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속일여 사상을 잘 나타낸 대표적 논서

 

불교의 경론서 가운데 『대승기신론』(이하 『기신론』이라 약칭)만큼 일반에게 잘 알려지고 또 그만큼 사랑받는 그러면서도 가장 탁월한 내용을 갖춘 것도 드물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기신론』은 대승불교시대의 후기에 나타난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서로 알려져 있다.

『기신론』은 인도에서 그 당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사상 즉 중관 학파와 유가 학파의 사상을 지양·화합시켜 진()과 속()이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범부들이 미오(迷汚)한 현실 생활() 가운데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한편 깨달음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아직 염오한 단계()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진과 속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이다.

『기신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그 구조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를 도표로 나타내 보이기로 한다.

『기신론』은 인연분(因緣分), 입의분(立義分), 해석분(解釋分),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 등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연분에서는 이 논서를 짓게 된 여덟 가지 이유를 말하였고,

입의분에서는 이 『기신론』의 대의, 즉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를 제시하였다. 일심이란 중생심(衆生心)이며 이문은 중생심의 양면인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삼대란 진여문의 본체인 체대(體大)와 생멸문의 상대(相大) 그리고 그 작용인 용대(用大)이다.

해석분은 앞서의 입의분에서 제시한 일심이문을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기신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다시 바른 뜻을 드러냄(顯示正義), 그릇된 집착을 다스림(對治邪執), 도에 발심하여 나아가는 모양을 분별함(分別發趣道相)의 셋으로 나눠진다.

먼저 바른 뜻을 드러내는, 현시정의(顯示正義) 부분에서는 일심 즉 중생심을 일심 중의 청정한 면인 심진여문과 물든 면인 심생멸문의 둘로 크게 나누었다.

심진여문에서는 번뇌가 없다는 뜻으로 여실공(如實空), 번뇌가 없기 때문에 갖가지 청정한 모습이 갖추어 있다는 뜻인 여실불공(如實不空) 등을 말하여 마음의 청정한 면을 묘사하였다.

심생멸문에서는 청정한 여래장심이 물든 염오심(생멸심)과 화합해서 여래장심과 생멸심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아라야식(阿黎耶識:Alayavijnana) 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이 아라야식에는 깨달은 면인 각()과 무명의 훈습으로 물들어 있어 깨닫지 못한 면인 불각(不覺)의 두 가지 뜻이 있어, 여기에 훈습에 의한 염정연기(染淨緣起)가 전개됨을 밝힌다.

다음으로 그릇된 집착을 다스리는 대치사집(對治邪執) 부분에서는 인집(人執)과 법집(法執)의 이집을 대치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발심수행하여 도에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하는 곳에서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의 세 가지 발심을 말한다.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에서는 앞서의 해석분 중의 발취도상이 부정취(不定聚)중생의 승인(勝人)을 위한 설명임에 비하여 여기서는 부정취중생 중의 열인(劣人)을 위하여 사신(四信), 오행(五行) 및 타력염불(他力念佛)을 설한다.

◆ 마지막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에서는 이 논을 믿고 닦으면 막대한 이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였다.

 

2. 중관·유가 종합설로 판단한 원효설이 객관적

 

대승기신론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신론의 성격에 대한 원효와 법장 두 분의 견해를 간단히 비교하면서 소개하고자 한다.

기신론 출현 이후 기신론에 대한 연구와 주석서, 논문 등의 책자는 오늘날까지 불교 경론서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점하고 있다. 그만큼 기신론의 진가를 입증하는 셈인데 그 중에서도 예부터 기신론에 대한 삼대(三大) ()로 혜원(慧遠), 원효, 법장(法藏)(시대순) 세 분의 것을 꼽는다. 아직 필자의 연구 범위에 미치지 않은 혜원의 것은 잠시 미루고 여기서는 원효와 법장의 것만 다루겠다.

