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一心具萬行 品第七十六 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을 풀이함 2
是菩薩能如是具足檀波羅蜜而不受世閒果報。譬如他化自在諸天,隨意所須,卽皆得之;菩薩亦如是,心生所願,隨意卽得。是菩薩摩訶薩以是布施果報故,能供養諸佛,亦能滿足一切衆生、天及人、阿修羅。是菩薩以檀波羅蜜攝取衆生,用方便力,以三乘法度脫衆生。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於無相、無得、無作諸法中具足檀波羅蜜。”用是戒,無所取: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단(보시)바라밀을 두루 갖추면서도 세간의 과보를 받지 않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욕계 6천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이 뜻하는 바대로 구하는 것을 즉시에 모두 얻듯이,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마음으로 원하면 즉시 뜻대로 얻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 보시의 과보로 인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고, 또한 일체 중생인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을 만족시키나니, 이 보살은 단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고 방편력을 사용하여 삼승의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의 제법 가운데에서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rmita-vaśa-vartino devāḥ)은 음역하여 바라니밀(波羅尼蜜) · 바라니밀화야월치(波羅尼蜜和耶越致) · 바라유마바사(波羅維摩婆奢) 또는 사사발리(娑舍跋提)라고도 한다. 의역하여 타화락천(他化樂天) · 타화자전천(他化自轉天) 또는 화응성천(化應聲天)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자재천(自在天) · 타화천(他化天) 또는 화타천(化他天)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여섯 번째 하늘이라는 뜻에서 제6천(第六天)이라고도 한다.
6욕천 가운데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다른 유정이 변화시킨 묘욕경[欲境]을 자유자재하게 자신의 즐거움으로 향수하는 하늘이다.-위키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於無相、無得、無作法中具足尸羅波羅蜜?
須菩提!是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持種種戒,所謂聖無漏入八聖道分戒、自然戒、報得戒、受得戒、心生戒,如是等不缺、不破、不雜、不濁、不著,自在戒,智所讚戒。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제법 가운데에서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 갖가지의 계율, 즉 성무루입팔성도분계(聖無漏入八聖道分戒)와 자연계(自然戒)와 보득계(報得戒)와 수득계(受得戒)와 심생계(心生戒)를 지니나니,
이와 같이 이지러지지 않는 불결(不缺)이고, 깨뜨려지지 않는 불파(不破)이고, 뒤섞이지 않는 불잡(不雜)이고, 혼탁하지 않은 불탁(不濁)이고,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하며, 자유로운 자재계(自在戒)가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지소찬계(智所讚戒)이며,
이러한 계율에 의하면서도 취하는 바가 없느니라.
若色,若受、想、行、識;若三十二相、八十隨形好;若剎利大姓、若婆羅門大姓、居士大家;若四天王天、三十三天、夜摩天、兜率陁天、化樂天、他化自在天、梵衆天、光音天、遍淨天、廣果天、無想天、無煩天、無熱天、妙見天、喜見天、阿迦膩咤天、空處天、識處天、無所有處天、非有想非無想處天;若須陁洹果、若斯陁含果、若阿那含果、若阿羅漢果、若辟支佛道;若轉輪聖王、若天王。但爲一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無相、無得、無二迴向,爲世俗法故,非第一實義。
그리하여 물질(色)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과 32상호와 80수형호와 찰리(刹利)의 큰 족성ㆍ바라문(婆羅門)의 큰 족성ㆍ거사(居士)의 큰 집안과
사천왕천ㆍ33천(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타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의 6욕천(六欲天)과
범중천ㆍ광음천ㆍ변정천(遍淨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상천(無想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묘견천(妙見天)ㆍ희견천(喜見天)ㆍ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과 공처천(空處天)ㆍ식처천(識處天)ㆍ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및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常處天)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의 도와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천왕(天王)을 취하지 않고,
다만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그 모두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고 얻음이 없는 무득(無得)이며, 둘이 아닌 무이(無二)로써 회향할 뿐이니,
그것은 세속법을 위한 것일 뿐,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인 제일실의(第一實義)가 아니니라.
