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次第學品 第七十五 卷八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5. 차제학품(次第學品) 풀이함  2

 

“須菩提!有法是菩薩道,無法是果。”有法名有爲法,無法是無爲法;

行有爲八聖道,斷諸煩惱,得無爲果。

復次,有人言;五波羅蜜名有法,是菩薩道;般若波羅蜜畢竟空故無有法,是菩薩果。

수보리야, 법이 있는 유법(有法)이라면 그것은 보살의 도(道)요, 

법이 없는 무법(無法)이라면 그것은 보살의 과(果)이며, 

유법(有法)이면 유위법(有爲法)이라 하고, 무법(無法)이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나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의 유위의성도(八聖道)를 행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무위의 과위를 얻느니라”고 하셨다.

 어떤 말하기를 “다섯 가지바라밀을 법(有法)’이라 하나니, 그것이  보살의 도이고,  

반야바라밀은 필경공이기 때문에 ‘무법(無法)’이니, 그것은  보살의 과이다”고 하였느니라.

 

有人言:般若波羅蜜智慧相,有爲法故,是爲道:如、法性、實際,不從因緣生、常有故,名爲果。

如是等,有、無法差別。以是因緣故,須菩提!當知一切法皆是無所有性,名爲無法。

어떤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의 지혜의 상(相) 유위법이므로 그것은 도(道)가 되며,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는 인연을 좇아 생기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果)라다”고 하나니, 

이와 같이 ‘유법(有法)ㆍ무법(無法)’의 차별이 있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수보리야, 일체 모두는 지닌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니, 일컬어 법(無法)이라 한다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復問:“世尊!若一切法無所有性,佛云何於無所有性中正知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諸法中得自在?”

佛可其言:菩薩以無所有智合行一切法,能斷一切著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此中佛自引爲證:“我本爲菩薩時,行六波羅蜜;離欲、離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

또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이 지닌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무소유성(無所有性) 가운데에서 바른지(正知)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으며, 

제법에서 자유로운 자재(自在)를 얻으셨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그의 말을 인가하시면서 “보살은 있는  없는 지혜의 무소유지(無所有智)로써 일체법을 합쳐 행하며, 일체의 집착을 끊을  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증명하셨으니, “내가 본래 보살이었을 때, 6바라밀을 행하여 욕탐을 여의고 닦으면서 모든 욕탐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못한 악불선법(惡不善法)을 떠나, 거친 생각이 있는 유각(有覺)과 세밀한 생각이 있는 유관(有觀)을 여읨에서 생하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이생희락(離生喜樂)의 초선(初禪)에 들어갔느니라”고 하셨다.

 

離欲者,離五欲;離惡不善法者,離五蓋。將人入惡道,名爲惡;障善法故,名不善。

有覺有觀,初禪所攝善覺觀。離生喜樂者,捨離五欲生喜樂。

喜樂者,色界中有二種樂:一者、有喜樂,二者、無喜樂。喜樂,初禪、二禪中;無喜樂,三禪中。

初禪、二禪俱有喜樂,有何差別?初禪中喜樂,從離欲故生;二禪喜樂,從定生。

‘욕탐을 여읜 이욕(離欲)’이라 함은 외적 대상인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의 오경(五境)에 대한 탐욕 또는 집착인 색욕(色欲) · 성욕(聲欲) · 향욕(香欲) · 미욕(味欲) · 촉욕(觸欲)의 오욕(五欲)을 여의는 것이요,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떠나는 이악불선법(離惡不善法)’함은 탐욕개(貪欲蓋: 탐욕) · 진에개(瞋恚蓋: 성냄) · 혼면개(惛眠蓋: 게으름) · 도회개(掉悔蓋: 들뜸과 후회) · 의개(疑蓋: 의심)의 오개(五蓋)를 여의 것이니,

사람을 데리고 나쁜 악도(惡道)로 들어가는 것을 ‘악(惡)하다’ 하고, 

착한법을 막기 때문에 ‘착하지 못한 불선(不善)하다’고 한다. 

‘거친 생각이 있는 유각(有覺)과 세밀한 생각이 있는 유관(有觀)’이란, 초선(初禪)에 속하는 착한 생각의 각관(覺觀)을 말하며,

‘여읨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이생희락(離生喜樂)'이라 함은욕을 버리어 기쁨과 즐거움을 낸다는 것이며,

‘기쁨과 즐거움의 희락(喜樂)’이란 색계(色界) 가운데에 있는  가지의 즐거움으로,

첫째는 기쁨이 있는 즐거움의 유희락(有喜樂)이요, 둘째는 기쁨이 없는 즐거움의 무희락(無喜樂)이다. 

기쁨이 있는 즐거움의 유희락(有喜樂)은 초선과 2선 가운데에 있고, 

기쁨이 없는 즐거움의 무희락(無喜樂)은 3선 가운데에 있다. 

