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之餘 卷八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을 풀이함 3

 

是菩薩自不著故,亦教他令得無所著,無所著故無所㝵。譬如佛所化人布施,亦不受布施報,但爲度衆生故;乃至行一切種智,不受一切種智報。菩薩摩訶薩亦如是,行六波羅蜜,乃至一切法有漏、無漏、有爲、無爲,不住亦不受報,但爲度衆生故。何以故?是菩薩摩訶薩善達一切諸法相故。”

 보살은 스스로가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집착함이 없게 하며, 집착함이 없기 때문에 장애되는 것도 없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부처님께서 변화로 만든 화인(化人) 보시를 하면서도 또한 보시의 과보를 받지 않으며, 다만 중생들을 위하여 일체종지를 행할 뿐, 일체종지의 과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6바라밀 내지는 일체법의 유루ㆍ무루와 유위ㆍ무위를 행하면서도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이고 또한 과보를 받지도 않는 불수보(不受報)이나, 다만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 뿐이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의 법상(法相) 통달한 때문이니라.”


▶論. 問曰:八十隨形好是莊嚴身法,“識滿足”何以在隨形好中?

▷논. 묻나니, 80수형호는 몸을 장엄하는 법이거늘 ‘의식(識)이 만족하다는 식만족(識滿足)’이 무엇 때문에 수형호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까?


答曰:此識是果報生識,世閒好醜自然而知。凡人識不具足故,學人法乃知;佛一歲具足滿乃生故,身、識皆具足。餘人若八月、若九月處胎,摠言十月;菩薩處胎十月,摠得一歲,身根具足故,果報得識亦具足。

답하나니, 이 의식(識)은 과보로 생긴이니, 세간의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저절로 아는 것이다. 

범부는 의식(識)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까닭에 인간의 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한 해 동안 완전히 갖추신 뒤에야 태어나신 때문에 몸과 의식의 신식(身識)이 모두 완전하게 갖추셨으며,

 밖의 다른 사람들은 여덟  또는 아홉  동안 어머니의 태(胎)에 있으므로 통틀어 ‘열  동안’이라고 말하지만, 보살은  안에   동안 있었으므로 통틀어 ‘한  동안’이라 하는 것이며,  동안에 몸의 감관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이므로 과보로 얻는 의식(識)도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이다.


問曰:足安立住處與安住處何異?

묻나니, 그 머무르는 곳에서 평평한 발바닥으로 편안히 선다는 족안립주처(足安立住處)와 머무르는 곳에서 편안하다는 안주처(安住處)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住處安者,如白衣勇士,牢持器仗,安據住處,則不可動。又出家時,魔民、惡鬼無能動轉令退敗者。四十二字義,如摩訶衍中說。一字盡入諸字者,譬如兩一合故爲二,三一故爲三,四一爲四,如是乃至千萬。又如阿字爲定,阿變爲羅,亦變爲波;如是盡入四十二字。四十二字入一字者,四十二字盡有阿分,阿分還入阿中。

답하나니, ‘머무르는 곳에서 편안하다는 안주처(安住處)’라 함이란, 마치 속인 중에 용감한 병사가 무기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할 곳에 확고히 의거하여 있으면 움직일  없는 것과 같으며, 또한 출가했을 때에는 악마의 백성인 마민(魔民)이나 악귀(惡鬼)들이 그를 동요시켜 물러나게   없는 것과 같으며, 

‘42자(범어)’의 뜻에 대해서는 마하연(摩訶衍)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한 글자의 일자(一字)가 모든 글자에 모두  들어간다’고 함이란, 

비유하자면, 마치 둘이라는 것은 하나가 하나가 합한 까닭에 둘이 되고, 셋도 하나 하나가 합한 까닭에 셋이 되며, 넷도 하나 하나가 합한 까닭에 넷이 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해서 천ㆍ만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 범어의 초자(初字)인 아자(阿字)는 일정하지만 아(阿)가 변하여 라(羅)가 되기도 하고 또한 변하여 파(波)가 되는 것과도 같나니, 이렇게 하여 모두  42자(字)에 들어가는 것이며, 

‘범어의 42자가 하나의 일자(一字) 들어간다’고 함이란, 42자에는 모두가 아(阿)자의 부분이 있어서 아(阿)자의 부분은 다시 아(阿)자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善知字故,善知諸法名;善知諸法名故,善知諸法義。無字卽是諸法實相義。所以者何?諸法義中,諸法無名字。須菩提問:“若諸法畢竟空無名字,云何菩薩住果報六神通,爲衆生說諸法?若畢竟無衆生,則無有法!”

글자(字)를  알기 때문에법의 이름을  알고,법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모든 법의(法義)를  알며, 

‘글자가 없다는 무자(無字)’라 함이라, 그것이 곧 제법의 실상의(實相義)란 이니, 왜냐하면,법의 법의(法義)에는 모든 법에 대한 명자(名字)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제법이 필경공이라서 이름과 글자의 명자(名字)가 없다면, 보살이 어떻게 과보로 얻는신통에 머물러서 중생들을 위하여법을 설하겠습니까? 

만약 필경에 무중생(無衆生)이라면  법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佛可須菩提言:“如是!以十八空故,一切法不可得,我、衆生乃至知者、見者,乃至當知佛、菩薩皆空。如是知已,而爲衆生說是空法。”

若衆生是有而爲說空,是則不可;以衆生空,但從顚倒有,是故菩薩不失於空而爲說法。

不失者,不作諸法皆空,所說不空;若以所說不空,則爲失空相;若口說空而心是有,是亦爲失。

이에 부처님 께서는 수보리 존자의 말을 인가하면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18공(空)이기 때문에 일체법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니, 나(我)와 중생 내지는 아는 지자(知者)와 보는 견자(見者) 얻지 못하며,

부처님과 보살에 이르기까지도 모두가 공(空)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알고서 중생들을 위하여  공법(空法)을 설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존재하는 것임에도 그들에게 공을 설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만 중생은 공한 것이요, 다만 뒤바뀜의 전도(顚倒)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보살은 공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이다.

‘잃지 않는 불실(不失)’이라 함이란,법 모두가 공하지 않다면, 말한 바가 불공(不空)이라는 것이니,

‘말한 바가 불공(不空)이다’고 한다면, 곧 공한 공상(空相)을 잃게 되는 것이니, 

만약 입으로는 공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존재한다면, 그것은 잃는 실(失)이 되는 것이다.


此中佛自說:“不二,不壞法相故。”欲明了是事,說譬喩:“如佛所化作化人,而爲說法,持戒、布施諸功德。”若以如是方便說法,是則無咎。則能拔出衆生於顚倒,無縛無解故。
第一義中無縛無解,世諦故有縛有解。

此中佛自說因緣:“色不縛不解。何以故?是不縛不解中,無色相故。乃至識亦如是。”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둘이 아닌 불이(不二)를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법상(法相)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 분명히 알게하시고자 비유로써 말씀하셨으니, 마치 부처님께서 변화로 만든 화인(化人) 같아서, 그는 변화로  화인이지만 그를 위하여 지계(持戒)와 보시  모든 공덕에 대한 법을 설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방편을 써서 법을 설할지라도 그것은  허물이 없는 것이니, 중생을 뒤바뀐 전도됨에 구출하기 때문이요, 속박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무박무해(無縛無解)이기 때문이다.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속박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무박무해(無縛無解)이나,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이기 때문에 속박이 있고 벗어남도 있는 유박유해(有縛有解)인 것이다. 

여기에서도 부처님께서 친히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물질(色)은 속박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불박불탈(不縛不脫)이니, 왜냐 하면,  속박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 불박불탈(不縛不脫) 가운데에서는 물질의 색상(色相)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신 것이다.


菩薩如是用不住法故,住空法中爲衆生說法;衆生不可得,衆生及一切法不可得故。

此中佛自說因緣,所謂無所有法不住無所有,譬如虛空不住虛空。自性法不住自性法,

譬如火不住火中。他性法不住他性法,譬如水性中無火性,又他性不定故。

보살은 이와 같이 머무르지 않는 불주법(不住法)으로써 공한법(空法) 가운데에 머물러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나, 중생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니, 중생과 일체법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다.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이른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마치 허공이 허공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자성법(自性法)은 자성법(自性法)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마치 불이  가운데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다른 성품의 타성법(他性法)이 타성법(他性法)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마치 물의 성품 가운데에 불의 성품이 없는 것과 같으며, 또한 타성(他性) 일정하지 않은 부정(不定)이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다.

 
若能如是淸淨說法,是菩薩於諸佛賢聖則無有過。何以故?諸佛、賢聖不著一切法,說法者亦不著一切法。

諸佛、賢聖以畢竟空、皆寂滅相爲心所行,說法者亦如是。

諸佛、賢聖入三解脫門,得一切法實性,所謂無餘涅槃;說法者隨是法故,無咎。

此中佛自說因緣:“諸佛、賢聖得是法已,爲衆生說法,不轉法性,法性空無相故。”

만약 이와 같이 청정하게 법을 설한다면,  보살은 곧 모든 부처님과 성현에 대하여 허물이 없나니,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법을 설한 설법자(說法者) 또한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필경공으로써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심(寂滅相心)의 행할 바를 삼기 때문이니, 법을 설하는 설법자(說法者) 또한 이와 같다.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해탈문(三解脫門)에 들어가 일체법의 진실한 실성(實性) 얻나니, 이른바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니,  법을 설하는 설법자  법에 따르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법을 얻은 뒤에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법성(法性)을 굴리지 않나니, 법성은 공(空)하여 무상(無相)이 때문이다”고 하셨다.


須菩提問:“若不轉法性,色等諸法與法性異不?”

佛答:“不也!何以故?色等諸法實相卽是法性故。”佛意:以菩薩說法時,亦不壞法性。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법성을 굴리지 않는다면 물질(色) 등의 제법은 법성과 다른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아니니라”고 하셨으니,

왜냐 하면, 물질(色) 등의법의 실상 그것이 곧 법성(法性)이기 때문이니, 부처님의 뜻은 보살이 설법할 때에도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須菩提問:“色等諸法亦與法性不異,何以故但貴法性?”以佛答“色不異法性”故,

故須菩提難:“若不異者,云何分別有善惡、白黑、須陁洹等諸果?”

佛答:“色等法雖不離法性,以世諦故有分別,於第一義中無分別。”

何以故?得第一義聖人無所分別,聞有所得不喜,聞無所有不憂;得空無相證故,乃至微細法尚不取相,何況分別有善惡!未得實相者,欲得第一義故,有所分別。

佛此中自說因緣:“是法無言說,亦無生滅垢淨法者,所謂畢竟空、無始空。”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물질(色) 등의법이 또한 법성(法性)과 다르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다만 법성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물질(色)은 법성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가 따져 묻기를 “만약 다르지 않다면, 어찌하여 분별하여서 선(善)ㆍ악(惡)과 백(白)ㆍ흑(黑)과 수다원 등의 모든 과위가 있는 것입니까?”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법이 비록 법성을 여의지 않을라도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분별이 있는 것이니, 으뜸가는 이치의 제일의(第一義)에서는 분별이 없다”라고 하셨다.

왜냐 하면, 제일의(第一義) 얻은 성인들은 분별하는 것이 없어서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이라고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라고 들어도 근심하지 않으니, 공(空)하고 무상(無相) 증득한 까닭이다. 

이에 미세한 법조차 상(相) 취하지 않거늘, 하물며 분별하여 선과 악이 있다고 하겠는가?

아직 실상을 얻지 못한 이로 하여금 제일의(第一義) 얻게 하려는 까닭에 분별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운데에서 친히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 법에는 언설(言說)도 없고, 또한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이거나 더럽고 깨끗하다는 구정(垢淨)의 법이 없나니, 이른바 필경공(畢竟空)이요 무시공(無始空)이다”고 하셨다.

 
問曰:此中何以但說二空名爲法?

묻나니,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필경공(畢竟空)과 무시공(無始空),  가지 공만을 법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一切所有:若法、若衆生。若言畢竟空,則破諸法;若言無始空,則破衆生。破此二法已,則一切法盡破。

此中菩薩爲衆生說法,是故以二空破二事;雖有餘空,不如畢竟空甚深畢盡。餘空如火燒木,猶有灰燼;畢竟空無灰無燼。有人言:若說十八空無咎,略說故說二空。

답하나니, 일체의 존재하는 법과 중생에 대하여 ‘필경공’ 이라고 하 법을 파괴하는 것이며,

‘무시공’ 이라고 하면  중생을 파괴하는 것이니, 

제법과 중생, 이  가지 법을 파괴하고 나면  일체 모두를 파괴한 것이 되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가지 공으로써  가지를 파괴하나니,

비록  밖의 공이 있을지라도 필경공이 심히 깊어서 필경에 다하는 진(盡)보다 못하나니, 

 밖의 공은 마치 불이 나무를 태워도 여전히 재와 남은 불씨가 있지만, 필경공은 남은 재도 없고 남은 불씨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떤 말하기를 “18공(空)으로 설명하여도 허물할 것은 없지만, 요약하여하는 까닭에 필경공과 무시공,  가지 공만을 말한다”고도 하였다.


須菩提言:“若以世諦故分別有善惡、白黑及諸聖果者,第一義中凡夫人應有須陁洹等聖果!”

何以故?若以世諦虛妄中分別有諸賢聖者,第一義中凡夫應作賢聖。

須菩提分別實相、凡夫爲異。佛言:“第一義一相。”是故須菩提言:“凡夫應是聖人!”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만약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분별하여 선ㆍ악ㆍ백ㆍ흑과 모든 성인의 과위가 있다고다면, 범부에게는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에서도 수다원  성인의 과위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니, 

왜냐 하면 만약 세제(世諦)의 허망한 가운데에서 분별하면서 ‘모든 성현이 있다’고 한다면,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에서는 범부도 성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 존자는 실상(實相)과 범부는 다르다고 분별하고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일의(第一義)는  모양의 일상(一相)이니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까달게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그렇다면 범부도 마땅히 성인이어야 합니다”고  것이다.


爾時,佛答:“若凡夫知分別是第一義、是世諦者,凡夫人應有須陁洹等諸聖果;

以凡夫實不知道,不知分別道,不知行道、修道,何況得道果!”

그 때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약 범부가 ‘이것은 제일의(第一義)이다. 이것은 세제(世諦)이다’라고 분별한다면, 범부에게도 마땅히 수다원 등 모든 성인의 과위가 있어야 하지만,

범부는 실로 도(道)를 알지 못하고 도를 분별할 줄도 모르며, 도를 행하거나 도를 닦을 줄도 모르거늘, 하물며 도의 과위를 얻음이겠는가?”라고 하셨다.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之餘 卷八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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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사섭품을 풀이함 2

 

衆生不可得故,當知佛十力空、四無所畏空,四無㝵智空、十八不共法空,當知須洹果空、斯含果空、阿那含果空、阿羅漢果空、辟支佛道空,當知菩薩地空,當知阿耨多羅三藐三菩提空。

중생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10력이 공(空)하고, 4무소외도 공하며, 4무애지도 공하고, 18불공법도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고, 수다원(須陀洹) 과(果) 공하고 사다함(斯陀含) 과위도 공하며, 아나함(阿那含) 과위도 공하고 아라한(阿羅漢) 과위도 공하며, 벽지불(辟支佛) 도(道) 또한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보살위도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見一切法空,爲衆生說法,不失諸空相。

是菩薩如是觀時,知一切法無㝵;知一切法無㝵已,不壞諸法相,不二不分別,但爲衆生如實說法。

譬如佛所化人,化人復化作無量千萬億人,有令布施者,有持戒、有忍辱、有精進、有禪定、有智慧、有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者。於汝意云何?佛所化人有分別破壞諸法不?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일체법은 공(空)한 것으로 보고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일체의 공상(空相)을 잃지 않나니,

이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일체법에는 장애가 없는 것임을 알며, 일체법에 장애가 없음을 안 뒤에는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분별하지 않는 불분별(不分別)의 제법의 상(相)을 파괴하지 않으며, 다만 중생들을 위하여 사실대로 설법할 뿐이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부처님이 변화로 화인(化人)을 만들어서, 그 변화로 된 화인이 다시 변화로 무량한 천만억의 화인을 만들었을 때, 그들로 하여금 교화하여 보시하게 하는 이도 있고, 교화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는 이도 있으며, 교화하여 인욕을 닦게 하는 이도 있고, 교화하여 정진을 행하게 하는 이도 있으며, 교화하여 선정을 닦게 하는 이도 있고, 교화하여 지혜를 닦게 하는 이도 있으며, 교화하여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을 닦게 하는 이도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는가?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화인이 제법을 분별하면서 파괴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須菩提言:不也!世尊!是化人無心、無心數法,云何分別破壞諸法?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변화로  화인에게는 마음도 없는 무심(無心)이고,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조차 없거늘, 어떻게법을 분별하면서 파괴하겠습니까?”

