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解釋分(해석분) - 근본 사상의 해설
1) 總說(총설)
已說立義分(이설입의분) 次說解釋分(차설해석분)
이미 입의분은 설명하였으니, 다음은 해석분을 설명하겠다.
解釋分有三種(해석분유삼종) 云何爲三(운하위삼)
해석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무엇이 그 셋인가?
一者顯示正義(일자현시정의)
첫째, 바른 뜻을 드러냄=顯示正義이며,
二者對治邪執(이자대치사집)
둘째, 그릇된 집착=집착을 다스려 바로 잡는 =對治邪執이며,
三者分別發趣道相(삼자분별발취도상)
셋째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발심과 수행의 길을 분석 분별하는=分別發趣道相이다.
2) 顯示正義(현시정의)
㉮ 二門(이문)
顯示正義者(현시정의자) 依一心法(의일심법) 有二種門(유이종문) 云何爲二(운하위이)
바른뜻을 나타냄=顯示正義는 일심법(전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유심)에 의하는 것으로서 두가지의 문이 있으니, 무엇이 그 둘인가?
一者心眞如門(일자심진여문) 二者心生滅門(이자심생멸문)
첫째는 (생멸변화가 없는 영원한 측면에서의) 심진여문이며, 둘째는 (마음이 생멸변화하는 현상적 측면에서의) 심생멸문이다.
是二種門(시이종문) 皆各總攝一切法(개각총섭일체법)
이 두가지의 문은 모두 각각 일체법을 총섭하니,
此義云何(차의운하) 以是二門(이시이문) 不相離故(불상리고)
이 뜻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 두 문=二門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2) 心眞如門(심진여문)
① 離言眞如(이언진여)
心眞如者 卽是一法界大總相法門體(심진여자 즉시 일법계 대총상법문체).
심진여라는 것은 곧 (생멸을 초월하여 일체 제법을 수용하는 총체적 모습인) 하나의 법계=一法界로서, 대총상 법문의 본체이다.
所謂心性(소위심성) 不生不滅(불생불멸) 諸法唯依妄念(제법유의망념)
이른바 (마음의 본성, 본체로서, 일컬어 심진여인 )심성이란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不生不滅이나, 오직 (무명의)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는 것이니,
而有差別(이유차별), 若離妄念(약리망념) 則無一切境界之相(즉무일체경계지상)
만약 (마음의 분별을 일으키는 무명) 망념=心念을 떠나면 곧 일체경계의 모습=相이 없어지느니라.
是故一切法(시고일체법) 從本已來(종본이래) 離言說相(이언설상)
그러므로 일체법은 본래부터, 언설의 상=言說相을 떠나 있으며,
離名字相(이명자상) 離心緣相(이심연상) 畢竟平等(필경평등)
명자의 상=名字相을 떠나 있으며, 심연의 상=心緣相을 떠나 있어 필경에는 평등하느니라.
不可破壞(불가파괴) 唯是一心(유시일심) 故名眞如(고명진여)
변하거나 달라짐이 있지 아니하고, 파괴될 수 없으며, 이것은 오직 일심(한 마음)이기 때문에 진여라고 이름한다.
以一切言說(이일체언설) 假名無實(가명무실) 但隨妄念(단수망념) 不可得故(불가득고)
모든 언설은 임시의 이름=假名일 뿐, 실제가 없으며, 다만 망념에 따를 뿐, 그 실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言眞如者(언진여자) 亦無有相(역무유상) 謂言說之極(위언설지극) 因言遣言(인언견언)
진여라고 말하는 것 역시 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언설의 극을 이르는 것으로서, 말로서 말을 버리는 것이다.
此眞如體(차진여체) 無有可遣(무유가견) 以一切法悉皆眞故(이일체법실개진고)
이 진여의 본체는 버릴 것이 있지 않으니, 일체의 법은 모두 참된=眞이기 때문이다.
(진여라고 하는 것은 일체법과 독립하여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일체의 법이 모두 참되고 일체의 법이 같기 때문)
亦無可立(역무가립) 以一切法皆同如故(이일체법개동여고)
또한 따로 세울 수 있는 것=無可立이 아니니, 일체의 법이 모두 그대로 같은 때문이다.
當知一切法(당지일체법) 不可說不可念(불가설불가념) 故名爲眞如(고명위진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일체법은 언설로 설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진여라고 한다.
問曰(문왈) 若如是義者(약여시의자) 諸衆生等(제중생등)
물어 말하나니, 만약 이와 같은 뜻이라면 모든 중생들이,
云何隨順(운하수순) 而能得入(이능득입)
어떻게 수순하고 또한 능히 득입할 수 있는가?
