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六喩品第 七十七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7. 육유품(六喩品) 풀이함 3

 

是菩薩行般若波羅蜜,亦不得般若波羅蜜;若行般若波羅蜜時不得般若波羅蜜,是時見一切法皆入般若波羅蜜中,亦不得是法。何以故?是諸法與般若波羅蜜無二無別。何以故?諸法入如、法性、實際故無分別。”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얻지 않느니라. 

만약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반야바라밀을 얻지 않을 때에는 일체법이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나, 또한  법을 얻지도 않나니,

왜냐 하면, 제법과 반야바라밀은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고 다르니 않은 무별(無別)이기 때문이며, 

법은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에 들어가기에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諸法無相、無分別,云何說是善是不善、是有漏是無漏、是世閒是出世閒、是有爲是無爲?”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무상(無相)이 분별도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라면, 어떻게 ‘이것은 착한 선(善)이다, 이것은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다, 이것은 유루(有漏)이다, 이것은 무루(無漏)이다, 이것은 세간(世間)이다, 이것은 출세간(出世間)이다, 이것은 유위(有爲)이다, 이것은 무위(無爲)이다’라고 말씀하시는지요?”


“須菩提!於汝意云何?諸法實相中,有法可說是善、是不善,乃至是有爲、是無爲,是須陁洹果乃至是阿羅漢、是辟支佛、是菩薩、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世尊!不可說也!”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법의 실상(實相)에 어떠한 법이 있어서 ‘이것은 착한 선(善)이다, 이것은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다, 나아가 이것은 유위이다, 이것은 무위이다, 이것은 수다원의 과위이다, 나아가 이것은 아라한이다, 이것은 벽지불이다. 이것은 보살이다,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라고 말할  있는 것인가?”

“세존이시여, 말할  없습니다.”


“須菩提!以是因緣故,當知一切法無相、無分別、無生、無定、不可示。

須菩提!我本行菩薩道時,亦無有法可得性,若色、若受想行識乃至若有爲、若無爲,須陁洹果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이러한 인연으로 일체법은 무상(無相)이고 분별도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며, 무생(無生)이고, 일정하지 않은 무정(無定)이라 보일  없는 불가시(不可示)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할 때에도 색(色)ㆍ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에서부터 유위ㆍ무위까지와 수다원의 과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에서 얻을  있는 어떠한 법성(法性)도 없었느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從初發意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應善學諸法性;善學諸法性故,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行是道,能具足六波羅蜜,成就衆生、淨佛國土;住是法中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三乘法度脫衆生,亦不著三乘。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以無相法應學般若波羅蜜。”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의 제법의 법성(法性)  배워야 하나니,

법의 법성(法性)  배우면, 그로 인하여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라 하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 행하면서 6바라밀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삼승의 법으로써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지만, 또한 3승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의 법으로써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須菩提問佛:“若諸法無相無分別,云何差別說六波羅蜜?”

佛還答:“菩薩住是如夢五衆中,能具足六波羅蜜。”須菩提以空問,佛還以空答,此問答云何得別異?

▷논. 묻나니,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만약 제법이 무상(無相)이고 분별도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라면, 어떻게 차별을 두어서 6바라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꿈과 같은 5중(衆, 오온)에 머무르면서 6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고 하셨다.

수보리 존자는 공(空)으로써 여쭌 것이 부처님께서도 도리어 공으로써 대답하셨는데, 

 문답에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答曰:須菩提問:“若諸法空,今眼見菩薩行六波羅蜜作佛!”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제법이 공하다면, 지금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이 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佛答:“凡夫遠實智慧,取相,見菩薩行六波羅蜜作佛,著是空法故難。

菩薩雖住五衆,住五衆如幻、如夢空法中,亦以空心行布施,是故雖行諸法,具足六波羅蜜,不妨於空。

譬如雲霧,遠視則見,近之則無所見。凡夫亦如是,遠實相故,見諸佛。

菩薩近實相故,見皆空,是故不妨;不妨故,能於檀波羅蜜一念中具足行諸善法。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범부는 진실한 실지혜(實智慧)를 멀리 하면서 상(相) 취하므로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공한법(空法)에 집착하기 때문에 힐난하신 것이다.

보살은 비록 5중(衆, 오온)에 머무를라도 마치 꿈과 같은 공법(空法)법에 머무르면서 또한 공한 마음의 공심(空心)으로 보시를 행하기 때문에 비록법을 행하고 6바라밀을 두루 갖추었을지라도 공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구름과 안개를 멀리서 보면 볼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범부도 이와 같아서 실상(實相)을 멀리 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을 보는 것이지만, 

보살은 실상을 가까이 하므로 모두를 공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방해되지 않으며, 

방해되지 않기 때문에 단(檀, 보시)바라밀의  생각의 일념사이에 모든 착한법을 두루 갖추어 행할  있는 것이다.


是人常修無漏淸淨波羅蜜故,轉身還報得無漏波羅蜜。報得名更不修行,自然而得;

譬如報得眼根,自然能見色。得是報得無漏波羅蜜已,能變一身作無量阿僧祇身,於十方佛所具足聞諸佛甚深法,度脫十方衆生,漸漸淨佛世界,隨願作佛。

 사람은 항상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의 깨끗한 바라밀을 닦기 때문에 몸을 바꿀 때에도 도리어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 바라밀의 과보를 얻는 보득(報得)하게 되나니,

과보로 얻는다는 보득(報得)은 다시 수행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과보로 얻는 보득(報得)의 눈(眼)은 저절로 빛깔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 

 과보로 얻는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 바라밀을 얻은 뒤에는 일신(一身) 변화하여 무량한 아승기의 몸이 되어 시방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은 심심법을 듣는 구족하고는, 

시방의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면서 점차로 부처님의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원을 따라 부처님이 되는 작불(作佛)하는 것이다.

 

問曰:若諸法空無相,云何分別?云何得知行檀波羅蜜等,各各具足餘波羅蜜?

묻나니, 만약법이 공하여서 무상(無相)이라 어떻게 분별하며? 

어떻게 단바라밀 등을 행하여 각각  밖의 바라밀을 두루 갖춘 것을 아는 것입니까?


答曰:行者雖不自分別,而諸佛、菩薩說其行檀、行尸,具足諸行。如聲聞人入見諦,無漏、無相、無分別法中,餘聖人亦數其所入法:

知諸法實相,所謂無相相,是名正見;正見得力已,名爲正行;是時不惱衆生,不作諸惡,是名正語、正業、正命。

답하나니, 수행하는 행자 비록 스스로가 분별하지 않을지라도,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단(檀, 보시)을 행하고 시라(尸羅, 지계)를 행하면서 모든 행을 두루 갖춘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니,

마치 성문인이 견제(見諦)로써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이고 무상(無相)이며,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의 법에 들어가면,  밖에 다른 성인이 그가 들어간 법에 등급을 매겨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법의 실상,  무상(無相)의 상(相) 아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라 하며, 

 바른 정견(正見)의 힘을 얻은 후에는 바른 행의 정행(正行)이라 하나니,

이 때에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말을 하는 정어(正語)요, 바르게 삶을 유지하는 정업(正業), 바르게 살아가는 정명(正命)이라 하는 것이다.


是時雖無所說、亦無所造,而名爲正語、正業。所以者何?是名深妙正語、正業,所謂畢竟不惱衆生故。

是中發心有所造作,是名精進;繫念緣中,是名正念;攝心一處,是名正定。見身、受、心、法實相,是名“四念處”。乃至七覺意,亦如是。

이 때에는 비록 말하는 바가 없고 또한 지음 없을지라도 그것을 정어(正語)요, 정업(正業)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이을 이름하여 깊고 묘한 정묘정어(深妙正語) 정묘정업(深妙正業)이라 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결국에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운데에서 마음을 내어 짓는 일이 있는 것을 이름하여 정진(精進)이라 하고, 

생각을 대상 가운데에 매어두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기억의 정념(正念)이라 하며, 

마음을  곳으로 거두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선정의 정정(正定)이라 하고, 

몸(身)ㆍ느낌(受)ㆍ마음(心)ㆍ법(法)의 실상을 보는 것을념처(四念處)라 하며, 나아가 7각의(覺意, 칠각) 또한 이와 같다.

 

7각분(覺分) · 7각의(覺意);

① 염각지(念覺支) : 알아차리기라는 깨달음의 요소.
② 택법각지(擇法覺支) : 안팎의 현상들을 선별하는 깨달음의 요소.
③ 정진각지(精進覺支) : 정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④ 희각지(喜覺支) : 기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⑤ 경안각지(輕安覺支) : 편안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⑥ 정각지(定覺支) : 집중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⑦ 사각지(捨覺支) : 평온이라는 깨달음의 요소. - 다움


於四念處中,亦如八直聖道中,諸聖人爲數。菩薩亦如是,行是無相檀波羅蜜,能具足尸波羅蜜等諸善法。如檀波羅蜜,尸波羅蜜等攝諸善法亦如是。

사념처 중에서도 또한 8직성도(直聖道, 8성도 八聖道, āryāṣṭāńgikamārga) 안의 모든 성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무상(無相)의 단(보시)바라밀을 행하면서 능히 시라(지계)바라밀 등의 모든 착한법을 두루 갖추게 되나니, 마치 단바라밀에서와 같이 시라바라밀 등의 여러 선법을우르는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問曰:上品中以一波羅蜜具諸波羅蜜,此無相攝一切法,有何差別?

묻나니, 앞의 상품(上品) 가운데에서 “하나의 바라밀로써 모든 바라밀을 갖춘다”는 것과 

여기에서 “무상(無相)인 가운데에서 일체법을 포섭하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上以一念中能具諸波羅蜜,此以諸法雖空無相而能具諸波羅蜜爲異。

답하나니, 앞에서는 “한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모든 바라밀을 갖춘다”는 것이고, 

여기서에는 “비록 제법은 공하여 무상(無相)일지라 능히 모든 바라밀을 갖춘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78. 사섭품(四攝品)을 풀이함 ①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若諸法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無有實事、無所有性、自相空者,云何分別是善法、是不善法,是世閒法、是出世閒法,是有漏法、是無漏法,是有爲法、是無爲法,

是法能得須陁洹果,能得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能得辟支佛道,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아서 진실함이 없으며,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며, 자상공(自相空)이라면, 

어떻게 ‘이것은 착한 선법이다, 이것은 착하지 못한 불선법이다, 이것은 세간법이다,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이것은 유루법이다, 이것은 무루법이다. 이것은 유위법이다, 이것은 무위법이다’라고 분별하며, 

어떻게  법으로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를 능히 얻으며, 벽지불의 도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있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凡夫愚人得夢、得見夢者,乃至得化、得見化者,起身口意善業、不善業、無記業,起福業、若起罪業、作不動業。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꿈을 얻고 꿈을 보는 이를 얻으며, 나아가 변화한 것을 얻고 변화한 것을 보는 이를 얻으면서, 몸과 입과 뜻의 착한 신구의(身口意)의 선업(善業)과 착하지 못한 불선업(不善業)과 선도 불선도 아닌 무기업(無記業)을 일으키며,

복업(福業, 십선업)과 죄업(罪業, 십악업)을 일으키며, 색계나 무색계에서 태어날 인(因)이 되는 부동업(不動業)을 짓느니라.


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住二空中 畢竟空、無始空,爲衆生說法,作是言:‘諸衆生!是色空無所有,受、想、行、識空無所有;十二入、十八界空無所有。色是夢,受、想、行、識是夢;十二入、十八界是夢。色是響、是影、是焰、是幻、是化,受、想、行、識亦如是。十二入、十八界是夢、是響、是影、是焰、是幻、是化。

是中無陰、入、界,無夢亦無見夢者,無響亦無聞響者,無影亦無見影者,無焰亦無見焰者,無幻亦無見幻者,無化亦無見化者。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가지 공(空),  필경공(畢竟空)과 무시공(無始空)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기를, 

‘여러 중생들이여,  물질(色)은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 공(空)한 무소유(無所有)이며, 12입(入)과 18계(界)도 공(空)한 무소유(無所有)이니,

물질(色)은 바로 꿈이요, 수상행식(受想行識) 꿈이며, 12입과 18계도 꿈이요,  

물질(色)은 바로 메아리요 그림자요 아지랑이요 환이요 변화한 것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그와 같으며,

12입과 18계도 바로 꿈이요 메아리요 그림자요 아지랑이요 환이요 변화한 것이니, 

 가운데에는 음(陰, 오음)도 입(入, 12입)도 계(界, 18계)도 없으며, 꿈도 없고 또한 꿈을 보는 이도 없으며, 메아리도 없고 메아리를 듣는 이도 없으며, 그림자도 없고 그림자를 보는 이도 없으며, 아지랑이도 없고 아지랑이를 보는 이도 없으며, 환도 없고 환을 보는 이도 없으며, 변화한 것도 없고 변화한 것을 보는 이도 없느니라.


一切法無根本實性無所有,汝等於無陰中見有陰、無入見有入、無界見有界。是一切法皆從因緣和合生,以顚倒心起,屬業果報,汝等何以故於諸法空無根本中而取根本相?’

일체법은 근본과 진실한 성품의 실성(實性)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라.

그대들은 음(陰, 오온)이 없는 가운데서 음이 있다고 보고, 입(入, 12입)이 없는 가운데서 입이 있다고 보며, 계(界, 18계)가 없는 가운데서 계가 있다고 보지만,

이 일체법 모두는 인연(因緣)으로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고, 뒤바뀐 전도심(顚倒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서 업의 과보에 속하거늘,

그대들은 어찌하여 제법은 공하여 근본이 없는 가운데에서 근본이 되는 상(相)을 취하는 것인가?’라고 말하여 주느니라.

大智度論  釋六喩品第 七十七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7. 육유품(六喩品) 풀이함 2

 

須菩提!菩薩摩訶薩成就是忍,勝一切聲聞、辟支佛。住如是報得無生忍中,行菩薩道,能具足道種智;

具足道種智故,常不離三十七助道法及空、無相、無作三昧,常不離五神通;不離五神通故,能成就衆生、淨佛國土;成就衆生、淨佛國土已,當得一切種智。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具足無相羼提波羅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법인(法忍)을 성취한지라 일체의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나니, 

이와 같이 과보로 얻은 무생법인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보살도를 행하며, 도종지(道種智)를 두루 갖추느니라.

도종지를 두루 갖춘 까닭에 항상 37조도법(助道法)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삼매를 여의지 않으며,

항상 다섯 가지신통을 여의지 않으며, 다섯 가지신통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뒤에는 일체종지를 얻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의 찬제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無相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行身精進、心精進。以身精進故起神通;起神通故,到十方國土,供養諸佛、饒益衆生;以身精進力教化衆生,令住三乘。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의음(오온)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머물면서 몸의 정진인 신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행하느니라. 

신정진(身精進) 때문에 신통을 일으키고, 신통을 일으낀 까닭에 시방의 국토로 나아가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신정진(身精進)의 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승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能具足無相精進波羅蜜。

是菩薩以心精進、聖無漏精進,入八聖道分中,能具足毘梨耶波羅蜜。

是毘梨耶波羅蜜皆攝一切善法,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八解脫、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무상(無相)의 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며, 

 보살은 마음의 심정진(心精進)으로 거룩하고 번뇌가 없는 성무루정진(聖無漏精進)으로써성도분 가운데에 들어가 비리(정진)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비리야바라밀은 일체의 착한법, 이른바념처와정근과여의족과근과력과각분과성도분과선과무량심과무색정과해탈과차제정과 부처님의력과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을 포섭하느니라.


是菩薩行是法,應具足一切種智;具足一切種智已,斷一切煩惱習,具足滿三十二相,身放無等無量光明;放光明已,三轉十二行法輪;法輪轉故,三千大千世界六種震動,光明遍照三千大千世界;三千大千世界中衆生聞說法聲,皆以三乘法而得度脫。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住精進波羅蜜中,能大饒益及能具足一切種智。

 보살은 이러한법을 행하여서 마땅히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어야 하고, 

일체종지를 두루 갖춘 뒤에는 일체 번뇌의 습기(習氣)를 끊고 32상(相)을 원만하게 갖추며, 

몸에서는 비할 수 없는 무량한 광명을 내며, 광명을  뒤에는 3전(轉) 12행(行)의 법륜을 굴리며, 

법륜을 굴린 까닭에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육종진동(六種震動)하며, 

광명으로 3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니, 3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은 그 설법하는 음성을 듣고 모두승의 법으로써 제도되어 벗어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정진바라밀에 머무르면서 크게 이롭게 하며, 그리고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느니라.

 

●삼전(三轉), 삼전법륜(三轉法輪),석존께서 3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에 의해 4제(諦)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으로, 시전(示轉)·권전(勸轉)·증전(證轉)이며, 석존께서 세 번 4제(諦)의 교(敎)를 말씀한 것.
(1) 시전(示轉,  시상전示相轉). 이것은 고(苦), 이것은 집(集), 이것은 멸(滅), 이것은 도(道)라고 그 상을 보인 것.
(2) 권전(勸轉, 권수전勸修轉). 고(苦)를 알라, 집(集)을 끊어라, 멸(滅)을 증득하라, 도(道)를 닦으라고 권하신 것.
(3) 증전(證轉,  ․ 인증전引證轉). 석존께서 스스로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은 것을 보여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증득케 하신 것.
●십이행(十二行) 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으로 세번 설하여 12 번이 된 것.

