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次第學品 第七十五之餘卷八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5. 차제학품을 풀이함    2

 

復次,須菩提!不應以戒衆念佛,不應以定衆、智慧衆、解脫衆、解脫知見衆念佛。何以故?是衆無有自性。若法無自性,是爲非法。無所有念,是爲念佛。

또한 수보리야, 계율의 계중(戒衆)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고 선정의 정중(定衆)과 지혜의 혜중(慧衆)과 해탈중(解脫衆)과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두는 스스로의 자성(自性)이 없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는 법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염불(念佛)이니라.


復次,須菩提!不應以十力念佛,不應以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念佛,不應以大慈大悲念佛。何以故?是諸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佛。

復次,須菩提!不應以十二因緣法念佛。何以故?是因緣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佛。

 수보리야, 십력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고,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며, 대자대비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모든법에는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으로 염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염불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12인연(因緣)의 법으로써 부처님을 염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인연의 법은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으로 염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염불이니라.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念佛,是爲菩薩初發意次第行、次第學、次第道。

是菩薩摩訶薩次第行、次第學、次第道中住,能具足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修行空三昧、無相、無作三昧,乃至一切種智,諸法性無所有故。是菩薩知諸法性無所有,是中無有性、無無性。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念佛)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초발의하여 차례대로 행하는 차제행(次第行)이요, 차례대로의 배움의 차제학(次第學)이요, 차례대로 닦는 도의 차제도(次第道)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가운데에 머물러념처ㆍ사정근ㆍ사여의족ㆍ오근ㆍ오력ㆍ7각분ㆍ8성도분을 두루 갖추고,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작삼매(無作三昧) 내지는 일체종지를 수행하나니,법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니라. 

 보살은법의 성품(性)이 무소유(無所有)임 아나니, 

 가운데에서는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요, 없는 성품도 없는 무무성(無無性)이니라.

 

須菩提!云何菩薩摩訶薩應修念法?

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念善法、不念不善法,不念記法、無記法,不念世閒法、不念出世閒法,不念淨法、不念不淨法,不念聖法、不念凡夫法,不念有漏法、不念無漏法,不念欲界繫法、色界繫法、無色界繫法,不念有爲法、無爲法。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염법(念法)을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착한 선법(善法)을 염하지 않고, 착하지 못한 불선법(不善法)도 염하지 않으며, 기별된 기법(記法)을 염하지 않고 무기법(無記法)도 염하지 않으며, 세간법(世間法)을 염하지 않고 출세간법(出世間法)도 염하지 않으며, 깨끗한 정법(淨法)을 염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부정법(不淨法)도 염하지 않으며, 성인의법(聖法)을 염하지 않고 범부법(凡夫法)도 염하지 않으며, 유루법(有漏法)을 염하지 않고, 무루법(無漏法)도 염하지 않으며, 욕계에 매인 욕계계법(欲界繫法)과 색계에 매인 색계계법(色界繫法)과 무색계에 매인 무색계계법(無色界繫法)도 염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도 염하지 않느니라.

 

何以故?是諸法自性無。若法自性無,是爲非法。無所念,是爲念法。念法中學無所有性故,乃至當得一切種智。

是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得諸法無所有性;是無所有性中,非有相、非無相。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修念法,於是法中,乃至無少許念,何況念法!

왜냐 하면,  모든법은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기 때문이며, 만약 제법에 스스로의 자성(自性) 없다면 이것은 법이 아닌 것이니, 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염법(念法)이니, 염법에서는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을 배우는 까닭이니, 이에 일체종지를 얻게 되느니라.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제법의 있는  성품이 없음의 무소유성(無所有性)을 얻게 되나니,  무소유성(無所有性)에는 있는 것도 아닌 비유상(非有相)이고, 상이 없는 것도 아닌 비무상(非無相)이니라.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염법(念法)을 닦아야 하나니,   가운데에서는 약간 염(念, 생각)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법을 염하는 것이 겠는가?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應修念僧?

