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1권 4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4
▶釋曰:此中所知依殊勝殊勝語者, 所應可知, 故名所知, 所謂雜染淸淨諸法,卽三自性.
依是因義,此所知依,卽是殊勝,故名所知依殊勝,由此殊勝,故語殊勝.
▷설명한다; ‘이 중에서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의 뛰어남인, 소지의수승(所知依殊勝)과 뛰어난 말의 수승어(殊勝語)’란,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기 때문에 ‘알아야 할 바의 소지(所知)’라 하는 것으로,
이른바 잡염과 청정의 제법이 곧 의타기성ㆍ변계소집성ㆍ원성실성의 세 가지 삼자성(三自性)인 것이다.
*삼자성(三自性), 3성(三性)은 의타기성ㆍ변계소집성ㆍ원성실성이다.
진제(眞諦)의 역본에는 의타성ㆍ분별성ㆍ진실성으로 되어 있다.
此依卽是阿賴耶識,如是持業釋,乃至彼果智殊勝亦爾,謂彼果智卽是殊勝,故名彼果智殊勝等.
‘의지의 의(依)’는 원인(因)의 의미이니, 이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인, 소지의(所知依)는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소지의(所知依)의 수승(殊勝)’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말도 뛰어난 수승어(殊勝語)가 되는 것이다.
이 의지처(依)는 곧 아뢰야식(阿賴耶識, 제8식)이며, 이와 같은 것은 지업석(持業釋)이고, 나아가 그것의 증과인 지혜의 뛰어남의 지수승(智殊勝)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그 증과(果)인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果)인 지혜의 뛰어남인, 지수승(智殊勝)’ 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범어 ālaya-vijāna의 음역으로서 8식(識) 가운데 제8식이며, 유정의 근본적인 식체(識體)이다.
ālaya는 저장ㆍ집착ㆍ무몰(無沒)의 의미로써,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제7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는 것이다.
근본식ㆍ본식ㆍ장식(藏識)ㆍ이숙식(異熟識)ㆍ일체종자식ㆍ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하며,
진제는 아리야식(阿梨耶識)ㆍ아려야식(阿黎耶識)으로 음역하고, 무몰식(無沒識)으로 의역하였다.
*지업석(持業釋), 지업(持業)은 어떤 체(體)가 그 용(用)을 능히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지업석은 6합석(合釋)의 하나로서, 앞절(前節)의 문언(文言)이 뒤의 절(後節)의 문언에 대해 형용사ㆍ부사 또는 동격의 명사의 관계를 갖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장식(藏識)이라고 할 경우에 장(藏)은 용(用)이고 식(識)은 체(體)로서, 식(體)이 장(用)을 갖고 있으므로 지업석인 것이다.
所知相者,是所知自性義.所知卽是相,故名所知相,謂三自性. 入所知相者,謂於所知相,若能入若正入,卽唯識性.
‘알아야 할 바의 상인 소지상(所知相)’이란 알아야 할 바의 자성의 뜻이니, 알아야 할 바는 곧 상(相)이기 때문에 알아야 할 바의 소지(所知)의 상(相)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세 가지 자성인, 삼자성(三自性)인 것이다.
‘알아야 할 바의 상에 들어가는 입소지상수승(入所知相殊勝)’이란, 알아야 할 바의 소지(所知)의 상(相)에 대해서 능히 들어가거나 혹은 바르게 들어가는 것이니, 곧 유식성(唯識性)이다.
彼入因果者,謂能入彼,故名彼入, 卽是悟入,唯識理性. 因,謂加行時, 世閒施等波羅蜜多. 果,謂通達時, 出世施等波羅蜜多.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과 결과, 입인과(入因果)’란 능히 그것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곧 이 유식의 진여성인 유식이성(唯識理性)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원인의 인(因)’은 가행위(加行位)에서의 세간의 보시 등의 바라밀이고,
‘결과의 과(果)’는 통달위(通達位)에서의 세간을 벗어나는 보시 등의 바라밀이다.
