流通分(유통분)

5. 勸修學利益分(권수학이익분)

已說修行信心分(이설수행신심분) 次說勸修利益分(차설권수리익분)

이미 수행신심분을 설명하였으므로 다음은 권수이익분을 설하나니,

如是摩訶衍諸佛秘藏(여시마하연제불비장) 我已總說(아이총설)

이와 같이 마하연(대승)의 모든 부처님의 비장은 내가 이미 총체적으로 설명하였으니,

若有衆生(약유중생) 欲於如來甚深境界(욕어여래심심경계) 得生正信(득생정신)

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매우 깊은 경계에서 올바른 신심을 내고 

遠離誹謗(원리비방) 入大乘道(입대승도) 當持此論(당지차론)

비방을 멀리 여의어 대승의 도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논서를 지니고, 

思量修習(사량수습) 究竟能至無上之道(구경능지무상지도)

사량하고, 수습하면 구경에 마침내 능히 위없는 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高淳豪 : 思量修習(사량수습) : 삼혜(三慧)라는 것은  ① 문혜(聞慧) - 선천적인 지혜로써 들은 법의 뜻을 부지런히 구하여 그릇된 법을 버림. ② 사혜(思慧) - 법을 뜻을 사유함. ③ 수혜(修慧) - 사유한 다음 닦아 익힘. 이렇게 본다면 이 논서를 지니는 것은 문혜이며, 사량한다는 것은 사혜이며, 수습하는 것은 수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물처럼바람처럼]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은 대승(大乘)의 정신(正信)을 수행(修行)하는 이익과, 이것을 비방하는 죄과(罪果)가 깊고 무겁다는 것을 가르쳐, 비방을 떠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설해온 대승의 모든 가르침은 불타가 비밀스럽게 간직한 신비한 가르침이다.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 논술자는 그 전체를 설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을 설하여 바른 신심을 수행하는 큰 이익과 이를 비방하는 죄가 얼마나 큰가를 설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기신론」에 의한 정신(正信)의 이익을 설하여, 이를 권하는 부분이다. 만약 중생이 여래의 깊고 깊은 깨달음의 경계에 대하여, 올바른 신심이 생길 수 있게 되고, 비방을 떠나, 대승의 길에 들고자 한다면, 먼저 이「기신론」을 의지하여, 그 가르침의 내용을 사색하고 이해하며, 수행을 계속하면, 마침내 불타의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인 무상도(無上道)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금강사]

 

['기신론'으로써 여래의 광대하고 심오한 법을 총체적으로 포섭하고 빠짐없이 밝혔다고 하여, "총체적으로 설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이익과 비방의 손해를 밝혀 수행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라고 한 다음부터는 문(聞)·사(思)·수(修) 삼혜(三慧)의 이익을 총체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즉, '기신론'을 듣고 받아 지니어 아는 것은 문혜(聞慧)이고, 그 내용을 깊이 사유하여 알아 가는 것은 사혜(思慧)이며, 직접 수행하여 깨달아 증득한 것은 수혜(修慧)입니다. 이 세 가지 지혜가 깨달아 들어갈 수 있는 주체적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설명했던 일심이문(一心二門)은 모든 부처님이 증오한 매우 심오한 경계이므로 깨달아 들어갈 객체적 대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삼혜(三慧)로 수습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과 여러 보살과 선지식들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즐겨 듣고 가져서 그것을 깊이 사유하여 직접 스스로 체험해 깨달아 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부파불교 수행법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수행의 과정으로 세속지를 완성하는 수행의 단계라고 하였습니다. 하여튼 다음에는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수선]

 

  1) 바른 믿음을 권함

若人聞是法已(약인문시법이) 不生怯弱(불생겁약)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듣고 겁내거나 약함=怯弱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當知此人定紹佛種(당지차인정소불종) 必爲諸佛之所授記(필위제불지소수기)

마땅히 이 사람은 결정적으로 부처가 될 종자=佛種이니, 반드시 제불의 수기한 바가 됨을 알아야 한다. →삼혜(三慧) 중 문혜(聞慧)

 

[紹(소) - 잇다, 소개하다, 알선하다.

* 授記(수기) -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그 제자가 언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는 것.]

