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四 十迴向品第二十五之二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② ㅡ 10
ㅡ제사(第四) 지일체처(至一切處) 회향 ㅡ 3
願令一切世間(원령일체세간) 皆得淸淨(개득청정) 一切衆生(일체중생) 咸得出離(함득출리)
住十力地(주십력지) 於一切法中(어일체법중) 得無碍法明(득무애법명)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具足善根(구족선근) 悉得調伏(실득조복) 其心無量(기심무량) 等虛空界(등허공계)
往一切刹(왕일체찰) 而無所至(이무소지) 入一切土(입일체토) 施諸善法(시제선법)
常得見佛(상득견불) 植諸善根(식제선근) 成就大乘(성취대승) 不着諸法(불착제법)
具足衆善(구족중선) 立無量行(립무량행) 普入無邊(보입무변) 一切法界(일체법계)
成就(성취) 諸佛神通之力(제불신통지력) 得(득) 於如來一切智智(어여래일체지지)
원하오니, 일체의 모든 세간이 청정하여지고,
일체 중생들 모두가 출리(出離)를 얻어서 십력(十力)의 지위에 머물러서 일체법 가운데에서 걸림이 없는 법의 밝음인 무애법명(無碍法明)을 얻으며,
일체 중생들이 선근을 구족하여 모두가 조복하여서 그 마음이 무량한 허공계와 같아지며,
모든 세계에 나아가되 이르는 바가 없으며,
일체의 모든 토(土, 땅)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의 선법(善法)을 베풀며,
항상 부처님을 항상 뵙고 여러 가지의 선근을 심으며,
대승을 성취하여 제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좋은 중선(衆善)을 구족하여 무량한 행을 세우며,
끝없이 무변한 일체의 모든 법계에 두루 들어가서 부처님들의 신통력을 성취하며,
여래의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게 하여지이다‘ 하였습니다.
ㅡ경전을 본다든지, 좋은 사람을 만난다든지, 좋은 내용을 듣고 좋은 마음이 난다면 저절로 선근이 쌓여집니다. 좋은 마음이 안 나면 선근이 날 수가 없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譬如無我(비여무아) 普攝諸法(보섭제법) 我諸善根(아제선근) 亦復如是(역부여시)
普攝(보섭) 一切諸佛如來(일체제불여래) 咸悉供養(함실공양) 無有餘故(무유여고)
普攝(보섭) 一切無量諸法(일체무량제법) 悉能悟入(실능오입) 無障碍故(무장애고)
普攝(보섭) 一切菩薩衆(일체보살중) 究竟皆與同善根故(구경개여동선근고)
普攝(보섭) 一切諸菩薩行(일체제보살행) 以本願力(이본원력) 皆圓滿故(개원만고)
普攝(보섭) 一切菩薩法明(일체보살법광명) 了達諸法(요달제법) 皆無碍故(개무애고)
普攝(보섭) 諸佛大神通力(제불대신통력) 成就(성취) 無量諸善根故(무량제선근고)
普攝(보섭) 諸佛力無所畏(제불역무소외) 發無量心(발무량심) 滿一切故(만일체고)
普攝(보섭) 菩薩三昧辯才陀羅尼門(보살삼매변재다라니문) 善能(선능) 照了無二法故(조료무이법고)
비유하자면, 마치 무아(無我, 무아의 도리)가 널리 제법을 두루 보섭(普攝)하는 것과 같이,
(무아와 같이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이, 인연으로 결합해서 잠시 그러한 모양을 갖고 있을 뿐인 것과 같이)
나의 선근도 그 (무아)와 같아서, 일체의 제불여래(諸佛如來)를 포섭하리니,
빠짐없이 모두에게 공양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무량한 제법을 보섭(普攝)하리니,
능히 모든 것에 오입(悟入)하여 깨달아 들어감에 장애가 없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 보살 대중을 보섭(普攝)포섭하리니, 구경에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선근이 같이 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여러 보살행(菩薩行)을 보섭(普攝)하리니, 본원력(本願力)을 원만하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 보살들의 법의 밝음인 법명(法明, 법의 광명)을 보섭(普攝)하리니,
제법을 분명하게 요달(了達)하여 걸림이 없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모든 부처님들의 대 신통력을 보섭(普攝)하리니, 무량한 선근을 성취하고자 하는 연고요,
모든 부처님들의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를 보섭(普攝)하리니,
무량심(無量心)을 발하여서 일체에 가득하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보살들의 삼매와 변재와 다라니문을 보섭(普攝)하리니,
둘이 없는 무이법(無二法)을 잘 비추어 알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ㅡ사람들은 일체를 크게 둘로 나누어서 보는 경향이 있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보기 좋은 것과 보기 싫은 것, 옳은 것과 옳지 않는 것 등과 같이 둘로 나누는 분별적 사고는 어디에나 있다.
