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之餘 卷八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을 풀이함  4

 

佛言:“聖人能作是分別故,說是聖果。”爾時,須菩提自知有失,故言:“無量、無相、無動性中,我云何取相欲量無量法?云何强以凡夫法爲聖果?”

爾時受佛語,知行道者得果,不行道者不得果,是故白佛:“修道得果不?” 佛言:“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인은 이러한 분별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성인의 과위를 말하느니라”고 하시자,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자신에게 잘못이 있음을 깨닫고 말하기를 “무량(無量)ㆍ무상(無相)ㆍ무동(無動)의 성품(性) 가운데에서 어찌하여 나는 상(相)을 취하여서 무량한 법을 헤아리고자 하였을까?

어찌하여 억지로 범부의 법으로써 성인의 과위를 삼은 것일까?”라고 하였다.

그 때에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도를 행하는 이는 과위를 얻고, 도를 행하지 않는 이는 과위를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알았으며,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도를 닦으면 과위를 얻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니라”고 하셨다.


問曰:佛上說分別修道、得道果,今云何言“不”?

묻나니, 앞에서는 부처님께서 분별하시면서 “도를 닦으면 도의 과위를 얻는다”고 말씀하셨으나, 지금은 어찌하여 “아니니라”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佛先說,非著心;今須菩提以著心問,欲從道中出果,如麻中出油。若爾者,道之與果,同爲虛誑,是故言不。聽者生念:若修不得,不修應當得!是故佛言:“修尚不得,何況不修!”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앞에서는 집착하지 않는 비착심(非著心)에서 말씀하신 것이요, 

지금 수보리 존자는 집착하는 착심(著心)에서 여쭌 것이니, 

도(道)에서 과위가 나오게 하려는 것은 마치 깨에서 기름이 나오게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만약 그러하다면 도와 과위는 똑같이 거짓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듣고 있는 청자(聽者)들이 생각하기를, ‘만약 닦아서 얻지 못한다면 닦지 않아도 마땅히 얻게 되어야 할 것이다’고  것이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닦아도 오히려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닦지 않음이랴!”고 하셨다.


譬如 二人欲有所到:一者、住,不行;二者、失道。二俱不到。若不修道,尚無少許攝心樂,何況道果!

若心取相修道,雖有攝心禪定樂,無有道果;若不取相著心修道,則有道果。

是故佛說:“菩薩行般若波羅蜜,不分別有爲、無爲性故,有道果差別。”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어떠한 곳에 가고자 할 때, 한 사람은 그대로 있으면서 가지 않고,   사람은 길을 잃어버렸다면 둘 모두가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만약 도를 닦지 않는다면, 마음을 가다듬는 섭심(攝心)의 선정락(禪定樂) 조금도 없겠거늘, 하물며 도의 과위이겠는가?

만약 마음으로 상(相) 취하면서 도를 닦는다면, 비록 섭심(攝心)의 선정락(禪定樂) 있을지라도 도의 과위는 없을 것이요, 

만약 상(相) 취하지도 않고 마음으로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도를 닦으면  도의 과위가 있을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유위ㆍ무위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도과(道果)에 차별이 있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爾時,須菩提問:“若爾者,佛何以故說斷三結得須陁洹,有如是等分別?”

佛以反問答:“於汝意云何:汝以須陁洹果等是有爲、是無爲?”

須菩提言:“是無爲。”佛言:“若爾者,無爲中有差別不?”

須菩提言:“不也!世尊!”“若無分別,汝云何作難?”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만약 그러하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세 가지 번뇌의 유신삼결(有身三結), 계금취결(戒禁取結), 의결(疑結)의 삼결(三結)을 끊으면 수다원을 얻는다’는 등의 이러한 분별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반문(反問)하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의 과위 등은 유위인가? 무위인가?”라고 하셨다.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그것은 무위입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그러하다면 무위 가운데에는 차별이 있는가?”고 하셨고,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자, 

“만약 분별이 없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따지는 것인가?”라고 하셨다.


又復問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通達一切法一相,所謂無相,住三解脫門中,證涅槃時,是時有法分別若有爲、若無爲不?”答言:“不也!”佛意:唯是心爲眞實,餘時皆虛誑,汝云何作難?

또한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체법은  모양의 일상(一相)이라서 무상(無相)이라는 것을 통달하여해탈문 가운데에 머물러 열반을 증득한다면, 이 때에는 어떠한 법이 있어서 ‘유위이다, 무위이다’라고 분별하는 것인가?”라고 하시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니, 

부처님의 뜻은 ‘오직  마음만이 진실일 뿐,  밖의 다른 때(時)에는 모두가 거짓이거늘, 너는 어찌하여 따지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菩薩行般若波羅蜜,不分別一切法,住內空等諸空中,是大淸淨;自不著,亦教衆生令無所著,所謂檀波羅蜜乃至一切種智,菩薩道中皆教令不著。譬如佛所化人行布施等,亦不分別布施等,亦不受布施等法果報,但爲利益度衆生故。菩薩心亦如是。何以故?善通達諸法性故。

善通達者,不取法性相,亦不住法性中;於法性中不疑、不悶而說法,無罣、無㝵、無遮,是則通達法性。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일체법을 분별하지 않으면서 내공(內空) 등의 모든 공에 머무르니, 이것이 바로 크게 청정한 것이다. 

