有妨害,先制學處.後由異門,還復開許;

四別更止息,謂僧和合,還捨所制;五轉依,謂苾芻苾芻尼轉男女形故,捨不共罪;

六由眞實觀,謂作殊勝法殟柁南諸行相觀;七由法爾得,謂由見諦法爾,得無小隨小罪. 殟 병들 온

벗어남의 출리(出離)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각각 서로 대해서 범한 바를 말로써 참회하는 것이고, 

둘째는 벌의 다스림으로써 맹세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른바 백중학(百衆學, 응당학) 등을 주는 것이다. 

셋째는 방해가 있으면 먼저 학처(學處, 계율)을 제정하고 나중에 이문(異門)에 의거해서 다시 열어서 허락하는 것이며,

넷째는 별도로 다시 멈추게 하는 것으로, 대중이 화합해서 제어한 바를 다시 버리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의지처를 바꾸는 전의(轉依)이니, 비구ㆍ비구니가 남녀의 입장을 따라 공통되지 않은 불공죄(不共罪)를 버리는 것을 말하며,  

여섯째는 참다운 관법의 진실관(眞實觀)에 의거하는, 이른바 뛰어난 수승법(殊勝法)인 온타남(殟柁南, 울타남鬱陀南, 법인)의 모든 작용에 대해 관찰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에 의한 것이니, 이른바 4성제를 관찰함으로써 부수되는 작은 죄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백중학(百衆學), 응당학(應當學)이라고도 하며, 돌길라(突吉羅)죄의 계법이다.

비구ㆍ비구니의 복장ㆍ위의ㆍ식사 등에 관한 세칙을 규정한 것을 중학(衆學)이라 하며, 그 수가 많아서 범하기 쉽고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학습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학이라 한다.

지금은 그 중에서 백 계(戒)만을 들어서 백중학이라 한다.

*불공죄(不共罪), 비구ㆍ비구니의 어느 한 편의 입장에서 규정된 남여의 공통되지 않은 죄과(罪過)이다.

*온타남(殟柁南), 즉 울타남(鬱陀南)은 범어 udāna의 음역으로서, 울타나(鬱陀那)라고도 한다.

① 12部經의 하나의 무문자설(無問自說)

② 사법인(四法印)ㆍ집시(集施)로 번역하며, 많은 의미를 함축한 게송을 말한다. 사법인(四法印)은 제행무상(諸行無常)ㆍ일체개고(一切皆苦)ㆍ제법무아(諸法無我)ㆍ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應知毘奈耶復有四義:一補特伽羅故,世尊依彼制所學處;

二制立故,謂告曰:彼補特伽羅所犯過已,大師集僧制所學處;三分別故,謂制學處已,更廣解釋先所略說;

四決擇故,謂於此中決判所犯,云何有罪`云何無罪.

율장에 다시  가지의 사의(四義)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보특가라(補特伽羅, 윤회하는 유정)이기 때문에 세존께서 그것에 의지해서 계율을 제정하신 것이며,

둘째는 제도를 건립하는 제립(制立)이니,  보특가라(윤회하는 유정)가 범한 허물을 고백하고 나서 대사(大師, 세존)께서 대중을 모이게 하여 계율을 제정한 것이며,

셋째는 분별(分別)이니, 계율을 제정하고 나서 앞에서 간략히 말한 내용 다시 자세히 해석한 것이며,

넷째는 결택(決擇)이니, 이른바  가운데 범한 바가 어느 것이 잘못이고 어느 것이 잘못이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특가라(補特伽羅)는 범어 pudgala의 음역으로, 구역에서는 인(人)ㆍ중생ㆍ유정(有情)으로,

신역에서는 삭취취(數取趣)로 번역된다. 유정이 누누이, 삭삭(數數) 5취(趣)를 취착(取着)해서 윤회하기 때문에 유정 또는 유정의 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今當釋本文.薄伽梵前者,顯有所敬,故無異言.

善入大乘者,是由已得陁羅尼等,勝功德義, 顯已得此諸功德故, 於義於文, 能正任持`能正開示,如是名菩薩.

爲何義故說? 爲顯大乘體大故說. 所言顯者, 開發大乘實有大體. 依大乘者,依止大乘而起所說.

有十相殊勝殊勝語者, 謂卽由彼十種殊勝所殊勝語, 名十相殊勝殊勝語. 此殊勝言是差別義,

兩互相待, 如言此義殊勝於彼. 又最上義, 是殊勝義, 或是異類謂義, 因殊勝故,語果是殊勝.

今當說此十種別相.

▷이제부터 본문을 해석하겠다;

‘박가범(薄伽梵, 세존) 앞에서’는 공경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말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대승에  들어간다는 선입대승(善入大乘)’이란, 이미 다라니 등의 뛰어난 승공덕(勝功德)의 뜻을 얻음으로써, 이 모든 공덕 얻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의미에 대해서도, 문장에 대해서도 능히 바르게 지니고, 능히 바르게 열어 보이는, 이와 같은 이를 ‘보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무슨 의미를 위해서 설하는 것인가? 대승 자체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설하는 것이다. 

