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緣生三十論本竟。緣生三十論,我當隨順次第解釋。

연생삼십론(緣生三十論)의 본송(本頌)을 마치고, 이제 연생삼십론에 대하여 차례로 해석하겠다.

 

 ‘從一生於三 從三轉生六 六二二更六從六亦生六'

'하나의 일(一)에서 셋의 삼(三)이 생기고, 셋의 삼(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이 생기며,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가 생기고, 둘의 이(二)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 에서 

 

從一生於三者,一謂無智。此無智者,說名無明於苦集滅道中,不覺知故,名爲無智 由無智故,則有福非福不動,說名三行及身行口行心行等,從其轉生。

‘하나의 일(一)에서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이란 ‘하나의 일(一)’이란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를 말하며,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는 무명(無明)이니, 이는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에 대하여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라 하는 것이며,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이기 때문에 유복(有福)ㆍ비복(非福)ㆍ부동(不動)의 삼행(三行)이 있게 되며,

또한 그것이 전전하여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 입으로 짓는 구행(口行), 마음으로 짓는 심행(心行) 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從三轉生六者,從彼三行,生六識身。所謂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셋의 삼(三)이 전전(展轉)하여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는 것은 이 삼행(三行)에서 육식신(六識身)이 생긴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인 것이며, 

 

六二者,彼六識身,轉生二種。所謂名色 

‘여섯의 육(六)에서 둘의 이(二)가 생긴다’는 것은 이 육식신(六識身)이 전전하여 두 가지를 생기게 한다는 것으로서, 소위 명(名)과 색(色)의 명색(名色)인 것이다.

 

二更六者,名色二種轉,生六入。所謂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

‘둘의 이(二)에서 다시 여섯의 육(六)이 생긴다’는 것은 명(名)과 색(色)의 두 가지가 전전하여 육입(六入)이 생기는 것을 말하나니,

이를테면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를 말하는 것이며,

 

從六亦生六者,從彼六入轉生六觸。所謂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

여섯에서 또 여섯이 생긴다’는 것은 이 육입이 전전하여 육촉(六觸, 육촉신)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안촉(眼觸)ㆍ이촉(耳觸)ㆍ비촉(鼻觸)ㆍ설촉(舌觸)ㆍ신촉(身觸)ㆍ의촉(意觸)을 말하는 것이며,

 

從六有於三 此三復有三 三復生於四 四復生於三。

"여섯의 육(六)에서 셋의 삼(三)이 있고, 이 셋의 삼(三)에서 다시 셋의 삼(三)이 있으며, 
셋의 삼(三)에서 넷의 사(四)가 생기고, 넷의 사(四)에서 또 셋의 삼(三)이 생긴다"에서

 

從六有於三者,從彼六觸,轉生三受,所謂樂受苦受不苦不樂受,

여섯의 육(六)에서 셋의 삼(三)이 있다’는 것은 그 육촉(六觸, 육촉신)이 전전하여 삼수(三受)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인 것이며, 

 

此三復有三者,還從彼等三受,轉生三種渴愛。所謂欲渴愛、有渴愛、無有渴愛。

‘이 셋의 삼(三)에서 다시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은 다시 이러한 세 가지의 삼수(三受)가 전전하여 세 가지의 갈애인 삼갈애(三渴愛)가 생기는 것으로, 욕갈애(欲渴愛)ㆍ유갈애(有渴愛)ㆍ무유갈애(無有渴愛)를 말하며, 

 

三復生於四者,從彼三種渴愛,轉生四取。所謂欲取、見取、戒苦行取、我語取。

‘셋의 삼(三)에서 넷의 사(四)가 생긴다’는 것은 이 세 가지의 삼갈애(三渴愛)가 전전하여 사취(四取)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고행취(戒苦行取)ㆍ아어취(我語取)인 것이다.

 

四復生於三者,從彼四取,轉生三有。所謂欲有、色有無色有。

넷의 사(四)에서 또 셋의 삼(三)이 생긴다’는 것은 사취(四取)에서 전전하여 세 가지의 삼유(三有)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 이를테면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이며, 

 

‘從三生於一 彼一復生七 於中所有苦牟尼說皆攝。’

"셋의 삼(三)에서 하나의 일(一)이 생기고,
저 하나의 일(一)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이 생기나니,
그 가운데에 모든 고(苦)가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설하여 다 거두셨다." 에서

 

從三生於一者,還以彼等,三有作緣,生當來一種生。

‘셋의 삼(三)에서 하나의 일(一)이 생긴다’는 것은 이러한 삼유(三有)를 반연하여서 앞으로 하나의 태어남의 생(生)이 있게 되는 것을 말하며, 

 

