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三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十廻向品)   5

 

ㅡ제일(第一)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 3

 

ㅡ십회향심(十廻向心)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佛法(이제불법) 而爲所緣(이위소연
起廣大心(기광대심) 不退轉心(불퇴전심) 無量劫中(무량겁중
修習(수습) 希有難得心寶(희유난득심보) 與一切諸佛(여일체제불) 皆悉平等(개실평등)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불법으로서 반연할 바의 경계로 삼아, (불법에 인연을 맺어서)

광대심(廣大心) 물러가지 않는 불퇴전심(不退轉心) 일으켜서

무량한 겁(세월) 동안에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심보(心寶, 마음, 진여불성)를 닦아서 모든 부처님들과 더불어 평등하나니,

 

菩薩(보살) 如是觀 諸善根(여시관 제선근) 信心淸淨(신심청정)大悲堅固(대비견고
以甚深心(이심심심) 歡喜心(환희심) 淸淨心(청정심) 最勝心(최승심)

柔軟心(유연심) 慈悲心(자비심) 憐愍心(연민심) 攝護心(섭호심) 利益心(이익심
安樂心(안락심) 普爲衆生(보위중생) 眞實廻向(진실회향) 非但口言(비단구언

보살이 그와 같이 모든 선근들을 관찰하여 살펴보아서, 신심이 청정하며, 대비심이 견고하며,

매우 깊은 마음의 심심심(甚深心), 환희심( 歡喜心), 청정심(淸淨心), 가장 수승한 마음의 최승심(最勝心),

부드러운 마음의 유연심(柔軟心), 자비심(慈悲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연민심(憐愍心),

거두어 보호하는 마음의 섭호심(攝護心),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이익심(利益心),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의 안락심(安樂心)으로써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진실하게 회향하나니, 구언(口言)으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ㅡ착한 일한다고 부처님이 아니라, 착한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간에 바로 그 참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그것이 바로 부처의 작용입니다. 그것을 닦는다고 표현했지만, 닦아서 오는 것도 아니고, 또 닦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諸善根(이제선근) 廻向之時(회향지시)

作是念言(작시념언) 以我善根(이아선근) 願一切趣生(원일체취생) 皆得淸淨(개득청정)

功德圓滿(공덕원만) 不可沮壞(불가저괴) 無有窮盡(무유궁진) 常得尊重(상득존중) 

正念不忘(정념불망) 獲決定慧(획결정혜) 具無量智(구무량지) 身口意業(신구의업) 

一切功德(일체공덕) 圓滿莊嚴(원만장엄)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그러한 모든 선근으로 회향할 때, 념언(念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 듯 말함)하기를

‘나의 이러한 선근으로써 일체의 취생(趣生,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모든 생명)들 모두가

청정하여지고 공덕이 원만하여져서,

가히 파괴할 수 없는 불가저괴(不可沮壞)하며, 다함이 없는 무궁진(無窮盡)하며,

항상 존중을 받으며, 바른 생각의 정념(正念)을 불망(不忘)하여 잊지 않으며,

결정혜(決定慧)를 얻으며, 무량한 지혜를 갖추며,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삼업이 일체의 공덕으로 원만하게 장엄하여지이다’라고 하며,  

 

又作是念(우작시념) 以此善根(이차선근)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承事供養(승사공양) 一切諸佛(일체제불) 無空過者(무공과자)

於諸佛所(어제불소) 淨信不壞(정신불괴) 聽聞正法(청문정법) 斷諸疑惑(단제의혹) 

憶持不忘(억지불망) 如說修行(여설수행) 於如來所(어여래소) 起恭敬心(기공경심) 

身業淸淨(신업청정) 安住(안주) 無量廣大善根(무량광대선근) 

永離貧窮(영리빈궁) 七財滿足(칠재만족)

於諸佛所(어제불소) 常隨修學(상수수학) 成就(성취) 無量勝妙善根(무량승묘선근) 
平等悟解(평등오해) 住一切智(주일체지) 以無碍眼(이무애안) 等視衆生(등시중생)
衆相嚴身(중상엄신) 無有玷缺(무유점결) 言音淨妙(언음정묘) 功德圓滿(공덕원만) 
諸根調伏(제근조복) 十力成就(십력성취) 善心滿足(선심만족) 無所依住(무소의주)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 普得佛樂(보득불락) 得無量住(득무량주) 住佛所住(주불소주)

다시 또 생각하기를,

‘이러한 선근으로써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일체의 모든 생명)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서