 

“以是故,須菩提!當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爲衆生如應說法,拔出衆生於顚倒地,令衆生各得如所應住地,以不縛不脫法故。

何以故?須菩提!是色不縛不脫,受、想、行、識不縛不脫;色無縛無脫不是色,受想行識無縛無脫不是識。何以故?色畢竟淸淨故,受、想、行、識乃至一切法若有爲、若無爲,亦畢竟淸淨故。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알맞게 설법하여 중생들을 뒤바뀐 자리의 전도지(顚倒地)에서 뽑아내어  중생으로 하여금 저마다 알맞게 머무를 자리를 얻게 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속박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불박불탈법(不縛不脫法)이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수보리야,  물질(色)은 속박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불박불탈(不縛不脫)이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속박하지도 벗어나지도 않는 불박불탈(不縛不脫)이기 때문이니, 

물질(色)은 속박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것이라 그것은 물질(色)이 되지 않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속박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것이라 그것은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물질(色)은 필경청정(畢竟淸淨)이 때문이요,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는 유위(有爲)이거나 무위(無爲)의 일체법 또한 필경청정(畢竟淸淨)이 때문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爲衆生說法,亦不得衆生及一切法。一切法不可得故,菩薩以不住法故,住諸法相中,所謂色空,乃至有爲、無爲法空。

何以故?色乃至有爲、無爲法自性不可得故,無有住處。無所有法不住無所有法,所有法不住所有法,自性法不住自性法,他性法不住他性法。何以故?是一切法皆不可得故。不可得法當住何處?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도 중생과 일체법은 얻을  없으며, 

일체법을 얻을  없기 때문에 보살은 법에 머무르지 않음으로써법의 법상(法相) 머무르나니, 

이른바 물질(色)은 공(空)한 것이며, 나아가 유위와 무위의 법이 공한 것이기 때문이니,

왜냐 하면, 물질(色) 내지는 유위법과 무위법의 자성(自性)은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에 머무르는 곳이 없는 무주처(無住處)이기 때문이니라.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 머무르지 않고

있는 소유법(所有法)은 있는 소유법(所有法) 머무르지 않으며, 

자성법(自性法)은 자성법(自性法)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성품의 타성법(他性法)은 타성법(他性法) 머무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 모두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얻을  없는 불가득법(不可得法)이거늘 어느 곳에서 머무를 수 있겠는가?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是諸空,能如是說法,如是行般若波羅蜜,於諸佛及聲聞、辟支佛無有過。何以故?諸佛、菩薩、辟支佛、阿羅漢得是法已,爲衆生說法,亦不轉諸法相。何以故?如、法性、實際不可轉故。所以者何?諸法性無故。”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공(空)으로써 능히 이와 같이 설법하고,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기에 모든 부처님과 성문과 벽지불에 대하여 허물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과 아라한은  법을 얻은 뒤에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할 때에도 또한법의 법상(法相) 옮길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왜냐 하면, 여(如)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는 옮길  없는 것이니,법의 성품은 없는 성무(性無)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法性、如、實際不轉,色與法性異不?色與如、實際異不?受、想、行、識,乃至有爲、無爲法,世閒、出世閒,有漏、無漏異不?”

佛言:“不也!色不異法性、不異如、不異實際;受、想、行、識,乃至有漏、無漏亦不異。”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법성과 여와 실제를 옮길  없다면, 물질(色)과 법성은 다른 것이며, 물질(色)과 여ㆍ실제도 다른 것인지요? 

또한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는 유위법ㆍ무위법과 세간ㆍ출세간과 유루(有漏)ㆍ무루(無漏)와도 다른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물질(色)은 법성과 다르지 않고 여와도 다르지 않고 실제와도 다르지 않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에서 유루ㆍ무루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다르지 않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色不異法性、不異如、不異實際,受、想、行、識,乃至有漏、無漏不異者,云何分別黑法有黑報,所謂地獄、餓鬼、畜生;白法有白報,所謂天及人;黑白法有黑白報;不黑不白法有不黑不白報,所謂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물질(色)이 법성과 다르지 않고 여와 다르지 않고 실제와 다르지 않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에서 유루ㆍ무루에 이르기까지 다르지 않다면, 

어찌하여 분별하여 ‘검은 흑법(黑法)에는 검은 과보의 흑보(黑報)로써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있고, 

 백법(白法)에는  과보의 백보(白報)로써 이른바 모든 하늘과 사람이 있으며, 

검고  흑백법(黑白法)에는 검고  과보의 흑백보(黑白報)가 있으며,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불흑불백법(不黑不白法)에는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과보의 불흑불백보(不黑不白報)가 있어서,

이른바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다’고 하는지요?”


佛告須菩提:“世諦故,分別說有果報,非第一義;第一義中不可說因緣果報。何以故?是第一義,實無有相,無有分別,亦無言說,所謂色乃至有漏、無漏法,不生不滅相、不垢不淨,畢竟空、無始空故。”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분별하면서 과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으뜸가는 이치인 제일의(第一義)에서 분별하는 것은 아니니,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인연과 과보를 말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이 제일의(第一義)에는 실로 상도 없고 분별도 없고 또한 언설(言說)도 없기 때문이니,

이른바 물질(色) 내지는 유루법ㆍ무루법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상(相)이요,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서 필경공(畢竟空)이요 무시공(無始空)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以世諦故,分別說有果報,非第一義者,一切凡夫人應有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분별하면서 과보가 있다 하는 것이고,

제일의(第一義)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면, 일체의 범부인에게도 마땅히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凡夫人爲知是世諦法、是第一義諦不?若知,是凡夫人應是須陁洹果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以凡夫人實不知世諦、不知第一義諦、不知道、不知分別道果,云何當有諸果?

須菩提!聖人知世諦、知第一義諦,有道、有修道,以是故聖人差別有諸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범부인이 ‘이것은 세속 이치인 세제법(世諦法)이다. 이것은 제일의(第一義)이다’라고 알고 있는가?

만약 그것을 알고 있다면 범부인에게도 마땅히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범부인은 실로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도 알지 못하고, 제일의(第一義)도 알지 못하고, 도(道)도 알지 못하고, 도과(道果)를 분별하는 것도 알지 못하거늘, 어떻게 모든 과위가 있겠는가?.
수보리야, 성인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를 알고, 제일의(第一義)도 알며, 도(道)도 있고 도를 닦는 것도 있기 때문에 성인은 차별되고 모든 과위가 있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修道得果不?”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도를 닦는 수도(修道)를 하면 과위를 얻는지요?”

 

佛言:“不也!須菩提!修道不得果,不修道亦不得果,亦不離道得果,亦不住道中得果。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爲衆生故分別果,亦不分別是有爲性、無爲性。”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수보리야, 도를 닦는 수도(修道)를 하여도 과위를 얻지 못하고, 

또한 도를 닦지 않는 불수도(不修道)이어도 과위를 얻지 못하며, 

도를 여의지 않는 불리도(不離道)를 이어도 과위를 얻으며,

또한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도 과위를 얻느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들을 위하여 과위를 분별하면서도, 또한 ‘이것이  유위성인가, 무위성인가’를 분별하지 않느니라.”


“世尊!若不分別有爲性、無爲性得諸果者,云何世尊自說:‘三結盡,名須陁洹果;婬、怒、癡薄故,名斯陁含果;五此閒結盡,名阿那含果;五彼閒結盡,名阿羅漢果;所有集法皆滅散相,名辟支佛道;一切煩惱習斷故,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世尊!我當云何知不分別有爲性、無爲性得諸果?”

“세존이시여, 만약 유위성과 무위성을 분별하지 않고 모든 과위를 얻는다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번뇌의 유신삼결(有身三結), 계금취결(戒禁取結), 의결(疑結)의 삼결(三結)이 다한 것을 수다원의 과위라 하고,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이 얇기 때문에 사다함의 과위라 하며, 

탐결(貪結) 에결(恚結) 만결(慢結) 질결(嫉結) 간결(慳結)의 다섯 가지  세간의 번뇌인 오차간결(五此間結, 오결)이 다한 것을 아나함의 과위라 하고, 

다섯 가지  세간의 번뇌인 오피간결(五彼間結)이 다한 것을 아라한의 과위라 하며, 

모든 쌓임의 집법(集法)이 사라지고 흩어진 벽지불의 도라 하고, 

일체 번뇌의 습기가 끊어진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다’고 하시는지요?

세존이시여, 저는 어떻게 유위성과 무위성을 분별하지 않으면서 모든 과위를 얻는 것을   있겠는지요?”


佛告須菩提:“汝以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諸果是有爲、是無爲?”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에게는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이 모든 과위가 곧 유위인가? 아니면 무위인가?”

 

須菩提言:“世尊!皆是無爲!” “須菩提!無爲法中有分別不?”“不也!世尊!”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모두 무위입니다.”
“수보리야, 무위법 가운데에서도 분별이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通達一切法若有爲、若無爲一相,所謂無相,是時有分別若有爲、若無爲不?”

“不也!世尊!”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체법의 유위와 무위는 동일한 일상(一相)이라서, 이른바 무상(無相)이라는 것을 통달한 때에도 유위나 무위라고 분별함이 있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爲衆生說法,不分別諸法,所謂內空故,乃至無法有法空故。是菩薩自得無所著法,亦教人令得無所著法,若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初禪乃至第四禪,慈、悲、喜、捨,無邊虛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若四念處乃至一切種智。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도 제법을 분별하지 않나니, 이른바 내공이기 때문이요 나아가 무법유법공이기 때문이니,

이 보살은 스스로 집착하는 것이 없는 무소착법(無所著法)을 얻고, 또한 남들도 교화하여 집착하는 것이 없는 무소착법(無所著法)을 얻게 하고,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과 초선 내지는 제4선과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와 무변허공처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4념처 내지는 일체종지를 얻게 하느니라.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之餘 卷八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을 풀이함 1

 

▶經. “云何爲八十隨形好?一者、無見頂;二者、鼻直高好,孔不現。;三者、眉如初生月,紺琉璃色;四者、耳輪埵成;五者、身堅實,如那羅延;六者、骨際如鉤鎖;七者、身一時迴如象王;八者、行時足去地四寸,而印文現;九者、爪如赤銅色,薄而潤澤;十者、膝骨堅著圓好;十一者、身淨潔;十二者、身柔軟;十三者、身不曲;十四者、指長纖圓;十五者、指文莊嚴。

▷경. “무엇을 80수형호(隨形好)라 하는가?

하나는 정수리를 볼 수 없는 무견정(無見頂)이고,

둘은 코가 곧고 높고 잘 생겨서 구멍이 드러나지 않으며,

셋은 눈썹이 초승달 같고 남빛을 띤 유리(琉璃)의 빛과 같으며,

넷은 귓볼이 두툼한 이윤타성(耳輪埵成)이며,

다섯은 몸이 견실하여 마치 나라연(那羅延, narāyaṇa)과 같으며,

여섯은 뼈마디가 얽힌 것이 쇠사슬과 같은 골제여구쇄(骨際如鉤鎖)이며,

일곱은 몸을 한꺼번에 돌려 돌아보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으며,

여덟은 걸어 다닐 때에는 발이 땅에서 네 치쯤 뜨면서 도장 무늬가 나타나며,

아홉은 손발톱이 적동색을 띠면서 얇고 윤택하며,

열은 무릎 뼈가 견고하게 붙어 있으며 둥글고 아름다우며,

열 하나는 몸이 정결하며 깨끗한 신정결(身淨潔)이며,

열 둘은 몸이 부드럽고 유연한 신유연(身柔軟)이며,

열 셋은 몸이 굽지 않은 신불곡(身不曲)이며,

열 넷은 손가락이 길고 가늘고 둥근 지장섬원(指長纖圓)이며,

열 다섯은 손가락이 무늬로 장엄되어 있는 지문장엄(指文莊嚴)이며, 

 

'나라연'(那羅延), narāyaṇa의 음역이며, '나라연'천(那羅延天), 나라야나(那羅野拏), '나라연'나(那羅延那), 생본(生本), 인생본(人生本), 견고역사(堅固力士), 구쇄역사(鉤鎖力士), 금강역사(金剛力士), 역사(力士)이며, 매우 강한 힘을 지닌 천신(天神)의 이름으로 밀교에서는 태장계 만다라의 외금강부(外金剛部)에 자리하며, 가루라조(迦樓羅鳥)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불보살의 매우 견고하며 강한 힘을 형상화시킨 것으로 범왕(梵王), 또는 비뉴천(毘紐天)의 별명이다.


十六者、脈深;十七者、踝不現;十八者、身潤澤;十九者、身自持,不逶迤;二十者、身滿足;二十一者、識滿足;二十二者、容儀備足;二十三者、住處安,無能動者;二十四者、威震一切;二十五者、一切樂觀;二十六者、面不大長;二十七者、正容貌,不撓色;二十八者、面具足滿;二十九者、脣赤如頻婆果色;三十者、音響深;三十一者、臍深圓好;三十二者、毛右旋;三十三者、手足滿;三十四者、手足如意;三十五者、手文明直。

열 여섯은 맥(脈)이 깊은 맥심(脈深)이며,

열 일곱은 복사뼈가 보이지 않는 과불현(踝不現)이며,

열 덟은 몸에 윤기가 있고 광택이 나는 신윤택(身潤澤)이며,

열 아홉은 몸이 잘 유지되어 휘청휘청 걷지 않으며,

스물은 몸이 원만하고 충실한 신만족(身滿足)이며, 

스물 하나는 의식의 식(識)이 원만하고 충실한 신만족(識滿足)이며,

스물 둘은 몸가짐의 태도가 의젓한 용의비족(容儀備足)이며,

스물 셋은 머무르는 곳이 안정되어 동요시킬 이가 없으며,

스물 넷은 그 위엄이 모든 것에 떨치는 위진일체(威震一切)이며,

스물 다섯은 일체 중생들이 그를 보기를 좋아하는 일체낙관(一切樂觀)이며,

스물 여섯은 얼굴이 크거나 길지 않은 면불대장(面不大長)이며,

스물 일곱은 용모가 단정하여 흩어진 모습이 없는 정용모불요색(正容貌 不撓色)이며,

스물 여덟은 얼굴이 잘 생겨 원만한 면구족만(面具足滿)이며,

스물 아홉은 입술이 붉어서 마치 빈바과(頻婆果)의 빛깔과 같으며,

서른은 음성의 울림이 아주 깊은 음향심(音響深)이며, 

서른 하나는 배꼽이 깊고 둥글며 아름다운 제심원호(臍深圓好)이며,

서른 둘은 털이 오른편으로 말려 있는 모우선(毛右旋)이며,

서른 셋은 손과 발이 원만하게 생긴 수족만(手足滿)이며,

서른 넷은 손과 발이 뜻대로 잘 움직이는 수족여의(手足如意)이며,

서른 다섯은 손금이 분명하고 똑바른 수문명직(手文明直)이며, 


三十六者、手文長;三十七者、手文不斷;三十八者、一切惡心衆生見者和悅;三十九者、面廣姝;四十者、面淨滿如月;四十一者、隨衆生意,和悅與語;四十二者、毛孔出香氣;四十三者、口出無上香;四十四者、儀容如師子;四十五者、進止如象王;四十六者、行法如鵝王;四十七者、頭如摩陁羅果;四十八者、一切聲分具足;四十九者、牙利;五十者、舌色赤;五十一者、舌薄;五十二者、毛紅色;五十三者、毛潔淨;五十四者、廣長眼;五十五者、孔門相具足。

서른 여섯은 손금의 줄무늬가 긴 수문장(手文長)이며,

서른 일곱은 손금의 줄무늬가 중간에 끊어지지 않은 수문불단(手文不斷)이며,

서른 여덟은 일체의 악심을 지닌 중생이 보면 마음이 화평해지고 기뻐하며,

서른 아홉은 얼굴이 넓고 매력적인 면광주(面廣姝)이며,

마흔은 얼굴이 맑고 원만하여 마치 보름달과 같은 면정만여월(面淨滿如月)이며, 

마흔 하나는 중생의 뜻에 따라 기뻐하고 함께 말을 하며,

마흔 둘은 모공으로부터 향기가 나는 모공출향기(毛孔出香氣)이며,

마흔 셋은 입으로부터 더 없이 좋은 향기가 풍기는 구출무상향(口出無上香)이며,

마흔 넷은 몸의 위용이 사자와 같은 의용여사자(儀容如師子)이며,

마흔 다섯은 나아 가고 멈추는 것이 코끼리와 같은 진지여상왕(進止如象王)이며, 

마흔 여섯은 걷는 법이 거위왕과 같은 행법여아왕(行法如鵝王)이며,

마흔 일곱은 머리가 마치 마타나(摩陀那)의 열매처럼 생겼으며,

마흔 여덟은 일체의 음성을 완전히 갖춘 일체성분구족(一切聲分具足)이며,

마흔 아홉은 송곳니가 날카로운 아리(牙利)이며,

쉰은 혀의 빛깔이 붉은 설색적(舌色赤)이며, 

쉰 하나는 혀가 얇은 설박(舌薄)이며,

쉰 둘은 털이 붉은 모홍색(毛紅色)이며,

쉰 셋은 털이 맑고 깨끗한 모결정(毛潔淨)이며,

쉰 넷은 눈이 넓고도 긴 광장안(廣長眼)이며,

쉰 다섯은 몸의 공문상(孔門相)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공문상구족(孔門相具足)이며,


五十六者、手足赤白如蓮華色;五十七者、臍不出;五十八者、腹不現;五十九者、細腹;六十者、身不傾動;六十一者、身持重;六十二者、其身分大;六十三者、身長;六十四者、手足淨潔軟澤;六十五者、邊光各一丈;六十六者、光照身而行;六十七者、等視衆生;六十八者、不輕衆生;六十九者、隨衆生音聲不過不減;七十者、說法不差。

쉰 여섯은 손발이 붉고 흰 것이 마치 연꽃과 같으며,

쉰 일곱은 배꼽이 밖으로 불거지지 않은 제불출(臍不出)이며,

쉰 여덟은 배가 툭 튀어 나오지 않은 복불현(腹不現)이며,

쉰 아홉은 허리가 가는 세복(細腹)이며,

예순은 몸이 한편으로 기울지 않은 신불경동(身不傾動)이며, 

예순 하나는 몸에 무게감이 있는 신지중(身持重)이며,

예순 둘은 그 몸의 부분마다 다 큰 기신분대(其身分大)이며,

예순 셋은 키가 큰 신장(身長)이며,

예순 넷은 손과 발이 깨끗하고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수족정결연택(手足淨潔軟澤)이며,