‘나타낸다는 현(顯)’이라 말하는 것은 대승의 참존재인 대승실유(大乘實有)의 위대한 대체(大體)를 드러내는 것이며, 

‘대승에 의지한다는 의대승(依大乘)’이란, 대승에 의지해서 하여야  말을 하는 것이며, 

‘열 가지 십상(十相)의 수승(殊勝) 수승어(殊勝語)가 있다’는 것은,   가지 뛰어난 것과 뛰어난 말로 인하여  가지 상의 뛰어남과 뛰어난 말이라고 이름하는 것을 말하며,

 뛰어남의 수승(殊勝)이란 차별된 의미가 서로 상대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의 뜻이 그것의 뜻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최상의 의미인, 최상의(最上義)가 수승의 뜻이며,

혹 다른 부류가 뛰어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그 원인이 뛰어난 인수승(因殊勝)이기 때문에 그 말의 결과도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리(義理)를 표현하고 언어로 되었기 때문에, 의미(義)는 원인이고 말(語)은 결과인 것이다.

이제   가지의 개별적인 별상(別相)을 설명한다.

 

論曰:一者所知依殊勝殊勝語` 二者所知相殊勝殊勝語` 三者入所知相殊勝殊勝語`

四者彼入因果殊勝殊勝語` 五者彼因果修差別殊勝殊勝語` 六者卽於如是修差別中增上戒殊勝殊勝語`

七者卽於此中增上心殊勝殊勝語` 八者卽於此中增上慧殊勝殊勝語` 九者彼果斷殊勝殊勝語`

十者彼果智殊勝殊勝語.由此所說,諸佛世尊,契經諸句,顯於大乘眞是佛語.

▷논문에서; 첫째는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의 수승인 소지의수승(所知依殊勝)과 뛰어난 말의 수승어(殊勝語)이고,

둘째는 알아야 할 상(相)의 뛰어남인 소지상수승(所知相殊勝)과 수승어(殊勝語)이고,

셋째는 알아야 할 상(相)에 들어감에 뛰어난, 입소지상수승(入所知相殊勝)과 수승어이고,

넷째는 유식에 들어가는 원인과 결과에 뛰어난, 입인과수승(入因果殊勝)과 수승어이고,

다섯째는 유식에 들어가는 원인과 결과의 수행에 차별됨에 뛰어난 인과수차별수승(因果修差別殊勝)과 수승어이고,

여섯째는 이와 같은 수행의 차이 중에서 매우 높은 계율의 뛰어남인, 증상계수승(增上戒殊勝)과 수승어이며,

일곱째는 이 가운데 매우 높은 마음이 뛰어난, 증상심수승(增上心殊勝)과 수승어이고,

여덟째는 이 가운데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인, 증상혜수승(增上慧殊勝)과 수승어이며,

아홉째는 그것의 증과인 단멸 즉, 열반의 뛰어남인, 과단수승(果斷殊勝)과 수승어이고,

열째는 그것의 증과인 지혜인 보리(菩提)에 뛰어난, 과지수승(果智殊勝)과 수승어이다.

여기서 설한 바는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말씀하신 경전의 모든 문구로써 대승이 참으로 부처님 말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단(果斷)을 열반, 단과(斷果)를 보리(菩提)라 한다.

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1권 2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2

 

今造此論,有所用者,爲欲開曉無知者故.爲顯法門別名故 擧阿毘達磨, 爲顯通名故擧經言,

爲簡聲聞阿毘達磨,復擧大乘.

지금  논서를 짓는 이유는 무지한 자를 깨우치기 위해서이고, 

법문에 대하여 별도의 명칭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비달마(阿毘達磨, 논장)’를 들고, 

공통된 명칭의 현통명(顯通名)을 나타내기 위해서 ‘경(經)’이라는 용어를 들며,  

다시 성문의 아비달마와 구별하기 위해서 다시 ‘대승(大乘)’이라는 말을 든다.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 논 論) 또는 아비담마(Abhidhamma), 대법(對法: abhi + dharma = 對 + 法)이다.

대법(對法)은 승의법(勝義法)인 열반을 대향(對向)하고 법상법(法相法)인 4성제를 대관(對觀)한다는 뜻이다.

범어 abhidharma의 음역으로 아비담(阿毘曇)ㆍ비담(毘曇)이라고도 한다. ‘교법에 대한 연구’의 의미로서 대법(對法)ㆍ무비법(無比法)ㆍ승법(勝法)ㆍ논(論)으로 번역한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아비달마(대법)은 승의의 아비달마(勝義阿毘達磨)와 세속의 아비달마(世俗阿毘達磨)의 2가지로 나뉜다
아비달마는 법(法) 즉 부처님이 설한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서, 협의의 아비달마는 부파불교의 여러 논(論, sastra), 즉 논서(論書)들을 뜻하며, 오랫동안에 걸쳐서 많은 논(論)들이 만들어지고 후일에 정비되어 논장(論藏)이 되었다. 경(經) · 율(律)은 부처님의 활동 당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논(論)은 부처님 입멸 후 제자들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논(論)의 저술은 부파 불교(部派佛敎) 시대의 특징 중 하나로 각 부파는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해석 · 주석과 거기에서 도출된 설법의 해석에 의거하여 자파(自派)의 교리학설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각 부파에 따라 상이(相異)한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틀에 박힌 해석 방법이 교법 자체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ㅡ위키

 

由今亦有非聖所說阿毘達磨, 如現有人,自尋思慧, 謂是佛說阿毘達磨` 或聲聞說`或世智造.

又言大乘素怛纜者, 爲欲顯示異聲聞等, 爲欲顯示菩薩藏攝故, 復擧其阿毘達磨.

又藏攝者,謂入自宗素怛纜藏, 現滅自惑. 毘奈耶藏,卽大乘中,菩薩煩惱,

以諸菩薩種種分別,爲煩惱故. 不違最勝阿毘達磨, 廣大甚深爲其相故.