答曰(답왈) 若知一切法(약지일체법) 雖說無有能說可說(수설무유능설가설)
답하여 말하나니, 만약 일체법을 비록 설할 지라도, 설하는 자기라는 주관=能說과 설하는 바 (일체법이라는) 대상=可說이 있는 것이 아니며,
雖念亦無能念可念(수념역무능념가념) 是名隨順(시명수순),
비록 생각할지라도 역시 (일체법을) 생각하는 자기라는=能念과 생각하는 대상=可念이 없다는 것을 알면, 이것을 수순이라 이름한다.
若離於念(약리어념) 名爲得入(명위득입)
만약 망념을 떠나면, 이름하여 체득하여 들어 감=得入이라 한다.
② 依言眞如(의언진여)
復次(부차) 此眞如者(차진여자) 依言說分別(의언설분별)
또 이 진여라는 것을 말(언설)에 의하여 분별하면
(여기서 분별이라 함은 생각으로 진여를 추측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것을 말로써 나타낸다는 뜻)
有二種義(유이종의) 云何爲二(운하위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이 둘이 되는가?
一者(일자) 如實空(여실공) 以能究竟顯實故(이능구경현실고)
첫째는 여실히 공함=如實空(염법인 무명번뇌가 없는 여실공)이니, 능히 궁극적으로 실상=實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며,
二者(이자) 如實不空 (여실불공) 以有自體具足(이유자체구족) 無漏性功德故(무루성공덕고)
둘째는 여실히 공하지 않음=如實不空(심진여는 실재로서 번뇌를 떠난 청정불변의 공덕을 갖추고 있는 여실불공)이니, 스스로 체=自體가 있어 번뇌가 없는=無漏의 성공덕을 갖춤=具足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실공(如實空)
所言空者(소언공자) 從本已來(종본이래) 一切染法(일체염법) 不相應故(불상응고)
이른바 공이라는 것은 본래 일체의 미망과 번뇌=染法(무명으로 인해 생멸하는 차별적인 세계)이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謂離一切法差別之相(위이일체법차별지상), 以無虛妄心念故(이무허망심념고)
일체법의 차별의 모습=差別相(대상으로서의 모습=所取相을 떠난)을 떠난 것을 말하니, 허망한 분별망상=心念(주관적 견해=能取見을 떠난)이 없기 때문이다.
當知眞如自性(당지진여자성) 非有相(비유상) 非無相(비무상),
마땅히 알라. 진여의 자성은 모양이 있는=유상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무상도 아니며,
非非有相(비비유상), 非非無相(비비무상),
모양이 있지 않는 것=非有相도 아니고, 모양이 없지 않는 것=非無相도 아니며,
非有無具相(비유무구상), 非一相非異相(비일상비이상),
유와 무가 함께 있는 상도 아니며, 동일한 모양(하나의 상)=一相도 아니오 다른 상=異相도 아니며,
非非一相(비비일상), 非非異相(비비이상), 非一異俱相(비일이구상).
일상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이상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일상과 이상이 함께 한 상도 아니다.
(진여는 절대 평등한 상이기 때문에 일상(一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진여는 연(緣)에 따라 여러가지 상을 나타내는 덕성(德性)이 있기 때문에, 단적으로 다른 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일상(一相)과 이상(異相)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유(有)와 무(無)라는 인식은 주관과 객관의 분열된 상대적 인식계(認識界)에서 인식되는 존재 방식이므로 진실한 인식이 아니며, 따라서 이 같은 상대적 차원에서 주장하는 비유(非有), 비무(非無), 역유(亦有), 역무(亦無), 비비유(非非有), 비비무(非非無) 등이 정당한 인식이 아님은 명백한 이치)
乃至總說(내지총설) 依一切衆生(의일체중생) 以有妄心念念分別(이유망심념념분별)
나아가 총체적으로 말하여, 일체의 중생은 허망한 마음=妄心이 있어서 생각 생각=念念으로 분별분별하는 것을 의지하기에
皆不相應(개불상응) 故說爲空(고설위공) 若離妄心(약리망심) 實無可空故(실무가공고)
모두 서로 응하지 않는=不相應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설하여 공이라 하나니, 만약 망심을 떠나면 실로 공이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의 세계는 상대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므로 차별의 상에 기인한, 허망한 신념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경계)
㉯ 여실불공(如實不空)
所言不空者(소언불공자) 已顯法體空無妄故(이현법체공무망고) 卽是眞心(즉시진심)
이른 바 불공이라 함은 이미 법체가 공하여 허망= 이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것이 곧 진심이며,
[망심(妄心)이 없어진 여실공(如實空)의 인식계, 다시 말하면 불지(佛智)로서의 심진여(心眞如)이므로 거기에는 무루(無漏)의 성공덕(性功德)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여실불공]
常恒不變(상항불변) 淨法滿足(정법만족) 故名不空(고명불공),
(이 진심은) 항상하여 변치않아 정법을 만족하므로 불공이라 이름하지만,
亦無有相可取(역무유상가취) 以離念境界(이리념경계) 唯證相應故(유증상응고)
역시 형상=相을 취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허망한 생각=망념을 떠난 경계는 오직 증득하여야 상응하기 때문이다.