예순 다섯은 몸의 광명이 주변으로 한 길을 비추는 변광각일장(邊光各一丈)이며, 

예순 여섯은 광명으로 몸을 비추면서 다니는 광조신이행(光照身而行)이며,

예순 일곱은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는 등시중생(等視衆生)이며,

예순 여덟은 중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불경중생(不輕衆生)이며,

예순 아홉은 그 중생에 따라 음성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수중생음성불과불감(隨衆生音聲不過不減)이며,

일흔은 법을 설할 적에는 차별을 두지 않는 설법불차(說法不差)이며,


七十一者、隨衆生語言而爲說法;七十二者、一發音報衆聲;七十三者、次第有因緣說法;七十四者、一切衆生不能盡觀相;七十五者、觀者無厭足;七十六者、髮長好;七十七者、髮不亂;七十八者、髮旋好。七十九者、髮色好如靑珠;八十者、手足有德相。須菩提!是八十隨形好,佛身成就。

일흔 하나는 중생들의 언어에 따라 설법하는 수중생어언이위설법(隨衆生語言而爲說法)이며,

일흔 둘은 한 번 낸 소리로 여럿의 음성에 화답하는 일발음보중성(一發音報衆聲)이며,

일흔 셋은 차례대로 인연을 따라 법을 설하는 차제유인연설법(次第有因緣說法)이며,

일흔 넷은 일체 중생이 그 상(相)을 다 볼 수는 없는 부능진관상(不能盡觀相)이며,

흔 다섯은 보는 이들이 조금도 싫증내지 않는 관자무염족(觀者無厭足)이며, 

일흔 여섯은 머리카락이 길고 아름다운 발장호(髮長好)이며,

일흔 일곱은 머리카락이 어지럽지 않은 발불난(髮不亂)이며,

일흔 여덟은 머리카락이 말려있어 보기 좋은 발선호(髮旋好)이며,

일흔 아홉은 머리카락의 빛깔이 아름다워서 마치 푸른 구슬과 같은 발색호여청주(髮色好如靑珠)이며,

여든은 발에 덕상(德相)이 있으니, 

수보리야 이것이 곧 80수형호(八十隨形好)이니, 부처님의 불신(佛身)이 성취된 것이 이와 같으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以二施攝取衆生,所謂財施、法施,是爲菩薩希有難及事。

云何爲菩薩摩訶薩愛語攝取衆生?菩薩摩訶薩以六波羅蜜爲衆生說法,作是言:‘汝行六波羅蜜,攝一切善法’

云何爲菩薩摩訶薩利行攝取衆生?菩薩摩訶薩長夜教衆生,令行六波羅蜜。云何爲菩薩摩訶薩同事攝取衆生?菩薩摩訶薩以五神通力故種種變化,入五道中,與衆生同事。以此四事而攝取之。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보시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이른바 재물의 보시인 재시(財施)와 법의 보시인 법시(法施)이니라. 이것이 곧 보살의 희유하고 미치기 어려운 일이니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사랑스러운 애어(愛語)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그대들은 6바라밀을 행하여 일체의 착한 선법을 거두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이로운 이행(利行)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은 오랜 세월 동안 중생들을 교화하며 6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일을 행하는 동사(同事)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오신통의 힘으로써 갖가지로 변화하여 5도(道) 안에 들어가서 중생들과 함께 일을 같이 하나니,

보시, 애어, 이행, 동사의 네 가지의 사섭(四攝)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주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教化衆生:‘善男子!當善學分別諸字,亦當善知一字乃至四十二字。一切語言,皆入初字門;一切語言,亦入第二字門;乃至第四十二字門,一切語言皆入其中。一字皆入四十二字,四十二字亦入一字。’是衆生應如是善學四十二字。善學四十二字已,能善說字法;善說字法已,善說無字法。

須菩提!如佛善知字法、善知字、善知無字,爲無字法故說字法。

何以故?須菩提!過一切名字故,名爲佛法。”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을 교화하면서 말하여주기를 ‘선남자여, 모든 글(字)을 잘 배우고 분별해야 하고, 또한 일자(一字)에서 42자(字, 범자梵字의 42자)까지를 잘 알아야 하나니,

일체 언어(言語)는 모두 첫 자의 초자(初字)의 문에 들어가고, 온갖 언어는 또한 두 번째 자문(字門)에서 마흔 두 번째 자문까지 들어가는 것으로, 일체의 언어 모두가 그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일자(一字)는 모두 42자에 들어가고, 42자도 또한 일자(一字)에 들어간다’고 하느니라.

이 중생은 마땅히 이와 같이 42자를 잘 배워야 하고, 42자를 잘 배우고 나서는 글자의 자법(字法)을 잘 설명하여야 하며, 글자의 자법(字法)을 잘 설명한 뒤에는 글자가 없는 무자법(無字法)도 잘 설명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이 글자의 자법(字法)을 잘 아시는 것과 같이 글자를 잘 알고 무자법(無字法)도 잘 알아야 하며, 무자법(無字法)을 위하여 글자의 자법(字法)을 설하나니,

왜냐 하면 수보리야, 일체의 이름과 글자를 초월한 까닭에 부처님의 불법이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衆生畢竟不可得,法亦不可得,法性亦不可得,畢竟空故、無始空故。

世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行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時,行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三十七助道法,十八空,行空、無相、無作三昧,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三十二相、八十隨形好,云何住報得五神通爲衆生說法?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을 끝내얻을 수 없는 필경불가득(畢竟不可得)이라면 법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법성(法性) 또한 얻을 수 없으니,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요 무시공(無始空)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선(禪)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바라밀ㆍ찬제(羼提)바라밀ㆍ시라(尸羅)바라밀ㆍ단(檀)바라밀을 행하며,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과 37조도법(助道法)과 18공(空)을 행하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삼매와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과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를 행하면서

어떻게 과보로 얻은, 보득(報得)의 오신통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지요?


衆生實不可得;衆生不可得故,色不可得,乃至識亦不可得;五衆不可得故,六波羅蜜乃至八十隨形好皆不可得。是不可得中,無衆生、無色乃至無八十隨形好。

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爲衆生說法?

世尊!菩薩行般若波羅蜜時,菩薩尚不可得,何況當有菩薩法!”

중생은 실로 얻을 수 없으며,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질(色)을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인식(識)에 이르기까지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중(五衆, 오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6바라밀에서 80수형호까지도 모두 얻을 수 없으니, 이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 가운데에서는 중생도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고 물질도 없는 무색(無色)이며 나아가 80수형호도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는지요?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아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보살법이겠습니까?”


佛告須菩提:“如是!如是!如汝所言。衆生不可得故,當知是內空、外空、內外空、空空、大空、第一義空、有爲空、無爲空、畢竟空、無始空、散空、諸法空、自相空、性空、不可得空、無法空、有法空、無法有法空。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그대의 말과 같이, 중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곧 내공(內空)이요 외공(外空)이며, 내외공(內外空)이요 공공(空空)이며, 대공(大空)이요 제일의공(第一義空)이며, 유위공(有爲空)이요 무위공(無爲空)이며, 필경공(畢竟空)이요 무시공(無始空)이며, 산공(散空)이요 제법공(諸法空)이며, 자상공(自相空)이요 성공(性空)이며, 불가득공(不可得空)이요 무법공(無法空)이며, 유법공(有法空)이요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當知五陰空、十二入空、十八界空,十二因緣空、四諦空,我空、壽者、命者、生者、養者、育者、衆數者、人者、作者、使作者、起者、使起者、受者、使受者、知者、見者皆空。衆生不可得故,當知四禪空、四無量心空、四無色定空,當知四念處空乃至八聖道分空,空空、無相空、無作空。八背捨空、九次第定空。

또한 5음(陰)이 공하고 12입(入)이 공하고 18계(界)가 공하며, 12인연(因緣)도 공하며, 4제(諦)도 공하고 나(我)도 공하며, 영혼의 수자(壽者)와 목숨의 명자(命者)와 나는 생자(生者)와 키워주는 양자(養者)와 자라는 육자(育者)와

이러한 모든 인연의 모든 범주의 중수자(衆數者)와

사람의 인자(人者)와 짓는 작자(作者)와 짓게 하는 사작자(使作者)와 일어나는 기자(起者)와 일어나게 하는 사기자(使起者)와 받는 수자(受者)와 받게 하는 사수자(使受者)와 아는 지자(知者)와 보는 견자(見者) 모두도 공(空)하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4선이 공하고 4무량심도 공하고 4무색정도 공한 것으로 알아야 하며, 4념처가 공하고 나아가 8성도분이 공하며, 공도 공하고 무상도 공하고 무작도 공하며, 8배사도 공하고 9차제정도 공한 것으로 알아야 하느니라.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8

 

度衆生方便者,所謂二力:業力、定力。求其業因緣、生處。人以業因緣故受身、縛著世閒,禪定因緣故得解脫。行者必應求苦從何而生、由何而滅。是故用二力。

業力有二分:一者、淨業,能斷惡業;二者、垢業。淨業名禪定、解脫、諸三昧;不淨業者,能於三界中受身。

人有二種:鈍根,爲受身故作業;利根,爲滅身故作業。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에는 이른바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  가지 힘이 있으니,  업인연(業因緣)으로 태어나는 생처(生處)를 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업인연으로 몸을 받아 세간에 얽매여 집착하며, 선정인연(禪定因緣)으로 해탈을 얻나니,

수행하는 행자 반드시 ‘이 괴로움(苦)은 무엇으로부터 생겼으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소멸하는 것인가?’라고 구해야 하나니,  때문에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  가지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업력(業力)에는  갈래가 있으니, 첫째는 깨끗한 정업(淨業)으로써 능히 나쁜업(惡業)을 끊는 것이요, 

둘째는 더러운 구업(垢業)이다. 

깨끗한 정업(淨業)이란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이며, 

깨끗하지 않은 구업(垢業)이란 삼계(三界) 가운데서 몸을 받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가지가 있으니, 근기가 둔한 둔근(鈍根)자는 몸을 받기 위하여 업을 짓고, 

근기가 영리한 이근(利根)자는 몸을 멸하 위하여 업을 짓는다.


問曰:若爾者,何以不皆令作淨業?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모두에게 깨끗한 정업(淨業) 짓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以衆生根有利鈍故。

답하나니, 중생들 중에는 근기가 예리한 이근(利根)자 둔한 둔근(鈍根)자 있기 때문이다.


問曰:衆生何因緣故有利鈍?

묻나니, 중생은 무슨 인연 때문에 이근(利根)자와 둔한 둔근(鈍根)자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以有種種欲力故。惡欲衆生常入惡故鈍。欲名嗜好,嗜好罪事、生惡業故鈍。善欲者樂道、修助道法故利。

답하나니, 갖가지의 즐기고 좋아하는 힘의 욕력(欲力)이 있기 때문이니,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악욕(惡欲)의 중생은 항상 악한 곳으 들어가기 때문에 둔(鈍)하나니,

'욕(欲)'이란 즐기고 좋아함을 말하는 것으로, 죄가 되는 일을 즐기고 좋아하여 나쁜업이 생기기 때문에 둔하게 되지만, 

선(善)을 즐기고 좋아하는 선욕(善欲)의 중생은 도(道)를 좋아하고 도를 돕는 조도법(助道法)을 닦기 때문에 예리한 것이다.


問曰:衆生何以不皆作善欲?

묻나니, 중생은 무엇 때문에 모든 선(善)을 짓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是故佛說世間種種性,惡性、善性。惡性者惡欲,惡欲故根鈍。如火熱性、水濕性,不應責其所以。

답하나니,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간의 갖가지 성품을 말씀하셨으니,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과 선한 성품의 선성(善性)이 그것이다. 

악성(惡性)을 지닌 이는 악을 즐기고 좋아하며,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까닭에 근기가 둔해지나니, 

마치 불은 뜨거운 성품이 있고 물은 축축한 성품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렇게 되는 까닭을 책망하지 말아야 하리라.


問曰:惡欲卽是惡性,有何差別而作二力?

묻나니, 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이라면 어떠한 차별이 있기에 업력(業力)과 정력(定力)의 가지 힘을 짓는 것입니까?


答曰:性先有欲得因緣而生。譬如先有瘡,得觸因緣則血出。性在內,欲在外。性重,欲輕。性難除,欲易捨。性深,欲淺。用性作業必當受報,用欲作業不必受報。有如是等差別。

답하나니, 성품(性)에는 먼저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니, 인(因)과 연(緣)을 얻어서 생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먼저 상처가 있고 그것에 접촉하는 촉(觸)의 인연이 있게 되면 피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품(性)은 안에 있고 욕구(欲)는 바깥에 있으며, 

성품(性)은 무겁고 욕구(欲)는 가벼우며, 

성품(性)은 제거하기 어렵고 욕구(欲)는 버리기가 쉬우며, 

성품(性)은 깊고 욕구(欲)는 얕으며,

성품(性)으로써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하지만, 욕구(欲)로써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 것은 아니니, 이와 같은 등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復有人言:欲常習增長,遂成爲性;性亦能生欲。是人若今世、若後世常習是欲,則成爲性;住是性中,作惡、作善;若住善性則可度,若住惡性則不可度。佛旣知衆生二種性已知,其果報善道、惡道種種差別。惡性者墮三惡道,善性者有四種道:人、天、阿修羅、涅槃道。

 어떤 말하기를 “욕구(欲)를 항상 익히면 더욱 자라게 되어 마침내 성품(性)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성품(性) 또한 욕구(欲)를 내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이 금세에서나 후세에서  욕구(欲)를 항상 익히면  성취되어 성품(性)으로 된다는 것이니, 

이러한 성품(性)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악도 짓고 선도 짓는 것이다.

만약 선한 성품의 선성(善性)에 머무른다면 제도할  있지만, 악한 성품의 악성(惡性)에 머무르면 제도할 수가 없으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중생의 선성(善性)과 악성(惡性),  가지 성품(性)을 아시나니, 이미  과보의 선도(善道)와 악도(惡道)의 갖가지 차별을 아시는 것이니,

악성(惡性) 지닌 이라면악도에 떨어지지만, 선성(善性) 지닌 이라면  가지의 착한 길이 있나니,  인간ㆍ천상ㆍ아수라ㆍ열반의 도이다.


問曰:一切到處道力與天眼力有何差別?

묻나니, 일체도처도력(一切到處道力)과 천안력(天眼力)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天眼但見生死時;此中未死時知,見因知果。天眼,見現前罪福果報。是名一切到處道力。

답하나니, 천안(天眼)은 다만 나고 죽는 생사할 때에만 보게 되므로  가운데서는 아직 죽기 전의 시기만을 아는 것이니,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아는 것이 천안이지만, 바로 눈앞의 죄와 복과 과보를 보는 것을 일체도처도력(一切到處道力)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聲聞、辟支佛亦得涅槃、亦能化衆生,何以無是力?

묻나니, 성문이나 벽지불도 열반을 얻으며, 또한 중생을 교화할  있거늘 무엇 때문에 이런 힘(力)이 없는 것입니까?


答曰:是故說後三力。三世中衆生事盡能通達遍知:以宿命力,一切衆生過去事本末悉知。以天眼生死智力故,一切衆生未來世中無量事盡能遍知。作是知已,知現世中衆生可度者爲說漏盡法。以是故,但佛有此力,二乘所無。

답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숙명력(宿命力), 천안(天眼), 생사지력(生死智力)  가지 힘을 설명하는 것이니, 3세(世) 동안 중생들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두루  수가 있는 것이다.

숙명력(宿命力)으로써 일체 중생들이 과거 세상에 지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천안(天眼)과 생사지력(生死智力)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미래 세상에서의 무량한 일을 모두 두루 알며, 

이렇게  뒤에는 현세에서의 중생으로서 제도할  있는 이를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번뇌가 다하는 누진법(漏盡法)을 설하나니, 부처님만이 이러한 힘이 있을 뿐, 2승에게는 없는 것이다.


如有一人卽日應得阿羅漢,舍利弗日中時語言:“汝無得道因緣。”捨而不度。晡時,佛以宿命神通見過去八萬劫前得道因緣,今應成就,晡時說法,卽得阿羅漢道。

마치 어떤 사람이 바로 그날 아라한이 되도록 되어 있었는데, 사리불(舍利佛) 존자가 한낮에 그를 보고는 “당신은 도를 얻게  인연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버리고 제도하지 않았지만, 

저녁나절에 부처님께서 전생 일을 아는 숙명신통(宿命神通)으로써 그를 보시고는, 과거 세상의 8만  전에 도를 얻을 인연이 있어서 지금 마땅히 성취할 것이므로, 저녁나절에 법을 설하시자,  아라한의 도를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佛以初力知衆生可度、不可度相;以第二力知衆生爲三障所覆、無覆者;以第三力知衆生禪定、解脫淨不淨者;以第四力知衆生根有利、有鈍,能通法性、不通者;以第五力知衆生利鈍根因緣善、惡欲;以第六力知二欲因緣種種性。

 부처님께서는  번째의 힘의 초력(初力, 처비처지력 處非處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제도할  있는 이인지, 제도할  없는 이인지의 상(相) 아시며, 

제2의 힘(업이숙지력 業異熟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번뇌장, 업장, 보장의  가지 죄인 삼장(三障)에 가려져 있는 사람인지, 가려져 있는 바가 없는 사람인가를 아시며, 

제3의 힘(정처해탈등지등지지력 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선정과 해탈에 깨끗한 이인가, 깨끗하지 못한 이인가를 아시며,

제4의 힘(근상하지력 根上下智力)으로써는 중생들의 근기에 영리한 이가 있고 둔한 이가 있어서 법의 성품을 통달하는 이와 통달하지 못하는 이를 아시며, 

제5의 힘(종종승해지력 種種勝解智力)으로써는 중생으로서 근기가 영리한 이와 둔한 이의 인연과 선악의 욕구를 아시며, 

제6의 힘(종종계지력 種種界智力)으로써는 악욕(惡欲)과 선욕(善欲),  가지 욕구인 이욕(二欲)의 인연과 갖가지 성품을 아시며, 


以第七力知衆生利鈍根善惡果報處七種道;以第八力知衆生宿世善惡業障、不障;以第九力知衆生今世未可度、未來世生處可度;以第十力知是人以空解脫門入涅槃,無相、無作門入涅槃;知是人於見諦道、思惟道中念念中斷若干結使。以是十力籌量衆生所應度緣而爲說法。是故說法,初無空言。

제7의 힘(변취행지력 遍趣行智力)으로써는 중생의 영리하거나 둔한 근기와 선악으로 받을 과보의 처소와 일곱 가지 도의 칠종도(七種道)를 아시며, 

제8의 힘(숙주수념지력 宿住隨念智力)으로써는 중생이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과 장애가 되거나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아시며,

제9의 힘(사생지력 死生智力)으로써는 중생이  세상에서는 제도되지 못하고 미래 세의 태어날 곳에서 제도된다는 것을 아시며, 

제10의 힘(누진지력 漏盡智力)으로써는  사람이 공해탈문(空解脫門)으로써 열반에 들고, 무상(無相)과 무작(無作) 해탈문으로써 열반에것을 알며,  사람은 견제도(見諦道)와 사유도(思惟道) 가운데에서 생각생각마다 여러 가지 번뇌의 결속(結束)이 끊어진다는 것을 아시나니, 

력으로써 마땅히 제도해야  중생들의 인연을 헤아려서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나니, 

 때문에 설법은 처음부터 빈것으로 말이 없는 초무공언(初無空言)인 것이다.


