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

 

從一生於三 從三轉生六 六二二更六 從六亦生六 

하나의 일(一, 무지 無知, 무)에서 셋의 삼(三)이 생기고,
셋의 삼(三, 삼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 육식)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  명名과 색色)가 생기고,

둘의 이(二, 명과 색)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 육입)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 육입)에서 또 여섯의 육(六, 육처)이 생긴다.

 

從六有於三 此三復有三三 復生於四 四復生於三  

여섯의 육(六, 육촉)에서 셋의 삼(三, 삼수三受)이 있고,
이 셋의 삼(三, 삼수)에서 다시 셋의 삼(三, 삼갈애 三渴愛)이 있으며,
셋의 삼(三, 삼갈)에서 넷의 사(四, 사취 四取)가 생기고,
넷의 사(四, 사취)에서 또 셋의 삼(三, 삼유 三有)이 생긴다.

 

從三生 於一彼一復生七 於中所有苦 牟尼說皆攝

셋의 삼(三, 삼유)에서 하나의 일(一, 생 生)이 생기고,
저 하나의 일(一, )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고惱 困)이 생기나니,
그 가운데에 모든 고(苦)가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설하여 다 거두셨다.

 

十二種差別 善淨說爲空 緣生分力故 應知十二法

열두 가지의 차별이 훌륭하고 청정한 공(空)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 때문이니, 마땅히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無智與業 識 名色根三和 知渴及以取 集出熟後邊,

무지(無智, 무명) 즉 업(業)의 식(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세 가지 삼화합(三和合, 촉觸)과
앎의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취(取)와
모임의 집(集, 유有), 나옴의 출(出, 생生), 성숙됨의 숙(熟, 노老), 그리고 그 끝의 후변(後邊, 사死)이니, 

 

初八九煩惱第二第十業 餘七皆是苦。 三攝十二法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이고,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이며,
나머지 일곱의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은 모두 고(苦)이니,
이 번뇌, 업(業), 고(苦)의 셋의 분류에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이 포함되는 것이다.

 

初二是過去 後二未來時 餘八是現在 此謂三時法 

처음의 둘인 무지(無智, 무명)와 식(識)은 과거이고,
뒤의 둘인 숙(熟, 노老)과 후변(後邊, 사死)은 미래이고,
나머지 여덟은 현재이니, 이것을 삼시법(三時法)이라 한다.

惱起業感報 報還生煩惱 煩惱復生業 亦由業有報 

번뇌가 일어나면 업(業)이 감응하여 그 보(報, 과보)가 일어나며,
보(報, 과보)는 다시 번뇌가 생기게 하며, 번뇌는 다시 업(業)이 생기게 하고,

업(業)으로 인하여 다시 과보가 있게 되는 것이다.

 

離惱何有業 業壞亦無報 無報則離惱。 此三各自滅 五分因生果 名爲煩惱業, 七分以爲果 七種苦應念

번뇌를 여의면 어찌 업이 있겠는가!
업(業)이 무너지면 과보 또한 없는 무보(無報)이며, 
과보가 없는 무보(無報)이면 곧 번뇌를 여의는 것이니,
번뇌 업 과보, 이러한 셋이 각각 저절로 자멸(自滅)하나니,

이러한 다섯 가지의 직접적인 원인의 오분인(五分因)이 결과(果)를 생하게 하는 것이니,
이를 번뇌업(煩惱業)이라 하며, 
일곱 가지는 결과이니, 일곱 가지의 괴로움인 칠종고(七種苦)를 마땅히 생각(念)하여야 하는 것이다.

 

오분인(五分因)= 첫 번째인 무지(無智, 무명)와 여덟 번째의 취(取)와 아홉 번째의 집(集, 유有)은 번뇌와  
두 번째의 식(識)과 와 열 번째의 출(出, 생生)은 업(業), 즉 번뇌업(煩惱業),

 

고(苦)= 명색(名色), 근(根, 육입 또는 육근), 삼화합(三和合, 촉觸), 지(知, 수受), 갈(渴, 애愛), 숙(熟, 노老), 후변(後邊, 사死)
 

因中空無果 因中亦無因 果中空無因 果中亦無果 因果二俱空 智者與相應 [梵本一偈今爲一偈半]

원인의 인(因)이 공(空)하므로 결과가 없는 무과(無果)이고,

원인의 인(因) 가운데에는 원인 또한 없는 무인(無因)이니, 

결과가 공하므로 원인이 없는 무인(無因)이고,

결과 가운데에는 결과 또한 없는 무과(無果)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모두 공하니, 지혜 있는 지자(智者)는 공과 상응하는 것이다.

[범본(梵本)에서는 한 게송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한 게송 반(半)으로 하였다].

 

世中四種分 因果合故有 煩惱業果合 念欲爲六分

세간 속의 네 가지 구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의 화합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번뇌(煩惱), 업(業) 과보(果報)가 화합하면 여섯 부분이 되어야 하며, 

 

有節所攝故 二節及三略因果雜爲節 三四節摠略

유(有)의 마디인 유절(有節)이 포함되기 때문에
두 개의 마디인 이절(二節)과 세 가지 요약인 삼약(三略)이 있으며,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가 섞여서 마디(節)를 이루므로
세 개의 마디와 네 개의 전체적인 요약의 총략(摠略)이 있는 것이다.