●화엄경에서의 육종진동(六種震動)은 세간에 상서가 있을 때에 대지(大地)가 진동하는 모양의 6종이다. ① 동(動)은 흔들려서 불안한 것이고, ② 기(起)는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③ 용(涌)은 솟아오르고 꺼져 내려가고 하여 6방으로 출몰(出沒)하는 것이고, ④ 진(震)은 은은한 소리가 나는 것이고, ⑤ 후(吼)는 꽝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고, ⑥ 각(覺)은 물건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전3은 모양이 변하는 것이며, 후3은 소리가 변하는 것이다. 

또는 우리의 안이비설신의 육감이 감동하여 움직이는 것을 말하기도 함.

●대지도론에서는 '東涌西沒 西涌東沒, 南涌北沒 北涌南沒, 邊涌中沒 中涌邊沒'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잠기고,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잠기고, 남쪽에서 솟아 북쪽으로 잠기고, 북쪽에서 솟아 남쪽으로 잠기고, 가장자리에서 솟아 가운데로 잠기고, 가운데에서 솟아 가장자리로 잠긴다고 하였다.

 

復次,須菩提!菩薩住無相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能具足禪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무상(無相)의 오음(오온)이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고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머무르면서 선(禪)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菩薩住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能具足禪波羅蜜?”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오음(오온)이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고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두루 갖출  있는 것인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入初禪乃至入第四禪,入慈、悲、喜、捨無量心,入無邊虛空處乃至入非有想非無想處,入空三昧、無相、無作三昧,入如電光三昧,入如金剛三昧,入聖正三昧;除諸佛三昧,諸餘三昧,若共聲聞、辟支佛三昧,皆證皆入;亦不受三昧味,亦不受三昧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초선(初禪) 내지는 제4선(禪)에 들어가고,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의 무량심(無量心)에 들어가며,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 들어가고, 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에 들어가며, 여전광삼매(如電光三昧)에 들어가고,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 들어가고, 성정삼매(聖正三昧)에 들어가며, 모든 부처님의 삼매를 제외한  밖의 모든 삼매와 성문이나 벽지불과 공통한 삼매에 들어가서 그 모두를 증득하면서도, 또한 삼매미(三昧味)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삼매의 과위인 삼매과(三昧果)도 받아들이지 않나니, 


何以故?是菩薩知是三昧無相、無所有性,當云何於無相法受無相法味、無所有法受無所有法味?

若不受味,則不隨禪定力生若色界、若無色界。何以故?是菩薩不見是二界,亦不見是禪,亦不見入禪者,亦不見用法入禪者。若不得是法,卽能具足無相禪波羅蜜。菩薩用是禪波羅蜜,能過聲聞、辟支佛地。”

왜냐 하면,  보살은  삼매가 무상(無相)이고, 있는 바가 없는 성품의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 

어떻게 무상(無相)의 법에서 무상(無相)의 법미(法味)를 받아들이겠으며!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법에서 무소유의 법미(法味)를 받아들이겠는가?

만약 그 맛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정의 힘에 따라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 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보살은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의  세계를 보지도 않고 또한  선정을 보지도 않으며, 또한 선정에  이도 보지 않고, 또한 법을 이용하여 선정에 드는 것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러한 법을 얻지 않는다면  무상(無相)의 선바라밀을 두루 갖추게 되며, 

보살은  선바라밀로써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뛰어넘게 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具足無相禪波羅蜜故能過聲聞、辟支佛地?”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무상(無相)의 선바라밀을 두루 갖춘 까닭에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뛰어넘을  있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善學內空,善學外空,乃至善學無法有法空;於是諸空,無法可住處 若須陁洹果,若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乃至一切種智;是諸空亦空。菩薩摩訶薩行如是諸空,能入菩薩位中。”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내공(內空)을  배우고 외공(外空)을  배우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의 십팔공을  배우며,  모든 공에서는 법이 머무를 만한 곳이 없다는 것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 내지는 일체종지의  모든  또한 공하다는 것을  배우나니,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모든 공(空)을 행하면 보살위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位?云何非位?”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위(位, 지위)이며, 어떤 것이 지위가 아닌 비위(非位)인지요?”


“須菩提!一切有所得是非菩薩位,一切無所得是菩薩位。”

“수보리야, 일체의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은 보살위가 아니고, 

일체의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은  보살위이니라.”


“世尊!何等是有所得?何等是無所得?”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며, 

어떠한 것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인지요?”


“須菩提!色是有所得,受、想、行、識是有所得,眼、耳、鼻、舌、身、意,乃至一切種智有所得,是非菩薩位。

須菩提!菩薩位者,是諸法不可示、不可說。何等法不可示、不可說?若色乃至一切種智。

何以故?須菩提!色性是不可示、不可說,乃至一切種智性是不可示、不可說。須菩提!如是名菩薩位。

“수보리야, 물질(色), 이것은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 유소득(有所得)이며,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의 육정(六情) 내지는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가 유소득이라면, 이것은 보살위가 아니니라.

수보리야, 보살위라 함은, 법은 보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떠한 법이 보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인가? 물질(色) 내지는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이니라. 

왜냐 하면 수보리야, 물질의 성품인 색성(色性)은  보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으며, 

나아가 일체종지성(一切種智性)에 이르기까지도 보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위라 하느니라.


是菩薩入位中,一切禪定、三昧具足,尚不隨禪定、三昧力生,何況住婬、怒、癡,於中起罪業生!

菩薩但住如幻法中饒益衆生,亦不得衆生及如幻法。若無所得,是時,能成就衆生、淨佛國土。

 보살은  지위에 들어가서 일체의 선정과 삼매가 두루 갖추어짐에도 오히려 선정과 삼매의 힘을 따라 나지 않거늘, 하물며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머무르면서  안에서 죄업을 일으키며 나는 것이겠는가?

보살은 다만 환과도 같은 법에 머물러 중생만을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얻지 않고, 또한 환과도 같은 법도 얻지 않을 뿐이니, 

만약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라면, 이 때에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국토를 깨끗하게 하게 되느니라.


如是,須菩提!是名菩薩具足無相禪波羅蜜,乃至能轉法輪,所謂不可得法輪。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知一切法如夢、如響、如焰、如影、如幻、如化。”

수보리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이 무상(無相)의 선바라밀을 두루 갖추며, 나아가 법륜을 굴린다고 하나니, 이른바 얻을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법륜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법은 마치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것을 아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云何知一切法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일체법은 마치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 것을 아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夢、不見見夢者,不見響、不見聞響者,不見影、不見見影者,不見焰、不見見焰者,不見幻、不見見幻者,不見化、不見見化者。何以故?是夢、響、影、焰、幻、化皆是凡夫愚人顚倒法故。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꿈을 보지 않고 꿈을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메아리를 듣지 않고 메아리를 듣는 이도 보지 않으며, 그림자를 보지 않고 그림자를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아지랑이를 보지 않고 아지랑이를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환을 보지 않고 환을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변화한 것을 보지 않고 변화한 것을 보는 이도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꿈과 메아리와 그림자와 아지랑이와 환과 변화한  모두는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의 뒤바뀐 전도(顚倒)된 법이기 때문이니라.


阿羅漢不見夢、不見見夢者,乃至不見化、不見見化者;辟支佛、菩薩摩訶薩、諸佛亦不見夢、不見見夢者,乃至不見化、亦不見見化者。
何以故?一切法無所有性,不生、不定。

若法無所有性、不生、不定,菩薩摩訶薩當云何行般若波羅蜜,是中取生相、定相?是處不然!

何以故?若諸法少多有性、有生、有定,不名修般若波羅蜜。

아라한은 꿈을 보지 않고 꿈을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나아가 변화한 것을 보지 않고 변화한 것을 보는 이도 보지 않으며, 

벽지불과 보살마하살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꿈을 보지 않고 꿈을 보는 이를 보지 않으며, 나아가 변화한 것을 보지 않고 변화한 것을 보는 이도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은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서 불생(不生)이 일정하지 않은 부정(不定)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이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 불생(不生)이고 일정하지 않은 부정(不定)이라면,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가운데서 생기는 생상(生相) 정해진 정상(定相)을 취하겠는가? 이러한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제법이 적거나 많거나 간에 성품이 있는 유성(有性)이고, 생김이 있는 유생(有生)이고, 정해진 유정(有定)이라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없기 때문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不著色乃至不著識,不著欲、色、無色界,不著諸禪、解脫、三昧,不著四念處乃至八聖道分,不著空三昧、無相、無作三昧,不著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

不著故,能具足菩薩初地,於初地中亦不生著。何以故?是菩薩不得是地,云何生貪著?乃至十地亦如是。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色)ㆍ느낌(受) 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에 집착하지 않고,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4념처 내지는 8성도분에도 집착하지 않고, 공삼매와 무상ㆍ무작삼매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의 초지(初地)를 두루 갖추되 또한 초지에도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이러한 지(地, 지위)조차도 얻지 않거늘 어떻게 탐착(貪着)을 내겠는가?

이에 10지(地)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大智度論  釋六喩品第 七十七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7. 육유품(六喩品)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無相、不可分別、自相空諸法中具足修六波羅蜜,所謂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

世尊!云何無異法中而分別說異相?云何般若波羅蜜攝檀、尸、羼、精進、禪?云何行異相法,以一相道得果?”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무상(無相)이고, 분별할  없는 불가분별(不可分別)이며, 자상공(自相空)인 제법 가운데에서 6바라밀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닦는지요?

세존이시여, 어떻게 차이가 없는 무이법(無異法) 가운데서 다른 모양의 이상(異相)을 분별하여 말하는지요?

어떻게 반야바라밀이 단ㆍ시라ㆍ찬제ㆍ정진ㆍ선 바라밀을 포섭하며?

어떻게 이상(異相) 법을 행하면서  모양의 일상(一相)의 도(道)로써 과위를 얻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住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住是中行布施、持戒、修忍辱、勤精進、入禪定、修智慧。

知是五陰實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五陰如夢無相,乃至如化無相。

何以故?夢無自性,響、影、焰、幻、化皆無自性。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느낌의 수온(受蘊), 통각의 상온(想蘊), 성향의 행온(行蘊), 지각의 식온(識蘊)의 오음(五陰, 오온)이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幻)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머무르나니,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닦고, 정진에 힘쓰며, 선정에 들고 지혜를 닦느니라.

음(오온)은 실로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하나니, 오음(오온)은 꿈과 같아서 모양이 없고 나아가 변화와 같은 무상(無相)이니라. 

왜냐 하면 꿈은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이 없고 메아리ㆍ그림자ㆍ아지랑이ㆍ환ㆍ변화한 것들 또한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니라.


若法無自性,是法無相;若法無相,是法一相,所謂無相。以是因緣故,
須菩提!當知菩薩布施無相、施者無相、受者無相。能如是知布施,是能具足檀波羅蜜乃至能具足般若波羅蜜,能具足四念處乃至八聖道分,能具足內空乃至無法有法空,能具足空三昧、無相、無作三昧,能具足八背捨、九次第定、五神通、五百陁羅尼門,能具足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

만일 법에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 없다면  법은 무상(無相)일 것이며, 

만약 법이 무상(無相)이라면  법은  모양의 일상(一相)으로써, 이른바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수보리야, 보살의 보시는 무상(無相)이라서 보시하는 시자(施者) 무상(無相)이고, 받는 수자(受者) 무상(無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보시하는 것이라고 안다면 이것은  단(보시)바라밀을 두루 갖추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두루 갖추게 되어서, 사념처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을 두루 갖추고, 내공(內空) 내지는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두루 갖추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를 두루 갖추며,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과 5신통(神通)과 5백의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두루 갖추며,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라.


是菩薩住是報得無漏法中,飛到東方無量國土,供養諸佛衣服、飮食,乃至隨其所須而供養之。亦利益衆生,應以布施攝者,而布施攝之;應以持戒攝者,教令持戒;應以忍辱、精進、禪定、智慧攝者,教令忍辱、精進、禪定、智慧而攝取之;乃至應以種種善法攝者,以種種善法而攝取之。

是菩薩成就是一切善法,受世閒身,不爲世閒生死所污;爲衆生故,於天、人中受尊貴富樂,以是尊貴富樂攝取衆生。

 보살은  과보로 얻은 보득(報得)의 무루법(無漏法) 안에 머물러서 동방에 있는 무량한 국토로 날아가 모든 부처님께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고, 나아가 필요로 하는 것을 좇아 공양하며, 

또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되 마땅히 보시로써 거두어야  이라면 보시로써 거두어 주고, 지계(持戒)로써 거두어야  이라면 교화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며, 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로써 거두어야  이라면 교화하여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써 거두어 주고, 나아가 갖가지의 착한법으로써 거두어야  이라면 갖가지 착한 법으로써 거두어 주느니라.

 보살은  일체의 착한법을 성취하여서 세간의 몸을 받고서도 세간의 나고 죽는 생사로 더럽혀지지 않으며, 중생들을 위하여 천상과 인간 안에서 존귀한 이로서 부귀와 쾌락을 받되,  존귀함과 부유한 쾌락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주느니라.


是菩薩知一切法無相故,知須陁洹果亦不於中住,知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亦不於中住,知辟支佛道亦不於中住。何以故?是菩薩用一切種智知一切法已,應當得一切種智,不與聲聞、辟支佛共。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知一切法無相已,知六波羅蜜無相,乃至知一切佛法無相。”

 보살은 일체법이 무상(無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를 알면서도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를 알면서도 그에 머무르지 않으며, 벽지불의 도를 알면서도 그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일체종지로서 일체법을 알고 나서 마땅히 일체종지를 얻어야 하며, 성문과 벽지불과는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은  무상(無相)이라 것을 알고 나서, 6바라밀이 무상(無相)이라는 것 알며, 나아가 온갖 부처님의법에 이르기까지도  무상(無相)이라 것을 아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能具足無相尸羅波羅蜜。是戒不缺、不破、不雜、不著,聖人所讚無漏戒,入八聖道分;住是戒中持一切戒,所謂名字戒、自然戒、律儀戒、作戒、無作戒、威儀戒、非威儀戒。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오음이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것에 머무르면서 무상(無相)의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이 계율은 이지러지지 않는 불결(不缺)이고, 깨뜨려지지 않는 불파(不破)이고, 뒤섞이지 않는 불잡(不雜)이고,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이며, 성인이 찬탄하는 무루계(無漏戒)이라서 8성도분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 계율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모든 계율인 즉 명자계(名字戒)와 자연계(自然戒)와 율의계(律儀戒)와 작계(作戒)와 무작계(無作戒)와 위의계(威儀戒)와 비위의계(非威儀戒)를 지니느니라.

  
是菩薩成就諸戒,不作是願:‘我以此戒因緣故,生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若小王家、若轉輪聖王家,若四天王天處生,若三十三天、夜摩天、兜率陁天、化樂天、他化自在天。’

不作是願:‘我持戒因緣故,當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

何以故?一切法無相,所謂一相。無相法不能得無相法,有相法不能得有相法;無相法不能得有相法。有相法不能得無相法。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계(戒)를 성취하면서도 ‘나는 이 계(戒)의 인연으로 찰리(刹利)의 큰 족성이나 바라문(婆羅門)의 큰 족성이나 거사(居士)의 큰 집안이나 소국의 왕가(王家)나 전륜성왕의 왕가나 4천왕천처(天王天處)에 태어나고, 또는 33천(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나리라’고 원하지 않느니라.

또한 ‘나는 계(戒)의 인연으로 수다원의 과위나 사다함의 과위나 아나함의 과위나 아라한의 과위나 벽지불의 도를 얻으리라’고 원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일체법은 무상(無相) 즉, 동일한 일상(一相)이니, 무상법(無相法)은 무상법을 수 없고,

유상법(有相法)은 유상법을 얻을 수 없으며,

무상법(無相法)은 유상법(有相法)을 얻을 수 없고,

유상법(有相法)은 무상법(無相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能具足無相尸羅波羅蜜而入菩薩位;入菩薩位已,得無生法忍;行道種智,得報得五神通;住五百陁羅尼門,得四無㝵智。從一佛國至一佛國,供養諸佛,成就衆生、淨佛國土。雖入五道中,生死業報不能染污。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무상(無相)의 시라(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어 보살위에 들며, 보살위에 든 뒤에는 무생법인을 얻고, 도종지(道種智)를 행하여 과보로 얻는 다섯 가지의 오신통을 얻으며,

오백의 다라니문에 머무르면서 사무애지를 얻고, 하나의 일불국(一佛國)으로부터 다른 일불국(一佛國)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나니,

비록 천상을 제외한 지옥 아귀 축생 아귀 인간의 오도(五道) 가운데에 들지라도 생사의 업보(業報)로 그를 더럽히지는 못하느니라.