먼저 기신론의 성격에 대해 법장은 여래장연기종설(如來藏緣起宗說)이라 판석한다. 이에 비해 원효는 이 논서가 중관 사상과 유가(유식) 사상의 지·양 종합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신론의 출현 시기와 기신론의 일심이문의 구조상으로 볼 때, 법장설보다는 원효설이 훨씬 타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승우준교(勝又俊敎, 가츠마타 순쿄)는 단순히 교리 판석의 입장에서 주장한 법장설을 더 발전시켜 대승불교 후기에 중관·유가 두 학파 뿐 아니라 제 삼의 학파로서 여래장연기종 학파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같은 일본 학자인 고기직도(高崎直道, 다카사키 지키도)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그에 따르면 한역(漢譯)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인도학자와 구미(歐美)학자들은 대승불교라면 중관과 유가의 두 파만을 인정할 뿐이며, 일부 일본학자들이 대승불교 중의 여래장 사상을 또 하나의 특색있는 체계로 고찰하는 것은 그들이 화엄 교학을 통해 오래 전부터 익혀온 생각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또 다른 일본 학자 백목홍웅(柏木弘雄, 가시와기 히로오)은 기신론 자체의 의도와 기신론 내의 하나 하나의 교설의 취지가 반드시 화엄 교학에서의 기신론에 대한 이해와 동일하지 않음은 익히 지적되고 있는 사실이라고 한다. 이상 두 학자의 설을 볼 때 승우준교(勝又俊敎)의 설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 할 수 있다.

나아가 법장은 기신론의 과목나눔(分科), 어구 해석에서 원효의 창안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유독 원효의 중관·유식의 지양·종합설을 따르지 않고 여래장연기종설이라 주장한다. 이는 화엄종이 계승한 남도파지론종(南道派地論宗)에서 여래장 내지 진성(眞性)을 말하고 이 지론종남도파의 학설을 대성하여 화엄 교학의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혜원이 그의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여래장연기, 진성연기를 말한 데 기인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화엄 교학의 관견(管見)에 입각한 법장의 여래장연기종설보다는 그러한 선입견의 전제없이 기신론의 구조와 내용에 의해 중관·유가의 지양·종합설이라 판단한 원효의 설이 훨씬 객관성을 가지며 불교사상 발달사적 입장에서도 더욱 타당성을 갖는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효의 중관·유식설과 법장의 여래장연기종설은 그 내용에 있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두 설은 내용의 핵심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단 기신론의 구조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심이문으로 되어 있고, 이 이문 중 생멸문에서 각()과 불각(不覺)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라야식에 의해 염법(染法)과 정법(淨法)으로 생멸연기함을 보여준다.

원효가 말하는 진여·생멸 이문과 각과 불각 이의(二義)의 차이점은 이렇다. 즉 이문 중 진여문에는 염법, 정법을 낳게하는 생의(生義)가 없고 염정법을 포괄하는 섭의(攝義)만 있음에 비해 생멸문의 각과 불각의 뜻에는 섭의와 생의가 다 있다는 것이다. 법장의 여래장연기종설이 생멸문 중의 아라야식의 이의성만을 언급한데 비해 원효는 진여와 생멸 이문이 아라야식의 이의성, 나아가 기신론 전체에 대한 대전제로 본다.

따라서 이 이문은 생멸문에서의 아라야식의 이의성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냄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또한 거꾸로 일심의 진여·생멸 이문의 전제성(前提性상징성은 아리야식의 각, 불각 이의성을 통해 구체적, 실천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이문의 지양·종합이라는 기신론의 특성을 더욱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나아가 인간 마음의 진·속, 염·정 이면성에서 어떻게 속·염이 이루어졌고 어떻게 이를 극복하여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고찰이라 할 수 있다.

 

3. 선·염불·바라밀 담은 포괄적 불교개론서

 

이제 앞으로 공부하게 될 대승기신론의 제명(題名)을 원효의 해석을 빌려 잠깐 밝혀보기로 한다.

◆ 우선 대승의 뜻에 대해 원효는 허공장경,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그리고 현양성교론 등을 빌려 자세히 풀이하는데 이 경론들의 풀이가 대동소이하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 의하면 대승이란 경대성(境大性), 행대성(行大性), 지대성(智大性), 정진대성(精進大性), 방편선교대성(方便善巧大性), 증득대성(證得大性), 업대성(業大性) 등 일곱 가지 대성과 상응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한다.

