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本覺의 意味
1. 隨染本覺(수염본각)
復次本覺(부차본각) 隨染分別(수염분별) 生二種相(생이종상)
또 다음에 본각이 물듦(세속)=染에 따라 분별하면, 두 가지 상을 내나니
與彼本覺(여피본각) 不相捨離(불상사리) 云何爲二(운하위이)
그 둘은 본각과 더불어 서로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니, 무엇이 그 두 가지인가?
一者智淨相(일자지정상) 二者不思議業相(이자불사의업상)
첫째는 지정상이며, 둘째는 불사의업상이다.
① 智淨相(지정상)
智淨相者(지정상자) 謂依法力熏習(위의법력훈습) 如實修行(여실수행)
(본각이 오염된 번뇌를 떠나 본래의 본각에 귀환하는) 지정상이라는 것은 법력의 훈습(내훈력과 외훈력)에 의하여 참답게 수행하여
滿足方便故(만족방편고) 破和合識相(파화합식상)
방편을 만족(십지의 만신, 깨달음의 수행이 완성)하였으므로, 화합한 식상=화합식(아리야식이라 일컫는 진망화합식의 상)의 모습을 깨뜨리고,
滅相續識相(멸상속식상) 顯現法身(현현법신) 智淳淨故(지순정고)
망념이 이어지는=상속심의 모습을 멸하여, 법신을 나타내는 것은 지혜가 맑고 청정하기 때문이니,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一切心識之相(이일체심식지상) 皆是無明(개시무명)
이 뜻이 무엇인가? 일체의 심식의 모습(아리야식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식, 즉 업식, 전식, 현식, 지식, 상속식 등)은 모두 무명이며,
無明之相(무명지상) 不離覺性(불리각성) 非可壞非不可壞(비가괴비불가괴)
무명의 모습은 깨어있는 성품=覺性(본각)을 떠나지 않으니, 파괴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파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如大海水(여대해수) 因風波動(인풍파동) 水相風相(수상풍상) 不相捨離(불상사리)
마치 큰 바닷물이 바람으로 인하여 파도가 치며, 물의 모습과 바람의 모습이 서로 버리거나 뗄 수 없는 것이나,
而水非動性(이수비동성) 若風止滅(약풍지멸) 動相則滅(동상즉멸)
물은 움직이는 성질=動性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만일 바람이 그치면 물의 움직임도 사라지지만
濕性不壞故(습성불괴고)
(물의) 젖은 성질=濕性은 파괴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
如是衆生(여시중생)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 因無明風動(인무명풍동)
이와 같이 중생의 자성이 청정한 마음이 무명의 바람으로 인하여 움직이나,
心與無明(심여무명) 俱無形相(구무형상) 不相捨離(불상사리)
마음과 무명이 모두 형상이 없으서 서로 버리고 떠나 있을 수 없으니,
而心非動性(이심비동성) 若無明滅(약무명멸) 相續則滅(상속즉멸)
마음은 움직이는 성품이 아니어서, 만약 무명이 사라지면 상속하는 마음도 곧 사라지니,
智性不壞故(지성불괴고)
지혜의 성품은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②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
不思議業相者(불사의업상자) 以依智淨相(이의지정상)
불사의업상(지정상이 내인이 되어 갖가지 밖으로 좋은 작용을 하는)이라는 것은 지혜의 깨끗함=智淨相에 의지함으로써
能作一切勝妙境界(능작일체승묘경계) 所謂無量功德之相(소위무량공덕지상)
능히 일체의 뛰어나고 오묘=勝妙한 경계를 만들어내나니, 이른바 무량한 공덕의 모습은
常無斷絶(상무단절) 隨衆生根(수중생근) 自然相應(자연상응)
항상 단절됨이 없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자연히 서로 상응하여
種種而現(종종이현) 得利益故(득리익고)
갖가지로 나타나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2. 性淨本覺(성정본각)
復次覺體相者(부차각체상자) 亦四種大義(역사종대의)
다시 또한 각의 본체 모습=體相(본각 그 자체)에는 네 가지 큰 뜻=大義가 있으며,
與虛空等(여허공등) 猶如淨境(유여정경) 云何爲四(운하위사)
허공같이 맑고 깨끗한 거울과 같으니, 무엇을 넷이라고 하는가?
