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覺(각)과 不覺(불각)의 同相(동상)과 異相(이상)

復次覺與不覺(부차각여불각) 有二種相(유이종상)

또 다시 각과 불각에는 두 가지 모습=二種相이 있으니, 

云何爲二(운하위이) 一者同相(일자동상) 二者異相(이자이상)

무엇이 그 둘인가? 첫째는 같은 모양=同相(진여문)이고, 둘째는 다른 모양=異相(생멸문)이다.

 

㉮ 同相(동상)

同相者(동상자) 譬如種種瓦器(비여종종와기) 皆同微塵性相(개동미진성상)

같은 모양=同相이란, 비유하자면 갖가지의 질그릇(도자기)이 모두 같은 미진(먼지)로 되어 있는=性相인 것처럼 

如是無漏無明(여시무루무명) 種種業幻(종종업환) 皆同眞如性相(개동진여성상)

이와 같이 샘이 없는=無漏(번뇌가 없는 각)와 무명과 여러 가지의 업의 환영=업환(실체가 없는 작용)이 다 같이 동일한 진여의 본성=진여성의 모습인 것이다.

是故修多羅中(시고수다라중) 依於此義說(의어차의설)

그러므로 경(수다라)에서는 이 진여의 뜻에 의지하기 때문에

一切衆生(일체중생) 本來常住(본래상주) 入於涅槃(입어열반)

일체의 중생이 본래 항상 常住=머물러 있어 열반에 들어 있으며, 

菩提之法(보리지법) 非可修相(비가수상) 非可作相(비가작상) 畢竟無得(필경무득)

보리의 법은 닦을 수 있는 모양=可修相이 아니며, 지을 수 있는 모양=可作相도 아니고 끝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畢竟無得(본래 있는 것이라서 얻는 것이 아님)것이라고 설한다.

 

亦無色相可見(역무색상가견) 而有見色相者(이유견색상자) 

또한 색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나, 색상을 보는 것은 

唯是隨染業幻所作(유시수염업환소작) 

오직 오염된 업의 환상=染業幻에 따라 지은 것=所作일 뿐이며

[불타가 중생의 염심(번뇌에 오염된 마음)에 순응하여 나타나는=隨染業幻]

非是智色不空之性(비시지색불공지성) 以智相無可見故(이지상무가견고)

지혜에는 색의 불공의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지상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라고 하였다.

[물질이나 형상에는 질량(質量)이 있어 색불공(色不空)]

 

 異相(이상)

異相者(이상자) 如種種瓦器(여종종와기) 各各不同(각각부동)

다른 모양=異相이라고 한 것은 여러 가지 질그릇(도자기)이 각각 같지 않은 것처럼

如是無漏無明(여시무루무명) 隨染幻差別(수염환차별) 性染幻差別故(성염환차별고)

이와 같은 무루와 무명은 오염된 환영=染幻을 따르는 차별이며, 오염된 환영의 차별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수염환(隨染幻)= 무루의 본각은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지만 염법(중생의 번뇌심)에는 각기 차별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순응하여 차별이 있는 것 같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성염환(性染幻)= 이에 대하여 무명에 의한 근본지말불각은 그 성질상 차별이 있다. 그러나 무명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무명염법의 차별도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2. 生滅(생멸)의 因緣(인연)

 (1) 五意(오의)와 轉起(전기)

復次生滅因緣者(부차생멸인연자) 所謂衆生依心(소위중생의심) 意意識轉故(의의식전고)

또한 생멸하는 인연=生滅因緣(생멸심을 일으키는 연기)이란, 이른바 중생은 마음=心에 의지하여 의(뜻)와 의식이 轉變=바뀌기 때문이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依阿梨耶識(이의아리야식) 說有無明(설유무명).

이 뜻이 무엇인가? (마음에 의지함이란) 아뢰야식(무명)에 의지함으로써 무명이 있음을 말하며, 

[인연에 의해 의(意)와 의식(意識)이 전변함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以依阿黎耶識 說有無明]

不覺而起(불각이기) 能見能現(능견능현) 能取境界(능취경계)

불각이 일어남에 능히 보고=能見(전식), 능히 나타내며=能現(현식), 능히 경계를 취하여=能取境界(지식),

起念相續(기념상속) 故說爲意(고설위의)

망념(생각)=念을 일으켜 상속하는=起念相續(상속식)이므로 ‘의’라고 말한다. 