요즈음 성인이 말씀하신 아비달마(논장)가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니,

어떤 사람이 스스로 헤아려 아는 얕은 지혜로써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비달마이다. 혹은 성문이 말한 것이라거나 혹은 세속의 지혜로 지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등이다. 

또한 대승의 소단람장(素怛纜藏, 수다라, 경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문 등과 다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보살장에 포섭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시 대승 아비달마를 드는 것이니,  

또한 장(藏)에 포섭된다는 것이란, 자기 종파의 경장인 소단람장(素怛纜藏)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스스로의 미혹을 소멸하는 것이다.

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은 대승 안에서는 보살의 번뇌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보살은 갖가지 분별을 번뇌로 삼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아비달마에 위배되지 않으니, 광대하고 매우 심오함을  상(相)으로 삼기 때문이다.

 

수다라(修多羅)는 범어 sūtra의 음역으로서, 소달람(素怛纜)이라고도 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교법을 말한다. 경전인 정경(正經)ㆍ계경(契經), 즉 경전의 뜻이 위로는 진리에 계합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마음에 맞고 뜻에 합당하며, 의리(義理)를 꿰어 중생을 잡아 거둔다는 뜻으로 의역(意譯)한다.

비나야(毘那耶)는 범어 vinaya의 음역으로서, 비나야(毘奈耶)ㆍ비니(毘尼)라 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말하는 것으로, 율(律)ㆍ멸(滅)ㆍ조복(調伏)이라 의역한다.

 

此中三藏者,一素怛纜藏`二毘奈耶藏`三阿毘達磨藏.如是三藏,下乘`上乘有差別故,則成二藏:一聲聞藏`二菩薩藏.此三及二,何緣名藏?由能攝故,謂攝一切所應知義.

여기에서 3장(三藏)이란,

첫째는 경장의 소단람장(素怛纜藏, 수다라)이고, 

둘째는 율장의 비나야장(毘奈耶藏)이며, 

셋째는 논장의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이다. 

이와 같은 3장은 뛰어난 교법과 열등한 교법으로 차이가 있는 까닭에 2장(二藏)으로 나뉘나니,

첫째는 성문장이고, 둘째는 보살장이다. 

  종류와  종류는 무슨 인연으로 장(藏)이라 부르는 것인가? 

능히 포섭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마땅히 알아야  모든 의미를 포섭한다는 것이다.


復由何緣,建立三藏?由九種緣, 謂爲對治疑惑立素怛纜藏, 若於彼彼義中,有疑惑者, 卽爲決定宣說彼彼義故;

爲對治二邊受用,立毘奈耶藏, 謂遮有罪著欲樂邊受用故, 及開無罪不自苦邊受用故;

爲對治自見取執,立阿毘達磨藏,顯照諸法無倒相故.

또한 무슨 이유로 3장(三藏)을 건립하는 것인가? 9 가지의 구종연(九種緣)에 의해서이다. 

하나, 이른바 의혹을 다스리기 위해서 경장을 건립한 것이니, 만약 그 의미들에 대해서 의혹이 있다면,  의미들을 결정하여 널리 설명하는 까닭이며,

둘, 두 가지 극단적인 쾌락행과 극단적인 고행의 수용(受用)을 다스리기 위해서 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을 건립한 것이니, 이른바 과실이 있는 욕락에 집착하는 극단적인 수용을 막기(遮) 위해서이고, 

과실이 없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극단적인 고행의 수용이 아니라는 것을 열어(開)주기 위해서이다. 

셋, 스스로의 견해에 지나치게 집착함을 다스리기 위해서 아비달마(논장)을 건립하나니, 제법의 전도됨이 없는 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막을 차(遮)는 유죄(有罪)로 규정해서 금한다는 의미이다. 즉, 극단적인 쾌락행을 금한다는 뜻이다.

연다는 (開)는 무죄(無罪)로 규정해서 허용한다는 의미, 즉, 자신을 괴롭히는 극단적인 고행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又能說三學故,立素怛纜藏;能成辦增上戒`增上心故,立毘奈耶藏, 謂具尸羅卽無悔等, 漸次能得三摩地故;

能成辦增上慧故,立阿毘達磨藏,謂能決擇無倒義故.

넷, 또한 능히 계율(戒)ㆍ선정(定)ㆍ지혜(慧)의 3학(三學)을 말하기 위해서 소단람장(素怛纜藏, 경장) 건립하고,

다섯, 능히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과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을 이루기 위해서 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 건립하나니, 이른바 계(戒, 시라尸羅)를 구족하면  후회 등이 없고, 점차 능히 삼마지(三摩地, 등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여섯, 또한 능히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를 이루기 위해서 아비달마(논장)를 건립하나니, 전도됨이 없는 의미를 능히 결택하기 위해서이다.

 

시라(尸羅)는 범어 śila의 음역으로서, 보통 계(戒)라고 번역된다.

삼마지(三摩地), 범어 samādhi의 음역으로서 정(定)ㆍ등지(等持)라고 번역한다. 일반적으로 삼매(三昧)라는 음역어를 사용하며,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망념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위(定位)ㆍ산위(散位)에 통하지만, 유심위(有心位)에만 통하고 무심위(無心位)에는 통하지 않는다.