須菩提!譬如化轉輪聖王,雖坐臥行住,不見來處,不見去處,不見住處、坐處、臥處,而能利益衆生,亦不得衆生;菩薩亦如是。須菩提!譬如須扇多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三乘轉法輪,無有得菩薩記者;化作化佛已,捨身壽命,入無餘涅槃。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변화로 된 화(化) 전륜성왕이 비록 앉고 눕고 가고 선다거 할지라도 오는 곳도 보지 않고 가는 곳도 보지 않으며, 선 곳과 앉은 곳과 누운 곳도 보지 않으며,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얻지 않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수선다(須扇多)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3승(乘)의 법륜을 굴리시는데, 수기(授記)를 얻을 만한 보살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로 화불(化佛)을 만들어 놓으신 뒤에 육신의 수명을 버리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과거 세상에 수선다(須扇多)부처님께서 계셨는데 보살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변화로 화불(化佛)을 만들어 놓으시고 자신은 멸도하셨으니, 그 변화한 부처님인 화불(化佛)은 반겁(半劫) 동안 머무르며 불사(佛事)를 하시고, 보살의 행과 상응하는 이들에게 수기를 주고 나서 멸도하시자, 

일체 세간의 중생들은 부처님께서 진실로 멸도하신 것으로 안 것과 같으니라.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84권 1


須菩提!菩薩亦如是,行般若波羅蜜時,能具足尸羅波羅蜜;具足尸羅波羅蜜已,攝取一切善法。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五陰如夢、如響、如影、如焰、如幻、如化,具足無相羼提波羅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시라바라밀을 두루 갖추며, 시라바라밀을 두루 갖춘 뒤에는 일체의 착한 선법을 포섭하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오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 같고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다는 것에 머무르면서 무상(無相)의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具足無相羼提波羅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무상(無相)의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추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住二忍中,能具足羼提波羅蜜。何等二忍?生忍、法忍。

從初發意乃至坐道場,於其中閒,若一切衆生來罵詈麤惡語,或以瓦石、刀杖加是菩薩,是菩薩欲具足羼提波羅蜜故,乃至不生一念惡。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의 인욕인 이인(二忍)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을 두루 갖추나니,

어떠한 것이 이인(二忍)인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 그것이니라.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도량(道場)에 앉기까지 그 중간에 만약 일체 중생이 와서 꾸짖고 욕설을 퍼부으며, 혹은 기와나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이 보살에게 해를 가하여도, 이 보살은 찬제바라밀을 구족하려는 까닭에 한 생각의 일념악(一念惡)조차도 내지 않느니라.


是菩薩如是思惟:‘罵我者誰?害我者誰?以惡言加我、以瓦石刀杖害我者誰?’何以故?是菩薩於一切法得無相忍故,云何作是念:‘是人罵我、害我’?若菩薩摩訶薩如是行,能具足羼提波羅蜜。以是羼提波羅蜜具足故,得無生法忍。”

이 보살이 사유하기를 ‘‘나에게 욕하는 매자(罵者)는 누구이며? 나를 해치는 해자(害者)는 누구인가?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와와 돌과 칼과 몽둥이로 나를 해치는 해자(害者)는 누구인가?’라고 하나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일체법에서 상이 없는 무상인(無相忍)을 얻은 까닭이니,

어떻게 ‘이 사람이 나를 꾸짖고 나를 해친다’고 생각하겠는가?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찬제(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고,

이 찬제바라밀이 두루 갖추어진 까닭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爲無生法忍?是忍何所斷?何所知?”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하며?

이 법인(法忍)으로 끊는 것은 무엇이며? 아는 것이 무엇인지요?”


佛告須菩提:“得法忍,乃至不生少許不善法,是故名無生法忍。

一切菩薩所斷煩惱盡,是名斷;用智慧知一切法不生,是名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법인을 얻으면 조그마한 착하지 못한 불선법까지도 생기지 않기 때문에 무생법인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끊어야 할 일체의 번뇌가 다하는 것을 곧 끊는 단(斷)이라 하며,

지혜로써 일체법은 생기지 않는 불생(不生)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곧 아는 지(知)라고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諸聲聞辟支佛無生法忍、菩薩無生法忍,有何等異?”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무생법인과 보살의 무생법인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佛告須菩提:“諸須陁洹若智、若斷,是名菩薩忍;斯陁含若智、若斷,是名菩薩忍;阿那含若智、若斷,是名菩薩忍;阿羅漢若智、若斷,是名菩薩忍;辟支佛若智、若斷,是名菩薩忍。是爲異。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수다원의 일체법은 불생이라고 아는 지(智)와 번뇌가 다한 단(斷)을 이름하여 보살인(菩薩忍)이라 하고,

사다함의 일체법은 불생이라고 아는 지(智)와 번뇌가 다한 단(斷)을 이름하여 보살인(菩薩忍)이라 하며,

아나함의 일체법은 불생이라고 아는 지(智)와 번뇌가 다한 단(斷)을 이름하며 보살인(菩薩忍)라 하며,

아라한의 일체법은 불생이라고 아는 지(智)와 번뇌가 다한 단(斷)을 이름하여 보살인(菩薩忍)이라 하며,

벽지불의 일체법은 불생이라고 아는 지(智)와 번뇌가 다한 단(斷)을 이름하여 보살인(菩薩忍)이라 하나니,

이것이 곧 다르느니라.

(즉 성문인은 각 계위에 맞추어 지(智)ㆍ단(斷)이 일어나며 각각 수준이 다르지만, 보살의 법인은 이들 모두를 포섭한다는 뜻이다.)

大智度論 釋一心具萬行 品第七十六 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 풀이함 4

 

若無所有、空,菩薩、衆生、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皆空、無所有,云何起難?

若衆生、菩薩及阿耨多羅三藐三菩提離無所有、空者,可有是難。如先說:“畢竟空於諸法無所障㝵,何妨發心?”佛還以無所有、空破須菩提所問。亦復自說因緣:“須菩提!著心者難得解脫。”

만약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공(空)이라면, 보살이나 중생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모두도 공(空)하여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거늘 어찌 논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만약 중생이나 보살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공(空)을 여읜다면 이러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필경공이라면법에 장애가 없는 것이거늘, 무엇이 발심하는 방해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도리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공(空)으로써 수보리의 질문을 깨뜨렸으며, 친히 다시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마음으로 집착한다면 해탈을 얻기 어려우니라”고 하셨다.


是人從無始生死中來以一切煩惱故深著諸法,聞有亦著,聞空亦著,得失亦著;如是衆生難可勉出。是故菩薩發無上道心,自以相好嚴身,得梵音聲,有大威德。知衆生三世心根本,以種種神通力、因緣、譬喩,爲說無所有法、空解脫門,引導其心。衆生見如是希有事,卽時其心柔軟,信佛受法。是故經說:“著有者難得解脫;有所得者,無道、無果、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런 사람은 시작도   없는 무시(無始)에서부터 나고 죽고 하면서 일체의 번뇌 때문에법에 깊이 집착하는 것이니, 있다고 들어도 집착하고, 공하다고 들어도 집착하며, 얻거나 잃어도 또한 집착 하느니라. 

이와 같은 중생은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보살은 무상도심(無上道心)을 일으켜 스스로 상호(相好)로써 몸을 장엄하고, 범음(梵音)의 소리를 얻어서  위덕이 있으며, 중생의세(三世) 동안의 마음의 근본을 알아서, 갖가지 신통력과 인연과 비유로써 그들을 위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법(法)과 공(空)과 해탈문을 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나니, 

중생들은 이와 같이 희유한 일을 보고는 즉시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부처님을 믿고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기를 “있다는 집착하는 이는 해탈하기 어렵다.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라면, 도(道)도 없고 과(果, 과위)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問:“世尊!若有所得者,無道、無果、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所得者有道、有果不?”

佛答:“無所有卽是道、卽是果、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존자가 세존께 여쭈기를 “만약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라서 도(道)도 없고 과(果, 과위)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다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경우에는 도(道)도 있고 과(果, 과위) 있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 그것이  도(道)요, 그것이 곧 과(果, 과위)이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고 하셨다.


若人不分別是有所得、是無所得,入諸法實相畢竟空中,是亦無所得,卽是道、卽是果、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破壞諸法實相故。法性卽是諸法實相。

만약 사람이 ‘이것은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다, 이것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다’라고 분별하지 않고,법의 실상(實相)인 필경공 가운데에 들어간다면, 

 또한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므로 그것이 곧 도(道)요, 그것이 곧 과(果, 과위)이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으로, 이는법의 실상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니, 법성(法性)이 법의 실상인 것이다.


須菩提意謂:法性,正行、邪行常不可破壞,何以佛言“不壞法性是道、是果?”

佛答:“法性雖不可破壞,衆生邪行故名爲破壞。”

如虛空,雲霧土塵雖不能染,亦名不淨。如人實欲染污虛空,是人爲欲染污法性,無是事故。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법성(法性)은 바른행(正行)이거나 삿된행(邪行)이거나 간에 항상 파괴할  없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성(法性) 파괴하지 않는 그것이 곧 도(道)요, 그것이 곧 과(果, 과위)라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법성(法性)은 비록 파괴할  없을지라도 중생들의 삿된행(邪行) 때문에 파괴한다고 하느니라”고 하셨다.

마치 허공은 구름이나 안개나 먼지가 비록 더럽힐  없을지라도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허공을 더럽히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법성(法性) 더럽히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러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佛說譬喩:“若人欲壞法性,是人爲欲於無所有法中得道、得果、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으니, “만약 사람이 법성(法性) 파괴하고자 한다면,  사람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가운데에서 도를 얻고 과위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白佛:“若無所有卽是道,云何有十地等諸菩薩法?”如經廣說。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만약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 그것이  도(道)라면, 어떻게 10지(地) 등의 모든 보살법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으니, 경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다.


問曰:此事佛已先答,所謂:“若法空,菩薩見何事故發心?”今言:“若法空,云何有初地等?”

佛皆以空答,今須菩提何以更問?

묻나니, 이러한 일은 부처님께서 이미 앞에서 대답하신 것으로, 이른바 ‘만약 법이 공하다면 보살은 어떠한 보았기에 발심합니까?’라거나, 지금 ‘만약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초지(初地) 등이 있는 것입니까?’라는 등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그 모두에 대하여 공으로써 대답하셨거늘 지금 수보리존자는 무엇 때문에 다시 여쭈는 것입니까?


答曰:以衆生著心難解故更問。是衆中,有新發意菩薩,聞是諸法實相空,卽生著心,佛破其著,亦著所破法。須菩提爲是人故更問。

답하나니, 중생들이 마음으로 집착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여쭌 것이다. 

 대중 가운데에는 새로 뜻을  신발의(新發意)의 보살도 있으므로, 그들은 법의 실상이 공하다는 것을 들으면  집착하는 마음을 내며, 부처님께서 그들의 집착을 깨뜨리면 또한 깨뜨리는  법에 집착하므로, 

수보리 존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다시 여쭌 것이다.


佛答須菩提:“以無所得故有初地,乃至般涅槃後舍利得供養。”有所著中,不可說初地及諸功德。亦以無所得因緣故,從布施乃至諸神通無有差別,無有差別故不應難!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대답하시기를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에 초지(初地)가 있고 나아가 완전한 열반에  뒤에는 사리(舍利)가 공양을 받나니, 집착이 있는 가운데에서는 초지나 모든 공덕을 설명할  없으며, 

또한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인연으로는 보시에서 모든 신통에 이르기까지에 차별이 없으며, 

차별이 없기 때문에 힐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須菩提復問:“云何無所得布施乃至諸神通無有差別?”

佛答:“菩薩從初發心已來,似阿耨多羅三藐三菩提寂滅相,布施畢竟空,所謂不得施者、受者、財物而行布施,如是布施中無有分別;乃至不得菩提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是。是名菩薩行無所得般若波羅蜜。行是無所得般若波羅蜜,魔、若魔天不能破壞。”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떻게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에는 보시에서 모든 신통에 이르기까지에 차별이 없는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처음발심에서부터 아뇩다라니삼먁삼보리를 닮은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으로써 필경공에 보시하나니,  

이른바 보시하는 시자(施者)와 받는 수자(受者)와 재물(財物)은 얻을  없는 것임에도 보시를 행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보시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느니라. 

나아가 보리는 얻을  없는 것임에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를 이름 하여 보살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니,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악마나 악마의 하늘이 파괴하지 못하느리라”고 하셨다.

 

一念中行六波羅蜜者。

‘한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6바라밀을 행한다’고 함을 문답하리라!


問曰:須菩提何以故問“一念中行六波羅蜜等諸功德”?

묻나니,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6바라밀 등을 행하는 모든 공덕을 여쭌 것입니까?


答曰:須菩提從佛聞般若波羅蜜甚深無所有相,於諸法中無㝵相;若爾者,則無所不能、無事不作,云何菩薩一念中能攝六波羅蜜乃至八十隨形好?初發心時,以著有無心重故,漸漸次第行;今有無悉捨故,無所不能,是故問。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있는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과 가운데에서의 ‘걸림 없는 무애상(無礙相)’을 듣고는,

만약 그러하다면  능통하지 못할 것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보살이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6바라밀 내지는 80수형호를 포섭할  있는가를 여쭌 것이다.

처음발심할 때에는 ‘있다ㆍ없다’ 고 하며 집착하는 마음이 무거운 까닭에 차례로 점점 행하였지만, 

지금은 ‘있다ㆍ없다’  것을 모두  버렸기 때문에 능통하지 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여쭌 것이다.


佛答:“菩薩不離般若波羅蜜行布施等諸功德,無障㝵故,能一念中行。”若遠離般若波羅蜜,則漸漸次第行。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보시  모든 공덕을 행하면, 장애가 없기 때문에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행할  있지만, 만약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게 되면, 차례대로 차츰차츰 행하여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須菩提問:“云何名不遠離?” 佛答:“菩薩不以二相行布施等。”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떠한 것을 멀리 여의지 않는 불원리(不遠離)라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가지 모양의 이상(二相)으로써 보시 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復問:“云何不以二相?”

佛答:“菩薩行般若波羅蜜時,欲具足檀波羅蜜,於布施一念中攝一切善法。”如先說。

다시 여쭈기를 “어떻게  가지 모양의 이상(二相)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고자 하여 보시하는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모든 착한법을 포섭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앞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何等是一念?所謂菩薩得無生法忍,斷一切煩惱,除諸憶想分別,安住無漏心中,布施一切。

無漏心是無相相。菩薩住是心中,不見誰施、誰受、誰物,離一切相心布施;不見有一法,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尚不見,何況餘法!是名不二相。乃至八十隨形好,亦如是。

어떤 것이 ‘한 생각의 일념(一念)’인가? 이른바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서 일체의 번뇌를 끊고, 

모든 기억과 분별을 없애어서 번뇌 없는 마음의 무루심(無漏心) 속에 편히 머무르면서 일체를 보시하는 동안을 말하는 것이다.

‘번뇌 없는 마음의 무루심(無漏心)’이란,  무상상(無相相) 말하며, 보살은  무상상(無相相)의 마음 머무르면서 ‘그 누가 보시하고  누가 받으며  누구의 물건인가’ 보지도 않고,

일체의 상(相) 여읜 마음으로 보시하면서, 어떠한 하나의 법도 있다고 보지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보지 않는 것이거늘, 하물며  밖의 다른 법이겠는가!

이를 이름하여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라 하며, 나아가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須菩提更以異事問此義:“世尊!諸法無相、無作、無起,云何能具足檀波羅蜜等,乃至八十隨形好?”

佛答:“菩薩無相、無作法中不取相故,無障㝵心布施,須食與食等。”經中已委悉。又先品中亦廣說,是故更不解。

수보리 존자는  다른 것으로써  이치(義)를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법은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이며, 일어남이 없는 무기(無起)이거늘, 어떻게 단바라밀 등에서 80수형호까지를 두루 갖출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의  가운데에서 상(相) 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되는 마음없이 보시하나니,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느니라”고 하셨으니, 경에서 이미 자세히 말씀하셨으며, 또한 앞의 품(品)에서도 자세히 말씀하신 것이므로  이상 해설하지 않겠다.


無漏、無相六波羅蜜有二種:一者、得無生法忍菩薩所行,二者、未得無生法忍菩薩所行。得無生法忍菩薩所行,如此中所說。何以故?住無相、無漏心中,行布施等諸法故。

번뇌도 없는 무루(無漏)이고 모양도 없는 무상(無相)의 6바라밀에는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보살이 행하는 것이다.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행하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무상(無相)이 번뇌도 없는 무루(無漏)의 마음에 머무르면서 보시 등의 제법을 행하기 때문이다.


問曰:生身菩薩貪惜未除故,割截甚痛,是則爲難;得無生法忍菩薩,如化人所作,割截無痛,有何恩分?

묻나니, 생(生)・로(老) · 병(病) ·사(死)를 가진 육신의 생신(生身)보살은 탐내고 아끼는 것이 아직 제거되지 못한 까닭에 몸을 베고 끊으면 심한 고통을 느끼므로 이것은 어려운 일이라 여기지만,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은 마치 변화한 화인(化人)과 같아서 몸을 베고 끊어도 고통이 없거늘 무슨 은분(恩分)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得無生法忍菩薩,行是六波羅蜜爲難!所以者何?得無生法忍寂滅心,應受涅槃樂,而捨此寂滅樂,入衆生中受種種身,或爲賤人、或爲畜生等,是則爲難!生身菩薩,貪愛未除,著佛身故,以身布施;是爲悕望,非淸淨施,是故不如。復次,行無漏、無相六波羅蜜,是時能具足;有漏、有相則不能具足。是故能具足者有大恩分。

답하나니,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은 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어렵다고 여기나니, 왜냐하면, 무생법인의 고요히 사라진 마음의 적멸심(寂滅心)을 얻으면 마땅히 열반락(涅槃樂)을 받아야 하거늘, 이 고요히 사라진 적멸의 즐거움을 버리고 중생들 가운데에 들어가 갖가지의 몸을 받으니, 혹은 하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혹은 축생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을 곧 어렵다고 여기는 것이며, 

생신(生身)보살은 탐애(貪愛)가 아직 제거되지 못하였으며, 부처님의 불신에 집착하기 때문에 몸으로써 보시를 할지라도, 그것은 바라는 바가 있는 것이므로 깨끗한 보시가 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의 행 보다는 못한 것이다.