一者(일자) 如實空鏡(여실공경) 遠離一切心境界相(원리일체심경계상)
첫째는 본각진여에 번뇌가 없는=如實空鏡이다. 일체 마음의 경계의 모습=境界相을 멀리 떠나 있어
無法可現(무법가현) 非覺照義故(비각조의고)
어떠한 법도 나타날 수 없으니, 각은 비추어 주는=覺照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二者(이자) 因熏習鏡(인훈습경) 謂如實不空(위여실불공)
둘째, 인을 훈습하는 거울=因熏習鏡(무량한 성공덕이 가득 차 있는 그 거울에는 무량한 공덕이 그대로 비추어 지는)이니, 여실하여 공하지 않음을 말하니,
一切世間境界(일체세간경계) 悉於中現(실어중현) 不出不入(불출불입)
일체 세간의 경계 모두가 그 가운데 나타나되, (진여에서 직접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명의 훈습을 기다려 생기는 것이므로) 불출이며, (마음이 바로 진여의 힘이어서, 그것이 무명의 연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불입이며,
不失不壞(부실불괴) 常住一心(상주일심) 以一切法卽眞實性故(이일체법즉진실성고)
(진여 본성을 잃는 것이 아니므로) 불실이며, (진여가 변형되어 나타난 연생의 만법이므로 진여가 파괴되지 않는) 불괴이며, (본성은 하나라서) 항상 일심에 머무니, 일체법이 곧 참다운 성품=眞實性이기 때문이다.
又一切染法(우일체염법) 所不能染(소불능염) 智體不動(지체부동)
또 일체의 오염된 법=染法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며, 지혜 자체=智體(본각의 진여의 체)가 움직이지도 않고
具足無漏(구족무루) 熏衆生故(훈중생고)
샘이 없는=無漏(번뇌가 없음)를 구족하여 중생을 훈습하기 때문이다.
三者(삼자) 法出離鏡(법출리경) 謂不空法(위불공법)
셋째, 법에서 멀리 떠난 거울=法出離鏡(번뇌에서 벗어난 법, 진여로써 체대와 상대를 합한 법신)이니, 말하자면 비지 않는 법=不空의 법을 말함이니,
出煩惱礙智礙(출번뇌애지애) 離和合相(리화합상) 淳淨明故(순정명고)
이는 번뇌의 장애=煩惱礙(번뇌장)와 지혜의 장애=智礙(지장)를 벗어나, 생멸의 화합상(업식 전식 현식 상속식 등 진망화합식의 상)을 여읜, 순전히 깨끗한=淳淨하고 밝은 때문이다.
四者(사자) 緣熏習鏡(연훈습경) 謂依法出離故(위의법출리고)
넷째, 연을 훈습하는 거울=緣熏習鏡(본각이 밖에서 중생의 연으로 작용하여 시각의 지를 일어나게 하는, 외연의 활동)이니, 이른바 법을 멀리 떠난=法出離(본각이 번뇌애와 지애를 벗어나고 화합상을 떠난 것)를 의지하므로
遍照衆生之心(편조중생지심) 令修善根(영수선근) 隨念示現故(수념시현고)
두루 중생의 마음을 고루 비추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닦게 하며, 생각=念에 따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5) 不覺(불각)의 의미
㉮ 根本不覺(근본불각) - 불각이 생긴 자체
所言不覺義者(소언불각의자) 謂不如實知眞如法一故(위불여실지진여법일고)
이른바 불각의 뜻이란 있는 그대로 진여의 법이 하나임을 참답게 알지 못하는 때문에
不覺心起(불각심기) 而有其念(이유기념) 念無自相(념무자상) 不離本覺(불리본각)
이로써 깨닫지 못한 마음=不覺心이 일어나, 분별(망념)=念이 있는 것이며,
그 분별(망념)=念이란 독립된 모습=自相(망념 또한 진여를 떠나 독립된 모습)이 없어서 본각을 여의지 않으니,
猶如迷人(유여미인) 依方故迷(의방고미) 若離於方(약리어방) 則無有迷(즉무유미)
마치 방향을 잃어 혼미한 사람은 방향(방위)에 의지하기 때문에 미혹된 것과 같으니, 만약 방향(방위)을 여읜다면 혼미함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衆生亦爾(중생역이) 依覺故迷(의각고미) 若離覺性(약리각성) 則無不覺(즉무불각)
중생 또한 그와 같아서, 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미혹하였지만, 만약 각의 성질=覺性을 여읜다면 깨닫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以有不覺妄想心故(이유불각망상심고) 能知名義(능지명의) 爲說眞覺(위설진각)
왜냐하면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 명칭과 의의=名義만으로 알기에 진각을 설하게 되며,
若離不覺之心(약리불각지심) 則無眞覺自相可說(즉무진각자상가설)
만약 불각의 마음만 떠나면, 진각의 자체 모습=自相이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 枝末不覺(지말불각)의 三細(삼세)
復次依不覺故(부차의불각고) 生三種相(생삼종상)
다시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가지 모양=三種相을 내어서,
與彼不覺(여피불각) 相應不離(상응불리) 云何爲三(운하위삼)
근본 불각과 상응하여 여의지 않으니, 무엇을 그 셋이라 하는가?
