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修行大悲行救護衆生 수행 대비행 구호중생
善男子야 我修行此大悲行門하야 常願救護一切衆生하노니 願一切衆生이 離險道怖하며 離熱惱怖하며 離迷惑怖하며
선남자 아수행차대비행문 상원구호 일체중생 원일체중생 이험도포 이열뇌포 이미혹포
선남자여, 나는 이 대비의 행문을 수행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원하나니,
원컨대 일체 중생이 험난한 길에서 공포를 여의며, 뜨거운 번뇌의 공포를 여의며, 미혹한 공포를 여의며,
離繫縛怖하며 離殺害怖하며 離貧窮怖하며 離不活怖하며 離惡名怖하며 離於死怖하며 離大衆怖하며 離惡趣怖하며
이계박포 이살해포 이빈궁포 이불활포 이악명포 이어사포 이대중포 이악취포
속박=繫縛의 두려움을 여의며, 살해의 두려움을 여의고, 빈궁의 두려움을 여의며,
살아가지 못할까 두려움을 여의고, 나쁜 이름=惡名의 두려움을 여의고, 죽음의 두려움을 여의고,
대중 앞의 두려움을 여의고, 나쁜 갈래=惡趣에 태어남의 두려움을 여의고,
離黑闇怖하며 離遷移怖하며 離愛別怖하며 離寃會怖하며 離逼迫身怖하며 離逼迫心怖하며 離憂悲怖하며 遷 옮길 천
이흑암포 기천이포 이애별포 이원회포 이핍박신포 이핍박심포 이우비포
깜깜한 어둠의 두려움을 여의고, 옮겨다니는 두려움을 여의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두려움을 여의고,
원수를 만나는 두려움을 여의고, 몸을 핍박 당하는 두려움을 여의고,
마음을 핍박하는 두려움을 여의고, 근심과 걱정의 두려움을 여의기를 원하며,
復作是願호대 願諸衆生이 若念於我어나 若稱我名이어나 若見我身하면 皆得免離一切怖畏라호라
부작시원 원제중생 약념어아 약치아명 약견아신 개득면리 일체포회
다시 또 서원하기를, ‘만약 모든 중생이 나를 생각하거나 나의 이름을 부르거나
나의 몸을 보면, 모두가 일체의 두려움을 면하여 여의지이다.’
善男子야 我以此方便으로 令諸衆生이 離怖畏已하야는 復敎令發阿耨多羅三藐菩提心하야 永不退轉케호라
선남자 아이차방편 영제중생 이포외이 부교영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영불퇴전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공포(두려움)을 여의게 하고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도록 가르쳐서 영원히 물러서지 않게 하느니라.
관자재보살이 또 서원하기를 “모든 중생이 만약 저를 생각하거나, 만약 저의 이름을 일컫거나, 만약 저의 몸을 보거나 하면 다 모든 공포를 면하기를 서원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이와 같은 일을 자세하게 부연하여 설한 것이다. 화엄경의 이 내용과 법화경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관음신앙과 내지 관음기도가 세상에 크게 성행하게 된 것이다.
(4) 謙己推勝 겸손히 다른 이의 수승함을 추천하다
善男子야 我唯得此菩薩大悲行門이어니와 如諸菩薩摩訶薩은 已淨普賢一切願하며 已住普賢一切行하며
선남자 아유득 차보살대비행문 여제보살 마하살 이정보현 일체원 이주보현 일체행
선남자여, 나는 오로지 이 보살의 대비행문 만을 얻었거니와
저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이미 보현 보살의 일체 원을 청정히 하였고, 보현의 일체 행에 이미 머물러서
常行一切諸善法하며 常入一切諸三昧하며 常住一切無邊劫하며 常知一切三世法하며 常詣一切無邊刹하며
상행일체 제선법 상입일체 제삼매 상주일체 무변겁 상지일체 삼세법 상예질체 무변찰
일체의 모든 선법을 항상 행하고, 일체의 모든 삼매에 항상 들어가고, 일체의 무변 겁에 항상 머물고,
일체 삼세의 법을 항상 알고, 일체의 무변 세계에 항상 나아가고,
常息一切衆生惡하며 常長一切衆生善하며 常絶衆生生死流하나니 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상식일체 중생악 상장일체중생선 상정중생 생사류 이아운하 능지능설 피공덕행
일체중생의 악을 항상 그치게 하고, 일체중생의 선이 항상 늘어나게 하며, 항상 중생의 생사의 물줄기를 끊어버리거늘
내가 그 공덕행을 어찌 알아서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5)觀自在菩薩於正趣菩薩 趣向勸後友趣求 관자재 보살이 다음 선지식으로 정취 보살을 찾기를 권하다
爾時에 東方에 有一菩薩하니 名曰正趣니 從空中來하야 至娑婆世界輪圍山頂하야 以足按地한대 按 누를 안,
이시 동방 유일보살 명왈정취 종공중래 지사바세계 윤위산정 이족안지
그때 동방에 한 보살이 있어, 이름이 '정취'이니, 공중으로부터 와서 사바세계의 윤위산 꼭대기에서 이르러
발로 땅을 누르니
다음 선지식 찾기를 권하는 단계에 이르러, 이번에는 선재동자가 다음의 선지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다음의 선지식인 동방의 정취보살이 나타났다.