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이고 무상(無相)의 6바라밀을 행하는 때에는 완전하게 갖출 수 있지만,

번뇌가 있는 유루(有漏)이고  모양이 있는 유상(有相)이라면 완전하게 갖출 수가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완전하게 갖출 수 있으면 큰 은분(恩分)이 있는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八十七 終 대지도론 87권을 마침.

大智度論 釋一心具萬行 品第七十六 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 풀이함 3

 

是菩薩以是心精進故,廣利益衆生,亦不得是衆生,是爲菩薩具足毘梨耶波羅蜜。

具足諸佛法、淨佛國土、成就衆生,不可得故。

 보살은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으로써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나, 또한 중생을 얻지 않느니라. 

 보살은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고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두루 갖추어서 부처님의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나니, 그것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是菩薩身精進、心精進成就故,攝取一切諸善法;是法亦不著故。從一佛國至一佛國,爲利益衆生,所作神通,隨意無㝵;若雨諸華、若諸名香、若作伎樂、若動大地、若放光明、若示七寶莊嚴國土、若現種種身、若放大智光明,令知聖道,令遠離殺生乃至邪見;或以布施利益衆生,或以持戒,或支解身體、或以妻子、或以國土、或以己身給施,隨所方便,利益衆生。

 보살은 몸의 정진인 신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성취한 까닭에 일체의 선법(善法)을 섭취(攝取)하나, 또한 이법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일불국(一佛國)에서부터 다른 일불국(一佛國) 이르면서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신통을 마음대로 사용함에 장애가 없느니라.

모든 꽃을 비처럼 내리기도 하고, 모든 이름 있는 향을 뿌리기도 하며, 풍악을 울리기도 하고, 대지(大地)를 움직이기도 하며, 광명을 놓기도 하고, 7보(寶)로 장엄된 국토를 보이기도 하며, 갖가지 몸을 나타내기도 하며, 

또한  지혜의 광명을 놓아서 성인의 도(道)를 알게 하여 살생 내지 삿된 사견을 여의게 하고, 

혹은 보시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도 하며, 혹은 계율을 지님으로써, 혹은 신체를 갈가리 찢어서, 혹은 아내와 자식으로, 혹은 국토로써, 혹은 스스로 몸을 모두 보시하면서, 곳에 따라 방편을 사용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無相、無作、無得諸法中,用身心精進,能具足毘梨耶波羅蜜。”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의 제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의 정진으로써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住無相、無作、無得法中,能具足禪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의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선(禪)바라밀을 두루 갖출  있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除佛諸禪定,餘一切諸禪、三昧,皆能具足。

是菩薩離諸欲、諸惡不善法,離生喜樂,有覺有觀,入初禪;乃至入第四禪。以是慈、悲、喜、捨心,遍滿一方,乃至十方一切世閒遍滿。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모든 선정을 제외한  밖의 모든 선정과 삼매(三昧)를 모두  두루 갖추었느니라. 

 보살은 모든 탐욕과 모든 악하고 선하지 못한 악불선법(惡不善法)을 여의고, 그 여읨에서 생한 기쁨과 즐거움 있으며, 

거친 생각의 각(覺)이 있고 세밀한 생각의 관(觀)이 있는 초선에 들며, 나아가 제4선에까지 들어가며,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의 마음으로써 일방(一方) 두루 차게 하고, 

나아가 시방의 일체 세간에 두루 차게 하느니라.


是菩薩過一切色相,滅有對相,不念別異相故,入無邊虛空處;乃至入非有想非無想處。

是菩薩於禪波羅蜜中住,逆順入八背捨、九次第定,入空三昧,無相、無作三昧,或時入如電光三昧,或時入聖正三昧,或時入如金剛三昧。

 보살은 일체 물질의 색상(色相)을 초월하여 대함이 있는 유대(有對)를 없애어서 다르다는 별이(別異)의 상(相)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며,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 들어가느니라.

 보살은 선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팔배사(八背捨)와 구차제정(九次第定)에 역(逆)과 순(順)으로  들어가고,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에 들어가며, 때로는 여전광삼매(如電光三昧)에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성정삼매(聖正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느니라.


是菩薩住禪波羅蜜中,修三十七助道法,用道種智入一切禪定,過乾慧地、性地、八人地、見地、薄地、離欲地、已辦地、辟支佛地,入菩薩位;入菩薩位已,具足佛地。是諸地中行,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中道取道果。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37조도법(助道法)을 닦으며, 도종지(道種智)로써 일체 선정에 머무르면서 간혜지(乾慧地)와 성지(性地)와인지(八人地)와 견지(見地)와 박지(薄地)와 이욕지(離欲地)와 이판지(已辦地)와 벽지불지(辟支佛地)를 지나 보살위에 들어가며, 보살위에 들어간 뒤에는 부처님의 불지(佛地)를 두루 갖추며, 

 모든 지위 가운데에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행하면서 중도에 도과(道果)를 취하지 않느니라.


是菩薩住是禪波羅蜜中,從一佛國至一佛國,供養諸佛,從諸佛所植諸善根,淨佛國土。從一佛國,至一佛國,利益衆生。以布施攝取衆生,或以持戒、或以三昧、或以智慧、或以解脫、或以解脫知見攝取衆生;

教衆生令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諸有善法能令衆生得道,皆教令得。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일불국(一佛國)에서부터 다른 일불국(一佛國)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 모든 선근을 심어서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하나의 일불국(一佛國)에서부터 다른 일불국(一佛國) 이르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혹은 보시로서 중생을 섭취하기도 하고, 혹은 지계(持戒)로써 혹은 삼매로써 혹은 지혜로써 혹은 해탈로써 혹은 해탈지견으로써 중생을 섭취하기도 하며, 

중생들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 

중생이 도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착한 선법으로써 모두  교화하여 도를 얻게 하느니라.


是菩薩住此禪波羅蜜中,能生一切陁羅尼門,得四無㝵智、報得神通。

是菩薩終不入母人胞胎,終不受五欲,無生不生;雖生,不爲生法所污。

何以故?是菩薩見一切作法如幻,而利益衆生,亦不得衆生及一切法,教衆生令得無所得處;

是世俗法故,非第一實義。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일체의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내고, 의무애(義無礙)와 법무애(法無礙)와 사무애(辭無礙)와 요설무애(樂說無礙)의 사무애지(四無礙智)를 얻으며, 과보로 신통을 얻느니라. 

그리고  보살은 끝내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가지 않고 끝내 5욕(欲)을 받지 않으며, 나거나 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비록 난다 할지라도 나는법(生法)에 더럽혀지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모든 조작된 작법(作法)이 마치 환(幻)와 같다고 보아 중생을 이롭게 하며, 또한 중생과 일체법을 얻지 않으면서도 중생들을 교화하여 얻을 것이 없는 경지인 무소득처(無所得處)를 얻게 하나,  

이것은세속의 법이기 때문이지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인 제일실의(第一實義)에 의한 것이 아니니라.


住是禪波羅蜜,一切行禪、定、解脫、三昧,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禪波羅蜜。是菩薩行如是道種智時,得一切種智,斷一切煩惱習;斷已,自益其身,亦益他人;自益益他已,爲一切世閒天及人、阿修羅作福田。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能具足無相禪波羅蜜。”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일체의 선정과 해탈의 삼매를 행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선바라밀을 여의지 않나니,  보살은 이와 같이 도종지(道種智)를 행하여 일체종지를 얻고, 일체 번뇌의 습기를 끊으며, 

끊은 뒤에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자익익타(自益益他)하며, 

자익익타(自益益他)한 뒤에는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을 위하여 복전(福田)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무상(無相)의 선(禪)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無相、無作、無得法中,修具足般若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의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닦아 두루 갖추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於諸法不見定實相。是菩薩見色不定、非實相,乃至見識不定、非實相。

不見色生,乃至不見識生;若不見色生乃至不見識生,一切法若有漏、若無漏,不見來處、不見去處、亦不見集處。如是觀時,不得色性乃至識性,亦不得有漏、無漏法性。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제법에 정해진 진실한 모양의 정실상(定實相)을 보지 않나니,  보살은 물질(色)이 일정하지도 않고 진실한 실상(實相) 아니라고 보며, 나아가 인식(識)에 이르기까지도 일정하지도 않고 진실한 실상(實相)이 아니라고 보느니라.

물질(色)이 생(生)기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나아가 인식(識)에 이르기까지도 생(生)기는 것이라고 보지 않나니, 

만약 물질(色)이 생(生)긴다고 보지 않고 나아가 인식(識)까지도 생(生)긴다고 보지 않으면, 일체법으로써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오는 곳의 내처(來處)도 보지 않고, 가는 곳의 거처(去處)도 보지 않으며, 또한 쌓이는 곳의 집처(集處)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물질의 성품인 색성(色性) 내지는 인식의 성품인 식성(識性)도 얻지 않으며, 또한 유루법과 무루법의 성(城, 성품)도 얻지 않느니라.


是菩薩行般若波羅蜜時,信解一切諸法無所有相。如是信解已,行內空乃至無法有法空,於諸法無所著若色,若受想行識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行無所有般若波羅蜜,能具足菩薩道,所謂六波羅蜜,乃至三十七助道法,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三十二相、八十隨形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일체법의 있는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을 믿고 이해하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  뒤에는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를 행하면서법에 대하여 ‘물질(色)이다,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이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라고 집착하지 않느니라. 

 보살은 있는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의 도(道), 이른바 6바라밀 내지는 37조도법과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과 32상ㆍ80수형호를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是菩薩住空淨佛道中,所謂六波羅蜜、三十七助道法、報得神通,以是法饒益衆生;宜以布施攝,教令布施;宜以戒攝,教令持戒;宜以禪定、智慧、解脫、解脫知見攝,教令修禪定、智慧、解脫、解脫知見;

宜以諸道法教者,教令得須陁洹果、得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宜以佛道化者,教令得菩薩道,具足佛道 如是等,隨其所應道地而教化之,各令得所。

 보살은 공(空)에 머물러 부처님의 불도를 깨끗하게 하나니, 이른바 6바라밀과 37조도법과 과보로 얻는 신통 등의 법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되, 

마땅히 보시로써 거두어야  사람이라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고, 계율로써 거두어야  사람이라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계율을 지니게 하며,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으로써 거두어야  사람이라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닦게 하느니라.

마땅히 모든 도법(道法)으로써 가르쳐야  사람이라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부처님의 불도로써 교화해야  사람이라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보살의 도를 얻고 부처님의 불도를 두루 갖추게 하나니, 

이와 같은 등으로 응하는 바에 따라 도(道)와 지(地, 지위)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저마다 각각의 얻고자하는 바를 얻게 하느니라.


是菩薩現種種神通力時,過無量恒河沙國土,度脫衆生,隨其所須,皆化給之,各令滿足。從一國土至一國土,見淨妙國土,以自莊嚴己佛國土。譬如他化自在天中,資生所須,隨意自至;亦如諸淨佛國,離於求欲。

是人以是報得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報得五神通,行菩薩道種智,成就一切功德,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보살이 갖가지의 신통력을 나타낼 때, 무량한 항하 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면서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며, 그들이 구하는 바대로 모두  주어서 저마다 각각 만족하게 하고, 

 국토에서부터 다른  국토에 이르면서 깨끗하고 묘한 국토를 보고 스스로 자신의 불국토를 장엄하나니, 

비유하자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천상에서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필요한 물건들이 저절로 이르는 것과 같고, 또한 모든 깨끗한 부처님의 불국토에서는 구하거나 바라는 것을 여읜 것과 같으니라.

 사람은 이러한 과보로 얻은 단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과 

과보로 얻은 다섯 가지의 오신통으로써 보살의 도종지(道種智)를 행하며,

일체 공덕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是菩薩爾時不受色法乃至識,不受一切法若善若不善、若世閒若出世閒、若有漏若無漏、若有爲若無爲,如是一切法皆不受。是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國土一切所有資生之物皆無有主。何以故?是菩薩行一切法不受,以不可得故。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無相法中,能具足般若波羅蜜。”

이 때에 이 보살은 물질의 색법(色法)에서부터 분별의 식법(識法)에 이르기까지도 받지 않으며,

일체법으로서 착한 것과 착하지 못한 것과 세간과 출세간과 유루와 무루와 유위와 무위를 받지 않나니, 

이와 같은 일체법 모두를 받지 않느니라.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국토에 있는 일체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모두에 주인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법을 행하되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인 까닭에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의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論. 問曰:問者,答者俱言“無所有”,云何分別知是問、是答?

▷논. 묻나니, 묻는 문자(問者)나 대답하는 답자(答者)가 다 같이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를을 말씀하고 계시거늘, 어떻게 분별하여 ‘이것은 질문이다, 이것은 대답이다’라고 아는 것입니까?

答曰:所言法雖一而心異 問者以著心問,答者以無著心答。

須菩提意謂:無所有中不應發心。須菩提爲聽者著心故作是問。諸法空中,不見菩薩發心者,不見衆生可利益者,不見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於無所有法中作難者:“若一切法無所有性,菩薩見何利故發心?”

須菩提於菩薩、衆生、阿耨多羅三藐三菩提中不疑,但問無所有法。佛答:“正以無所有、空故能發心。”

답하나니, 말씀하시는 법이 비록 하나일지라도 마음은 다른 것이니, 묻는 이는 집착하는 마음으로 물었고, 대답하는 이는 집착함이 없는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수보리 존자는 ‘있는 바 없는 무소유 가운데에서는 발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수보리 존자는 듣는 이들이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한 것으로, 즉 제법이 공한 가운데에서는 보살로서 발심하는 이를 보지도 않고, 중생으로서 이롭게 하는 이도 보지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보지 않으니,

이러한 까닭에 있는 바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에 대하여 따지기를 ‘만약 일체법이 있는 바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보살은 어떠한 이익을 보아서 발심하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보살과 중생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하여서는 의심하지 않으나, 다만 있는 바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에 대하여 여쭌 것일 뿐이니,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공(空)이기 때문에 발심할 수 있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大智度論 釋一心具萬行 品第七十六 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 풀이함 2

 

是菩薩能如是具足檀波羅蜜而不受世閒果報。譬如他化自在諸天,隨意所須,卽皆得之;菩薩亦如是,心生所願,隨意卽得。是菩薩摩訶薩以是布施果報故,能供養諸佛,亦能滿足一切衆生、天及人、阿修羅。是菩薩以檀波羅蜜攝取衆生,用方便力,以三乘法度脫衆生。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於無相、無得、無作諸法中具足檀波羅蜜。”用是戒,無所取:

 보살은 이와 같이 단(보시)바라밀을 두루 갖추면서도 세간의 과보를 받지 않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욕계 6천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이 뜻하는 바대로 구하는 것을 즉시에 모두 얻듯이,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마음으로 원하면 즉시 뜻대로 얻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보시의 과보로 인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있고, 또한 일체 중생인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을 만족시키나니,  보살은 단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고 방편력을 사용하여승의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의 제 가운데에서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rmita-vaśa-vartino devāḥ)은 음역하여 바라니밀(波羅尼蜜) · 바라니밀화야월치(波羅尼蜜和耶越致) · 바라유마바사(波羅維摩婆奢) 또는 사사발리(娑舍跋提)라고도 한다. 의역하여 타화락천(他化樂天) · 타화자전천(他化自轉天) 또는 화응성천(化應聲天)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자재천(自在天) · 타화천(他化天) 또는 화타천(化他天)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이라는 뜻에서 제6천(第六天)이라고도 한다. 
6욕천 가운데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다른 유정이 변화시킨 묘욕경[欲境]을 자유자재하게 자신의 즐거움으로 향수하는 하늘이다.-위키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於無相、無得、無作法中具足尸羅波羅蜜?

須菩提!是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持種種戒,所謂聖無漏入八聖道分戒、自然戒、報得戒、受得戒、心生戒,如是等不缺、不破、不雜、不濁、不著,自在戒,智所讚戒。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제법 가운데에서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 갖가지의 계율,  성무루입팔성도분계(聖無漏入八聖道分戒)와 자연계(自然戒)와 보득계(報得戒)와 수득계(受得戒)와 심생계(心生戒)를 지니나니, 

이와 같이 이지러지지 않는 불결(不缺)이고, 깨뜨려지지 않는 불파(不破)이고, 뒤섞이지 않는 불잡(不雜)이고, 혼탁하지 않은 불탁(不濁)이고,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하며, 자유로운 자재계(自在戒)가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지소찬계(智所讚戒)이며,

이러한 계율에 의하면서도 취하는 바가 없느니라.