又能說法義故,立素怛纜藏;能成滿法義故,立毘奈耶藏, 謂爲調伏煩惱勤修行者,便於此二能通達故;

能於法義決擇善巧故,立阿毘達磨藏.由此九緣,許立三藏.

일곱, 또한 능히 법과 그 의미의 법의(法義)를 말하기 위해서 소단람장(素怛纜藏, 경장)을 건립하고,

여덟, 법의(法義) 원만히 이루기 위해서 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을 건립한 것이니, 이른바 번뇌를 조복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수행하는 이는   가지에 대해서 능히 통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홉, 법의(法義)에 대해서 결택을  하기 위해서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논장)을 건립한 것이니,

이러한 아홉 가지의 이유로 인해서 3장을 건립한 것이다.

 

又此皆爲解脫生死.此復云何能得解脫?熏`覺`寂`通,故得解脫. 謂由聞熏習心故`

由思覺悟故` 由修奢摩他寂靜故`由證毘鉢舍那通達故,能得解脫.

또한 이것은 모두를 생사에서 해탈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어떻게 해탈할  있다는 것인가? 

훈습함(薰)ㆍ깨침(覺)ㆍ고요함(寂)ㆍ통(通)함으로 인하여 해탈할  있으니,

이른바 바른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마음에 훈습되는 문훈습(聞熏習)이 되기 때문이고, 

사유함으로써 깨닫는 각오(覺悟)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사마타(奢摩他, śamatha,  지 止)를 닦음으로써 정적(寂靜)하기 때문이며,

위빠사나(毘鉢舍那, vipaśyanā, 관 觀)를 증득함으로써 통달하기 때문에 해탈할  있는 것이다.

 

사마타(奢摩他), 범어 śamatha의 음역으로서, ‘고요ㆍ평온’의 의미이다. 지(止)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이라고 의역한다. 선정삼매를 본질로 하며 삼매(三昧, 삼마지三摩地)ㆍ정(定)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정신통일의 상태인 심일경성(心一境性)에서 신체와 마음의 평안함의 경안(輕安)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사마타를 행함으로써 8선정(색계 4ㆍ무색계 4)을 이루고 5신통(神通)을 성취할 수 있으나, 누진통(漏盡通)은 위빠사나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위빠사나(毘鉢舍那, vipaśyanā)는 ‘꿰뚫어 봄’ㆍ‘통찰’ㆍ‘관찰’의 의미로서, 관(觀)ㆍ관찰ㆍ견ㆍ능견(能見)으로 번역한다. 사마타(止)에 의해 심신의 평안함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현상으로부터 연기ㆍ무아ㆍ중도ㆍ진여의 이법(理法)을 통찰한다. 위빠사나에 의해 8선정이 완전함을 이루게 되고, 멸진정(滅盡定)이 가능해진다.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완전히 소멸하고 견성ㆍ해탈ㆍ열반을 성취한다.


又若略說,此素怛纜`毘奈耶`阿毘達磨藏各有四義, 菩薩於此若具了知,則能證得一切智性;

聲聞於此雖但解了一伽他義,亦得漏盡.

또한 간략히 말한다면,  소단람장(素怛纜藏, 경장)ㆍ비나야장(毘奈耶藏, 율장)ㆍ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논장)에 각각 4 가지 뜻의 사의(四義)가 있으니, 보살은 이에 대해서 갖추어 분명히 알게 되면  능히 모든 것을 아는 지혜의 일체지성(一切智性)을 증득하고,

성문은 다만 하나의 가타(伽他, 게송)의 뜻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역시 번뇌가 다하는 누진(漏盡, 아라한과)을 얻는다.

 

가타(伽他)는 범어 gāthā의 음역으로서, 풍송(諷頌)ㆍ게송(偈頌) 등으로 번역한다. 12부경(部經)의 하나로서 운문의 형식을 취한 경문(經文)이며, 흔히 교설의 끝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산문 형식의 경문의 의미를 거듭 말하는 게송, 기야(祇夜), 중송(重頌)과 구별하기 위해서 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한다.

누진(漏盡), 번뇌가 완전 소멸한 무루(無漏)의 성과(聖果)인 아라한과이며, 이로써 생사윤회의 흐름이 그치게 된다.

 

云何此三各有四義? 謂能貫穿,依故`相故`法故`義故,名素怛纜.

此中依者,謂於是處, 由此爲此,而有所說. 相者,謂世俗諦相`勝義諦相.

어찌하여 경ㆍ율ㆍ논의 세 가지의 각각에 사의(四義)가 있는 것인가?

능히 꿰뚫는다는 능관천(能貫穿)이란,  의지처(依)이기 때문이고, 상(相)이기 때문이며, 법(法)이기 때문이고, 의미(義)이기 때문에 소단람장(素怛纜藏, 경장)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의지처(依)  장소(處)에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이러한 것을 위해서 말씀하신 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상(相) 세속제(世俗諦)의 상과 승의제(勝義諦)의 상을 말하는 것이다. 

 

능관천(能貫穿), 경ㆍ율ㆍ논 3장을 분명히 알게 되면 능히 모든 것을 꿰뚫어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法者,謂薀`界`處`緣起`諦`食`靜慮`無量`無色`解脫`勝處` 遍處`菩提分`無㝵解`無諍等.義者,謂隨密意. 