헛되게 지내는 이가 없게 할 것이며,

모든 부처님이 계신 불소(佛所)에서 청정한 믿음의 정신(淨信)이 무너지지 않게 하며,

바른 정법을 듣고서 모든 의혹을 끊으며, 기억하고 잊지 않고 설하신 바 대로 수행하며,

여래가 계신 곳에서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이 청정하며, 무량하고 광대한 대선근(大善根)에 편안히 머물며,

칠재(七財)가 만족하여 빈궁함을 영원히 여의며,

부처님들이 계신 곳을 따라 항상 배워서, 무량하고 수승한 묘선근(妙善根)을 성취하며,

평등하게 오해(悟解)하여 깨달아서 일체지에 머물며,

걸림이 없는 무애안(無碍眼)으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며,

 

모든 상호의 중상(衆相)으로 몸을 장엄하여 결점이 없는 무점결(無玷缺)이며,

말하는 음성이 맑고 아름다워서 정묘(淨妙)하며, 공덕이 원만하며,

제근(諸根, 안이비설신의, 6근)이 조복하여 십력을 성취하며,

선한 마음의 선심(善心)이 만족하여 의지하는 바가 없음에 머무르는 무소의주(無所依住)이며,

무량주(無量住)를 얻어서 부처님이 머무시는 곳에 머물게 하여지이다’라고 합니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見諸衆生(견제중생) 造作惡業(조작악업)受諸衆苦(수제중고) 

以是障故(이시장고) 不見佛(불견불) 不聞法(불문법) 不識僧(불식승) 便作是念(변작시념) 

我當於彼 諸惡道中(아당어피 제악도중) 代諸衆生(대제중생) 受種種苦(수종종고)

令其解脫(영기해탈) 菩薩(보살) 如是受苦毒時(여시수고독시) 轉更精勤(전갱정근)

不捨不避(불사불피) 不驚不怖(불경불포) 不退不怯(불퇴불겁) 無有疲厭(무유피염)

何以故(하이고) 如其所願(여기소원) 決欲荷負(결욕하부) 一切衆生(일체중생) 令解脫故(영해탈고)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보니, 모든 중생들이 나쁜 악업을 짓고서 여러가지의 중고(衆苦, 고통들)을 받으며,

그러한 장애로 인하여 부처님을 보지 못하는 불견불(不見佛)이요,

법을 듣지 못하는 불문법(不聞法)이요,

스님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식승(不識僧)이라!

곧 생각하기를,‘내가 마땅히 저 나쁜 악도(惡道) 중의 중생들을 대신하여 종종고(種種苦, 갖가지 고통)를 받아서

그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리라’고 하나니,

보살이 이러한 고독(苦毒, 지독한 고통)을 받을 때에도 더욱 더 정진하여서

버리지고 피하지도 않는 불사불피(不捨不避)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는 불경불포(不驚不怖)요,

겁내어 물러나지도 않는 불퇴불겁(不退不怯)이요, 고달파하지도 않는 무유피염(無有疲厭)이나니,

어찌하여 그러한 것인가?

그가 소원(所願)한 바대로 결정코 일체 중생들을 하부(荷負)하여 책임지고 해탈시키려는 까닭입니다.

菩薩(보살) 爾時(이시) 作是念言(작시념언) 一切衆生(일체중생) 

在生老病死諸苦難處(재생로병사제고난처) 隨業流轉(수업류전)

邪見無智(사견무지) 喪諸善法(상제선법) 我應救之(아응구지) 令得出離(영득출리) 

보살이 이 때에 념언(念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 듯 말함)하기를,

‘일체 중생들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여러 가지 고난처(苦難處)에서,

업을 따라 떠돌아 헤매이고, 삿된 소견으로 무지(無智)하여 지혜가 없어 선한 선법을 잃어버렸으니,

내가 마땅히 구호하여 영원히 벗어나게 하리라’고 합니다.

 

又諸衆生(우견중생) 愛網所纏(애망소전) 癡蓋所覆(치개소부) 染着諸有(염착제유) 

隨逐不捨(수축불사) 入苦籠檻(입고롱함) 作魔業行(작마업행) 福智都盡(복지도진) 

常懷疑惑(상회의혹) 不見安隱處(불견안은처) 不知出離道(부지출리도)

在於生死(재어생사) 輪轉不息(윤전불식) 諸苦淤泥(제고어니) 恒所沒溺(항소몰닉)

또한 ‘중생들이 애망(愛網, 애욕의 그물)에 전(纏, 번뇌)에 얽매이고, 어리석음의 덮개인 치개(癡蓋)에 덮혀있으며,

모든 유(有, 있음)에 염착(染着, 집착)하여 쫓아다니면서 버리지 못하며,

고통의 농함(籠檻, 옛날에 죄인을 옮길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우리)에 들어가서