若色,若受、想、行、識;若三十二相、八十隨形好;若剎利大姓、若婆羅門大姓、居士大家;若四天王天、三十三天、夜摩天、兜率陁天、化樂天、他化自在天、梵衆天、光音天、遍淨天、廣果天、無想天、無煩天、無熱天、妙見天、喜見天、阿迦膩咤天、空處天、識處天、無所有處天、非有想非無想處天;若須陁洹果、若斯陁含果、若阿那含果、若阿羅漢果、若辟支佛道;若轉輪聖王、若天王。但爲一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無相、無得、無二迴向,爲世俗法故,非第一實義。

그리하여 물질(色)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 32상호와 80수형호와 찰리(刹利)의  족성ㆍ바라문(婆羅門)의  족성ㆍ거사(居士)의  집안과

천왕천ㆍ33천(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타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의 6욕천(六欲天)과

범중천ㆍ광음천ㆍ변정천(遍淨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상천(無想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묘견천(妙見天)ㆍ희견천(喜見天)ㆍ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과 공처천(空處天)ㆍ식처천(識處天)ㆍ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常處天)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의 도와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천왕(天王)을 취하지 않고, 

다만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그 모두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고 얻음이 없는 무득(無得)이며, 둘이 아닌 무이(無二)로써 회향할 뿐이니, 

그것은 세속법을 위한 것일 뿐,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인 제일실의(第一實義)가 아니니라.

 

是菩薩具足尸羅波羅蜜,以方便力起四禪,不味著故,得五神通。因四禪得天眼;

是菩薩住二種天眼:修得、報得。得天眼已,見東方現在諸佛,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所見事不失;

南西北方、四維、上下現在諸佛,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所見不失。是菩薩用天耳淨,過於人耳,聞十方諸佛說法,如所聞不失,能自饒益,亦益他人。

 보살은 시라(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고는 방편력으로써선(四禪, 사선정)을 일으키나, 선정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신통을 얻으며, 사선으로 인하여 천안(天眼)을 얻나니, 

 보살은 수행으로 얻는 수득(修得)과 과보로 얻는보득(報得)의  가지 천안에 머무르느니라.

천안을 얻은 뒤에는 동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고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그대로를 잃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간방과 위와 아래에 계신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뵙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그대로를 잃지 않으며,

 보살은 사람의 귀를 초월하는 천이(天耳)의 청정함으로써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잃지 않아서 자기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또한 타인(他人)들도 이롭게 하느니라.


是菩薩以知他心智,知十方諸佛心及知一切衆生心,亦能饒益一切衆生。

是菩薩用宿命智,知過去諸業因緣;是諸業因緣不失故,是衆生在在處處所生悉知。

是菩薩用是漏盡智,令衆生得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在在處處能令衆生入善法中。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於諸法無相、無得、無作,具足尸羅波羅蜜。”

 보살은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타심지(知他心智)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며, 일체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서 일체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모든 과거업의 인연을 알고,  업인연을 잃지 않기 때문에  중생들이 있었던 처소와 태어났던 모두를  알며,

 보살은 누진지(漏盡智)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어디든지 있는 곳마다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가운데에 들게 하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법이 무상(無相), 무득(無得), 무작(無作)인 가운데에서 시라(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諸法無相、無作、無得,菩薩摩訶薩能具足羼提波羅蜜?”

“세존이시여,법이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며, 무득(無得)이거늘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찬제(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출  있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以來乃至坐道場,於其中閒,若一切衆生來,以瓦石、刀杖加是菩薩,菩薩是時不起瞋心,乃至不生一念。

爾時,菩薩應修二種忍:一者、一切衆生惡口罵詈、若加刀杖瓦石,瞋心不起;二者、一切法無生無生法忍。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도량(道場)에 앉기까지의  중간에, 만약 일체 중생들이 와서 기와와 돌과 칼과 몽둥이로  보살에게 해를 가할 때에도 보살은 화를 내지 않으며 나아가  생각의 일념(一念)조차도 내지 않나니, 

그 때에 보살은  가지의 인욕을 닦아야 하는 것으로, 

첫째는 일체 중생들이 욕설을 퍼붓고 꾸짖으면서 칼이나 몽둥이나 기와나 돌로 그에게 해를 가하여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일체법에 생함이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라.


菩薩,若人來惡口罵詈或以瓦石刀杖加之,爾時,菩薩應如是思惟:‘罵我者誰?譏訶者誰?打擲者誰?誰有受者?’

卽時菩薩應思惟諸法實性,所謂畢竟空,無法、無衆生;諸法尚不可得,何況有衆生!如是觀諸法相時,不見罵者、不見割截者。是菩薩如是觀諸法相時,卽得無生法忍。

云何名無生法忍?知諸法相常不生,諸煩惱從本已來亦常不生。

보살이란, 만약 사람이 와서 욕설을 퍼붓고 꾸짖거나 혹은 기와나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그에게 해를 가할 때에도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에게 욕하는 매자(罵者)는 누구이며? 나무라고 꾸짖는 기가자(譏訶者) 누구인가? 

때리고 던지는 타척자(打擲者) 누구이며?  누가 당하는 수자(受者)인가?’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 때에 보살은법의 실상(實相)을 사유하나니, ‘이른바 필경공이라서 법도 없는 무법(無法)이고중생(無衆生)이니, 제법조차도 오히려 얻을  없거늘 하물며 중생이겠는가?’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법의 상(相) 관찰할 때에는 욕하는 매자(罵者) 보지 않고, 베고 끊는 할절자(割截者) 보지 않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법의 관찰할 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느니라. 

어찌하여 무생법인이니라 하는가? 제법의 상(相) 항상 나지 않는 상불생(常不生)이며, 모든 번뇌도 본래부터 항상 나지 않는 상불생(常不生)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是菩薩摩訶薩住是二忍,能具足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八聖道分,三解脫門,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

是菩薩住是聖無漏出世閒法,不共一切聲聞、辟支佛,具足聖神通。住聖神通已,以天眼見東方諸佛,是人得念佛三昧,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斷絕;南西北方、四維、上下亦如是。

 보살마하살은   가지의 인욕에 머무르면서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3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거룩하고 번뇌가 없는 성무루(聖無漏)의 출세간법(出世間法)에 머무르면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함께 하지 않는 거룩한 성신통(聖神通)을 두루 갖추며, 거룩한신통에 머무른 뒤에는 천안(天眼)으로써 동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나니, 

 사람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고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단절되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간방과 위와 아래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염불삼매(念佛三昧, buddhānusmṛti-samādhi) 부처님을 관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염불삼매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법에서 한 불신(佛身)에 대해 마음의 눈으로 시방에 가득하심을 보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도로서 한량없는 불국토 가운데 시방 3세의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다.”(불토원(佛土願)을 풀이함에서)


是菩薩用天耳聞十方諸佛所說法,如所聞爲衆生說。是菩薩亦知十方諸佛心,及知一切衆生念,知已,隨其心而爲說法。是菩薩以宿命智知一切衆生宿世善根,爲衆生說法,令其歡喜。是菩薩以漏盡神通,教化衆生,令得三乘。

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成就衆生,具足一切種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轉法輪。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無相、無得、無作法中,具足羼提波羅蜜。”

 보살은 천이(天耳)로써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중생들에게 설하여주며, 

 보살은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며, 모든 중생들의 생각을 알며,   뒤에는 그들의 마음을 따라 법을 설하여 주며,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일체 중생들의 숙세의 선근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뻐게 하고,

 보살은 누진(漏盡, 누진통)의 신통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여 3승을 얻게 하며,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성취시키며,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법륜을 굴리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의  가운데에서 찬제(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須菩提言:“世尊!菩薩摩訶薩云何於諸法無相、無作、無得,能具足毘梨耶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제법은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며, 무득(無得)이거늘, 어떻게 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成就身精進、心精進,入初禪乃至入第四禪,受種種神通力,能分一身爲多身,乃至手捫摸日月。

成就身精進故,飛到東方過無量百千萬諸佛世界,供養諸佛飮食、衣服、醫藥、臥具、華、香、瓔珞種種所須,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福德果報終不可盡。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의 정진인 신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성취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나아가 제4선(禪)에까지 들어가며, 갖가지 신통의 힘을 받아 하나의 몸을 나누어 여러 몸이 되게 하고 나아가 맨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느니라.

신정진(身精進)을 성취한 까닭에 동방으로 날아가 무량한 백천만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나면서 모든 부처님께 음식과 의복과 의약과 침구와 향화와 영락 등의 갖가지 필요한 것을 공양하나니,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그 복덕과 과보는 끝내 다하지 않느니라.


是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一切世閒天及人勤設供養衣服、飮食,乃至入無餘涅槃後,舍利及弟子得供養。

亦以是神通力故,至諸佛所,聽受法教,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違失。

是菩薩修一切種智時,淨佛世界、成就衆生。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成就身精進,能具足毘梨耶波羅蜜。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은 부지런히 베풀어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며,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뒤에는 사리(舍利)와 제자들을 공양하느니라.

또한 이 신통력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법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어기거나 잃지 않으며, 

이 보살이 일체종지를 닦을 때에는 부처님의 불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신정진(身精進)을 성취하고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須菩提!云何菩薩成就心精進,能具足毘梨耶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心精進,以是心精進聖無漏,入八聖道分精進,不令身、口不善業得入;

亦不取諸法相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我、若無我,若有爲、若無爲,若欲界、若色界、若無色界,若有漏性、若無漏性,若初禪乃至第四禪,若慈、悲、喜、捨,若無邊虛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若四念處、若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若空、無相、無作,若佛十力乃至十八不共法。

수보리야, 보살이 어떻게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성취하여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심정진(心精進)이란, 이 마음의 정진으로써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 성무루(聖無漏)의 팔성도분(八聖道分)에 들어가 정진하면서 몸과 입으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불선업(不善業)이 들어 올 수 없게 하느니라.

또한 제법의 상(相)도 취하지 않으니, 항상한 상(常)이라거나, 무상(無常)하다거나, 괴로눈 고(苦)라거나, 즐거운 낙(樂)이라거나, 나(我)라거나, 무아(無我)라거나, 유위(有爲)ㆍ무위(無爲)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유루성(有漏性)ㆍ무루성(無漏性)과 초선에서 제4선까지와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와 무변허공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까지와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ㆍ무상ㆍ무작과 부처님의 10력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그 상(相)을 취하지 않느니라.

 

不取相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我、若無我,若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若阿羅漢果、若辟支佛道,若菩薩道、若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是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若是辟支佛,是菩薩,是佛。

不取相是衆生斷三結故得須陁洹,是衆生三毒薄故得斯陁含,是衆生斷下分結故得阿那含,

是衆生斷上分結故得阿羅漢,是衆生以辟支佛道故作辟支佛,是衆生行道種智故名菩薩,亦不取是諸法相。

何以故?不可以性取相,是性無故。

또한 항상한 상(常)이라거나, 무상(無常)하다거나, 괴로눈 고(苦)라거나, 즐거운 낙(樂)이라거나, 나(我)라거나, 무아(無我)라거나,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또는 ‘이 분이 곧 수다원이요, 사다함이요, 아나함이요, 아라한이며, 이 분이 벽지불이요, 이분이 보살이며, 이 분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상(相)을 취하지 않느니라.

‘이 중생은 유신삼결(有身三結), 계금취결(戒禁取結), 의결(疑結)의 세 가지 번뇌 속의 삼결(三結)를 끊었기 때문에 수다원이 되고,

이 중생은 탐진치 삼독(三毒)이 얇아진 까닭에 사다함이 되며,

이 중생은 욕계의 번뇌인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심(疑), 욕탐(欲貪), 진에(瞋恚)의 하분결(下分結, 오하분결)을 끊었기 때문에 아나함이 되고,

이 중생은 색계와 무색계의 색탐(色貪), 무색탐(無色貪), 만(慢), 도거(掉擧), 무명(無明)의 다섯 가지 번뇌인 상분결(上分結, 오상분결)을 끊었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이 중생은 벽지불의 도로써 벽지불이 되고,

이 중생은 보살마하살의 필경공의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를 행한 까닭에 보살이라 한다’고 하는 것에서도 역시 이 제법의 상(相)을 취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성(性, 성품)으로써는 상(相)을 취할 수 없으며, 그 성(性, 성품)은 없기 때문이니라.

 

大智度論 釋一心具萬行 品第七十六 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을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性無所有,菩薩見何等利益故,爲衆生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告須菩提:“以一切法性無所有故,菩薩爲衆生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須菩提!諸有得、有著者,難可解脫。須菩提!諸得相者,無有道、無有果、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이익을 보아서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니, 왜냐 하면 수보리야, 얻는 것이 있는 유득(有得)이고, 집착이 있는 유착(有著)이라면 해탈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상을 얻는 득상(得相)에는 도(道)도 없고 과(果, 과위)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無得相者,有道、有果、有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須菩提!無所得卽是道、卽是果、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性不壞故。若無所得法欲得道、欲得果、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欲壞法性。”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상을 얻는 득상(得相)이 없다면 도(道)가 있고 과(果, 과위)가 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있는지요?”

“수보리야,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곧 도(道)요, 그것이 곧 과(果, 과위)이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법의 성품인 법성(法性)이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약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법에서 도(道)를 얻고자 하고 과(果, 과위)를 얻고자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법성(法性)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無所得法卽是道、卽是果、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有菩薩初地乃至十地?

云何有無生忍法?云何有報得神通?云何有報得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住是果報法中能成就衆生、能淨佛國土及供養諸佛衣服、飮食、香、華、瓔珞、房舍、臥具、燈燭、種種資生所須之具,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斷是福德?

乃至般涅槃後舍利及弟子得供養,爾乃滅盡?”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법이 곧 도(道)요, 그것이 곧 과(果, 과위)이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면,

어떻게 보살에게 초지(初地)에서부터 10지(地)에 이르기까지가 있고, 어떻게 무생인(無生忍)의 법이 있고, 어떻게 과보로 얻는 보득신통(報得神通)이 있으며, 어떻게 과보로 얻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있으며,

이 과보의 법 안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그리고 모든 부처님께 의복ㆍ음식ㆍ향화ㆍ영락ㆍ방사ㆍ침구ㆍ등촉 등 갖가지 살림에 필요한 도구들을 공양하며,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이 복덕이 끊어지지 않으며, 나아가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에는 사리(舍利)와 제자들이 공양을 얻게 되며,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없어져 다하는 멸진(滅盡)하게 되는지요?”


佛告須菩提:“以諸法無所得相故,得菩薩初地乃至十地,有報得五神通、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成就衆生、淨佛國土,亦以善根因緣故,能利益衆生,乃至般涅槃後舍利及弟子得供養。”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제법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상(相)이기 때문에 보살이 초지 내지는 10지를 얻으며, 과보로 얻는 다섯 가지의 오신통과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있으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또한 선근(善根)의 인연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나아가 완전한 열반의 반열반(般涅槃)에 드신 뒤에는 사리와 제자들까지도 공양을 얻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諸法無所得相,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諸神通,有何差別?”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법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상(相)이라면,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모든 신통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無所得法,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神通無有差別。以衆生著布施乃至神通故分別說。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법(無所得法)의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신통에는 차이가 없느나, 중생들이 보시 내지는 신통에 집착하기 때문에 분별하여 말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無所得法布施乃至神通無差別?”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법(無所得法)의 보시에서 신통에 이르기까지에 차이가 없는 것인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得布施,施者、受者皆不可得而行布施,不得戒而持戒,不得忍而行忍,不得精進而行精進,不得禪而行禪,不得智慧而行智慧;不得神通而行神通;

不得四念處而行四念處,乃至不得八聖道分而行八聖道分;不得空三昧、無相、無作三昧而行空、無相、無作三昧;不得衆生而成就衆生,不得佛國土而淨佛國土;不得諸佛法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보시를 얻지 못하고, 보시하는 시자(施者)와 받는 수자(受者)를 모두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인욕을 행하고, 정진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정진을 행하며, 선정을 얻지 못하하는 것이나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지혜를 행하며, 신통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신통을 행하느니라.

사념처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4념처를 행하고 나아가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팔성도분을 행하며,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공ㆍ무상ㆍ무작삼매를 행하고, 중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중생을 성취시키며, 부처님의 불국토를 얻지 못하는 것이나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제법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應如是行無所得般若波羅蜜!菩薩摩訶薩行是無所得般若波羅蜜時,魔、若魔天不能破壞。”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악마나 악마의 하늘도 그를 파괴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一念中具足行六波羅蜜、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三解脫門、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三十二相、八十隨形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한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육바라밀과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사념처ㆍ사정근ㆍ사여의족ㆍ오근ㆍ오력ㆍ7각분ㆍ8성도분ㆍ삼해탈문ㆍ부처님의 불십력ㆍ사무소외ㆍ사무애지ㆍ18불공법(不共法)ㆍ대자대비(大慈大悲)ㆍ32상호 및 80수형호(隨形好)를 두루 갖추어 행하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所有布施,不遠離般若波羅蜜;所修持戒、忍辱、精進、禪定,不遠離般若波羅蜜;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修四念處乃至八十隨形好,不遠離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모든 보시는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닦는 바의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사념처 내지는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지 않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不遠離般若波羅蜜故,一念中具足行六波羅蜜乃至八十隨形好?”