첫째 보살도는 한량없는 모든 경전의 광대한 교법을 따르는 것으로 그 경계를 삼기 때문에 경대성,

둘째 일체의 자리·이타의 광대한 행위를 바로 행하기 때문에 행대성,

셋째 인아(人我)와 법아(法我)가 무아임을 깨닫기 때문에 지대성,

넷째 삼대겁아승기야 동안에 한량없는 실천하기 어려운 행실을 방편으로 부지런히 닦기 때문에 정진대성,

다섯째 생사와 열반 두 가지에 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방편선교대성,

여섯째 여래의 모든 힘과 무외(無畏)의 불공불법(不共佛法) 등 한량없는 무수한 큰 공덕을 얻기 때문에 증득대성,

일곱째는 생사의 때가 다하도록 보리(菩提)를 이루어 광대한 온갖 불사를 건립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업대성이라 한다.

 

◆ 다음 기신(起信)이란 중생의 믿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무엇을 믿는가. 체대(體大상대(相大용대(用大)를 믿는 것이다.

체대를 믿는 것이란 평등법계인 이치가 실제로 있음을 믿는 것이다. 상대를 믿는 것이란 닦아서 얻을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니 본성의 공덕을 갖추어(自利) 중생을 훈습함에 의해(利他)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게 됨을 믿는 것이다. 용대를 믿는 것이란 닦아서 얻을 때에 무궁한 공덕의 작용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 마지막 논이란결정적으로’ 궤범이 될 만한 글을 써서 아주 깊은 법상(法相)의 도리를판설하는’ 것이니 이결판’의 뜻에 의해 논이라고 한다. 결국 대승은 논의 종체(宗體)이며 기신은 논의 수승한 기능이다. 이 체용을 함께 들어서 제목을 나타내므로 대승기신론이라 한다.

◆ 이 논을 지은 대의는 중생으로 하여금 의혹을 제거하고 잘못된 집착을 버리게 하여 대승의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불종(佛種:부처의 과보를 내는 종자)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대승의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불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위로 불도를 넓힘이며(上弘佛道), 중생들의 의혹을 제거하고 그들의 잘못된 집착을 버리게 한다는 것은 아래로 중생을 교화함(下化衆生)이다.

◆ 인연분에서는 허다한 경전 가운데 이러한 법이 갖추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또 기신론을 지어 거듭 설명하는가에 대해 여덟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이 논서를 지은 총체적인 이유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여의고 궁극적인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여기서부터는 개별적인 이유인데 여래의 근본 뜻을 해석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바르게 이해하여 틀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선근(善根)이 성숙한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법을 감당하여 신심을 퇴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넷째 선근이 미세한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을 수행하여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다섯째 방편을 보여 악업장(惡業障)을 없애서 그 마음을 잘 호위하고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멀리 여의어 사악한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여섯째 지행(止行)과 관행(觀行)을 수습함을 보여서 범부와 이승의 마음의 허물을 대치하기 위해서다.

일곱째 염불에 전일하는 방편을 나타내어 부처님 앞에 왕생하여 반드시 절대로 신심을 퇴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여덟째 이 논서를 읽는 이익을 보여 수행을 권고하기 위해서다.

이 논을 지은 개별적인 이유 중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육바라밀의 방편에 의해 수행할 것을 말한 것으로 특히 여섯 번째는 지·관의 선수행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일곱 번째는 염불로 왕생정토하는 정토적 방법까지 말하고 있다. 결국 기신론은 모든 경론서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불교 개론서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중생심이 일체의 세간·출세간법 통섭

선·염불·바라밀 담은 포괄적 불교개론서

 

기신론의 다섯 가지 큰 구성에서 두 번째 입의분은 기신론의 대의를 천명한 것으로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를 제시한다.

