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五門(오문)
修行有五門(수행유오문) 能成此信(능성차신) 云何爲五(운하위오)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어서, 능히 이 신심을 성취할 수 있으니,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能成此信 : 이 믿음=此信이란 위의 네 가지 믿음 즉, 근본과 불법승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一者施門(일자시문) 二者戒門(이자계문) 三者忍門(삼자인문)
첫째는 보시문=施門이고, 두 번째는 계문=持戒門이며, 세 번째는 인문=忍辱門이고,
四者進門(사자진문) 五者止觀門(오자지관문)
네 번째는 진문=精進門이며, 다섯 번째는 지관문이다.
[육바라밀을 말한다. 즉,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반야바라밀이다. 지관문은 선정과 반야의 바라밀을 합쳐놓은 것이다.-물처럼바람처럼]
[이 오행(五行)의 수행에 의하여 사신(四信)을 증장시켜, 확고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원효와 법장은 믿음(信)의 종교적 실천과 체험을 통한 완성을 위하여 ‘신심만 있고 수행이 없으면 바로 신심이 성숙(법장은 견고로 표현)하지 못한다. 성숙하지 못한 신심은 어떤 외적 계기를 만나면 바로 후퇴하게 되는 것이므로 오행(五行)을 수행하여야 비로소 네 가지 신심이 완성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행 오문(五門)은 오행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지관(止觀)을 말하며, 오행을 오문(五門)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의 입구이기 때문에 문(門)이라 하였고, 수행에 의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므로, 오문은 수행의 문 역할을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문 중 지관문(止觀門)은 선정과 지혜가 포함된 것이므로, 오문과 육바라밀은 그 내용이 동일한 것이다.-전종식]
[여기서는 신심을 성취할 수 있는 육바라밀을 오바라밀로 설명하고 다음에 보시바라밀을 설명하였습니다. 즉, 수행하는 데는 다섯 가지 방편문이 있는데, 이는 앞에서 논한 네 가지 신심을 성취할 수 있는 실천방편입니다. 이러한 방편문은 첫 번째는 보시(布施), 두 번째는 지계(持戒), 세 번째는 인욕(忍辱), 네 번째는 정진(精進), 다섯 번째는 지관(止觀)입니다. 이상은 앞의 네 가지 신심 모두가 대승을 발기하는 내적인 요인이라면, 이 다섯 가지 방편문을 닦는 것은 내적인 요인을 도와 성취시키는 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믿음과 실천은 서로 서로 기대되는 것으로 믿음이 있어도 실천이 없다면 신심이 확고해지지 못합니다. 여기서 다섯 가지를 들어 실천을 말하였는데, 이는 육바라밀 가운데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통합하여 지관(止觀)바라밀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止)는 선정(禪定)을 의미하고, 관(觀)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는 불교수행의 가장 요체가 되는 방편으로 지관(止觀) 또는 정혜(定慧)를 쌍수(雙修)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본론의 주제 즉 일심(一心)·이문(二門)·삼대(三大)·사신(四信)·오행(五行)을 일목요연하게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수선]
[“오문 수행으로 신심을 성취하다. 첫째 보시문(施門)이며, 둘째 지계문(戒門)이며, 셋째 인욕문(忍門)이며, 넷째 정진문(進門) 이며, 다섯째 지관문(止觀門)이다.” 중국에서 선불교가 태동하기 전 교종을 완성한 것이 천태 지의입니다. 천태 지의의 마하 지관이 바로 지관문의 지관입니다. 지는 집중하는 사마타를 의미하고 관은 관조하는 위빠사나를 의미합니다. 오문 수행을 잘 닦기만 해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처방전도 중요하지만 처방 전대로 약을 먹고 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문 수행은 처방 전을 따라 약을 먹고 병을 낫게 하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팔만대장경은 처방전에 불과합니다. 결국 수행을 해야합니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처방전에 불과합니다. 그 처방전을 갖고 실천을 해야하는, 그 실천이 오문 수행인 것입니다.
오문은 육바라밀입니다. “바라밀(paramita)는 도피안, 열반에 도달하다는 의미입니다. 육바라밀은 보시(dana), 지계(sila), 인욕(ksanti), 정진(vyayama), 선정(dhyana), 지혜(prajna)입니 다.” 오문에서 앞의 네 가지는 그대로 쓰고 선정과 지혜를 지관에 합친 것입니다.-통섭불교]
⑴ 施門(시문) - 布施(보시)
[첫째의 시문(施門)은 보시(布施)를 말하며, 여기서는 보시를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 법시(法施)의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云何修行施門(운하수행시문)
어떻게 시문=布施門을 수행하는가?