*가행위(加行位), 유식학에서는 보살의 수행 계위(階位)를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ㆍ불지(佛地)의 41단계로 인정하고, 이것을 자량위ㆍ가행위ㆍ통달위ㆍ수습위ㆍ구경위의 5위(位)에 배대한다.
가행위(加行位)는 제2위로서 수행심을 더욱 경책해서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이며,
이 지위에서 난위(煖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위(世第一位)의 네 가지 선근을 닦는다.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며, 이 지위에 오르면 진여성(眞如性)을 관찰하게 된다.
10지의 초지初地, 환희지)에서 입심(入心)의 수행위이다.
彼因果修差別者,卽彼因果, 故名彼因果,卽於此中,修之差別.
그것의 원인(因)과 결과(果)의 수행의 차이인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수승(殊勝)이란 그것의 원인ㆍ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因)과 결과(果)’라고 말하는 것이니, 곧 이 가운데에서 그것을 수행의 차이인 것이다.
修,謂數習,卽此數習於諸地中, 展轉殊勝, 故名差別, 卽是十地.
‘수행의 수(修)’는 누누이 익히는 삭습(數習)이며, 이렇게 삭습(數習)으로 익히는 것은 모든 지위에서 전전하여 뛰어나게 되어서 수승(殊勝)하게 되기 때문이며, ‘차별(差別)’라고 이름하는 것은 곧 10지(地)인 것이다.
卽於如是修差別中, 增上戒者, 謂十地中,依戒而學, 故名增上戒, 卽諸菩薩所有律儀, 於諸不善, 無復作心.
‘이와 같은 수행의 차이에서의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의 수승(殊勝)’이란, 10지 중에서는 계율에 의지해서 수학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계율의 증상계(增上戒)’라 이름하는 것으로, 모든 보살은 지니는 율의로써 모든 불선(不善)에 대하여 다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즉 계율을 호지(護持)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을 짓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增上心者, 謂在內心, 或卽依心而學 , 故名增上心, 卽諸三摩地.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이란 내면에 머무는 내심(內心)으로, 혹은 그 마음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이라 하는 것이니, 곧 모든 삼마지인 것이다.
增上慧者, 謂趣證慧, 故名增上慧, 或依慧而學,故名增上慧,卽是無分別智.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란 깨침에 나아가는 지혜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라 하며,
혹은 지혜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라고 말하나니,
곧 분별이 없는 지혜의 무분별지(無分別智)인 것이다.
斷殊勝者,謂最勝品別,自內棄捨煩惱及所知障,卽是無住涅槃.
‘단멸의 뛰어남의 과단수승(果斷)의 수승(殊勝)’이란, 전의(轉依)의 증과인 멸이 제법에 있어서 가장 승묘(勝妙)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남의 수승이며,
전의(轉依)의 품류(品類)의 차이와 스스로 내면에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버리는 것이니, 곧 무주열반(無住涅槃)인 것이다.
*번뇌장(煩惱障), 중생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로 인한 장애이다. 여기서 번뇌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의 견분을 대상으로, 그리고 의식이 5취온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집착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아집의 번뇌로 인해 열반을 장애하고 생사에 유전하게 하므로 이렇게 부른다.
*소지장(所知障), 알아야 할 소지(所知)의 모든 대상을 덮어서 바른 지혜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번뇌로 인한 장애이다. 즉,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인식대상인 소지(所知)의 참다운 모습의 법공(法空)을 그대로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들 번뇌를 소지장(所知障)이라 한다.
법집(法執)을 근본으로 하며 보리를 장애하며, 참다운 지혜가 발현함을 장애하는 점에서 지장(智障)ㆍ보리장(菩提障)이라고도 한다.
