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四攝品 第七十八 卷八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8. 사섭품(四攝品)을 풀이함 ① 7
問曰:何以略說餘四道,而廣說人道中法?
묻나니, 무엇 때문에 나머지 네 가지 세계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사도(四道)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사람의 세계인 인도(人道)에 대한 법만은 자세히 설명하신 것입니까?
答曰:三惡道中苦多故,衆生少疑,若見菩薩大神通希有事,則直信愛著得度。諸天有天眼故,自見罪福因緣;菩薩少現神足則解。人以肉眼不見罪福因緣果報,又多著外道邪師及邪見經書。
답하나니,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서는 고통이 많은 까닭에 이 중생들은 의심이 적어서, 만약 보살의 큰 신통 등의 희유한 일을 보게 되면 곧 믿고 애착하므로 제도되는 것이며,
모든 하늘들은 천안(天眼)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죄와 복의 인연과 과보를 보면서 보살이 조그마한 신족(神足, ṛddhipāda. 신변의 나투는 신통)을 나타내어도 곧 이해하지만,
사람은 육안(肉眼)이라서 죄와 복의 인연과 과보도 보지 못하며, 또 대부분이 외도(外道)의 삿된 스승과 삿된 사견이 있는 경서(經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諸煩惱有二分:一者、屬見,二者、屬愛。若但有一事,則不能成大罪。三毒人得邪見力,能盡作重惡;邪見人得貪欲、瞋恚,能大作罪事。如須陁洹雖有三毒,無邪見故,不作墮三惡道重罪。是故人中多有三毒、邪見。又眼不見罪福因緣故難度,難度故多說。
모든 번뇌에는 두 갈래가 있으니, 하나는 견(見, 견해)에 속하고 또 하나는 애(愛, 갈애)에 속한다.
만약 단지 하나만 있다면 큰 죄가 성립되지 않지만, 탐진치 삼독(三毒)을 지닌 사람은 삿된 사견의 힘을 얻어 무겁고 악한 죄를 모두 지으며, 삿된 사견을 지닌 사람도 욕탐과 성냄을 얻어서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니,
수다원 같은 경우에는 비록 3독이 있을지라도 삿된 사견이 없기 때문에 3악도에 떨어질 중한 죄는 짓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서는 3독과 삿된 사견이 많으며,
또한 눈으로 죄와 복의 인연을 못 보기 때문에 제도하기 어려우며, 제도하기 어려운 까닭에 많이 설명하게 된 것이다.
問曰:若爾者,於四事中何以多說布施,餘三略說?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보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의 사사(四事)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보시에 대해서만 많이 설명하시고 그 밖의 세 가지는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布施中攝三事故,以財施、法施教化衆生,則無所不攝。復次,四事中初廣開布施,則知餘三亦如是。
답하나니, 보시는 애어, 이익, 동사의 세 가지를 포섭하기 때문이니, 재물 보시의 재시(財施)와 법 보시의 법시(法施)로써 중생을 교화하면 곧 거두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시(布施)와 애어(愛語)와 이익(利益)과 동사(同事)의 사사(四事) 가운데에서 처음의 보시만을 널리 열어보인다면, 그 나머지 세 가지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問曰:若爾者,何以略說財施而廣說法施?
묻나니, 그러하다면 왜 재물의 보시의 재시(財施)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법 보시의 법시(法施)만을 자세히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財施少,法施廣故。所以者何?財施,有量果報;法施,無量果報。
財施,欲界繫果報;法施,亦三界繫果報,亦是出三界果報。財施,能與三界富樂;法施,能與涅槃常樂。
又財施從法施生,聞法則能施故。復次,財施果報,但富樂,無種種;法施亦有富樂,亦有餘事,乃至佛道涅槃果報。以是等因緣故,廣說法施。二施義,如經中佛自廣說。
답하나니, 재시(財施)는 적지만 법시(法施)는 광대하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재시는 한량이 있는 과보이지만 법시는 무량한 과보이기 때문이요,
재지는 욕계(欲界)에 매인 과보이지만, 법시는 삼계(三界)에 매인 과보이면서 또한 그것이 삼계를 벗어난 과보이기 때문이며,
재시는 삼계의 부귀와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법시는 열반의 상(常)과 낙(樂)을 주며,
또 재시는 법시로부터 생기나는 것이니, 법을 들으면 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재시에 대한 과보는 부유와 쾌락이 있을 뿐, 여러 가지가 없지만, 법시에는 부유와 쾌락도 있으며, 또한 그 밖의 일도 있어서 나아가 부처님 불도와 열반의 과보에까지 이르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법시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니,
재시(財施)와 법시(法施), 두 보시에 대한 뜻은 경에서 부처님이 친히 자세하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問曰:經中,須菩提何以故言“菩薩得一切種智不”?
