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5)십회향품(十廻向品) ㅡ 4
제5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회향이란, 선(禪)바라밀로 체(體)를 삼는다.
선재동자가 본 파수밀녀(婆須蜜女)를 행하는 바의 소행인(所行人)으로 삼고,
그 거주하는 국토의 명칭이 '험난(險難)'이며, 성(城)의 명칭은 ‘보장엄(寶莊嚴)’이다.
덕을 찬탄하는 가운데에서도 마음에 분별없이 널리 모든 제법을 알고,
일신(一身)이 단정하게 앉아 법계에 충만하여서 자신의 몸에서 일체찰(一切刹)을 나타내는 것은,
밝힌 바의 선체(禪體)가 두루 하고 자재로운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는 선(禪)이 지혜와 자비를 회통하여 둘이 아닌 무이(無二)로써 체용이 자재로움을 밝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토의 명칭이 험난(險難)인 것은 참 지혜의 진지(眞智)로써 세속을 회통하는 것이며,
성의 명칭이 보장엄(寶莊嚴)인 것은 세속의 체(體)가 스스로 진(眞)이라는 것을 회통한 것이니,
이는 정(定, 고요함)과 난(亂, 흐트러짐)이 융화하여서 지혜와 자비가 걸림이 없어서 진(塵, 티끌)을 따르면서도 물들지 않기 때문에 명호가 보장엄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파수밀녀(婆須蜜女)란 한역하면 세우(世友)이니, 능히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사우(師友)가 되기 때문이며,
또한 천우(天友)라고도 하나니, 모든 천(天)과 더불어 사우(師友)를 짓기 때문이며,
혹은 이보(易寶)라고도 하나니, 이 여인이 훌륭하고 능숙한 방편으로 중생의 일체 지보(智寶)를 쉽게 취하기 때문이다.
이 여인의 몸은 금색이며, 눈과 머리칼은 감청색이며,
만약 설법을 듣거나, 잠시 보거나, 손을 잡거나, 그 자리에 함께 앉으면 모두 삼매를 얻나니,
이는 선(禪)의 체(體)가 두루하여서 지혜와 더불어 회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道)가 견(見)에 합치는 자는 모두 이 선(禪)의 체(體)와 지혜 및 자비가 서로 회통하여 흐르지만,
만약 따로 보는 부류라면 항상 대면하면서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오로지 선정이 지혜와 더불어 회통하고, 지혜가 자비와 더불어 명합(冥合)하여서, 근(根)에 따라 세속을 접하기 때문에 그 명호를 여인(女)라 한 것일 뿐, 그냥 여인이 된 것은 아니다.
10주(住) 중 제5의 주선문(主禪門)에서 속사장자(俗士長者)의 명호가 해탈(解脫)인 것은,
세속의 체(體)가 본래 참된 본진(本眞)이라서 중생의 몸이 본래로 불국(佛國)이라는 것을 밝히기 때문이며,
장자의 몸에 불국(佛國)을 포함한 것은, 중생의 몸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단지 선관(禪觀)만 상응하면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또 10행에서는 보계(寶髻) 장자로써 선문을 밝히고 있으니, 즉 본래의 본택(本宅)이 10층의 각(閣)에 거처하고 있으며,
그 택(宅, 집)에는 8개의 8문(八門)이 있고, 시상(市上, 시장)에서 세속을 접하여 집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바로 지혜로 선(禪)의 체(體)를 삼아서, 세속에 나아가 중생을 인도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시상(市上)인 것이며,
지혜의 경계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집 안으로 돌아오는 내택(來宅)이라 칭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제 10회향에서 파수밀녀로서 선문(禪門)을 삼는 것은 바로 10회향이 지혜와 자비로써 선의 체(體)를 삼기 때문에 여인으로 나타내서, 그 상(像)을 이룸으로써 법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니,
즉 행하는 바 세속의 속사(俗事)로써, 지혜가 비행(悲行)을 따라 세속의 오염에 처하여서도 오염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속진(俗塵, 세속의 티끌)을 깨닫지 못하여서 업에 얽매이게 된다면 반드시 계(戒)ㆍ정(定)ㆍ혜(慧)로서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구하겠지만,
만약 지혜를 요달해서 업이 소진하였다면 반드시 저자에 처해서도 오염되지 않고 방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서 모두를 해탈시키는 것이니, 한결같이 근기를 잘 앎으로서 중생을 제접하여 혹란(惑亂, 미혹하여 혼란함)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반드시 근기에 의거해 약(藥)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다음과 같으니,
첫 번째, 해당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함에있어서는, 13 단락으로 장과하겠으니,
1. “불자야” 이하 “다 구족케 한다(悉皆具足)”에 이르기까지 61행의 경문은,
보살이 기쁨에 따라 수희회향(隨喜迴向)을 모두 구족하여 원만함을 밝힌 분(分)이며,
2. “불자야” 이하 “일체의 불찰도 모두 이와 같다(一切佛剎悉亦如是)”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보살이 대원(大願)을 통하여 보살 대중의 보살중해(菩薩衆海)가 시방에 원만하여 국찰(國刹)을 장엄하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이며,
3. “불자야” 이하 “걸림이 없는 불퇴(不退)의 법륜을 굴린다(轉無障㝵不退法輪)”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방편의 회향을 밝힌 분이며,
4. “불자야” 이하 “초연히 출현한다(超然出現)”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청정한 불찰(佛刹)에서 일체 중생계에 이르기까지 부처가 항상 초연하게 출현하기 원함을 밝힌 분이며,
5. “불자야” 이하 “일체 법계에 들어간다(入一切法界)”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일체지(一切智)를 통달하여서 업과(業果)의 적멸을 알게 됨을 밝힌 분이며,
