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五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三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3

 

ㅡ제오(第五)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회향 ㅡ3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佛刹(일체불찰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菩薩(일체보살)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如來(일체여래)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佛菩提(일체불보리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廣大願(일체광대원)
方便廻向(방편회향) 一切出要道(일체출요도
方便廻向(방편회향) 淨一切衆生界(정일체중생계
方便廻向(방편회향) 於一切世界(어일체세계) 常見諸佛(상견제불) 出興於世(출흥어세)  
方便廻向(방편회향) 常見如來(상견여래)壽命無量(수명무량)  
方便廻向(방편회향) 常見諸佛(상견제불) 遍周法界(주변법계) 轉無障碍(전무장애) 不退法輪(불퇴법륜)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선근으로써 일체의 모든 불찰(佛刹)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보살들에게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여래들께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불보리(佛菩提)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넓고 큰 광대원(廣大願)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뛰어나는 요긴한 길 (번뇌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길의) 출요도(出要道)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중생계를 청정히 하는 정일체중생계(淨一切衆生界)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세계에서 항상 부처님이 세상에 출흥하심을 보는 것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항상 수명이 무량하신 여래를 뵙는 것에 방편으로 회향하며, 
항상 부처님들께서 법계에 두루하시어 장애없는 불퇴전의 법륜을 굴리시는 모습을 항상 뵙는 것에 방편으로 회향합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普入一切佛國土故(보입일체불국토고) 一切佛刹(일체불찰) 皆悉淸淨(개실청정) 

普至一切衆生界故(보지일체중생계고) 一切菩薩(일체보살) 皆悉淸淨(개실청정) 

普願一切諸佛國土(보원일체제불국토) 佛出興故(불출흥고) 一切法界(일체법계) 一切佛土(일체불토)

諸如來身(제여래신) 超然出現(초연출현)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든 선근으로써 이렇게 회향할 때,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佛國土)에 널리 두루 들어가는 까닭에 일체의 불찰(佛刹)이 모두 청정하여 지는 것이요,

일체의 모든 중생계에 두루 이르는 까닭에 일체의 모든 보살이 청정하여 지는 것이요,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에 부처님께서 출흥(出興)하시기를 원하는 까닭에

일체 법계의 일체 불토(佛土)에 여래신(如來身)이 초연(超然)하게 출현하시는 것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如是(이여시) 等無比廻向(등무비회향)

趣薩婆若(취살바야) 其心廣大(기심광대) 猶如虛空(유여허공) 無有限量(무유한량)

入不思議(입부사의) 知一切業(지일체업) 及以果報(급이과보) 皆悉寂滅(개실적멸)

心常平等(심상평등) 無有邊際(무유변제) 普能遍入(보능편입) 一切法界(일체법계)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비길 데 없는 등무비(等無比) 회향으로

살바야(薩婆若, 일체지)를 취하여 나아간다면, 그 마음이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하고 무량하여서 불가사의함에 들어가며,

일체업(一切業)과 과보(果報) 모두가 적멸하다는 것을 알아서,

마음이 항상 평등하고 끝이 없는 무유변제(無有邊際)이라서,

능히 일체의 법계에 두루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ㅡ모든 현상은 업과 업의 과보로 된 것이지만, 우리의 본질, 성품, 진여자성의 자리는 개실적멸(皆悉寂滅)입니다.

차별된 현상을 쫓아간다면 끝이 없고 답이 없지만, 우리의 한마음 자리, 진여자성자리에 회귀(廻歸)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인 것입니다.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로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라 모든 현상은 본래부터 적멸한, 그것이 근본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 펼쳐지고 또 나누다 보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현상만 자꾸 쫓아가는 겁니다.

돌을 삽살개에게 던지면, 삽살개는 그것이 먹을 것인가 해서 돌을 쫓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려고 쫓아가는 겁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와 같이 현상을 쫓아가고, 대심범부(大心凡夫), 화엄행자는 그 본질에 관심을 갖고,

그 일어난 장소, 진여자성자리ㆍ불성자리에 마음을 돌리는 것이지요. 