 

此意復有五種名(차의부유오종명) 云何爲五(운하위오)

이러한 뜻에는 다섯 가지 이름(명칭)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一者(일자) 名爲業識(명위업식) 謂無明力(위무명력) 不覺心動故(불각심동고)

첫째는 업식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무명의 힘으로 불각의 마음(망심, 생멸심)이 움직이기 때문이요,

[진여가 무명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움직이는, 생멸심이 일어나는 점이 업(業)의 시작]

二者(이자) 名爲轉識(명위전식) 依於動心(의어동심) 能見相故(능견상고)

둘째는 전식이라 이름하니, 움직인 마음=불각심에 의지하여 능히 볼 수 있는 모양=能見相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분별한다는 것이며, 주관적인 작용이 거기에 나타나는 것,  티끌 하나가 어렴풋한 모양을 갖추는 단계]

三者(삼자) 名爲現識(명위현식) 所謂能現一切境界(소위능현일체경계)

셋째는 현식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대상을 대하면 저절로 의지와 관계없이 대상을 바로 나타내므로 시간의 전후가 없이 항상 그러하다.]

猶如明鏡現於色像(유여명경현어색상) 現識亦爾(현식역이) 隨其五塵(수기오진)

마치 밝은 거울에 물체의 빛깔(색상)과 모양(형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현식 또한 그러하여 그 다섯 가지 경계=五塵을 따라서

對至卽現(대지즉현) 無有前後(무유전후) 以一切時(이일체시)

대상이 부딪치면(이르러면) 곧 나타나지만 전후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든지=一切時에

任運而起(임운이기) 常在前故(상재전고)

임의로 운행하여 일어나, 항상 바로 목전에 있기 때문이다.

 

四者(사자) 名爲智識(명위지식) 謂分別染淨法故(위분별염정법고)

넷째는 지식이라 이름하니, 염법과 정법을 분별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분별하는 주체가 의식하게 되는 제7식, 말나식. 현식이 거울에 투영되듯 나타나는 것이며, 거울에 투영된 모양에 대해 구체적인 분별을 일으키는 단계가 지식의 단계]

五者(오자) 名爲相續識(명위상속식) 以念相應不斷故(이념상응불단고)

다섯째는 상속식이라 이름하니, 망념=念이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상속식(相續識)= 의식(意識), 허망된 집착으로 일을 따라 반연하여 육진(六塵) 경계를 분별하므로 의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분리식(分離識) 또는 분별사식(分別事識: 사물을 분별하는 식)] 

住持過去無量世等(주지과거무량세등) 善惡之業(선악지업) 令不失故(영불실고)

과거의 한량없는 세상들에서의 선업과 악업을 간직하여 잃지 않는 까닭이며,

復能成熟現在未來苦樂等報(부능성숙현재미래고락등보) 無差違故(무차위고)

또 현재와 미래의 괴로움과 즐거움=苦樂 등과 같은 업보(과보)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는 까닭으로,

能令現在已經之事(능령현재이경지사) 忽然而念(홀연이념)

현재와 이미 겪고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未來之事(미래지사) 不覺妄慮(불각망려)

미래의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망령되게 염려하게 한다.

[업식(業識)= 무명에 의하여 불생불멸의 일심이 기동하여 생멸심으로 바뀐 것.
전식(轉識)= 생멸심이 주객으로 분화하여, 주관의 작용으로 활동하는 마음
현식(現識)= 객관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마음, 경계상.
지식(智識)= 현식의 경계상을 외계(外界)라고 망상하여 그것을 여러 가지로 분별하는 마음작용
상속식(相續識)= 지식의 결과를 유지하고 마음의 작용을 지속시켜 가는 식(識), 과거의 업을 간직하고 과보로 성숙시켜 기억을 유지하는 등의 작용]

 

 (2) 三界唯心(삼계유심)

是故三界虛僞唯心所作(시고삼계허위유심소작) 離心則無六塵境界(리심즉무육진경계)

그러므로 삼계(일체법)는 실재가 아니고 마음을 통하여 만들어진, 허위로써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허망한 것이며, 마음을 여의면 색성향미촉법의 육진 경계도 사라지게 된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一切法(이일체법) 皆從心起(개종심기) 妄念而生(망념이생)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일체의 법은 모두 마음따라 일어나, 망령된 생각으로 생겨난 것이니, 

一切分別(일체분별) 卽分別自心(즉분별자심) 心不見心(심불견심) 無相可得(무상가득)

일체의 분별은 곧 스스로의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며, 마음은 마음을 볼 수 없기에  (애초에 없는 자기 마음의) 모습은 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一切分別 卽分別自心 : 모든 분별은 곧 자기 마음을 분별한 것, 心不見心 無相可得 : 마음은 마음을 볼 수 없다.]

