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1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25)십회향품(十廻向品) ㅡ 5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隨順堅固一切善根) 회향이란, 반야바라밀로 체(體)를 삼으며,

선재동자의 지식(知識)의 명칭인 비슬지라(鞞瑟胝羅)가 선도성(善度城)에 머물면서 항상 전단좌불탑(栴檀座佛塔)에 공양하는 것으로써 법을 나타내는 것이고,

비슬지라(鞞瑟胝羅)를 한역하면 포섭(包攝)이니, 몸이 불찰을 포섭하는 것으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선도국(善度國)에 머문다는 것은 교화의 행으로서 명칭을 삼은 것이니, 이러한 지혜에 머물러서 중생을 잘 제도하기 때문이다.전단좌불탑(栴檀座佛塔)에 공양한다는 것은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법신(解脫法身)으로 법좌의 체(體)를 삼음을 밝힌 것이요,

부처의 불열반제(不涅槃際)를 얻는다는 것은, 계ㆍ정ㆍ혜의 체(體)가 소멸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자세히는 경전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법좌에 형상(形像)을 안치하지 않은 것은 무상(無相)의 이(理)가 회통하는 것이 부처의 뜻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니,

즉 법좌를 보면 법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城)의 명칭이 선도(善度)인 것이며,

몸이 허공과 더불어 합치하는 것을 이름하여 불국(佛國)이라 하며 또한 포섭(包攝)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無相)의 지혜가 부처의 멸도(滅度)하지 않는 법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니, 이는 지혜가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경문의 뜻을 장과하는 장과경의(長科經意)란, 이 한 단락의 장과에서 대략 64 단락을 짓겠으니,

아래와 같은 이 단락의 회향의 긴 행 속에 있는 61 단락의 경문은 모두 보시를 행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각 단락에는 모두 3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 보시를 행하는 마음의 시심성취(施心成就)를 밝힌 것이요,

둘째 보시를 마치고서 보리에 회향하는 시이회향보리(施已迴向菩提)를 밝힌 것이요,

셋째 저마다 열 가지 원(願)을 발해서 모두 자타성불(自他成佛)을 원하는 것을 밝힌 것이요, 

그 이하의 세 단락은 보시한 바의 공(功)과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살펴서 게송을 설함으로서 총체적인 매듭을지은 것이다.

 

1. 육신과 수족(手足)과 국성(國城)과 처자(妻子) 모두를 버리면서 행하는 사행(捨行)이요, 
2. 음식을 보시하는 시식(施食)이요, 
3. 마실 것을 보시하는 시음(施飮)이요, 
4. 맛있는 음식을 보시하는 시미(施味)요, 
5. 탈 것을 보시하는 시거승(施車乘)이요, 
6. 옷을 보시하는 시의(施衣)요, 
7. 꽃을 보시하는 시화(施華)요, 
8. 만(鬉, 꽃다발)을 보시하는 시만(施鬘)이요, 
9. 몸에 바르는 향을 보시하는 시도향(施塗香)이요, 

10. 침상과 의자를 보시하는 시상좌(施牀座)요, 
11. 방을 보시하는 시방사(施房舍)요, 
12. 등(燈)의 밝음을 보시하는 시등명(施燈明)이요, 
13. 탕약(湯藥)을 보시하는 시탕약(施湯藥)이요, 
14. 그릇을 보시하는 시기(施器)요, 
15. 갖가지 보배 장엄으로 장식한 수레를 보시하는 시종종보엄식거(施種種寶嚴飾車)요, 
16. 상보(象寶)를 보시하는 시상보(施象寶)요, 
17. 사자좌(師子座)를 보시하는 시사자좌(施師子座)요, 

