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제8 진여상(眞如相) 회향은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체(體)로 삼고 있다.
이 지위는 제8지(第八地)에서 지혜가 두드러지면서 원(願)을 통하여 지업(智業)을 야기하여 대자비를 성취하는 것과 동등하기 때문에 원(願)으로 지혜를 막음을 밝힌 것이다.
지체(智體)가 청정하기 때문에 이로움을 주는 교화의 이화(利化)가 넓지 못하나니,
법을 나타내는 중에서 선재동자가 동방의 정취(正趣)보살을 보는 것이 바로 그 행(行)이다.
허공으로부터 와서 사바세계에 이른 것은 법공(法空)의 지혜가 두루 감응하여 나타나면서도 가고 옴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관세음이 동방의 정취를 가리키는 것을 볼 때에도 관세음과 더불어 같이 보는 것은 원(願)으로 자비와 지혜를 회통함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자비와 지혜를 원만하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동방은 지혜를 나타내고 서방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니,
태양이 떠서 밝게 비추는 것과 봄의 햇살이 발생하는 것과 청룡의 길상(吉祥)은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해가 져서 혼미하여지는 것과 가을의 서리로 영락하는 것과 백호(白虎)의 살해(殺害)는 지혜로 자비에 들어가서 고통의 흐름인 고류(苦流)에 처해서 중생을 제도하여 이익이 되게 함을 밝힌 것이다.
제8의 원바라밀(願波羅蜜)은 지체(智體)의 성정(性淨, 성품의 청정함)을 막고서 원(願)으로서 자비를 회통하여 보현행을 성취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승진할 때 그 행위(行位)에 따라서 회통하여 보면 알수 있으리라.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으니,
첫째,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은 처음 “불자야” 이하 “게송 이래(頌已來)”에 이르기까지 10 단락으로 장과하겠다.
1. “불자야” 이하 “널리 일체 불국토에 능히 왕림한다(普能往詣一切佛土)”에 이르기까지 35행의 경문은,
보살이 이 진여상 회향의 지위에 들어가매, 스스로 얻은 선근으로 다시 회향을 발원하는 소연(所緣)을 가하여서 지위의 승진을 성취함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안온한 거주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顯示安隱住處)”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이 악도(惡道)에서 받는 고통을 관하기를 자기의 몸을 보는 것과 같이 하면서 조속히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3. “불자야” 이하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니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心不動搖無障㝵故)”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10 가지의 회향을 가짐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10 가지의 커다란 이익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널리 세간에 정각의 성취를 나타낸 것이다(普於世間現成正覺)”에 이르기 까지 4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뛰어나고 묘한 승묘국토(勝妙國土)와 일체의 묘한 경계의 묘경(妙境)을 보고서 무량한 대원(大願)으로 일체 중생들 모두가 그러한 가운데에서 살게 되고, 아울러 일체의 이익을 얻기를 바라는 것을 밝힌 분이다.
5. “불자야” 이하 “광대한 선근(廣大善根)”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회향의 선근으로 스스로의 선근을 증장하게 되는 것을 밝힌 분이다.
6. “불자야” 이하 “일체의 청정한 지혜를 원만케 한다(圓滿一切淸淨智慧)”에 이르기까지 189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회향 모두가 자체성이 없는 무성(無性)이요, 집착이 없는 무착(無著)의 진여(眞如)로 회향을 삼음을 밝힌 분이다.
이상의 189행 반의 경문은 진여(眞如)로 회향의 체(體)를 삼음을 기준으로 하여서,
진여가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하기에 회향도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에 두루 함을 밝힌 것이다.
왜냐 하면 회향을 방편으로 삼아서 작위 없는 무작진여(無作眞如) 가운데의 대지혜ㆍ대자비ㆍ대다라니문ㆍ대신통도력을 일으켜서 진여의 작위 없는 대자재(大自在)에 부합하여, 작용이 항상 공적토록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대원과 대비와 대지혜로써 무한하게 회향치 않고 다만 작위가 없는 무작진여(無作眞如)에만 의거하여서 번뇌만 청정하게 할 수 있다면,
적멸을 즐기는 2승(二乘)과 6통(六通) 보살의 3승(三乘)이 다만 일방(一方)의 정국(淨國, 청정 국토)에 태어나서 법계의 진문(眞門, 참다운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의 권승(權乘, 방편의 가르침)에 거처하면서 여전히 초암(草庵)의 지위에 그치고 마는 것과 같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알라. 시방에 가득 찬 차별종지(差別種智) 모두가 대원력(大願力)을 말미암아서 발생하는 것이고
법계에 원만한 행문(行門)이 회향을 빌려서 흥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망(教網, 가르침의 그물)을 세워서 인연이 있는 자를 제접하는 것이니,
이는 궤도를 분명히 알고서 그 자취를 밟아 나아감으로써, 배우는 자로 하여금 공(功)을 덜어서 잘못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7. “불자야” 이하 “제8 진여상 회향(第八眞如相迴向)”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진여상 회향을 통하여 스스로 의(義)와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8. “보살마하살” 이하 “선근으로 진여상을 수순하는 회향(善根隨順眞如相迴向)”에 이르기까지 13행 반의 경문은,
위와 같은 회향을 하여 마치니 여래와 똑같은 성도(成道)를 얻게 되는 것을 밝힌 분이다.