법(法) 5온(五蘊)ㆍ12처(十二處)41)ㆍ18계(十八界)ㆍ12연기(十二緣起)ㆍ4성제(聖諦)ㆍ4식(四食)ㆍ

정려(靜慮)ㆍ네 가지 무량한 마음의 사무량심(四無量心)ㆍ무색계ㆍ해탈ㆍ뛰어난 곳의 승처(勝處, 팔승처) 

ㆍ두루하는 곳의 변처(遍處)ㆍ37보리분법(菩提分法)ㆍ4무애해(無碍解)ㆍ번뇌가 없는 무쟁(無諍) 등을 말하며,

뜻의 의(義)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본래의 뜻인, 밀의(密意)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ㅡ여기에서의 밀의(密意) 교설에 함축되어 있는 부처님의 본래 취지를 말한다.

 

*5온(五蘊)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인 유위법(有爲法)을 다섯 가지 요소인 온(蘊)으로 분류한 것이다. 

색온(色蘊)은 물질(신체와 자연계), 수온(受蘊)은 감수작용, 상온(想蘊)은 표상ㆍ개념화 작용, 행온(行蘊)은 짓고 유지하는 작용, 식온(識蘊)은 식별작용 또는 식별작용의 주체이다. 

유정의 심신은 이 다섯 요소가 잠정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으로서 나(我)라고 집착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12처(十二處)는 일체법을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12가지 요소로 분류한 것이다. 

이에 눈의 안근(眼根)ㆍ귀의 이근(耳根)ㆍ코의 비근(鼻根)ㆍ혀의 설근(舌根)ㆍ몸의 신근(身根)ㆍ의지의 의근(意根)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 육내처 6內處)

물질의 색경(色境)ㆍ소리의 성경(聲境)ㆍ냄새의 향경(香境)ㆍ맛의 미경(味境)ㆍ감촉의 촉경(觸境)ㆍ법의 법경(法境)의 여섯 가지 대상인 육경(六境, 육외처 6外處)이다.

*18계(十八界), 계(界)는 부류ㆍ층ㆍ종족이라는 의미이고, 일체법을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으로 분류한 것이다.

*12연기(十二緣起), 12지연기(支緣起)ㆍ12인연(因緣)이라 하며,

현상세계에서 인간이, 특히 인간의 괴로움이 존재하게 되는 방식을 열두 단계로 설명한 것이다.

진리에 대한 무지인 무명(無明) →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하려는 형성작용의 행(行)

식별작용ㆍ윤회의 주체인 식(識) →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인 명색(名色)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의지의 6입(六入) → 6根과 6境과 6識의 화합인 촉(觸)

감수작용의 수(受) →갈애의 애(愛) → 애(愛)의 대상에 대한 집착하는 취(取)

생사하는 존재 자체의 형성의 유(有) → 태어남ㆍ삶의 생(生)

늙고 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뇌 등의 괴로움의 노사우비뇌고(老死憂悲惱苦)이다.

*4식(四食)은 유정의 신명(身命)을 유지시키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음식작용물이다. 

첫째, 단식(段食, 團食)은 밥이나 나물처럼 형체가 있는 음식으로서, 이것을 쪼개고 으깨는 분분단단(分分段段)하여 먹어서 능히 신명을 무너지지 않게 한다.

둘째, 촉식(觸食)에서 촉(觸)은 육식(六識)에 상응하는 심소(心所, 심리작용)으로, 사랑할 만한 대상에 접촉할 때 희락의 쾌감을 일으켜서 신체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능히 음식작용물의 뜻이 있게 된다.

셋째, 의사식(意思食) 또는 사식(思食)에서, 의사는 의식에 상응하는 사(思)의 심소이며, 이 심소가 욕구(欲) 등의 심소를 동반해서 사랑할 만한 대상을 희구해서 심신을 자양(滋養)하기 때문이다.

넷째, 식식(識食)은 앞의 세 가지 음식작용물의 세력에 의해서 증장할 수 있고, 이 식이 모든 감각기관이나 4대(大)를 장양(長養)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정려(靜慮), 범어 dhyāna의 의역(意譯)으로서, 선나(禪那)ㆍ선(禪)ㆍ사유수(思惟修) 등이라고도 하며,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오로지 기울여서 자세히 사유하는 것으로서, 정(定)과 혜(慧)가 균등하다. 

정려라는 용어는 현장의 신역(新譯)이다.

*4무량심(四無量心)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으로, 무량한 중생을 상대로 하고, 또한 무량한 복과를 얻기 때문에 무량(無量)한다.

자(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이며,

희(喜)는 남이 즐거워함을 보고 같이 즐거워함이고,

사(捨)는 남에 대해서 애증원친(愛憎怨親)의 마음이 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승처(勝處)는 제입(制入)ㆍ제입(除入)ㆍ제처(除處)라고도 하며, 대경(對境)을 제복(制伏)하여 자재를 얻는 차이에 따라 여덟 단계로 나누어서 8승처라고 한다. 즉, 욕계의 볼 수 있는 대상, 즉 색상(色想)인 색처(色處)를 관찰함으로써 이를 이겨내고서 탐욕을 제거하는 여덟 단계이다.

 색상(色想)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 색처(色處)의 일부분을 관찰함으로써 이를 이겨서 탐욕을 없애고, 

 다시 색처의 대부분에도 이겨낸다. 

 마음속에 색처가 멸했으나 다시 색처의 일부분을 관찰함으로써 이를 이겨낸다. 

 다시 색처의 대부분도 이겨낸다.

 이와 같이 마음속에 색상이 없고 다시 대경(對境)의 색채의 청(靑)ㆍ⑥ 황(黃)ㆍ⑦ 적(赤)ㆍ⑧ 백(白)을 관찰하여 이것도 이겨낸다. 