是菩薩具足尸羅波羅蜜,以方便力起四禪,不味著故,得五神通。因四禪得天眼;
是菩薩住二種天眼:修得、報得。得天眼已,見東方現在諸佛,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所見事不失;
南西北方、四維、上下現在諸佛,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所見不失。是菩薩用天耳淨,過於人耳,聞十方諸佛說法,如所聞不失,能自饒益,亦益他人。
이 보살은 시라(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고는 방편력으로써 사선(四禪, 사선정)을 일으키나, 선정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오신통을 얻으며, 사선으로 인하여 천안(天眼)을 얻나니,
이 보살은 수행으로 얻는 수득(修得)과 과보로 얻는보득(報得)의 두 가지 천안에 머무르느니라.
천안을 얻은 뒤에는 동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고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본 그대로를 잃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계신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뵙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본 그대로를 잃지 않으며,
이 보살은 사람의 귀를 초월하는 천이(天耳)의 청정함으로써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잃지 않아서 자기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또한 타인(他人)들도 이롭게 하느니라.
是菩薩以知他心智,知十方諸佛心及知一切衆生心,亦能饒益一切衆生。
是菩薩用宿命智,知過去諸業因緣;是諸業因緣不失故,是衆生在在處處所生悉知。
是菩薩用是漏盡智,令衆生得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在在處處能令衆生入善法中。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於諸法無相、無得、無作,具足尸羅波羅蜜。”
이 보살은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타심지(知他心智)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며, 일체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서 일체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이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모든 과거업의 인연을 알고, 이 업인연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 중생들이 있었던 처소와 태어났던 곳들 모두를 다 알며,
이 보살은 누진지(漏盡智)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어디든지 있는 곳마다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선법 가운데에 들게 하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법이 무상(無相), 무득(無得), 무작(無作)인 가운데에서 시라(지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世尊!云何諸法無相、無作、無得,菩薩摩訶薩能具足羼提波羅蜜?”
“세존이시여, 제법이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며, 무득(無得)이거늘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찬제(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以來乃至坐道場,於其中閒,若一切衆生來,以瓦石、刀杖加是菩薩,菩薩是時不起瞋心,乃至不生一念。
爾時,菩薩應修二種忍:一者、一切衆生惡口罵詈、若加刀杖瓦石,瞋心不起;二者、一切法無生無生法忍。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도량(道場)에 앉기까지의 그 중간에, 만약 일체 중생들이 와서 기와와 돌과 칼과 몽둥이로 이 보살에게 해를 가할 때에도 보살은 화를 내지 않으며 나아가 한 생각의 일념(一念)조차도 내지 않나니,
그 때에 보살은 두 가지의 인욕을 닦아야 하는 것으로,
첫째는 일체 중생들이 욕설을 퍼붓고 꾸짖으면서 칼이나 몽둥이나 기와나 돌로 그에게 해를 가하여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일체법에 생함이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라.
菩薩,若人來惡口罵詈或以瓦石刀杖加之,爾時,菩薩應如是思惟:‘罵我者誰?譏訶者誰?打擲者誰?誰有受者?’
卽時菩薩應思惟諸法實性,所謂畢竟空,無法、無衆生;諸法尚不可得,何況有衆生!如是觀諸法相時,不見罵者、不見割截者。是菩薩如是觀諸法相時,卽得無生法忍。
云何名無生法忍?知諸法相常不生,諸煩惱從本已來亦常不生。
보살이란, 만약 사람이 와서 욕설을 퍼붓고 꾸짖거나 혹은 기와나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그에게 해를 가할 때에도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에게 욕하는 매자(罵者)는 누구이며? 나무라고 꾸짖는 기가자(譏訶者)는 누구인가?
