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四 十迴向品第二十五之二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 6

ㅡ제삼(第三)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雖在居家(수재거가) 作諸事業(작제사업) 

未曾暫捨一切智心(미증잠사일체지심) 所謂若着衣裳(소위약착의상) 若噉滋味(약담자미) 

若服湯藥(약복탕약) 澡漱塗摩(조수도마) 廻旋顧視(회선고시) 行住坐臥(행주좌와) 

身語意業(신어의업) 若睡若寤(약수약오) 如是一切諸(여시일체) 有所作(제유소작) 

心常廻向(심상회향) 薩婆若道(살바야도) 繫念思惟(계념사유) 無時捨離(무시사리) 

噉 먹다 먹이다 담 / 澡 씻을 조, / 漱 양치질할 수 / 塗 진흙 도, 칠할 도, / 摩 갈 마, 문지를 마

보살마하살이 여러 가지의 사업을 하면서 비록 집에 머물러 있지만,

잠시도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나니,

이른바, 옷을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탕약을 복용하거나, 씻고 양치질하거나,

바르고(塗) 만지거나(摩), 몸을 돌리거나, 돌아보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하여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등의 몸과 말과 뜻의 신어의업(身語意業)이나, 

잠을 자거나 깨어 나거나 하는 등의 이러한 모든 일을 할 때,

그 마음은 항상 살바야도(薩婆若道, 일체지의 도)에 회향하여서,

살바야도에 계념(繫念)하여 마음을 묶어 사유하기를 잠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爲欲饒益一切衆生(위욕요익일체중생) 安住菩提無量大願(안주보리무량대원) 

攝取無數廣大善根(섭취무수광대선근) 勤修諸善(근수제선) 普救一切(보구일체) 

永離一切憍慢放逸(영리일체교만방일) 決定趣於一切智地(결정취어일체지지) 

終不發意(종불발의) 向於餘道(향어여도) 常觀一切諸佛菩提(상관일체제불보리) 

永捨一切諸雜染法(영사일체제잡염법) 修行一切菩薩所學(수행일체보살소학) 

於一切智道(어일체지도) 無所障碍(무소장애) 住於智地(주어지지) 愛樂誦習(애락송습) 

以無量智(이무량지) 集諸善根(집제선근) 心不戀樂一切世間(심불련락일체세간) 

亦不染着所行之行(역불염착소행지행) 專心으로 受持諸佛敎法(전심수지제불교법) 

菩薩(보살) 如是處在居家(여시처재거가) 普攝善根(보섭선근) 令其增長(영기증장) 

廻向(회향) 諸佛無上菩提(제불무상보리) 

일체 중생들을 요익(饒益)하게 하고자, 보리의 무량한 대원에 안주하며,

무수하고 광대한 선근(善根)을 섭취하여 거두어 지니며,

모든 선한 일들을 부지런히 닦아서 널리 일체의 모든 이들을 구호하되,

온갖 교만과 방일함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결정코 일체지지(一切智地)를 향하여 나아가며,

끝끝내 여도(餘道, 다른 가르침의 길)을 따를 생각을 내지 않으며,

항상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의 불보리(佛菩提)를 관찰하며, (항상 모든 깨달은 분들의 보리를 관찰하며)

일체의 모든 잡되고 물든 잡염법(雜染法)들을 버리고, 보살들이 배워야 할 바를 닦아 행하여서, 

온갖 지혜를 향하여 나아가는 일체지도(一切智道)에 장애가 없으며,

지지(智地, 지혜의 지위)에 머물러 애락(愛樂)하면서 익히며,

무량지(無量智)로서 모든 선근들을 모으며, 마음으로는 일체의 세간을 즐기지 않으며,

행을 행하는 바에 있어서 물들지 않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불교법(佛敎法)을 수지(受持)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집에 있으면서도 선근을 두루 거두어 증장하게 하여서

부처님의 위없는 불무상보리(佛無上菩提)에 회향합니다.