초선과 제2선은  같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유희락(有喜樂)이니,

어떤 차별이 있는 것인가? 초선 가운데의 기쁨과 즐거움의 희락(喜樂)은 욕탐을 여의게 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제2선의 기쁨과 즐거움의 희락(喜樂)은 선정(禪定)을 좇아 생기는 것이다.

 

問曰:亦離初禪煩惱得二禪,何以不說離生?

묻나니, 역시 초선의 번뇌를 여의면 제2선을 얻게 되거늘, 무엇 때문에 ‘여읨에 의해 생기는 이생(離生)’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欲界中散亂故,無定稱;行者能離欲故,名爲離生。

初禪中有定,二禪因初禪定生故,名爲定生。

復次,欲界煩惱不善相故障初禪;行者欲離大障故,是故說離生。

色界煩惱名無記,爲患微弱,以覺、觀因緣故失禪;是故佛說:“滅諸覺、觀,內心淸淨故得二禪。”三禪、四禪,如先說。

답하나니, 욕계(欲界)에서는 산란하기 때문에 선정이라는 이름이 없지만, 수행하는 행자 능히 욕탐을 여읜 때문에 ‘여읨에 의해 생기는 이생(離生)’이라 하며, 

초선 가운데는 정(定)이 있고 제2선은 초선의 정으로 인하여 생기기 때문에 ‘정에서 생기는 정생(定生)’이라 하며, 

또한 욕계의 번뇌는 착하지 못한 불선상(不善相)이기 때문에 초선을 장애하나니, 수행하는 행자   장애를 여의고자 하기 때문에 ‘여읨에 의해 생기는 이생(離生)’이라 하며,

색계의 번뇌는 무기(無記)라 하나니, 미약함이 허물이 되고 거칠고 미세한 생각의 각관(覺觀)의 인연 때문에 선정을 잃게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각관(覺觀)이 소멸하고 안으로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제2선을 얻나니, 제3선ㆍ제4선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라.

 

“我於是諸禪支取相得已,不念有是禪。”初習禪時,取相,乃至得;得已,恐著味故觀無常;不念有是禪,不得是禪定相,亦不受味,無染心行四禪,異於外道。於是諸禪,修不受果報禪。依四禪住,起五神通,亦如禪法,不受其味。

나는  모든 선정 갈래인 선지(禪支)에서 취하여 얻은 뒤에는  선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처음에 선정을 익힐 때에는 취하여 얻기에 이르고, 얻은 뒤에는 맛(味)에 집착할까 두려워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  선(禪)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느니라.

이러한 선정의 얻지도 않고 또한 맛도 느끼지 않았으며, 물든 마음의 염심(染心)없이 4선을 행하였느니라.

 외도(外道)와는 달리  모든 선에 있어서 과보를 받지 않는 불수과보(不受果報)의 선을 닦았으며,

4선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다섯 가지신통을 일으키면서도 또한 선법(禪法)에서와 같이  맛을 느끼지 않았느니라.

 

宿命通故,知一切衆生本業因緣,來生是閒。天眼通力故,見衆生未來世所生之處。隨其業行,知一切衆生本、末已,心生大悲:“云何斷衆生生死相續苦?”

숙명통(宿命通)으로 일체 중생들이 본업의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며, 

천안통(天眼通)의 힘으로 중생들이 미래 세상에 태어날 곳을 보았으며, 

그의 업행(業行)에 따라 일체 중생들의 시작과 끝의 본말(本末)을  뒤에 마음으로 대비(大悲)를 내어 ‘어떻게 하면 중생들의 생사가 상속하는 고통을 끊어 줄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느니라.

 

爾時,心迴向入漏盡通,卽時以一念相應慧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所謂是苦相,苦因是愛,愛斷苦盡,爲到苦盡是道;通達四諦故,得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分別衆生作三聚;住三神通,度是衆生,所謂天耳、知他心、身通;爲衆生說法,令度生死。

그 때에 마음으로 회향(廻向)하여 누진통(漏盡通)에 들어갔으니, 바로 그 때에  생각과 상응하는 일념상응(一念相應) 지혜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니, 

이른바 ‘이것은 괴로움의 고상(苦相)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애욕이며, 애욕이 끊어지면 괴로움이 다한 고진(苦盡) 이르고, 괴로움이 다하면 그것이  도(道)이다’라고 한 것이니라.

 가지의 진리인 사제(四諦)를 통달한 까닭에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을 얻었으며, 중생을 3취(聚)로 분별하였으며,  가지의 신통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제도하였나니, 이른바 천이통(天耳通)과 지타심통(知他心通)과 신통(身通, 신족통)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며 생사를 건너게 하는 것이었느니라”고 하셨다.

