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四 十迴向品第二十五之二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5. 십회향품 ② ㅡ 1
ㅡ제2(第二) 불괴회향(不壞廻向) ㅡ 2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如是等諸供養具(이여시등제공양구)
於無量無數不可說不可說劫(어무량무수불가설불가설겁) 淨心尊重(정심존중)
恭敬供養一切諸佛(공경공양일체제) 恒不退轉(항불퇴전) 無有休息(무유휴식)
一一如來滅度之後(일일여래멸도지후) 所有舍利(소유사리)
悉亦如是恭敬供養(실역여시공경공양)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 生淨信故(생정신고)
一切衆生(일체중생) 攝善根故(섭선근고)
一切衆生(일체중생) 離諸苦故(이제고고)
一切衆生(일체중생) 廣大解故(광대해고)
一切衆生(일체중생) 以大莊嚴而莊嚴故(이대장엄이장엄고) 無量莊嚴(무량장엄) 而莊嚴故(이장엄고)
諸有所作(제유소작) 得究竟故(득구경고) 知諸佛興(지제불흥) 難可値故(난가치고)
滿足如來無量力故(만족여래무량력고) 莊嚴供養佛塔廟故(장엄공양불탑묘고)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여러 가지의 공양구(供養具)들로서,
무량하고 무수하여서 말할 수 없는 불가설불가설의 오랜 겁(세월) 동안 깨끗한 정심(淨心)으로
모든 부처님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함에 있어서, 항상 퇴전하지도 않고 쉬지도 않나니,
낱낱의 일일여래(一一如來)께서 멸도(滅度)하시어 열반에 드신 뒤에는,
그 모든 사리를 모아서 역시 그와 같이 (사리에) 공경하고 공양하나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깨끗한 믿음의 정신(淨信)을 내게 하려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을 거두어 가지게 하려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여의게 하려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광대한 이해를 하게 하려는 연고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대장엄(大莊嚴)으로써 장엄하게 하려는 연고요,
무량한 장엄으로써 장엄하게 하려는 연고요,
모든 짓는 바의 소작(所作)들이 구경에 이르게 하려는 연고요,
부처님의 출현하심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난가치(難可値)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연고요,
여래의 한량이 없는 무량력(無量力)을 만족하게 하려는 연고요,
부처님의 불탑을 장엄하고 공양하게 하려는 연고요,
住持一切諸佛法故(주지일체제불법고) 如是供養現在諸佛(여시공양현재제불)
及滅度後所有舍利(급멸도후소유사리)
其諸供養(기제공양) 於阿僧祗劫(어아승지겁) 說不可盡(설불가진)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주지(住持)하여 지니고 머물게 하려는 연고이니,
이와 같이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과 열반하신 후의 그 사리에 공양하나니,
그 모든 공양을 아승기의 겁(세월) 동안 설하고자 하여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如是修集無量功德(여시수집무량공덕) 皆爲(개위) 成熟一切衆生(성숙일체중생)
無有退轉(무유퇴전) 無有休息(무유휴식) 無有疲厭(무유피염) 無有執着(무유집착)
離諸心想(이제심상) 無有依止(무유의지) 永絶所依(영절소의)
遠離於我(원리어아) 及以我所(급이아소) 如實法印(여실법인) 印諸業門(인제업문)
得法無生(득법무생) 住佛所住(주불소주) 觀無生性(관무생성) 印諸境界(인제경계)
이와 같이 무량하게 공덕을 닦는 것은 일체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니,
무유퇴전(無有退轉)하여 퇴전하지도 않고, 무유휴식(無有休息)하여 쉬지도 않고,
무유피염(無有疲厭)하여 고달프고 싫증을 내는 마음도 없으며,
무유집착(無有執着)하여 집착하지도 않아서,
마음의 모든 심상(心想, 생각 또는 번뇌)을 여의었으며,
의지함이 없어서 의지할 바를 영원히 끊었으며,
나(我)와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의 ㅡ 아집(我執)의 중생의 병을ㅡ 영원히 끊었으며,
여실법인(如實法印, 무위진인의 진여자성)으로서 모든 제업(諸業)의 문(門)에 인(印, 확인 도장)을 쳐서 인가하였으며,
법이란 생멸이 없는 무생(無生)이라는 것을 증득하여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머물며,
남이 없는 무생(無生)의 성(性, 성품)을 관찰하여서 모든 경계에 인(印, 확인 도장)을 쳐서 인가하였습니다.