묻나니, 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보살은 일체종지를 얻습니까”라고 여쭌 것입니까?
答曰:須菩提意:若菩薩時得一切種智,則不名菩薩,云何未得佛而能得一切種智?得一切種智故名爲佛;若先作佛,何用一切種智爲?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보살일 때, 일체종지를 얻는다면, 보살이라 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아직 부처님이 되지 못하였음에도 일체종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일체종지를 얻은 까닭에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니, 만약 먼저 부처님이 된다면 일체종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하였으니,
佛答:今得一切種智,名爲菩薩;已得一切種智,名爲佛。菩薩時具足佛因緣,生心欲得一切種智;得已,名爲佛。
眞實之言:菩薩不得,佛亦不得。所以者何?菩薩未得;佛得已竟,更不復得。世俗法故,說“菩薩今得,佛得已竟。”;第一義中,則無一切法,何況佛及菩薩!
又經中言:“佛心不異菩薩,菩薩不異佛心。”次第相續不斷故,有二心如,無異、無分別故。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지금 일체종지를 얻고 있는 금득(今得)이라면 보살이라 하며,
일체종지를 이미 얻은 이득(已得)이라면 부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보살일 때에는 부처님의 불인연(佛因緣)을 두루 갖추고 마음을 내어서 일체종지를 얻고자 하나니, 얻고 나면 부처님이라 하며,
진실로 말한다면, 보살도 얻지 못하고 부처님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왜냐 하면, 보살은 아직 얻지 못한 미득(未得)이고, 부처님은 체득하여 이미 마쳐서 다시 얻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속법인 때문에 ‘보살이 지금 부처님이 되었고, 체득하여 이미 마쳤다’고 말하는 것일 뿐, 으뜸가는 이치의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에는 일체법조차 없거늘 하물며 부처와 보살이겠는가?”라고 하셨다.
또 경에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의 불심(佛心)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보살 역시 부처님의 불심(佛心)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으니, 차례로 상속되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두 마음이 있어도 차이가 없고 분별이 없는 것과 같은 때문이다.
問曰:九次第定、三十二相、八十隨形好,此是世閒共有法,何以故名爲“出世閒不共法?”
묻나니, 9차제정(次第定)과 32상과 80수형호는 곧 세간에서 공유(共有)하는 법이거늘, 무엇 때문에 출세간에서는 공유하지 않는 법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四禪、四無色定、滅受想,名九次第。滅受定,但聖人能得。四禪、四無色定 從初禪起更不雜餘心而入二禪;從二禪乃至滅受定,念念中受,不雜餘心,名爲次第。
답하나니, 4선(禪)과 4무색정(無色定)과 멸수상(滅受想)을 9차제정이라 하며, 멸수정은 다만 성인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4선과 4무색정은 초선(初禪)으로부터 일으켜 다시는 그 밖의 다른 마음과 섞이지 않으면서 제2선에 들어가고, 제2선으로부터 멸수정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생각 가운데서의 느낌(受)에 다른 마음이 섞이지 않으므로 차제(次第)라 하는 것이며,
凡夫是罪人鈍根,云何能得三十二相?如轉輪聖王、提婆達、難陁所得相,名字雖同,而威德、具足、淨潔、得處則不同於佛。如先分別轉輪聖王、佛相不同中說。
又是相,聖無漏法果報,故自在隨意,無量無邊;轉輪聖王等相,是福德業因緣,不能自在,有量有限。
범부는 죄를 짓는 사람이며 근기가 둔한 둔근(鈍根)이거늘 어떻게 32상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과 제바달(提婆達)과 난타(難陀)가 얻은 상호(相好)와 같이, 이름은 비록 같을지라도 위덕(威德)이 구족된 것과 정결하고 그 처소를 얻음이 부처님과는 동일하지 않나니,
앞에서 전륜성왕과 부처님의 상호는 동일하지 않음을 분별하는 것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한 부처님의 상호는 거룩한 번뇌가 없는 성무루법(聖無漏法)의 과보이기 때문에 자유자재하고 뜻대로 되어서 무량하고 무변한 것이지만,
전륜성왕 등의 상호는 복덕의 업인연이기는 하나, 자유롭지 못하고 한량이 있으며 한계가 있는 것이다.
復次,提婆達、難陁有三十相,無三十二相;轉輪聖王,雖有三十二相,無威德、不具足、不得處,與愛等煩惱俱。
八十隨形好具足,唯佛菩薩有之;餘人正可有少許,或指纖長,或失腹,有如是等無威德之好,不足言。是故說言“出世閒不共凡夫法”,無咎。
또한 제바달과 난타에는 30상(相)이 있었을 뿐 32상은 없었으며,
전륜성왕은 비록 32상이 있다 하여도 위덕도 없고 구족되 못한 것이며, 그 처소를 얻지도 못하고 애욕 등의 번뇌와 함께 한 것이다.