*무주열반(無住涅槃), 무주처열반ㆍ무주상열반이라고도 하며, 진여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모두 벗어난 열반으로, 본래자성청정열반ㆍ유여의열반ㆍ무여의열반ㆍ무주처열반의 4 가지 열반에서 최상의 경지이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으나,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智殊勝殊勝語者,謂無障智名智殊勝,彼無分別智,有所對治;
今此佛智已離一切障及隨眠, 是名於彼無分別智佛智殊勝.
‘지혜의 지수승(智勝殊)과 뛰어난 말의 수승어(殊勝語)’란 장애가 없는 지혜를 ‘지혜의 뛰어남의 지수승(智勝殊)’이라 이름하며, 그것의 무분별 지혜에는 다스려지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부처님의 지혜는 이미 모든 장애와 수면(隨眠, 잠재번뇌)을 떠났으니, 이러한 부처님의 무분별 지혜를 부처님 지혜의 뛰어남인 불지수승(佛智殊勝)이라 하는 것이다.
*수면(隨眠), 번뇌의 종자로써 번뇌의 잠재세력이다. 이에 대해 현재 작용하는 번뇌를 전(纏)이라 한다.
▶論曰:復次云何能顯? 由此所說十處, 於聲聞乘, 曾不見說, 唯大乘中, 處處見說, 謂阿賴耶識, 說名所知依體
三種自性:一依他起自性`二遍計所執自性`三圓成實自性,說名所知相體. 唯識性,說名入所知相體.
六波羅蜜多,說名彼入因果體.菩薩十地,說名彼因果修差別體.
▷논문에서; 또한 능히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러한 열 가지의 의지처인 십처(十處)는 일찍이 성문승에서 설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직 대승의 여러 곳에서만 설하셨음 볼 수 있으니,
이른바 아뢰야식을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인 소지의(所知依)의 체(體)라 이름하는 것이다.
세 가지의 삼자성(三自性), 즉 첫째는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이고, 둘째는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이며, 셋째는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을 알아야 할 바의 소지상(所知相)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유식성(唯識性)을 알아야 할 바의 상에 들어감의 입소지상(入所知相)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육바라밀다를 말하여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ㆍ결과의 입인과(入因果)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보살의 10지를 그것의 원인ㆍ결과의 수행 차이인,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체(體)라고 이름한다.
菩薩律儀,說名此中增上戒體. 首楞伽摩`虛空藏等諸三摩地, 說名此中增上心體.
無分別智,說名此中增上慧體. 無住涅槃, 說名彼果斷體.
三種佛身,一自性身`二受用身`三變化身,說名彼果智體.
由此所說十處,顯於大乘異聲聞乘, 又顯最勝世尊, 但爲菩薩宣說, 是故應知但依大乘,
諸佛世尊,有十行相殊勝殊勝語.
보살의 율의를 여기에서 매우 높은 계율인, 증상계(增上戒)의 체(體)라 이름하며,
수능가마(首楞伽摩)ㆍ허공장(虛空藏) 등의 여러 삼마지를 매우 높은 마음의 증상심(增上心)의 체(體)라 이름하며,
무분별지를 이 가운데 매우 높은 지혜인 증상혜(增上慧)의 체라고 이름하며,
무주열반을 그것의 증과인 과단(果斷)의 체(體)라고 이름하며,
삼불신(三佛身), 즉 첫째는 자성신(自性身)이고, 둘째는 수용신(受用身)이며, 셋째는 변화신(變化身)을 그것의 증과의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 이름한다.
여기에서 말한 열 가지의 의지처인 십처(十處)로 인하여 대승은 성문승과 다름을 나타내고, 또한 가장 뛰어남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만 보살을 위해서만 널리 말씀하셨으므로, 다만 대승에 의지하는 모든 불세존(佛世尊)에게만 열 가지의 십행상(十行相)의 수승(殊勝)과 뛰어난 말씀의 수승어(殊勝語)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수능가마(首楞伽摩), 범어 śūraṁgama의 음역으로서, 수능엄(首楞嚴)이라고도 하며, 건상(健相)ㆍ건행(健行)ㆍ일체사경(一切事竟)이라고 의역(意譯)한다.
