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2 8

 

阿難白佛言:世尊!如佛世尊爲我等輩宣說因緣及與自然,諸和合相與不和合,心猶未開;而今更聞見見非見,重增迷悶。伏願弘慈施大慧目,開示我等覺心明淨。作是語已,悲淚頂禮,承受聖旨。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모든 화합상(和合相)과 화합하지 않는 불화합(不和合)의 이치를 말씀해주셨으나여기에 제 마음이  열리기도 전에, 다시 ‘진견(眞見)이 견분(見分)을 볼 때, 진견(眞見)은 견정(見精)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들으니지금 더욱 미혹하여 답답할 뿐입니다

바라오니 부디 넓으신 사랑으로  지혜의 눈을 베푸셔서 저희들에게 깨달음의 각심(覺心) 밝혀서 맑게하는 법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난은 슬피 울며 땅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성스러운 가르침을 받들고자 하였다.

ㅡ견견비견(見見非見), 묘각성(妙覺性)은 상분(相分)과 화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견분(見分)과도 화합하지 않고 생멸과 불생멸의 화합체인, 제8식의 정명체(精明體)와도 화합하지 않는다. 


화합상(和合相)이란, 해와 달과 등불에 인하여 보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고,

불화합(不和合)이란, '밝음도 아니고, 어두움도 아니고, 통함도 아니고, 막힘도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衆,將欲敷演大陁羅尼諸三摩提妙修行路,告阿難言:汝雖强記,但益多聞;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了。汝今諦聽,吾今爲汝分別開示,亦令將來諸有漏者獲菩提果。

이때 세존께서는 아난과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고장차 대다라니(大陀羅尼, 총지문) 모든 삼마제(三摩提, 삼매) 묘한 수행의 묘수행로(妙修行路)를 설하시고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기억력이 좋을지라도 단지 많이 듣는 다문(多聞)으로 아는 지식만 채웠을 사마타(奢摩他)미세하고 비밀스러운 관조의 미밀관조(微密觀照)를 아직 마음속 깊이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열어 보여 줄것이며또한 장래의 번뇌에 얽힌 유루(有漏)의 중생들도 깨달음의 과위인 보리과(菩提果) 얻게 하고자 하느니.

 

*대다라니(大陀羅尼), 총지(總持), 총지(總持) · 능지(能持) · 능차(能遮)라고도 번역하며, 일체법을 총섭하고 무량한 뜻을 지닌다, 또는 신ㆍ구ㆍ의 삼업이 청정함을 총섭하고 계ㆍ정ㆍ혜 세 무루학의 정진을 수지한다는 뜻이다. 

*미밀관조(微密觀照), 능견(能見)의 견(見)을 직관하여서 전상(轉相)을 파하고, 업상(業相)을 살피는 것이 바로 묘미밀성정명심(妙微密性淨明心)을 얻는 길이다.

*관조(觀照), 회광반조(廻光觀照)의 준말, 관조는 사물을 밝게 비추어 보는, 즉 사물을 보고 관하여서 사물의 실체가 없음을 확연히 알아 가는 것을 말하고, 반면에 명상은 생각이나 의식을 관하여 그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동업(同業)과 별업(別業)

阿難!一切衆生輪迴世閒,由二顚倒分別見妄,當處發生當業輪轉。

云何二見?一者衆生別業妄見;二者衆生同分妄見。

아난아일체 중생이 세상에서 윤회하는 것은  가지의 뒤바뀐 이전도(二顚倒)로 말미암아 분별하고 허망하게 보는 작용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장소를 따라 발생하는 당처발생(當處發生)하며, 바로  업보를 따라 바퀴   굴러가는 당업윤전(當業輪轉)하는 까닭이니라.

 가지 보는 작용의 이견(二見)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중생 개별의 별업(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망견(妄見)이요

둘째는 중생 공동의 동업(同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한 보는  동분망견(同分妄見)이니라.

ㅡ별업(別業)이란 미혹이 일어나는 것이 서로 다름을 말한 것으로, 허망하게 대상의 그림자를 따라 정견(正見)을 잃어버린 것이고, 

동업(同業)이란, 망견(妄見)의 느낌이 서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허망하게 생사를 따라서 본래의 깨달음인 본각(本覺)을 잃어 버린 것이다.

이 허망한 견(見)으로 인하여 망업을 짓게 되므로, 장소를 따라 발생하는 당처발생(當處發生)이라 한 것이며, 

그 업을 따라 제취의 보(報)를 받으므로 업보를 따라 유전하는 당업윤전(當業輪轉)이라 한 것이다.

