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1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1. 총표강요분(總標綱要分) 1

 

ㅡ이하의 여덟 게송은 삼보에 귀의함을 나타내는 귀경서(歸敬序)이다.

세친(世親)이 삼보에 귀의 예배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 석론(釋論)을 짓는 인연을 밝힌 중에서

앞의 4 게송은 부처님, 불보(佛寶)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다.

 

“諸破所知障瞖暗, 盡其所有如所有, 諸法眞俗理影中, 妄執競興於異見.

소지장(所知障, 법집)의 어둠을 모두 깨뜨리니,

 있는 바의 진소유성(盡所有性, 속제)을 다함이며, 있는  그대로의 여소유성(如所有性, 진제)이라.

제법의 진속이체(眞俗理體)의 그림자 중에서 망령되이 집착하여 다투어 다른 견해들을 일으키는구나. 

ㅡ부처님에 세상에 출현하신 연유를 밝힌 것이다.

 

소지장(所知障)은 지장(智障)이라고도 하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객관의 진상(眞相)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이다. 모든 번뇌에는 열반을 장애하는 측면과 지혜 즉 보리의 발현을를 장애하는 2 가지의 측면이 있는데, 소지장은 완전한 깨달음의 증득을 장애하는 번뇌이다. 

여기서 소지장만을 들고 번뇌장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견해들을 논파하기 위해 이 논서를 저술하기 때문이다.
진소유성(盡所有性), 속제(俗諦)인 현상계의 사상(事相, 차별상)을 말한다.
여소유성(如所有性), 즉 진제(眞締)의 이체(理體)를 가리킨다.

사상(事相)은 현상계의 차별상 또는 현상계의 차별적 존재들을 말한다. 속제(俗諦) · 진소유성(盡所有性: 다함이 있는 성질) · 진소유(盡所有: 다함이 있는 것)라고도 한다

이체(理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진리, 거짓이나 상상이 아닌 실재적인 존재의 본체. 


斯由永離諸分別, 無垢淸淨智光明, 獲得最勝三菩提, 惑障幷習斷常住,

이에 모든 분별을 영원히 떠난, 번뇌의 때가 없는 무구(無垢)의 청정한 지혜 광명으로써

최승(最勝)의 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고, 미혹의 장애와 습기를 끊고 상주하시네.

ㅡ부처님께서 미혹을 끊고 불과를 증득함을 서술한 것이다.


能無功用於十方, 隨諸有情意所樂, 開示殊勝極廣大, 三種解脫等方便.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무공용(無功用)이시나, 능히 시방세계에서

모든 유정들의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를 따라,

뛰어나고 지극히 광대한 삼해탈문(三解脫門) 등의 방편문을 열어 보이시네.

ㅡ두 게송은 붓다의 대지(大智)ㆍ대자(大慈)  가지 덕을 서술한 것이다.

 

공용(功用)은 신체ㆍ입ㆍ뜻으로 짓는 동작ㆍ행위를 말한다. 보살은 공관(空觀)을 닦음에 있어서 7지(地)까지는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는 유공용지(有功用地)이고, 제8지부터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관이 이루어지는 무공용지(無功用地)이다. 부처님께서는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이루셨기 때문에,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중생교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해탈문(三解脫門), 해탈에 들어가는 되는 세 가지 선정문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사람과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조하는 것이고,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차별상을 떠나는 것이고,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由無分別有大悲, 生死涅槃俱不住, 由攝妙慧巧方便, 究竟至極自他利.

분별이 없는 대자비심으로써, 생사와 열반에 모두 머물지 않으시며, 

승묘한 지혜와 훌륭한 방편을 거두어들임으로써

구경(究竟)의 지극함으로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시네.


如是世尊等所覺, 等所開示微妙法, 若能於此善修行, 必獲寂然甘露迹.

이와 같이 세존께서 평등히 깨달으신 바와 평등히 열어 보이신 미묘한 법을

능히  수행한다면, 반드시 고요한 적연감로(寂然甘露)의 자취를 획득하리라.

번째로 법보(法寶) 귀의하여 공경히 예배한다.


誹謗決定沒無底, 甚久無能大苦海, 學無學僧居道果, 普勝一切所餘僧.

비방하는 이는 바닥이 없는 무저(無底)의 견딜  없는 깊은 고해(苦海)에 결정코 빠지리니,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의 과위에 머무는 이와 널리 모든 뛰어난 수행자(僧)는

ㅡ두 게송은 승보(僧寶) 덕을 찬탄한 것이다.