“동방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하여 정취(正趣)가 된다”고 하지만, 아울러 친견할 때 이르러서는 오히려 똑같은 회상에 거처하는 것은 이 지위 보살이 세속에 들어가 현행하는 자비와 지혜가 가지런함을 나타낸 것이다.
“동방에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하여 정취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른 지혜가 삿됨이 없음을 밝히기 때문에 정취(正趣)라고 하는 것이며,
‘공(空)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지혜의 체(體)가 의지함이 없고 성품이 형질(形質)이 없고 신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어서 자체의 진공(眞空)이 환(幻)과 같은 몸을 일으켜 연(緣)에 응해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1찰나제에 시방에 메아리처럼 응하면서도 성품이 가고 옴이 없어서 허공으로 환상(幻像)을 나타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공으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취보살이 공(空) 속으로부터 와서 사바세계 윤위산 정상에 이르러 발로 땅을 누르자 그 사바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한 것은 지혜가 능히 어둠을 타파해 중생의 미혹이 소멸하매 경계가 사라져 흩어짐을 나타낸 것이니, 지혜가 나타나고 망령됨이 없어지자 망령된 업으로 보득(報得)한 대지의 경계도 또한 없어져 흩어지기 때문에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다.
진동한다는 것은 흩어진다는 것이니, 가령 정(定)이 현전하여 망령됨이 없어지고 지혜가 응하매 과보의 경계도 다 없어지는 것이다.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른다는 것은 지혜의 소행이니, 法空으로 지혜를 일으켜 현전하자 온갖 집착이 다 흩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윤위산(輪圍山)은 망령됨으로 집착을 과보경계로서 의지함이 없는 지혜가 나타나자 집착하는 바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니 선관(禪觀)으로 바야흐로 밝힐 것이며, 상심(想心)으로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其裟婆世界가 六種震動하야 一切皆以衆寶莊嚴이어늘 正趣菩薩이 放身光明하사 暎蔽一切日月星電하시니
기사바세계 유종진동 일체개이 중보장엄 정취보살 방신광명 영폐일체 일월성전
그 사바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모든 것이 온통 보배로 장엄되었으니,
정취보살이 몸에서 광명을 놓아 해와 달, 별, 번개의 빛을 가려버리니
天龍八部와 釋梵護世의 所有光明이 皆如聚墨이라 其光이 普照一切地獄畜生餓鬼閻羅王處하야
천용팔부 석범호세 소유광명 개여취묵 기광 보조일체 지옥축생아귀 염라왕처
하늘과 천룡과 팔부와 제석, 범천, 호세(사천왕)들의 광명들이 먹처럼 되어버리고,
그 광명이 모든 지옥, 축생, 아귀, 염라왕의 거처를 두루 비추어서
令諸堊趣로 衆苦皆滅하고 煩惱不起하고 憂悲悉離하며 又於一切諸佛國土에 普雨一切華香瓔珞衣服幢蓋하사
영제악취 중고개멸 번뇌불기 우비실이 우어일체 제불국토 보우일체 화향영락 의복당개
악도의 모든 고통을 소멸시키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또한 일체 제불의 국토에 널리 모든 꽃과 향, 영락, 의복, 당기, 번기를 비처럼 내려서 堊 백토 악, 흰흙 악,
如是所有諸莊嚴具로 供養於佛하며 復隨衆生心之所樂하사 普於一切諸宮殿中에 而現其身하야
여시소유 제장엄구 공양어불 부수중생 심지소락 보어일체 제궁전중 이현기신
이와 같이 있는 바 모든 장엄구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중생들이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
일체 모든 궁전 가운데 두루 몸을 나타내어
일체가 모두 온갖 보배로 장엄되었다는 것은 망령됨이 없어지고 경계가 소멸하매 지혜를 따라 청정한 복이 상응하여 곧 모든 공덕이 문득 나타남을 밝힌 것이다.