 

[만약 사람이 이「대승기신론」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 어려운 수행 등에 대하여, 겁을 내거나, 나약해지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불종(佛種) 즉 불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반드시 제불에 의하여 장차 불타가 된다는 수기(授記)를 얻게 된다. 이는 문(聞), 사(思), 수(修), 삼혜(三慧) 중 문혜(聞慧)에 해당된다. 이 가르침을 듣고도「겁약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문혜(聞慧)이다.-금강사]

 

假使有人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令行十善(가사유인능화삼천대천세계만중중생령항십선)

가령 어떤 사람이 능히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하여, 하여금 십선을 행하게 하더라도 

不如有人於一食頃正思此法(불여유인어일식경정사차법)

어떤 사람이 밥 먹을 동안=一食頃에 이 법을 올바로 사유하는 것보다 못하나니, 

過前功德不可爲喩(과전공덕불가위유) →삼혜(三慧) 중 사혜(思慧)

앞의 공덕을 능가하여 비유할 수도 없을 것이다.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 : 사바세계와 같은 세계가 천 개 모이면 소천세계가 되고, 소천세계가 천 개 모이면 중천세계가 되며, 중천세계가 다시 천 개 모이면 대천세계가 된다. 이를 삼천대천세계라고 한다.

* 《금강경》에도 이와 같은 설명이 있다.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강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점심때도 다시 갠지스강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역시 갠지스강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 억 겁 동안 몸으로써 보시한다고 하자.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 복이 앞의 것보다 나을 것이니,

하물며 베껴 쓰고 받아서 지녀서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해설하는 것이겠는가?”

왜냐하면 경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은 무루법이지만, 선행이나 보시를 하는 것은 유루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의 이익을 나타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듣고 나서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결단코 부처가 될 종자를 계승하여 반드시 모든 부처님이 수기를 받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이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기어(不綺語)·불양설(不兩舌)·불악구(不惡口)·무탐(無貪)·무진(無瞋)·불악견(不惡見) 또는 불사견(不邪見) 등의 열 가지 선행을 행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밥 한 끼니 먹는 동안 이 법을 올바르게 사유하는 것이 보다 더 뛰어난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신론'에서 밝힌 일심(一心)의 진여(眞如)는 성불하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 논을 믿고 받아들여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반드시 부처가 될 종자를 계승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혜(聞慧)의 공능(功能)입니다. 다음에 사혜(思慧)의 이익을 따로 나타내었습니다. 십선법은 다함이 있는 유루의 법이지만 이 진여법에 일념이라도 신심을 낸다면 부처를 이룰 종자가 됨으로 그것은 어떤 유루의 공덕으로도 비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復次若人受持此論觀察修行(부차약인수지차론관찰수행)

다시 다음에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논을 받아 지니고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若一日一夜所有功德(야일일일야소유공덕) 無量無邊不可得說(무량무변불가득설)

하루 낮과 밤 동안 함으로서 소유할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말로써 설명할 수도 없으니,

假令十方一切諸佛(가령십방일체제불) 各於無量無邊阿僧祇劫(각어무량무변아승기겁)

가령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각각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 겁 동안 

歎其功德(탄기공덕) 亦不能盡(역불능진)

그 공덕을 찬탄하시더라도 또한 다할 수 없으니, 

何以故(하이고) 謂法性功德無有盡故(위법성공덕무유진고)

왜냐하면 이른바 (진여의) 법성의 공덕은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 

此人功德亦復(차인공덕역부) 如是無有邊際(여시무유변제)

이 사람의 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끝이 없다. → 삼혜(三慧) 중 수혜(修慧) 

 

[이상은 문사수(聞思修)의 정신삼혜(正信三慧)의 공덕을 나타내어, 이를 권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수혜(修慧)의 이익을 따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기신론'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그 수행이 한량없고 끝없는 진여법성에 걸맞기 때문에 비록 하루 24시간 동안만을 수행한다 해도 그 공덕은 갓이 없으며, 진여법성은 다함이 없기 때문에 찬탄으론 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여(眞如)의 본성이 공(空)한 공덕도 역시 다하지 못함을 찬탄하는 것으로써 결론지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역대 조사들이 누누이 강조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진여의 본성이 공(空)한 이치를 스스로 체득하는 것만이 참다운 진여본성의 공덕에 계합(契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경(看經)을 하든 예배·참회·염불·참선을 하든 진여본성에 계합한 수행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피상적으로 의례적으로 의식을 따르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행을 하든 자기 본래의 면목을 철관(徹觀)하는 수행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기에 관해 부처님과 한 여인의 일화가 있습니 다. 이 일화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도 불립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궁궐에서 설법하고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 그 나라 국왕과 귀족들은 부처님 일행에게 성대한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가난한 여인 난타는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머리 카락을 잘라 팔았고 구걸을 한 돈으로 기름을 사서 등을 하나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 하였습니다. 다음날 취침시간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등불을 끄는데 난타의 등불만은 아무리 꺼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본 부처님은 “너희들이 아무리 끄려 해도, 바닷물을 가져오고 태풍이 오더라도 그 불은 끌 수 없다. 이 등불을 보시한 이는 자신의 재산과 마음을 다 바쳐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공덕으로 후에 반드시 성불하여 수미등광 여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난타를 불러 그녀에게 수기를 주었습니다.-통섭불교]

 

   2) 비방함을 멀리 여윔

其有衆生(기유중생) 於此論中毁謗不信(어차론중훼방불신)

그 어떤 중생이 이 논서를 훼방하고 믿지 않는다면 

所獲罪報經無量劫受大苦惱(소획죄보경무량겁수대고뇌)

얻는 죄의 과보=罪報는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큰 고뇌(괴로움)를 받을 것이다. 