 

佛子(불자) 菩薩(보살) 爾時(이시) 乃至(내지) 施與畜生之食(시여축생지식) 一摶一粒(일단일립) 

咸作是願(함작시원) 當令此等(당령차등) 捨畜生道(사축생도) 利益安樂(이익안락) 

究竟解脫(구경해탈) 永度苦海(영도고해) 永滅苦受(영멸고수) 

永除苦蘊(영제고온) 永斷苦覺(영단고각) 苦聚苦行(고취고행) 

苦因苦本(고인고본) 及諸苦處(급제고처) 願彼衆生(원피중생) 皆得捨離(개득사리)

菩薩(보살) 如是專心(여시전심) 繫念一切衆生(계념일체중생) 以彼善根(이피선근)

而爲上首(이위상수) 爲其廻向(위기회향) 一切種智(일체종지) 摶 뭉칠 단, 오로지 전

불자들이여, 그 때에 보살은 축생들에게 일단(一摶, 한 뭉치)의 밥과 일립(一粒, 한 톨)의 먹이를 주게 될지라도,

그 때마다 원하기를, ‘이들로 하여금 이 먹이로서 마땅히 축생의 갈래를 버리고,

이익이 되고 안락하여서 구경에는 해탈하여서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를 영원히 건너서,

괴로움의 고수(苦受)가 영원히 멸하여 없으며,

오온이 괴로운 고온(苦薀)을 영원히 제(除)하여서 고각(苦覺, 고통스러운 느끼의 감각)을 영원히 끊고,

고취(苦聚, 고통의 모임)ㆍ고행(苦行, 고통스러운 행)ㆍ고인(苦因, 고통의 원인)과

고본(苦本, 고통의 근본)ㆍ고처(苦處, 고통의 처소)를 저 중생들 모두가 영원히 떠날 수 있게 하여지이다’ 하나니,

보살도 이와 같이 오롯하게 전심(專心)을 계념(繫念)하여 그 마음을 일체 중생들에게 묶어 두고서

그러한 선근을 상수(上首, 대표, 기본)로 삼아서 일체종지(一切種智)에 회향합니다.

ㅡ우리 불자들은 축생을 보면 무조건 발보리심 하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안목입니다.

왜 축생이 됐느냐? 자기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축생이 된 것입니다. 축생이 남을 생각하는 것 못 봤지요?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 새끼만 생각하고,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것도 역시 축생입니다. 

자기 새끼 생각하는 것은 사람보다 축생들이 더 헌신적으로 잘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가족을 위해서 헌신했다. 노력했다는 것은 크게 이야기할 거리가 아닙니다.

자기와 크게 인연이 없어도 배려해주고 베풀 줄 알고 도울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그것이 오직 사람인 것으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축생에서 벗어나려면 이타심을 발해야 된다는 이치로 귀결 할 수가 있겠습니다.ㅡ무비스님

 

菩薩(보살) 初發菩提之心(초발보리지심) 普攝衆生(보섭중생) 修諸善根(수제선근) 

悉以廻向(실이회향) 欲令永離生死曠野(욕영영리생사광야) 得諸如來(득제여래)

無碍快諾(무애쾌락) 出煩惱海(출번뇌해) 修佛法道(수불법도) 慈心遍滿(자심변만)

悲力廣大(비력광대) 普使一切(보사일체) 得淸淨樂(득청정락) 守護善根(수호선근)

親近佛法(친근불법) 出魔境界(출마경계) 入佛境界(입불경계) 斷世間種(단세간종)

植如來種(식여래종) 住於三世平等法中(주어삼세평등법중)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如是所有(여시소유) 已集當集現集善根(이집당집현집선근) 悉以廻向(실이회향) 

보살이 처음에 초발보리심을 하여서부터 중생들을 널리 거두고 닦은 모든 선근들을 회향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거친 광야(曠野)에서 영원히 벗어나

여래의 걸림이 없는 무애쾌락(無碍快諾)을 얻게 하며,

번뇌해(煩惱海)에서 뛰어나와 불법도(佛法道)를 닦아서 인자한 자심(慈心)이 가득하고 두루하여지고,

가엾이 비력(悲力)이 광대하여져서 널리 일체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청정낙(淸淨樂)을 얻게 하며,

선근을 수호하고 불법을 친근하게 하며,

마군의 경계를 벗어나서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에 들어가게 하며,

세간종(世間種, 세간의 종성)을 끊고 여래종(如來種)을 심어서 삼세의 평등법에 머물게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이집(已集)하여 이미 모았고, 당집(當集)하여 장차 모을 것이고,

현집(現集)하여 지금 모으고 있는 선근(善根)들 모두를 회향합니다.  

