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三 十迴向品第二十五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5. 십회향품(十廻向品)   4

 

ㅡ제일(第一)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 2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於非親友(어비친우) 守護廻向(수호회향) 

與其親友(여기친우) 等無差別(등무차별)

何以故(하이고)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入(입) 一切法平等性故(일체법평등성고) 

不於衆生(불어중생) 而起一念 非親友想(이기일념 비친우상) 

設有衆生(설유중생) 於菩薩所(어보살소) 起怨害心(기원해심) 

菩薩(보살) 亦以慈眼視之(역이자안시지) 終無恚怒(종무에노) 

普爲衆生(보위중생) 作善知識(작선지식) 演說正法(연설정법) 令其修習(영기수습)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친구가 아닌 이도 수호하고 회향하기를, 친구와 다름이 없이 평등하고 차별없이 하나니,

어찌 그러할 수 있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의 평등한 성품에 들어간 까닭에,

일념(一念, 잠깐)이라도 중생들이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설사 어떤 중생이 보살의 처소에 와서 원해심(怨害心)을 일으켜 원한으로 해치고자 할지라도

보살은 자안(慈眼, 자비한 눈)으로 보고 결코 무에노(無恚怒)하여 분노하지 않으며,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선지식이 되어 바른 정법(正法)을 연설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닦아 익히게 하나니, 

ㅡ친한 사람, 일가친척, 형제자매, 부모 처자들을 수호하고, 보살피고, 베푸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하는 것으로, 동물들도 너무나 잘합니다. 새들도 멀리 날아 가서 자기 죽음을 무릅쓰고 먹이를 구해서, 자기는 안 먹고, 자기 새끼한테 와서 먹여주고는 또 날아가서, 먹이를 입에 물고는,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와서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것은 일체 동물도 다 잘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야기할 것이 못되는 것으로, 동물들이 오히려 더 잘합니다.

그러나 친우가 아닌 사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내 피붙이와 같이 보살펴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주문입니다.

 

ㅡ비유(比喩)

譬如大海(비여대해) 一切衆毒(일체중독) 不能變壞(불능변괴) 菩薩亦爾(보살역이) 

一切愚蒙(일체우몽) 無有智慧(무유지혜) 不知恩德(부지은덕) 瞋狼頑毒(진랑완독) 

驕慢自大(교만자대) 其心盲瞽(기심맹고) 不識善法(불식선법) 如是等類(여시등류)

諸惡衆生(제악중생) 種種逼惱(종종핍뇌) 無能動亂(무능동란)

비유하자면, 마치 대해(大海)는 일체의 어떠한 중독(衆毒)도 변괴(變壞)하여 변하여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러하여서 일체의 어리석은 몽우(愚蒙)들이 지혜도 없으며, 은덕(恩德, 은혜)도 모르고,

진랑완독(瞋狼頑毒)하여 이리와 같이 완악한 독을 품었으며,

교만(驕慢)하고 자대(自大)하여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그 마음은 맹고(盲瞽)하여 마치 장님과 같이 캄캄하여서 선법(善法)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나쁜 중생들이 갖가지로 못견디게 괴롭혀도,

능히 (그 보살을) 동란(動亂)하게 하여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譬如日天子(비여일천자) 出現世間(출현세간) 不以生盲 不見故(불이생맹 불견고) 

隱而不現(은이불현) 又復(우부) 不以乾闥婆城(불이건달바성) 阿修羅手(아수라수) 

閻浮提樹(염부제수) 崇巖邃谷(숭암수곡) 塵霧煙雲(진무연운) 

如是等物 之所覆障故(여시등물 지소부장고) 隱而不現(은이불현)

亦復不以 時節變改故(역부불이 시절변개고) 隱而不現인달(은이불현) 

비유하자면, 마치 일천자(日天子, 태양)가 세간에 나타났으나,

생맹(生盲, 타고난 장님)들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숨어버리지 않으며,

또 건달바의 성이나, 아수라의 손이나, 염부제의 나무나, 숭암(崇巖, 높은 바위)나,

수곡(崇巖邃谷, 깊은 골짜기)이나, 진무(塵霧, 짙은 안개), 연운(煙雲, 연기 구름) 등과 같은 것으로 

가리워진다고 하여서, 숨어서 불현(不現)하지도 않으며,

또한 시절이 변한다고 (밤이라서) 숨어서 불현(不現)하지도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亦復如是(역부여시) 有大福德(유대복덕) 其心深廣(기심심광) 

正念觀察(정념관찰) 無有退屈(무유퇴굴) 爲欲究竟 功德智慧(위욕구경 공덕지혜) 

於上勝法(어상승법) 心生志欲(심생지욕) 法光普照(법광보조)

見一切義(견일체의) 於諸法門(어제법문) 智慧自在(지혜자재) 

常爲利益(상위이익) 一切衆生(일체중생) 而修善法(이수선법) 

曾不誤起(증불오기) 捨衆生心(사중생심) 

不以衆生(불이중생) 其性弊惡(기성폐악) 邪見瞋濁(사견진탁) 難可調伏(난가조복) 

便卽棄捨(변즉기사) 不修廻向(불수회향)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복덕(大福德)이 있으며,