몸으로 광명을 놓아서 일체의 일월성전(日月星電)을 비치면서 드리우자 천룡팔부와 제석·범천·호세·4왕의 모든 광명이 다 취묵(聚墨)과 같으니, 그 빛이 일체 지옥과 축생을 널리 비춘 것은 가령 삼계의 광명은 다 유루업(有漏業)이라서 생멸심의 공덕을 따라 생기는 것이니 다 생멸과 아소(我所)의 유루업의 과(果)를 여의지 못해서 모두가 자타와 능소(能所)의 업을 얻음이 존재하지만, 가령 참된 이지(理智)의 무루(無漏)·무아(無我)·무작(無作)으로 법성의 청정함을 갖춰서 성품에 맡기는 대자비의 지혜 광명은 세간의 미칠 바가 아니니, 격장(隔障)이나 변제(邊際)나 분제(分劑)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시방에 확연히 사무치고 6도에 두루 하기 때문이다. 이하 지혜와 자비의 행은 경문에 갖추어 밝힌 것과 같다.
令其見者로 皆悉歡喜한 然後에 來詣觀自在所하신대
영기견자 개실환희 연후 내예관자재소
그것을 보는 이들을 다 기쁘게 한 후에 관자재보살의 처소로 오시었다.
時에 觀自在菩薩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汝見正趣菩薩이 來此會不아 白言호대 已見이니이다
시 관자재보살 고선재언 선남자 여견정위보살 내차회부 백언 이견
그러자 관자재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정취보살이 여기에 오는 것을 보느냐?"
선재 동자가 말하기를 "보았나이다." 하였습니다.
告言하사대 善男子야 汝可往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라
고언 선남자 여가왕문 보살 운하학 보살행 수보살도
관자재 보살이 말씀 하셨으니 "선남자여,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습니까?' 하고 여쭈어라."
[문] 여기선 어떤 뜻으로 ‘물러나 간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답] 이 관세음보살의 회상 중에서 정취보살을 본 것은 자비와 지혜의 두 지위가 이 지위에서 일제히 원만함을 나타낸 것이다. 자비가 종결되자 곧 무명의 지혜가 스스로 이루어짐을 나타낸 것이니, 자비와 지혜의 둘이 없는 체(體)를 밝히기 때문에 물러나 가지 않는 것이다.
사자빈신 비구니를 따르는 것은 자비를 닦아서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이 제8회향 이후부터 제10회향 지신(地神)에 이르는 것은 곧 지혜로부터 자비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곧 천신(天神)이 바로 지혜이고 지신이 곧 자비라서 지혜와 자비의 합체(合體)가 곧 보현행의 자재로움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지혜와 자비가 진(眞)에 응하매 체(體)가 신성(神性)에 통함을 천지의 신(神)이라 이름 붙인 것이지 세간에서 말하는 귀신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二十九, 正趣菩薩 정취 보살
第八眞如相廻向善知識 제 8 진여상 회향 선지식
제8회향 이전에선 근본지로 차별지를 행해서 대자비와 세간에 있는 일체 공교(功巧)와 5명(明) 기술의 법을 갖추어 중생을 요익케 하는 것이지만, 이 지위는 차별지가 종결하자 용(用)을 잡아서 근본을 따르기 때문에 모두 공용이 없어서 법에 맡겨 스스로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이는 바로 진여상(眞如相)의 회향이니,
원바라밀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반(伴)을 삼는다.
지혜문을 잡는다면 모든 지위를 통틀어 다스리지만, 지위문을 잡는다면 공용이 있는 행을 다스려서 세간의 공용 없는 지혜의 운(運)에 맡긴 대자비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 지위는 모든 법을 배워서 이미 종결되게 되자 마침내 비지(悲智)의 한 성품으로 하여금 둘이 없이 두루 하도록 하기 때문에 관음회 속에 있으면서 한 곳〔一處〕에서 봄을 밝힌 것이다.
