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론(緣生論)
성자 울능가(鬱楞迦) 지음
대수 남인도 삼장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緣生論 聖者鬱楞迦造 大隋南印度 三藏達磨笈多譯

 

如城喩經中,導師已說此義、又迦栴延經說 正見及空見 破邏具膩經張宿名也亦說殊勝空,

此等三經及以餘處,如是之相,世尊已說彼亦是此,

부처님께서 이미 '성유경(城喩經)'에서 이러한 뜻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또한 '가전연경(迦栴延經)'에서는 정견(正見) 공견(空見) 설하시고,
'
파라구이경(破邏具膩經)' [장수(張宿) 이름이다]에서도 수승한 수승공(殊勝空) 대하여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지 ()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 또한 이와 같으니


緣生若正知 彼知空相應 緣生若不知 亦不知彼空

본송의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 대하여 바로 안다면이러한 앎이 () 상응하며,

만약 반연하여 생기는 연생(緣生)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에서


於前所說緣生,若有正知,彼知無異,彼復何知 謂知於空。

앞에서 연생을 말한 것과 같이만약 연생을 바르게 안다면 차별이 없음을 아는 것으로,

무엇을 아는 것인가공에 대해 아는 것이며,


緣生若不知,亦不知彼空者。於此緣生,若其不知。亦於彼空,不能解入。

만약 연생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그것의 공함도 알지 못한다 것은

만약 연생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공한 것에 대해서도 능히 깨달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應當知之、於空若起慢 則不厭受衆若有彼無見則迷緣生義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만약 공에 대하여 () 일으키면오수중(五受衆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지 않게 되며,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이는  연생의 의미를 미혹한 것이다.


於空若起慢。則不厭受衆者,若起空慢,則於五受衆中,不生厭離。

만약 공에 대하여 자만을 일으키면 오수중(五受衆, 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지 않게 된다 것은

만약 () 대하여 자만심을 일으키면 오수중(五受衆, 오취온 五取蘊) 싫어하여서 여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若有彼無見,則迷緣生義者,若復由於無見,迷此緣生義故,

만약 그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이는  연생의 의미을 미혹한 것이다,

만약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이러한 연생의 의미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則於四種見中隨取何見?一者斷見,二者常見,三者自在化語,四者唯依宿世所作。

 가지의 견해 중에서 어떠한 견해를 따라서 취하게 되는가?

첫째는 소멸하여 없어져 버린다는 견해의 단견(斷見)이며,

 번째는 항상한다는 견해의 상견(常見)이며,

 번째는 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변한다는 견해의 자재화어(自在化語)이며,

 번째는 오직 숙세에 지은 업에 따른다는 견해이다.

 

緣生不迷故 離慢彼知空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

본송의 연생을 미혹하지 않기 때문에, 자만을 여의고 그것이 공함을 알게 되며,

또한 오수중(五受衆) 싫어하기 때문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함(業果合) 미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에서

 

緣生不迷故,離慢彼知空者,於前所說。各各緣生中,若無迷心,及於攝取我我所中。若得離慢,彼則如法能入於空。

‘연생을 미혹하지 않기 때문에 자만을 여의고 그것이 공함을 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처럼 각각의 연생을 미혹하는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 나의 것인 아소(我所) 취하는 것에서 자만을 여읜다면, 능히 여법(如法)대로 공에 들어갈 있다는 것이며,

 

及厭受衆故,不迷業果合者,五受衆中,攝取我、我所故 則遍世閒,輪轉不息於彼受衆,起厭離故。於此業果相續,則無顚倒,亦不迷惑。

‘또한 오수중(五受衆) 싫어하기 때문에 업과 과보의 화합인 업과함(業果合) 대하여 미혹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오수중(五受衆) 대하여 나와 나의 것을 취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서의 ‘윤회’가 멈추지 않게 되나,

오수중을 싫어하여 여의고자하는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그러한 업과의 상속에 대하여 전도되지도  않고 미혹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又問此義云何‘業作緣續生 亦非不緣 此空緣當有此業報受用具。

다시 묻겠습니다.

업이 반연을 지어 계속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러한 연이 공하므로 반드시 이러한 업보의 수용(受用) 있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業作緣續生。亦非不緣此者煩惱業染,如前所說,彼以如是淨、不淨業,推遣衆生,傍及上下相續而生。若非此業,則不作緣。若不然者,則未作竟而來。及已作竟而失。

‘업이 반연을 지어 계속 생기니, 이것을 반연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란 번뇌와 업의 오염인 ()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으로, 이러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으로써 중생을 밀어부쳐서 옆과 위ㆍ아래로 상속(相續)하여서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러한 () 없다면 연을 짓지 않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업을 짓지 않았는데도 오게 되고,

이미 지은 것도 잃게 되는 것이다.

