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2 11

 

▷수음(受陰)

5온설의 2번째 요소인 수온(受蘊, vedanā-skandhāh, aggregates of sensation, aggregates of feeling)은 지각(知覺)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여러 작용 중 감수작용(感受作用)과 그 세력을 뜻한다.
지각(知覺)의 대상이라는 면에서 볼 때, 수온(受蘊)은 전5식을 통해 육체적 · 물질적 대상을 지각(知覺, 즉 受, 즉 느낌)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6식(부파불교의 경우) 또는 후3식(대승불교의 경우)을 통해 정신적 대상을 지각(知覺, 즉 受, 즉 느낌)하는 것도 함께 의미한다.ㅡ위키

 

阿難!譬如有人手足宴安百骸調適,忽如忘生性無違順,其人無故以二手掌於空相摩,於二手中妄生澀滑冷熱諸相;受陰當知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수족(手足) 편안하고  뼈마디가 고루 화평할 때에는 홀연히 살아 있다는 것도 잊은 듯, 마음에 거스리거나 순응하 일이 없다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마주 비빈다면,   사이에 난데없이 껄끄럽거나 매끄럽거나 차갑거나 따뜻한 여러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이, 수음(受陰)도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ㅡ대상 경계에 마음이 접촉하고 마음으로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느낌의 수(受)라 한다.

'유인(有人)'은 중생의 일심본원(一心本源)을 비유한 것이고,

수족연안(手足宴安)은 진여부동(眞如不動)에 비유한 것이고

'손바닥을 허공에서 마주 비비면 난데없이 껄끄럽거나 등의 현상이 생긴다'는 것은 환망으로 생긴 접촉이  허망한 세 가지 미세한 식과 여섯가지 거친 식을 일으키는 것을 비유하였으며, 

'살아 있다는 것도 잊은 듯하다'는 것은 지극히 순조로움을 뜻한다.

 

阿難!是諸幻觸,不從空來,不從掌出。如是,阿難!若空來者,旣能觸掌,何不觸身?不應虛空選擇來觸。若從掌出,應非待合。

아난아,  모든 허망한 촉감은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고, 손바닥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온 것이라 이미 손바닥은 접촉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촉감이 없는 것인가?

응당 허공이 닿을 곳을 가려서 선택하여 닿게 하지는 않는 것이며, 

만약 손바닥에서 나왔다면 당연히 두 손바닥이 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허공의 체(體)는 항상 가득한 것이라서 응당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약 손바닥에서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있음을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수음은 허망하며 인연의 가명(假名)이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한 유(有)가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한 이름이 사라진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성도 아니다’는 수음은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불가사의하고 밝게 아는 체성(體性)이라는 뜻이다.


又掌出故,合則掌知,離卽觸入,臂腕骨髓應亦覺知入時蹤迹,必有覺心知出知入,自有一物身中往來,何待合知要名爲觸?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칠 때 손바닥이 느낀다고 한다면, 뗄 때에 촉이 들어가서 손목과 팔목의 골수(骨髓)들도 마땅히 들어갈 때의 종적(蹤迹)을 또한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깨닫는 각심(覺心, 마음)이 있어서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안다면, 저절로  물건이  속을 오고 가야 할 것이니, 어찌하여 손바닥이 마주 합하여지기를 기다려서 알게 되는 것을 접촉이 하겠는가?

ㅡ만약 손바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 없는 것이므로 오로지 허망할 뿐인 것이다. 

 

是故當知受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수음(受陰)은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성이니라.  

 

▷상음(想陰)
阿難!譬如有人談說醋梅口中水出,思踏懸崖足心酸澀;想陰當知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매실을 말하면 입에서 침이 나오고, 높은 낭떨어지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짜릿해지는 느낌이 생기는 것과 같이, 상음(想陰)도 마땅히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ㅡ생각은 실상이 없어서 마음으로 말미암마 상(相)을 이루는 것이다.

'유인(有人)'은 상음을 다하지 못한 중생이고, 매실과 낭떨어지를 생각하는 것은 실상이 없는 것이고, 입에 침이 생기고 발바닥이 짜릿해 지는 것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상(相)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상음(想陰) 역시 인연(因緣)이 만들어 낸 허망한 상상이다. 기억하고 잊음이 상(想)의 변제(邊際)이다.
유념(有念)을 기(記)라 하고, 무념(無念)을 망(忘)이라 한다. 기(記)와 망(忘)을 떠나서는 상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경계에 의지하여 상상하는 것을 연경(緣境)이라 하고 경계를 떠나서 상상하는 것을 연영(緣影)이라 한다.
상(想)은 외인(外因)과 외연(外緣)을 의탁하여 생긴다. 다시 말해 의타이기(依他而起)란 말이다. 
만약 식초라는 말이 없고, 낭떠러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상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음이 비록 외경을 따라 생멸하지만, 선(善)도 악(惡)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다하여 환원할 때, 하나의 불생불멸성(不生不滅性)로 돌아가 있다. 그래서 본래는 인연이 아니라고 한다. 
상음은 경계를 따라 기멸(起滅)하므로 진실성이 아니고, 그래서 자연성도 아니다. 
진성은 인연도 자연도 아니며 수연불변(隨緣不變)의 체(體)가 드러난 성품이다.