이중에서 ①②③④는 초선(初禪)과 제2선에 의하고, ⑤⑥⑦⑧은 제4선에 의한다. 

또한 ①②는 8해탈(解脫)의 제1, ③④는 제2, ⑤⑥⑦⑧은 제3에 해당한다. 

참고로 8해탈은 탐심은 버리지만 아직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변처(遍處)는 변입(遍入)ㆍ일체입(一切入)ㆍ변처정(遍處定)이라고도 하며, 구체적으로 지(地)ㆍ수(水)ㆍ화ㆍ풍ㆍ청ㆍ황ㆍ적ㆍ백ㆍ공(空)ㆍ식(識)의 열 가지 법이 일체의 온갖 장소에 널리 퍼져서 틈이 없다고 관찰하는 열 가지 관법(觀法)ㆍ관상(觀想)이다. 십법은 각각 지변처(地遍處)ㆍ수변처(水遍處) 등으로 말하며, 이 관법은 8해탈ㆍ8승처를 닦은 다음에 행한다.

*37보리분법(菩提分法)은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 하며,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을 실현하는 지혜를 얻기 위한 37가지의 실천수행법으로, 4념주(念住)ㆍ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가 있다.

*4무애해(四無碍解), 4무애지(無碍智)ㆍ4무애변(無碍辯)이라 하며,

마음의 측면에서는 지(智)ㆍ해(解)라 하고, 입의 방면에서는 변(辯)이라 한다. 

첫째, 모든 교법에 통달한 법무애(法無碍),

둘째, 모든 교법의 요의(要義)를 아는 의무애(義無碍),

셋째, 여러 가지 말을 알아서 통달하지 못함이 없는 사무애(辭無碍),

넷째, 일체 교법을 말하는 데 자재한 요설무애(樂說無碍)이다.

*무쟁(無諍), 쟁(諍)은 다툰다는 의미로서 번뇌의 이명(異名)이다. 

무쟁은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탐욕ㆍ성냄 등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지혜이고,

또한 남의 번뇌를 쉬게 하는 힘이므로 부처님과 아라한만 갖고 있을 뿐, 다른 이는 아무도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뛰어난 덕력(德力)의 하나이다.

세친(世親)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1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1

 

ㅡ이하의 여덟 게송은 삼보에 귀의함을 나타내는 귀경서(歸敬序)이다.

세친(世親)이 삼보에 귀의 예배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 석론(釋論)을 짓는 인연을 밝힌 중에서

앞의 4 게송은 부처님, 불보(佛寶)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다.

 

“諸破所知障瞖暗, 盡其所有如所有, 諸法眞俗理影中, 妄執競興於異見.

소지장(所知障, 법집)의 어둠을 모두 깨뜨리니,

 있는 바의 진소유성(盡所有性, 속제)을 다함이며, 있는  그대로의 여소유성(如所有性, 진제)이라.

제법의 진속이체(眞俗理體)의 그림자 중에서 망령되이 집착하여 다투어 다른 견해들을 일으키는구나. 

ㅡ부처님에 세상에 출현하신 연유를 밝힌 것이다.

 

소지장(所知障)은 지장(智障)이라고도 하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객관의 진상(眞相)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이다. 모든 번뇌에는 열반을 장애하는 측면과 지혜 즉 보리의 발현을를 장애하는 2 가지의 측면이 있는데, 소지장은 완전한 깨달음의 증득을 장애하는 번뇌이다. 

여기서 소지장만을 들고 번뇌장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견해들을 논파하기 위해 이 논서를 저술하기 때문이다.
진소유성(盡所有性), 속제(俗諦)인 현상계의 사상(事相, 차별상)을 말한다.
여소유성(如所有性), 즉 진제(眞締)의 이체(理體)를 가리킨다.

사상(事相)은 현상계의 차별상 또는 현상계의 차별적 존재들을 말한다. 속제(俗諦) · 진소유성(盡所有性: 다함이 있는 성질) · 진소유(盡所有: 다함이 있는 것)라고도 한다

이체(理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진리, 거짓이나 상상이 아닌 실재적인 존재의 본체. 


斯由永離諸分別, 無垢淸淨智光明, 獲得最勝三菩提, 惑障幷習斷常住,

이에 모든 분별을 영원히 떠난, 번뇌의 때가 없는 무구(無垢)의 청정한 지혜 광명으로써

최승(最勝)의 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고, 미혹의 장애와 습기를 끊고 상주하시네.

ㅡ부처님께서 미혹을 끊고 불과를 증득함을 서술한 것이다.


能無功用於十方, 隨諸有情意所樂, 開示殊勝極廣大, 三種解脫等方便.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무공용(無功用)이시나, 능히 시방세계에서

모든 유정들의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를 따라,

뛰어나고 지극히 광대한 삼해탈문(三解脫門) 등의 방편문을 열어 보이시네.

ㅡ두 게송은 붓다의 대지(大智)ㆍ대자(大慈)  가지 덕을 서술한 것이다.

 

공용(功用)은 신체ㆍ입ㆍ뜻으로 짓는 동작ㆍ행위를 말한다. 보살은 공관(空觀)을 닦음에 있어서 7지(地)까지는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는 유공용지(有功用地)이고, 제8지부터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관이 이루어지는 무공용지(無功用地)이다. 부처님께서는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이루셨기 때문에,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중생교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해탈문(三解脫門), 해탈에 들어가는 되는 세 가지 선정문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사람과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조하는 것이고,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차별상을 떠나는 것이고,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由無分別有大悲, 生死涅槃俱不住, 由攝妙慧巧方便, 究竟至極自他利.