(1) 依敎趣求와 諮問 가르침을 따라 정취 보살을 뵙고 법을 묻다
爾時에 善財童子가 敬承其敎하고 遽卽往詣彼菩薩所하야 頂禮其足하며 合掌而立하야 白言호대 遽 갑자기 거,
이시 선재동자 경승기교 거즉왕예 피보살소 정예기족 합장이립 백언
이에 선재동자는 가르침을 받들어 그 보살의 거처로 나아가 그의 발에 정례하고 합장하고 서서 말했다.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호니 而未知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성자 아이선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이미지보살 운하학 보살행 운하수 보살도
"성자시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 아직 알지 못하나이다.
我聞聖者는 善能敎誨라하니 願爲我說하소서
아문성자 선능교회 원위아설
제가 듣건대 성자께서 잘 가르쳐주시리라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소서."
(2)得正趣菩薩 普門速疾行解脫 정취 보살이 얻은 보문 속질행 해탈을 밝힘
正趣菩薩이 言하사대 善男子야 我得菩薩解脫호니 名普門速疾行이니라
정취보살 언 선남자 아득보살해탈 명보문속질행
정취보살이 말하셨으니,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보문속질행'이니라."
善財가 言호대 聖者여 於何佛所에 得此法門이며 所從來刹은 去此幾何며 發來가 久如니잇고
선재 언 성자 어하불소 득차법문 소종내찰 거차기하 발래 구여
선재가 말하기를, "성자시여, 어느 부처님에게서 그 법문을 얻으셨고, 떠나오신 세계는 여기서 얼마나 멀며,
떠나오신 지는 얼마나 오래되셨나이까?"
告言하사대 善男子야 此事難知니 一切世間天人阿修羅沙門婆羅門等의 所不能了요
고언 선남자 차사난지 일체세간 천인 아수라 사문 바라문 등 소불능료
정취 보살이 답하여 말하셨으니,
"선남자여, 이 일은 알기 어려워서 일체세간의 천자(천신)들이나 인간, 아수라, 사문, 바라문들은 알지 못하고,
唯勇猛精進하야 無退無怯한 諸菩薩衆이 已爲一切善友所攝과 諸佛所念하야 善根具足하며 志樂淸淨하며 得菩薩根하며
유용맹정진 무퇴무겁 제보살중 이위일체 선우소섭 제불소념 선근구족 지락청정 득보살근
오직 용맹하게 정진하여 물러서지 않고 겁도 없는 모든 보살 대중들로서, 이미 일체 모든 선지식이 거두어 주고
부처님들께서 호념하시며, 선근이 구족하고, 지락(뜻)이 청정하여 보살의 근기를 얻고
有智慧眼하야사 能聞能持하며 能解能說이니라
유지혜안 능문능지 능해능설
지혜의 눈이 있는 이라야 능히 듣고, 능히 지니고, 능히 이해하고, 능히 설명할 수 있느니라."
善財가 言호대 聖者여 我承佛神力善知識力하야 能信能受호리니 願爲我說하소서
선재 언 성자 아승불신력 선지식력 능신능수 원위아설
선재 동자가 말하였으니, "성자시여, 저는 부처님의 신력과 선지식의 힘을 받들어 능히 믿고 능히 간직하겠사오니,
원컨대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소서."
(3) 於普勝生如來 聽法門說法 정취 보살은 보승생 여래에게서 법문을 얻었다
正趣菩薩이 言하사대 善男子야 我從東方妙藏世界普勝生佛所하야 而來此土호니 於彼佛所에 得此法門호라
정취보살 언 선남자 아종동방 묘장세계 보승생불소 이래차토 어피불소 득차법문
정취보살이 말하셨으니, "선남자여, 나는 동방 묘장 세계의 보승생 부처님 처소에서 이 땅에 왔고,
그 부처님 처소에서 이 법문을 얻었으며,
“선남자야, 내가 동방 묘장세계의 보승생(寶勝生)부처 처소로부터 이 땅에 왔으니, 그 부처 처소에서 이 법문을 얻었다”고 한 것은 실제를 잡아서 논한다면, 지혜는 방소(方所)와 멀고 가까움의 체(體)가 없지만, 법을 나타내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동방 묘장 세계의 보승생 부처 처소에서 이 법문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니, 동방은 온갖 선(善)이 발생하는 지위임을 밝힌 것이며,
묘장 세계란 자기의 묘리법신(妙理法身)의 근본지장(根本智藏)이니 성품이 두루 원만하여 시방에 두루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세계가 되는 것이며,