當知世間一切境界(당지세간일체경계) 皆依衆生無明妄心(개의중생무명망심) 

而得住持(이득주지)

마땅히 알라. 세간의 모든 경계는 모두 중생들의 무명의 허망한 마음=無明妄心에 의지하여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니,

是故一切法(시고일체법) 如鏡中像無體可得(여경중상무체가득) 唯心虛妄(유심허망)

그러므로 일체법은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본체(실체) 가히 얻을  없는 것으로 오직 마음의 헛된 망상일 뿐이다.

以心生則種種法生(이심생즉종종법생) 心滅則種種法滅故(심멸즉종종법멸고)

왜냐하면, 마음이 생겨 나면 갖가지의 법이 생겨 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갖가지의 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3) 意識(의식)

復次言意識者(부차언의식자) 卽此相續識(즉차상속식)

또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상속식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니, 

[의식(意識)= 분별사식, 사물을 분별하는 거친 마음의 작용. 의식은 마음 안팎의 사물을 분별하는 것이어서, 분별사식이라고도 하며 유식설의 제6식인 의식과 구별하여야 한다.]

依諸凡夫(의제범부) 取著轉深(취착전심)

모든 범부가 취하고 집착함에 의지하여 더욱 깊어져서,

計我我所(계아아소) 種種妄執(종종망집) 隨事攀緣(수사반연)

나=我와 나의 것=我所를 헤아려 따지고, 갖가지 허망한 집착으로 사물에 따라 반연하여 

[반연(攀緣)= 망념이 대상에 집착하여 여러 가지로 활동하는 것.]

分別六塵(분별륙진) 名爲意識(명위의식)

육진 경계을 분별하므로 이에 이름하여 의식이라고 한다.

亦名分離識(역명분리식) 又復說名分別事識(우부설명분별사식)

또한 분리식이라고도 이름하며, 다시 사물을 분별하는 식=分別事識이라고도 이름하나니, 

此識依見愛煩惱增長義故(차식의견애번뇌증장의고)

이 식(아리야식)이 견번뇌와 애번뇌=見愛煩惱에 의지하여 증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견애번뇌(見愛煩惱)= 번뇌는 견(見)과 애(愛)의 두 가지로 나눈다. 도리에 미(迷)한 번뇌를 견혹(見惑)이라 하고, 정서적으로 애착하고 탐하는 등의 번뇌를 수혹(修惑)이라 한다. 즉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에 의하여 번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4) 緣起(연기)의 深奧(심오)함

依無明熏習(의무명훈습) 所起識者(소기식자) 非凡夫能知(비범부능지)

무명의 훈습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식이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亦非二乘智慧所覺(역비이승지혜소각)

역시 이승의 지혜로도 깨닫는 바도 아니다.

謂依菩薩(위의보살) 從初正信(종초정신) 發心觀察(발심관찰)

이는 보살이 처음의 바른 믿음=從初正信으로부터 발심하고 관찰함을 의지하여

[처음 정신(初正信)= 보살의 최하위, 십신의 만위에 이르러 믿음이 완성되면 정신을 일으킨다.여기서는 그 위 십주(十住), 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의 삼현위(三賢位) 보살]

若證法身(야증법신) 得少分知(득소분지)

법신을 증득하면 조금 알 수 있게 되며, 

[법신(法身)= 초지이상이 되면 불의 법신을 깨닫는다. 연기의 법은 우주에 편만되어 있어서 이(理)와 합체된 불(佛)이 법신이다.]

乃至菩薩究竟地(내지보살구경지) 不能盡知(불능진지) 唯佛窮了(유불궁료)

나아가 보살의 구경지에 이른다 하여도 다 알 수는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궁극까지 모두 아신다.

[보살 구경지(菩薩究竟地)= 보살의 최상위, 법운지, 십지의 만심(滿心)]

何以故(하이고) 是心從本已來(시심종본이래) 自性淸淨(자성청정)

왜냐하면 이 마음(무명)은 본래부터 자성이 청정하지만 

而有無明(이유무명) 爲無明所染(위무명소염) 有其染心(유기염심)

무명이 있어, 무명에 의하여 물듦이 되어, 물든 마음(생멸심)=染心이 있는 것이다.