佛言:“菩薩行般若波羅蜜時,所有布施不遠離般若波羅蜜不二相,持戒時亦不二相,修忍辱、勤精進、入禪定亦不二相,乃至八十隨形好亦不二相。”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지 않기에 한 생각의 일념(一念) 동안에 6바라밀에서부터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를 두루 갖추어 행할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기 때문이요,

계율을 지님에 역시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며, 인욕을 닦거나 정진에 힘쓰거나 선정에 들 때에도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요, 나아가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布施時不二相,乃至修八十隨形好不二相?”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欲具足檀波羅蜜,檀波羅蜜中攝諸波羅蜜及四念處乃至八十隨形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에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이며, 나아가 80수형호를 닦기까지도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인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檀, 보시)바라밀을 두루 갖추고자 한다면, 단바라밀 가운데에서 모든 바라밀과 사념처 내지는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를 포섭해야 하느니라.”


“世尊!云何菩薩布施時攝諸無漏法?”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보시를 할 때, 모든 무루법(無漏法)을 포섭하는지요?”


佛告須菩提:“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無漏心布施,於無漏心中不見相 所謂誰施?誰受?所施何物?以是無相心、無漏心,斷愛、斷慳貪心而行布施,是時不見布施,乃至不見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번뇌의 누(漏)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에 머물면서 보시를 하면,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 가운데에서 ‘누가 보시하고 누가 받으며 보시하는 것은 어느 물건인가’ 하는 상(相)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이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과 애욕이 끊어지고 간탐이 끊어진 단수단간탐심(斷受斷慳貪心)으로써 보시를 행하는 것이니, 이 때에는 보시를 보지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是菩薩以無相心、無漏心持戒,不見是戒,乃至不見一切佛法。

以無相心、無漏心忍辱,不見是忍,乃至不見一切佛法。

以無相心、無漏心精進,不見是精進,乃至不見一切佛法。

以無相心、無漏心入禪定,不見是禪定,乃至不見一切佛法。

以無相心、無漏心修智慧,不見是智慧,乃至不見一切佛法。

以無相心、無漏心修四念處,不見是四念處。乃至八十隨形好。”

이 보살은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계율을 지니므로, 이 계율을 보지 않고 나아가 일체 부처님의 불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인욕을 행하므로, 이 인욕을 보지 않고 나아가 일체 부처님의 불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정진에 힘쓰므로, 이 정진을 보지 않고 나아가 일체 부처님 불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선정에 들어가므로, 이 선정을 보지 않고 나아가 일체 부처님의 불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지혜를 닦으므로, 이 지혜를 보지 않고 나아가 일체 부처님의 불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써 사념처를 닦으므로, 이 사념처에서 80수형호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世尊!若諸法無相、無作,云何具足檀波羅蜜、尸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

云何具足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

云何具足空三昧、無相、無作三昧、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

云何具足三十二相、八十隨形好?”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상이 없는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라면, 어떻게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4념처와 4정근과 4여의족과 5근과 5력과 7각분과 8성도분을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공삼매와 무상ㆍ무작삼매와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32상과 80수형호를 두루 갖추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無相心、無漏心布施,須食與食,乃至種種所須,盡給與之;若內、若外:若支解其身、若國城妻子,布施衆生。

若有人來語菩薩言:‘何用是布施爲?是無所益!’行般若波羅蜜菩薩作是念:‘是人雖來訶我布施,我終不悔!我當勤行布施,不應不與。’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상이 없는 무상심(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무루심(無漏心)으로 보시하되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나아가 갖가지 구하는 것을 안팎으로 남김없이 그에게 주나니,

혹은 그의 몸을 갈가리 찢거나, 혹은 나라나 성(城)이나 아내나 자식 등의 모두를 중생에게 보시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에게 말하기를 ‘이 보시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것은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오!’라고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비록 나의 보시를 꾸짖을지라도 나는 끝내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부지런히 보시를 행하면서 주지 않는 일이 없으리라’고 하느니라.


施已,與一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不見是相:誰施?誰受?所施何物?迴向者誰?何等是迴向法?何等是迴向處?

所謂阿耨多羅三藐三菩 是相皆不可見。何以故?一切法皆以內空故空,外空故空,內外空故空,空空、有爲空、無爲空、畢竟空、無始空、散空、性空、一切法空、自相空故空。如是觀,作是念:‘迴向者誰?迴向何處?用何法迴向?’是名正迴向。

보시한 뒤에는 일체 중생들과 그 보시 공덕을 함께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또한 ‘누가 보시하고 누가 받으며 보시하는 것은 무슨 물건이며?

회향하는 이는 누구이며? 어떤 것이 회향하는 법이며? 어디가 회향하는 곳인가?’ 라는 상(相)을 보지 않으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상(相) 조차도 모두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결국 공(空)한, 내공(內空)이기에 공하고,

육근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인 육경(六境)은 실체가 없는 것으므로 공한, 외공(外空)이기에 공하며,

사람이 내공의 육근과 외공의 육경이 공에 집착하나 실제로는 내(內)의 인아(人我)도 외(外)의 법아(法我)도 없는, 내외공(內外空)이기에 공하고,

육근·육경이 실체도 자성(自性)도 없는 공이므로, 이 공 역시 집착의 대상이 아닌 공한 것이라는, 공공(空空)과

인연을 포함한 인위적으로 된 모든 현상이 공하다는, 유위공(有爲空)과

모든 자연의 실체, 즉 무위법도 공한, 무위공(無爲空)과

공 또한 공한 것이어서 필경에는 일체가 공한, 필경공(畢竟空)과

모든 사물이 인과(因果)의 법칙에서 보면 시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공하다는, 무시공(無始空)과

이러한 모든 공 역시도 안개처럼 흩어지는 공한 것이라는, 산공(散空)과

모든 사물의 본성 자체가 공한 것이므로 그 실상 역시도 공하다는, 성공(性空)과

제법(諸法)은 유한(有限)한 것으로, 그 실체는 공한 것이라는, 일체법공(一切法空) 및

제상(諸相)의 실상은 공한 것이이라는, 자성공(自性空, 자상공)이기에 공한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관(觀)하고는 생각하기를 ‘회향하는 이는 누구이고? 어디에 회향하는 것이며? 어떠한 법으로써 회향하는가?’ 라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바른 정회향(正廻向)이라 하느니라.

 

爾時,菩薩能成就衆生、淨佛國土,能具足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乃至三十七助道法,空、無相、無作三昧,乃至十八不共法。

그 때에 보살은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이 하며,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 내지 37조도법(助道法)과 공ㆍ무상ㆍ무작삼매, 내지 18불공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大智度論 釋次第學品 第七十五之餘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5. 차제학품을 풀이함   4

 

問曰:是菩薩布施時,先施何等人?

묻나니, 이 보살이 보시를 할 때, 먼저 어떤 사람에게 보시해야 하는 것입니까?


答曰:是菩薩雖因衆生起大悲心,而菩薩布施,必先供養諸佛、大菩薩、辟支佛、阿羅漢及諸聖人。

若無聖人,次第施持戒、精進、禪定、智慧離欲人。

若無此人,施一切出家佛弟子。若無是人,次施持五戒、行十善道,及持一日戒、三歸。

若無此人,次施中人非正非邪者。若無此人,次施五逆惡人,及諸畜生。不可不與,菩薩以施攝一切衆生故。

답하나니, 이 보살은 비록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켰을지라도, 보시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모든 부처님ㆍ대 보살ㆍ벽지불ㆍ아라한과 그리고 모든 성인들에게 공양해야 하나,

만약 이러한 성인이 주변에 계시지 않으면, 차례로 계율을 지니고, 정진하며, 선정을 닦고, 지혜 있는 이와 욕탐을 여읜 사람에게 보시하며, 

만약 이러한 사람도 주변에 없으면 모든 출가한 제자들에게 보시하며, 

만약 이러한 사람들도 주변에 없으면,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婬),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오계(五戒)를 지니면서 10선도(善道)를 행하는 이와 일계(一日戒)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의 삼귀(三歸, 삼귀)를 지닌 이에게 보시하며, 

만약 이러한 사람들도 주변에 없으면, 중간 사람으로서 바르지도 않고 삿되지 않은 이에게 보시하며, 

만약 이러한 사람도 주변에 없으면, 이른바 부모ㆍ성자를 해치거나 부처님의 몸에 위해를 가하거나 교단의 화합을 깨는 행위 등 무간지옥의 고과(苦果)를 초래하는 다섯 가지 악업의 5역죄(逆罪, pañcānantariyāṇi)를 지은 악인에게 보시하며, 

그리고 모든 짐승들에게도 주지 않을  없으니, 보살은 보시로써 일체 중생을 거두기 때문이다.


有人言:應先布施五逆罪人、斷善根者,貧窮、老病、下賤、乞丐者,乃至畜生;譬如慈母,多有衆子,先念羸病,給其所須。又如菩薩爲餓虎欲食子故,以身施之。

어떤 말하기를 “먼저역죄를 지은 사람과 선근이 끊어진 단선근자(斷善根者)와 가난한 이로서 늙고 병든 이와 하천한 거지에서 축생에 이르기까지 보시해야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인자한 어머니에게 많은 자식들이 있을지라도 먼저 야위고 병든 자식을 생각하여 그가 바라는 것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보살은 굶주린 범이 자기 새끼를 잡아먹으려 한다면, 대신하여  몸을 던져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問曰:如是種種,應先施何者?

묻나니, 이와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면, 우선 어디서부터 보시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까?


答曰:一切衆生皆是菩薩福田,能生大悲故。菩薩常欲以阿耨多羅三藐三菩提施衆生,何況衣食等而有分別!

又菩薩得無生忍法,平等無差。未得無生忍者,或慈悲心多、或分別心多,此二心不得俱行。悲心多者,先施貧窮惡人,作是念:“種福田中,果報雖大,憐愍衆生故,先利貧者。”如是田雖不良,以慈悲心,得大果報。

답하나니, 일체 중생들  모두는 보살의 복전이니, 그것은 대비심을 일으킬  있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언제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써 중생에게 베풀고자 하거늘 하물며 의(衣)ㆍ식(食) 등에 분별이 있겠는가?

 보살이 무생인(無生忍)의 법을 얻었다면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아직 무생인을 얻지 못하였다면 혹은 자비심이 많을 수도 있고, 혹은 분별심이 많을 수도 있나니,  자비심(慈悲心)과 분별심(分別心)의  마음은 함께 같 행할  없는 것이다.

자비심(慈悲心)이 많은 이는 먼저 가난하거나 나쁜 사람에게 보시하면서 생각하기를 ‘복전 가운데에 심으면 과보가 비록 크겠지만, 중생이 불쌍하기 때문에 먼저 가난한 이부터 이롭게 하리라.’고 하며, 이러한 복전은 비록 좋지는 않을지라도  자비심 때문에  과보를 얻는 것이다.


分別心多者,作是念:“諸佛有無量功德故,應先供養。”以分別諸法、取著佛身故心小;其心雖小,福田良故,功德亦大。

若得諸法實相,入般若波羅蜜方便力中,心得自在,二事俱行 慈愍衆生,又視皆如佛。如是等,菩薩隨因緣行布施。

분별심(分別心)이 많은 이는 생각하기를 ‘모든 부처님께는 무량한 공덕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먼저 공양해야 한다’ 는 것은 제법을 분별함으로써 부처님의 불신(佛身)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은 작은 것이나,  마음이 비록 작을지라도 복전이 양호하기 때문에 공덕 역시 큰 것이다.

만약 제법의 실상을 얻으면 반야바라밀의 방편력 가운데에 들어가서 마음이 자유자재하여  가지 모두를 함께 행하게 되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모두를 마치 부처님과 같이 보는 것이니, 이러한 보살은 인연 따라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問曰:經何以不言“與衣食等”,而言“須食與食”?

묻나니, 경에서는 무엇 때문에 옷과 음식 등을 주라고 하지 않고 “밥을 구하면 밥을 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有人須食與飮、須飮與衣,以不稱受者意故,福德少,是故言須食與食。

답하나니, 어떤 사람이 밥을 구하는데 마실 것을 주거나, 마실 것을 구하는데 옷을 준다면, 받는 수자(受者) 마음에 맞지 않아서 복덕이 적기 때문에 “밥을 구하면 밥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問曰:有人若羞、若怖,雖有所須,不能發言,云何知其所須?

묻나니, 어떤 사람은 부끄러워서 또는 두려워서 비록 구하는 것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이가 있거늘, 어떻게 그가 구하는 바를  알수 있겠습니까?


答曰:菩薩觀其相貌,隨時所須、土地所宜;或有知他心者,資生之具,隨意而與。是人因是布施,得成戒衆;復作是念:“我憐愍衆生,以衣食布施,所益甚少;不如持戒,常以無惱、無畏施於衆生。”

답하나니, 보살은 그의 용모를 살핀 뒤에 때와 필요한 것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해야 하며, 

혹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이라면 살림에 필요한 것을 그의 뜻대로 주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보시로 인하여 계중(戒衆, 계율)을 성취하게 되나니, 그가 생각하기를 ‘나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옷과 음식을 보시하고 있지만,  얻게 되는 이익이 심히 적어서 계율을 지니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하며, 

항상 괴로움이 없는 무외(無惱)와 두려움이 없는 무뇌(無畏)로써 중생에게 베푸는 것이다.


菩薩住是持戒中,爲守護戒故,生禪定。心不散、淸淨故,得成慧衆;無戲論、捨諸著是慧相。以是慧破諸煩惱縛,得解脫衆。了了知見證解脫故,名解脫知見衆。是人先行布施及五衆因緣故,過聲聞、辟支佛地,入菩薩位。

보살은  지계(持戒)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계율을 수호하기 위하여 선정(禪定)의 마음을 내어서, 산란하지 않고 깨끗하기 때문에 혜중(慧衆, 지혜)를 이루나니, 희론이 없고 모든 집착을 버리는 것이  지혜의 상(相)이다.

 지혜로 인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을 깨뜨리고 해탈중(解脫衆, 해탈)을 얻으며, 

그리고는 분명하게 알고 보면서 해탈을 증득한 까닭에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 해탈지견)이라 하며, 

이러한 사람은 먼저 보시를 행하고, 그리고 계율의 계중(戒衆)ㆍ선정의 선중(定衆)ㆍ지혜의 혜중(慧衆)ㆍ해탈의 해탈중(解脫衆)ㆍ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의 오중(五衆) 인연으로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지나 보살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問曰:菩薩應行六波羅蜜,入菩薩位,此中何以說五衆?

묻나니, 보살은 마땅히 6바라밀을 행하여 보살위에 들어가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가운데에서는 오중(五衆)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法雖一,以種種異名說,是故說五衆無咎。是人從一波羅蜜中欲起諸波羅蜜,布施爲主,已先說。持戒衆名尸波羅蜜;定衆、解脫衆名禪波羅蜜;慧衆、解脫知見衆是般若波羅蜜;

行諸波羅蜜時,能忍諸惡事,是名羼提波羅蜜;能起諸波羅蜜,不休不息,是名毘梨耶波羅蜜。

답하나니, 비록 법은 하나일지라도 갖가지의 다른 이름으로 설명하는 까닭에 오중(五衆)이라하여 잘못은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의 바라밀 가운데서 모든 바라밀을 일으키고자 하나니, 보시를 주(主)로 삼아서 설명을 하자면, 이미 먼저 설명한 지계(持戒)는 시라바라밀이라 하고, 선정과 해탈은 선바라밀이라 하며, 지혜와 해탈지견은  반야바라밀이다.

일체의 바라밀을 행할 때, 여러 나쁜 일들을 참아내는 것은  찬제(인욕)바라밀이며, 

모든 바라밀을 능히 일으켜 쉬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으면 그것이  비리야(정진)바라밀인 것이다.


問曰:若爾者,何以不但說諸波羅蜜名而說五衆?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모든 바라밀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오중(五衆)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是人欲入菩薩位,此中不但以持戒、禪定得,和合衆戒、淸淨戒、無盡戒。以要言之,攝一切戒名爲戒衆;能破煩惱,過二乘,入菩薩位。譬如一人、二人,不名爲軍;和合多人,乃成爲軍,能破怨敵。餘衆亦如是。

답하나니, 이 사람이 보살위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므로,  가운데에서의 지계와 선정만으로는 화합중계(和合衆戒)와 나쁜 사견을 떠나 계를 지키는 청정계(淸淨戒)와 무진계(無盡戒)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요약하자면, 모든 계(戒)를  포섭하는 것을 계중(戒衆)이라 하고, 

이 계중으로써 번뇌를 파괴하고승을 지나 보살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나  사람만으로는 군대라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합하여야 비로소 군대가 되어 원적을 격파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 나머지 중(衆)들도 이와 같은 것이다.


菩薩自得禪定等衆,亦令衆生得,是名菩薩教化衆生;教化衆生已,持自功德及衆生功德,盡迴向淨佛國。

具此二法,卽得一切種智,轉法輪,以三乘度衆生。是名菩薩次第行、次第學、次第道。

보살은 자기 스스로가 선정 등을 얻으면 또한 중생들도 얻게 하므로 이를 이름하여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라 하며, 

중생들을 교화한 뒤에는 스스로 공덕과 중생의 공덕을 다하여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모두 회향하나니,

교화중생(教化衆生)과 회향정불국(迴向淨佛國)의  가지의 이법(二法)을 갖추면  일체종지를 얻어서 법륜을 굴리면서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보살의 차례행(次第行)이요, 차제학(次第學)이요, 차례도(次第道)라 하는 것이다.