여자와 남자, 선과 악, 미와 추 등등. 동양인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이원성을 음과 양으로 표현해 왔고, 현대의 서양화가 에서(M.C.Escher)는 이것을 천사와 악마로 그렸다. 크게 둘로 나눈다면, 그 나뉜 것 안에서 또 나누어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여자는 더 여자다운 여자와 덜 여자다운 여자 등등으로,
분별은 끝이 없고 그 분별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단독적 개별자, 개체로서의 ‘나’가 있다.
세계는 그렇게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뉘고, 그러한
이원적 사고, 분별적 사고의 종착점은 개인주의이다. ㅡ 한자경의 '대승기신론 강해'에서
普攝(보섭) 諸佛善巧方便(제불선교방편) 示現(시현) 如來大神力故(여래대신력고)
普攝(보섭) 三世一切諸佛(삼세의일체제불) 降生成道(강생성도) 轉正法輪(전정법륜)
調伏衆生(조복중생) 入般涅槃(입반열반) 恭敬供養(공경공양) 悉周遍故(실주변고)
普攝(보섭) 十方一切世界(시방일체세계) 嚴淨佛刹(엄정불찰) 咸究竟故(함구경고)
普攝(보섭) 一切諸(일체제광대겁) 於中出現(어중출현) 修菩薩行(수보살행) 無斷絶故(무단절고)
모든 부처님들의 공교한 방편을 보섭(普攝)하리니, 여래의 대 신력을 나타내고자 하는 연고요,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강생(降生)하시어 탄생하시고, 성도를 이루시고, 정법륜(正法輪)을 굴리시고,
중생들을 조복하시고, 반열반하심을 보섭(普攝)포섭하나니, 두루 공경하고 공양하고자 하는 연고요,
시방의 일체 세계를 보섭(普攝)하리니,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을 구경에는 모두 엄정(嚴淨)하여 장엄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모든 광대겁(廣大劫)들을 보섭(普攝)하리니,
그 가운데에 출현하여 보살행을 끊임없이 닦고자 하는 연고요,
普攝(보섭) 一切所有趣生(보섭일체소유취생) 所有趣生(소유생취) 悉於其中(실어기중) 現受生故(현수생고)
普攝(보섭) 一切諸衆生界(일체제중생계) 具足(구족) 普賢菩薩行故(보현보살행고)
普攝(보섭) 一切諸惑習氣(일체제혹습기) 悉以方便(실이방편) 令淸淨故(영청정고)
普攝보섭) 一切衆生諸根(일체중생제근) 無量差別(무량차별) 咸了知故(함요지고)
普攝보섭) 一切衆生解欲(일체중생해욕) 令離雜染(영리잡염) 得淸淨故(득청정고)
普攝보섭) 一切化衆生行(일체화중생) 隨其所應(수기소응) 爲現身故(위현신고)
普攝보섭) 一切應衆生道(일체응중생도) 悉入(실입) 一切衆生界故(일체중생계고)
普攝보섭) 一切如來智性(일체여래지성) 護持(호지) 一切諸佛敎故(일체제불교고)
일체 모든 갈래(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의 중생들을 보섭(普攝)하리니,
그 가운데 일부러 태어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모든 중생계를 보섭(普攝)하리니, 보현보살의 행을 구족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모든 혹(惑, 번뇌)의 습기(習氣)들을 보섭(普攝)하리니, 방편으로 모두를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의 제근(諸根, 근성)을 보섭(普攝)하리니, 무량하게 차별함을 모두 요지(了知)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의 욕해(解欲, 이해와 욕망)을 보섭(普攝)하리니,
잡다하게 물드는 것을 여의고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교화할 중생들의 중생행(衆生行)을 보섭(普攝)하리니,
그 중생에게 마땅한 바를 따라 몸을 나타내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응(應, 맞는)하는 도(道)로서 보섭(普攝)하리니,
일체의 모든 중생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연고요,
일체의 모든 여래의 지성(智性, 지혜의 성품)을 보섭(普攝)하리니,
일체 제불의 가르침인 불교(佛敎)를 수호하여 지니고자 하는 연고입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用無所得(용무소득) 不於業中(불어업중) 分別報(분별보)
雖無分別(수무분별) 而普入法界(이보입법계)
雖無所作(수무소작) 而恒住善根(이항주선근)
雖無所起(수무소기) 而勤修勝法(이근수승법)
不信諸法(불신제법) 而能深入(이능심입)
不有於法(불유어법) 而悉知見(이실지견)
若作不作(약작불작) 皆不可得(개불가득) 知諸法性(지제법성) 恒不自在(항불자재)