(3) 心生滅門(심생멸문)
① 心生滅(심생멸)
㉮ 여래장(如來藏)과 아리야식(阿梨耶識)
心生滅者(심생멸자) 依如來藏故(의여래장고) 有生滅心(유생멸심),
심생멸이라는 것은 여래장에 의지하기 때문에 생멸하는 마음=生滅心이 있는 것이다.
[如來藏(여래장)이란 진여가 무명에 덮여 있는 것]
所謂不生不滅與生滅和合(소위불생불멸여생멸화합) 非一非異(비일비이)
名爲阿梨耶識(명위아리야식),
이른바 불생불멸과 생멸이 더불어 화합하여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니, 이름하여 아리야식(제8식)이라 한다.
此識有二種義(차식유이종의) 能攝一切法(능섭일체법) 生一切法(생일체법)
云何爲二(운하위이),
이 식에는 두 가지 의미(뜻)가 있으니, 능히 일체법을 섭하여 거두고, 일체법을 낳으니, 무엇이 그 둘인가?
一者覺義(일자각의) 二者不覺義(이자불각의)
첫째는 깨달음=覺의 뜻이며, 둘째는 깨닫지 못함=不覺의 뜻이다.
(2) 각(覺)의 의미
㉮ 本覺(본각)과 始覺(시각)
所言覺義者(소언각의자) 謂心體離念(위심체리념)
말하는 바 각의 뜻=覺義이라는 것은 마음의 본체=心體에서 망념=念이 떠난 것을 말하며,
離念相者(이념상자) 等虛空界(등허공계) 無所不遍(무소불편)
離念=망념을 떠난 相=모습이란 허공계와 같은 것으로, 두루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法界一相(법계일상) 卽是如來平等法身(즉시여래평등법신),
법계가 한 모습=法界一相이며, 즉 이것이 바로 여래의 평등법신이니,
依此法身(의차법신) 說名本覺(설명본각).
이 법신에 의지하여 설하니, 본각(진여)이라 이름한다.
何以故(하이고) 本覺義者(본각의자) 對始覺義說(대시각의설)
왜냐하면, 본각의 뜻이란 시각(깨달아 가는 각)의 뜻에 상대(배대)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에,
以始覺者(이시각자) 卽同本覺(즉동본각)
시각이란 곧 본각과 같음이다,
(3) 시각(始覺)의 의미
㉮ 시각(始覺)
始覺義者(시각의자) 依本覺故(의본각고) 而有不覺(이유불각)
시각(번뇌의 망염을 깨면서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는 단계)의 뜻이란 본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불각(진여가 미혹에 덮여 있는 불각)이 있게 되며,
依不覺故(의불각고) 說有始覺(설유시각)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설하며,
[시각(始覺)의 정의(定義)를 본각(本覺)과 불각(不覺)의 삼자(三者) 관계에서 찾고 있으며,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은 명확한 구별이 없다]
又以覺心源故(우이각심원고) 名究竟覺(명구경각)
또 마음의 근원=心源을 깨달았으므로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며,
不覺心源故(불각심원고) 非究竟覺(비구경각).
마음의 근원=心源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구경각이 아니라고 한다.
[시각(始覺)이 완전한 각(覺)에 이르러 전각(全覺)이 되면, 그것은 불타의 지혜가 되어, 그 이상의 시각(始覺)은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궁극적 깨달음인 구경각(究竟覺)]
㉯ 불각(不覺)
此義云何(차의운하) 如凡夫人(여범부인) 覺知前念起惡故(각지전념기악고)
이 뜻은 무엇인가? 범부같은 사람은 앞의 생각=前念이 악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에
能止後念(능지후념) 令其不起(영기불기)
나중 생각=後念을 멈추어 악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않게 하며,
雖復名覺(수부명각) 卽是不覺故(즉시불각고)
비록 다시 각이라고 이름할지라도 바로 이것은 불각이기 때문이다.
