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2 10

 

阿難白佛言:世尊!如我思惟,此妙覺元與諸緣塵及心念慮非和合耶?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

세존이시여제가 사유(思惟)하여 보니,  묘각(妙覺) 근원은 모든 인연 경계인 연진(緣塵, 상분)과 마음(心, 업식)과 생각(念慮, 견분) 더불어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ㅡ이것은 다시 다른 하나에 집착하는 것이다. 묘각체(妙覺體)는 법계(法界)에 두루 함장되어 있는 것으로, 본래 우주법계와 다른 체(體)가 아니다. 능소(能所)가 없으니 화(化)한다, 합(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佛言:汝今又言覺非和合。吾復問汝。此妙見精非和合者,爲非明和?爲非暗和?爲非通和?爲非塞和?

若非明和,則見與明必有邊畔。汝且諦觀,何處是明?何處是見?在見在明自何爲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다시 말하기를, 각(覺) 화합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묘한 보는 정기인 견정(見精)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

밝음과 화합(明和)한 것이 아닌가?

어둠과 화합(暗和)한 것이 아닌가? 

통함과 화합(通和)한 것이 아닌가? 

막힘과 화합(塞和)한 것이 아닌가?

만약 밝음과 화합(明和)한 것이 아니라, 견정(見精)과 밝음(明) 사이에 반드시 경계선인 변반(邊畔)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어디까지가 밝음의 경계이며? 어디까지가 견정 경계가 되는가?

보는 주체의 견정의 경계는 어디서 시작하며? 밝음의 경계는 어디서 시작하는 것인가?

ㅡ화합(和)하였다면 같은 것이어서 경계가 없어야 할 것이고,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경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은 자증분(自證分)의 본체에 속한 것이므로 합한다는 말 자체가 허구이다. 
의식을 파하면 견성(見性)이 드러나고, 견분과 상분을 파하면 장성(藏性)이 드러나며,업식을 파하면 여래장성이 드러난다. 
제법(諸法)이 상이 없음을 알면 상상(相相)이 적멸(寂滅)이며 제법이 모두 장성(藏性)임을 알면 성성(性性)이 원통(圓通)한다.

 

阿難!若明際中必無見者,則不相及,自不知其明相所在,畔云何成?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아난아만약 밝은 것 가운데 반드시 보는 주체가 없다면서로가 미칠 수 없으므로 스스로 그 밝은 명상(明相)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경계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겠는가?

어둠의 명화(暗和)와 통함의 통화(通和)와 막힘의 색화(塞和)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又妙見精非和合者,爲非明合?爲非暗合?爲非通合?爲非塞合?若非明合,則見與明性相乖角,如耳與明了不相觸,見且不知明相所在,云何甄明合非合理?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또한 묘한 견정이 화합(和)한 것이 아니라밝음과 합하지 않은(非合) 것인가? 

어둠과 합하지 않은(非合) 것인가?

통함과 합하지 않은(非合) 것인가?

막힘과 합하지 않은(非合) 것인가?

만약 밝음과 합하지 않은 것이라면보는 주체와 밝음의 성품이 서 어긋나는 것이, 마치 귀(耳)와 밝음(눈)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이보아도 밝은 명상(明相)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어떻게 합하고 합하지 않는 이치를 가려서 밝힐 수 있겠는가?

어둠의 비암합(非暗合)와 통함의 비통합(非通合)와 막힘의 비색합(非塞合)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ㅡ합한 것이 아닌 비합(非合)이라면, 눈과 대상 물질이 어긋나서 이미 밝음도 알지 못하고 또한 보는 주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인데, 두 가지 체(體)가 이미 없거니 어디를 좇아서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이치를 밝게 분별할 수 있겠는가?

이상은 맑고 묘한 견정(見精)에 의지해서 마음의 티클을 떨어버리게 한 것이다. 

 

▷제근(諸根)과 그 대상물질에 나아가 여래장을 나타내시다.

阿難!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當處出生隨處滅盡,幻妄稱相,其性眞爲妙覺明體,如是乃至五陰、六入,從十二處至十八界,因緣和合虛妄有生,因緣別離虛妄名滅,殊不能知生滅去來,本如來藏常住妙明,不動周圓妙眞如性,性眞常中求於去來、迷悟、死生,了無所得。

아난아너는 오히려 아직도 실속 없이  경계의 일체의 부진(浮塵)과 모든 환술(幻術)과 같이 변화하는 온갖 모양(相)이, 곳을 따라 생겨났다가  곳을 따라 사라져버리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환영의 환망(幻妄) 모양(相)이라고 하지만 성품은 진실 그대로 미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인 묘각명체(妙覺明體)이니라.