若見一切來求索者(약견일체래구삭자) 所有財物(소유재물) 隨力施與(수력시여)
만약 모든 사람이 와서 찾아 구하는 이를 보거든, 소유한 재물을 자기의 능력에 따라 베풀어주고
以自捨慳貪(이자사간탐) 令彼歡喜(령피환희)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 재시(財施)의 수행방법
若見厄難(약견액난) 恐怖危逼(공포위핍) 隨己堪任施與無畏(수기감임시여무외)
만약 재앙이나 어려움=厄難에 빠졌거나, 두려워하거나, 위험에 빠지거나 핍박 받는 것을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며, →무외시(無畏施)의 수행방법
若有衆生來求法者(약유중생래구법자) 隨己能解方便爲說(수기능해방편위설)
만약 어떤 중생이 와서 법을 구하는 자가 있거든, 자기가 알 수 있는 방편을 따라 설하되, → 법시(法施)의 수행방법
不應貪求名利恭敬(불응탐구명리공경)
마땅히 명예나 이익과 공경 받기를 구하지 않아야 하니,
唯念自利利他(유념자리리타) 廻向菩提故(회향보리고)
오직 자리이타만을 생각하여 보리에 회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시, 무외시 등은 오직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정신에 의하여 베푸는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는가의 세 가지를 잊어버리는 보시가 참된 보시이며, 이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을 염하여 보리(菩提)에 회향하는 보시이기 때문이다]
[《金剛經》 大乘正宗分 第三에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생명체)들, 난생이거나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비무상을 내가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 하겠다. 이와 같이 한량없고 무수하며 가없는 중생을 멸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멸도 된 중생이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다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 三施(삼시) :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 법시(法施)
* ≪華嚴經≫ 十行品에서는 ‘나는 먼저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자. 그 후에 나의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완성하리라.’ 보살이 이와 같이 생각할 때 보살은 주는 것을 보지 않고, 그 받는 것을 보지 않고, 재물을 보지 않고, 복전을 보지 않고, 업보를 보지 않고, 결과를 보지 않는다.]
[보살이 중생을 유익하게 하려면 세 가지 보시인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를 평등하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만일 일체중생이 찾아와서 찾아 구하는 이를 보거든 소유한 재물을 자기의 능력을 따라서 베풀어주고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재시(財施)라는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또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고받는 물건, 즉 삼륜(三輪)이 청정(淸淨)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정(淸淨)이란 일체의 모든 존재가 텅 비어서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마음입니다. 즉, 모든 행위를 하되 그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마음입니다.
다음에 가령 어떤 중생이 찾아와서 법을 구하는 자가 있거든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을 따라서 설법을 해주되 명예와 이익과 공경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자리이타만을 생각하며 그 공덕을 보리로 회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므로 법시(施法)는 궁극적으로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의 실현입니다. 끝으로 가령 액운의 어려움을 당하여 공포심을 느끼며 위태롭게 핍박을 당하는 경우를 보거든 자기가 감당할 만한 능력을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주어야 한다는 무외시(無畏施)는 궁극적으로 무아(無我)의 실현이요, 공(空)의 실현을 말합니다.]
[“보시문의 수행을 밝히다. 재물보시, 무외시보시, 법보시가 있다.” 보시는 부처님께서 초기불교에서 설명하신 사성제와 팔 정도에는 없습니다. 대승불교로 넘어가며 정견의 행위를 설명할 때 나옵니다.
자비의 실천이 보시로 나타납니다. 일반 중생은 이기적인 아집과 진리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내것이 아까워서 한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것 안 아까운 사람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은 나름의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사람들은 살면서 연기를 직접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것 다 챙기고 나머지를 보시하는 것이 중생들의 마음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한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지금 만원이 있어도 보시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져도 보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베푸는 것이란 조건 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오염되어 아집에 싸여있는 나에서 벗어나면 끝없는 자비가 일어납니다.