18. 보배들을 보시하는 시보등(施寶等)이요,

19. 보배 일산을 보시하는 시보개(施寶蓋)요,

20. 보배 깃발을 보시하는 시보번(施寶幡)이요,

21. 보배 깃대를 보시하는 시보당(施寶幢)이요,

22. 보재 창고를 보시하는 시보장(施寶藏)이요,

23. 갖가지로 아름답게 장엄한 도구를 보시하는 시종종묘장엄구(施種種妙莊嚴具)요,

24. 관과 머리에 장식하는 구슬을 보시하는 시관급계중주(施冠及髻中珠)요,

25. 재보와 처자를 보시하여 감옥에 갇힌 중생을 구제하는 시보재처자구중생뇌옥(施財寶妻子救衆生牢獄)이요,

26. 목숨을 대신버리는 사신대명(捨身代命)이요,

27. 연부의 정계를 보시하는 시연부정계(施連膚頂髻)요,

28. 눈을 보시하는 시안(施眼)이요,

29. 코를 보시하는 시비(施鼻)요,

30. 귀를 보시하는 시이(施耳)요,

31. 어금니를 보시하는 시아치施牙齒)요,

32. 혀를 보시하는 시설(施舌)이요,

33, 머리를 보시하는 시두(施頭)요,

34. 수족을 보시하는 시수족(施手足)이요,

35, 피를 보시하는 시혈(施血)이요,

36. 골수와 살을 보시하는 시수육(施髓肉)이요,

37. 심장을 보시하는 시심(施心)이요,

38, 간과 폐를 보시하는 시간폐(施肝肺)요,

39. 몸을 보시하는 시신(施身)이요,

40. 사지의 관절과 뼈를 보시하는 시지절골(施支節骨)이요,

41. 피부를 보시하는 시피(施皮)요,

42. 수족과 손가락 발가락을 보시하는 시수족지(施手足指)요,

43. 근육과 손톱 발톱을 보시하는 시연육과갑(施連肉爪甲)이요,

44. 법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위구법고투신화갱(爲求法故投身火坑)이요,

45. 법을 구하고자 하나의 글과 한 구절을 위하여 왕위와 국성(國城)과 처자 등 일체 소유를 버리는 것이요,

46. 보살이 스스로 도살(屠殺)하는 업을 버리는 보살위자사도살업(菩薩爲自捨屠殺業)이요,

47. 잔인하게 모든 사람과 축생을 해치는 것을 보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니, 이른바 남자의 형상을 제거하는 것이요, 
48. 보살이 부처의 출현을 보고서 널리 중생들에게 고하여 아만(我慢)과 희론(戱論)을 버리게 하는 것이요, 
49. 대지를 버리는 사대지(捨大地)요, 
50, 어리 아이를 종으로 삼지 않는 사동복(捨僮僕)이요, 
51. 몸을 버려서 일체 중생들에게 보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낮추어 오만을 여의는 것이요, 
52. 몸을 버려서 모든 부처님들을 봉양하는 시신급시제불(施身給侍諸佛)이요, 
53. 토지와 일체의 물건들을 보시하고 아울러 세간의 일을 버리는 것이요, 
54. 도성(都城)과 국경의 수세(輸稅)를 버리는 것이요, 
55. 기녀(妓女)를 버리는 것이요, 
56, 사랑하는 처자를 보시하는 시소애처자(施所愛妻子)요, 
57, 집을 보시하는 시사택(施舍宅)이요, 

58, 원림(園林)에 있는 누각이나 정자를 보시하는 것이요, 
59, 광대한 보시회를 베풀어서 보시하는 시광대시회(施廣大施會)요, 
60, 일체의 자생물(資生物)을 보시하는 것이요, 
61, 모든 중생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따라 일체 아승기의 사물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상으로 이 한 단락의 회향 가운데에 모두 61 가지의 보시가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시 가운데에 열 가지 대원(大願)이 있으니,

61 가지의 원(願)에 10 가지의 십종회향(十種迴向)이 있는 것은,

일체의 집착을 버려서 일체무소착(一切無所著)을 성취하여 모든 성품이 작위가 없는 무작(無作)으로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무진행(無盡行)을 행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불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 되니” 이하 “모든 법 속에서 자재함을 얻는다(於諸法中而得自在)”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하 회향의 공(功)을 모두 매듭지은 것이다.