 

[所獲罪報經無量劫受大苦惱(소획죄보경무량겁수대고뇌) : 불법을 비방하면, 자기도 불법을 따라 수행하지 않게 되며, 다른 사람도 그 길을 가는 것을 막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 죄보가 크다고 하는 것이다. 누가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지은 업보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是故衆生但應仰信不應誹謗(시고중생단응앙신불응비방)

그러므로 중생은 다만 우러러 믿고 마땅히 비방하지 않아야 하며, 

以深自害亦害他人(이심자해역해타인) 斷絶一切三寶之種(단절일체삼보지종)

(비방하면) 깊이 스스로를 해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게 되어, 일체 삼보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는 것이니,

以一切如來皆依此法得涅槃故(이일체여래개의차법득열반고)

왜냐하면 일체 여래께서 이 법을 의지하여 열반을 얻으신 까닭이며, 

一切菩薩因之修行入佛智故(일체보살인지수행입불지고)

일체 보살이 그로 인하여=因地의 수행을 하여 불지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當知過去菩薩已依此法得成淨信(당지과거보살이의차법득성정신)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과거의 보살이 이미 이 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淨信을 성취하였으며,

現在菩薩今依此法得成淨信(현재보살금의차법득성정신)

현재의 보살도 지금 이 법을 의지하여 정신을 성취할 수 있으며, 

未來菩薩當依此法得成淨信(미래보살당의차법득성정신)

미래의 보살도 마땅히 이 법을 의지하여 정신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是故衆生應勤修學(시고중생응근수학)

그러므로 중생은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하고 배워야 한다. 

 

[자기의 본성이 진여임을 믿는 가르침을 비방하는 죄가 막중하다는 것을 밝히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정신(正信) 비방의 죄를 다루고 있다. 대승경전에는「정법(正法) 비방의 죄」가 종종 설해지고 있으나, 이「정법 비방의 죄」가 대소승(大小乘)간의 상호비방에 대한 경고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 비방에 대한 경고인가의 또렷한 구분은 없으나, 여기서는 원시불교의 전통을 잇고 있는 부파교단에서, 대승불교의 새로운 가르침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고 비난한데 대한 응답으로「정법 비방의 죄」를 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대소승간의 상호비방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대승의 경전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원시불교에 있는 것이므로 원시불교를 소승(小乘)이라는 이름으로 비방하여서도 안되며, 역시 대승경전을 비불설(非佛說)로 비방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대승과 소승을 통합하여 해석하는 슬기를 갖지 않으며 안된다.
이상으로 정신(正信)의 이익과 정신비방(正信誹謗)의 죄에 대하여 설하였으므로, 다음은 최후의 매듭으로서 부지런히 수학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훼방하는 죄를 들어 엄격하게 훈계하고 수행하라고 권하고서 부처님과 보살들도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여 정신(淨信, Pra ada)과 불지(佛智)와 열반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자라면 우러러 믿고 비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스스로를 해치고 다른 사람도 해를 끼쳐 일체 삼보의 종자가 끊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논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혜명(慧命)이며, 삼보가 될 종성(種性)이며, 중생의 법신(法身)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비방을 하고 믿지 않는다면 부처가 될 종자를 끊고 삼보를 단절하며 중생의 법신을 해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훼방은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쳐 그 죄의 과보가 한량이 없습니다. 일체의 여래께선 이것을 의지하여 열반을 증득하셨고, 보살은 이를 의지하여 부처님의 지혜의 세계에 들어가 성불하게 되므로 굳이 믿기만 할 뿐 훼방하진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마땅히 알라"고 한 다음부터는 신심을 결론짓고 수행하라고 권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이미 이 법으로 인하여 성불하였으며, 삼세의 보살도 모두가 이를 의지하여 인지(因地)의 수행을 하였고 하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믿어 닦아야 하겠습니다.]