무외(無畏)를 보시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어느 날 부처님께 묻습니다. “혼자서 6년간 고행을 하셨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도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때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밤 혼자 있다 보면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새가 날아가는 것도 어떤 동물이 나를 덮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일어나게 하여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것들을 정확하게 관찰해보니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며 새가 날아 가는 소리였다. 그 소리들을 정확하게 알고 나니까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알면 두려움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법을 보시하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진리로 회향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하는 것이 법보시입니다. 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른 곳으로 회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법을 듣고 바른 것을 알고 그를 향해 간다면 이것보다 더 좋고 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시바라밀은 베푸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정시(淨施)와 부정시(不淨施)로 나눌 수 있다. 정시(淨施)는 칭찬, 존경 등 대가나 보 답을 바라지 않고 베풀었다는 자부심이나, 자만심이 없는 순수 하고 자비한 마음의 보시이다. 둘째 부정시(不淨施)는 보람, 칭 찬, 감사, 보답, 복을 기대하는 보시이다.”
보시 못할 5가지 물건은, 첫째 도둑질한 물건이나 부정한 물건 등, 도리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구한 재물입니다. 두 번째 술과 마약 등 중생을 어지럽게 하는 물건입니다. 세 번째 짐승을 잡는 덫이나 그물, 낚시대 등 중생을 괴롭히는 물건입니다. 네 번째 총이나 화살같은 중생을 해치는 물건입니다. 다섯째 음악과 여색 등 깨끗한 마음을 깨는 물건입니다.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어 주는 5 가지 보물은, 첫째 보시를 행하면서도 바램이 없음이요. 둘째 보시하는 마음에 집착함이 없음이요. 셋째 보시받는 사람에게 상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넷째 보시에 대한 과보를 염두에 두지 않음이요. 다섯째 받는 자로 하여금 보답함이 없게 함이다.”
위대한 과보를 얻는 5 가지 보시, 첫째 음식을 보시하면 큰 힘을 얻고, 둘째 의복을 보시하면 좋은 일을 얻으며, 셋째 수레를 보시하면 안락을 얻고, 넷째 등불을 보시하면 밝은 눈을 얻고, 다섯째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면 그것은 단이슬(甘露)과 같다.”
때맞추어 하는 5 가지 보시, 첫째 멀리서 온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 둘째 멀리 가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 셋째 병자에게 보시하는 것, 넷째 괴롭고 어려울 때 보시하는 것, 다섯째 처음으로 거둔 과일, 곡식 등을 먼저 계(戒)를 지키며, 불도를 닦는 사람에게 드리고 나서 자기가 먹는 것이다.”
보시의 10가지 이익. ①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번뇌를 없애고, ② 기쁘게 베푸는 마음(捨心)을 익히며, ③ 그 재산을 영원토록 견고히 하고, ④ 부호의 집에 태어나며, ⑤ 태어나는 곳마다 보시의 마음이 생기며, ⑥ 사부대중의 애호를 항시 받으며, ⑦ 많은 사람과 있되 두려운 일이 없고, ⑧ 훌륭한 명성이 널리 퍼지고, ⑨ 손발이 부드럽고 편안하며, ⑩ 언제나 선지식과 같이 있게 되어 불자가 된다.”
베풀지 못하고 인색한 사람은 자기 것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항상 남을 의심하여 두려움을 느낍니다. 세상에 공짜 없고 무관한 인과는 없습니다. 다 원인이 있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
⑵ 戒門(계문) - 지계(持戒) 십선계(十善戒)를 설함.
云何修行戒門(운하수행계문)
어떻게 지계문=戒門을 수행하는가?
所謂不殺(소위불살) 不盜不婬(불도불음) 不兩舌不惡口(불양설불악구)
이른바 살생하지 않음=不殺, 도둑질하지 않음=不盜, 음행하지 않음=不婬과 두 말 하지 않음=不兩舌, 헐뜯는 말하지 않음=不惡口이며,
不妄言不綺語(불망언불기어) 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원리탐질기사첨곡진에사견)
꾸미는 말하지 않음=不綺語, 허망한 거짓말하지 않는=不妄言이다. 탐욕=貪, 질투=嫉, 속임수=欺詐, 아첨=諂曲, 성냄=瞋恚, 사견=邪見을 멀리 여의어야 하며,
若出家者爲折伏煩惱故(약출가자위절복번뇌고) 亦應遠離憒鬧(역응원리궤료)
만일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항복=調伏받아야 하기 때문에 또한 마땅히 심난하고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常處寂靜(상처적정) 修習少欲知足頭陀等行(수습소욕지족두타등행)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물며, 욕심을 적게 하고=少欲 만족할 줄 아는 두타행 등의 수행을 닦아 익혀야 하며,
* 憒(궤) : 심란하다. 鬧(료) : 시끄럽다.