 

謂業未作,竟其果卽來。謂業已作竟,其果便失。

‘온다는 ()’라는 것은, 업을 짓지 않았는데도 과보가 오는 것을 말하고,

‘잃는다는 ()’이란, 업을 이미 지었는데도 과보를 문득 잃는 것을 말하며,

 

空緣當有此,業報受用具者,若由此等淨不淨業,有報受用則自性是空。本無有我。作緣發生。彼自性空,亦應當知,彼義今更略說。

‘연이 공한 것이므로 반드시 이러한 업과 과보의 수용이 있게 된다’란 ‘

이러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업으로 인한 과보의 수용이 있다면, 자성(自性) 공한 것이니,  본래 내가 있어서 연을 짓고 과보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 것이므로, 자성공(自性空)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지금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十二分差別 前已說緣生 彼煩惱業苦三中如法攝。’無明爲初老死爲邊是十二分緣生差別如前所說。彼中三,是煩惱。二是業。七是苦。皆已攝入。

본송의 "열두 가지의 십이지(十二支) 차별을 앞에서 이미 연생(緣生)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번뇌와 () () 가운데에서 여법(如法)대로 포섭되는 것이다."에서

무명을 처음으로 하고 노사를 끝으로 하는 열두 가지 연생의 차별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가운데 가지는 번뇌에, 가지는 업에, 일곱 가지는 () 포함되며,

 

‘三中生於二 二中生於七 七中復生三有輪如是轉

본송의 ‘ 가지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일곱이 생기고,

일곱에서 다시 셋이 생기니, 이와 같이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에서

 

無明渴愛取三種所生,行有二種。彼二所生,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七分。彼七分中,如前所說,還生三種。彼三復二。其二更七。是故二種次第不斷。此之有輪,如是普轉,

무명ㆍ갈애ㆍ취의 가지에서 행ㆍ유의 가지가 생기며,

행과 유의 가지에서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가 생기며,

이러한 일곱 가지에서 앞에서 말한 무명ㆍ갈애ㆍ취, 가지가 다시 생기는 것이며,

가지에 행과 유의 가지가 생기고,

가지에서 다시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가 생기는 것이므로

행과 , 가지는 차례로 끊임없이 바퀴와 같이 돌고 도는 것이다.

 

‘因果諸生世 無別有衆生 唯是於空法還自生空法。’

본송의 원인과 결과의 인과(因果) 인하여 존재하는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오직 공한 공법(空法)에서 다시 돌아와서 저절로 공한 공법(空法) 생겨나는 것이다.”에서

 

因果諸生世,無別有衆生者,無明、行、渴愛、取有五種名因。識、名色、六入、觸、受、生、老死七種名果。此等所有,普遍世閒。若我若衆生,若壽若生者,若丈夫若人,若作者,是等爲首。次第分別,其唯虛誑應當知之.

‘원인과 결과로 존재하는 모든 세간에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란

무명ㆍ행ㆍ갈애ㆍ취ㆍ유의 다섯 가지를 원인이라 하고,

식ㆍ명색ㆍ육입ㆍ촉ㆍ수ㆍ생ㆍ노사의 일곱 가지를 결과라고 하나니,

이들이 존재하는 모든 세간, ()라거나, 혹은 중생이나, 혹은 목숨의 (), 혹은 태어나는  생자(生者)라거나, 혹은 장부(丈夫), 혹은 사람이나, 혹은 행위를 짓는 주체의 작자(作者) 같은 등을 첫머리로 삼아서 차례로 분별하면, 모두 헛된 속임의 허광(虛誑) 것일 뿐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彼云何生?唯是於空法,還自生空法。謂自性空中,假名煩惱業果。唯有別空假名,煩惱業果法生。此是其義。

그러한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오직 공한 공법(空法) 다시 공한 공법(空法)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에서,

말하자면 자성이 공한 자성공(自性空) 가운데에서 오직 거짓의  이름인 가명(假名)뿐인 것이 번뇌ㆍ업ㆍ과이니, 단지 따로 공한 가명이 있어서 번뇌ㆍ업ㆍ과의 법이 생김을 말한다.’ 것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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