善逝無垢功德河, 眞實於中而沐浴, 爲世無上良福田, 雖復投於微少善,

 가신 분이신, 선서(善逝, 부처님)의 번뇌 없는 공덕의 강에서 진실로 목욕한다면

세상의 위없는 훌륭한 복전이 되리니, 비록 다시 작은선(少善)을  안에 넣을지라도


而便廣大如地空, 慧者由斯得解脫, 故我至誠身語思, 頻修無倒歸命禮.

문득 광대한 대지나 허공과 같으며, 지혜로운 이는 그로 인해 해탈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저는 지성을 다해 몸(身)과 말(語)과 생각(思)으로

엎드려 전도됨이 없는 귀명례(歸命禮)를 닦습니다.

 

 ‘귀명(歸命)’은 둘도 없는 명(命)을 들어서 위없는 존귀함을 받들고, 신심이 지극함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며, 귀명례(歸命禮)는 귀명정례(歸命頂禮)의 줄임말이다.


軌範諸師今減少, 眞法正理多渾濁, 皆由聰睿邪慢人, 依自尋思失教證.

오늘날, 청정한 계율을 지닌 스승들은 줄어들고, 진실한 법과 바른 이치는 많이 혼탁하여 졌으며, 

모두가 총명하나 삿된 아만을 가진 사람들이니, 

자신의 사량에 의지하고 경전의 증명인 교증(敎證)을 잃은 까닭이구나.

ㅡ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쇠퇴해짐을 한탄하고, 당시 사람들의 폐단을 통탄하면서,

 '섭대승론석'을 저술하는 취지를 밝힌 것이다.

 

我師於此非前後, 逢事聖者大慈尊, 依止無動出世閒, 放大法光三摩地,

나의 스승(무착無着 논사)은 이에 전후 불세출(不世出)의 대덕이시니

ㅡ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음의 사승(師承) 서술한 것으로, 먼저 스승인 무착(無着) 덕을 찬탄하였다.

 

성자인 미륵보살을 받들어 섬기시고, 부동지(不動地)에 의지하여 세간을 벗어나

 법광(法光)의 삼마지(三摩地)를 놓으신다네.

ㅡ무착 논사가 '섭대승론'을 짓게 경위를 밝힌 것으로,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 의하면 무착 논사가 초지(初地) 오르고 법광정(法光定) 증득하여 신통력을 얻고서 미륵보살을 섬겼으며, 선정 중에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로부터 유가유식의 가르침을 듣고서 널리 세간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마지(三摩地, samādhi), 흔히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정(定)의 일곱 가지 명칭의 하나로서 등지(等持)이다.


闡揚妙法流淸譽, 如日舒光遍十方, 文光無垢最甚深, 諸了義經所隨順.

승묘한 법을 드날리고 맑은 명예가 퍼져서, 그 빛이 태양과 같이 시방에 두루하니, 

광명과 같은 문장이 청정하고 매우 심오하여서 모든 요의경(了義經)에 수순하네.

요의경(了義經), 심원한 불법의 이치를 완전하게 설법한 경전


廣大句義皆微妙, 悉以綺飾自莊嚴, 能令聰敏者融心, 無諂無憍生愛敬,

문장의 광대한 의미는 미묘해서, 모두 뛰어나게 스스로 장엄하며, 

능히 총명한 자로 하여금 마음을 융화케 하여서 아첨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네.


極難通法慧無滯, 不住利養稱譽中, 於樂常無染著心, 故名決定稱自德.

지극히 통달하기 어려운 법에도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세간의 명예와 이익에 머물지 않으시며, 

즐거움에 대해서도 항상 집착하는 마음 없으시니, 

그러므로 무착(無着)이라는 존함이 결정적으로 그 자신의 덕에 부합한다네.


諸賢聖者常親近, 一切世閒無不知, 無著名稱普皆聞, 功德顯然同所讚.

모든 현성(賢聖)이 항상 가까이하고, 일체의 세간에서 모르는 이가 없으니

무착(無着)이란 존함이 널리 알려지고, 그 공덕이 뚜렷해서 모두가 찬탄하네.


無盡辯者等所雨, 甘露文義微妙法, 多從彼聞自力微, 少受猶如乞雨鳥.

다함이 없는 변재자께서 평등히 내리신, 감로의 문장의 의미와 미묘한 법을

따라 많이 들어도 스스로의 능력이 미약하여서, 적게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비를 청하는 새와 같구나.

논주(論主) 무착보살의 지혜로운 변재를 찬탄하였으며,

이하 게송은 무착에게 가르침을 받아서 석론(釋論) 저술함을 말한다.


從廣決擇集少分, 以言略釋攝大乘, 願此所作遍饒益, 怖於極大立海者.”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섭결택분(攝決擇分)의 광대한 결택으로부터 일부를 모아서

'섭대승론'을 간략히 해석하나니, 

원하건대,  저술한 바가 지극히  바다와 같은 글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

ㅡ'유가사지론' 100권과 같은 광대한 논서를 독파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간결한 약석(略釋) 저술함을 밝힌 것이다.