 

復作是念(부작시념) 如過去諸佛菩薩所行(여과거제불보살소행) 

恭敬供養一切諸佛(공경공양일체제불) 度諸衆生(도제중생) 令永出離(영영출리) 

勤加修習(근가수습) 一切善根(일체선근) 悉以廻向(실이회향) 而無所着(이무소착) 

所謂不依色(소위불의색) 不着受(불착수) 無倒想(부도상) 不作行(부작행) 不取識(불취식) 

捨離六處(사리육처) 不住世法(부주세법) 樂出世間(낙출세간) 

知一切法(지일체법) 皆如虛空(개여허공) 無所從來(무소종래) 

不生不滅(불생불멸) 無有眞實(무유진실) 無所染着(무소염착) 

遠離一切(원리일체) 諸分別見(제분별견) 不動不轉(부동부전) 不失不壞(불실불괴) 

住於實際(주어실제) 無相離相(무상이상) 唯是一相(유시일상) 

如是深入(여시심입) 一切法性(일체법성) 常樂習行(상락습행) 普門善根(보문선근) 

悉見(실견) 一切諸佛衆會(일체제불중회) 

다시 또 생각하기를, ‘지난 과거 세상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공양하고

중생들을 제도하여 영원히 벗어나게 하고, 일체의 모든 선근을 부지런히 수습하여서

그러한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신 바와 같이 무소착(無所着)하여 집착하지 않을 것이니,

 

이른바, 불의색(不依色)하여 물질(色)에 의지하지 않고,

불착수(不着受)하여 수(受, 느낌 감수)에 집착하지 않고,

전도된 상(想)이 없으며, 전도된 행(行)을 짓지 않으며, 전도된 식(識)을 취하지 않아서,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의 6처(六處)를 떠났으며,

세간법에 머물지 않고 출세간법을 즐기나니, 

 

일체법 모두가 마치 허공과 같아서 그 온 곳이 없는 무소종래(無所從來)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진실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는 무염착(無染着)하고, 온갖 분별하는 소견의 분별견(分別見)을 여의어서

동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부동부전(不動不轉)이요,

잃거나 깨뜨릴 수 없는 불실불괴(不失不壞)하여서, 실제(實際, 진실한 진리의 경계)에 머무나니,

무상(無相)으로 상도 없고, 상을 떠남도 없는 무이상(無離)으로, 오로지 하나의 일상(一相) 뿐이라, 


이와 같이 일체법의 성품에 깊이 들어가서 넓은 보문선근(普門善根)을 항상 즐겨 닦고 행하여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회상을 모두 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ㅡ일체법(一切法), 사물과 사건. 모든 존재ㆍ모든 현상ㆍ사건과 물건ㆍ물건과 사건의 두 가지입니다.

물건이 움직이고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은 사건이고, 그 주체인 사물은 물건입니다.

사건은 보이지 않지만, 어떤 보이는 사물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하는 것도 사건에 해당되고,  

그러한 것이 모두 일체 법인 것입니다.

 

ㅡ물질의 색(色)ㆍ 느낌의 수(受)ㆍ생각의 상(想)ㆍ 지어감의 행(行)ㆍ인식의 식(識)의 
색(色)ㆍ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의 오중(五衆, 오온)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의 오정(五情) 

 

ㅡ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의(意)의
안근(眼根)ㆍ 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 ㆍ의근(意根)의 육근(六根)이고,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의 경(境, 대상)의
빛깔(色境)ㆍ  소리(聲境)ㆍ냄새(香境)ㆍ맛(味境)ㆍ닿임(觸境)ㆍ법(法境)이 육진(六塵). 