問曰:佛智慧無量,身相亦應無量!又佛身勝諸天王,何以正與轉輪聖王同有三十二相?

묻나니, 부처님의지혜는 무량하므로 몸의 상호(相好) 또한 무량하여야 하며,

 부처님의 불신은 모든 천왕(天王)들보다 뛰어나거늘, 무엇 때문에 전륜성왕과 똑같이 32상호만 있는 것입니까?


答曰:三十二相不多不少,義如先說。復次,有人言:佛、菩薩相不定,如此中說;隨衆生所好,可以引導其心者爲現。又衆生不貴金而貴餘色 琉璃、頗梨、金剛等,如是世界人,佛則不現金色,觀其所好則爲現色。

답하나니, 32상호의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이치에 대하여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어떤 말하기를 “부처님과 보살의 상호는 일정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설명과 같이,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마음을 인도할  있는 것에 따라 나타내시는 것이다.

 중생이 금은 귀히 여기지 않고  밖의 유리나 파리나 금강 등을 귀히 여긴다면, 이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은  금빛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를 관찰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빛깔을 나타내시며, 


又衆生不貴纖長指及網縵,以長指利爪爲羅剎相,以網縵爲水鳥相,造事不便,如著手衣,何用是爲?如罽賓國彌帝隸力利菩薩手網縵,其父惡以爲怪,以刀割之,言:“我子何緣如鳥?”

또한 중생들이 가늘고  손가락과 손바닥에 있는 그물 무늬의 망만(綱縵)을 귀하게 여기지 않거나, 긴 손가락과 매끈한 손톱을 나찰(羅刹) 같은이라고 여기거나, 그물 무늬가 마치 물새의 상과 같아서 하는 일들이 불편하기가 마치 손에 장갑을  것과 같다고 여긴다면,  좋은 상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치 계빈국(罽賓國, Kāśmīra. 지금의 카슈미르지역에 있었던 나라)의 미제예력리(彌帝隸力利)보살에게는 손에 비단결 같은 무늬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싫어하여서 괴이하다고 여기어 칼로 베어 내면서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마치 새와 같은가!”라고  것과 같다.


有人不好肩圓大,以爲似腫;有以腹不現,無腹如餓相;亦有人以靑眼爲不好,但好白黑分明。是故佛隨衆生所好而爲現相好。如是等,無有常定。

어떤 사람은 어깨가 둥글고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마치 종기와 같다고 여기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배가 나오지 않으면, 배가 꺼진 것이 마치 굶주린 같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푸른 눈을 좋게 여기지 않으면서 흑백(黑白)이 분명한 눈만을 좋아하는 이도 있나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상호를 나타내시나니,

이와 같이 항상 일정한 상호는 없는 것이다.


有人言:此三十二相實定,以神通力變化身,隨衆生所好而爲現相。

有人言:佛有時神通變化,有時隨世界處生,當生處不得言神通變化。又於三千大千世界中隨可度衆生處生,則爲現相。如『密迹經』中說:“或現金色、或現銀色、或日月星宿色,或長、或短,隨可引導衆生則爲現相。”

어떤 말하기를 “이 32상호는 실로 신통력과 변화신으로써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신다”고 하며, 

어떤 말하기를 “부처님은 어떤 때에는 신통으로 변화하시고, 어떤 때에는 세계와 처소에 따라 태어나시나니, 당연히 태어나실 곳이라면 신통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말할  없으며, 또한 3천대천세계에서 제도해야  중생들이 있는 처소에 따라 태어나신다면  그들을 위하여 모습을 나타내신다”고 하기도 하나니, 

마치 '밀적경(密迹經, Guhyasūtra. 혹은 Tathāgatācintyaguhyanirdeśa)'에서의 설명과 같이, “혹은 금빛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은빛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는 길게 또는 짧게 하면서  인도해야  중생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상을 나타내신다”고 하였


隨此閒閻浮提中天竺國人所好,則爲現三十二相。天竺國人于今故治肩髆令厚大、頭上皆以有髻爲好。如人相中說五處長爲好。眼、鼻、舌、臂、指、髀、手足相,

若輪、若蓮華、若貝、若日月,是故佛手足有千輻輪、纖長指、鼻高好、舌廣長而薄。如是等皆勝於先所貴者故,起恭敬心。

 세간의 염부제(閻浮提)에서는 천축국(天竺國, 인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32상을 나타내신 것이니, 천축국(인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일부러 어깨를 다듬고  두둑하고도  머리 위에 모두 살상투인 육계(肉髻)가 있는 것을 좋게 여기었으니, 마치 사람의 상(相) 가운데에서 다섯 군데의 오처(五處)가 잘 생긴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나니, 눈ㆍ코ㆍ혀ㆍ팔과 손발가락ㆍ넓적다리ㆍ손과 발의 그것이니, 

수레바퀴와 연꽃과 조개와 해와  등을 좋아한 까닭으로 부처님께서는 손과 발에 수레바퀴와 같은 무늬가 있으며,

손가락은 가늘고 길며, 코는 오뚝하게  생기고 혀는 넓고도 길며 얇으니, 이와 같은 것들 모두가 앞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되는 것이


有國土佛爲現千萬相,或無量阿僧祇相,或五、六、三、四相。隨天竺所好故,現三十二相、八十種隨形好。

어느 나라에서는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천만 가지 상호를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무량한 아승기의 상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 또는 세 가지나 네 가지의 상을 나타내기도 하시나니,

천축국(인도)에서 좋아하는 것에 따라 32상과 80수형호를 나타내신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八十八 終 대지도론 88권을 마침.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7

 

問曰:何以略說餘四道,而廣說人道中法?

묻나니, 무엇 때문에 나머지  가지 세계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사도(四道)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사람의 세계인 인도(人道)에 대한 법만은 자세히 설명하신 것입니까?

 

答曰:三惡道中苦多故,衆生少疑,若見菩薩大神通希有事,則直信愛著得度。諸天有天眼故,自見罪福因緣;菩薩少現神足則解。人以肉眼不見罪福因緣果報,又多著外道邪師及邪見經書。

답하나니,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서는 고통이 많은 까닭에 이 중생들은 의심이 적어서, 만약 보살의  신통 등의 희유한 일을 보게 되면  믿고 애착하므로 제도되는 것이며, 

모든 하늘들은 천안(天眼)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죄와 복의 인연과 과보를 보면서 보살이 조그마한 신족(神足, ṛddhipāda. 신변의 나투는 신통)을 나타내어도  이해하지만, 

사람은 육안(肉眼)이라서 죄와 복의 인연과 과보도 보지 못하며,  대부분이 외도(外道)의 삿된 스승과 삿된 사견이 있는 경서(經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諸煩惱有二分:一者、屬見,二者、屬愛。若但有一事,則不能成大罪。三毒人得邪見力,能盡作重惡;邪見人得貪欲、瞋恚,能大作罪事。如須陁洹雖有三毒,無邪見故,不作墮三惡道重罪。是故人中多有三毒、邪見。又眼不見罪福因緣故難度,難度故多說。

모든 번뇌에는  갈래가 있으니, 하나는 견(見, 견해)에 속하고  하나는 애(愛, 갈애)에 속한다. 

만약 단지 하나만 있다면  죄가 성립되지지만, 탐진치 삼독(三毒)을 지닌 사람은 삿된 사견 힘을 얻어 무겁고 악한 죄를 모두 지으며, 삿된 사견을 지닌 사람도 욕탐과 성냄을 얻어서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니, 

수다원 같은 경우에는 비록 3독이 있을지라도 삿된 사견이 없기 때문에 3악도에 떨어질 중한 죄는 짓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서는 3독과 삿된 사견이 많으며,

또한 눈으로 죄와 복의 인연을  보기 때문에 제도하기 어려우며, 제도하기 어려운 까닭에 많이 설명하게  것이다.


問曰:若爾者,於四事中何以多說布施,餘三略說?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의 사사(四事)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보시에 대해서만 많이 설명하시고  밖의  가지는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布施中攝三事故,以財施、法施教化衆生,則無所不攝。復次,四事中初廣開布施,則知餘三亦如是。

답하나니, 보시는 애어, 이익, 동사의  가지를 포섭하기 때문이니, 재물 보시의 재시(財施)와  보시의 법시(法施)로써 중생을 교화하면  거두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의 사사(四事) 가운데에서 처음의 보시만을 널리 열어보인다면,  나머지  가지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  있기 때문이다.


問曰:若爾者,何以略說財施而廣說法施?

묻나니, 그러하다면  재물의 보시의 재시(財施)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보시의 법시(法施)만을 자세히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財施少,法施廣故。所以者何?財施,有量果報;法施,無量果報。

財施,欲界繫果報;法施,亦三界繫果報,亦是出三界果報。財施,能與三界富樂;法施,能與涅槃常樂。

又財施從法施生,聞法則能施故。復次,財施果報,但富樂,無種種;法施亦有富樂,亦有餘事,乃至佛道涅槃果報。以是等因緣故,廣說法施。二施義,如經中佛自廣說。

답하나니, 재시(財施)는 적지만 법시(法施) 광대하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재시는 한량이 있는 과보이지만 법시는 무량한  과보이기 때문이요, 

재지는 욕계(欲界)에 매인 과보이지만, 법시는 삼계(三界)에 매인 과보이면서 또한 그것이 삼계를 벗어난 과보이기 때문이며, 

재시는 삼계의 부귀와 즐거움을   있지만, 법시는 열반의 상(常)과 낙(樂)을 주며, 

 재시는 법시로부터 생기나는 것이니, 법을 들으면 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시에 대한 과보는 부유와 쾌락이 있을 뿐, 여러 가지가 없지만, 법시에는 부유와 쾌락도 있으며, 또한  밖의 일도 있어서 나아가 부처님도와 열반의 과보에까지 이르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법시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니, 

재시(財施)와 법시(法施), 두 보시에 대한 뜻은 경에서 부처님이 친히 자세하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問曰:經中,須菩提何以故言“菩薩得一切種智不”?

묻나니, 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보살은 일체종지를 얻습니까”라고 여쭌 것입니까?


答曰:須菩提意:若菩薩時得一切種智,則不名菩薩,云何未得佛而能得一切種智?得一切種智故名爲佛;若先作佛,何用一切種智爲?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보살일 때, 일체종지를 얻는다면, 보살이라 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아직 부처님이 되지 못하였음에도 일체종지를 얻을  있는 것일까?

일체종지를 얻은 까닭에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니, 만약 먼저 부처님이 된다면 일체종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하였으니, 


佛答:今得一切種智,名爲菩薩;已得一切種智,名爲佛。菩薩時具足佛因緣,生心欲得一切種智;得已,名爲佛。

眞實之言:菩薩不得,佛亦不得。所以者何?菩薩未得;佛得已竟,更不復得。世俗法故,說“菩薩今得,佛得已竟。”;第一義中,則無一切法,何況佛及菩薩!

又經中言:“佛心不異菩薩,菩薩不異佛心。”次第相續不斷故,有二心如,無異、無分別故。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지금 일체종지를 얻고 있는 금득(今得)이라면 보살이라 하며, 

일체종지를 이미 얻은 이득(已得)이라면 부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보살일에는 부처님의 불인연(佛因緣)을 두루 갖추고 마음을 내어서 일체종지를 얻고자 하나니, 얻고 나면 부처님이라 하며, 

진실로 말한다면, 보살도 얻지 못하고 부처님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왜냐 하면, 보살은 아직 얻지 못한 미득(未得)이고, 부처님은 체득하여 이미 마쳐서 다시 얻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속법인 때문에 ‘보살이 지금 부처님이 되었고, 체득하여 이미 마쳤다’고 말하는 것일 뿐, 으뜸가는 이치의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에는 일체법조차 없거늘 하물며 부처와 보살이겠는가?”라고 하셨다.

 경에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의 불심(佛心) 보살과 다르지 않고 보살 역시 부처님의 불심(佛心) 다르지 않다”고 하셨으니, 차례로 상속되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이 있어도 차이가 없고 분별이 없는 것과 같은 때문이다.


問曰:九次第定、三十二相、八十隨形好,此是世閒共有法,何以故名爲“出世閒不共法?”

묻나니, 9차제정(次第定)과 32상과 80수형호는  세간에서 공유(共有)하는 법이거늘, 무엇 때문에 출세간에서는 공유하지 않는 법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四禪、四無色定、滅受想,名九次第。滅受定,但聖人能得。四禪、四無色定 從初禪起更不雜餘心而入二禪;從二禪乃至滅受定,念念中受,不雜餘心,名爲次第。

답하나니, 4선(禪)과 4무색정(無色定)과 멸수상(滅受想)을 9차제정이라 하며, 멸수정은 다만 성인만이 얻을  있는 것이며,

4선과 4무색정은 초선(初禪)으로부터 일으켜 다시는  밖의 다른 마음과 섞이지 않으면서 제2선에 들어가고, 제2선으로부터 멸수정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생각 가운데서의 느낌(受)에 다른 마음이 섞이지 않으므로 차제(次第)라 하는 것이며,


凡夫是罪人鈍根,云何能得三十二相?如轉輪聖王、提婆達、難陁所得相,名字雖同,而威德、具足、淨潔、得處則不同於佛。如先分別轉輪聖王、佛相不同中說。

又是相,聖無漏法果報,故自在隨意,無量無邊;轉輪聖王等相,是福德業因緣,不能自在,有量有限。

범부는 죄를 짓는 사람이며 근기가 둔한 둔근(鈍根)이거늘 어떻게 32상을 얻을  있겠는가?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과 제바달(提婆達)과 난타(難陀)가 얻은 상호(相好)와 같이, 이름은 비록 같을지라도 위덕(威德)이 구족된 것과 정결하고  처소를 얻음이 부처님과는 동일하지 않나니, 

앞에서 전륜성왕과 부처님의 상호는 동일하지 않음을 분별하는 것에 설명한 것과 같다.

또한 부처님의 상호는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의 과보이기 때문에 자유자재하고 뜻대로 되어서 무량하고 무변한 것이지만, 

전륜성왕 등의 상호는 복덕의 업인연이기는 하나, 자유롭지 못하고 한량이 있으며 한계가 있는 것이다.


復次,提婆達、難陁有三十相,無三十二相;轉輪聖王,雖有三十二相,無威德、不具足、不得處,與愛等煩惱俱。

八十隨形好具足,唯佛菩薩有之;餘人正可有少許,或指纖長,或失腹,有如是等無威德之好,不足言。是故說言“出世閒不共凡夫法”,無咎。

또한 제바달과 난타에는 30상(相)이 있었을  32상은 없었으며, 

전륜성왕은 비록 32상이 있다 하여도 위덕도 없고 구족되 못한 것이며,  처소를 얻지도 못하고 애욕 등의 번뇌와 함께 한 것이다.

80수형호(隨形好)가 완전히 갖추어진 이는 오직 부처님과 보살뿐이며,  밖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일부만이 있을 뿐이니, 혹 어떤 이는 손가락ㆍ발가락이 가늘고 길기도 하며, 어떤 이는 배가 나오지 않기도 하나, 

이와 같은  등은 위덕이 없는 수형호이므로 말할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세간의 것이라서 범부의 법과는 공통되지 않다’고 하여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問曰:從初來處處說諸法五衆乃至一切種智,不說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今經欲竟,何以品品中說?

묻나니, 처음부터 곳곳에서법의 5중(衆) 내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씀하시면서,  32상과 80수형호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이제 경을 끝내시고자 하시면서 무엇 때문에 품(品)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佛有二種身:法身、生身。於二身中,法身爲大;法身大,所益多故,上來廣說。今經欲訖故,生身義應當說,是故今說。復次,是生身相好莊嚴是聖無漏法果報,今次第說;上雜諸波羅蜜說。四念處等諸法義,如先說。十力等是佛法甚深義,今當更略說。

답하나니, 부처님께는  가지 몸이 있으니, 법신(法身)과 생신(生身)이다. 

  가운데에서 법신이  위대하며, 법신은 위대하면서도 이롭게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신 것이며,

지금은 경을 마치고자 하시면서 생신의 이치에 대하여 당연히 말씀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하시는 것이다.