[염심(染心)= 번뇌에 오염된 마음. 무명에 의하여 생멸심이 된 마음, 여기서 心(심)은 아리야식]

雖有染心(수유염심) 而常恒不變(이상항불변) 是故此義唯佛能知(시고차의유불능지)

비록 물든 마음이 있으나 항상 불변하니, 그러므로 이 뜻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5) 無明(무명)의 忽然念起(홀연염기)

所謂心性常無念故(소위심성상무념고) 名爲不變(명위불변)

이른바 마음의 본성=心性(마음의 본성, 심진여)은 항상 그러하여 망념이 없는=無念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불변하다고 하며,

以不達一法界故(이부달일법계고) 心不相應(심불상응)

하나의 법계=一法界(심진여 또는 일심)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본성에) 상응하지 못하여

[불상응(不相應)=마음이 주관과 객관의 대응관계로 활동하기 직전의 상태.]

忽然念起(홀연념기) 名爲無明(명위무명)

홀연히 망념을 일으킨 것을 이름 하여 무명이라고 한다.

 

(6) 有染心(유념심)

㉮ 枝末無明(지말무명)의 여읨

染心者(염심자) 有六種(유육종) 云何爲六(운하위육)

염심이라는 것은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여섯이라 하는가?

一者(일자) 執相應染(집상응염) 依二乘解脫(의이승해탈) 及信相應地遠離故(급신상응지원리고)

첫째 집착으로 상응하는 오염=執相應染이니, 성문 연각의 이승의 해탈과 믿음에 상응하는 경지=信相應地에 의지하여 멀리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며,

[집상응염(執相應染)= 집(執)은 집착을 일컬음, 아집과 법집이 있다. 여기서는 아집을 말하며, 앞에서의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즉 의식(분별사식分別事識)의 집착을 말한다.
신상응지(信相應地)= 십주, 십행, 십회향의 삼현위(三賢位). 십주이상은 신심이 순후해재고 신근이 성취되어 후퇴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들을 신상응지 사람이라고 한다.]

二者(이자) 不斷相應染(불단상응염) 依信相應地(의신상응지)

둘째, 끊어지지 않고 상응하는 오염=不斷相應染이니, 신상응지를 의지하여 

修學方便(수학방편) 漸漸能捨(점점능사) 得淨心地(득정심지) 究竟離故(구경리고)

방편을 수행하고 배워, 점점 버릴 수 있으며, 정심지에 이르러서 완전히 여읠 수 있기 때문이며,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 부단은 단절되지 않고 연속하여 일어나는 것. 망념이 단절되지 않고 더욱이 법집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번뇌. 상속상(相續相), 상속식(相續識)에서의 염심을 말한다.]

三者(삼자) 分別智相應染(분별지상응염) 依具戒地漸離(의구계지점리)

셋째 분별하여 알아 상응하는 오염=分別智相應染이니, 구계지를 의지하여 점차 여의게 되며,

乃至無相方便地(내지무상방편지) 究竟離故(구경리고)

나아가 무상방편지에 이르러야 완전히 여읠 수 있기 때문이며,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은 지상(知相)의 지식(智識)이 일으키는 번뇌, 지식은 애(愛)와 불애(不愛), 호(好)와 악(惡), 염(染)과 정(淨) 등을 분별하는 분별지(分別智)의 번뇌이다.]

四者(사자) 現色不相應染(현색불상응염) 依色自在地能離故(의색자재지능리고)

넷째, 현색에 상응하지 않는 오염=現色不相應染이니, 색자재지에 의지하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며,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 현색(現色)이란 밝은 거울에 색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성립된 염심(染心)에 대상의 세계가 반영되는, 현식(現識)의 작용. 염심에 반영된 현색(現色)의 경계상(境界相)은 근본무명에 의하여 성립되어 동시에 능견상(能見相)의 전식(轉識)과 서로 대응관계없이, 단독으로 경계가 현식(現識)에 반영되는 것.]

五者(오자) 能見心不相應染(능견심불상응염) 自心在地能離故(자심재지능리고)

다섯째, 능견의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오염=能見心不相應染이니, 심자재지에 의지하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며,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 능견심(能見心)은 전식(轉識)의 작용으로서, 망념이 외계를 보려는 주관적 부분.]

六者(육자) 根本業不相應染(근본업불상응염)

여섯째, 근본업에 상응하지 않는 오염=根本業不相應染이니, 

依菩薩盡地(의보살진지) 得入如來地能離故(득입여래지능리고)

보살지의 다함=菩薩盡地에 의지하여 부처의 경지에 들어 여래지에서만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 무명업상(無明業相)에서의 염심(染心). 무명의 힘에 의하여 불각의 마음이 기동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분별심, 즉 망념의 근본이므로 근본업이라 하고, 일심에 상응하지 못하고 불각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불상응염.]