부처님께서 증득한 삼매의 이름으로, 건상이란 당기(幢旗)가 견고함에 비유한 것으로서, 부처님의 덕이 견고하여 모든 마군에 의해 파괴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일체사경은 불덕(佛德)의 구경(究竟)을 나타낸다.
*허공장(虛空藏), 무색계의 네 가지 선정의 사공처정(四空處定) 가운데 하나로서,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ㆍ허공처정(虛空處定)ㆍ허공기삼매(虛空器三昧)라고도 한다.
물질의 색법(色法)에 얽매임을 싫어하여 마음에 색상(色想)을 버리고 무한한 허공을 관(觀)의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다.
▶釋曰:云何能顯者,是問何緣義. 六波羅蜜多說名彼入因果體者,謂由唯識性,
入三自性時,世閒施等波羅蜜多名淸淨因,由能引發出世閒故.
▷설명한다; ‘무엇을 능히 나타내는 능현(能顯)인가?’란, 무엇을 반연(緣)으로 삼는것인가를 묻는 것이며,
‘육 바라밀다를 말하여서 그것에 들어가는 원인ㆍ결과의 입인과(入因果)의 체(體)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유식성(唯識性)으로 인하여 삼자성(三自性)에 들어갈 때를 세간의 보시 등의 바라밀다를 청정인(淸淨因)이라 이름하나니, 능히 세간을 벗어남의 출세간(出世間)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入地已去,卽彼施等波羅蜜多, 成出世閒,名淸淨果. 菩薩十地說名彼因果修差別體者,
謂菩薩十地, 是前所說波羅蜜多,因果二位,修差別性. 無分別智說名此中增上慧體者, 若諸聲聞,
離四顚倒分別, 名無分別;若諸菩薩,離一切法分別,名無分別,二無分別差別如是.
10지의 지위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 보시 등의 바라밀다가 출세간(出世間)을 이루는 것을 청정과(淸淨果)라고 이름한다.
‘보살의 10지를 그것의 원인ㆍ결과의 수행 차이의, 인과수차별(因果修差別)의 체(體)라 이름한다’는 것은, 보살의 10지가 앞에서 말한 바라밀다의 원인ㆍ결과의 두 지위에서 수행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무분별지를 이 가운데에 매우 높은 지혜의 증상혜(增上慧)의 체(體)라고 이름한다는’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성문들은 네 가지의 사전도(四顚倒)의 분별을 여의는 것을 무분별이라 이름하고,
보살들은 제법의 분별을 여의는 것을 무분별이라고 하는 것이니, 두 가지의 무분별(無分別)의 차이인 것이다.
사전도(四顚倒), 현상계의 존재인 유위법(有爲法)들의 실상(實相)이 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고(苦)ㆍ부정(不淨)임을 알지 못하고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전도(顚倒)된 견해를 일으키고, 또한 열반계가 상ㆍ낙ㆍ아ㆍ정인 것을 무상ㆍ무아ㆍ고ㆍ부정이라고 망령되게 집착하는 것이다.
無住涅槃說名彼果斷體者, 謂三學果, 故名彼果.彼果卽斷, 名彼果斷. 此性名爲彼果斷體, 卽是煩惱`所知二障斷義.
‘무주열반(無住涅槃)을 계ㆍ정ㆍ혜 3학의 증과인 과단(果斷)의 체(體)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삼학(三學)의 증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라 이름하는 것이며, 그것의 증과가 곧 단멸(斷)이므로 과단(果斷)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이 성품을 그것의 증과인 과단(果斷)의 체(體)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곧 이것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2장(二障)을 단멸한다는 뜻이다.
三種佛身說名彼果智體者,彼三學果, 故名彼果,彼果卽智,名彼果智, 此性名爲彼果智體.