보승생부처 처소에서 이 법문을 얻었다는 것은 근본지로부터 차별지를 낳아서 중생에게 향응함을 밝힌 것이니, 그 뜻인즉 근본지를 옮기지 않는 대용(大用)으로 공(空)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從彼發來가 已經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이니 一一念中에 擧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步하며
종피발래 이경불가설불가설 불찰미진수겁 일일념중 거불가설불가설 불찰미진수보
거기서 떠나온 이래 불가설 불가설한 불찰미진수의 겁이 지났거니와
낱낱의 순간마다 불가설 불가설한 불찰미진수의 걸음을 걸었고,
一一步에 過不可說不可說世界微塵數佛刹하며 一一佛刹에 我皆徧入하야 至其佛所하야 以妙供具로 而爲供養호니
일일보 과불가설불가설 세계미진수불찰 일일불찰 아개편입 지기불소 이묘공구 이위공양
낱낱의 걸음마다 불가설 불가설한 세계 미진수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왔으며, 낱낱의 부처님 세계마다 나는 다 들어가
그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미묘한 공양구로 공양하였나니,
此諸供具가 皆是無上心所成이며 無作法所印이며 諸如來所忍이며 諸菩薩所歎이니라
차제공구 개시무상심소성 무작법소인 제여래소인 제보살소탄
그 모든 공양구들은 모두 더없이 높은 마음으로 이룬 것이요, 지음이 없는 법으로 인가한 것이며,
모든 여래께서 승인하신 것이며, 모든 보살이 찬탄하는 것이었느니라.
“발한 이래로 이미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의 겁을 지났다”고 한 것은 근본지가 티끌을 초월하고 겁을 벗어나서 수량으로 거두는 바에 속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하나의 염(念) 속에서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의 걸음을 든 것은 모든 생각마다 초월해서 이 같은 정량(情量)의 도량을 벗어남을 밝힌 것이며,
하나하나의 걸음에서 불가설불가설 세계의 미진수 불찰을 거치고 하나하나의 불찰에 내가 다 두루 들어가서 그 부처 처소에 이르러 묘한 공구(供具)로써 공양을 하니, 이 모든 공양구는 뜻인 즉 ‘근본지가 성품이 스스로 두루 하기 때문에 차별지의 업용(業用)도 또한 근본지처럼 두루 해서 지은 바의 공구로 모든 부처에게 공양할 때 근본지에 의거해 일으킴으로써 근본의 작위 없는 지인(智印)으로 환(幻)과 같은 업용을 일으켜 널리 모든 공양의 도구를 인(印)쳐서 공용 없이 스스로 성취하여 용(用)으로써 근본에 돌아감’을 밝힌 것이다.
善男子야 我又普見彼世界中一切衆生하야 悉知其心하고 悉知其根하야 隨其欲解하야 現身說法하며 或放光明하고
선남자 아우보견 피세계중 일체중생 실지기심 실지기근 수기욕해 현신설법 혹방광명
선남자여, 나는 또 저 세계의 모든 중생을 놀리 보고, 그 마음을 다 알고 그 근기를 다 알아서
그들의 욕망과 이해를 따라,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되, 혹 광명을 놓거나
或施財寶하야 種種方便으로 敎化調伏하야 無有休息하니 如從東方하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호라
혹시재보 종종방편 교화조복 무유휴식 여종동방 남서북방 사유상하 역부여시
혹 재물을 베풀어 보시하기도 하는, 갖가지 방편으로 교화하고 조복시키기를 쉬는 일이 없이 하였으며,
동방에서와 같이 남서북방과 네 간방, 상하에서도 그와 같이 하였느니라.
동방이란 것은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남방이라 말한 것은 법을 나타내는데 허무(虛無)가 되고 이중허(離中虛)가 되고 명(明)이 되고 정(正)이 되고 일(日)이 된다. 이(離)란 것은 여(麗)이니 명(明)이 땅에 여(麗)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방은 감(坎)이 되고 흑(黑)이 되고 자(子)를 음극(陰極)으로 삼고 계(癸)를 음종(陰終)으로 삼으니, 흑을 등지고 명(明)을 좇고 삿됨을 등지고 정(正)을 좇는 것이 바로 처음 계몽의 지위이기 때문에 남방으로 가는 것이다.