▶論曰:阿毘達磨大乘經中,薄伽梵前,已能善入大乘菩薩,爲顯大乘體大故說.

謂依大乘,諸佛世尊,有十相殊勝殊勝語.

▷논문에서; '아비달마대승경(阿毘達磨大乘經)' 가운데에서, 능히 대승에 잘 들어간 보살은 박가범(薄伽梵, 부처님) 앞에서  대승 자체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대승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에게  가지 십상(十相)의 수승함과 수승한 말씀이 있다”고 하였다.

ㅡ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관하여 말한, 제일 무등성교장(第一 無等聖敎章)

 

박가범(薄伽梵, Bhagavat), 바가바(婆伽婆)ㆍ바가범(婆伽梵)이라고도 하며, 세존ㆍ중우(衆祐)로 번역된다.

박가범에는 유덕(有德)ㆍ자재ㆍ치성(熾盛)ㆍ단엄(端嚴)ㆍ명칭ㆍ길상ㆍ존귀 등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의역(意譯)하지 않는 것으로, 5종 불번(不飜)의 하나이다.
의역하여 유덕(有德) · 능파(能破) · 세존(世尊) · 존귀(尊貴) · 중우(衆祐)라고도 하며, 

또한, 자재(自在) · 치성(熾盛) · 단엄(端嚴) · 명칭(名稱) · 길상(名稱) · 존귀(尊貴)의 6 가지의 육의(六義)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正義) · 이욕(離欲) · 해탈(解脫) 등의 뜻도 있다.

5종불번(五種不飜), 박가범(薄伽梵, Bhagavat), 반야(般若, 프라즈냐) 다라니, 진언 등, 현장법사가 5 가지의 이유로 번역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그 이유는;

첫째는 은근하고 깊은 비밀이 있는, 비밀고(秘密故)이며,

둘째는 많은 의미가 있는, 다함의고(多含意故)이며, 

셋째는 비교할 수 없는, 차방무소(此方無故)이며,

넷째는 오래전부터 그대로 따라 지켜온 순고고(順古故)이며,

다섯째는 존중스러운 존중고(尊重故) 불번(不飜)한 것이다.


▶釋曰:依止何義?從何所因,而作是說?廣博所知深大法性,若離諸佛菩薩威力,誰於此中,能造釋論?復由何義,於此論初說如是事由?若離擧『阿毘達磨大乘經』言,則不了知論是聖教,爲此義故.又爲顯經名,如言『十地經』,故說如是阿毘達磨大乘經言.復有餘義,爲顯彼經是聖教故,初說如是『阿毘達磨大乘經』言.

▷해석한다; 어떠한 뜻에 의지하는 것이며? 어떠한 원인으로부터 이 말을 짓는 것인가?

넓고도 넓은 것으로서 알아야 하는 소지(所知)할 바의 심오하고 광대한 법성(法性)에서, 만약 불보살의 위력을 떠나서 어느 누가 능히 이에 대한 석론을 지을 수 있겠는가?

또한 무슨 의미로, 서두에서 이 논서에 대하여 이와 같은 까닭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아비달마대승경'이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곧 이 논서가 성스러운 가르침임을 알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까닭이며, 

또한 경전의 명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십지경(十地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러므로, 이와 같이 '아비달마대승경'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의미가 있으니, 그 경전이 성스러운 가르침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서두에 이와 같이 '아비달마대승경'이라 말하는 것이다.

 

바수반두(वसुबन्धु) 또는 세친(世親)은 316 - 396년 경의 인도의 불교 사상가이다.

간다라 지방 푸루샤푸라성의 브라만 가문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맏형은 그와 같이 사상가로 유명한 아상가(무착, 無着)이며, 처음에 출가하였을 때에는 유부(有部)에 속하였으며, 카슈미르와 간다라에서 유부를 비롯한 여러 부파 불교의 학설을 수업하고 이들 학설의 요강서(要綱書)인 '구사론(俱舍論)'을 지었다.
그러나, 후일 형인 아상가(무착)의 감화로 대승으로 전향하여 아상가 및 그의 스승 마이트레야의 저서에 주석을 붙여 유가유식설(瑜伽唯識說)의 완성에 힘썼고,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저술하였다.

더욱이 그 입장에 서서 반대설을 깨뜨리고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또한 유식설 입문서로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을 지었다.

'유식삼십송'에 대해서는 그의 제자들의 손으로 여러 주석서가 나왔고, 후일 현장(玄奬)이 호법(護法)의 주석을 중심으로 10대논사(十大論師)의 여러 주석을 합쳐서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은 중국 불교의 법상종(法相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ㅡ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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