능엄경의 이치로는 反聞聞自性(반문문자성) 듣는 것을 돌이켜서 듣는 그 자체를 듣는 것이지요.

듣는 말소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듣는가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든지, 자기 비난하는 소리를 듣든지, 음악, 차, 비행기 소리를 듣든지 간에 문자성(聞自性), 그 듣는 성품, 듣는 그 본질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알려 하고, 그것을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법(法)과 성(性)에서, 법(法)은 현상이고 성(性)은 본질이다. 

현상, 즉 물결을 쫓아가면 끝이 없으니까, 물을 이해하려고 해야되는 것입니다. 물을 이해해버리면 물결이야 아무 상관없습니다. 금을 이해해 버리면, 금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그것은 그냥 현상일 뿐인 것으로 그 금이 중요한 것이지요.

현상은 항상 변화무상하기 마련인 것입니다.ㅡ무비스님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不分別我(불분별아) 及以我所(급이아소) 不分別佛(불분별불) 及以佛法(급이불법) 

不分別刹(불분별찰) 及以嚴淨(급이엄정) 

不分別衆生(불분별중생) 及以調伏(급이조복) 

不分別業(불분별업) 及業果報(급업과보) 

不着於思(불착어사) 及思所起(급사소기) 不壞因(불괴인) 不壞果(불괴과) 

不取事(불취사) 不取法(불취법) 不謂生死有分別(불위생사유분별) 

不謂(불위) 涅槃恒寂靜(열반항적정) 不謂如來(불위여래) 證佛境界(증불경계) 

無有少法(무유소법) 與法同止(여법동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하게 회향할 때,

아급아소(我及我所, '나'와 '나의 것')를 분별하지 않으며, 

부처님과 부처님 불법의 불급불법(佛及佛法)을 분별하지 않으며,

세계와 세계의 장엄의 찰급엄정(刹及嚴淨)을 분별하지 않으며,

중생과 중생 조복함의 중생급조복(衆生及調伏)을 분별하지 않으며,

업과 업의 과보의 업급업과보(業及業果報)를 분별하지 않으며,

생각과 생각으로 일으키는 것의 사급사소기(思及思所起)를 분별하지 않으며,

인을 깨뜨리지 않는 불괴인(不壞因)이요,

과를 깨뜨리지 않는 불괴과(不壞果)요,

일을 취하지 않는 불취사(不取事)요,

법을 취하지 않는 불취법(不取法)이요,

생사가 분별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열반이 항상 고요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여래가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를 증득하였다고 여기지도 않나니,

어떠한 작은 소법(少法, 망심)도 법과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以諸善根(이제선근) 普施衆生(보시중생) 決定成熟(결정성숙) 平等敎化(평등교화) 

無相無緣(무상무연) 無稱量無虛妄(무칭량무허망) 遠離(원리) 一切分別取着(일체분별취착)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모든 선근을 중생에게 널리 보시하여서,

결정코 성숙하게 하고, 평등하게 교화하며, 무상(無相)이요, 인연도 없는 무연(無緣)이요,

헤아릴 수 없는 무칭량(無稱量)이요, 허망하지 않은 무허망(無虛妄)이라,

일체의 모든 분별과 집착의 분별취착(分別取着)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廻向已(여시회향이)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所謂念(소위념) 三世一切諸佛故(삼세일체제불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念一切菩薩故(염일체보살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淨諸佛刹故(정제불찰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淨一切衆生界故(정일체중생계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深入法界故(심입법계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修無量心等虛空界故(수무량심등허공계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深解一切佛境界故(심해일체불경계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於菩薩業(어보살업) 勤修習故(근수습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了達三世故(요달삼세고)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회향하고서는 무진(無盡)한 선근을 얻게 되나니,