분별이 없는 대자비심으로써, 생사와 열반에 모두 머물지 않으시며, 

승묘한 지혜와 훌륭한 방편을 거두어들임으로써

구경(究竟)의 지극함으로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시네.


如是世尊等所覺, 等所開示微妙法, 若能於此善修行, 必獲寂然甘露迹.

이와 같이 세존께서 평등히 깨달으신 바와 평등히 열어 보이신 미묘한 법을

능히  수행한다면, 반드시 고요한 적연감로(寂然甘露)의 자취를 획득하리라.

번째로 법보(法寶) 귀의하여 공경히 예배한다.


誹謗決定沒無底, 甚久無能大苦海, 學無學僧居道果, 普勝一切所餘僧.

비방하는 이는 바닥이 없는 무저(無底)의 견딜  없는 깊은 고해(苦海)에 결정코 빠지리니,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의 과위에 머무는 이와 널리 모든 뛰어난 수행자(僧)는

ㅡ두 게송은 승보(僧寶) 덕을 찬탄한 것이다.


善逝無垢功德河, 眞實於中而沐浴, 爲世無上良福田, 雖復投於微少善,

 가신 분이신, 선서(善逝, 부처님)의 번뇌 없는 공덕의 강에서 진실로 목욕한다면

세상의 위없는 훌륭한 복전이 되리니, 비록 다시 작은선(少善)을  안에 넣을지라도


而便廣大如地空, 慧者由斯得解脫, 故我至誠身語思, 頻修無倒歸命禮.

문득 광대한 대지나 허공과 같으며, 지혜로운 이는 그로 인해 해탈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저는 지성을 다해 몸(身)과 말(語)과 생각(思)으로

엎드려 전도됨이 없는 귀명례(歸命禮)를 닦습니다.

 

 ‘귀명(歸命)’은 둘도 없는 명(命)을 들어서 위없는 존귀함을 받들고, 신심이 지극함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며, 귀명례(歸命禮)는 귀명정례(歸命頂禮)의 줄임말이다.


軌範諸師今減少, 眞法正理多渾濁, 皆由聰睿邪慢人, 依自尋思失教證.

오늘날, 청정한 계율을 지닌 스승들은 줄어들고, 진실한 법과 바른 이치는 많이 혼탁하여 졌으며, 

모두가 총명하나 삿된 아만을 가진 사람들이니, 

자신의 사량에 의지하고 경전의 증명인 교증(敎證)을 잃은 까닭이구나.

ㅡ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쇠퇴해짐을 한탄하고, 당시 사람들의 폐단을 통탄하면서,

 '섭대승론석'을 저술하는 취지를 밝힌 것이다.

 

我師於此非前後, 逢事聖者大慈尊, 依止無動出世閒, 放大法光三摩地,

나의 스승(무착無着 논사)은 이에 전후 불세출(不世出)의 대덕이시니

ㅡ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음의 사승(師承) 서술한 것으로, 먼저 스승인 무착(無着) 덕을 찬탄하였다.

 

성자인 미륵보살을 받들어 섬기시고, 부동지(不動地)에 의지하여 세간을 벗어나

 법광(法光)의 삼마지(三摩地)를 놓으신다네.

ㅡ무착 논사가 '섭대승론'을 짓게 경위를 밝힌 것으로,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 의하면 무착 논사가 초지(初地) 오르고 법광정(法光定) 증득하여 신통력을 얻고서 미륵보살을 섬겼으며, 선정 중에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로부터 유가유식의 가르침을 듣고서 널리 세간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마지(三摩地, samādhi), 흔히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정(定)의 일곱 가지 명칭의 하나로서 등지(等持)이다.


闡揚妙法流淸譽, 如日舒光遍十方, 文光無垢最甚深, 諸了義經所隨順.

승묘한 법을 드날리고 맑은 명예가 퍼져서, 그 빛이 태양과 같이 시방에 두루하니, 

광명과 같은 문장이 청정하고 매우 심오하여서 모든 요의경(了義經)에 수순하네.

요의경(了義經), 심원한 불법의 이치를 완전하게 설법한 경전


廣大句義皆微妙, 悉以綺飾自莊嚴, 能令聰敏者融心, 無諂無憍生愛敬,

문장의 광대한 의미는 미묘해서, 모두 뛰어나게 스스로 장엄하며, 

능히 총명한 자로 하여금 마음을 융화케 하여서 아첨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네.


極難通法慧無滯, 不住利養稱譽中, 於樂常無染著心, 故名決定稱自德.

지극히 통달하기 어려운 법에도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세간의 명예와 이익에 머물지 않으시며, 

즐거움에 대해서도 항상 집착하는 마음 없으시니, 

그러므로 무착(無着)이라는 존함이 결정적으로 그 자신의 덕에 부합한다네.


諸賢聖者常親近, 一切世閒無不知, 無著名稱普皆聞, 功德顯然同所讚.

모든 현성(賢聖)이 항상 가까이하고, 일체의 세간에서 모르는 이가 없으니

무착(無着)이란 존함이 널리 알려지고, 그 공덕이 뚜렷해서 모두가 찬탄하네.


無盡辯者等所雨, 甘露文義微妙法, 多從彼聞自力微, 少受猶如乞雨鳥.