 

*당처발생(當處發生), 본처(本處), 즉 진심을 떠나지 않고 발생하는 것이다. 망심은 진심을 떠날 수 없으며, 진심이 있어서 망심이 일어나고, 망심으로 인하여 미혹하여 지며, 미혹하여서 업을 짓고 또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두 가지 보는 작용의 이견(二見), 견분이 상분을 취하여서 두 가지의 망견을 연출하는데, 이것이 분단과 변역의 두 생사의 근본이며 보리와 열반 등 2과(二果)의 근본이다. 이 두 망견은 무명 업식이 변현(變現)되어 일으키는 것이다.  

*분단생사(分段生死), 생(生)과 사(死)를 서로 떨어진 분단(分段)의 세계로 생각하는 생사관으로, 분단생사관에서 보면 생사가 서로 격절돼 있어서 죽음은 엄청난 공포다. 우리 범부중생이 생로병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받아들인 까닭에 생긴 것이다. 삼계(三界)에서 생사를 되풀이 하는 범부 각자는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 신체의 크고 작음과 목숨의 길고 짧음이 구별된다고 해서 분단(分段)이라 한다.  

*변역생사(變易生死), 생사가 서로 격절된 세계가 아니고 단지 몸만 바뀌어 변화된 세계라고 보는 생사관이다. 생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낮이 생이라면 밤은 작은 죽음이다. 밤과 낮은 고정돼 있지 않고 끝없이 변화한다. 이처럼 생사관을 넘어선, 즉 생사에 대한 집착을 넘어선 경지가 변역생사이다. ㅡ아미산

 

▷별업(別業)을 밝히다.

云何名爲別業妄見?阿難!如世閒人目有赤眚,夜見燈光別有圓影五色重疊。

眚 눈에 백태낄 생, 흐릴 생

어떠한 것이 개별의 별(別業)으로 말미암아 허망하게 보는 것인가?

아난아세상 사람들 가운데 눈에 붉은 백태가 끼는 적생(赤眚)의 눈병 있는 사람은 밤에 등불을 볼 때에 오색의 둥근 영상이 중첩되어 겹쳐지는 등의 그림자인 등무리를 보게 되느니라.

ㅡ눈병으로 인하여 중첩된 빛을 보는 것과 같이 마음에 집착이 있는 까닭에 경계를 따라 차별된 의혹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란, 일체 중생을 비유하고, 눈(目)은 칠식(七識)을 비유하며, 등불은 팔식(八識)을 비유하고, 

둥근 영상은 허망한 경계를 비유한 것이다. 

오색(五色)이란, 대상 경계, 즉, 오음이 있으므로 오색이라 한 것이다. 

또한 눈(目)은 묘각명심에 비유한 것이며, 허망하게 한 번 움직이면 무명망심으로 바뀌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於意云何?此夜燈明所現圓光,爲是燈色爲當見色?阿難!此若燈色,則非眚人何不同見,而此圓影唯眚之觀?若是見色,見已成色,則彼眚人見圓影者名爲何等?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영상의 원광(圓光)을 등불의 색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는 작용의 색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난아만약 그것 등불의 색이라면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오색의 둥근 영상인 원영(圓影)을 보지 못하거늘어찌하여 오직병에 걸린 사람만이 오색의무리를 보는 것인가!

만약 보는 작용의이라면, 보는 작용은 이미 되었거늘, 병에 걸린 사람이 보는 둥근 영상인 원영(圓影)을 무엇이라 해야 하겠는가?

ㅡ이는 차별하는 망견이 대상 경계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한 눈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중생들의 보는 주체가 병이 들어서 생긴 망견인 것이다. 

'오직 눈병에 걸린 사람만이 오색의 무리를 보는 것'이란, 오직 눈병에 걸려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며, 

'무엇이라 해야 하겠는가?'는, 만약 색이 눈에 있다면 등불의 원영(圓影)을 색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復次,阿難!若此圓影離燈別有,則合傍觀屛帳几筵有圓影出;離見別有,應非眼矚,云何眚人目見圓影?

또한 아난아만약 이 원영(圓影)이 등불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라면옆자리의 병풍이나 휘장이나 책상이나 돗자리를  때에도당연히 원영(圓影)이 있어야 할 것이

보는 작용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라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어찌하여 눈병에 걸린 사람에게만이 원영(圓影)이 보이는 것인가?

 

▷허망한 근원을 결론지어 나타내시다.

是故當知 色實在燈,見病爲影,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빛은 실제로 등불에 있는 것으로, 보는 작용이 병이 들어 등무리가 된 것이니라.

ㅡ등불에 빛은 있으나 원영(圓影)은 없는 것으로, 그 원영은 눈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인식(認識)이 대상 경계를 변화 시키는 허물이 없으나, 아집으로 말미암아 허물이 있는 것이다.

빛은 실제로 등불에 있는 것의 색실재등(色實在燈)이란, 성공진색(性空眞色)이 본래 일체법성(一切法性)을 갖추고 있는 것을 뜻한다.