此中若無自性身, 應無法身,譬如眼根;
‘삼불신(三佛身)을 그것의 증과인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고 부른다’라는 것은, 3학의 증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증과라고 이름하며, 그것의 증과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의 증과인 과지(果智)라 이름하며,
이 성품을 그것의 증과인 지혜인 과지(果智)의 체(體)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만약 자성신(自性身)이 없다면 마땅히 법신(法身)도 없어야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안근과 같은, 즉 안근에 의지해서 안식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자성신(自性身), 2공(空) 소현(所顯)의 진여로서의 자성을 말한다. 자성신은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 이전부터 본래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성품이 현현된 상태이다.
본래의 자성청정세계ㆍ진여 법성이 전의(轉依)에 의해 드러난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若無法身,應無受用身,譬如眼識.
만약 법신(法身)이 없다면 마땅히 수용신(受用身)도 없어야 하나니, 수용신(受用身)은 법신에 의지하면서 불국토에서 법락을 향수하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안식과 같은 것으로, 안근이 있기 때문에 안식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應知此中所依`能依,爲同法喩.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중에서 의지처인 소의(所依)와 능히 의지하는 것의 능의(能依)를 동일한 법의 비유로 삼은 것이다,
ㅡ감각기관의 근(根)이 의지처인 소의(所依)이고 식이 의지의 주체인 능의(能依)인 것과 같이 법신(法身)과 자성신(自性身)도 역시 각각 소의(所依)와 능의(能依)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若無受用身,已入大地諸菩薩衆,應無受用法樂;若無受用法樂,菩提資糧應不圓滿;譬如見色.
만약 수용신(受用身)이 없다면 이미 대지(大地), 즉 10지 중의 초지위(初地位)에 들어간 모든 보살들에게는 법락을 수용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법락을 수용하는 일이 없다면 깨달음의 자량은 원만하지 않은 것이어야 할 것이니,
비유하면 빛깔(色)을 보는 것과 같은, 즉 안근에 의지하여 안식을 일으켜서 빛깔(色)을 봄으로써 인식작용이 완료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수용신(受用身), 수용(受用)은 향수(享受)의 의미이다. 보살이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여 청정국토와 대법락(大法樂)을 향수함을 말하는 것으로, 수용신은 복덕과 수행을 닦아서 성취되는 불신(佛身)으로서, 스스로 대승 법락을 향수할 뿐만 아니라 지상(地上) 보살을 위해 대승법을 설하여 법락을 수용하게도 한다.
若無化身,勝解行地諸菩薩衆`諸聲聞等劣勝解者,最初發趣皆不應有, 是故決定應有三身.
顯於大乘,異聲聞乘者,聲聞乘中,不說此故.又顯最勝者,顯大乘中,此亦最勝.
만약 화신(化身)이 없다면 승해행지(勝解行地)의 모든 보살들, 모든 성문등 승해가 열등한 자가 최초로 발심하여 나아감은 모두 없어야 한다. 따라서 결정적으로 마땅히 3신(身)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승이 성문승과 다른 것을 나타낸다’는 것은, 성문승에서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가장 뛰어난 최승(最勝)을 나타낸다’는 것은 대승 안에서도 이것이 역시 가장 뛰어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승해행지(勝解行地), 10주(住)·10행(行)·10회향(廻向)을 닦는 지위로서 자량을 쌓고 가행하는 시기이다.
아직 유식의 진여를 증득하지 못하였으나 승해(勝解)의 힘에 의지해서 여러 가지 뛰어난 수행으로 자량위와 가행위에 든 것을 승해행지(勝解行地)라고 한다.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권 6 (0) | 2025.03.05 |
---|---|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권 5 (0) | 2025.03.04 |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권 3 (0) | 2025.03.03 |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권 2 (0) | 2025.03.03 |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권 1 (0) | 202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