乃至小罪心生怖畏(내지소죄심생포외) 慙愧改悔(참괴개회)
나아가서는 적은 죄라 할지라도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을 내어=生怖畏, 뉘우치고=慙, 부끄러워하며=愧, 고치고=改, 후회하여=悔
참(慙)= 자기가 지은 죄 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괴(愧)= 다른 사람들에 게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不得輕於如來所制禁戒(불득경어여래소제금계)
여래께서 제정하신 금하고 경계하신 바=禁戒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지운 : 작은 죄라도 참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작은 죄가 점점 모여 큰 죄가 된다. 어느 절에 거사 두 사람이 종종 오는데, 한 거사는 큰 죄를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참회를 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한 거사는 당당한 모습으로 다녔다. 그래서 큰스님이 물은 즉,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거사는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였고, 한 거사는 죄를 지은 바가 없으므로 그렇다고 하였다. 이에 큰 스님은 큰 죄를 지었다는 사람에게는 큰 돌을 하나 주어오라고 하였고, 별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거사에게는 작은 돌을 여러 개 주어오라고 하였다. 잠시 뒤에 돌을 가져오자 큰스님은 돌을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놓고 오라고 하였다. 큰 돌을 주어온 거사는 바로 제자리에 두고 왔지만, 작은 돌을 여러 개 가지고 온 거사는 어디서 주었는지 알 수가 없어 제자리에 놓아둘 수가 없었다. 이처럼 작은 죄라도 자각하지 못하면 그 죄가 점점 많아진다.]
當護譏嫌(당호기혐) 不令衆生妄起過罪故(불령중생망기과죄고)
마땅히 꾸짖음이나 혐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허망하게 허물과 죄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때문에 상대방이 꾸중 듣거나 혐의를 받는 짓을 하지 않음이며, 자기 때문에 중생들이 허물과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모든 계율은 삼취정계(三聚淨戒)로 포섭할 수 있다. 삼취정계란 섭율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여기서 불살생 등은 삼업의 악을 끊는 섭율의계이며,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하는 것은 번뇌를 꺾어 조복 받는 섭선법계이며, 작은 죄라도 두려운 마음을 내고 상대방의 중생들이 비방과 혐의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그들이 나로 인해 삼보의 교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허물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은 섭중생계인데, 즉 스스로 계율의 모습을 보호하여 중생들이 죄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섭중생계이다.]
[십선계(十善戒)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 불탐(不貪) 불진한(不嗔恨) 불사견(不邪見).
몸의 세 가지 계,
① 불살(不殺)은 일체의 생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지만, 또한 죽을 목숨을 설려주려는 자비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고
② 불투도(不偸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이지만, 오히려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중요하며,
③불음(不淫)은 그릇된 관계를 떠나,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입의 네 가지 계
① 불양설(不兩舌)은 두 말로 남을 이간시키거나 비방하지 않는 것이지만, 오히려 서로 친근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고
② 불악구(不惡口)는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며
③ 불망어(不妄語)은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항상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이며
④ 불기어(不綺語)는 아첨하거나 꾸민 말로 남을 희롱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3 가지 계는
①무탐(無貪)은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탐내고 질투하는 탐질(貪嫉), 남을 속이는 기사(欺詐), 남에게 아첨하여 자기 마음이 굽어지는 첨곡(諂曲) 등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② 무진(無瞋)은 남을 미워하여 성내고 노여워하지 않는 것
③ 정견(正見)은 사견(邪見)즉 그릇된 견해를 버리는 것이다
이상이 대승불교에서 통설로 세우는 십선계(十善戒)로서, 재가불자(在家佛子)에 대한 계율이다. 신역(新譯)에는 재가보살(在家菩薩)의 계(戒)라고 확실히 하고 있지만 구역(구譯)은 불사음(不邪淫)이 아닌 불음(不淫) 등으로 표시하여 확실한 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 이상의 십선(十善)은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행하여야 할 총상계(總相戒)이나 특히 출가자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계율을 제시하고 있다. 