80수형호(隨形好)가 완전히 갖추어진 이는 오직 부처님과 보살뿐이며,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일부만이 있을 뿐이니, 혹 어떤 이는 손가락ㆍ발가락이 가늘고 길기도 하며, 어떤 이는 배가 나오지 않기도 하나,
이와 같은 것 등은 위덕이 없는 수형호이므로 말할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세간의 것이라서 범부의 법과는 공통되지 않다’고 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問曰:從初來處處說諸法五衆乃至一切種智,不說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今經欲竟,何以品品中說?
묻나니, 처음부터 곳곳에서 제법의 5중(衆) 내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씀하시면서, 이 32상과 80수형호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이제 경을 끝내시고자 하시면서 무엇 때문에 품(品)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佛有二種身:法身、生身。於二身中,法身爲大;法身大,所益多故,上來廣說。今經欲訖故,生身義應當說,是故今說。復次,是生身相好莊嚴是聖無漏法果報,今次第說;上雜諸波羅蜜說。四念處等諸法義,如先說。十力等是佛法甚深義,今當更略說。
답하나니, 부처님께는 두 가지 몸이 있으니, 법신(法身)과 생신(生身)이다.
두 몸 가운데에서 법신이 더 위대하며, 법신은 위대하면서도 이롭게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신 것이며,
지금은 경을 마치고자 하시면서 생신의 이치에 대하여 당연히 말씀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하시는 것이다.
또 이 생신은 상호가 장엄하며, 그것은 곧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 법의 과보인 성무루법과보(聖無漏法果報)이므로 여기에서 차례대로 말씀하신 것이며,
앞에서는 모든 바라밀을 섞은 사념처 등의 제법에 대한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니, 마치 10력(力)등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이 부처님 불법의 심히 깊은 이치를 이제 다시 간략하게라도 설명하리라.
問曰:佛十力者,若摠相說則一力,所謂一切種智力;若別相說則千萬億種力,隨法爲名,今何以但說十力?
묻나니, 만약 부처님의 불십력(佛十力)을 전체의 총상(總相)으로 말한다면 곧 하나의 일력(一力)이라서 이른바 일체종지의 힘이지만,
만일 각각의 별상(別相)으로 말한다면 천만억 종류의 힘이라서, 법에 따라 이름을 붙여야 되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다만 10력만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答曰:佛實有無量智力,但以衆生不能得、不能行故不說。是十力,可度衆生事辦。所以者何?佛用是處非處力,定知一切法中因果,所謂行惡業,墮惡道,有是處;行惡業,生天上,無是處。善亦如是。
답하나니, 부처님은 실로 무량한 지혜의 힘이 있지만, 중생으로서는 얻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을 뿐이며, 이 10력으로는 제도할 수 있는 중생의 일을 판별한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은 시처비처력(是處非處力)으로써 반드시 일체법의 인과(因果)를 아시기 때문이니,
이른바 나쁜 악업(惡業)을 행하면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은 도리에 맞는 시처(是處)이며,
나쁜 악업을 행하는데도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무시처(無是處)인 것이니,
착한 선업에 대하여서도 이와 같은 것이다.
不離五蓋、不修七覺得道者,無有是處;離五蓋、修七覺得道者,有是處。餘九力盡入此力中。佛以此力籌量十方六道中衆生可度者、不可度者 可度者,以種種因緣、神通變化而度脫之;不可度者,於此人中修捨心。譬如良醫,觀其病相,審定知其可活則治之,不可活者則捨之。
탐욕개(貪欲蓋) · 진에개(瞋恚蓋) · 혼면개(惛眠蓋) · 도회개(掉悔蓋) · 의개(疑蓋)의 5가지의 장애인 오개(五蓋)를 여의지 않고 7각(覺, 칠각지)을 닦지 않았음에도 도(道)를 얻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무시처(無是處)이지만,
오개를 여의고 7각을 닦아 도를 얻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는 시처(是處)이다.
나머지 아홉 가지 구력(九力)도 모두 이 가운데에 들어간다.
부처님은 이런 힘으로써 시방과 6도(道)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이와 제도할 수 없는 이를 헤아리시나니,
제도할 수 있는 이라면 갖가지의 인연과 신통 변화로써 그를 제도하여 해탈시키지만,
제도할 수 없는 이라면, 이 사람에 대하여 버리는 마음의 사심(捨心)을 닦게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용한 의사는 그 병의 증세를 관찰하고 판단하여 반드시 그를 살릴 수 있다고 알게 되면 치료하지만, 살릴 수 없다면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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