須菩提!菩薩摩訶薩念僧,無爲法故分別有佛弟子衆,是中乃至無有少許念,何況念僧!如是,菩薩摩訶薩應修念僧。

須菩提!菩薩摩訶薩云何應修念戒?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應念聖戒 無缺戒、無隙戒、無瑕戒、無濁戒、無著戒、自在戒、智者所讚戒、具足戒、隨定戒。應念是戒無所有性,乃至無少許念,何況念戒!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염승(念僧)을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승(僧)을 염할 때, 이는 무위(無爲)의 법이므로 분별하여 부처님의 제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조금도 생각할 것이 없거늘 하물며 승(僧)을 염하는 것이 겠는가?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염승(念僧)을 닦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염계(念戒)를 닦아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 초발의를 한 때부터 성인의 계율인 성계(聖戒)ㆍ결함이 없는 계율의 무결계(無缺戒)ㆍ틈이 없는 계율의 무극계(無隙戒)ㆍ흠이 없는 계율의 무가계(無瑕戒)ㆍ흐리지 않은 계율의 무탁계(無濁戒)ㆍ집착이 없는 계율의 무착계(無著戒)ㆍ자유로운 계율의 자재계(自在戒)ㆍ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계율의 지자소찬계(智者所讚戒)ㆍ구족계(具足戒)와정에 따른 계율의 수정계(隨定戒)를 염해야 하나니, 

 계는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니, 약간의 염(念, 생각)도 없거늘 하물며 계율을 염하는 염계(念戒)이겠는가?


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應念捨 若自念捨、若念他捨,若捨財、若捨法、若捨煩惱;觀是捨不可得故,乃至無少許念,何況念捨!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念捨。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 초발의한 때부터 마땅히 버릴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하여야 하느니라. 

스스로가 버리는 사(捨)를 염하고 다른 이도 버릴 것을 염하게 하여, 재물도 버리고, 법도 버리고, 번뇌도 버리나니,  버리는 사(捨)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에 약간의 염(念, 생각)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버릴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이겠는가?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버리는 것을 염하는 염사(念捨)를 하여야 하느니라.

 

須菩提!云何菩薩摩訶薩應念天?

須菩提!菩薩作是念:‘四天王諸天所有信、戒、施、聞、慧,此閒命終,生彼天處;我亦有是信、戒、施、聞、慧。乃至他化自在天所有信、戒、施、聞、慧,此閒命終,生彼天處;我亦有是信、戒、施、聞、慧。’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念是天無所有性中尚無少許念,何況念天!

須菩提!菩薩摩訶薩行是六念,是名次第行、次第學、次第道。”

수보리야,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하늘을 염하는 염천(念天)하는 것인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33천의 6번째 하늘이며 천상계에서 가장 낮은 하늘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모든 하늘은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가 있었던 이로써,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난 것이니, 나에게도 또한 그러한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 있다’고 하며, 

나아가 ‘욕계의 육욕천에서 제6천이며 남의 것을 빼앗아 스스로가 즐기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까지도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 있었던 이로서,  세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난 것이며, 나에게도 또한 그러한 믿음(信)과 계율(戒)과 보시(施)와 들음(聞)과 지혜(慧)가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하늘들을 생각하되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염(念, 생각)조차 없거늘 하물며 하늘을 염하는 염천(念天)이겠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육념(六念)을 행하여야 하나니, 이를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하느니라.”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無所有性,所謂念色乃至識、眼乃至意、色乃至法,是無所有性;眼界乃至意識界,是無所有性;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內空乃至無法有法空、四念處乃至八聖道分、佛十力乃至一切種智,是無所有性。

世尊!若一切法無所有性者,是則無道、無智、無果。”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에 있는 바의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이른바 () 느낌()ㆍ생각() 지어감()ㆍ분별()의 오중(五衆, 오온)과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의 육정(六情)과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의 육진(六塵)까지를 염(念)하는 것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이며, 

안계(眼界)에서 이계(耳界)ㆍ비계(鼻界)ㆍ설계(舌界)ㆍ신계(身界) ㆍ 의식계(意識界)까지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이며,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 4념처에서 8성도분까지와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까지도 무소유성(無所有性)인지요?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에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여기에는 도(道)도 없고 지혜의 지(智)도 없으며 과위의 과(果)도 없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汝見是色性實有不?乃至一切種智實有不?”

須菩提言:“不見也!世尊!”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물질의 성품인 색성(色性)이 실로 존재한다고 보는가?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실로 존재한다고 보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須菩提:“汝若不見諸法實有,云何作是問?”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약 제법이 실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인가?”