雖悉見諸法(수실견제법) 而無所見(이무소견) 普知一切(보지일체) 而無所知(이무소지)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여러 선근으로서 이러하게 회향할 때,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서 그 방편으로 삼아,
업(業) 가운데에서 과보를 분별하지 않고,
보(報, 과보) 가운데에서 업을 분별하지 않으며,
비록 분별함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나, 법계에 두루 들어가며,
비록 짓는 바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나, 항상 선근에 머물며,
비록 일으킴이 없는 무소기(無所起)이나, 수승한 승법(勝法)을 부지런히 닦으며,
제법을 불신(不信)하여 믿지 않으나, 능히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법이 있지 않은 불유법(不有法)이나, 그 모두를 지견(知見)하여 알고 보며,
만약 짓는 약작(若作)이거나, 만약 짓지 않는 약불작(若不作)이거나, 그 모두는 얻을 수 없는 것이요,
모든 법성(法性)이 항상 자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며,
비록 제법을 보지만, 보는 바가 없는 무소견(無所見)이요,
일체의 모든 것을 널리 알지만, 아는 바가 없는 무소지(無所知)인 것입니다.
ㅡ중도(中道)의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바른 선근이 못되고, 바른 회향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ㅡ중도(中道)는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도리'로서,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의 6년간 그 대부분을 고행으로 정진하였다. 그러나 그 고행도 다만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일 뿐, 참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으로, 출가 전의 물질적인 풍족함과 쾌락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 편으로 치우친 극단이라서 이러함을 버린, 즉 고(苦)와 낙(樂)의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중도는 팔정도의 실천에 의해 지탱되며, 참다운 진리가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무소득(無所得)인 것이다.
원효는 “만약 계(戒)의 업을 말한다면 막는 것에 계의 뜻이 있는 것이며,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죄(罪)가 되나,
계는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얻어질 수 있는 실재(實在)의 객관은 없다.”고 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계를 중도에 계합시키는 원리를,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자면 뿌리인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가 될 요소가 따라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절대적이고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인 죄성(罪性)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죄성은 마음의 근본 바탕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 속에 계가 중도에 계합하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원효가 화쟁사상을 펼치고 무애자재한 이론으로 모든 경전을 풀이할 수 있었던 것도 철두철미하게 중도를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破)할 것도 없고 파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이치가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요(無理之至理) 그렇지 않는 것이 크게 그렇다(不然之大然).”라고 천명한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의 서문 등에서, 원효는 원융무애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성(性)·상(相)·공(空)·유(有)·일(一)·이(異) 등의 모든 상대적인 개념을 회통시킴으로써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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