 

須菩提復問:“若諸法無所有,云何佛爲菩薩時起四禪、六神通?若無衆生,云何分別衆生作三聚?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제법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어떻게 부처님께서 보살이셨을 때, 4선(禪)과 6신통(神通)을 일으키셨으며? 

만약 무중생(無衆生)이라면 어떻게 중생을 3취(聚)로 분별하신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佛答:“諸欲、諸惡若當有性若自性、若他性,我本爲菩薩時,不能觀諸欲、惡不善法無所有性入初禪。”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모든 욕탐과 모든 악(惡)에 만약 성품이 있는 유성(有性)으로서 자성(自性)이나 타성(他性)이 있다면, 내가 본래 보살이었을 때, 모든 욕탐과 악하고 불선한 법에는 지닌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임을 관찰하여 초선(初禪)에 들지 못하였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佛意:若諸欲、不善法有定性實法若多、若少自相者,若自身中若有淨、常等性。

性有二種:若自性、若他性。自性名自身不淨性,他性名衣服等莊嚴身具。此皆無常、虛誑,苦惱因緣。

內外五欲中,無有常、樂、我、淨實;若有者,我本行菩薩道時,不能觀五欲空無所有性入初禪。

부처님께서 뜻하신 바는 다음과 같으니, 

‘만약 모든 욕탐과 선하지 못한 불선법에 정해진 성품의 정성(定性)으로서 많건 적건 진실한법(實法)이 있다고 한다면, 스스로의 자상(自相)은 스스로의 자상(自相) 가운데에서 깨끗하다거나 항상하다는 등의 성품(性)이 있을 것이다. 

성품(性)에는  가지가 있으니, 스스로의 자성(自性)과 다른 성품의 타성(他性)이다. 

'스스로의 자성(自性)'이란 자기 몸의 깨끗하지 못한 부정성(不淨性)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성품의 타성(他性)'이란 의복 등의 몸을 장엄하는 도구를 말하나니, 이 모두는 덧없고 거짓된 것으로, 괴로움을 주는 인연이 될 뿐이다.

내외(內外, 12입)의욕(五欲)에는 항상한 상(常)ㆍ즐거운 낙(樂)ㆍ나(我)이고ㆍ깨끗한 정(淨)의 실체가 없으니,

만약 있다면 내가 부처가 되기 이전의 수행인 본행(本行)으로 보살도를 행할 때, 오욕이 공한 것이라 지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는 것을 관하여 초선(初禪)에 들지 못하였을 것이니라.

 

今欲、惡不善法無有實性若自性、若他性,是故我爲菩薩時,離五欲、惡不善法,入初禪,乃至入第四禪。若諸神通有性若自性、若他性,我本行菩薩時,不能知神通無所有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에 욕탐과 악하고 선하지 못한 법에는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이건 타성(他性)이건, 진실한 실성(實性)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살이었을 때, 오욕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서 초선에 들어갔으며, 나아가 제4선에 들어갔던 것이니라. 

만약 모든 신통에 자성(自性)이건 타성(他性)이건 성품이 있는 유성(有性)이라면, 내가 본행(本行)으로 보살도를 행할 때, 신통이란 있는  없는 것임을 알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도 못하였을 것이니라.’

 

須菩提問:“若諸法定無所有性空,佛云何於諸法中得自在力?”

佛答:“我以四禪故,於諸煩惱得解脫;六神通故,於諸法得自在度衆生。”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제법이 결정코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고 공(空)한 것이라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가운데에서 자유로운 자재(自在)한 힘을 얻으셨던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4선(禪)으로써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게 되었고, 6신통(神通)으로써법에서 자재하게 되어, 중생들을 제도하였느니라”고 하셨다.

 

須菩提意:以四禪、六神通是有,云何於空得自在力?

佛示:我觀五欲等空、虛誑,無定相故,不著此禪,而起諸神通。諸禪有相、有量故可捨,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初離欲時,以無所有性爲因,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亦無所有。若禪定空,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空,可有是難;今皆空故,不應有難!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4선과 6신통은 바로 있는 유(有)이거늘 어떻게 공(空)한 가운데에서 자재한 힘을 얻게 되셨을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보여 주시기를 “나는 오욕 등은 공(空)하고 거짓된 것으로 정해진 정상(定相)이 없다고 관찰한 까닭에 이 선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신통을 일으켰으며, 모든 선정은 상이 있고 한량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었느니라”고 하셨다.

처음에 욕탐을 여의는 초이욕(初離欲)할 때, 지닌 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으로 인(因)을 삼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위를 얻었지만, 그 또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인 것이다.

만약 선정이 공(空)한 가운데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공하지 않다면, 이러한 힐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두가 공하기 때문에 힐난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八十六 終 대지도론 86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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