이제 제8진여상(眞如相) 회향에 이르러서는 곧 동방이 지혜가 되고 진(震)이 되고 뇌(雷)가 되고 음성(音聲)이 되고 청룡이 되고 춘생(春生)이 되고 복덕(福德)이 되고 길경(吉慶)이 되니, 일(日)이 인(寅)에서 생기고 묘(卯)에서 나오며 시비(是非)를 진사(辰巳)에서 정(定)한다. 오(午)에 도달한 이후는 모두 양위(陽位)에 속하고 있으니, 오(午)는 양극(陽極)이 되고 미(未)는 양종(陽終)이 되고, 미(未)로부터 축(丑)에 이르는 것은 음위(陰位)이다. 그리하여 이 제8지증명진여상(智增明眞如相) 회향에서 곧 동방을 취하는 것은 지혜가 만사(萬邪)를 밝게 비추기 때문이다. 생사에 들어가 만유(萬有)를 진동해서 명(明)이 생기도록 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교화해서 진여를 요달하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범부와 도(道)를 비춰서 군자의 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망령된 사도(邪道)를 타파해서 바른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악을 비춰서 일체의 선을 낳기 때문이며, 모든 선근을 오래 길러서 순백청정하고 무구한 길상(吉祥)의 복덕을 성취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방은 지혜를 나타내고 서방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니, 이 두 지위로 자비와 지혜가 가지런함을 밝힌 것이다.
정취(正趣)보살이 동방으로부터 와서 백화산(白華山) 서쪽 한 곳에서 보는 것은 동쪽은 지혜를 나타내고 서쪽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니, 이 관음과 정취가 자비와 지혜 두 지위의 1분(分)의 시종(始終)을 회통함을 밝힌 것이며, 이로부터 이후는 지혜로부터 자비를 행하는 것이다
즉 다음에 나오는 천지의 신이 이에 해당되니, 자비를 좇아 지혜를 행하매 곧 행이 협소하고 열등해서 종결되지 못하지만, 지혜로써 자비를 행하매 곧 행이 광대해 무한히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가령 10지위의 원만함에선 지혜와 자비의 공이 성취되고 11지 안에선 또한 자비로써 체(體)를 삼고 지혜로써 용(用)을 삼으니 곧 마야가 자비이고 부처를 낳는 것이 지혜라서 이 같은 하나하나 지위 속의 승진이 다 총별동이(摠別同異)의 의취(意趣)가 있다. 가령 동·서·남·북으로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나아가 구하여 미혹을 계발해 발명함이 있기 때문에 곧 남방으로 가는 것으로 나타냈지만, 만약 지혜와 자비로 세속을 이롭게 함을 밝힌다면 곧 동·서로 나타낸다. 즉 관음이 백화산 서쪽에 있다는 것은 백(白)은 금상(金像)으로서 서방의 백(白)은 금위(金位)를 나타내고 장위(將位)를 주재하는 것이며, 동방이란 것은 목위(木位)이니 청상(靑像)을 주재하고 상위(相位)를 주재하는 것이다. 상(相)은 생(生)을 주재하고 장(將)은 살(殺)을 주재하니, 여래가 세간의 법칙을 기준으로 해서 법문을 안립하여 세간으로 하여금 알기 쉽게 하기 때문에 이 살해(殺害)의 곳으로 대자비문을 두는 것으로써 고통을 구원함을 삼고, 동방의 춘생(春生)의 지위로 대지혜의 문을 둠으로써 지혜가 온갖 선(善)을 낳음을 나타냄으로써 그 일을 요달하기 쉽게 한 것이다.
가령 '노자'에서 “상장군(上將軍)은 오른쪽에 거처하고 편장군(偏將軍)은 왼쪽에 거처한다”고 하니, 상자(上者)는 밝으면서도 자비를 갖춤을 밝힌 것이니 함부로 죽일까 두려워한 것이지만 실로 대상(大像)은 혼연하거늘 어찌 방형(方形)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법을 근거로 하여 명칭을 세워서 그 법칙을 시설한 것이지만, 그러나 지혜와 자비의 도는 1법으로 시방에 원만하고 1행으로 일체 만행에 두루 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세상의 궤칙을 기준으로 하면 법을 시설함이 없지 않으니, 세간과 같이 진설(陳設)한 것은 방향에 따라 응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경문에서 관세음보살이 “동방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하여 정취가 된다”고 한 것은 제8지(智)의 지위가 세간의 대야(大夜)를 비춤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10주·10행·10지·11지의 제8의 공용 없는 지혜의 대용(大用)과 같기 때문에 지위가 같긴 하지만 승진의 생숙(生熟)과 역순(逆順)에 다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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