先麤後細,先易後難,漸漸習學,名爲次第。餘五波羅蜜,亦應隨義分別。諸法性雖無所有,而隨世諦行,爲破顚倒故。復次,念佛等六念是初次第行,以易行易得故。

거친 추(麤)를 먼저 하고 세밀한 세(細)를 뒤에 하며, 쉬운 이(易)를 먼저 하고 어려운 난(難) 뒤에 하면서 점차로 익히고 배우는 것을 ‘차례대로의 차제(次第)’ 라 하며,

 밖의 다섯 가지 바라밀도  이치에 따라 분별해야 하나니,법의 성품은 비록 있는 바가 없을지라도,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를 따라 행하여 뒤바뀜의 전도(顚倒)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염불(念佛)과 염법(念法)과 염승(念僧)과 염계(念戒)와 염사(念捨)와 염천(念天)등의념(六念)은   번째 차제(次第) 해당하는 행이니, 행하기도 쉽고 얻기도 쉽기 때문이다.


問曰:六念中亦言不以色念佛,云何言易?

묻나니, 육념(六念) 가운데에서 말씀하기를 “물질(色)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는다”고 하셨거늘 어찌하여 쉽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有法共行,故名爲易;譬如服苦藥,以蜜下之則易。六念義,如初品中廣說。六波羅蜜、六念等,柔軟易行,不生邪見,是菩薩次第學法。餘三解脫門等,思惟籌量,或生邪見故不說。

此中須菩提難:“世尊!若實無所有,云何有次第行等?”

佛反問須菩提:“汝以聲聞智慧見色等法是一定實法不?”

답하나니, 어떤 법은 함께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쉽다고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약을 먹을 때, 꿀을 타면 삼키기 쉬운 것과 같은 것이다.

육념의 뜻은 초품(初品)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으며,

6바라밀과념은 부드럽고 행하기가 쉬운 것이며, 삿된견을 내지 않으므로  보살은 차제(次第) 법을 배우게 되지만, 

 밖의 3해탈문(解脫門) 등은 사유하고 헤아려서 혹은 삿된견을 내기도 하는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세존이시여, 만약 실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어떻게 차제행(次第行) 등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따지므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반문(反問)하시면서 “그대는 성문의 지혜로써 물질(色) 등의 법을 보니, 그것이 일정하고 진실한 실법(實法)이던가?”고 하셨다.


答言:“不見!”色等一切法但從因緣和合,假有其名,無有定實,云何言有?

佛語須菩提:“汝若不見實定有,云何以次第等難空?”而次第法不離於空。

爾時,須菩提受解了了,是故說:“我無所疑,爲當來世求三乘人,聞佛說空無所有性,以罪重智鈍故,取空相,便言:‘誰垢誰淨?凡夫、惡人,何以名垢?出家、得道人,何以名淨?’

是人不解佛語深義以何事而說,著是空故,言:‘何用持戒等爲?’

이에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기를 “물질(色) 등의 일체법을 보지 않습니다. 

다만 인연(因緣)의 화합으로 인한 것이라서 임시로 붙인 가명 있을 뿐이며, 일정하거나 진실함이 없거늘 어떻게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진실로 일정한 것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차례(次第) 등으로 공을 따지면서, 차제법(次第法) 공(空)을 여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고 하셨다.

그 때에 수보리 존자는 받아들여서 이해하며 분명히 알고 있었던 까닭에 말씀드리기를 “저는 의심되는 것이 없습니다만, 다만 앞으로 오는 당래세(當來世)에승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쭌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공(空)하여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죄가 무겁 지혜가 둔한 까닭에 공한 공상(空相) 취하면서  말하기를,

‘그 누가 더러운 구(垢)이고, 그 누가 깨끗한 정(淨)이란 말인가? 범부와 악인은 무엇 때문에 더러운 구(垢)라 하고, 출가(出家)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깨끗한 정(淨)이라 하는 것인가?’라고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이치의 심의(深義)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공(空)에 집착하면서 ‘지계(持戒) 등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라고  것입니다.


以是因緣,卽生邪見,破正見;破正見故,以少因緣而破戒及威儀,無所畏忌;

出家人資仰白衣,便妄語求利衣食等,破於正命等。種此罪故,墮三惡道,或重於白衣。見有是失,故問佛。

我已得道,於諸法無所受,又常聞佛說空法,云何戲論生疑?又我常修無諍三昧,憐愍衆生,是故問佛。”

이러한 인연으로 곧 삿된 사견을 내어서 바른견을 깨뜨리며, 바른견을 깨뜨린 까닭에 조그마한 인연에서도 계율과 위의를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출가인은 필요한 물자를 백의(白衣, 속인)에게서 바라므로  거짓말로 옷과 음식 등의 이익을 구하면서 바른 생활의 정명(正命)을 깨뜨리게 될 것이고, 이러한 죄를 심은 까닭에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며, 혹은 속인을 중하게 여긴 허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 여쭙 것입니다.

저는 이미 도를 얻었으므로법에서 받아들일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공법(空法)을 들었거늘 어떻게 희론을 펴며 의심을 내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공의 도리에 안주하여 다른 이와 쟁론에 빠지지 않는, 무쟁삼매(無諍三昧, araṇā-vihāriṇāṃ-agryaḥ)를 닦으면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 여쭙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大智度論 釋次第學品 第七十五之餘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5. 차제학품을 풀이함    3

 

一切有爲作法從因緣和合生起故有,無有實定性乃至如毫末許所有。

有爲有二種:一者、色,二者、無色。色法破壞,分別乃至微塵,無有定實;無色法中,乃至無有一念定實。

破義,如上說。是菩薩從諸佛聖人聞是法,餘人多以著心說,諸聖人以無著心說,是故但從聖人聞。

일체 유위의 조작된법(作法)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생기기 때문에 있는 유(有)일 뿐이니, 실로 정해진 성품이 없으며 나아가 털끝만큼도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유위(有爲)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물질(色)이요, 둘째는 물질이 없는 무색(無色)이다. 

물질의 색법(色法)은 파괴하고 분별할지라도 아주 작은 티끌의 미진(微塵)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거나 진실한 것이 없고, 

무색법(無色法)에는   생각까지도 일정하거나 진실한 것이 없으며,

파괴하는 이치의 파의(破義) 대해서는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보살은 모든 부처님과 성인들로부터 이러한 법을 듣는 것이니,  밖의 다른 사람들 거의 모두는 집착하는 착심(著心)으로 설명하지만, 성인들은 집착하는 착심(著心)없이 설명하기 때문에 다만 성인들부터 들을 뿐인 것이다.


爾時,次第學菩薩聞是法,以比智籌量決定,知諸法究竟必空,皆入佛所得實相中,所謂寂滅、無戲論相。

我若得作佛、若不作佛,一等無異。何以故?諸法實相不增不減,更無新法可得故,法亦不失。

若度衆生,衆生畢竟空,本末不可得;我所願、所作功德及成佛時神通力皆如夢、如幻故,無一定實相,畢竟空。

得、不得雖同,我何以不發心作佛?

그 때에 차례대로 배우고 있는 차제학(次第學) 보살은 이러한 법을 듣고 상계(上界)의 번뇌에 작용하는 지혜인 비지(比智, anvaya-jñāna)로써 헤아리고 결정하여 ‘제법은 구경에는 반드시 공하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가 부처님께서 얻으신 실상(實相) 가운데에 들게 되나니, 이른바 고요히 사라지진 적멸(寂滅)이고 희론이 없는 무희론상(無戱論相)이 그것이다.

내가 만약 부처를 이루는 작불(作佛)하거나 부처를 이루지 않는 불작불(不作佛)하거나 간에 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법의 실상은 늘어나지도 않는 부증(不增)이고 줄어들지도 않는 불감(不減)이라서 다시 새로이 얻을  있는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이요, 또한 상실하지도 않는 불실(不失)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을 제도할 때, 중생도 필경공이라서  본말을 얻을  없는 것이니, 소원으로 짓는 공덕과 성불할 때의 신통력 모두도 꿈과 같고 환과 같은 것으로, 어떠한 하나의 정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필경공인 것이다.

 

무엇을 비지(比智)라 하는가? 안(眼, 눈, 안촉수眼觸受)은 무상하며 나아가 이촉수(耳觸受), 비촉수(鼻觸受), 설촉수(舌觸受), 신촉수(身觸受), 의촉수(意觸受)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생기는 느낌의 인연수생(因緣生受)까도 무상하다는 이치를 아는 것을 비지라 하느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8권 6

 

得、不得雖同,我何以不發心作佛?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같다고 (작불 作佛, 불작불不作佛하거나 간에 같아서 다름이 없는) 한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발심하여 부처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함에 대하여 문답하겠다.


問曰:若知諸法畢竟空、無所有者,云何復言“我何以不發心作佛?”

묻나니, 만약 제법은 필경공이라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임을 안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나는 무엇 때문에 발심하여 부처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畢竟空,無所有,無所障㝵,何妨發心作佛?

復次,若說畢竟空,滅諸戲論,云何障發心?若障,卽是有性,云何言無所有性?

답하나니, 필경공이라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장애가 없는 것이라면, 발심하여 부처가 된다 한들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또한 만약 필경공이라서 모든 희론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발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만약 막는다면 그것은  성품이 있는 유성(有性)이거늘 어떻게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 되겠는가?


問曰:若不障發心,亦應不障不發心,菩薩何不安住而發心受諸勤苦?

묻나니, 만약 발심에 장애되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발심하지 않아도 장애되지 않아야 할것이거늘, 

보살은  편안히 머물러 있지 않고 발심하여 갖은 고통을 받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言:是菩薩有種種因緣應發心:或以多諸親屬知識皆不聞、不知、不得是諸法實相,是故今世、後世受諸苦惱;我幸有力,能使是人得離衆苦。譬如人得好良藥,親里知識受諸病苦,云何不與?

是故菩薩雖知諸法性無所有,因親里故而發心,利益衆生。

답하나니,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이 보살은 갖가지의 인연이 있으므로 마땅히 발심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여러 친족과 아는 지인(知人) 모두가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여 법의 실상을 얻지 못한 까닭에 금세에서나 후세에서 여러 가지 고뇌를 나니, 나는 다행이 힘이 있어서 이러한 이들을  많은 고통에서 여의게   있으리라.

비유하자면, 사람이 좋은 음식과 약을 얻었는데, 고향의 친척이나 아는 이가 갖가지의 병에 들어 고생하고 있다면 어떻게 주지 않을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발심하기도 한다”고 하였으니, 

때문에 보살은 비록법의 성품은 무소유(無所有)라 할지라도 고향의 친척 때문이라도 발심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菩薩復作是念:“我雖聞諸法實相,心未深入,未有禪定,智慧未熟,受諸苦惱。”是故發心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集諸功德,以無所有法作證,自爲,亦爲他人。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비록법의 실상을 듣을지라도 아직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아직 선정에 있지 못하며,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여서 모든 고뇌를 받고 있다’라고 하는 까닭에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서 모든 공덕을 쌓고, 있는  없음의 무소유법(無所有法)을 증득하여 스스로를 위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위하는 것이다.


是菩薩復聞大乘深義,住衆生等、法等中,無別異心,可得佛。
雖復中人及怨,都無異心。

所以者何?是菩薩以畢竟空心,煩惱微薄、怨親平等,作是念:“怨親無定,以因緣故,親或爲怨,怨或爲親。”

 보살은  대승(大乘)의 깊은 이치인 심의(深義)를 듣고 중생이 평등한 중생등(衆生等)과 법이 평등한 법등(法等)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부처를 얻는 득불(得佛)할 수 있으며,

비록  중간 사람이나 원수일지라도 전혀 다른 마음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필경공심(畢竟空心)으로 번뇌가 미미하여지고 얇아져서 원수나 친한 이의 원친(怨親)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하기를 ‘원수나 친한 이의 원친(怨親)은 정해진 것이 없는 것으로 인연 때문에 친한 이가 혹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혹은 친한 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고 하며, 


以此大因緣,具足忍波羅蜜故,得作佛。由何而得?由忍怨故。是以菩薩視怨如親。譬如欲過嶮道,應當敬重頂戴導師;又如良醫雖賤,爲貴者所重。如是思惟、籌量、分別:“中人、怨家,雖於我
無用,而是佛道因緣。”是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名一種次第行、次第學、次第道。是故以過去菩薩所行爲證。

이러한 큰 인연으로써 인욕(忍辱)바라밀을 완전히 갖춘 때문에 부처를 얻을 수 있으니,

어찌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원한을 참아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원수 보기를 마치 친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험한 길을 지나가고자 할 때, 길잡이를 공경하여 정중히 모시는 것과 같으며,  용한 의사의 신분이 비록 천할지라도 존귀한 이와 같이 정중하게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하고 헤아리며 분별하기를 ‘중간의 사람이나 원수가 비록 나에게는 소용됨이 없을지라도 그는  불도(佛道)의 인연이다’고 하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일종의 차제행(次第行)이요 차제학(次第學)이며 차제도(次第道) 하나니, 과거세의 보살이 행한 바로써 증명을 삼은 것이다.


問曰:次第行、次第學、次第道有何差別?

묻나니, 차제행(次第行)이요 차제학(次第學)이며 차제도(次第道)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言:無差別;若行、若學、若道,義一而語異。有人言:初名行,中名學,後名道。行名布施,學名持戒,道名智慧。復次,行名持戒,學名禪定,道名智慧。復次,行名正語、正業、正命,學名正精進、正念、正定,道名正見、正思惟。

답하나니, 어떤 분은 말하기를 “차별이 없으니, 행(行)과 배움(學)과 도(道)는  뜻이 하나인, 일의(義一)이나 말만 다른 이어(語異)일 뿐이다”고 하며, 

어떤 말하기를 “처음에는 행(行)이라 하고 중간에는 배움(學)이라 하며 나중에는 도(道)라 하나니, 행을 보시(布施)라 하고, 배움(學)을 지계(持戒)라 하며 도(道)를 지혜(智慧)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행(行)을 지계라 하고 배움(學)을 선정이라 하며 도(道)를 지혜라 하기도 하며,

 행(行)은 바른 말의 정어(正語)ㆍ바른 행위의 정업(正業)ㆍ바른 생활유지의 정명(正命)이라 하고, 

배움(學)은 바른 노력의 정정진(正精進)ㆍ바른 기억의 정념(正念)ㆍ바른 선정의 정정(正定)이라 하며, 

도(道)는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ㆍ바른 생각의 정사유(正思惟)라 하나니, 


此八事雖名爲道,然分別有三分:正見是道體;發起是道,名正思惟
正語、正業、正命,助益正見,故名爲行。正精進、正念、正定,能成就正見,使令牢固,是名學。

이러한 여덟 가지의 팔사(八事, 팔정도)를 비록 도(道)라 할지라도 분별하면  가지로 나뉘게 되나니,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은  도의 본체인 도체(道體)라서 도를 일으키고, 

바른 생각의 정사유(正思惟)ㆍ바른 말의 정어(正語)ㆍ바른 생활유지의 정명(正命)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을 돕기 때문에 행(行)이라 하며,

바른 노력의 정정진(正精進)ㆍ바른 기억의 정념(正念)ㆍ바른 선정의 정정(正定)은 정견(正見)을 성취시켜 견고하게 하므로 이것을 배움(學)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有人言:檀波羅蜜、毘梨耶波羅蜜名爲行,初入道故。尸羅波羅蜜名爲學,人心常隨五欲難禁難制,無須臾停息,漸以尸羅波羅蜜、禪波羅蜜制伏其心,是故名學。羼提波羅蜜、般若波羅蜜名爲道。何以故?忍爲善,般若爲智慧,善、智具足故名道。譬如人有眼有足,隨意所至。如是等,名爲三事差別。

 어떤 말하기를 “단(보시)바라밀과 비리야(정진)바라밀을 행(行)이라 하였으니,

처음에 도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시라(지계)바라밀을 배움(學)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은 항상욕을 따르는 것이라서 금지하기도 어렵고 제어하기도 어려우며, 잠시도 쉬는 일이 없으니, 시라바라밀과 선바라밀로써 점차로  마음을 억제하고 조복하기 때문에 배움(學)이라 하며,

찬제(인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도(道)라 하나니, 왜냐 하면 인욕을 선(善)으로 삼고 반야를 지혜로 삼기 때문이다. 

선(善)과 지혜를 두루 갖추는 까닭에 도(道)라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눈이 있고 발이 있으면 뜻한 바의 곳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이 행(行)과 배움(學)과 도(道), 세 가지에 대한 차별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何以名次第?

묻나니, 무엇 때문에 차례대로의 차제(次第)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以須菩提意:若一切法無所有,初發心菩薩於是空法中云何能漸次第學?以是故說次第。

諸法雖空難解,次第行得力故,能得成就;譬如緣梯,從一初桄漸上,上處雖高雖難,亦能得至。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일체법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처음발심한 보살은  공한법(空法) 가운데에서 어떠한 순서를 따라 점점 배워야 되는 것입니까?’라고때문에 ‘차례대로의 차제(次第)’라고 한 것이다.