一者(일자) 無明業相(무명업상) 以依不覺故心動(이의불각고심동) 說名爲業(설명위업)
첫째는 무명업상(제8식 아뢰야식의 첫 출발점)이니, 깨닫지 못함=不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心動 (심식이 움직이는)으로, 이를 업이라고 하니,
覺則不動(각즉부동) 動則有苦(동즉유고) 果不離因故(과불리인고)
깨달으면 곧 움직임이 없지만, 움직이면 곧 괴로움이 따르나니, 결과=果가 원인=因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각(覺)과 부동(不動), 동(動)과 유고(有苦)는 각각 인(因)과 과(果)를 이루는 과불리인)
二者(이자) 能見相(능견상), 以依動故能見(이의동고능견) 不動則無見(부동즉무견)
둘째는 주체적으로 생각을 일으켜, 주체적인 형상을 만드는=능견상(전상)이니, 앞의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볼 수 있으며, 움직이지 않으면 곧 볼 수 없다.
三者(삼자) 境界相(경계상) 以依能見故(이의능견고)
셋째는 앞의 전상에 의해 경계를 나타내는=경계상(현상)이니, 능견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境界妄現(경계망현) 離見則無境界(이견즉무경계)
(나와 너를 분별하는) 경계가 허망하게 나타나지만, 봄=能見(경계상)을 여의면 경계도 없다.
㉰ 枝末不覺(지말불각)의 六麤(육추)
以有境界緣故(이유경계연고) 復生六種相(부생육종상) 云何爲六(운하위육)
왜냐하면 경계의 반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모양을 내나니, 무엇이 그 여섯인가?
一者(일자) 智相(지상) 依於境界(의어경계) 心起分別愛與不愛故(심기분별애여불애고)
첫째는 안다, 판단한다는 정도의 세속적 지혜=지상이니, 경계상에 의지하여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二者(이자) 相續相(상속상) 依於智故(의어지고) 生其苦樂(생기고락)
둘째는 (앞의 지상을 바탕으로 애의 대상에 대하여서는 락수를, 불애의 대상에 대하여서는 고수의 인식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상속상이니, 지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괴롭고 즐거음=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覺心起念相應不斷故(각심기념상응부단고)
생각(망념)을 일으켜 서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三者(삼자) 執取相(집취상) 依於相續(의어상속) 緣念境界(연념경계)
셋째는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 하는=貪과 싫어하는 것을 버리려 하는=瞋)집취상이니, 상속하는 마음=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하여,
住持苦樂(주지고락) 心起著故(심기착고)
생각해서 (애착을 일으켜) 괴로움과 즐거움에 빠져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四者(사자) 計名字相(계명자상) 依於妄執(의어망집) 分別假名言相故(분별가명언상고)
넷째는 (앞의 고락의 경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름과 말을 붙여 분별하고 그릇되게 헤아리는=의업(意業))계명자상이니,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거짓 이름=假名과 언설의 모양=言相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五者(오자) 起業相(기업상) 依於名字(의어명자) 尋名取著(심명취착) 造種種業故(조종종업고)
다섯째는 (신업과 구업) 기업상이니,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취하고,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업을 짓기 때문이다.
六者(육자) 業繫苦相(업계고상) 依於業受報(의어업수보) 不自在故(부자재고)
여섯째는 앞의 선악의 업에 의하여 계박되어, 특히 고를 받는 상=業繫苦相이니,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當知(당지) 無明能生一切染法(무명능생일체염법)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무명이 능히 모든 오염된 법=염법을 내나니,
以一切染法皆是不覺相故(이일체염법개시불각상고)
왜냐하면 모든 염법은 불각의 모양=不覺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