때리고 던지는 타척자(打擲者)는 누구이며? 그 누가 당하는 수자(受者)인가?’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 때에 보살은 제법의 실상(實相)을 사유하나니, ‘이른바 필경공이라서 법도 없는 무법(無法)이고 무중생(無衆生)이니, 제법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중생이겠는가?’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제법의 상(相)을 관찰할 때에는 욕하는 매자(罵者)도 보지 않고, 베고 끊는 할절자(割截者)도 보지 않나니,
이 보살이 이와 같이 제법의 상을 관찰할 때,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느니라.
어찌하여 무생법인이니라 하는가? 제법의 상(相)은 항상 나지 않는 상불생(常不生)이며, 모든 번뇌도 본래부터 항상 나지 않는 상불생(常不生)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是菩薩摩訶薩住是二忍,能具足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八聖道分,三解脫門,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
是菩薩住是聖無漏出世閒法,不共一切聲聞、辟支佛,具足聖神通。住聖神通已,以天眼見東方諸佛,是人得念佛三昧,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斷絕;南西北方、四維、上下亦如是。
이 보살마하살은 이 두 가지의 인욕에 머무르면서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3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느니라.
이 보살은 이러한 거룩하고 번뇌가 없는 성무루(聖無漏)의 출세간법(出世間法)에 머무르면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함께 하지 않는 거룩한 성신통(聖神通)을 두루 갖추며, 거룩한 성신통에 머무른 뒤에는 천안(天眼)으로써 동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나니,
이 사람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고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단절되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염불삼매(念佛三昧, buddhānusmṛti-samādhi) 부처님을 관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염불삼매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법에서 한 불신(佛身)에 대해 마음의 눈으로 시방에 가득하심을 보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도로서 한량없는 불국토 가운데 시방 3세의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다.”(불토원(佛土願)을 풀이함에서)
是菩薩用天耳聞十方諸佛所說法,如所聞爲衆生說。是菩薩亦知十方諸佛心,及知一切衆生念,知已,隨其心而爲說法。是菩薩以宿命智知一切衆生宿世善根,爲衆生說法,令其歡喜。是菩薩以漏盡神通,教化衆生,令得三乘。
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成就衆生,具足一切種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轉法輪。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無相、無得、無作法中,具足羼提波羅蜜。”
이 보살은 천이(天耳)로써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중생들에게 설하여주며,
이 보살은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며, 모든 중생들의 생각을 알며, 다 안 뒤에는 그들의 마음을 따라 법을 설하여 주며,
이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일체 중생들의 숙세의 선근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뻐게 하고,
이 보살은 누진(漏盡, 누진통)의 신통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여 3승을 얻게 하며,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성취시키며,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법륜을 굴리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무상(無相), 무작(無作), 무득(無得)의 법 가운데에서 찬제(인욕)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須菩提言:“世尊!菩薩摩訶薩云何於諸法無相、無作、無得,能具足毘梨耶波羅蜜?”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제법은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이며, 무득(無得)이거늘, 어떻게 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成就身精進、心精進,入初禪乃至入第四禪,受種種神通力,能分一身爲多身,乃至手捫摸日月。
成就身精進故,飛到東方過無量百千萬諸佛世界,供養諸佛飮食、衣服、醫藥、臥具、華、香、瓔珞種種所須,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福德果報終不可盡。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의 정진인 신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성취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나아가 제4선(禪)에까지 들어가며, 갖가지 신통의 힘을 받아 하나의 몸을 나누어 여러 몸이 되게 하고 나아가 맨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느니라.
신정진(身精進)을 성취한 까닭에 동방으로 날아가 무량한 백천만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나면서 모든 부처님께 음식과 의복과 의약과 침구와 향화와 영락 등의 갖가지 필요한 것을 공양하나니,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그 복덕과 과보는 끝내 다하지 않느니라.