㉰ 상사각(相似覺)
如二乘觀智(여이승관지) 初發意菩薩等(초발의보살등) 覺於念異(각어념이)
이승의 사리를 관하는 지혜=觀智와 처음 뜻을 낸 보살들이라면 생각의 변화를 깨달아 (망념의 다른 모습(나와 나의 것)=異相을 깨닫고,)
念無異相(념무이상) 以捨麤分別執著相故(이사추분별집저상고) 名相似覺(명상사각)
망념의 나와 나의 것=異相이 없으니, 거친 분별의 집착상=麤分別執著相을 버렸으므로 상사각이라 이름한다.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이승(二乘)의 경지 즉, 이승의 수행의 지혜[觀智]와 처음 보리심을 낸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의 단계를 각(覺)에 유사한 단계라 하여 상사각(相似覺)]
㉱ 수분각(隨分覺)
如法身菩薩等(여법신보살등) 覺於念住(각어염주) 念無住相(념무주상)
법신보살 등의 경지에 있는 이는 망념=念이 경계에 집착함(머무름)을 깨달아, 생각에 머무는 모습=住相이 없으니,
以離分別麤念相故(이이분별추념상고) 名隨分覺(명수분각)
분별하는 거친 망념의 모습=麤念相을 떠났기 때문에 수분각(수행한 만큼 진여를 깨닫는 수분각)이라 이름한다.
[법신보살은 이들 망념이 마음에서 사라진 것이지만, 아직도 최후의 근원인 생상(生相)이 남아있어 수분각(隨分覺)이라 부르는 것]
㉲ 구경각(究竟覺)
如菩薩地盡(여보살지진) 滿足方便(만족방편) 一念相應(일념상응)
보살의 경지(법운지)가 다하여 방편이 만족하여 일념이 상응(일념이 진여 즉 본각과 하나가 됨)하며,
覺心初起(각심초기) 心無初相(심무초상) 以遠離微細念故(이원리미세념고)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상=初起을 깨달아,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상=初相이 없으니, 미세한 망념=微細念을 멀리 여읜 때문에,
得見心性(득견심성) 心則常住(심즉상주) 名究竟覺(명구경각)
마음의 본성= 心性을 볼 수 있게되어, 마음이 늘 如如하여 변함없음=심즉상주하니 구경각이라 이름한다.
[구경각(究竟覺)은 각(覺)의 최고 단계로서 마음의 본체에 있어서의 영원 불변의 원리와 현상계에 있어서의 생멸변화하는 원리를 완전히 통달한 경지, 망념이 없는 무념의 세계, 화엄경의 해인삼매]
㉳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의 관계
是故修多羅說(시고수다라설) 若有衆生(약유중생)
그러므로 경에서 설하되, 만약 어떤 중생이
能觀無念者(능관무념자) 則爲向佛智故(즉위향불지고)
무념을 관할 수 있으면, 부처의 지혜=佛智에 향하게 된다고 하였다.
又心起者(우심기자) 無有初相可知(무유초상가지)
또한 마음이 일어남=心起라는 것은 그 처음 모습=初相을 알수 없으나,
而言知初相者(이언지초상자) 卽謂無念(즉위무념)
'초상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무념을 말하는 것이다.
是故一切衆生(시고일체중생) 不名爲覺(불명위각) 以從本來(이종본래)
이러한 까닭에 일체 중생을 깨달음이라 이름하지 못하는 것은, 본래부터
念念相續(념념상속) 未曾離念(미증이념) 故說無始無明(고설무시무명).
생각과 생각이 서로 망념으로 이어져=相續하여, 일찍이 그 망념을 떠난 적이 없는 까닭에, 시작도 없는 무명이라 설하는 것이다.
若得無念者(약득무념자) 則知心相生住異滅(즉지심상생주이멸)
만약 망념이 없는=無念을 얻게 되면, 심상의 생주이멸을 알게 되는 것이며,
以無念等故(이무념등고) 而實無有始覺之異(이실무유시각지이)
그것은 무념과 같은 것으로, 실로 시각에 차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以四相俱時而有(이사상구시이유) 皆無自立(개무자립)
생주이멸의 사상은 동시에 함께하여 자립할 수 없으니,
本來平等(본래평등) 同一覺故(동일각고)
본래 평등하여 동일한 각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며 변하고 사라지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본체가 아님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념(無念)과 같다. 마음에서 망념이 일어나는 최초의 모습인 초상(初相)을 볼 수 있다면 거기에는 망념이 일어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 초상(初相)을 안다면 이는 곧 무념(無念)을 아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망념의 초상(初相)을 안다는 것은 초각(初覺)으로서의 지혜의 완성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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