출가자(出家者)의 경우에는 번뇌를 끊기 위하여 소란한 도시 등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자리를 찾아 머무르며, 욕심을 줄이고, 최소한도의 생활필수품 등 적은 것에 만족하여, 금욕고행(禁慾苦行)의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래서 적은 죄(계율위반)를 짓더라도 크게 두려워하고, 범한 죄를 뉘우쳐 회개하며, 여래가 제정한 계율(250계)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특별히 악(惡)은 아닐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고 비방 받는 일은 행하지 않도록 몸가짐을 잘 지켜, 중생으로 하여금 함부로 과실이나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조복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심난하고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곳에 거처하면서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해 할 줄 아는 두타(頭陀) 등등의 수행을 수습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서는 적은 죄라 할지라도 공포스런 두려운 마음을 내어 아직 짓지 않은 악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이미 지은 악업은 고치고 후회하여 여래께서 제정하신 금계(禁戒)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섭선법계(攝善法戒)입니다. 이어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상대방이 나무라거나 혐의를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중생들이 나의 잘못 때문에 비방하는 허물과 죄를 허망하게 일으키게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섭중생계(攝衆生戒)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취정계란 섭율의계(攝律儀戒)와 섭선법계(攝善法戒)와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불살생(不殺生) 등은 세 가지 악업(惡業)을 끊는 섭율의계이며,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해 할 줄 아는 것은 번뇌를 꺾어 조복 받는 섭선법계이며, 작은 죄라도 두려운 마음을 내고 상대방의 중생들이 비방하며 혐의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그들이 나로 인해 삼보(三寶)의 교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허물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은 섭중생계입니다. 즉 스스로 계율을 보호하여 중생들이 죄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섭중생계입니다. 이와 더불어 사무량심(四無量心)과 보리심(菩提心)을 항상 가지고 팔정도(八正道)와 육바라밀·사섭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삼취정계(三聚淨戒)는 보살(菩薩)의 계법(戒法)을 총칭한 것이다. 범망경(梵網經)과 영락경(瓔珞經),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등에서 설한 계이다. 이 삼취정계에 의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대승소승의 일체 계법을 포섭하는 큰 계이다. 이 중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는 자리(自利), 섭중생계는 이타(利他)이다.
① 섭율의계(攝律儀戒)= 비구계, 보살계의 계목(戒目)을 지키고 육근을 단속하여 악을 끊는 것(斷惡)이다. 즉 악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비구의 250계와 비구니의 348계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계율을 말한다. 이것은 대승 이전에 교단 내에 제시되어 있던 모든 금지 조항으로 흔히 ‘하지 마라’고 하는 계율이다.
② 섭선법계(攝善法戒)=선을 닦는(修善) 공덕행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즉 모든 선(善)을 행한다는 적극적인 의미의 계율이다. 보살이 계를 받은 다음 선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③ 섭중생계(攝衆生戒)= 동체대비심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사섭법이다. 즉 선을 쌓아가면서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행위이다.]
[눈, 코, 귀는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6근 중 안, 이, 비는 죄를 안짓고 설, 신, 의는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는 근본 원인은 감각의 수용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 눈이 상당 부분을 차지 하지만 행동이나 생각으로 옮겨 죄를 짓는 것은 몸, 입, 뜻입니다. 죄악을 경계하고 참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를 나타나게 하는 뿌리에는 업식(업상), 전식(능견상), 현식 (경계상), 아만, 아치, 아집, 아애, 탐진치만의견이 있습니다. 업식(업상), 전식(능견상), 현식(경계상)은 제8식 아뢰야식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일으 키는 출발점은 업식에서 형성된 미세한 흐름이 전식을 통해 구체화되고 현식에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거울에 비치듯이 제7식에 반영된 것은 6식을 통해 외부로 표출됩니다. 탐진치만의견은 삶을 부정적으로 만듭니 다. 이것들은 누구에게도 다 들어 있지만 사람마다 들어있는 양은 다릅니다. 내 속에 든 생각들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좋게 보이는 것은 내 생각만큼, 즉 나의 업과 지혜만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반응이 다른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이유는 십악을 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어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말을 꾸미는 행위입니다.