ㅡ이 회향의 체(體)는, “여실한 법인(法印)으로 모든 업문(業門)을 인(印)치고,
법의 무생(無生)을 얻어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물며,
무생의 성품을 관하여 모든 경계를 인(印)을 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으로 발심해서 회향하는 것이니,
모든 법성과 더불어 상응하는 회향과 작위 없는 무작법(無作法)에 들어가 지은 바를 성취하는 방편회향(方便迴向)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불괴회향(不壞迴向)의 대체(大體)인 것으로,
이는 지혜가 불괴(不壞, 파괴되지 않음)이고, 생사가 불괴이며, 대원(大願)이 불괴이고,
대자비가 불괴로서 모두가 여실한 때문이다.
가령 10주위에서는 오염을 여읜 대자비로서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문국(海門國)의 해운(海雲)비구로서 표상을 삼고,
10행위에서는 곧 공교(工巧)와 산술(算術)을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석천(釋天)동자가 물가에서 하는 산인법(算印法)으로 표상을 삼은 것이니, 행이 강물의 흐름이 되어서 바다로 돌아감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10회향위에서는 세속에 처한 대자비를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강사(海舡師)의 자재함으로써 표상을 삼은 것이다.
ㅡ여실법인(如實法印)은 참 나의 세계, 진여자성의 도장으로서, 사람들은 아(我)와 아소(我所), 즉 아집(我執)이 나라고 생각하는데, 참 나의 세계= 차별 없는 참사람=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여실법인(如實法印)입니다.
ㅡ인제업문(印諸業門)이라는 것은 아(我)와 아소(我所), 즉 아집(我執)으로 살아가는 것은 업 덩어리입니다. 순전히 아(我)와 아소(我所)로써 업을 짓고 또 아(我)와 아소(我所)를 떠날 수는 없지만, 그 아(我)와 아소(我所)도 하나의 진여불성, 차별 없는 참사람의 작용인 것입니다.
부처님도 아(我)와 아소(我所)를 떠나서는 참 나의 삶을 펼치지 못하는 것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근으로서 법문하고, 6근으러서 지혜의 작용을 해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전부 ‘참 나의 한 작용이라고 아는 것이 여실법인(如實法印)으로 인제업분(印諸業門)하는 것으로, 제업문(諸業門)이라는 것은 아(我)와 아소(我所)입니다. 그런데 그 아(我)와 아소(我所)의 삶, 즉 우리의 아집(我執)의 삶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차별 없는 참사람의 도장을 찍어야 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금으로 불상도 만들고, 비녀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코끼리도 만들고, 사자 등 온갖 것을 다 만들지만, 아(我)와 아소(我所)의 입장에서는, ‘아 저것은 불상, 비녀, 반지, 시계, 칼이라는 모양만 볼 뿐이지만,
그 모두가 ‘금이라는 사실로 이해하는 것이 여실법인(如實法印)으로 인제업분(印諸業門)입니다.
즉 우리는 아집으로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것이 전부 우리 참 마음의 현현이고 참 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我)와 아소(我所)에 집착하는 아집의 삶도 여실법인(如實法印)인 것으로, 우리 참 마음의 현현이고, 참 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得法無生(득법무생), 법이 생멸이 없음을 얻어서 住佛所住(주불소주), 부처님이 머무는 바에 머문다면 부처님과 똑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살들도, 선지식들도, 조사들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있어서 먹어줘야 되고, 잠자줘야 되고, 입혀줘야 되고, 씻겨줘야 되는 것이 똑 같은, 안이비설신의 6근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6근이라고 하는 아집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진여자성, 진여불성의 현현이라고 보는 그 차이일 뿐이고, 그것이 주불소주(住佛所住), 부처님이 머무 바에 머무는 것입니다.