스스로가 집착하지 않고 중생들에게도 집착하지 않게 하나니, 이른바 단바라밀 내지는 일체종지가 그것이다.

보살의 도에서는 모두 교화하여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부처님께서 변화로 만든 화인 보시 등을 행하면서도 보시 등을 분별하지도 않고, 또한 보시 등의 법의 과보도 받지 않으며 다만 중생을 이롭게 하고 제도하기 위할 뿐인 것과 같이, 보살의 마음 또한 이와 같나니, 왜냐 하면,법의 성품을  통달한 때문이다.

‘잘 통달한 선통달(善通達)’이라 함이란, 법성의 취하지 않고, 또한 법성 가운데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법성에 대하여 의심하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면서 법을 설하기 때문에 걸리는 것도 거리끼는 것도 없고 막히는 것도 없으니, 이를 곧 법성을 잘아는 통달법성(通達法性)이라 하는 것이다.

 

大智度論  釋善達品 第七十九 卷八十九    

79. 선달품(善達品)을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善達諸法相?”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법의 법상(法相)을  통달하는지요?”


佛告須菩提:“譬如化人不行婬、怒、癡,不行色乃至識,不行內、外法,不行諸煩惱結使,不行有漏法、無漏法,世閒法、出世閒法,有爲法、無爲法,亦無聖果;菩薩亦如是,無有是事,亦不分別是法,是名善達諸法相。”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건대 마치 변화한 화인(化人)이 음(婬, 음욕)ㆍ노(怒, 화냄)ㆍ치(癡, 어리석음)를 행하지 않고, 물질(色)에서부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에 이르기까지를 행하지 않으며, 

육근이 내공과 육경의 외공인 내외법(內外法)을 행하지 않고, 모든 번뇌와 결사(結使)를 행하지 않으며, 유루법(有漏法)ㆍ무루법(無漏法)과 세간법(世間法)ㆍ출세간법(出世間法)과 유위법(有爲法)ㆍ무위법(無爲法)을 행하지 않고 

또한 성인의 과위도 없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이러한 등이 없으며, 

또한 이러한 법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곧 제법의 법상(法相)  통달한다고 하느니라.”


須菩提言:“世尊!化人云何有修道?”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변화한 화인에게는 어떻게 도를 닦음이 있는지요?”


佛言:“化人修道,不垢不淨,亦不在五道生死。須菩提!於汝意云何?佛所化人,有根本實事、有垢有淨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변화한 화인 닦는 도는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또한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의 5도(道)의 생사(生死)에 있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화인은 근본이 있고 진실함의 실사(實事)에 있어서 더러움도 있고, 깨끗함도 있는 것인가?”


須菩提言:“不也!佛所化人,無有根本實事,亦無垢無淨,亦不在五道生死。”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변화로 만든 화인 근본과 진실한 실사(實事)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또한 5도의 생사에 있지도 않습니다.”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善達諸法相,亦如是。”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법의 법상(法相)  통달하는  또한 이와 같으니라.”


須菩提言:“世尊!一切色如化不?一切受、想、行、識如化不?”

佛言:“一切色如化,一切受、想、行、識如化。”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물질(色)은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으며, 모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은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의 물질(色)은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으며 일체의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마치 변화한 화(化) 같으니라.”


“世尊!若一切色如化、一切受想行識如化、一切法如化,化人無色、無受想行識、無垢無淨、無五道生死亦無解脫處。菩薩有何等功用?”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의 물질(色)이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고 일체의 온갖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으며,

일체법도 마치 변화한 화(化)와 같다면, 변화한 사람은 물질(色)이 없는 무색(無色)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5도의 생사도 없고, 또한 해탈하는 곳도 없거늘, 보살에게는 어떠한 효용의 공용(功用)이 있는지요?”


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菩薩摩訶薩本行菩薩道時,頗見有衆生從地獄、餓鬼、畜生、人、天中得解脫不?”

須菩提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본래 보살의 도를 행하는 본행(本行) 때,  어떤 중생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하늘로부터 해탈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인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佛言:“如是!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不見衆生從三界得解脫。何以故?菩薩摩訶薩見知一切法如幻、如化。”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이 삼계(三界)로부터 해탈하게 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은 마치 환과 같은 여환(如幻 허깨비)이고, 변화한 것과 같은 여화(如化)와 같음을 보아 알기 때문이니라.”


“世尊!若菩薩摩訶薩見知一切法如幻、如化,爲何事故行六波羅蜜、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三十七助道法,乃至行大慈大悲、淨佛國土、成就衆生?”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은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음을 보아 안다면, 어찌하여 6바라밀과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37조도법(助道法)을 행하며, 나아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하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는지요?”


佛告須菩提:“若衆生自知諸法如幻、如化,菩薩摩訶薩終不於阿僧祇劫爲衆生行菩薩道。須菩提!以衆生自不知諸法如幻、如化,以是故,菩薩摩訶薩於無量阿僧祇劫行六波羅蜜,成就衆生、淨佛國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중생 스스로가 일체법은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음을 안다면, 보살마하살은 끝내 아승기겁 동안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의 도를 행하지 않았을 것이니라.

수보리야, 중생들 스스로가법이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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