 

影見俱眚,見眚非病。終不應言是燈是見,於是中有非燈非見。如第二月,非體非影。

何以故?第二之觀,捏所成故。諸有智者不應說言,此捏根元是形非形離見非見;

등무리와 보는 작용이  병이지만, 눈병을 보는 자체는 병이 아니니, 종내에는 '등무리의 탓이다, 보는 작용의 탓이다'라고 말할 것이 못 되며, 또한  가운데에서 등불의 탓도 아니요, 보는 작용의 탓도 아니라고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마치 제이(第二)의 달(月)이 달 자체도 아니고, 달의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니, 

왜냐하면 제2의 달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 때문이다. 

지혜가 있는 모든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제2의 달의 근원을 두고 ‘달의 모양이다, 달의 모양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보는 작용이다, 보는 작용이 아니다'라고 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느니라.

ㅡ그림자가 보는 이의 눈병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면, 그림자와 보는 작용 모두가 눈병일 뿐, 그 눈병을 보는 그 주인공은 병이 든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 눈병을 보는 것을 곧 보는 본체이고, 보는 본체는 병이 없는 것이니, 중생의 능견소견(能見所見)은 망혹(妄惑)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원영(圓影)은 제2의 달을 말하고, 본체는 참 달을 말한다.

 

此亦如是,目眚所成,今欲名誰是燈是見,何況分別非燈非見。

 등무리 역시 그와 같이 눈병으로 생긴 것인데,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작용의 탓이다'라고 하겠으며, 더더욱,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탓이 아니다’라고 분별하는 것이겠는가!
ㅡ묘각명심의 진견(眞見)이 무명망심의 망견(妄見)을 볼 때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진견은 유무시비(有無是非)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등(燈)이다 견(見)이다' 말할 수 없거늘,

'등(燈)이 아니다, 견(見)이 아니다'라고 분별하겠는가? 
 

▷동업(同業)을 밝히시다.

云何名爲同分妄見?阿難!此閻浮提除大海水,中閒平陸有三千洲,正中大洲東西括量,大國凡有二千三百,其餘小洲在諸海中,其閒或有三兩百國,或一或二,至于三十、四十、五十。

동분(同分, 동업)의 허망한 망견(妄見)이란 무엇이겠는가?

아난아,  남섬부주(南贍部洲, 염부제)에는 대해(大海) 제외한 중간의 육지에 3천 개의 섬(洲)이 있으니,

  가운데에 있는 큰 섬인 대주(大洲)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과 서쪽 모두를 다 헤아려 보면 2천 3백 개의  나라가 있느니라. 

 나머지 작은 섬인 소주(小州)들이 여러 바다에 가운데에 있는데,  가운데에는 혹 3백의 나라, 혹 2백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또한 한 나라나 두 나라에서부터 30의 나라, 40의 나라, 50의 나라가 있기도 하느니라.

 

▷국지(局地)적 비유

阿難!若復此中有一小洲只有兩國,唯一國人同感惡緣,則彼小洲當土衆生,睹諸一切不祥境界。

或見二日或見兩月,其中乃至暈蝕珮玦彗勃飛流,負耳虹蜺種種惡相,但此國見;彼國衆生,本所不見亦復不聞。

暈 무리 훈, 무리 운, 어지러울 운

 

아난아, 또다시 그 가운데에 있는 어느 하나의 작은 섬에는 2개의 두 나라만이 있는데,

오직 한 나라의 사람들만이 공동으로 악연(惡緣)을 함께 느끼게 되면, 그 작은 섬의 해당 국토의 중생은 온갖 상서롭지 못한 경계를 보게 되나니, 혹 두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내지 햇무리의 훈(暈), 월식과 일식, 해의 귀걸이인 패결(珮玦), 혜성(彗星), 사방으로 뿔 돋친 별의 패성(孛星), 빗겨 나는 별똥 별의 비성(飛星), 아래로 흐르는 별똥 별의 유성(流星), 해를 등진 무지개의 부이(負耳), 암수의 쌍무지개의 홍예(虹蜺) 등의 등 가지가지 나쁜 모양을 보느니라.

이러한 모습들은 다만 이쪽 나라의 중생들만 볼 수 있을 뿐,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보지도 못하고 들은 바도 없느니라.

ㅡ 업력(業力)은 불가사의하며, 오탁악세(五濁惡世)도 중생의 공공업력(公共業力)이 조성한 것이다. 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三毒)이 살(殺) 도(盜) 음(淫 )의 삼악업(三惡業)을 지으니, 중생들이 이러한 동업(同業)으로 인하여, 그 악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미혹하여서 업을 지어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적패결(適珮玦)은 해와 달에서 뻗어나는 기운으로, 훈(暈)은 수레바퀴처럼 둥근 것이고, 적(適)은 일식이나 월식을 하기전에 생기는 검은 기운이고, 패(珮)는 모습이 배(背)자 처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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