須菩提言:“世尊!我於是法不敢有疑,但爲當來世諸比丘求聲聞、辟支佛道、菩薩道者。

是人當如是言:‘若一切法無所有性,誰垢誰淨?誰縛誰解?’是不知不解故而破於戒、破正見、破威儀、破淨命;是人破此事故,當墮三惡道。

世尊!我畏當來世有如是事,以是故問佛。世尊!我於是法中信,不疑不悔。”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에 대하여 감히 의심하지 않지만, 다만 앞으로 오는 세상의 당래세(當來世)에 모든 비구로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구하고 보살의 도를 구하는 이들을 위하여 질문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만약 일체법에 있는  성품이 없는 무소유성(無所有性)이라면, 

 누가 더러운 자이며? 그 누가 깨끗한 자이며?  누가 속박된 자이고?  누가 해탈하는인가?’라고 할 것이며, 

그들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까닭에 계율을 파괴하고, 바른 정견을 파괴하고, 위의(威儀)를 파괴하고, 깨끗한 생활 유지의 정명(淨命)을 파괴할 것이며,  사람들이 이러함을 파괴한 까닭에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앞으로 오는 세상의 당래세(當來世)에 이러함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법에 대하여 믿어서 의심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 불의불회(不疑不悔)입니다.”


▶論. 釋曰:須菩提伏受佛語,一切諸法雖空,而能起四禪、神通,是大菩薩近成佛者能行;今未知新發意者云何行,是故疑,問佛:“世尊!新發意菩薩摩訶薩云何於諸法無所有性中次第行、次第學、次第道,用是次第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신복하여 받아들이는 복수(伏受)하면서 ‘일체법이 비록 공하다 할지라도 능히 사선(四禪)과 신통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함은 대 보살로서 거의 부처를 이룬 이들은  행하는 것이지만,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들은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의심하여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새로 뜻을  신발의 보살마하살은 어떻게법의 무소유성(無所有性) 가운데에서 차례대로 행하는 차제행(次第行)고 차례대로의 배움의 차제학(次第學)과 차례대로 닦는 도의 차제도(次第道) 닦으며, 어떻게  차례에 따른 차제행(次第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以次第行、次第學、次第道故,當知是新發意菩薩;雖無量劫發意,未得諸法實相,皆名新學。

차제행(次第行)과 차제학(次第學)과 차제도(次第道) 때문에  새로이 뜻을  신발의 보살이 비록 무량한  동안 뜻을 내었을지라도, 아직 제법의 실상(實相)을 얻지 못하였다면 그러한 이 모두를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이라 한다는 것 알아야 한다.


問曰:若如是人是新學,但應教行布施、持戒等,佛何以教令於諸法無所有畢竟空性中行?

묻나니,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 이라면, 다만 보시와 지계 등을 행하라고만 가르치면 될걸이거늘,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제법의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의 성(性) 가운데에서 행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까?


答曰:今明始入無所有、畢竟空法故,令行無所有。而是菩薩以無所有畢竟空和合布施、持戒等行;譬如小兒服藥,須蜜乃下。是故雖新發意,亦觀深空,無咎。

답하나니, 지금에야 비로소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의 법에 들어가는 것을 밝히신 까닭에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를 행하게 하는 것이니,  보살은 무소유(無所有)와 필경공으로 보시와 지계 등의 행에 화합시키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꿀을 발라주면 이내 삼키는 것과 같이, 비록 새로 뜻을  신발의일지라도 깊은 심공(深空)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니,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佛答須菩提:“菩薩若初從諸佛聞,若從多供養諸佛者聞。”諸佛者,若過去、若現在。

多供養諸佛者,遍吉、觀世音、得大勢菩薩、文殊師利、彌勒菩薩等。四種聲聞聖人義,如先說。

辟支佛不樂說法故,不說。諸佛等聖人皆因無所有故有是分別。聖人雖有禪定等諸功德,皆爲涅槃故。涅槃卽是寂滅相、無所有法,是故說:“諸聖人,皆因涅槃有是差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혹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또는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한 이로부터 듣게도 된다”고 하셨으니,

‘모든 부처님’이란, 과거와 현세의 부처님이며,

‘모든 부처님께 많이 공양한 이’라 함은, 변길(遍吉, 보현)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문수사리(文殊舍利)보살ㆍ미륵(彌勒)보살 등이다.

네 가지 성문(聲聞)인 성인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벽지불은 설법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 등 성인 모두는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를 인(因)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분별이 있는 것이며, 

성인은 비록 선정 등 모든 공덕이 있을지라도 모두가 열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열반은 곧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요 있는 바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법이기 때문에 ‘모든 성인은 열반으로 인하여 이러한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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