  생신은 상호가 장엄하며, 그것은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 법의 과보인 성무루법과보(聖無漏法果報)이므로 여기에서 차례대로 말씀하신 것이며,

앞에서는 모든 바라밀을 섞은념처 등의법에 대한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니, 마치 10력(力)등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이 부처님법의 심히 깊은 이치를 이제 다시 간략하게라도 설명하리라.


問曰:佛十力者,若摠相說則一力,所謂一切種智力;若別相說則千萬億種力,隨法爲名,今何以但說十力?

묻나니, 만약 부처님의 불십력(佛十力)을 전체의 총상(總相)으로 말한다면  하나의 일력(一力)이라 이른바 일체종지의 힘이지만, 

만일 각각의 별상(別相)으로 말한다면 천만억 종류의 힘이라서, 법에 따라 이름을 붙여야 되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다만 10력만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答曰:佛實有無量智力,但以衆生不能得、不能行故不說。是十力,可度衆生事辦。所以者何?佛用是處非處力,定知一切法中因果,所謂行惡業,墮惡道,有是處;行惡業,生天上,無是處。善亦如是。

답하나니, 부처님은 실로 무량한 지혜의 힘이 있지만, 중생으로서는 얻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을 뿐이며,  10력으로는 제도할  있는 중생의 일을 판별한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은 시처비처력(是處非處力)으로써 반드시 일체법의 인과(因果)를 아시기 때문이니,

이른바 나쁜 악업(惡業)을 행하면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은 도리에 맞는 시처(是處)이며,

나쁜 악업을 행하는데도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무시처(無是處)인 것이니,

착한 선업에 대하여서도 이와 같은 것이다.


不離五蓋、不修七覺得道者,無有是處;離五蓋、修七覺得道者,有是處。餘九力盡入此力中。佛以此力籌量十方六道中衆生可度者、不可度者 可度者,以種種因緣、神通變化而度脫之;不可度者,於此人中修捨心。譬如良醫,觀其病相,審定知其可活則治之,不可活者則捨之。

탐욕개(貪欲蓋) · 진에개(瞋恚蓋) · 혼면개(惛眠蓋) · 도회개(掉悔蓋) · 의개(疑蓋)의 5가지의 장애인 오개(五蓋)를 여의지 않고 7각(覺, 칠각지)을 닦지 않았음에도 도(道)를 얻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무시처(無是處)이지만,

오개를 여의고 7각을 닦아 도를 얻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는 시처(是處)이다.

나머지 아홉 가지 구력(九力)도 모두 이 가운데에 들어간다.

부처님은 이런 힘으로써 시방과 6도(道)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이와 제도할 수 없는 이를 헤아리시나니,

제도할 수 있는 이라면 갖가지의 인연과 신통 변화로써 그를 제도하여 해탈시키지만,

제도할 수 없는 이라면, 이 사람에 대하여 버리는 마음의 사심(捨心)을 닦게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용한 의사는 그 병의 증세를 관찰하고 판단하여 반드시 그를 살릴 수 있다고 알게 되면 치료하지만, 살릴 수 없다면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6

 

問曰:經中令布施、持戒、禪定,今復更說,有何等異?

묻나니, 경에서 그들을 가르쳐서 보시ㆍ지계ㆍ선정을 닦게 하는 것과 지금 여기서 다시 말씀하시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先說生身菩薩,今說變化身。先說一國土,今說無量世界。如是等差別。

답하나니, 앞에서는 생신(生身, 육신)의 보살을 설명한 것이요,

여기에서는 변화신(變化身)을 설명한 것이며,

앞에서는 하나의 일국토(一國土)를 설명한 것이요,

여기에서는 무량한 세계를 설명한 것이니, 이와 같은 차별이 있는 것이다

 

●삼신(三身 · Trikaya)은 부처님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을 말한다. 삼신설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제자들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 후에도 존재하는지, 존재한다고 하면 인격적 존재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나왔다.  

○법신(法身)은 불법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을 의미한다. 붓다가 설한 불멸의 진리 그 자체를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은 불교경전에는 부처의 몸은 법 자체로 되어 있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서 온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에도, '자신의 몸에 의지말고 불법과 중생 스스로에게 의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법신이 세상 인간의 몸으로 나타난 것이 화신(化身)이다. 또한 세상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응현(應現)했다고 하여 응신(應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신(報身), 응신 또는 화신으로서의 부처가 특별한 수행을 하여서, 그 과보로 법신의 영원성마저 성취한 것이 보신이다. 보신불을 예로 들자면, 다섯 겁에 걸친 특별한 수행을 통해 수명과 광명이 무량한 경지를 성취한 아미타불이 있다.-위키

 

問曰:若菩薩知佛是福田、衆生非福田,是非菩薩法,菩薩以何力故能令佛與畜生等?

묻나니, 만약 ‘부처님은 복전(福田)이지만 중생은 복전이 아니다’고 아는 것은 보살로서의 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보살은 어떠한 힘을 써서 부처님과 축생이 같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菩薩以般若波羅蜜力故,一切法中修畢竟空心,是故於一切法無分別。

如畜生,五衆、十二入、十八界和合生,名爲畜生;佛亦如是,從諸善法和合,假名爲佛。

若人憐愍衆生,得無量福德;於佛著心,起諸惡因緣,得無量罪。是故知一切法畢竟空故,不輕畜生,不著心貴佛。

답하나니,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힘으로써 일체 가운데에서 필경공의 마음을 닦나니이러한 까닭 일체법에 대하여 분별이 없는 것이다

마치 축생은 5() 12() 18() 화합하여 생겼기에 축생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법이 화합함으로써 임시로 부처님이라고 가명을 붙인 것이다.
만약 사람이 중생을 가엾이 여긴다면 무량한 복덕을 얻겠지만부처님에 대하여 마음으로 집착한다면 모든 악한인연을 일으켜 무량한 죄를 얻을 것이니
이러한 까닭 일체법은 필경공이라고 알아야 하 것이니,  

축생을 가벼이 여기지도 않지만, 집착하는 착심(著心)으로 부처님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이다.

 

復次,諸法實相,是一切法無相,是無相中不分別是佛、是畜生;若分別卽是取相,是故等觀。

復次,菩薩有二法門:一者、畢竟空法門,二者、分別好惡法門。

入空法門,則得等觀;入分別法門,諸阿羅漢、辟支佛尚不及佛,何況畜生!

爲其輕衆生不憐愍布施故,教不分別。

또한 제법의 실상은 곧 일체법에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인 것이니, 이 무상(無相) 가운데에서는 ‘이것은 부처님이다, 이것은 축생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나니, 만약 분별한다면 그것은 상(相)을 취하는 것이므로, 평등하다고 관하는 등관(等觀)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에게는 두 가지의 법문(法門)이 있으니,  첫째는 필경공의 법문(法門)이요, 둘째는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분별호악(分別好惡)의 법문(法門)이다.

필경공의 법문(法門)에 들면 평등한 등관(等觀)을 얻지만,

분별하는 법문(法門)에 들면,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조차도 오히려 부처님께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축생이겠는가!

중생을 가벼이 여기고 가엾이 여기지도 않고, 보시하지도 않기 때문에 분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問曰:菩薩身非木石,云何衆生來割截而不生異心?

묻나니, 보살의 보살신(菩薩身) 나무나 돌이 아니거늘 어떻게 중생이 와서 몸을 끊고 베는데 다른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言:菩薩久修羼提波羅蜜故,能不愁惱;如羼提仙人被截手足,血皆爲乳。

有人言:菩薩無量世來深修大慈悲心故,雖有割截,亦不愁憂;譬如草木無有瞋心。 

답하나니, 어떤 말하기를 “보살은 오래도록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을 닦았기 때문에 능히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니마치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신인, 찬제선인(羼提仙人) 가리왕에게 손발을 잘리자  피가 모두 젖이  것과 같다 하였으며, 
어떤 말하기를 “보살은 무량한 세세에서부터  자비심을 깊이 닦았으므로, 비록 베고 끊을지라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나니비유하자면, 마치 풀이나 나무는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으며, 

 

有人言:菩薩深修般若波羅蜜,轉身得般若波羅蜜果報空心故,了了知空,割截身時心亦不動;如外物不動,內亦如是。得般若果報故,於諸法中無所分別。

有人言:是菩薩非生死身,是出三界法性生身,住無漏聖心果報中故,身如木石,而能慈念割截者;是菩薩能生如是心故,割截劫奪內外法時,其心不動。是爲菩薩希有法。

어떤 분은 말하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닦았기에 몸을 바꾸어도 반야바라밀의 과보를 얻은 마음 공심(空心)인 까닭 공(空)함을 분명하게 알아서 몸을 베고 끊음을 당할 때에도 그 마음 역시 동요하지 않았으니, 마치 바깥의 물건에 동요하지 않는 것과 같이 안에서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이는 반야의 과보를 얻었기 때문에 가운데에서 분별 없는 것이다 하였으며, 
어떤 말하기를  보살은 나고  생사신(生死身) 아니요, 바로 삼계(三界) 벗어난 법성생신(法性生身)이라. 번뇌 없는 성스런 마음으로 과보에 머무른 까닭 몸이 마치 나무나 돌과 같으며, 또한 몸을 베는 이에게 인자한 마음을  수있는 것이.  보살은 이러한 인자한 마음을   있기 때문에 안팎의 법을 겁탈하고 끊을 때에도 그의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희유한 법이다 하였.

 

復次,希有法者,如經中說:“我以佛眼見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菩薩,入地獄中,令火滅湯冷,以三事教化衆生。”如經中說。

또한 ‘희유한 희유법(希有法)’이란 마치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시방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의 보살들을 보나니, 그들은 지옥에 들어가서 불이 꺼지게 하고 끊는 물을 차게 하며,

신통(神通) 지타심(知他心) 설법(說法)의 삼사(三事)로써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신 것과 같다.

問曰:若爾者,不應有三惡道!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3악도(惡道)는 있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答曰:三惡道衆生無邊無量;菩薩雖無邊無量,衆生倍多無量菩薩。

隨衆生可度因緣,若於三惡道中有餘功德者,菩薩則度;重罪者則不見菩薩。菩薩一相見無分別心故,不一一求覓衆生;譬如大赦,及者得脫,不及者則不蒙。

답하나니, 삼악도의 중생은 무변하고 무량하며, 보살도 비록 무변하고 무량할지라도 중생들은 몇배나 더 무량하게 많은 것이다.
보살은 제도할 수 있는 중생의 인연을 따라서 만약 3악도 가운데에서 그 밖의 다른 공덕이 있는 이라면, 곧 제도할 수 있지만, 죄가 중한 이는 보살을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보살은 일상(一相)으로 보아 분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낱낱의 중생마다를 구하여 찾지 않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대사면(大赦免)에 해당되는 이는 벗어날 수 있지만 해당되지 않는 이는 사면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曰:若衆生割截菩薩、或食其肉,應當有罪,云何得度?

묻나니, 만약 중생이 보살의 몸을 베어서, 혹 그 살을 먹는다면 마땅히 죄가 되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제도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此菩薩本願:“若有衆生噉我肉者,當令得度。”如經中說:“衆生食菩薩肉者,則生慈心。”譬如有色、聲、香、觸,人聞見則喜,復有聞見則瞋;味亦如是,有瞋者、有起慈心者。
如『毘摩羅鞊經』說:“服食香飯,七日得道者,有不得者。”非以噉肉故得度,以起發慈心故,得免畜生,生善處,値佛得度。

답하나니, 그것은 곧 보살이 본래 서원한 본원(本願)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라도 나의 살을 먹으면 반드시 제도되게 하리라”고 한 때문이니,

마치 경에서 설명하기를 “중생이 보살의 살을 먹으면 인자한 마음이 생긴다”라고 한 것과 같으며,

비유하자면,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이 있을 때, 사람들이 듣고ㆍ보면 곧 기뻐하는 이가 있고, 또 듣고ㆍ보면서 화를 내는 이가 있는 것과 같이

맛(味)도 이와 같아서, 화를 내는 이도 있고 인자한 마음을 내는 이도 있으니,

마치 '비마라힐경(毗摩羅鞊經, 유마경)'에서 “향반(香飯)을 먹고 7일 만에 도(道)를 얻은 이도 있고, 얻지 못한 이도 있었다”라고 말씀한 것과 같이, 
이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제도되는 것이 아니고 인자한 자심(慈心)을 일으킨 때문에 축생을 면하고 좋은 곳에 태어나 부처님을 만나 제도되는 것이다.

有菩薩於無量阿僧祇劫深行慈心,外物給施衆生,意猶不滿,幷自以身布施,爾乃足滿。如『法華經』中,藥王菩薩外物珍寶供養佛,意猶不滿;以身爲燈供養於佛,爾乃足滿。

어떤 보살은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인자한 자심(慈心)을 깊이 행하면서 바깥의 물건들을 보시하였으나, 여전히 중생의 뜻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면, 아울러 스스로의 몸을 보시하고서야 비로소 만족하게 하는 것이니,

마치 '법화경(法華經)'에서 약왕(藥王)보살은 바깥 물건의 값진 보배로 부처님께 공양하면서도 뜻이 오히려 그가 만족하지 않아서, 스스로의 몸을 태워 등불을 밝혀서 부처님께 공양하고서야 비로소 만족하게 여긴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人得外物,雖多,不以爲恩。所以者何?非所愛重故。得其身時,乃能驚感,是故以身布施。

菩薩又爲天上諸天說法,如經中廣說。人以四事攝之:布施、愛語、利益、同事。布施有二事,如經中廣說。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비록 바깥의 물건을 많이 얻을지라도 은혜롭게 여기지 않는 이도 있나니, 왜냐하면, 사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나, 오직 그의 몸을 얻었을 때에는 한편 놀라면서 감격하게 되는 까닭에 몸으로써 보시하는 것이다.
보살은 또 천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으니, 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으며, 
사람은 네 가지의 사사(四事)로써 거두어 주기도 하나니,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가 그것이며,  보시에 두 가지 일이 있으니, 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5

 

云何三十二相?一者、足下安平立平如底;二者、足下千輻輞輪,輪相具足;三者、手足指長勝於餘人;四者、手足柔軟勝餘身分;五者、足跟廣具足滿好;六者、手足指合縵網勝於餘人;七者、足趺高平好,與跟相稱;八者、伊泥延鹿纖好,如伊泥延鹿王;九者、平住兩手摩膝;十者、陰藏相,如馬王、象王。奩 화장품상자 렴

어떤 것을 32(相, 상호)이라 하는가?

하나는 발바닥이 평평하여 마치 화장대의 바닥이 지면과 꼭 닿아 틈이 없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발바닥도 편편한 렴(奩, 경대) 바닥 같으며,

둘은 발바닥에  개의 수레바퀴 같은 무늬를 구족한 천복망륜(千輻輞輪)이 있으, 

셋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길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수족지장승(手足指長勝)이며, 

넷은 손발이 매우 부드러워서 몸의 다른 부분보다 뛰어난 수족유연(手足柔軟勝)이며, 

다섯은 발꿈치가 넓고 원만한 족근광구족만호(足跟廣具足滿好) 하며, 

여섯은 손가락ㆍ발가락 사이마다 얇은 비단결 같은 ()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수족지합안만망(手足指合縵網勝)이며, 

일곱은 발등이 높고 평평한 족부고평호(足趺高平好)하여 발꿈치와 서로 알맞게 조화를 이루며, 

여덟은 장딴지가 밋밋한 것이 마치 이니연(伊泥延) 사슴의 다리와 같으며, 

아홉은 서서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닿는 평주양수마슬(平住兩手摩膝)이며, 

열은 남근(男根) 드러나지 않아 마치 말이나 코끼리의 것과 같으니라.

 

十一者、身縱廣等,如尼俱盧樹;十二者、一一孔一毛生,色靑、柔軟、右旋;十三者、毛上向,靑色柔軟右旋;十四者、金色相,其色微妙勝閻浮檀金;十五者、身光面一丈;十六者、皮薄細滑不受塵垢,不停蚊蚋;十七者、七處滿:兩足下、兩手中、兩肩上、項中皆滿字相分明;十八者、兩腋下滿;十九者、上身如師子;二十者、身廣端直。

열하나는 키와 몸이 알맞게  것이 마치 니구로수(尼俱盧樹) 같으며, 

열둘은 낱낱 털구멍마다  개씩의 검푸른 빛을 유연한 털이 나서 오른편으로 말려 있으며, 

열셋은 털이 위로 쏠려 검푸르고 부드러우며, 

열넷은 온몸의 빛이 황금색으로,  빛깔의 미묘함이 마치 염부단금(閻浮檀金) 능가하며, 

열다섯은 몸에서 솟는 광명이  길이며, 

열여섯은 피부가 보드랍고 매끄러워서 먼지가 묻지 않고 모기나 파리가 붙지 못하며,

열일곱은  발바닥과  손바닥과  어깨와   일곱 군데에 모두 만자(滿字, Śrīvatsa. 덕자德字) 상이 분명하게 있으며, 

열여덟은  겨드랑이가 두둑한 양액하만(兩腋下滿)이며, 

열아홉은 상반신 마치 사자와 같은 상신여사자(上身如師子)이며, 

스물은 몸이 넓고 곧으며 단정한 신광단직(身廣端直)이니라.