이른바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생각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일체 보살을 생각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부처님 세계의 불찰(佛刹)을 청정하게 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일체의 모든 중생계를 청정하게 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법계에 깊이 들어가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무량심(無量心)을 닦아서 허공계와 평등한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를 깊이 이해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보살업(菩薩業)을 부지런히 수습하는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으며,

삼세를 분명하게 요달(了達)한 연고로 무진한 선근을 얻는 것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一切善根(이일체선근)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了一切衆生界(료일체중생계) 無有衆生(무유중생)

解一切法(해일체법) 無有壽命(무유수명) 一切法(일체법) 無有作者(무유작자)

悟一切法(오일체법) 無補特伽羅(무보특가라)

了一切法(요일체법) 無有忿諍(무유분쟁) 

觀一切法(관일체법) 皆從緣起(개종연기) 無有住處(무유주처) 

知一切物(요일체물) 皆無所依(개무소의) 

了一切刹(요일체찰) 悉無所住(실무소주) 

觀一切菩薩行(관일체보살행) 亦無處所(역무처소) 

見一切境界(견일체경계) 悉無所有(실무소유)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일체의 모든 선근으로서 이렇게 회향할 때,

일체의 모든 중생계에 중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며,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공空이요 본래 부처라는 것을 분명히 알며) 

일체법(一切法)에는 수명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며,

일체법(一切法)을 짓는 이가 없는 무유작자(無有作者)라는 것을 이해하며, 

일체법에 보가라(補伽羅, 보특가라, 자아의식 또는 자아관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며,

(일체법이 무아無我라는 것을 깨달아 알며)

일체법에는 다툼의 분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며,(원효스님의 화쟁 사상)

일체법(일체의 모든 현상) 모두는 인연으로 연기(緣起)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머무는 곳이 없는 (고정되게 머무는 곳이 없는) 무유주처(無有住處)라는 것을 관찰하며,

일체의 모든 물(物) 모두가 의지하는 곳이 없는 무소의(無所依)라는 것을 알며,

일체찰(一切刹) 모두가 머물지 않는 무소주(無所住)라는 것을 분명히 알며,

일체의 모든 보살행도 처소가 없는 무처소(無處所)라는 것을 관찰하여서,

일체의 모든 경계 모두가 있지 않은 무소유(無所有)라는 것을 봅니다.

 

화쟁사상(和諍思想)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섭렵하여 그 뜻을 깨우쳤다. 이러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원효는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한 가지 이치에 귀납하고 종합 · 정리하여 내적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의 불교 사상 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그의 조화적인 불교 사상을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한다.

원효의 저서인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은 이러한 화쟁 사상을 잘 보여주는 그의 핵심적인 저술이며, 문화쟁론(十門和爭論)에서 여러 다른 불교 교의를 10문(十門)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會通)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원효의 이와 같은 통불교적 귀일사상은 한국 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화쟁은 화(和)와 쟁(諍)을 정(正)과 반(反)에 두고, 그 사이에서 타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합(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오히려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보아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도 화로 동화시켜 나간다. 천차만별의 현상적인 쟁의 상태도 그 근원에서 보면 하나로 화하는 상태에 있을 뿐임을 체득한 원효는 이 원리에 따라 진망(眞妄)·염정(染淨)·이사(理事)·공유(空有)·미오(迷悟)·인과(因果) 등을 불이의 화쟁론으로 전개시킨 것이다.

화쟁의 대상은 원효의 시대에 나타난 모든 불교 이론들이며, 논리적 근거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 또한 화쟁은 언어적으로 표현된 이론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원효에 따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와 진리가 고정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다만 진리의 전달 도구로 사용할 뿐이므로, 이러한 언어의 도구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진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왜곡시키기도 한다는 언어의 이중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이론에 집착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원효는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화쟁을 전개했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긍정과 부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는 불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다. 어느 한 가지의 경전에 집착하지 않고 두루 불경의 내용을 이해하여 폭넓은 시각을 가짐으로써 올바른 견해를 낼 수 있는 것이다.ㅡ여러 분의 글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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