 

㉯ 根本無明(근본무명)의 여의어 끊음

不了一法界義者(불료일법계의자) 從信相應地(종신상응지)

일법계의 뜻을 不了=분명히 알지 못하는 자는, 신상응지로부터 

[불료일법계(不了一法界)= 근본무명을 말함. 신진여의 일법계를 통달하지 못한 것.]

觀察學斷(관찰학단) 入淨心地(입정심지) 隨分得離(수분득리)

관찰하여 배우고 끊으며, 정심지에 들어가면 (수행하는) 분수에 따라 여의게 되며, 

乃至如來地(내지여래지) 能究竟離故(능구경리고)

나아가 여래지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여의게 되기 때문이다. 

言相應義者(언상응의자) 謂心念法異(위심념법이)

상응한다는 뜻=相應義는 심(마음)=心法과 염법(心所)이 다른 것을 말하며, 

[心念, 마음과 염법= 심법과 염법을 말함. 심법은 심왕(주관)이고 염법은 심소(객관)의 뜻으로 그 사이에 서로 대응관계가 있다는 것. 心念法異 : 마음 작용의 주체를 심왕(心王), 마음 작용을 심소(心所). 심왕과 심소는 다르다.]

依染淨差別(의염정차별) 而知相緣相同故(이지상연상동고)

물듦=染과 청정함=淨에 의지하여 차별이 있으나, 지상과 연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상(知相)은 능연(能緣)의 주관이고, 연상(緣相)은 소연(所緣)의 객관을 말한다.]

不相應義者(불상응의자) 謂卽心不覺(위즉심불각)

상응하지 않는다는 뜻=不相應義은 심(마음)에 즉(卽)한 불각임을 말하며, 

常無別異(상무별이) 不同知相緣相故(부동지상연상고)

항상 다름(차이)이 없어서, 지상과 연상이 같지 않음=不同을 말하기 때문이다.

[상응의(相應義)= 심(心)과 염법(念法)이 달라서 물듦과 깨끗함[染淨]의 차별을 의지하여 지상(知相)과 연상(緣相)이 같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지상과 연상이 같다는 말은 내 속에 든 것과 나타나는 것이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
불상응의(不相應義)= 마음의 불각(不覺)이라 항상 차별의 다름이 없어서 지상(知相)과 연상(緣相)이 같지 않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진여나 제8식은 우리의 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상과 연상이 같지 않습니다. 즉 내 속에 든 것과 나타나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

又染心義者(우염심의자) 名爲煩惱礙(명위번뇌애) 能障眞如根本智故(능장진여근본지고)

또 염심(육염심의 번뇌)이란 뜻은, 이름하여 번뇌애라고 하나니, 능히 진여의 근본지=眞如根本智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번뇌애(煩惱礙)= 번뇌가 지혜를 장애하는 것을 말함.
진여근본지(眞如根本智)= 번뇌는 마음의 적정을 장애하기 때문에 일심의 무념을 어지럽히는 점을 진여의 근본지를 막는다고 말한다. 진여근본지는 진여의 이(理)를 증득한 근본무분별지를 말한다]

無明義者(무명의자) 名爲智礙(명위지애) 能障世間自然業智故(능장세간자연업지고)

무명의 뜻이란, 이름하여 지애(소지장)라고 하나니, 능히 세간의 자연업지(후득지)를 장해하는 까닭이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依染心(이의염심) 能見能現(능견능현)

이 뜻이 무엇인가? 염심에 의하여 能見(能見相, 전식-아리야식)=볼 수 있고, 能現(境界相, 현식-아리야식)=나타낼 수 있으며, 

妄取境界(망취경계) 違平等性故(위평등성고)

妄取境界(지식-말나식)=망령되이 경계를 취하여 평등한 본성=平等性을 어기기 때문이다.

 

以一切法(이일체법) 常靜無有起相(상정무유기상)

일체법은 항상 고요하여 상을 일으킴=起相이 없으나, 

無明不覺妄與法違故(무명불각망여법위고)

무명의 불각이 망념(妄念)과 더불어 법(진여의 법)과 어긋나기 때문에, 

不能得隨順世間一切境界種種智故(불능득수순세간일체경계종종지고)

세간의 일체 모든 경계를 따르는 갖가지 지혜를 능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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