住佛所住(주불소주)해서 꼭 선한 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화장실을 가든지, 법당에 가서 예배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던지 아무 관계없이 그대로 부처의 현현이고ㆍ부처의 작용이라는, 아주 대단한 불법의 이치입니다.ㅡ무비스님
諸佛護念(제불호념) 發心廻向(발심회향) 與諸法性(여제법성) 相應廻向(상응회향)
入無作法(입무작법) 成就(성취) 所作方便廻向(소작방편회향)
捨離(사리) 一切諸事想着方便廻向(일체제사상착방편회향)
住(주) 於無量善巧廻向(어무량선교회향) 永出(영출) 一切諸有廻向(일체제유회향)
修行諸行(수행제행) 不住(불주) 於相善巧廻向(어상선교회향)
普攝(보섭) 一切善根廻向(일체선근회향) 普淨(보정) 一切菩薩諸行廣大廻向(일체보살제행광대회향)
發(발) 無上菩提心廻向(무상보리심회향) 與一切善根(여일체선근) 同住廻向(동주회향)
滿足(만족) 最上信解心廻向(최상신해심회향)
여러 부처님의 호념으로 발심하여 회향하고,
법성(法性)에 상응하는 회향을 하고,(법성에 맞추어 회향하고)
(일을 짓지만 지음이 없는) 지음이 없는 무작법(無作法)에 들어가 짓는 바를 성취하는 방편 회향을 하고,
일체의 제사(諸事, 모든 일)에 생각으로 집착하는 것을 사리(捨離)하여 버리는 방편 회향을 하고,
무량한 선교(善巧)함에 머무는 회향을 하고,
일체의 모든 제유(諸有)에서 영원히 벗어나서 회향을 하고,
제행(諸行, 6 바라밀의 행)을 닦아 상(相)에 머물지 않는 공교한 회향을 하고,
일체의 모든 선근을 보섭(普攝)하여 널리 거두어 들이는 회향을 하고,
일체의 모든 보살행을 보정(普淨)하여 널리 청정하게 하는 광대한 회향을 하고,
위 없는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발(發)하는 회향을 하고,
모든 선근과 함께 동주(同住)하는 회향을 하고,
최상의 신해심(信解心,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만족하게 하는 회향을 합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
雖隨生死(수수생사) 而不改變(이불개변) 求一切智(구일체지) 未曾退轉(미증퇴전)
在於諸有(재어제유) 心無動亂(심무동란) 悉能(실능) 度脫一切衆生(도탈일체중생)
不染有爲法(불염유위법) 不失無碍智(불실무애지)
菩薩行位(보살행위) 因緣無盡(인연무진) 世間諸法(세간제법) 無能變動(무능변동)
具足(구족) 淸淨諸波羅密(청정제바라밀) 悉能成就(실능성취) 一切智力(일체지력)
菩薩(보살) 如是離諸癡暗(여시이제치암) 成菩提心(성보리심) 開示光明(개시광명)
增長淨法(증장정법) 廻向勝道(회향승도) 具足衆行(구족중행)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들이 이러한 모든 선근으로 이러하게 회향할 때,
비록 생사를 따르지만 불개변(不改變)하여 바꾸고자 하지 않으며,
일체지를 구함에 있어서 일찍이 퇴전하지 않으며,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의 모든 존재의 제유(諸有)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무동란(無動亂)하여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 모두를 제도하여서 해탈하게 하며,
함이 있는 유위법(有爲法)에 물들지 않으며,
걸림이 없는 무애지(無碍智)를 잃지 않으며,
보살행의 지위인 보살행위(菩薩行位, 52위)와의 인연이 무진(無盡)하여 다하지 않으며,
세간의 모든 법으로 변하게 할 수 없으며,
모든 바라밀을 청정하게 구족하였으며,
일체지력(一切智力)을 능히 모두 성취하였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 치암(癡暗)의 어리석음의 어둠을 여의어서 보리심(菩提心, 지혜와 자비의 이타심 利他心)을 이루며,
광명을 열어 보이며, 청정한 정법(淨法)을 증장하며,
수승한 승도(勝道)로 회향하여 여러 가지의 중행(衆行, 6바라밀, 10바라밀, 4섭 법, 4무량심 등)을 구족하는 것입니다.
