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序品中緣起義釋論 第一卷 第一

龍樹菩薩造, 용수(龍樹) 지음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 구마라집(鳩摩羅什)

 

1. 서품 중 연기(緣起)의 이치를 풀이함 권제1

智度大道佛從來(지도대도불종래)

지도*의 큰 도는 부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智度大海佛窮盡(지도대해불궁진)

지도의 큰 바다는 부처님만이 끝까지 다 아신다.
智度相義佛無㝵(지도상의불무애)

지도의 실상(*lakṣaṇa)의 이치는 부처님만이 걸림 없으시니
稽首智度無等佛(계수지도무등불)

지도의 비할 바 없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지도(智度), Prajñā-Pāramitā. 반야바라밀은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6바라밀의 하나로 무상정등각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마하살이 구족해야 하는 으뜸가는 자량이다. 여기에서 반야(prajñā)란 직관적이고도 종합적인 통찰의 지혜로 알음알이[知識, vijñāna)와는 구별된다.

청량스님은 "지도(智度)란 결단을 이름하여 지라 하니,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으로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의 즐거움을 수용하는 지혜와 유정들을 성숙시키는 지혜다."라고 하셨다. 

 

*상(相) 첫째는 아상・인상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산즈냐(saṁjñā)인데 음역은 ‘산야’요 의역은 ‘지식(知識)’이니, 그 반대어인 쁘라즈냐(prajñā)가 ‘반야’와 ‘지혜(智慧)’로 옮겨진 것에 맞춘 것이다.

둘째는 32상・80종호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락샤나(lakṣaṇa)인데 일종의 징후로 드러나서 감각기관에 감지(√lakṣ)된 모양새를 가리키므로 ‘감지새’로 옮겨놓는다.

셋째는 범어로 니미따(nimitta)에 해당하는 ‘상’인데 섬세히 가늠(√mi)된 모양새를 가리키므로 ‘가늠새’로 옮겨놓는다.

‘지식’인 산즈냐와 ‘감지새’인 락샤나 및 ‘가늠새’인 니미따 등 셋은 다시 앎의 종류인 산즈냐와 모양새의 종류인 락샤나・니미따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비록 구마라집 스님은 셋 모두 동일한 상(相)으로 옮겼지만, 현장 스님은 앎의 종류에 속하는 산즈냐만을 상(想)으로 옮겨서 모양새를 나타내는 나머지 두 상(相)과 구분해놓았다.

 

有無二見滅無餘(무유이견멸무여)

有無=있고 없음의 두 견해, 남음 없이 다한 곳이
諸法實相佛所說(제법실상불소설)

모든 법의 실상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나니,
常住不壞淨煩惱(상주불괴정번뇌)

항상 머물러 무너뜨리지 않으면 번뇌가 깨끗해지기에
稽首佛所尊重法(계수불소존중법)

부처님께서 소중히 여기신 법에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僧

聖衆大海行福田(성중대해행복전)

바다 같은 성인 무리, 복전(*puṇyakṣetra) 노릇 하시나니
學無學人以莊嚴(학무학인이장엄)

유학*과 무학*들로 장엄하셨네.
後有愛種永已盡(후유애종영이진)

뒷몸 받을 애욕의 씨, 영원히 다하시고
我所旣滅根亦除(아소개멸근역제)
내 것(*attāttamīya. 我所)이란 집착 멸해 뿌리까지 없어졌네.

 

*福田(복전, puṇyakṣetra), 복과 공덕을 산출하는 밭, 공덕이라는 개념은 업과 윤회사상과 밀접한 개념으로, 선행을 하며 수도자에게 보시하는 공덕으로 말미암아 죽은 다음 천상에 태어나 (윤회를 하여 다음 생에서) 안락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보편적 사상이 불교에 흡수된 것으로 보임.

 

*유학(有學, śaikṣa)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상태로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고인(苦忍)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기 직전의 3과(果) 4향(向)의 7종의 학인, 즉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를 말한다.

 

*무학(無學, aśaikṣa, 無學位 ) 아라한과에 도달하여 모든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는 성자의 경지로서 여기에는 9종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유학有學(sekha, Sk. śaikṣa)과 무학無學(asekha, Sk. aśaikṣa)의 둘로 구분한다.)

*내 것(attāttamīya. 我所)=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견취견(見取見)을 줄여서 오견(五見)이라고 하며,  그리고 유신견(有身見)을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로 나눈다.

아소견(我所見)이란 ‘내 것’, ‘내 소유’라는 견해이다. 모든 사물은 원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서 가짜 존재로서 소유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로서, 자신(自身)에게 딸린 모든 물건은 원래 일정한 소유주(所有主)가 없는 것으로,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일 뿐인데, 정말 나에게 소속된 자기의 소유물,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치우친 생각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에 따라 '내 것' 이라는, ‘내 소유'라는 생각이 따르게 된다. 내 옷 또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동생, 또는 내 물건…… . ‘나’라는 존재가 실은, 따지고 보면 허망한 것인데, 허망한 줄을 모르고서 나한테 따르는 모든 존재나 사람, 사물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아견과 아소견을 포함한 유신견이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已捨世閒諸事業(이사세간제사업)

세간의 모든 사업 이미 다 버리시고
種種功德所住處(종종공덕소주처)

갖가지 공덕이 머무는 곳이니,
一切衆中最爲上(일체중중최위상)

온갖 무리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에

稽首眞淨大德僧(계수진정대덕승)
참되고 깨끗한 대덕승(*bhadanta. 혹은 āyuṣmat)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대덕승(bhadanta. 혹은 āyuṣmat, 大德僧)= 석가모니 부처님 또는 덕이 높은 스님.