二十一者、肩圓好;二十二者、四十齒;二十三者、齒白齊密而根深;二十四者、四牙最白而大;二十五者、方頰車如師子;二十六者、味中得上味,咽中二處津液流出;二十七者、舌大、軟、薄,能覆面至耳髮際;二十八者、梵音深遠,如迦蘭頻伽聲;二十九者、眼色如金精;三十者、眼睫如牛王;三十一者、眉閒白毫相,軟白如兜羅緜;三十二者、頂髻肉成。是三十二相,佛身成就。

스물 하나는  어깨가 둥글면서 보기 좋은 견원호(肩圓好)이며, 

스물 둘은 치아가 40개이, 

스물 셋은 치아가 가지런하고 조밀하면서 뿌리가 깊으며, 

스물 넷은  개의 송곳니가 아주 희면서 크고, 

스물 다섯은 네모지고 반듯한 뺨이 마치 사자의 뺨과 같으며, 

스물 여섯은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좋은 맛을 낼 수 있도록 목구멍의  군데에서 진액(津液) 흘러나오며, 

스물 일곱은 혀가 크고 유연하고 얇아서 얼굴을 덮고 귀밑털까지 닿으며, 

스물 여덟은 범음(梵音) 깊고 멀리 들리되 마치 가란빈가(伽蘭頻伽, 가릉비가迦陵毘伽, 가릉빈가迦陵頻迦) 소리와 같으며, 

스물 아홉은 눈빛은 마치 황금빛의 정기(精氣) 같은 안색여금정(眼色如金精)이며, 

서른은 속눈썹이 마치 소의 것과 같은 안첩여우왕(眼睫如牛王)이며,

서른 하나는  눈썹 사이에 희고 보드라운 털이 나서 마치 도라(兜羅, tūla. 명주솜) 솜 같으며, 

서른둘은 정수리에 육계(肉髻) 있는 정계육성(頂髻肉成)이나니, 

 32상으로 부처님의 몸이 성취되었으니라.


光明遍照三千大千世界,若欲廣照,則遍滿十方無量阿僧祇世界,爲衆生故受丈光;若放無量光明,則無日月、時節、歲數。

佛音聲遍滿三千大千世界,若欲大聲,則遍滿十方無量阿僧祇世界;隨衆多少,音聲遍至。

광명은천대천세계를 비추나니, 만약 더욱 널리 비추고자 한다, 시방으로 무량한 아승기 세계에 두루 차게 하며, 중생들을 위해서는  길까지 뻗는 광명을 받게 하시며, 만약 무량한 광명을 비추면 해와 달이나 시절이나 세수(歲數, 세월)조차도 없게 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의 음성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차나니, 만약  음성을 내시고자 한다면,  시방으로 무량한 아승기의 세계에 두루 차게 하시나니, 중생들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음성은 두루 이르느니라.

 

▶論. 問曰:上來已,處處說:“諸法性空,云何分別有善、不善?”

須菩提何以從後已來,品品中義無異而作種種名問?

▷논. 묻나니, 위에서 이미 곳곳마다 “제법의 성품은 공(空)하다” 함을 말씀하셨거늘

어찌하여 “착한 선(善)과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 있다”고 분별하시는 것입니까?

또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뒤에 나오는 후품에서, 품(品)마다 뜻의 차이가 없음에도 갖가지의 이름을 만들어서 묻고 있는 것입니까?

答曰:是事上已答。復次,衆生從無始生死已來著心深難解故,須菩提復作是重問。

復次,是般若波羅蜜欲說是空,義要故,數問。

답하나니, 이러함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대답하였다.
또 중생은 비롯함이 없는 무시(無始)로부터 생사를 거듭하면서 집착하는 착심(著心)이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에, 수보리 존자가 이렇게 거듭하여 여쭈는 것이며, 
또 반야바라밀에서의 공(空)에 대한 요긴한 뜻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부러 자주자주 여쭈는 것이다.

復次,佛在世時,衆生利根易悟;佛滅度五百年後,像法中衆生愛著佛法,墮著法中,言:“若諸法皆空、如夢、如幻,何以故有善、不善?”

以是故,須菩提憐愍未來衆生鈍根不解故重問。“世尊!若諸法皆空,云何分別有善、不善等?”

또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불재세시(佛在世時)에는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여 깨치기 쉬었지만,

부처님께서 멸도하시고 5백 년 뒤의 상법(像法)에서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불법에 애착하나니, 법에 집착하는 착법(著法)에 빠져서 말하기를 “만약 제법이 모두 공(空)하여 마치 꿈과 같고 환과 같다면, 무엇 때문에 착한 선(善)과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 있는 것인가?”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미래 세상에 근기가 둔하여 이해하지 못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일부러 거듭 세존께 여쭙는 것이니,

“만약 제법이 모두 공(空)하다면 어떻게 착한 착한 선(善)과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 있다고 분별하십니까”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 그 가르침이 3단계로 변화한다는 견해로써 이 견해는 사람들의 기근능력(機根能力)은 차차 저하하고 그 교설이 올바르게 행해지지 않게 된다는 역사관으로, 이 견해에 따르면 시대는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의 3시(三時)로 나뉜다.

●정법(正法)의 시대는 교설(敎)과 그 실천(行)과 그 증과(證果: 證)의 셋이 모두 갖춰진 시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당하게 계승되어 사람들이 구제되는 시기로, 그 기간은 5백년으로 보며,

●상법(像法)의 시대는 교설(敎)과 실천(行)뿐으로 증과(證)가 없는 시대로 정법(正法)과 유사한 "상법(像法)"의 시대이며 그 기간은 1천년이다.

●말법의 시대는 교설(敎)뿐인 시대로 고타마 붓다 당시의 가르침인 도(道)를 수행하여 깨닫는 자는 없게 되고 교법만이 잔존할 뿐인 시대이며 그 기간은 1만년이며, 말법(末法) 시대 후에는 교(敎)도 없는 법멸(法滅)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 - 위키

 

此中佛自說因緣:“凡夫顚倒心故,於法皆作顚倒異見,乃至不見一法是實。

凡夫於夢中,著夢、得夢、見夢者,亦著夢中所見事。”是人若不信罪福,起三種不善業;若信罪福,起三種善業。

善、不善、不動:善名欲界中善法,喜樂果報;不善名憂悲苦惱果報;不動名生色、無色界因緣業。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범부는 뒤바뀐 마음의 전도심(顚倒心) 때문에 법에 대하여 모두 뒤바뀐 다른 견해의 전도이견(顚倒異見)을 내는 까닭에 어느 하나의 법에서조차도 그 진실됨을 보지 못하나니,

범부는 꿈 속에서는 꿈에 집착하여 꿈을 얻고, 꿈을 보는 이를 얻으며, 또한 꿈 속에서 보이는 일에도 집착하느니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사람이 만약 죄와 복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세 가지 착하지 못한 삼종불선업(三種不善業)을 일으킬 것이요,

만약 죄와 복을 믿는다면 세 가지 착한 삼종선업(三種善業)을 일으킬 것이다.
선(善)과 불선(不善)과 부동(不動)에서, 

선(善)은 욕계(欲界)의 착한 선법으로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과보라 하고,

불선(不善)은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주는 과보라 하며,

부동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나는 인연의 업(業)이다.

菩薩知是三種業皆是虛誑不實,住二空中,爲衆生說法畢竟空破諸法;無始空破衆生相。

住中道,爲衆生說法,所謂:“五衆、十二入、十八界皆是空,如夢、如幻乃至如化,是法中無夢、亦無見夢者。”菩薩語衆生:“汝等於空法顚倒心故生諸著!”如經中廣說。

보살은 이 세 가지의 삼종업(三種業)이 모두 거짓이요, 진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므로 두 가지의 필경공(畢竟空)과 무시공(無始空)공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나니, 
필경공(畢竟空)으로는 제법을 파괴하고 무시공(無始空)으로는 중생상(衆生相)을 깨뜨리면서 중도(中道)에 머물러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나니, 이른바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는 모두 공한 것이어서 마치 꿈과 같고 환과 같으며. 나아가 변화한 화(化)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 가운데에서는 꿈도 없고 꿈을 보는 이도 없나니, 보살이 중생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공한 공법(空法)에서 뒤바뀐 마음의 전도심(顚倒心) 때문에 모든 집착을 내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是菩薩方便力故,於顚倒中拔出衆生,著破顚倒法中。譬如:慳貪是顚倒,以布施破慳貪法。而衆生著是布施故,爲說布施果報無常、實空;從布施拔出衆生,令持戒。

持戒及持戒果報中拔出衆生,語衆生言:“天福盡時,無常苦惱!”拔出衆生,令離欲、行禪定;

而爲說禪定及果報虛誑不實,能令人墮顚倒中,種種因緣,爲說布施、持戒、禪定無常過失,令住涅槃、得涅槃方便,所謂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令衆生住是法中。

이 보살은 방편력으로 뒤바뀜 속에 있는 중생을 구제해 주었으나, 그들은 뒤바뀐 법을 파괴하는 그 가운데에 다시 집착하나니, 비유하자면, 간탐, 그것이 곧 뒤바뀐 것이므로 보시로써 그 간탐하는 법을 파괴하였으나, 중생은 이 보시에 다시 집착한 까닭에 그들을 위하여 “보시의 과보는 무상하며 실로 공한 것이다”고 말해 주어서 이 보시에 집착한 중생을 구제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며, 
그리고 이 지계(持戒)와 이 지계의 과보에서 중생을 다시 구제하고자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천상의 복이 다한 때에는 무상으로 다시 괴로워한다”고 하여서, 중생을 구제하여 욕망을 여의고 선정을 행하게 하며,

그러면서 그들을 위하여 선정과 그 과보는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뒤바뀜의 전도 가운데에 떨어지게 하는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니,

갖가지의 인연으로 그들을 위하여 보시와 지계와 선정의 무상한 허물을 말해 주어서 열반에 머무르게 하는 한편, 열반의 방편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4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법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若布施、持戒、禪定是定實法,則不應令遠離。如布施、持戒等破凡夫法,此則因顚倒而生,雖少時益衆生,久則變異,能生苦惱故,亦教令捨離。

만약 보시와 지계와 선정, 이러한 것이 일정하고 진실한 실법이라면 마땅히 멀리하지 않아야겠지만,

보시와 지계 등이 범부의 법을 파괴하는 것 같으나, 이것은 곧 뒤바뀐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비록 잠깐 동안은 중생을 이롭게 할지라도 오래되면 변하고 달라져서 고뇌를 일으키기 때문에, 역시 가르쳐서 버리고 여의게 하는 것이다.

菩薩方便力故,先教衆生捨罪,稱讚持戒、布施福德;次復爲說持戒、布施亦未免無常苦惱,然後爲說諸法空,但稱讚實法,所謂無餘涅槃。

보살은 방편력으로 먼저 중생으로 하여금 죄를 버리게 하고, 지계와 보시의 복덕을 칭찬하고 또 다시 그들을 위하여 지계와 보시를 말해 주나, 무상한 것과 고뇌는 면치 못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뒤에는 그들에게 제법의 공을 설명하고 다만 진실한 실법만을 칭찬하는 것이니, 이른바 무여열반(無餘涅槃)인 것이다.

是時,須菩提歡喜:“甚希有!菩薩能如是知是諸法實相,所謂畢竟空,而爲衆生說法,令至無餘涅槃。”

佛言:“是一種希有。問欲更知菩薩希有法,一切聲聞、辟支佛不能報是菩薩,何況餘人!”

須菩提問:“何等是更有希有法?”佛答,如經中說。

이 때에 수보리 존자는 매우 보기 드문 희유한 일이라고 기뻐하면서 “보살은 이와 같이 제법의 실상(實相)을 아나니, 이른바 필경공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무여열반에 이르게 합니다”라고 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한 가지의 희유한 질문이니라.

보살의 희유한 법을 더욱 알고자 하나,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는 이 보살에게 대답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밖의 다른 사람이겠는가?”라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떠한 희유한 법이 또 있습니까?”라고 하였는데,

부처님의 대답은 경 가운데서 말씀하신 바과 같다.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4

 

云何爲七覺分?念覺分、擇法覺分、精進覺分、喜覺分、除息覺分、定覺分、捨覺分。

어떠한 것을 칠각분(七覺分, 칠각지七覺支)이라 하는가?

지(止) · 관(觀)을 고르게 수행하는 염각분(念覺分, 염각지)과

지혜로써 진실한 실법과 허위의 허망법을 가리는 택법각분(擇法覺分, 택법각지)과

열심히 정법을 수행하는 정진각분(精進覺分, 정진각지)과

정법의 정득하여, 그 성취에 기뻐하는 희각분(喜覺分, 희각지)과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안온한 제식각분(除息覺分, 경안각지, 의각지)과

선정에 들어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정각분(定覺分, 정각지)과

마음에 편파나 집착이 없어서 균형된 사각분(捨覺分, 사각지)이니라.

 

云何爲八聖道分?正見、正思惟、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

어떠한 것을 팔성도분(八聖道分)이라 하는가?

바른 견해의 정견(正見)과 바른 사유의 정사유(正思惟)과 바른 말의 정어(正語)과 바른 행위의 정업(正業)과 바른 생활의 정명(正命)과 바른 정진의 정정진(正精進)과 바르게 기억하는 정념(正念)과 바른 선정의 정정(正定)이니라.


云何爲三三昧?空三昧門,無相、無作三昧門。云何爲空三昧?以空行、無我行攝心,是名空三昧。

云何爲無相三昧?以寂滅行、離行攝心,是爲無相三昧。

云何爲無作三昧?無常行、苦行攝心,是爲無作三昧。

어떠한 것을 삼삼매(三三昧)라 하는가?

공(空)삼매문과 무상(無相)삼매문과 무작(無作)삼매문이니라.

어떠한 것을 공(空)삼매라 하는가? 공한 공행(空行)과 무아행(無我行)으로써 마음을 거두는 것을 공삼매라고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무상(無相)삼매라 하는가? 고요히 그친 적멸행(寂滅行)과 여의는 이행(離行)으로써 마음을 거두나니, 이를 무상삼매라고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무작(無作)삼매라 하는가? 덧없다는 무상행(無常行)과 일체가 고라는 고행(苦行)으로써 마음을 거두니, 이를 무작삼매라 하느니라


云何爲八背捨?內色相外觀色,是初背捨;內無色相外觀色,是二背捨;淨背捨,是三背捨;過一切色相,滅一切對相,不念一切異相故,觀無邊虛空,入無邊空處;乃至過一切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背捨。是名八背捨。

어떤 것을 팔배사(八背捨, Aṣṭa-vimokṣa, 팔해탈)라 하는가?

내입(內入, 육입)에도 색상(色相)이 있고 외입(外入, 육경)에도 색이 있음을 관찰하는, 內有色外亦觀色(내유색외역관색)이첫 번째의 초배사(初背捨)이고,

내입(內入, 육입)에는 색이 없으나 외입(外入, 육경)의 색을 관하는, 內無色外觀色(내무색관색)이 두 번째의 이배사(二背捨)이며,

정(淨, 청정)한 배사를 몸으로 증득하는, 淨背捨身作證(정배사신작증)이 세 번째의 삼배사(三背捨)이니라.

그리고 모든 물질의 색상(色相)을 초월하고 일체의 대상(對相)을 없애면서 일체의 다른 이상(異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끝없는 허공을 관하여 무변공처(無邊空處)에 들어가는 것이 사배사(四背捨)이고,

식무변처정에 의지하여 허공(공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려서 허공의 속박 즉, 허공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을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드는 것이 오배사(五背捨)이고

무소유처정에 의지하여 마음(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려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드는 것이 육배사(六背捨)이며, 

무소유심(無所有心)을 다시 완전히 버려서 있고 없음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머무는 것이 칠배사(七背捨)이며,

나아가 온갖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를 지나, '일체의 마음(心)과 마음작용의 심소(心所)가 소멸된 적정(寂靜)의 상태의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는 것을 멸수상배사(滅受想背捨)이니,

이를 이름하여 팔배사(八背捨)라 하느니라.

 

배사(背捨, vimokṣāḥ)란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곧, 물질에 대한 욕탐에서 벗어나고, 부정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무색정(無色定)에서의 아래 경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느낌ㆍ생각 등의 심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云何九次第定?行者離欲、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第二、第三、第四禪;乃至過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定。是名九次第定。

어떤 것을 순차적인 수행단계의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 하는가?

수행하는 이가 탐욕과 악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는 거친 생각의 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의 관(觀)도 있으면서 여읨에서 행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며, 제2선ㆍ제3선ㆍ제4선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나니, 이를 이름하여 9차제정이라 한다.

 

초선(제1선)에 들면 말이 그치며, → 제2선에 들면 생각 일으킴과 추론적 사유가 그치고, →  제3선에 들면 희열이 그치며, →   제4선에 들면 입출식(入出息)이 그치고, → 4선정을 닦으면 색계18천에 태어나며  → (제5선)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면 물질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 (제6선)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면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고, → (제7선)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면 식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 (제8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 그친다; 여기까지가 8등지이며,  8등지에 멸진정을 더한 것이 9차제정이다.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면 인식과 느낌이 그친, 열반에 이르게 되는 수행과정이 구차제정이다. - 오봉정사를 참고하였음.


云何爲佛十力?是處、不是處,如實知;知衆生過去、未來、現在諸業諸受法,知造業處,知因緣,知報;諸禪定、解脫、三昧、定垢淨分別相,如實知;知他衆生諸根上下相;知他衆生種種欲解;知一切世閒種種無數性;知一切到道相;知種種宿命,一世乃至無量劫,如實知;天眼見衆生,乃至生善惡道;漏盡故,無漏心解脫,如實知。是爲佛十力。

어떠한 것을 부처님의 불십력(佛十力, daśabalāni)이라 하는가?