제법은 비록 공하여 알기 어려운 난해(難解)한 것일지라도 차례대로 행하여 힘을 얻기 때문에 능히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다리에 의지하여 맨  칸부터 점차로 올라가면,  위가 비록 높고 어려울지라도 그곳에 닿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次第行者,四種行六波羅蜜,如經中說。“自行檀,教人行檀,讚檀功德,歡喜讚行檀”者,善拔慳貪根,深愛檀波羅蜜,慈悲於衆生,通達諸法實相;以此因緣故,能四種行檀波羅蜜。

‘차례대로의 행인 차제행(次第行)’이라 함은,  가지로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경에서의 설명과 같이, “스스로가 단(檀, 보시)을 행하는 자행단(自行檀)하고, 남들에게도 단(보시)을 행하게 가르치는 교인행단(教人行檀)하며, 단(보시)의 공덕을 찬탄하는 찬단공덕(讚檀功德)하고, 단(보시)를 행하는 이를 기뻐하며 찬탄하는 환희찬행단(歡喜讚行檀)한다”는 것이니, 간탐의 뿌리를  뽑아내고, 단(보시)바라밀을 깊이 사랑하며, 중생에게 자비로써 대하고,법의 실상을 통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능히 자행단(自行檀)  교인행단(教人行檀), 찬단공덕(讚檀功德), 환희찬행단(歡喜讚行檀)의  가지로 단바라밀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或有人自行布施,不能教人布施:或畏他瞋,或畏爲己教布施以之爲恩。如是等因緣故,不能教人。

或有人教人布施,自不能施;或有人種種讚歎布施之德,勸人令施而不能自行。

有人自行布施,亦教人布施、稱讚布施之德,而見人布施不能歡喜。

所以者何?或有破戒惡人行施而不喜見。有人喜見施主而不讚歎,以其邪見不識施果故。

 어떤 사람 스스로는 보시를 행하면서도 남들에게 보시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이도 있나니, 

그는  다른 이가 성을 낼까 두려워서 그렇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보시하는 것이 부담이 될까 해서이니,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는 보시하게 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보시하지 못하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갖가지로 보시의 덕을 찬탄하면서 남에게는 권고하여 보시하게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며,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보시를 행하면서 남에게도 보시하도록 하고, 또한 보시의 덕을 찬탄하면서도,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니, 왜냐하면,  계율을 깨뜨린 어떤 악인이 보시를 한다면, 그것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시주(施主)를 보고 기뻐하면서도 찬탄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그가 삿된 사견을 지니어 보시의 과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如是,各各不能具足。菩薩大悲心、深愛善法故,能行四事,如上說。

菩薩若但自布施、不教他人,但能今世少許利益。是衆生隨業因緣墮貧窮處,是故菩薩教衆生言:“我不惜財物,我雖多施汝,汝亦不得持至後世;汝今當自作,後當自得。”以布施實功德,種種因緣教衆生行施。見行施者雖是破戒惡人,但念其好心布施之德,不念其惡,是故歡喜讚歎。

이와 같이 저마다 각각 두루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대비심(大悲心)으로 착한 선법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네 가지의 사사(四事)를 잘 행하나니,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보살이 만약 스스로는 보시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금세에서는 조금이나마 그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으나, 그들은 업의 인연에 따라 빈궁한 곳에 떨어지고 말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들에게 가르치기를, “나는 재물을 아끼지 않아서 비록 그대에게 많은 보시를 하지만, 그대 또한 후세까지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니, 그대도 지금 당장 스스로 보시를 행하여서 뒷날에 스스로 얻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보시의 진실한 공덕과 갖가지 인연으로써 중생에게 보시를 하도록 가르쳐 주며,

보시를 행하는 이를 보면 비록 그가 계율을 깨뜨린 악인일지라도 다만 그가 좋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덕만을 생각할 뿐, 그 악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기뻐하며 찬탄하는 것이다.

 

復次,見三寶無盡福田中施,故施福不盡,必至佛道;觀其未來無盡功德故,歡喜行是四種布施,世世財富。

是菩薩雖不爲財富布施,未具足阿耨多羅三藐三菩提、六波羅蜜等法,中閒而財富自至;譬如人爲穀故種禾,而稿草自至。菩薩得財物報時,離慳貪心,隨衆生意布施,須食與食等。

 보(寶)의 그지없는 복전(福田) 가운데에 보시하기 때문에  보시하는 복은 다함이 없으며, 

반드시 부처님의 불도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되며,

그리고 그는 미래세의 무진한 공덕을 관찰하기 때문에 기뻐하면서   가지로 보시를 하나니, 세세에서마다 재물이 풍부한 때문이다.

 보살이 비록 재물이 많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보시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6바라밀 등의 법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중간에도 저절로 재물이 풍부하여지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쌀을 거두기 위하여 벼를 심으면 볏짚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보살은 재물의 과보를 얻을 때에는 간탐하는 간탐심(慳貪心) 여의고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보시하되 밥을 구하면 밥을 주는 것이다.

大智度論 釋次第學品 第七十五之餘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5. 차제학품을 풀이함    2

 

復次,須菩提!不應以戒衆念佛,不應以定衆、智慧衆、解脫衆、解脫知見衆念佛。何以故?是衆無有自性。若法無自性,是爲非法。無所有念,是爲念佛。

또한 수보리야, 계율의 계중(戒衆)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고 선정의 정중(定衆)과 지혜의 혜중(慧衆)과 해탈중(解脫衆)과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두는 스스로의 자성(自性)이 없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는 법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염불(念佛)이니라.


復次,須菩提!不應以十力念佛,不應以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念佛,不應以大慈大悲念佛。何以故?是諸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佛。

復次,須菩提!不應以十二因緣法念佛。何以故?是因緣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佛。

 수보리야, 십력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고,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며, 대자대비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든법에는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으로 염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염불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12인연(因緣)의 법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인연의 법은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으로 염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염불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念佛,是爲菩薩初發意次第行、次第學、次第道。

是菩薩摩訶薩次第行、次第學、次第道中住,能具足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修行空三昧、無相、無作三昧,乃至一切種智,諸法性無所有故。是菩薩知諸法性無所有,是中無有性、無無性。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念佛)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초발의하여 차례대로 행하는 차제행(次第行)이요, 차례대로의 배움의 차제학(次第學)이요, 차례대로 닦는 도의 차제도(次第道)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가운데에 머물러념처ㆍ사정근ㆍ사여의족ㆍ오근ㆍ오력ㆍ7각분ㆍ8성도분을 두루 갖추고,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작삼매(無作三昧) 내지는 일체종지를 수행하나니,법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니라. 

 보살은법의 성품(性)이 무소유(無所有)임 아나니, 

 가운데에서는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요, 없는 성품도 없는 무무성(無無性)이니라.

 

須菩提!云何菩薩摩訶薩應修念法?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念善法、不念不善法,不念記法、無記法,不念世閒法、不念出世閒法,不念淨法、不念不淨法,不念聖法、不念凡夫法,不念有漏法、不念無漏法,不念欲界繫法、色界繫法、無色界繫法,不念有爲法、無爲法。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염법(念法)을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착한 선법(善法)을 염하지 않고, 착하지 못한 불선법(不善法)도 염하지 않으며, 기별된 기법(記法)을 염하지 않고 무기법(無記法)도 염하지 않으며, 세간법(世間法)을 염하지 않고 출세간법(出世間法)도 염하지 않으며, 깨끗한 정법(淨法)을 염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부정법(不淨法)도 염하지 않으며, 성인의법(聖法)을 염하지 않고 범부법(凡夫法)도 염하지 않으며, 유루법(有漏法)을 염하지 않고, 무루법(無漏法)도 염하지 않으며, 욕계에 매인 욕계계법(欲界繫法)과 색계에 매인 색계계법(色界繫法)과 무색계에 매인 무색계계법(無色界繫法)도 염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도 염하지 않느니라.

 

何以故?是諸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法。念法中學無所有性故,乃至當得一切種智。

是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得諸法無所有性;是無所有性中,非有相、非無相。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修念法,於是法中,乃至無少許念,何況念法!

왜냐 하면,  모든법은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며, 만약 제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이니, 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염법(念法)이니, 염법에서는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을 배우는 까닭이니, 이에 일체종지를 얻게 되느니라.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제법의 있는  성품이 없음의 무소유성(無所有性)을 얻게 되나니,  무소유성(無所有性)에는 있는 것도 아닌 비유상(非有相)이고, 상이 없는 것도 아닌 비무상(非無相)이니라.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염법(念法)을 닦아야 하나니,   가운데에서는 약간 염(念, 생각)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법을 염하는 것이 겠는가?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應修念僧?

須菩提!菩薩摩訶薩念僧,無爲法故分別有佛弟子衆,是中乃至無有少許念,何況念僧!如是,菩薩摩訶薩應修念僧。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應修念戒?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應念聖戒 無缺戒、無隙戒、無瑕戒、無濁戒、無著戒、自在戒、智者所讚戒、具足戒、隨定戒。應念是戒無所有性,乃至無少許念,何況念戒!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염승(念僧)을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승(僧)을 염할 때, 이는 무위(無爲)의 법이므로 분별하여 부처님의 제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조금도 생각할 것이 없거늘 하물며 승(僧)을 염하는 것이 겠는가?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염승(念僧)을 닦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염계(念戒)를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 초발의를 한 때부터 성인의 계율인 성계(聖戒)ㆍ결함이 없는 계율의 무결계(無缺戒)ㆍ틈이 없는 계율의 무극계(無隙戒)ㆍ흠이 없는 계율의 무가계(無瑕戒)ㆍ흐리지 않은 계율의 무탁계(無濁戒)ㆍ집착이 없는 계율의 무착계(無著戒)ㆍ자유로운 계율의 자재계(自在戒)ㆍ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계율의 지자소찬계(智者所讚戒)ㆍ구족계(具足戒)와정에 따른 계율의 수정계(隨定戒)를 염해야 하나니, 

 계는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니, 약간의 염(念, 생각)도 없거늘 하물며 계율을 염하는 염계(念戒)이겠는가?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應念捨 若自念捨、若念他捨,若捨財、若捨法、若捨煩惱;觀是捨不可得故,乃至無少許念,何況念捨!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念捨。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 초발의한 때부터 마땅히 버릴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하여야 하느니라. 

스스로가 버리는 사(捨)를 염하고 다른 이도 버릴 것을 염하게 하여, 재물도 버리고, 법도 버리고, 번뇌도 버리나니,  버리는 사(捨)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에 약간의 염(念, 생각)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버릴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이겠는가?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버리는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를 하여야 하느니라.

 

須菩提!云何菩薩摩訶薩應念天?

須菩提!菩薩作是念:‘四天王諸天所有信、戒、施、聞、慧,此閒命終,生彼天處;我亦有是信、戒、施、聞、慧。乃至他化自在天所有信、戒、施、聞、慧,此閒命終,生彼天處;我亦有是信、戒、施、聞、慧。’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念是天無所有性中尚無少許念,何況念天!

須菩提!菩薩摩訶薩行是六念,是名次第行、次第學、次第道。”

수보리야,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하늘을 염하는 염천(念天)하는 것인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33천의 6번째 하늘이며 천상계에서 가장 낮은 하늘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모든 하늘은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가 있었던 이로써,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난 것이니, 나에게도 또한 그러한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 있다’고 하며, 

나아가 ‘욕계의 육욕천에서 제6천이며 남의 것을 빼앗아 스스로가 즐기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까지도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 있었던 이로서,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난 것이며, 나에게도 또한 그러한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가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하늘들을 생각하되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염(念, 생각)조차 없거늘 하물며 하늘을 염하는 염천(念天)이겠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육념(六念)을 행하여야 하나니, 이를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하느니라.”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無所有性,所謂念色乃至識、眼乃至意、色乃至法,是無所有性;眼界乃至意識界,是無所有性;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內空乃至無法有法空、四念處乃至八聖道分、佛十力乃至一切種智,是無所有性。

世尊!若一切法無所有性者,是則無道、無智、無果。”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에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이른바 () 느낌()ㆍ생각() 지어감()ㆍ분별()의 오중(五衆, 오온)과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의 육정(六情)과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의 육진(六塵)까지를 염(念)하는 것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이며, 

안계(眼界)에서 이계(耳界)ㆍ비계(鼻界)ㆍ설계(舌界)ㆍ신계(身界) ㆍ 의식계(意識界)까지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이며,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8성도분까지와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까지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인지요?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에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여기에는 도(道)도 없고 지혜의 지(智)도 없으며 과위의 과(果)도 없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汝見是色性實有不?乃至一切種智實有不?”

須菩提言:“不見也!世尊!”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물질의 성품인 색성(色性)이 실로 존재한다고 보는가?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실로 존재한다고 보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須菩提:“汝若不見諸法實有,云何作是問?”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약 제법이 실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인가?”


須菩提言:“世尊!我於是法不敢有疑,但爲當來世諸比丘求聲聞、辟支佛道、菩薩道者。

是人當如是言:‘若一切法無所有性,誰垢誰淨?誰縛誰解?’是不知不解故而破於戒、破正見、破威儀、破淨命;是人破此事故,當墮三惡道。

世尊!我畏當來世有如是事,以是故問佛。世尊!我於是法中信,不疑不悔。”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에 대하여 감히 의심하지 않지만, 다만 앞으로 오는 세상의 당래세(當來世)에 모든 비구로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구하고 보살의 도를 구하는 이들을 위하여 질문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만약 일체법에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누가 더러운 자이며? 그 누가 깨끗한 자이며?  누가 속박된 자이고?  누가 해탈하는인가?’라고 할 것이며, 

그들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까닭에 계율을 파괴하고, 바른 정견을 파괴하고, 위의(威儀)를 파괴하고, 깨끗한 생활 유지의 정명(淨命)을 파괴할 것이며,  사람들이 이러함을 파괴한 까닭에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앞으로 오는 세상의 당래세(當來世)에 이러함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에 대하여 믿어서 의심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 불의불회(不疑不悔)입니다.”


▶論. 釋曰:須菩提伏受佛語,一切諸法雖空,而能起四禪、神通,是大菩薩近成佛者能行;今未知新發意者云何行,是故疑,問佛:“世尊!新發意菩薩摩訶薩云何於諸法無所有性中次第行、次第學、次第道,用是次第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신복하여 받아들이는 복수(伏受)하면서 ‘일체법이 비록 공하다 할지라도 능히 사선(四禪)과 신통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함은 대 보살로서 거의 부처를 이룬 이들은  행하는 것이지만,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들은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의심하여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새로 뜻을  신발의 보살마하살은 어떻게법의 무소유성(無所有性) 가운데에서 차례대로 행하는 차제행(次第行)고 차례대로의 배움의 차제학(次第學)과 차례대로 닦는 도의 차제도(次第道) 닦으며, 어떻게  차례에 따른 차제행(次第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以次第行、次第學、次第道故,當知是新發意菩薩;雖無量劫發意,未得諸法實相,皆名新學。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때문에  새로이 뜻을  신발의 보살이 비록 무량한  동안 뜻을 내었을지라도, 아직 제법의 실상(實相)을 얻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이 모두를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이라 한다는 것 알아야 한다.


問曰:若如是人是新學,但應教行布施、持戒等,佛何以教令於諸法無所有畢竟空性中行?

묻나니,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 이라면, 다만 보시와 지계 등을 행하라고만 가르치면 될걸이거늘,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제법의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의 성(性) 가운데에서 행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까?


答曰:今明始入無所有、畢竟空法故,令行無所有。而是菩薩以無所有畢竟空和合布施、持戒等行;譬如小兒服藥,須蜜乃下。是故雖新發意,亦觀深空,無咎。

답하나니, 지금에야 비로소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의 법에 들어가는 것을 밝히신 까닭에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를 행하게 하는 것이니,  보살은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으로 보시와 지계 등의 행에 화합시키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꿀을 발라주면 이내 삼키는 것과 같이, 비록 새로 뜻을  신발의일지라도 깊은 심공(深空)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니,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佛答須菩提:“菩薩若初從諸佛聞,若從多供養諸佛者聞。”諸佛者,若過去、若現在。

多供養諸佛者,遍吉、觀世音、得大勢菩薩、文殊師利、彌勒菩薩等。四種聲聞聖人義,如先說。

辟支佛不樂說法故,不說。諸佛等聖人皆因無所有故有是分別。聖人雖有禪定等諸功德,皆爲涅槃故。涅槃卽是寂滅相、無所有法,是故說:“諸聖人,皆因涅槃有是差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혹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또는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한 이로부터 듣게도 된다”고 하셨으니,

‘모든 부처님’이란, 과거와 현세의 부처님이며,

‘모든 부처님께 많이 공양한 이’라 함은, 변길(遍吉, 보현)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문수사리(文殊舍利)보살ㆍ미륵(彌勒)보살 등이다.

네 가지 성문(聲聞)인 성인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벽지불은 설법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 등 성인 모두는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를 인(因)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분별이 있는 것이며, 

성인은 비록 선정 등 모든 공덕이 있을지라도 모두가 열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열반은 곧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요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법이기 때문에 ‘모든 성인은 열반으로 인하여 이러한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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