彼一復生七者,還從彼一,當有老死憂、悲苦、惱困等七種。

‘저 하나의 일(一)인 생(生)에서 다시 일곱의 칠(七)이 생긴다’는 것은 다시 이 한 가지에서 늙음(老)ㆍ죽음(死)ㆍ근심(憂)ㆍ슬픔(悲)ㆍ괴로움(苦)ㆍ고뇌(惱)ㆍ곤궁(困)의 일곱 가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於中所有苦,牟尼說皆攝者,於中無明爲始,困爲終。無量種苦,世尊略說皆此所攝。

‘그 가운데에 모든 괴로움이 있다고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여 거두셨다’는 것은 이 과정은 무명으로 시작되어서 고생의 곤(困)을 끝으로 한다는 것이니,

세존께서는 셀 수 없는 종류의 괴로움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十二種差別 善淨說爲空 緣生分力故 應知十二法’ 

‘열두 가지의 차별이 훌륭하고 청정한 공(空)으로'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 때문이니, 마땅히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十二種差別,善淨說爲空者,此無智等,各別不雜。有十二分。又彼皆自性空,應當正見, 如此所說,唯是空法,自生空法緣生分力故,

열두 가지의 차별은 훌륭하고 청정한 것으로 공(空)이라고 말한다’란

이러한 무지(無智) 등은 서로 달라서 섞이지 않는 것이라서 열두 가지의 차별이 있으며, 또 그것들 모두는 자성공(自性空)이라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말한 바와 같이 오직 이 공한 공법(空法)이 스스로의 자성(自生)이 공한 자성공법(自生空法)을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應知十二法者,若以次第,生分力故,彼十二法,如是應知

‘열두 가지 법을 알아야 한다’란 것은 차례로 연생분(緣生分, 연생지)의 힘에 의하기 때문이니, 이 열두 가지 법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

 

彼中迷惑相者,是無明彼行句處積集當有相者是行。

저 미혹의 모습인 미혹상(迷惑相)은 무명(無明)이며,

저 행의 구처인 행구처(行句處)가 쌓여서 존재하는 모습이 행(行)이다.

 

*구처(句處)란 이치(理致)`의미(意味) 등의 뜻으로 쓰인 것임.

 

彼識句處,次受生分轉出相者是識。

저 식의 구처인 식구처(識句處)는 그 다음에 생명을 받아서 분리 전변으로 모습을 출현하는 것으로, 식(識)이며,

 

彼名色句處,名身、色身和合相者,是名色。

명색의 구처인 명색구처(名色句處)에서,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이 화합하는 것을 명색이라 하며,

 

彼六入句處相安置相者。是六入。彼觸句處。眼色識,共聚相者是觸。

육입의 구처인 육입구처(六入句處)는 상이 상을 안전하에 두는 상안치(相安置)하는 것을 육입이라 하며,

촉의 구처인 촉구처(觸句處)는 안(眼)ㆍ색(色)ㆍ식(識)이 다 함께 모이는 공취상(共聚相)을 촉(觸)이라 하며,

 

彼受句處,愛、不愛受用相者是受。彼渴愛句處無厭足相者,是渴愛。

수의 구처인 수구처(受句處)는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상(受用相)을 수(受)라 하며,

갈애의 구처인 갈애구처(渴愛句處)는 만족할 줄 모르는 무염족상(無厭足相)을 갈애(渴愛)라 하며,

 

彼取句處,執持攝取相者是取。彼有句處,名身、色身相者是有。

취의 구처인 취구처(取句處)는 잡아 지녀서 섭취하는 집지섭취(執持攝取)하는 것을 취(取)라 하며,

유의 구처인 유구처(有句處)는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의 상(相)을 유(有)라 하며,

 

彼生句處。五衆出生相者是生。彼老句處成熟相者是老。彼死句處。命根斷者是死

태어남의 구처인 생구처(生句處)는 오온이 생겨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며,

늙음의 구처인 노구처(老句處)는 무르익어서 성숙하는 것을 늙음의 노(老)라 하며,

죽음의 구처인 사구처(死句處)는 목숨의 명근(命根)이 끊어진 것을 죽음의 사(死)라 하는 것이다.

 

彼憂句處,高擧相者是憂, 彼悲句處哭聲者是悲

근심의 구처인 우수처(憂句處)는 마음이 높게 들뜬 상을 근심의 우(憂)라 하며,

슬픔의 구처인 비구처(悲句處)는 우는 소리의 곡성(哭聲)을 슬픔의 비(悲)라 하며,

 

彼苦句處,身燒熱相者是苦彼惱句處,心逼惱相者是惱。彼困句處,極疲乏相者是困,

괴로움의 구처인 고구처(苦句處)는 몸이 뜨겁게 타는 모습을 괴로움의 고(苦)라 하며,

고뇌의 구처인 뇌구처(惱句處)는 마음을 졸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고뇌의 뇌(惱)라 하며,

곤궁의 구처인 곤구처(困句處)는 매우 피로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곤궁이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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