“뜻으로 짓는 업인 탐욕과 질투[貪嫉], 속임[欺詐]과 간사함[諂曲], 성냄[瞋恚], 삿된 견해[邪見]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악을 떠나 선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같이 있어서 악한 마음만 일으키지 않으면 선은 그냥 일어납니다. 선 한 마음을 일으키면 악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키면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계,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고, 규칙적인 생활은 따분해 보이지만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보시라 하며 눈의 도적을 버리면 모든 빛의 경계를 떠나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저 절로 보시가 이루어집니다. 자기자신을 잘 지키는 것을 지계라 하며 귀의 도적을 막으면 소리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므 로 스스로 구속 속에 있으나 구속에서 자유로운 지계가 이루어 진다. 자기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을 인욕이라 하며 코의 도적을 항복시키면 향기로운 좋은 냄새와 악취가 나는 나쁜 냄새에 균등하여 자유롭게 길들여져서 저절로 인욕이 이루어집니다. ‘눈의 도적을 버리면 모든 빛의 경계를 떠나서’라는 말은 대상을 분별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구속에서 자유로운 지계 가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켜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큰 일을 하려면 참을성, 인욕이 되어야 합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1960대 미국의 어떤 대학원생이 학위 논문으로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합니다. 마시멜로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5분을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했습니다. 그 때 참고 안 먹은 아이들은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 때 못 참은 아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눈코귀, 세 가지 도적을 항복시키면 보시, 지계, 인욕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자기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진이라 하며 혀의 도적을 제어하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옳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저절로 정진 속에 머물게 됩니다.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몸의 도적을 항복시키면 모든 애욕에 초연하여 요동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므로 항상 선정 속에 머물게 됩니다. 생명의 본 면목을 깨닫는 것을 지혜라 하며 뜻의 도적을 조복하면 무명을 따르지 않고 항상 생각이 깨어 있어 행하는 모든 행위가 법에 맞으며, 모든 공덕을 즐겨 닦으므로 지혜의 빛이 항상 밝게 빛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두타제일 가섭 존자가 있습니다. 가섭 존자는 평생동안 지킨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사는 것(在阿蘭若處), 둘째 언제나 탁발걸식한 음식을 먹는 것 (常行乞食), 셋째 걸식하는데 있어서 빈부의 집을 가리지 않는 것(次第乞食), 넷째 하루 한끼만 먹는 것(受一食法), 다섯째 수행에 적당한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량만 먹는 것(節量食), 여섯째 중식 이후에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中後不得飮漿), 일곱째 세속에서 버린 옷들을 모아 기워 입는 것(着弊納衣), 여덟째 옷을 세 벌 이상 가지지 않는 것(但三衣), 아홉째 잠을 잘 때는 무덤 사이에서 자는 것(塚間住), 열 째 수행을 할 때는 나무 아래에서 하는 것(樹下止), 열 한번째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앉아 지내는 것(露地坐), 열두 번째 잘 때도 누워 자지 않고 좌선하는 자세 그대로 자는 것(但坐不臥). 가섭은 절제된 수행자의 삶을 철저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 구성의 대부분은 출가수행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간혹 출가하지 않는 뛰어난 거사들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부설 거사가 있습니다. 부설은 원래 불국사에서 출가한 스님이었으나, 같은 승려였던 영희, 영조와 유행을 떠나, 전라도를 지나다가 무구원이란 거사의 집에서 묵게 됩니다. 무구원 거사에게는 묘화라는 벙어리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부설을 보더니 말문이 터져버렸습니다. 세 승려가 떠나려고 하는데 묘화가 부설을 붙잡고 자신이랑 결혼하지 않으면 죽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며칠 고민한 후 부설은 환속하고 묘화와 결혼하여 살게 되어, 같이 온 두 승려는 10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떠납니다. 10년 후 영희, 영조가 찾아와서 수행의 성과를 보기 위해, 물을 넣은 물병을 깨어 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보고 수행의 정도를 판단하기로 합니다. 영희, 영조는 물병을 깨니 물이 다 흘러나왔는데, 부설은 병만 깨 지고 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설이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고? 이 몸은 병이고 이 마음은 물이로다. 눈으로 보아도 본 바가 없고 귀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으면 분별시비 다 없어져 마음에는 오로지 부처뿐이라네.” 훗날 부설은 묘화와 사이에 아들과 딸을 낳게 되는데 아들은 이름이 등운이고 딸은 월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출가해 그들의 이름을 딴 ‘등운암’과 ‘월명암’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팔청정(八淸淨)은 지계를 청정히 하는 8가지이다. 첫째 몸으로 행하는 행위가 곧으며, 둘째 업(業)이 청정하고, 셋째 마음 가운데 허물과 더러움이 없으며, 넷째 뜻을 높게 가져 굳고 바르며, 다섯째 바른 생활방법에 의해 살아가며, 여섯째 탐욕을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며, 일곱째 온갖 거짓과 진실치 않은 모습을 떠나며, 여덟째 언제나 보리심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청정지계입니다. 왜 수행자는 복을 받을까요? 그것은 지계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출가를 했건 안했건 청정지계를 지키고 사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인 것입니다.]