是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一切世閒天及人勤設供養衣服、飮食,乃至入無餘涅槃後,舍利及弟子得供養。
亦以是神通力故,至諸佛所,聽受法教,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違失。
是菩薩修一切種智時,淨佛世界、成就衆生。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成就身精進,能具足毘梨耶波羅蜜。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은 부지런히 베풀어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며,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뒤에는 사리(舍利)와 제자들을 공양하느니라.
또한 이 신통력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법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어기거나 잃지 않으며,
이 보살이 일체종지를 닦을 때에는 부처님의 불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신정진(身精進)을 성취하고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須菩提!云何菩薩成就心精進,能具足毘梨耶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心精進,以是心精進聖無漏,入八聖道分精進,不令身、口不善業得入;
亦不取諸法相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我、若無我,若有爲、若無爲,若欲界、若色界、若無色界,若有漏性、若無漏性,若初禪乃至第四禪,若慈、悲、喜、捨,若無邊虛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若四念處、若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若空、無相、無作,若佛十力乃至十八不共法。
수보리야, 보살이 어떻게 마음의 정진인 심정진(心精進)을 성취하여 비리야(정진)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심정진(心精進)이란, 이 마음의 정진으로써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 성무루(聖無漏)의 팔성도분(八聖道分)에 들어가 정진하면서 몸과 입으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불선업(不善業)이 들어 올 수 없게 하느니라.
또한 제법의 상(相)도 취하지 않으니, 항상한 상(常)이라거나, 무상(無常)하다거나, 괴로눈 고(苦)라거나, 즐거운 낙(樂)이라거나, 나(我)라거나, 무아(無我)라거나, 유위(有爲)ㆍ무위(無爲)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유루성(有漏性)ㆍ무루성(無漏性)과 초선에서 제4선까지와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와 무변허공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까지와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ㆍ무상ㆍ무작과 부처님의 10력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그 상(相)을 취하지 않느니라.
不取相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我、若無我,若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若阿羅漢果、若辟支佛道,若菩薩道、若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是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若是辟支佛,是菩薩,是佛。
不取相是衆生斷三結故得須陁洹,是衆生三毒薄故得斯陁含,是衆生斷下分結故得阿那含,
是衆生斷上分結故得阿羅漢,是衆生以辟支佛道故作辟支佛,是衆生行道種智故名菩薩,亦不取是諸法相。
何以故?不可以性取相,是性無故。
또한 항상한 상(常)이라거나, 무상(無常)하다거나, 괴로눈 고(苦)라거나, 즐거운 낙(樂)이라거나, 나(我)라거나, 무아(無我)라거나,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또는 ‘이 분이 곧 수다원이요, 사다함이요, 아나함이요, 아라한이며, 이 분이 벽지불이요, 이분이 보살이며, 이 분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상(相)을 취하지 않느니라.
‘이 중생은 유신삼결(有身三結), 계금취결(戒禁取結), 의결(疑結)의 세 가지 번뇌 속의 삼결(三結)를 끊었기 때문에 수다원이 되고,
이 중생은 탐진치 삼독(三毒)이 얇아진 까닭에 사다함이 되며,
이 중생은 욕계의 번뇌인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심(疑), 욕탐(欲貪), 진에(瞋恚)의 하분결(下分結, 오하분결)을 끊었기 때문에 아나함이 되고,
이 중생은 색계와 무색계의 색탐(色貪), 무색탐(無色貪), 만(慢), 도거(掉擧), 무명(無明)의 다섯 가지 번뇌인 상분결(上分結, 오상분결)을 끊었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이 중생은 벽지불의 도로써 벽지불이 되고,
이 중생은 보살마하살의 필경공의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를 행한 까닭에 보살이라 한다’고 하는 것에서도 역시 이 제법의 상(相)을 취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성(性, 성품)으로써는 상(相)을 취할 수 없으며, 그 성(性, 성품)은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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