 

二二 三三 二 苦時有五法 作者胎境界 發轉生流行

둘(무명과 행)과 둘(식과 명생)과

셋(육입ㆍ촉ㆍ수)과 셋(갈애ㆍ취ㆍ유)과 둘(생ㆍ노사)로써, 괴로울 때에는 다섯 가지 오법(五法)이 있으니, 

짓는 작자(作者)와 모태의 태세(胎歲)와 경계(境界), 전생이 시작되는 발전생(發轉生)과 흘러감의 유행(流行)인 것이다.

 

迷惑發起果 報流果 爲二 相應根分中一一三二分

미혹과(迷惑果)와 발기과(發起果)와 보과(報果)와 진류과(津流果)의 둘은
상응하는 근(根) 중에서 하나ㆍ하나ㆍ셋ㆍ둘이며, 

 

熱惱貧乏果 轉出津流果相應他分中 二一一一法 此有十二種等力緣自生 無衆生無命 無動

열뇌과(熱惱果)ㆍ빈핍과(貧乏果)와 전출과(轉出果)ㆍ진류과(津流果)는 남은 부분의 둘ㆍ하나ㆍ하나ㆍ하나의 법과 상응하며, 

이 열두 가지는 똑같은 힘의 반연으로써 스스로 생겨나는 자생(自生)인 것이니,
중생도 없는 무중생이고, 수명도 없는 무명(無命)이고, 움직여 짓는 동작자(動作者)도 없음을 지혜로 알아야 하며
,

 

以慧知無我無我所 無我無我因 四種無智空餘分亦如是

무아(無我)이고, 나의 것도 없는 무아소(無我所)이며,
무아(無我)이라서, 나라는 원인도 없는 무아인(無我因)이라는 것을 지혜로서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네 가지는 무지공(無智空)이니, 그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斷常二邊離 此卽是中道若覺已成就 覺體是諸佛 覺已於衆中仙聖說無我 曾於城喩經 導師說此義

단멸(斷滅)과 상주(常住)의 두 극단인 이변(二邊)을 여읜다면,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니
만약 이를 깨달아 성취한다면, 그 깨달음의 주체인 각체(覺體)가 바로 모든 부처이라.
선성(仙聖, 부처님)은 다 깨달은신 뒤에 대중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셨으니,
일찍이 '성유경(城喩經)'에서 큰 스승이신 도사(導師)께서 이러한 뜻을 설하셨다.

 

迦栴延經說 正見及空見 破邏具膩經 [張宿名] 也亦說殊勝空 緣生若正知

'가전연경(迦栴延經)'에서는 정견(正見)과 공견(空見)을 설하시고,
파라구이경(破邏具膩經)' [장수(張宿)의 이름이다]에서도수승한 수승공(殊勝空)에 대해 설하셨다.

 

彼知空相應緣生若不知 亦不知彼空 於空若起慢。則不厭受衆 若有彼無見 則迷緣生義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에 대하여 바로 안다면, 이러한 앎이 공(空)과 상응하는 것며,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공(空)도 알지 못하며, 

만약 공에 대하여 아만(慢)을 일으키면, 온(蘊, 오취온 五取蘊)을 싫어하지 않게 되며,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이는 곧 연생의 의미를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오취온(五取蘊)= 신체의 색온(色蘊)과 정신 현상의 느낌의 수온(受蘊), 통각의 상온(想蘊), 성향들의 행온(行蘊), 지각의 식온(識蘊)

 

緣生不迷故 離慢彼知空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 業作緣續生 亦非不緣此空緣當有此 業報受用具 

연생에 미혹되지 않는다면, 아만의 만(慢)을 없이하여서 공(空)을 알게 되며,

또한 온(蘊, 오취온 五取蘊)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 까닭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합(業果合)에 미혹되 않는 것이다.

업이 반연을 지어서 계속 생겨나나니,

또한 공(空)에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며, 
공을 반연하여 마땅히 업보의 수용(受用)이 있는 것이니, 업보의 수용(受用)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十二分差別 前已說緣生 彼煩惱業苦 三中如法攝 三中生於二 二中生於七 七中復生 三有輪如是轉

열두 가지의 십이지(十二支) 차별을 앞에서 이미 연생(緣生)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번뇌와 업(業)과 고(苦)의 셋 가운데에서 법대로 포섭되나니,

세 가지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일곱이 생기고,

일곱에서 다시 셋이 생기니, 이와 같이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因果諸生世 無別有衆生 唯是於空法 還自生空法。

인과(因果)로 인하여 생긴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오직 공한 공법(空法)에서 다시 돌아와서 저절로 공한 공법(空法)이 생겨나는 것이다.

 

藉緣生煩惱藉緣亦生業 藉緣亦生報 無一不有緣 藉 깔개 자, 도울 적, 

연(緣)에 자리하여 (의지하여) 번뇌가 생기고, (緣)에 자리하여 업도 생기며
(緣)에 자리하여 과보 또한 생기는 것이니, 어느 것 하나도 연(緣) 없이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이니,

誦燈印鏡音 日光種子酢 衆續 不超到智應觀彼二。

외울 송(誦)ㆍ등불 등(燈)ㆍ도장 인(印)ㆍ거울 경(鏡)ㆍ소리 음(音)과

햇빛의 일광(日光)ㆍ씨앗의 종자(種子)ㆍ식초 추(酢)와 오온(五蘊)은 이어지는 것으로,

뛰어넘어 이르는 것이 아니니,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원인(因)과 결과(果)라는 두 가지의 조건인 연(緣)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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