 

阿難!如是醋說,不從梅生,非從口入。如是,阿難!若梅生者,梅合自談,何待人說?若從口入,自合口聞,何須待耳!若獨耳聞,此水何不耳中而出?

아난아! 이와 같이 시다(醋)는 말이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 당연히 매실 스스로가 말을 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으로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이 들어야 할 것이니, 어찌 귀를 기다려 듣겠는가?

만약 오로지 귀만이 그 말을 듣는다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가?

 

想踏懸崖與說相類。是故當知想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높은 낭떨어지에 서 있다는 생각도 매실을 말하는 것과 서로 비슷한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냐 하나니, 상음(想陰)은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성이니라.

 

▷행음(行陰)
阿難!譬如暴流波浪相續,前際後際不相踰越;行陰當知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자면 세차고 급하게 흐르는 물결이 서로 이어져서 앞과 뒤의 순서를 서로 뛰어넘지 않는 것과 같이, 행음(行陰)도 마땅히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ㅡ묘하게 맑은 묘정(妙淨)한 것이 망령되게 움직여서 경계를 따라 옮겨 가면, 생각마다 옮겨지면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행음이며, 이것을 급하게 흘러가는 물에 비유한 것이다. 

행음(行陰), 역시 인연이 만들어낸 허망한 생멸상(生滅相)으로, 행(行)은 천류라는 뜻이다. 
생(生)과 멸(滅)이 행(行)의 변제(邊際)이며, 외상(外相)의 생멸(生滅)을 색진생멸(色塵生滅)이라 하고, 내심(內心)의 생멸(生滅)을 법진생멸(法塵生滅)이라 한다. 

 

阿難!如是流性,不因空生,不因水有;亦非水性,非離空水。如是,阿難!若因空生,則諸十方無盡虛空成無盡流,世界自然俱受淪溺。若因水有,則此暴流性應非水,有所有相今應現在。若卽水性,則澄淸時應非水體。若離空水,空非有外水外無流。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지도 않았고,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고,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을 이루어서 세계는 자연히 온통  속에 빠져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세차고 급하게 흐르는 물의 성품은 당연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 물)와 소유(所有, 흐름)의 상(相)이 마땅히 지금 눈앞에 뚜렷이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흐름이 물의 성품이라면, 맑고 고요할 때에는 응당 물의 체성이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모두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며, 물을 떠난 물 밖에서는 흐름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ㅡ능유(能有)는 물이고, 소유(所有)는 흐름을 가리킨 것으로, 흐름이 물을 떠나서 다른 체상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며, 행음은 생긴 자리에서 찰나에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진상부동심체(眞常不動心體)에서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행음은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사라지므로 행음허망(行陰虛妄)이라 하며,   
행음은 모두 여래장으로부터 일어난다. 비록 연(緣)을 빌려 생기나 그 체는 항상한 불변이다.

파도(물)는 바람으로 인하여 잠시 움직이나 그 잠성(潛性)은 파괴되지 않으므로, 그래서 본래 인연이 아니라고 한다. 
미(迷)하면 허망한 행음이요, 깨달으면 불변의 진여체(眞如體) 중에 생기는 큰 쓰임이다.

 

是故當知行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행음(行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성이니라.

 

▷식음(識陰)

阿難!譬如有人取頻伽甁,塞其兩孔滿中擎空,千里遠行用餉他國;識陰當知亦復如是。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頻伽甁)의 양쪽 구멍을 막아서 그 가운데에 허공을 가득히 담아서 천리의 먼 길의 다른 나라에 가서, 그 허공을 꺼내 놓는 것과 같으니, 식음(識陰)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ㅡ유인(有人)은 식음을 파하지 못한 삼계의 중생에 비유한 것이고,

빈가병(頻伽甁), 가릉빈가의 새 모양으로 만든 병으로, 형태는 있지만 실상이 없음을 중생들의 허망한 몸인 업보신(業報身)에 비유한 것이다.

병에 가득담은 허공은 식음을 비유한 것으로, 빈 성품이 공한 진각(眞覺)은 법계에 두루 가득하거늘, 한 번 미혹하여 의식이라고 여기는 것이므로, 허망한 몸 안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마치 병 속에 든 허공과 같은 것이다. 

비어 있다는 공(空)이란 본성과 의식이 일체(一體)임을 비유한 것이고, 

'양쪽 구멍을 막은 것'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2장(二障)을 비유한 것이고, 

'천리의 먼 길의 다른 나라에 가서, 그 허공을 꺼내 놓는' 것은 본성은 생멸이 없으며 취하고 버릴 것이 없는데 환망한 몸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형태를 벗어나 저쪽에서 생(生)을 의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본성을 모르고 허망하게 식(識)을 일으켜서 유전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阿難!如是虛空,非彼方來,非此方入。

아난아, 이와 같이 허공은 저 곳에서 온 것도 아니고, 이 곳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ㅡ성품(性品)은 가고 옴이 없으며, 들고 남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如是,阿難!若彼方來,則本甁中旣貯空去,於本甁地應少虛空。若此方入,開孔倒甁應見空出。是故當知識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저 곳에서 온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서 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그 병이 있었던 곳에는 허공이 마땅히 조금 줄어들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 곳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뚜껑을 열고 병을 기울일 때에는 당연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식음(識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성이니라.

ㅡ몸과 마음과 반법, 곧 근(根), 진(塵), 처(處), 계(界)가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二 終 대불정만행수능엄경 제 2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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