◆ 기신론은 일심을 중생심이라 한다. 이 중생심이 일체의 세간법(세간의 생사법)과 출세간법(열반의 법)을 통섭하는데 이는 이 중생심의 진여상이 대승의 체를 나타내며 중생심의 생멸인연상이 대승자체의 상(()을 나타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생심이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통섭한다고 한 것은 대승법이 소승법과 다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승법에서는 일체의 모든 법이 각각 자체가 따로 있지만 대승법에서는 모든 법의 자체가 오직 일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효는 별기에서 기신론이 진여법과 세속법이 그 체가 다르다는 치우친 고집을 꺾기 위해 출현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 그런데 일심이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통섭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열반법을 나타내는 진여문과 생사법을 나타내는 생멸문이 서로 여의지 않는 불상리성(不相離性)을 뜻하는 것이다.

원효는 별기에서 이 이문의 관계를 미진(微塵)과 와기(瓦器)의 관계로 설명한다.

즉 미진이 모든 와기들의 통상(通相)이어서 통상 외에 따로 와기가 없으며 따라서 와기들은 모두 미진에 포섭되는 것처럼 진여문은 염정(染淨)의 모든 법에 통상이 되므로 통상 이외에 따로 염정 제법(諸法)이 없으며 염정 제법은 모두 통상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또 미진의 성질이 모여 와기들을 이루지만 항상 미진의 성질을 잃지 않는 까닭에 와기문(瓦器門)이 곧 미진을 포섭하는 것처럼 생멸문이란 선·불선의 인()인 진여가 연()과 화합하여 염정 제법을 변작하는 것으로 비록 제법을 변작하고 있지만 항상 진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도 역시 진여를 포섭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진여·생멸 이문이 서로 융통하여 한계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다 각각 일체의 염정 제법을 통섭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문은 서로 떠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 삼대란 체대(體大상대(相大용대(用大)를 말한다. 앞서 중생심의 진여의 모습은 대승의 체를 나타내고 그 생멸(인연)의 모습은 대승 자체의 상·용을 나타낸다고 했는데 즉 체대는 진여문에, 상대·용대는 생멸문에 배속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체대는 평등법계의 진여본성자리로서 일체의 상을 여읜 것이며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증감이 없어서 끝내 변하지 않고 머문다.

② 둘째 상대란 그 진여본성이 갖추고 있는 공덕상(功德相)을 말한다. 기신론에서는 진여 자체에 대지혜광명, 법계를 두루 비침(照法界), 진실하게 앎(眞實識知),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상락아정(常樂我淨), 청량(淸凉)하고 불변(不變)하고 자재(自在)함의 뜻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심성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대지혜광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에 어떤 망견을 일으킨다면 보지 못하는 상이 있는 것이며 심성에 망견을 여의면 바로 법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다.

㉰만약 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청정한 자성이 없게 되며

㉲상()도 아니고 락()도 아니고 아()도 아니고 정()도 아니다.

㉳이리하여 열뇌(熱惱)하고 쇠변(衰變)하면 자재하지 못하며 이에 간지스 강의 모래들보다 많은 망염(妄染)을 갖게 된다.

그러니 심성의 움직임이 없으면 간지스 강의 모래들보다 많은 온갖 깨끗한 공덕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③ 셋째 용대란 모든 부처와 여래가 본래 인지(因地)에서 대자비를 일으켜 모든 바라밀을 닦아서 중생을 섭화(攝化)하며 크나큰 서원을 세워 모든 중생계를 모두 도탈시키고자 하여 겁수를 한정하지 않고 미래에까지 다하는 것이다.

이에 모든 중생 돌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며 그러면서도 중생상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과 자기의 몸은 다 같이 진여로써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인 줄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방편지(大方便智)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완전히 없애어 본래의 법신을 보게 되고(自利), 자연히 불사의업(不思議業)의 여러 가지 작용을 갖는 것이니(利他), 그러면서도 모양 지을 만한 작용도 없다. 다만 중생의 견문에 따라 이익 되게 하기 때문에 용()이라 말하는 것이다.

 

5. 모든 언설은 분별심으로 지은 이름일 뿐

 

이제부터는 기신론의 핵심 부분인 해석분을 설명할 차례이다.