一心恭敬三寶已(일심공경삼보이)

일심으로 삼보를 공경하고는
及諸救世彌勒等(급제구세미륵등)

세상을 구제하는 미륵(*Maitreya) 등과
智慧第一舍利弗(지혜제일사리불)

지혜가 으뜸이신 사리불(*Śāriputra)과
無諍空行須菩提(무쟁공행수보리)
다툼 없는 공을 행한 수보리(*Subhūti)께도 경례합니다.

 

*彌勒(미륵), Maitreya. 아일(阿逸, Ajita)은 미륵보살의 이칭.

*舍利弗(사리불), Śāriputr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마가다 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한다. 원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아설시(阿說示)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동료 250명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병이 들어 고향에서 간호를 받다가 입적했다.

*須菩提(수보리), Subhūti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 사위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한다.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에 자주 등장한다.

 

*10대제자(十大弟子)는 붓다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전파한 제자로, 붓다가 입멸한 후에 불교인들이 선별한 것이다.
① 사리불 śāriputra, 지혜제일(智慧第一)
② 목건련 maudgalyāyana, 신통제일(神通第一)
③ 가섭 kāśyapa,  두타제일(頭陀第一)
④ 수보리(須菩提) subhūti, 해공제일(解空第一)
⑤ 부루나(富樓那) pūrṇa, 설법제일(說法第一)
⑥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천안제일(天眼第一) 
⑦ 가전연(迦旃延) kātyāyana,  논의제일(論議第一)
⑧ 우바리(優波離) upāli,  지계제일(持戒第一)
⑨ 나후라(羅睺羅) rāhula.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한다.
⑩ 아난 ānanda 다문제일(多聞第一)


我今如力欲演說(아금여력욕연설)

내가 이제 힘을 다해 연설하고자 하는 것은
大智彼岸實相義(대지피안실상의)

대지의 도와 피안의 실상의 이치이니,
願諸大德聖智人(원제대덕성지인)

원컨대 여러 큰 덕을 갖추시고 거룩한 지혜를 갖춘 이들이여
一心善順聽我說(일심선순청아설) 

한마음 잘 모아서 나의 말을 잘 들으시라.

*피안(彼岸),
pāra. 팔리어로는 pārimaṃ tīraṃ. ‘저편 언덕’이라는 말로서 번뇌가 그친 상태나 열반의 경지를 가리킨다. 불도수행에 있어서 도달의 목표가 되는 ‘이상의 경지’ 혹은 ‘이상 세계’를 의미한다.

피안이란 윤회의 세계에서 수행을 통해 열반의 세계로 도달하는 과정을 고통의 땅에서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행복의 땅에 도착하는 과정에 비유한 데서 생긴 말이다. 즉 생로병사의 고통, 탐욕, 어리석음 등으로 윤회하는 이 세계를 '이쪽 언덕'이라는 뜻의 차안(此岸)이라고 하고 반대로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자유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저쪽 언덕이라는 뜻의 피안이라고 한다. 여기서 뗏목은 불교의 진리이고 뗏목을 저어서 가는 노력은 수행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수행을 바라밀이라고 한다. 바라밀은 '저쪽 언덕에'와 '도달하다' 라는 뜻이 결합한 말이다. 이것을 한자로 번역하여 '도피안'이라고 한다.  

 

問曰(문왈) 佛以何因緣故說(불이하인연고설) 摩訶般若波羅蜜經(마하반야바라밀경)?

문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hetu-pratyaya)으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는가?

 

諸佛法不以無事(제불법불이무사) 及小因緣而自發言(급소인연이자발언)

부처님께서는 아무 근거 없이 법을 설하시거나 또는 사소한 인연으로 설하시지 않으시니, 

 

譬如須彌山王(비여수미산왕) 不以無事及小因緣而動(불이무사 급소인연이동)

마치 수미산왕(*Sumerupravarta-rāja)이 까닭 없이 사소한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今有何等大因緣故(금유하등대인연고) 佛說摩訶般若波羅蜜經(불설마하반야바라밀경)?
이제 어떠한 커다란 인연이 있어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셨는가?

 

 *須彌山. Sumerupravarta-rāja.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산으로 주변을 구산팔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높이가 8만 요자나(yojana)라고 한다.

*수미산(須彌山, मेरु, Sineru, Mahāmeru)은 수메루(Sumeru), 메루 산(Mount Meru) 또는 스바르가라고도 불리는, 인도 신화에서 언급하는 상상 속의 성산(聖山)이다. 문헌상으로는 대서사시 < 마하바라타 >에서 수미산이 최초로 언급되었지만, 아마 <마하바라타> 이전부터 수미산 개념은 있었을 것이다. 힌두교나 불교 등 인도에서 유래한 종교들은 저마다 수미산 개념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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