6. “불자야” 이하 “적은 법이라도 법과 더불어 동지(同止)함이 없다(無有少法與法同止)”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분별하지도 않는 무분별(不分別)이고, 집착해서 취하지도 않는 불착취(不著取)의 분(分)을 밝힌 분이며,
7. “불자야” 이하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는다(得無盡善根)”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다함이 없는 무진선근(無盡善根)을 얻음을 밝힌 분이며,
8. “불자야” 이하 “일체 경계가 다 있는 것이 아니다(一切境界悉無所有)”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계에 중생이 없음을 요달하여서 법에 증득함이 없음을 밝힌 분이며,
9. “불자야” 이하 “모든 선근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令諸善根悉充足故)”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은 지혜가 법에 들어감이 없는 무지입법(無智入法)이고, 법이 지혜에 들어감이 없는 무법입지(無法入智)임을 밝힌 분이며,
10. “불자야” 이하 “모든 행을 닦아 다스린다(修治諸行)”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공덕장을 성취하여서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는 것을 감당하는 분이며,
11. “불자야” 이하 “제5 다함 없는 공덕장의 회향(第五無盡功德藏迴向)”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의 복상(福相)이 세상에서 비할 바가 없는, 무륜(無倫)임을 밝인 분이며,
12. “보살마하살” 이하 “열 가지 무진장(十種無盡藏)”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10 가지의 십종무진장(十種無盡藏)을 얻음을 밝히는 분이며,
13. “이 때” 이하 1행의 경문은 금강당보살이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으니,
어찌하여 그 명칭이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회향인 것인가?
이 지위는 선(禪)과 지혜가 그윽이 합치하고, 지혜와 자비가 회통하여 다함이 없는 무진허공(無盡虛空)을 하나의 도량으로 삼고,
다함이 없이 무진(無盡)한 중생의 무명행상(無明行相)으로 불사(佛事)를 삼는 것이니,
몸은 항상 다함이 없는 무진한 부처님들을 받들어 승사(承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법계에 두루 하면서 무진한 중생들을 교화하여서 그 모두로 하여금 불신(佛身)을 이루게 하여서,
내외(內外)의 상(相)과, 시종(始終)의 정(情)이 소진하여, 제법을 두루 알면서도 무심(無心)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이 무진한 공덕장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경문에서 “하나의 일모공에서 아승기의 모든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봄으로써 법에 들어가는 무진장을 얻는다(於一毛孔見阿僧祇諸佛出興於世得入法無盡藏)”고 설한 것은,
심성(心性, 마음의 성품)이란 본래 없는 본무(本無)이라, 대소(大小)의 계교가 소진한 것으로써,
그 몸이 지혜의 그림자인 지영(智影)이 되고, 국토 역시도 그러한 것이니,
지혜가 청정하기에 그 그림자가 더욱 밝아서 대(大)와 소(小)가 서로 상입(相入)하여 들어가는 것이, 마치 인다라망 경계의 비유와 같다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경문에서 “부처의 지력(智力)으로 일체법이 다 일법(一法)에 들어감을 관한다(以佛智力觀一切法悉入一法)”고 설한 것은,
만경(萬境, 온갖 경계)이 비록 많을지라만 모두 일심(一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만약 마음이 멸(滅)하여 없어지면 경계도 소멸하여 만경(萬境, 온갖 경계)이 모두 비어지게 되는 것과 같이
마치 깨끗한 정수(淨水)에 비치는 온갖 상(그림자)과 같아서, 물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소멸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유(有)를 타파해서 무(無)를 성취한다는 설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또한 경계로써 지혜가 생기(生起)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서, 지혜가 비어 있고 경계가 환상(幻)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 많은 다환상(多幻相)들이 서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일허(一虛)를 여의지 않으니,
환(幻)이 허(虛)와 다르지 않고 허(虛)가 환(幻)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환(幻)과 허(虛)가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고, 같은 것이든(一), 다른 것이든(異), 모두가 비어 있는 허(虛)인 것이니,
이는 지혜의 환허자재무애문(幻虛自在無碍門)으로써 설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는 모두가 법의 정황을 빌려서 설한 것으로, 오직 사념이 없는 자라야 실답게 알아서 지혜로 회통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지혜로 회통한 이라야 비로소 가용(可用)하여 쓸 수 있으며,
진(眞)이기에 심경(心境, 마음과 경계)에 미혹함이 없어야,
대원력으로 지혜를 따라 환(幻)으로 생기게 하는 등으로써 중생의 수효와 동등한 몸으로 응하여서 교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무진공덕장인 것이니, 나머지는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이하 50행의 게송은 경문에 갖추어져 있으니, 다만 말한 것과 같이 수행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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