이와 같이 내지 5(陰, 오온) 6(六) 12(十二處, 육근+육경)에서 18(十八界, 육근+육경+육식) 이르기까지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겨나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멸하는 것이니,

 생기고 멸하고 가고 오는 것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라, 항상 상주(常住)하는 것이며,

묘하게 밝은 묘명(妙明)한 것이고, 부동하여 두루 원만하고 미묘한 진여 변함없는 성품인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구나!

 성품의 진실하고 상주(常住)하는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함과 깨달음과 나고 죽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없느니라.

ㅡ명암통색(明暗通塞)이 합하고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가 모두 부진(浮塵)이요 환상이다. 

화합(和合)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므로 환상(幻相)이고, 곳을 따라 생기고 곳을 따라 없이진다고 한 것이다. 

여래장(如來藏)이란, 당사자의 법신의 묘한 본성으로, 과(果)에 의해 일컫는 것이 여래(如來)이고, 모든 덕을 포함하고 있어서 장(藏)이라 하고,

애초에 가고 옴이 없으므로 상주(常住)라 하고, 능히 어둡게 할 수 없으므로 묘명(妙明)이라 하고, 생멸을 따라 가지 않는 것이므로 부동(不動)이라 하고, 두루 만족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두루 원만하다 하고, 묘하여 지극히 신비하며 일체의 성품으로서 서로 차이가 없음을 미묘한 진여의 성품인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 한다. 

 

ㅡ제법이 와도 본래 온 곳이 없으므로 당처출생(當處出生)이라 하고,

가도 간 곳(흔적)이 없으므로 수처멸진(隨處滅盡)이라 한다.

​여래장이란 중생 모두가 함께 갖추고 있는 본각의 성체(性體)이다. 이 성체는 숨어서 드러나지 않고 중생심 안에 함장되어 있어서 여래장이라 한다. 상주하고 불가사의하게 밝고 움직이지 않으며 두루 원만함이 여래장의 덕상(德相)이다. 

 

▷오음을 밝히시다.

阿難!云何五陰本如來藏妙眞如性?阿難!譬如有人以淸淨目觀晴明空,唯一精虛迥無所有,其人無故不動目睛瞪以發勞,則於虛空別見狂花,復有一切狂亂非相;色陰當知亦復如是。

아난아, 어째서 5음(陰)을 본래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인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 하는 것인가?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게 개인 밝은 하늘을 볼 때에는, 오직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라서 저 멀리 아무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똑바로 보고 있다가 눈이 피로하여지면, 허공에 따로 어물거리는 광화(狂花)를 보기도 하고, 다시 일체의 어지럽게 날 뛰는 헛된 모양을 보기도 하는 것과 같이, 색음(色陰)도 마땅히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ㅡ색수상행식의 5 가지가 체(體)를 이루어 묘진여성을 덮어서 가리는 것을 오음(五陰)이라 한다. 

'청정한 눈으로 맑게 개인 밝은 하늘을 보는 것'은 맑은 지헤로 묘한 성품을 보는 것을 비유한 까닭에 '멀리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고, 

'눈이 피로하여서 광화를 보는 것'은 허망한 인(因)으로 색(色)에 연하는 것이다. 

'허공에 따로 어물거리는 광화(狂花)'는 색음(色陰)을,

헛된 모양의 광상(狂相)은 색경(色境)을 비유한 것이다.

 

▷색음(色陰)

阿難!是諸狂花,非從空來,非從目出. 如是,阿難!若空來者,旣從空來還從空入,若有出入卽非虛空,空若非空,自不容其花相起滅,如阿難體,不容阿難。

아난아, 이 모든 어물거리는 광화(狂花)는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고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온 것이라면, 허공에서 왔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만약 드나듦의 출입(出入)이 있다면 (실체가 있는 것이므로) 곧 허공이 아닐 것이며,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그 광화의 모양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으니,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허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ㅡ광화가 허공을 인한 것이 아님이 색음(色陰)이 대상경계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若目出者,旣從目出還從目入,卽此花性從目出故,當合有見。若有見者,去旣花空旋合見眼;若無見者,出旣翳空,旋當翳眼。又見花時,目應無瞖,云何晴空號淸明眼?是故當知色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에서 나왔으니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광화의 성품이 눈에서 나온 것이므로, 당연히 보는 작용에 합(合)해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작용이 있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의 꽃을 보았으니, 돌아 올때에도 반드시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작용이 없다면 나갈때 이미 허공을 가렸으니, 돌아올 때에도 당연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며,

또 광화를 볼 때에도 눈에는 당연히 가리움이 없는데, 어찌하여 청정하고 맑은 허공이라야만 청정하고 맑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색음(色陰)은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ㅡ곧 색음이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광화가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눈의 성품을 얻어서 응당 보는 것이 있을 것이나, 돌아올 때 눈을 보지 못하며, 또한눈을 가리지도 않으므로 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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