9.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게송을 설하여 법을 찬탄함을 밝힌 분이다.
10. 이하 58행의 게송은 게송으로 이전의 법을 거듭 읊음을 밝힌 분이다.
둘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면,
경문의 뜻은 경문에서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한 단락의 경문에서 “일신(一身)이 일체세간에 충만하고(一身充遍一切世間),
부처의 한량없는 음성을 얻고(得佛無量音聲),
하나의 털구멍 속에 널리 일체의 국토를 능히 용납하고(於一毛孔中,普能容納一切國土),
부처의 한량없는 신통을 얻어서 모든 중생을 하나의 털구멍에 둔다(得佛無量神通,置諸衆生於一毛孔)”고 한 것은
이 10주 초심에서 견도(見道)한 뒤에 실다운 지견(知見)에 들어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범부 중 믿음이 있는 선비를 위하여 약간이나마 해석함으로써 마음의 눈이 열리게 할 것이니,
선정에 들어가서 관(觀)과 지혜를 융화하여서 회통하여야만 비로소 몸소 보는 것이 아니다.
논주(論主)가 게송으로 설한다면;
털구멍의 크고 작은 성품을 마침내 깨달으니,(了知毛孔大小性)
시방의 국토가 겉과 속이 없구나.(十方國土無表裏)
지혜의 경계가 시방의 찰(刹)을 포용하니(智境含容十方剎)
찰토의 체상(體相)이 본래 다 환(幻)이로다.(剎土體相本皆幻)
지혜와 몸의 체(體)가 청정해서 서로 걸림이 없으니(智身體淨相無㝵)
털구멍과 미진(微塵)도 역시 그러하도다.(毛孔微塵亦復然)
국토는 마음의 망령됨으로 인(因)해서 생겨나니(國土因心虛妄生)
망령됨이 없으면 지혜와 경계는 항상 서로를 용납하는도다.(無妄智境恒相納)
중생의 마음이 청정해서 겉과 속이 없으면(衆生心淨無表裏)
이로써 자신의 털도 마찬가지임을 요달해 알고(乃了自身毛亦然)
마음이 자타(自他)를 분별하는 정이 없으면(心無分別自他情)
일체의 티끌과 털도 불찰을 포함하도다.(一切塵毛含佛剎)
이 때문에 여래가 회향을 설하여(是故如來說迴向)
널리 원행(願行)을 일으켜 자타를 융화해서(廣興願行融自他)
타자(他者)가 자기와 똑같이 즐거움 얻기를 원하니(願他得樂與己同)
마음이 청정해지면서 불국(佛國)이 늘 서로 들어간다.(心淨佛國恒相入)
광대한 원(願)으로 대지혜를 일으켜서(以廣大願興大智)
동체(同體)의 지혜와 자비가 법계에 충만하니(同體智悲充法界)
공용이 없는 이지(理智)로 신운(身雲)을 일으켜(無功理智起身雲)
유(類)를 따라 형상을 나타내니 소리도 또한 마찬가지다.(隨類現形聲亦爾)
능히 자타의 체(體)가 같은 지혜로써(能以自他同體智)
중생의 몸 속에 불국을 나타내서(衆生身中現佛國)
중생의 지혜로 법륜을 굴리지만(以衆生智轉法輪)
중생의 마음이 미혹되어서 깨닫지를 못하는구나.(衆生心迷不知覺)
중생의 지혜가 바로 부처의 지혜이며(以衆生智是佛智)
부처의 지혜가 바로 중생의 지혜이니(佛智本是衆生智)
미혹한 자는 부처의 지혜가 중생을 짓고(迷者佛智作衆生)
깨달은 자는 중생이 바로 부처의 지혜이네.(悟者衆生是佛智)
이같이 체(體)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요달하면(如是了達體同別)
중생과 더불어 의지(依止)를 지음을 감당하리라.(堪與衆生作依止)
이상으로 제8 진여상 회향을 요약한 해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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