 

“이 때 금강당보살” 이하 6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대중을 바라보고 게송을 설해서 법을 찬탄함을 밝힌 분(分)으로, 
상하의 긴 행과 82행의 게송은, 그 경문 가운데에 스스로 뜻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시 번거롭게 해석하지 않고,
대략의 회향 명목만을 해석하겠다.

 

어째서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라 하는 것인가?

경문에서 “불자야, 이렇게 회향할 때는 바로 부처를 따라 머무는 수순불주(隨順佛住)요,

법을 수순해서 머무는 수순법주(隨順法住)요,

지혜에 수순하여 머무는 수순지주(隨順智住)요,

보리에 수순하여 머무는 수순보리주(隨順菩提住)이다”고 하였으니,

총체적으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는 것이 찰해(刹海)에 두루 해서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을 무너뜨리지 않고,

통화(通化)를 성취하여 대자비를 키움으로써 부처의 소행과 같기 때문에 명칭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또 해석하기를, 이(理)로써 행을 따르는 이순행(理順行)으로써 행이 이(理)를 따르는 행순리(行順理)요,

지혜가 자비를 따르는 지순비(智順悲)로써 자비가 지혜를 따르는 비순지(悲順智)요,

방편의 원력으로 지해(智海)를 야기시키며, 자비문을 성취하여 조화롭고 자재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수순견고일체선근(隨順堅固善根) 회향이 되는 것으로, 논주(論主)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법신의 이지(理智)에는 자체성이 없으니(法身理智無體性)
평등하고 청결한 것으로 조작이 없는 것이라.(平等淸淨無造作)
방편으로 원력을 장엄하나니(方便以願力莊嚴)
신통변화의 행이 충만하도다.(神通變化行充滿)

법은 자체성이 없는 것이라 연(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法無自性從緣生)
연생(緣生)은 작위가 없으니 성품을 잃지 않는구나.(緣生不失無作性)
회향의 대원운(大願雲)을 일으켜서(設興迴向大願雲)
무변한 일체의 행에 두루 하나니(周遍無邊一切行)

           

연(緣)의 체성이 무생(無生)이라는 것을 여의지 않고서도(不離緣體性無生)
지혜가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이 법계에 충만하도다.(智如影響充法界)

지혜의 체(體)가 원(願)과 같고 보현과 같으니,(智體如願如普賢)
회향의 대원(大願) 모두가 실답지 않도다.(迴向大願皆無實)
비록 실답지 않을지라도 연(緣)을 폐기하지 않고(雖復無實不廢緣)
비록 연(緣)을 좇을지라도 성품에 작위가 없는 무작이로다.(雖復從緣性無作)

보살이 일으킨 모든 행의 구름은(菩薩所興諸行雲)
지혜가 가고 옴이 없어서 마치 그림자와 같이 나타나는 것이라(智無來去如影現)
가령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할지라도(假使教化諸群生)
마치 신통변화로 된 화인이 환술로 이루어진 무리를 제도하는 것과 같도다.(猶如化人度幻衆大)

 

세간에서, 대게 집이나 가옥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ㅡ 요컨대 공(功)을 이루는 것으로 논하자면,

스스로 베푼 자시공(自施功)은 나타나지만 각각의 공체(功體)는 자성이 없으으로, 필경에 공을 이루어서 일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공이 없는 무공(無功)으로 사람에게 이롭게 하나니,

설사 집이나 가옥을 거듭해서 꾸민 공이 있을지라도, 다시 양육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이,  회향의 대원(大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이지(理智)가 비록 번뇌를 청정하게 하는 공은 있지만, 회향의 대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감싸 기르고, 요익(饒益)되게 하는 대자비의 공이 없는 것이니, 

 회향이 초발심주(初發心住)로에서부터 구족하여 있는 것이었으나, 단지 승진의 우열을 잡아서 말하는 것이고,

또한 설문(說文)의 넓고 좁음을 잡아서 말하는 것이고,

또한 때(時)를 옮기지 않는 것으로 논하는 것이라서 총체적으로는 5위(位)에서 일시에 설하는 것이니, 

고금(古今)이 먼저와 나중이 없는 무전후(無前後)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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