다함이 없는 변재자께서 평등히 내리신, 감로의 문장의 의미와 미묘한 법을

따라 많이 들어도 스스로의 능력이 미약하여서, 적게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비를 청하는 새와 같구나.

논주(論主) 무착보살의 지혜로운 변재를 찬탄하였으며,

이하 게송은 무착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석론(釋論) 저술함을 말한다.


從廣決擇集少分, 以言略釋攝大乘, 願此所作遍饒益, 怖於極大立海者.”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섭결택분(攝決擇分)의 광대한 결택으로부터 일부를 모아서

'섭대승론'을 간략히 해석하나니, 

원하건대,  저술한 바가 지극히  바다와 같은 글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

ㅡ'유가사지론' 100권과 같은 광대한 논서를 독파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간결한 약석(略釋) 저술함을 밝힌 것이다.


▶論曰:阿毘達磨大乘經中,薄伽梵前,已能善入大乘菩薩,爲顯大乘體大故說.

謂依大乘,諸佛世尊,有十相殊勝殊勝語.

▷논문에서; '아비달마대승경(阿毘達磨大乘經)' 가운데에서, 능히 대승에 잘 들어간 보살은 박가범(薄伽梵, 부처님) 앞에서  대승 자체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대승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에게  가지 십상(十相)의 수승함과 수승한 말씀이 있다”고 하였다.

ㅡ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관하여 말한, 제일 무등성교장(第一 無等聖敎章)

 

박가범(薄伽梵, Bhagavat), 바가바(婆伽婆)ㆍ바가범(婆伽梵)이라고도 하며, 세존ㆍ중우(衆祐)로 번역된다.

박가범에는 유덕(有德)ㆍ자재ㆍ치성(熾盛)ㆍ단엄(端嚴)ㆍ명칭ㆍ길상ㆍ존귀 등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의역(意譯)하지 않는 것으로, 5종 불번(不飜)의 하나이다.
의역하여 유덕(有德) · 능파(能破) · 세존(世尊) · 존귀(尊貴) · 중우(衆祐)라고도 하며, 

또한, 자재(自在) · 치성(熾盛) · 단엄(端嚴) · 명칭(名稱) · 길상(名稱) · 존귀(尊貴)의 6 가지의 육의(六義)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正義) · 이욕(離欲) · 해탈(解脫) 등의 뜻도 있다.

5종불번(五種不飜), 박가범(薄伽梵, Bhagavat), 반야(般若, 프라즈냐) 다라니, 진언 등, 현장법사가 5 가지의 이유로 번역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그 이유는;

첫째는 은근하고 깊은 비밀이 있는, 비밀고(秘密故)이며,

둘째는 많은 의미가 있는, 다함의고(多含意故)이며, 

셋째는 비교할 수 없는, 차방무소(此方無故)이며,

넷째는 오래전부터 그대로 따라 지켜온 순고고(順古故)이며,

다섯째는 존중스러운 존중고(尊重故) 불번(不飜)한 것이다.


▶釋曰:依止何義?從何所因,而作是說?廣博所知深大法性,若離諸佛菩薩威力,誰於此中,能造釋論?復由何義,於此論初說如是事由?若離擧『阿毘達磨大乘經』言,則不了知論是聖教,爲此義故.又爲顯經名,如言『十地經』,故說如是阿毘達磨大乘經言.復有餘義,爲顯彼經是聖教故,初說如是『阿毘達磨大乘經』言.

▷해석한다; 어떠한 뜻에 의지하는 것이며? 어떠한 원인으로부터 이 말을 짓는 것인가?

넓고도 넓은 것으로서 알아야 하는 소지(所知)할 바의 심오하고 광대한 법성(法性)에서, 만약 불보살의 위력을 떠나서 어느 누가 능히 이에 대한 석론을 지을 수 있겠는가?

또한 무슨 의미로, 서두에서 이 논서에 대하여 이와 같은 까닭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아비달마대승경'이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곧 이 논서가 성스러운 가르침임을 알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까닭이며, 

또한 경전의 명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십지경(十地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러므로, 이와 같이 '아비달마대승경'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의미가 있으니, 그 경전이 성스러운 가르침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서두에 이와 같이 '아비달마대승경'이라 말하는 것이다.

 

바수반두(वसुबन्धु) 또는 세친(世親)은 316 - 396년 경의 인도의 불교 사상가이다.

간다라 지방 푸루샤푸라성의 브라만 가문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맏형은 그와 같이 사상가로 유명한 아상가(무착, 無着)이며, 처음에 출가하였을 때에는 유부(有部)에 속하였으며, 카슈미르와 간다라에서 유부를 비롯한 여러 부파 불교의 학설을 수업하고 이들 학설의 요강서(要綱書)인 '구사론(俱舍論)'을 지었다.
그러나, 후일 형인 아상가(무착)의 감화로 대승으로 전향하여 아상가 및 그의 스승 마이트레야의 저서에 주석을 붙여 유가유식설(瑜伽唯識說)의 완성에 힘썼고,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저술하였다.

더욱이 그 입장에 서서 반대설을 깨뜨리고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또한 유식설 입문서로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을 지었다.

'유식삼십송'에 대해서는 그의 제자들의 손으로 여러 주석서가 나왔고, 후일 현장(玄奬)이 호법(護法)의 주석을 중심으로 10대논사(十大論師)의 여러 주석을 합쳐서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은 중국 불교의 법상종(法相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ㅡ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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