도리에 계합하거나 계합하지 못하는 것의 시처불시처(是處不是處)를 사실대로 알며, ①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중생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업(業)으로써 모든 받는 법을 알고, 업을 지은 처소를 알고, 인연을 알고 과보를 알며, ②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모든 선정(禪定)ㆍ해탈(解脫)ㆍ삼매정(三昧定)의 더럽고 깨끗함을 분별하는 분별상(分別相)을 사실대로 알며, ③정처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다른 중생의 모든 근(根, 근기)의 상하의 상을 알며, ④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다른 중생의 갖가지 의욕과 견해의 욕해(欲解)를 알며, ⑤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온갖 세간의 갖가지 무수한 성품의 무수성(無數性)을 알며, ⑥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온갖 중생이 도달하는 윤회의 갈래의 도상(道相)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사실대로 알며, ⑦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한 세상에서 한량없는 겁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숙명을 사실대로 알며, ⑧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선도(善道)ㆍ악도(惡道)에 태어나는 것을 보며, ⑨사생지력(死生智力)

번뇌가 다하여 누진(漏盡)한 까닭에 번뇌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는 것을 사실대로 아나니, ⑩누진지력(漏盡智力)

이를 부처님의 불십력(佛十力)이라 하느니라.

 
云何爲佛四無所畏?佛作誠言:‘我是一切正智人。’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言:‘是法不知。’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一無畏也。

어떠한 것을 부처님의 사무소외(四無所畏)라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나는 곧 일체의 바른 지혜를 지닌 정지인(正智人)이로다’고 말씀하실 때,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梵)이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이들이 마치 사실인것처럼 말하기를 ‘그는 이 법을 모른다’고 한다 하여도 약간의 두려운 상도 보이지 않으시니, 이 때문에 나는 안은(安隱)을 얻고 두려움 없는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성주(聖主)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며,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는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며, 범륜(梵輪)을 능히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은 실로 굴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첫 번째의 일체법(一切法)을 깨달았음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는 일체지무소외(一切智無所畏)이며, 

 

범륜(梵輪)= 범(梵, brahman)이란 ‘청정하고 신성한 것’을 말하며, 륜(輪, cakra)이란 ‘부처님의 지혜 및 지혜와 상응하는 법’을 가리킨다.


佛作誠言:‘我一切漏盡。’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言:‘是漏不盡。’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作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二無畏也。

부처님께서 진실한 마음으로, ‘나는 모든 번뇌가 다하였노라’고 말씀하실 때,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이 마치 사실인양 말하기를 ‘그는 번뇌가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도 나아가 조금의 두려운 모양도 보이지 않으시니,

이러한 까닭에 나는 안은(安隱)을 얻고 두려움 없음는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성주(聖主)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며,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는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며, 범륜(梵輪)을 능히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은 실로 굴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두 번째의 일체의 번뇌를 모두 끊었다는 것에 두려움 없는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이며, 


佛作誠言:‘我說障法。’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言:‘受是法不障道。’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三無畏也。

부처님께서 진실한 마음으로, ‘나는 장애하는 장법(障法)을 말하노라’고 말씀하실 때,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이 마치 사실인양 말하기를 ‘이 법을 받아도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나아가 조금의 두려운 상도 보이지 않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나는 안은(安隱)을 얻고 두려움 없음는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성주(聖主)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며,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는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며, 범륜(梵輪)을 능히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은 실로 굴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세 번째의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것을 모두 설하심에 두려움이 없는,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이며,

 

佛作誠言:‘我所說聖道,能出世閒;隨是行,能盡苦。’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言:‘行是道不能出世閒、不能盡苦。’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四無畏也。

부처님께서 진실한 마음으로, ‘내가 말한 거룩한 성도(聖道)는 세간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이 행을 따라야 괴로움을 다한다’고 마씀하실 때,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이 마치 사실인것 처럼 말하기를 ‘이 도를 행하여도 세간을 벗어날 수 없고 괴로움을 다하지도 못한다’고 하여도 나아가 조금의 두려움의 상도 보이지 않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나는 안은(安隱)을 얻고 두려움 없음는 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성주(聖主)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며,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는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며, 범륜(梵輪)을 능히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악마나 범이나 또는 그 밖에 다른 이들은 실로 굴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네 번째의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을 모두 말했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설출도무소외(說出道無所畏)이니라.


云何爲四無㝵智?一者、義無㝵智,二者、法無㝵智,三者、辭無㝵智,四者、樂說無㝵智。云何爲義無㝵智?緣義智慧,是爲義無㝵智。云何爲法無㝵智?緣法智慧,是爲法無㝵智。云何爲辭無㝵智?緣辭智慧,是爲辭無㝵智。云何爲樂說無㝵智?緣樂說智慧,是爲樂說無㝵智。

어떤 것을 사무애지(四無礙智)라 하는가?

첫째는 일체법의 뜻에 걸림이 없는 의무애지(義無礙智)요, 둘째는 일체법에 걸림이 없는 법무애지(法無礙智)며, 셋째는 설법에 걸림이 없는 사무애지(辭無礙智)요, 넷째는 일체의 교법을 설함에 장애가 없는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이니,

어떠한 것을 의무애지(義無礙智)라 하는가? 뜻(義)을 반연하는 지혜를 곧 의무애지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법무애지(法無礙智)라 하는가? 법(法)을 반연하는 지혜를 곧 법무애지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사무애지(辭無礙智)라 하는가? 사(辭, 언어)를 반연하는 지혜를 곧 사무애지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라 하는가? 요설(樂說)을 반연하는 지혜를 곧 요설무애지라 하느니라.

 

云何爲十八不共法?一者、諸佛身無失,二者、口無失,三、念無失,四、無異想,五、無不定心,六、無不知已捨心,七、欲無減,八、精進無減,九、念無減,十、慧無減,十一、解脫無減,十二、解脫知見無減,十三、一切身業隨智慧行,十四、一切口業隨智慧行,十五、一切意業隨智慧行,十六、智慧知過去世無㝵,十七、智慧知未來世無㝵,十八、智慧知現在世無㝵。

어떠한 것을 18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 하는가?

하나는 모든 부처님에게는 불신(佛身) 허물이 없는 신무실(身無失)이요,

둘은 부처님의 구(口, 입) 허물이 없는 구무실(口無失)이며,

셋은 기억 허물이 없는 염무실()이며,

넷은 다른 생각이 없는 무이상(無異想),

다섯은 선정이 아닌 부정(不定)의 마음이 없는 무불정심(無不定心)이고,

여섯은 깨달은 뒤에 버리지 않음이 없는 마음의 불지이사심(不知己捨心)이며, 

일곱은 의욕의 욕(欲) 줄어즐지 않는 욕무감(欲無減)이며,

여덟은 정진(精進) 줄어들지 않는 정진무감(精進無減)이,

아홉은 기억의 염(念) 줄어즐지 않는 염무감(念無減)이며,

열은 지혜의 혜(慧) 줄어지지 않는 혜무감(慧無減)이,

하나는 해탈(解脫) 줄어짐이 없는 해탈무감(解脫無減)이며,

열 둘은 해탈지견(解脫知見) 줄어짐이 없는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이니라.

열 셋은 일체의 신업(身業) 지혜에 따라 행하여지는 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이며,

열 넷은 일체의 구업(口業) 지혜에 따라 행하여지는 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이며,

열 다섯은 일체의 의업(意業) 지혜에 따라 행하여지는 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이며,

열 여섯은 지혜로써 과거 세를 앎 장애가 없는 지혜지과거세무애(智慧知過去世無㝵)이며,

열 일곱은 지혜로써 미래 세를 앎에 장애가 없는 지혜지미래세무애(智慧知未來世無㝵)이며,

열 여덟은 지혜로써 현세를 아는 장애가 없는 지혜지현재세무애( 智慧知現在世無㝵)이니라.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3

 

次,須菩提!我以佛眼見諸菩薩摩訶薩在四天王天上說法,在三十三天、夜摩天、兜率陁天、化樂天、他化自在天上說法;諸天聞菩薩說法,漸以三乘而得滅度。

須菩提!是諸天衆中有貪著五欲者,是菩薩示現火起,燒其宮殿,而爲說法,作是言:‘諸天!一切有爲法悉皆無常,誰得安者?’

또한 수보리야, 내가 불안(佛眼)으로써 자세히 보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4천왕천 위에서 법을 설하며,

33천ㆍ야마천ㆍ도솔타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에서도 법을 설하고 있나니,

모든 하늘들은 보살의 설법을 듣고 점차로 3승으로써 멸도(滅度)를 얻고 있느니라.

수보리야, 이 모든 하늘들 가운데서 5욕(欲)에 집착하는 이가 있으면, 이 보살은 불을 일으켜 그 궁전이 타는 것을 보이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기를 ‘여러 하늘이여,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모두 덧없는 것이거늘, 그 누가 안락하게 있을 수 있는 이가 있겠는가?’라고 하느니라.

 

復次,須菩提!我以佛眼觀十方世界,見如恒河沙等國土中諸梵天著於邪見,諸菩薩摩訶薩教令遠離邪見,作是言:‘汝等云何於空相虛妄諸法中而生邪見?’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住大慈心,爲衆生說法。須菩提!是爲諸菩薩希有難及法。

또한 수보리야, 내가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를 자세히 보나니,

모든 범천(梵天)이 삿된 소견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모든 보살마하살은 그들을 교화하여 삿된 견해를 여의게 하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 공한 공상(空相)이요 허망한 제법 가운데에서 삿된 사해를 내고 있는가?’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크게 인자한 대자심(大慈心)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곧 모든 보살의 희유하고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의 법이라 하느니라.

 

범천(梵天, "범"은 ब्रह्मा 브라흐마의 음차)은 범천(梵天), 범천왕(梵天王), 청정(淸靜), 적정(寂靜) 등으로 묘사하며, 고대 인도의 신 브라흐마가 불교에 편입되어서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 중 하나가 된 것으로서 십이천에 포함된다.  33천(天) 중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이며, 제석천(帝釋天)과 짝을 이루며, 불교를 옹호하는 신으로 묘사되며,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자 맨 먼저 찾아와 불법에 귀의했으며, 부처임을 설득하여 불교를 세우게 한 것을 범천권청(梵天勸請)이라 한다. 

 

復次,須菩提!我以佛眼觀十方世界如恒河沙等國土中,諸菩薩摩訶薩以四事攝取衆生。

何等爲四?布施、愛語、利益、同事。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의 모든 보살마하살을 관찰하나니,

그들은 네 가지로써 중생들을 거두고 있느니라.

어떠한 것이 네 가지인가?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의 사섭법 (四攝法)이니라.

 

云何菩薩以布施攝取衆生?須菩提!菩薩以二種施攝取衆生:財施、法施。

보살이 보시로써 어떻게 중생을 거두는가? 수보리야, 보살은 두 가지의 이종(二種) 보시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재물의 보시인 재시(財施)와 법의 보시인 법시(法施)이니라.

 

何等財施攝取衆生?須菩提!菩薩摩訶薩以金、銀、琉璃、頗梨、眞珠、珂貝、珊瑚等諸寶物,或以飮食、衣服、臥具、房舍、燈燭、華、香、瓔珞,若男、若女,若牛、羊、象、馬、車乘,若以己身,

給施衆生;語衆生言:‘汝等若有所須,各來取之,如取己物,莫得疑難!’

어떻게 재물의 보시인 재시(財施)로 중생을 거두어 주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금은(金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ㆍ진주(眞珠)ㆍ가패(珂貝)ㆍ산호(珊瑚)등의 보배로써, 혹은 음식ㆍ의복ㆍ침구ㆍ거처의 방사(房舍)ㆍ등촉(燈燭)ㆍ화향(華香)와 영락 등으로써, 또는 남자나 여자 혹은 소ㆍ양ㆍ코끼리ㆍ말ㆍ탈 것 등으로써, 또는 스스로의 몸으로써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니,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마다 와서 가져갈 것이니, 마치 스스로의 물건을 가져가듯이 어려워하지 말라’고 하느니라.

 

是菩薩施已,教三歸依:歸依佛、歸依法、歸依僧;或教受五戒,或教一日戒;或教初禪乃至教非有想非無想定,或教慈、悲、喜、捨,或教念佛、念法、念僧、念戒、念捨、念天,或教不淨觀,或教安那般那觀,或相、或觸;或教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空三昧、無相、無作三昧,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三十二相、八十隨形好;或教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或教辟支佛道,或教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보살이 재시(財施)를 하고 나면 그들을 가르쳐 세 가지 삼귀의(三歸依), 즉 부처님께 귀의하는 귀의불(歸依佛), 가르침에 귀의하는 귀의법(歸依法), 승가에게 귀의하는 귀의승(歸依僧)하게 하기도 하며,

혹은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기본 오계(五戒)를 받도록 가르치기도 하고

혹은 하루동안 계를 지키는 일일계(一日戒)를 가르치기도 하며, 혹은 초선(初禪)을 가르치기도 하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를 가르치기도 하느니라.

혹은 자ㆍ비ㆍ희ㆍ사의 사무량심를 가르치기도 하고, 혹은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의 육념(六念)을 가르치기도 하며,

혹은 부정관(不淨觀)이나 혹은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을 가르치기도 하며, 혹은 상호(相好)와 촉(觸)을 가르치기도 하느니라.

혹은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삼매와 무상ㆍ무작삼매와 8배사ㆍ9차제정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대자대비와 32상ㆍ80수형호를 가르치기도 하며,

혹은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를 가르치기도 하고,

혹은 벽지불의 도를 가르치기도 하며,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가르치기도 하느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教衆生,財施已,後教令得無上安隱涅槃。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希有難及法。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며 재시(財施)를 하며, 그런 뒤에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게 하나니,

수보리야, 이를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의 법이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云何以法施攝取衆生?須菩提!法施有二種:一者、世閒,二者、出世閒。

何等爲世閒法施?敷演、顯示世閒法,所謂不淨觀、安那般那念、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

如是等世閒法,及諸餘共凡夫所行法,是名世閒法施。

수보리야, 보살은 어떻게 법의 보시인 법시(法施)로써 중생을 거두는가?

수보리야, 법의 보시인 법시(法施)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세간(世間)이요, 둘째는 출세간(出世間)이니라.

어떠한 것이 세간의 법시(法施)인가? 세간의 법을 널리 펴서 보이는 것이니, 이른바 부정관과 안나반나염과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 등의 세간의 법과 그리고 그 밖의 범부가 행하는 세간의 법들이니, 이를 이름하여 세간의 법시(法施)라 하느니라.

 

是菩薩如是世閒法施已,以種種因緣教化,令遠離世閒法;遠離世閒法已,以方便力,令得聖無漏法及聖無漏法果。

何等是聖無漏法?何等是聖無漏法果?

聖無漏法者,三十七助道法、三解脫門。

聖無漏法果者,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세간의 법시(法施)를 한 뒤에는 갖가지의 인연으로 그들을 교화하여 세간의 법을 멀리 여의게 하며,

세간의 법을 여읜 뒤에는 방편의 힘으로써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과 거룩한 번뇌가 없는 법의 과위인 성무루법과(聖無漏法果)를 얻게 하느니라.

어떠한 것이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이며, 어떠한 것이 거룩한 번뇌가 없는 법의 과위인 성무루법과(聖無漏法果)인가?

성무루법(聖無漏法)이란, 37가지의 조도법(助道法)과 3해탈문(解脫門)이며,

성무루법과(聖無漏法果)라 함은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聖無漏法:須陁洹果中智慧乃至阿羅漢果中智慧、辟支佛道中智慧、三十七助道法中智慧、六波羅蜜中智慧乃至大慈大悲中智慧

如是等一切法,若世閒若出世閒智慧、若有漏若無漏、若有爲若無爲,是法中一切種智,是名菩薩摩訶薩聖無漏法。

何等爲聖無漏法果?斷一切煩惱習,是名聖無漏法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이란 수다원과 가운데서의 지혜요 나아가 아라한과 가운데서의 지혜이며, 벽지불도 가운데서의 지혜요 37조도법 가운데서의 지혜이며, 6바라밀 가운데서의 지혜요 나아가 대자대비 가운데서의 지혜이니라.

이와 같은 등의 일체법이니, 세간이거나 출세간의 지혜이며, 유루이거나 무루이거나 유위법이거나 무위법 가운데서의 일체종지이며, 이를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이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이 거룩한 번뇌가 없는 법의 과위인 성무루법과(聖無漏法果)인가? 일체 번뇌의 습기가 끊어진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거룩한 번뇌가 없는 법의 과위인 성무루법과(聖無漏法果)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得一切種智不?”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지요?”

 

佛言:“如是!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得一切種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須菩提言:“菩薩與佛有何等異?”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보살과 부처님과는 그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佛言:“有異。菩薩摩訶薩得一切種智,是名爲佛。所以者何?菩薩心與佛心無有異。菩薩住是一切種智中,於一切法無不照明,是名菩薩摩訶薩世閒法施。

須菩提!菩薩摩訶薩因世閒法施,得出世閒法施。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教衆生令得世閒法已,以方便力教令得出世閒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차이가 있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일체종지를 얻으면 부처님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보살심(菩薩心)과 부처님의 불심(佛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이 일체종지에 머무르면서 일체법에 대하여 밝게 비추지 않음이 없나니, 이를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세간의 법시(法施)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일 세간의 법시(法施)로 인하여 출세간의 법시(法施)를 얻게 하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교화하여 세간의 법을 얻게 한 뒤에는 방편의 힘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출세간의 법을 얻게 하는 것이니라.

 

須菩提!何等是菩薩出世閒法不共凡夫法同?

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三解脫門、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三十二相、八十隨形好、五百陁羅尼門,是名出世閒法。

수보리야, 어떠한 것이 보살의 출세간법(出世閒法)인가?

범부의 법과는 공통되지 않는 이른바 4념처와 4정근과 4여의족과 5근과 5력과 7각분과 8성도분과 3해탈문과 8배사와 9차제정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32상과 80수형호와 5백의 다라니문이니, 이를 이름하여 출세간법이라 하느니라.