마군의 업을 지어 복과 지혜가 도진(都盡)하여 모두 없어지며,

항상 의혹을 품어서 편안한 곳을 보지 못하여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하며,

나고 죽는 생사 가운데에서 쉬지 않고 윤전(輪轉)하여 돌며,

고어니(苦淤泥, 고통의 진흙탕)에 항상 빠져 있으니,

 

菩薩見已(보살견이) 起大悲心(기대비심) 大饒益心(대요익심) 欲令衆生(욕령중생) 悉得解脫(실득해탈) 

以一切善根廻向(이일체선근회향) 以廣大心廻向(이광대심회향) 

如三世菩薩所修廻向(여삼세보살소수회향) 如大廻向經所說廻向(여대회향경소설회향) 

願諸衆生(원제중생) 普得淸淨(보득청정) 究竟成就一切種智(구경성취일체종지) 

보살이 그러한 것을 보고는 큰 대비심을 일으키고, 이익되게 하려는 대요익심(大饒益心)을 일으켜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고자 일체의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며, 광대심으로 회향하나니,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 보살들이 닦은 바와 같이 회향하며

대회향경(大廻向經, 십회향품)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회향하면서 원하기를,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청정함을 얻어서 구경에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할지이다’라고 합니다.

 

보리(菩提)는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 깨달음 또는 앎의 경지를 일컫는 단어 bodhi(बोधि)에서 나왔다. 이는 깨어나다, 알게 되다, 알리다, 알다, 혹은 이해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어근 budh로부터 형성된 추상 명사로, 보제(菩提)라고도 한다.
보리는 부처와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아라한들이 얻었다고 하는 깨달음, 또는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과정을 일컫는다. 이는 우주의 참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보리를 얻은 뒤에는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ㅡ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은 깨달음의 마음. 깨달음을 향한, 혹은 이미 깨달은 마음을 말한다.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나 그것은 오직 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보리심이 일어났을 때 땅이 진동하며 부처님의 법좌까지도 진동한다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중생들을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하기 의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염원(상대적 보리심), 모든 것이 공 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완전히 깨어난 마음(궁극적 보리심)을 말한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간 윤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불쌍한 분들도 부처님의 아들, 딸이 되어 인간과 신들에게 예경의 대상이 된다. - 위키 

 

ㅡ1966년에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라는 구호단체를 만들어서 오늘도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ㅡ증엄 스님은 1937년 5월 4일생으로 증엄 스님은 이 시대가 낳은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스님은 보천삼무(普天三無)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 스님의 3대 강령은,

1, 보천하몰유아불애적인(普天下沒有我不愛的人),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2, 보천하몰유아불신임적인(普天下沒有我不信任的人),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3, 보천하몰유아불원량적인(普天下沒有我不原諒的人),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ㅡ칠재(七財)= 성과(聖果), 깨침과 열반을 얻기 위한 일곱 가지 법의 재물;
① 신재( 信財) 바른 가르침을 믿는 것 

② 계재( 戒財) 계 (戒)를 지키는 것 

③ 참재 (慙財)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
④ 괴재 (愧財)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

⑤ 문재( 聞財) 바른 가르침을 많이 듣는 것
⑥ 사재 (捨財) 모든 것을 버려 보시하는 것 

⑦ 혜재 (慧財) 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 이 일곱 가지 법의 재물이 만족하면 청복(淸福)이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ㅡ淸福(청복)은 무루복(無漏福)이고, 濁福(탁복)은 유루복(有漏福),  
우리가 흔히 복이라고 여기는 것들, 즉 돈 많고, 얼굴 예쁘고, 명예와 권력을 얻고, 지위가 높아지고, 자식들이 잘 되고, 오래 사는 것 등 우리 눈에 보이는 복들이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복들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 소멸해서 없어지는 복들, 그래서 무상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모두 기를 쓰고 이 탁복을 지향하며 산다.
청복은 정반대다. 한정 없이 행복해져버리고, 한가해져버리고, 열려버리는 마음, 그것이 바로 청복이다.
청복은 참으로 맑고 투명해서 결코 우리들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으로는 맛볼 수 없는 복들이다. 

오직, 마음으로, 느낌으로만 알 수 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항상 즐겁고 기쁘고 유쾌한 마음, 그것이 청복이다.

 

ㅡ보통 연기법, 인과의 법칙, 인연의 법칙을 모르는 것을 사견(邪見)이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다리고, 팥 심어놓고 콩 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 인과의 법칙ㆍ인연의 법칙은 내가 어떤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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