 

ㅡ12처(十二處) 안처(眼處),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의 육내입처(六內入處) 
색처(色處), 성처(聲處), 향처(處), 미처(處), 촉처(觸處), 법처(法處)의 육외입처(六外入處) 

 

如彼過去(여피과거) 一切如來(일체여래) 善根廻向(선근회향) 

我亦(아역) 如是而爲廻向(여시이위회향) 解如是法(해여시법) 證如是法(증여시법) 

依如是法(의여시법) 發心修習(발심수습) 不違法相(불위법상) 

知所修行(지소수행) 如幻如影(여환여영) 如水中月(여수중월) 如鏡中像(여경중상)   

因緣和合之所(인연화합지소) 顯現(현현) 乃至如來究竟之地(내지여래구경지지)

마치 지난 과거 세상에서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선근으로 회향한 것과 같이,

나 역시도 그와 같이 회향할 것이요,

그러하게 법을 알고, 그러한 법을 증득하여서, 그러한 법에 의지하여 발심(發心)하여 수습할 것이요,  

 

법상(法相)에 위배되지 않아서, 닦는 행이 마치 환술과 같은 여환(如幻)이요,

그림자와 같은 여영(如影)이요, 물속의 달과 같은 여수중월(如水中月)이요,

거울 속의 영상과 같은 여경중상(如鏡中像)이라는 것을 알며, 

직접적인 인(因)과 간접적인 조건의 연(緣)이 화합하여 나타나는 것임을 알아서,

마침내 여래의 구경지(究竟地, 무위진인의 참나)에 이르리라' 생각합니다. 

 

ㅡ법상(法相), 일체의 사물 또는 제법(諸法)의 실상, 또는 체상(體相)을 가리킨다.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법상은 번역자에 따라서 법성(法性)과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법상에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의타기상(依他起相)·원성실상(圓成實相)의 세 종류가 있다. 

변계소집상은 두루 계탁(計度), 즉 '알음알이를 내어 집착하는 모습'이라는 의미로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허구의 개념을 통해서 식별하는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가리킨다.

의타기상은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모습'의 의미로 존재가 조건 지어져 일어난 상태, 즉 연기의 상태를 뜻한다.

원성실상은 '원만히 성취된 참다운 모습'이라는 의미로서 존재의 진실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상은 흔히 “밤에 길을 가다 길 가운데 뱀이 있는 줄 알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노끈임을 알았다.”는 비유로 설명한다. 즉 노끈을 착각하여 뱀으로 안 것은 변계소집상이고, 뱀이 아니라 노끈임을 안 것은 의타기상이고, 노끈이 마(麻)로 이루어진 것임을 아는 것은 원성실상이다. 이를 통해서 하나의 현상(노끈)에서도 이를 잘못 인식하면(뱀), 즉 고통의 원인이 되고 이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즉 법상을 파악하면 열반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ㅡ구경지(究竟地, 무위진인의 참나)는 함허(涵虛)스님의 금강경 오가해의 서(序)에서 말하는 일물(一物)입니다.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여기에 하나의 물건이 있으니
上柱天下柱地(상주천하주지)라.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있도다.
絶名相(절명상), 이름(名)과 모양(相)이 끊어졌으되
貫古今(관고금)하고, 옛과 지금을 꿰뚫고 있으며, 
處一塵(처일진)하되, 조그만 티끌에 처하여도
圍六合(위육합)이로다, 육합(東.西.南.北.天.地)을 둘러 있는도다.
內含衆妙(내함중묘)하고, 안으로는 묘하게 모든 것을 머금고 있으며, 
外應群機(외응군기)하며, 밖으로는 많은 것에 응하며
主於三才(주어삼재)하고 王於萬法(왕어만법)하니, 삼재(天 · 地 · 人)의 주인이 되고 만법(萬法)의 왕이 되나니,
蕩蕩乎其無比(탕탕호기무비)요, 그 넚고 넓음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고
巍巍乎其無倫(외외호기무륜)이로다, 그 높고 높음은 무엇과 짝할 수가 없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