 

須菩提!云何爲四念處?菩薩摩訶薩觀內身循身觀、觀外身循身觀、觀內外身循身觀,勤精進,以一心智慧觀身、觀身集因緣、觀身滅、觀身集生滅;行是道,無所依,於世閒無所愛。受、心、法念處,亦如是。

수보리야, 어떠한 것을 사념처(四念處)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안의 몸인 내신(內身)을 차례로 관하는 순신관(循身觀, kāya-anupaśyanā. 신념처身念處)으로 관찰하고

바깥의 외신(外身)을 차례로 관하는 순신관(循身觀)을 하며,

안팎의 내외신(內外身)을 차례로 관하는 순신관(循身觀)을 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심(一心)의 지혜로 몸을 관찰하되, 몸이 모인 인연의 신집인연()을 관찰하고, 몸의 소멸인 신멸(身滅)을 관찰하며,

몸이 쌓이고 나고 없어지는 신집생멸(身集生滅)을 관찰하며,

이러한 도(道)를 행하면서도 의지하는 데가 없고 세간에 대하여 애착이 없나니,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②수념처(受念處), 아홉 가지의 느낌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육체적인 즐거움, 정신적인 즐거움,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따라서 마음에서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지점을 인지하는 연습을 통해서 괴로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③심념처(心念處),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침체된 마음, 산만한 마음, 커진 마음, 커지지 않은 마음, 위가 있는 마음, 위없는 마음, 집중된 마음, 집중이 안 된 마음, 벗어난 마음, 벗어나지 못한 마음’ 등의 열여섯 가지의 대상에 대하여 순간순간 마음에 생겨나는 갖가지 상태를 그대로 정확히 인지하는 것으로, 변화무쌍하게 마음속에서 전개되는 갖가지 양상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마음 상태에서 ‘늘 그러하지 않음’(無常)을 발견해내는 능력의 갖춤을 지향하는 것이다.

④법념처(法念處), 오개(五蓋), 오온(五蘊), 육입처(六入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이며, 여기에서의 ‘법(法, dhamma)’은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서 관찰하는 대상 즉, 감관(感官) 대상으로서의 ‘현상 또는 존재’로써 즉, 마음속에 인지되는 감관 대상이 마음에 어떠한 움직임을 낳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수행의 형태이나, 법념처는 ‘현상 또는 존재’ 속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가 없음’(無我)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 다움을 참고하였음.

 

須菩提!云何爲四正勤?未生惡不善法,爲不生故,勤、生欲、精進;已生惡不善法,爲斷故,勤、生欲、精進;未生善法,爲生故,勤、生欲、精進;已生諸善法,爲增長修具足故,勤、生欲、精進;是名四正勤。

수보리야, 어떠한 것을 사정근(四正勤, 사정단)이라 하는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과 선하지 못한 불선법(不善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정진하는 단단(斷斷)이요,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못한 불선법(不善法)은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의욕을 내어 정진하는 율의단(律儀斷)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선법(善法)은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의욕을 내어 정진하는 수호단(隨護斷)이요,

이미 생긴 선한 선법은 더욱 자라도록 닦으면서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부지런히 의욕을 내어 정진하는 수단(修斷)이니,

이를 이름하여 사정근(사정단)이라 하느니라.

 

須菩提!云何爲四如意足?欲三昧斷行成就初如意足,精進三昧、心三昧、思惟三昧斷行成就如意足。

수보리야, 어떤 것을 자유자재한 힘을 얻기 위한 네 가지 기반의 사여의족(四如意足, 사신족四神足)이라 하는가?

먼저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는욕삼매(欲三昧)를 단행(斷行)하여 자유자재함의 욕여의족(欲如意足)을 성취하며,

정진으로 선정을 닦는 정진삼매(精進三昧)로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과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는 심삼매(心三昧)로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심여의족(心如意足)과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는 사유삼매(思惟三昧)를 단행하여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 풀이함  2

 

是時,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故,於慳法中拔出衆生,教行檀波羅蜜;持是布施功德。得大福報。從大福報拔出,教令持戒;持戒功德,生天上尊貴處。

復拔出,令住初禪;初禪功德生梵天處。二禪、三禪、四禪、無邊空處、無邊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

이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력으로써 간탐하는 법에서 중생들을 뽑아내어 그들을 교화하여 단(보시)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이 보시로써 큰 복의 과보를 얻게 하며,

큰 복의 과보로부터 뽑아내어 그를 교화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고, 계율을 지닌 공덕으로 천상의 존귀한 곳에 나게 하느니라.

다시 그곳에서 뽑아내어 초선(初禪)에 머무르게 하고, 초선의 공덕으로 범천(梵天)에 태어나게 하나니,

2선ㆍ3선ㆍ4선과 무변공처(無邊空處)ㆍ무변식처(無邊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衆生行是布施及布施果報,持戒及持戒果報,禪定及禪定果報,種種因緣拔出,安置無餘涅槃及涅槃道中,

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空解脫門、無相、無作解脫門、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安隱衆生,令住聖無
漏法 無色、無形、無對法中。有可得須陁洹果者,安隱教化,令住須陁洹果;

可得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者,令住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可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亦安隱教化,令住阿耨多羅三藐三菩提中。”

중생이 행한 이 보시 및 보시의 과보와 지계 및 지계의 과보와 선정 및 선정의 과보 등 갖가지 인연으로 그들을 뽑아내어 무여열반(無餘涅槃)과 열반의 도(道)에 편히 놓아두나니,

이른바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과 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해탈문ㆍ무상해탈문ㆍ무작해탈문과 8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 및 18불공법으로 중생들을 안온하게 하면서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과 무색(無色), 무형(無形), 대함도 없는 무대(無對)의 법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수다원의 과위를 얻어야 될 이라면 안온하게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에 머무르게 하고,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어야 될 이라면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에 머무르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될 이라면 역시 안온하게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안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諸菩薩摩訶薩甚希有難及,能行是深般若波羅蜜,諸法無所有性,畢竟空、無始空,而分別諸法是善、是不善,是有漏、是無漏,乃至是有爲、是無爲。”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심히 희유(稀有)하며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입니다.

이 깊은 심(深)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제법은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고 필경공(畢竟空)이며 무시공(無始空)이나, ‘제법에서 이것은 착한 선(善)이다, 이것은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이다, 이것은 유루이다, 이것은 무루이다, 나아가 이것은 유위이다, 이것은 무위이다’라고 분별합니다.”


佛告須菩提:“如是!如是!諸菩薩摩訶薩甚希有難及,能行是深般若波羅蜜,諸法無所有性,畢竟空、無始空,而分別諸法。須菩提!汝等若知是菩薩摩訶薩希有難及法,則知一切聲聞、辟支佛不能報,何況餘人!”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매우 희유하며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이니, 이 깊은 심(深)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제법은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고 필경 공이며 무시공이거늘, 제법을 분별하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들이 만약 이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의 법을 안다면, 곧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거늘, 하물며 그 밖에 다른 사람이겠는가?”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希有難及法,諸聲聞、辟支佛所無有?”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 이르러 닿을 수 없는 난급(難及)의 법이기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인지요?”


佛告須菩提:“一心諦聽!有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住報得六波羅蜜中及住報得五神通、三十七助道法,
住諸陁羅尼、諸無㝵智,

到十方世界,可以布施度者,以布施攝之;可以持戒度者,以持戒攝之;可以忍辱、精進、禪定、智慧度者,隨其所應而攝取之。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심(一心)으로 주의하여 자세히 들어라.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과보로 얻는 보득(報得)의 6바라밀에 머무르고, 과보로 얻는 다섯 가지 오신통과 37가지도를 돕는 조도법(助道法)에 머무르며,

그리고 모든 다라니와 모든 무애지(無礙智)에 머무르면서 시방 세계에 도달하여, 보시로써 제도해야 할 이라면 보시로써 거두어 주고, 지계(持戒)로써 제도해야 할 이라면 지계로써 거두어 주며,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써 제도해야 할 이라면 그 응하는 바에 따라 그들을 거두어 주느니라.


可以初禪度者,以初禪攝取之;可以二禪、三禪、四禪、無邊空處、無邊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度者,隨其所應而攝取之。可以慈、悲、喜、捨心度者,以慈、悲、喜、捨心攝取之。可以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空三昧、無相、無作三昧度者,隨所攝之。”

초선으로써 제도해야 할 이라면 초선으로써 거두어 주고, 2선ㆍ3선ㆍ4선ㆍ무변허공처ㆍ무변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로써 제도해야할 이라면 그 응하는 바에 따라 거두어 주며,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으로 제도해야할 이라면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으로 거두어 주고,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삼매ㆍ무상ㆍ무작삼매로써 제도해야 할 이라면 그에 따라 거두어 주느니라.”


“世尊!菩薩摩訶薩云何以布施饒益衆生?”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보시함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지요?”


“須菩提!菩薩行般若波羅蜜時布施,隨其所須飮食、衣服、車馬、香華、瓔珞、種種所須,盡給與之。
若供養佛、辟支佛、阿羅漢、阿那含、斯陁含、須陁洹等無有異;若施入正道中人及凡人,下至禽獸,皆無分別,等一布施。

何以故?一切法不異、不分別故。是菩薩無異、無別布施已,當得無分別法報,所謂一切種智。

“수보리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가 구한 바에 따라 보시하되 음식과 의복과 거마(車馬)와 향화(香華)와 영락(瓔珞) 등릐 갖가지 구하는 것을 모두 다 주느니라.

공양할 때는 부처님이거나 벽지불이거나 아라한ㆍ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이거나 간에 평등하게 대하고 차이가 없게 하며, 또 바른 정도(正道)에 든 사람과 범부와 심지어 날짐승ㆍ길짐승에 이르기까지도 분별없이 똑같게 보시하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에는 차이도 없는 불이(不異)이고 분별도 없는 불분별(不分別)이기 때문이니,

이 보살이 차이가 없는 무이(無異)하고 분별도 없는 무별(無別)로써 보시하고 나면, 무분별법(無分別法)의 과보 즉 일체종지를 얻게 되느니라.


須菩提!若菩薩摩訶薩見乞丐者,若生是心:‘佛是福田,我應供養;禽獸非福田,不應供養。’是非菩薩法。

何以故?菩薩摩訶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不作是念:‘是衆生應以布施饒益,是不應布施。’是衆生布施因緣故,應生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乃至以是布施因緣,以三乘法度之,令入無餘涅槃。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구걸하는 걸개자(乞丐者)를 보고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복전(福田)이시므로 나는 마땅히 공양해야 하지만, 날짐승ㆍ길짐승은 복전이 아니므로 공양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보살의 법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고서 ‘이 중생에게는 보시로써 이롭게 해야 하고, 이 중생에게는 보시하지 않아야 하며, 보시한 인연 때문에 마땅히 찰리의 큰 족성이나 바라문의 큰 족성이나 거사의 큰 집안에 태어 나며, 나아가 이 보시하는 인연으로 3승(乘)의 법으로써 그를 제도하여 무여열반에 들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若衆生來從菩薩乞,亦不生異心分別:‘應與是,不應與是。’

何以故?是菩薩爲是衆生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若分別簡擇,便墮諸佛、菩薩、辟支佛、學無學人、一切世閒天及人訶責處:

‘誰請汝救一切衆生?汝爲一切衆生舍、一切衆生護、一切衆生依,而分別簡擇應與、不應與?’

만약 중생이 와서 보살에게 구걸하면 역시 다른 마음을 내어 분별하면서 ‘이 자에게는 주어야겠다. 이 자에게는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이니라.

만약 분별하여 가려내고 고르는 간택(簡擇)을 한다면, 곧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이나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사람이나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의 꾸지람을 받을 것이니,

‘그 누가 그대에게 일체 중생을 구제하면서 그대가 일체 중생의 집이 되고 일체 중생의 보호자가 되며 일체 중생의 의지처가 되면서도 '주어야 한다, 주지 않아야 한다'고 분별하며 가려내고 고르는 간택(簡擇)을 하라고 하였던가?’라고 하느니라.


“復次,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若人、若非人來,欲求乞菩薩身體支節,是時不應生二心:‘若與?若不與?’何以故?是菩薩摩訶薩爲衆生故受身,衆生來取,何可不與?‘

我以饒益衆生故受是身,衆生不乞,自應與之,何況乞而不與!’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應如是學。

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사람이나 사람 아닌 비인(非人)이 와서 보살의 몸과 팔다리를 달라고 한다면, 이 때에 그는 주겠다ㆍ주지 않겠다는 두 가지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위해 몸을 받은 때문이니, 그 중생들이 와서 가져가고자 하는데 어찌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이 몸을 받았으니, 중생들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자진하여 주어야 하거늘, 하물며 달라고 하는데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見有乞者,應生是念:‘是中誰與、誰受?所施何物?是一切法自性皆不可得,以畢竟空故;空相法,無與、無奪。’

何以故?畢竟空故,內空故,外空、內外空、大空、第一義空、自相空故。

住是諸空布施,是時具足檀波羅蜜。具足檀波羅蜜故,若斷內外法時,作是念:‘截我者誰?割我者誰?’

또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구걸하는 걸자(乞者)를 보고 마땅히 생각하기를 ‘이 가운데에서 누가 주는 여자(與者)이고, 누가 받는 수자(受者)이며, 보시하는 시물(施物)은 무엇인가?’라고 해야 하나니,

이 일체법의 자성(自性) 모두는 얻을 수 없는 필경공이기 때문이니라.

공한 모양의 공상법(空相法)은 주는 것도 없고 빼앗을 것도 없으니, 왜냐 하면,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요, 내공(內空)이기 때문이며, 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자상공(自相空)이기 때문이니,

이 모든 공(空)에 머무르면서 보시한다면, 이 때에는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게 되는 것이며,

단바라밀을 두루 갖춘 까닭에 안팎의 내외법(內外法, 육근과 육경)을 끊을 때에도

‘나의 몸을 끊는 절자(截者)가 누구이고? 나의 몸을 베는 할자(割者)는 누구인가?’고 생각하게 되느니라.


復次,須菩提!我以佛眼見東方如恒河沙等諸菩薩摩訶薩入大地獄,令火滅湯冷,以三事教化:

一者、神通,二者、知他心,三者、說法。是菩薩以神通力,令大地獄火滅湯冷;知他心;以慈、悲、喜、捨,隨意說法。是衆生於菩薩生淸淨心,從地獄得脫,漸以三乘法得盡苦際。南西北方、四維、上下亦如是。

또한 수보리야,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동방(東方)으로 항하 강의 모래 수와같이 많은 모든 보살마하살을 자세히 보나니, 그들은 대지옥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끓는 물을 차갑게 하는 등의 세 가지 일로써 교화하나니,

첫째는 신통의 힘이요,

둘째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는 타심지(他心知)이며,

셋째는 법을 설하는 설법(說法)이니라.

이 보살들은 신통의 힘으로써 큰 지옥의 불을 끄고 끓는 물을 차게 하며, 타심지(他心知)이므로, 사랑하고ㆍ가엾이 여기고ㆍ기뻐하고ㆍ버리면서 뜻에 따라 설법(說法)을 하느니라.

또한 이 중생은 보살에 대해서 청정한 마음을 내어서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점차 3승의 법으로써 괴로움의 끝인 고제(苦際)를 다하게 하나니,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復次,須菩提!我以佛眼觀十方世界,見如恒河沙等國土中諸菩薩,爲諸佛給使,供養諸佛,隨意愛樂恭敬;若諸佛所說,盡能受持,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忘失。

또한 수보리야,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세계를 관찰하여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 안의 모든 보살마하살을 자세히 보나니,

그들은 모든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뜻에 따라 좋아하고 공경하며, 또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모두 받아 지니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망실하지 않고 있느니라.


復次,須菩提!我以佛眼觀十方如恒河沙等國土中諸菩薩摩訶薩,爲畜生故,捨其壽命,割截身體,分散諸方。諸有衆生食是諸菩薩摩訶薩肉者,皆愛敬菩薩;以愛敬故,卽得離畜生道,値遇諸佛,聞佛說法,如說修行,漸以三乘 聲聞、辟支佛、佛法於無餘涅槃而般涅槃。

如是,須菩提!諸菩薩摩訶薩所益甚多 教化衆生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如說修行,乃至於無餘涅槃而般涅槃。

또 수보리야,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의 모든 보살마하살을 관찰하나니,

그들은 축생들을 위하여 그의 수명을 버리고 온몸을 끊고 베어서 모든 방향의 제방(諸方)에 뿌리고 있느니라.

중생들로서 이 보살마하살들의 살을 먹는 이라면 모두 보살을 애경하고, 애경하는 까닭에 곧 축생의 갈래인 축생도(畜生道)를 여의게 되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말씀하시는 바대로 수행하여 점차 성문ㆍ벽지불ㆍ부처님의 법인 3승으로써 무여열반(無餘涅槃)에서 완전한 열반의 반열반(般涅槃)에 드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롭게 하는 것이 매우 많나니, 중생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말씀하신 바대로 수행하게 하면서 나아가 무여열반에서 완전한 열반의 반열반(般涅槃)하게 하느니라.


復次,須菩提!我以佛眼見十方如恒河沙等國土中諸菩薩摩訶薩除諸餓鬼飢渴苦,是諸餓鬼皆愛敬菩薩;
以愛敬故,得離餓鬼道,値遇諸佛,聞諸佛說法,如說修行,漸以三乘 聲聞、辟支佛、佛法而般涅槃,乃至無餘涅槃。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爲度衆生故,行大悲心。

또 수보리야,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의 모든 보살마하살을 자세히 보나니, 그들은 모든 아귀들의 굶주리는 고통을 없애주고 있느니라.

이 모든 악귀들은 모두가 보살들을 애경하며, 애경한 까닭에 아귀의 갈래인 아귀도(餓鬼道)를 여의게 되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말씀하신 바대로 수행하여 점차로 3승인 성문과 벽지불과 부처님의 법으로써 완전한 열반의 반열반(般涅槃)에 들면서 이에 무여열반에까지 이르고 있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대비심(大悲心)을 행하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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