[지계는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밀린다왕문경(나가세나 비구경)에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에게 묻습니다. “비구여 그대들은 어째서 젊은 시절부터 머리를 깎고 수행을 하는가? 젊어서는 놀다가 늙어서 수행하면 되지 않는가.” 그 말을 듣고 나가세나는 밀린다 왕에게 전쟁을 잘하는 비결을 묻습니다. 그러자 밀린다 왕은 “짐은 전쟁 전에 병기, 성벽, 식량 등 만반의 준 비를 다 해놓기 때문에 백전백승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가세나 비구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젊어서 수행하는 이유도 젊어서부터 준비를 하는 것에 있습니 다. 목이 마른 후에 땅을 파는 사람은 그 목마름 때문에 죽게 되지만 미리 우물을 파놓은 사람은 목 마를 때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밀린다 왕도 감탄을 하며 납득합니다.
밀린다 왕이 또 나가세나에게 묻습니다. “부처님은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가?”라고 묻자 나가세나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계율을 다 정해놓을 것이지 왜 일이 생기고 나서야 계율을 만드는가?”라고 하자 나가세나 비구가 “대왕이시여 당신은 옷이 낡으면 어떻게 합니까?” 밀린다 왕은 옷이 낡으면 깁어 입는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 가세나 비구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계율을 알고 계셨지만 계율이 범해질 때마다 계율을 만드신 것은 헌 옷을 깁어 입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사람이 필요할 때 설하는 것이니 필요 없을 때 설해서 구속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밀린다 왕이 납득합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전역에 흉년이 들어 다 굶어 죽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승려들이 걸식을 나가도 모두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수디나 비구가 부처님께 제안을 합니다. 자신의 집과 고향 마을은 풍족하니 일단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부처님은 수락합니다. 그래서 수디나 집에 머무르는데 어느 날 수디나의 어머니가 수디나에게 말합니다. “네가 출가를 해서 우리 집의 재산은 나중에 국가에 귀속될 것이다. 자식을 낳고 가거라.” 수디나는 고민 끝에 수락합니다. 그 후 다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은 어느 날 수디나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습 니다. 그러자 수디나가 사실대로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듣고 음행에 대한 계율을 설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디나는 퇴출되지 않았습니다.
다니가 비구의 일화가 있는데 다니가 비구는 퇴출을 당했습 니다. 부처님은 알려진 대로 빔비사라 왕과 가까운 사이였습니 다. 다니가 비구는 그것을 이용해서 부처님의 이름을 빙자해 관청에서 물자를 받아 절을 지었는데, 절이 완성되자 다니가 비구는 부처님을 초청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물자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니가 비구는 사실대로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왜 거짓말을 했냐고 질책합니다. 다니가는 거짓말은 했지만 좋은 일에 썼으니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당당하게 반문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니가여 너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겼으므로 너를 교단에서 퇴출하겠노라.”라 하고 다니가를 퇴출시켰습니다.
수바 비구니는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수행자들은 산 속에 혼자 들어가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 구니들 가운데는 산에 혼자 들어가 수행을 하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희롱을 당하거나 겁탈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바 비구니가 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데 마을의 잘 생긴 청년이 찾아와 희롱을 합니다. 집요하게 구니까 수바 비구니는 청년에게 자신의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묻습니다. 청년이 눈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수바 비구니는 자신의 눈을 뽑아 청년에게 줍니다. 청년은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진심으로 사죄를 합니다. 그 후로 부처님께서 비구니들은 절대로 혼자서 수행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통섭불교]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수행신심분 4 (0) | 2023.01.11 |
---|---|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수행신심분 3 (2) | 2023.01.10 |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1 (0) | 2023.01.08 |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解釋分(해석분) 44 (1) | 2023.01.07 |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解釋分(해석분) 43 (1) | 2023.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