 

廻向偈(회향게)

諸佛甚深廣大義(제불심심광대의) 

모든 부처님의 매우 심오하며 넓고 위대한 뜻,

 

[첫 구절은 대승의 의미 결론지었고, '매우 심오하고, 광대하며, 위대하다'는 것은 체(體)·상(相)·용(用) 삼대(三大)의 의미를 말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법계총상법문입니다.]

 

我今隨分總持說(아금수분총지설)

제가 이제 분수를 따라 모든 지혜를 총괄하여 설하였으니,

 

[의미를 서술한 문장을 결론지었으며, 그 의미를 일만일천여 단어로 남김없이 다 포섭하였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설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른바 "적은 문장으로 많은 의미를 포섭하였다"고 하겠습니다.]

 

廻此功德如法性(회차공덕여법성) 普利一切衆生界(보리일체중생계)

이 공덕을 진리의 본성=法性과 같이 회향하오니,
일체 중생의 세계가 두루두루 이익이 되게 하소서!

 

[여기에서는 총체적으로 결론짓고 그 공덕을 회향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매우 심오하고 매우 광대하며, 매우 위대한 의미를 마명보살은 지금 분수를 따라서 그 의미를 총체적으로 수지하여 설명하였고, 이 공덕을 회향하여 법성(法性)과 같이 일체 중생계에 두루 이익이 되길 발원하면서 유통분(流通分)을 삼았습니다.

이 논서를 지은 근본적인 의도는 중생들이 의심을 버리고 삿된 집착을 버리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일심법계인 진여의 본성과 중생계로 회향하여 두루두루 모두에게 이익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들이 진여에 대한 올바른 신심을 발기하고, 그것을 의지하고 수습하여 진여삼매(眞如三昧)를 성취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진여삼매에 의해서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른바 축원문에서 "삼처(三處)로 회향되어 실제로 원만하여지이다"하는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實願滿)에 해당하겠습니다. 여기서 "법성(法性)"이란 진여(眞如)의 보리(菩提)를 완성하여 도달한 경지이며, "일체 중생계를 이익되게 한다"는 것은, 그 일체는 욕계·색계·무색계뿐만 아니라 거듭거듭 다함없이 펼쳐진 우주법계의 중생에게 이익을 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기신론'을 구조와 내용에서 볼 때에 일심(一心)·이문(二門)·삼대(三大) 등은 이론철학적인 부분으로 유심진여연기(唯心眞如緣起) 또는 여래장연기사상이라 할 수 있겠고, 사신(四信)·오행(五行)은 자력적인 윤리실천이며, '나무아미타불'의 육자(六字)회향은 종교적이고 타력적이고 신앙적인 것으로 종합적인 수행체계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본론은 소승에 대립되는 대승이 아니라 대승과 소승을 아우른 모든 교리(敎理)와 실천사상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론의 대요(大要)는 중생의 한 마음인 일심(一心)을 마음의 바탕과 마음의 양태로 나누어 이문(二門)으로 삼고, 마음의 바탕은 불변(不變)한 것으로 보고, 마음의 양태는 수연(隨緣)하지만 마음의 바탕인 본성의 공덕을 떠나지 않아 진여에 훈습(薰習)될 수 있다는 지혜의 작용인 삼대(三大)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훈습은 허망한 마음을 제거하여 진여에 계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여 사신(四信)과 오행(五行)의 자타력(自他力)을 밝히고, 나아가 근기가 하열한 중생을 위해 타력염불의 방편도 설하였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불교의 당체(當體)와 나타난 현상 그리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작용을 지적하여 그 현묘한 이치에 계합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본 논의 글은 쉽지만 법의 내용과 그 의미는 한 번 보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꾸 여러 번 반복해서 봄으로써 그 이치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의 하셔야할 점은 기신론에 설해진 망념(妄念)을 가지고 정념(正念)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논은 비록 북방에 전해진 대승논서 가운데 최상의 위치를 점유하지는 못하였지만 매우 심오한 불교교리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여러 조사들께서 이 논에 관심을 가지고 천착(穿鑿)하여 불교의 이론과 신앙과 수행체계를 수립하여 의지하였습니다. 특히 중국 정영사 혜원스님과 화엄교학의 대성자인 법장스님과 우리 나라 원효성사의 3대소가 유명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능가경}과 {능엄경}·{금강삼매경}·{화엄경}, 그리고 부파칠론과 {아비달마구사론}·{중론}과 {섭대승론}·{구경일승보성론}·{대승장엄경론}·{유식삼십송}·{이입사행론}·{금강사매경론} 등을 참고해 본다면 큰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주신 인연에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대승의 깨끗한 믿음과 물러남이 없는 실천을 통해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완성하시길 빕니다. 나모아미타불-수선]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