해석분은 지난 시간에 입의분에서 밝힌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를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이는 크게 현시정의·대치사집·분별발취도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바른 뜻을 드러낸다는 현시정의 가운데 먼저 일심의 심진여문을 밝히고자 한다. 일심 즉 중생심에 ()진여문과 ()생멸문이 있으며 이 둘 진여·생멸 이문의 관계가 불상리성을 가진다는 것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기신론은 심진여란 바로 일법계(一法界)이며 대총상법문의 체(大總相法門體)라고 한다. 여기서 심진여를 일법계 즉 일심이라고 한 것은 생멸문과는 별다른 진여문(별상의 진여문)이란 뜻이라기보다는 진여·생멸의 두 문을 통틀어 포괄하는 총상법문을 의미한다.

또 법문이라 할 때 법은 궤범으로써 참된 이해를 낸다는 뜻이고, 문이란 통틀어 열반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체란 진여문이 의지하는 체이니 결국 일법  전체가 생멸문이 되는 것처럼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미진이 와기들을 이루므로 미진이 모든 와기들의 통상이어서 통상 이외에 따로 와기가 없고, 또한 와기들은 모두 미진에 포섭되니 와기문이 미진을 포섭하는 것처럼 진여문·생멸문은 하나가 아니면서도 둘이 아니다.

따라서 생멸문을 떠나서 진여문을 논할 수 없고 진여문을 떠나서 생멸문을 논할 수 없다. 일법계 즉 일심에 이 진여·생멸 이문이 모두 포섭되기 때문에 일법계 전체가 생멸문이 되고 또한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일법계대총상법문의 체인 진여문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 일심인 진여에는 그 심성이 평등하여 과현미(過現未)의 삼세(三世)를 떠난 것이어서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단 모든 존재 현상들은 오직 망념 즉 우리들의 분별심 때문에 차별이 있는 것이어서 만약 이 분별심을 여의면 모든 차별 현상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모든 존재 현상들은 본래 음성으로 말하는 언설이나 명구로 설명하는 이름, 명목 따위를 여읜 것으로 평등하고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파괴할 수도 없는 오직 일심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언설은 다만 분별심에 의해 임시로 지은 이름에 불과한 것이지 그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여는 분별심을 떠나고 언설을 떠난 것이지만 언설에 의해 분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여기에 여실공(如實空)과 여실불공(如實不空)의 두 가지 뜻이 있게 된다. 여실공이란 필경에 실체를 나타내는 것이오, 여실불공은 그 자체에 번뇌가 없는 본성의 공덕을 구족한 것이다.

여실공이라 할 때 공은 본래 모든 염법(念法)과 상응하지 않음을 말한다. (객관대상의) 모든 차별상을 떠난 것으로 이는 (주관적으로) 거짓된 심념(心念) 즉 분별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진여의 자성을 언급할 때, 기신론은 유무(有無), 일이(一異)의 절사구(絶四句)를 써서 설명한다.

즉 진여자성은 유도 아니오(非有), 무도 아니며(非無), 유무를 함께 갖춘 것도 아니오(非有無俱),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도 아니다(非非有·非非無). 또한 같은 것도 아니오(非一), 다른 것도 아니며(非異), 같기도 하고 다른 것도 아니오(非一異俱相),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도 아니다(非非一相·非非異相).

진여의 본성은 중생의 망심, 분별심에 의해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공이라 말하지만 만약 분별심을 떠나면 실로 공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여실불공이란 이미 진여자성이 공하여 허망함이 없음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진여자성이야 말로 진심(眞心)이며 이 진심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고 정법(淨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불공이라 한다.

그렇다고 또 이런 정법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되니, 왜냐하면 이 망법을 여읜 불공의 경지는 오직 증득함으로써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이에 대해 공과 불공이 이 둘의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불공이라 말하지만 취할 만한 상이 없기 때문에 불공이 공과 다르지 않으며, 분별하여 반연하는 바를 여읜 경계는 오직 무분별지로 증득함으로써만 상응한다는 것이다.

-海印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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