ㅡ유위법(有爲法), 유위(有爲)의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하고, 유위법(有爲法, Karmic existence, conditioned existence)은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을 말한다.
색 · 수 · 상 · 행 · 식의 5온은 모두 유위법에 속하며, 무루법과 유루법에 모두 통하지만, 무위법은 5온에 속하지 않는다.
以淸淨意(이청정의) 善能分別(선능분별) 了一切法(요일체법) 悉隨心現(실수심현)
知業如幻(지업여환) 業報如像(업보여상) 諸行如化(제행여화)
因緣生法(인연생법) 悉皆如響(실개여향) 菩薩諸行(보살제행) 一切如影(일체여영)
出生(출생) 無着淸淨法眼(무착청정법안) 見(견) 於無作廣大境界(어무작광대경계)
證寂滅性(증적멸성) 了法無二(요법무이) 得法實相(득법실상)
具菩薩行(구보살행) 於一切相(어일체상) 皆無所着(개무소착) 同事諸業(동사제업)
善能修行(선능수행) 於白淨法(어백정법) 恒無廢捨(항무폐사)
成佛後(성불후) 說法度生之識(설법도생지식) 離一切着(이일체착) 住無着行(주무착행)
청정한 의(意, 뜻)으로 능히 잘 분별할 수 있으니,
일체의 모든 제법 모두는 마음을 따라 나타난 실수심현(悉隨心現)이라는 것을 알며,
ㅡ실수심현(悉隨心現)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뜻입니다.
업(業)은 마치 요술과 같은 여환(如幻)이요,
업을 지어 과보 받는 업보(業報)는 마치 영상과 같은 여상(如像)이요,
제행(諸行)은 마치 변화하는 여화(如化)인 것으로 (실재하지 않으며,)
인연으로 생긴 인연생법(因緣生法) 모두는 마치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이요,
보살의 모든 행은 그림자와 같은 여영(如影)한 것임을 알아서,
집착이 없는 무착(無着)의 청정한 법안(法眼)을 출생하여서 광대한 경계를 보며,
적멸성(寂滅性)을 증(證, 증명)하여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는 법무이(法無二)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며,
보살행을 갖추었으며, 일체의 상(相)에 집착하지 않으며,
동사(同事)하여 함께하는 모든 제업(諸業)들을 능히 잘 수행하며,
백정법(白淨法)을 항무폐사(恒無廢捨)하여 항상 버리지 않으며,
일체의 모든 착(着, 집착)을 떠나서 집착이 없는 무착행(無着行)에 머뭅니다.
ㅡ백정법(白淨法)은 제구백정식(第九 白淨識)
成佛後(성불후) 說法度生之識(설법도생지식), 성불 하여서 법을 설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가장 뛰어난 법, 그것을 우리의 식(識)에서 제9식(第九識)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식(識), 중생들에게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식(六識)과,
그 다음의 중간 전달식인 제7(第七)의 말나식(末那識)과,
그 다음에 제8(第八)의 장식(藏識)까지는 다 있지만,
부처님은 제9(第九)의 백정식(白淨識)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전부가 식 놀음이라서 제9(第九)의 백정식(白淨識)을 설정해 놓은 것으로,
부처님은 식(識)으로 중생 제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9식의 백정식으로 설법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백정법(白淨法), 청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밝고 맑은 것을 의미하지만,
신· 구· 의 삼업(三業)의 모든 수행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원만한 신심'을 ‘백정법(白淨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엄경(華嚴經) 제24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② ㅡ 4 (1) | 2026.07.19 |
|---|---|
| 화엄경(華嚴經) 제24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② ㅡ 3 (0) | 2026.07.18 |
| 화엄경(華嚴經) 제24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② ㅡ 1 (1) | 2026.07.16 |
| 화엄경(華嚴經) 제23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 ① ㅡ 8 (0) | 2026.07.15 |
| 화엄경(華嚴經) 제23권 25. 십회향품(十廻向品) ① ㅡ 7 (0) | 2026.07.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