그 마음이 심광(深廣)하여 깊고 넓으며,

바른 생각의 정념(正念)으로 관찰하여 굽혀서 물러나지 않는 무퇴굴(無退屈)이며,

공덕과 지혜의 구경(究竟)에 이르고자 하며,

마음은 높고 훌륭한 상승법(上勝法)을 구하고자하는 지욕(志欲, 의지)으로 구하며,

법광(法光, 법의 광명)을 두루 비추어 일체의(一切義)의 모든 이치들을 보며,

모든 법문에 지혜가 자재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선법을 닦으며,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잘못 일으키지 않으며, 
중생들의 성품이 폐악(弊惡, 추악)하고 사견(邪見)으로 진탁(瞋濁)하여 성을 내는 (그 마음이) 흐려서,

난가조복(難可調伏, 조복하기 어려움)이라 하여, 문득 포기하여 버리고 회향을 닦지 않는 것이 아니라,

 

但以 菩薩大願甲(단이 보살대원갑주)

而自莊嚴(이자장엄) 救護衆生(구호중생) 恒無退轉(항무퇴전) 

不以衆生(불이중생) 不知報恩(부지보은) 退菩薩行(퇴보살행) 捨菩提道(사보리도) 

不以凡愚(불이범우)共同一處(공동일처) 捨離一切 如實善根(사리일체 여실선근) 

不以衆生(불이중생) 數起過惡(삭기과악) 難可忍受(난가인수)

而於彼所(이어피소) 生疲厭心(생피염심) 

보살은 오로지 대원(大願)의 갑옷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여서 중생을 구호함에 있어서 항상 퇴전(退轉)하지 않나니,

중생들이 은혜 갚을 줄을 모른다 하여 보살행에서 물러나 보살도를 버리지 않으며,

어리석고 우매한 범부들과 한 곳에 함께 있을지라도 일체의 여실(如實)한 선근을 버리지 않으며,

중생들이 삭기과악(數起過惡)하여 잘못을 자주 일으키는 것이 참을 수 없다 하여

그들과 함께 있는 곳에 피염심(疲厭心, 싫증내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何以故(하이고) 譬如日天子(비여일천자) 不但爲一事故(부단위일사고) 

出現世間(출현세간)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亦復如是(역부여시)

不但爲 一衆生故(부단위 일중생고) 修諸善根(수제선근) 

廻向(회향)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普爲救護一切衆生故(보위구호일체중생고) 而修善根(이수선근) 

廻向(회향)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왜냐 하면, 마치 일천자(, 태양)가 한 가지의 일사(一事)만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 역시도 그와 같아서, 한 중생만을 위하여 선근을 닦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구호하기 위하여 선근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如是(여시) 不但爲 淨一佛刹故(부단위 정일불찰고) 不但爲 信一佛故(부단위 신일불고) 

不但爲 見一佛故(부단위 경일불고) 不但爲 了一法故(부단위 료일법고)

起大智願(기대지원) 廻向(회향)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爲普淨 一切佛刹故(위보정 일체불찰고) 普信 一切諸佛故(보신 일체제불고) 

普承事供養 一切諸佛故(보승사공양 일체제불고) 普解 一切佛法故(보해 일체불법고) 

發起大願(기대지원) 修諸善根(수제선근) 廻向(회향)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와 같이 일불찰(一佛刹)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일불(一佛, 한 부처님)만을 믿기 위한 것도 아니며,

일법(一法, 한 법)만을 알기 위하여 대지(大智)의 원력을 일으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들 세계인 일체불찰(一切佛刹)을 두루 청정하게 하려는 것이요,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을 널리 믿고자 하려는 것이요,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을 섬기고 공양하려는 것이요,

일체의 모든 불법들을 두루 알고자 하여서,

큰 대원(大願)을 세워 모든 선근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ㅡ바다는 작은 일렁임에서부터 큰 파도까지, 그 표면은 항상 출렁인다.

그런데 그 출렁임이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는 영향을 주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있다.
이것을 마음의 비유로 인용하면, 출렁이는 의식과 고요한 심층 무의식이 있다고 할수 있다. 
출렁이는 의식은 심층의 무의식의 일면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무(無)라 하는 것이 아니라, 출렁거림을 보면서 깊은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의식의 표층과 고요한 심층의 영역은 단절된 곳이 아니라는 개념으로 마음을 열어두면, 그것이 수행이 된다. - 신명

*바다의 8 가지 공덕 ㅡ 중아함경 035. 아수라경(阿修羅經)
1. 바다는 갑자기 깊어지지 않으니, 수행함이 오래되어야 그 심연에 도달할 수 있으며,
2. 바다가 육지로 넘치지 않으니, 목숨을 버릴지라도 서약한 계율과 배움을 넘어서서는 안되며,
3. 불숙사시(不宿死屍)라. 바다는 죽은 시체와 함께하지 않고 시체나 쓸데없는 것들은 모두 해안으로 밀어내나는 것은, 악법과 부정한 일들과는 함께 머무를 수 없다는 뜻이다.
4. 세간에 수 많은 강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흐르다가 큰 바다에 이르면 그 이름을 버리는 것과 같이,
수행자는 세간의 명리와 차별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5. 강물이 흘러 들어와도, 큰 비가 내려도 바다는 크게 증감이 없으니, 많은 수행자들이 열반에 들어갈지라도 열반의 세계는 넘치지 않는다.
6. 바다는 단지 짠맛 하나인 일미(一味)이니, 수행승은 해탈의 맛 외에는 다른 맛이 있을 수 없다.
7.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들이 있는 것과 같이, 사념처, 칠각지, 팔정도 등의 보배로 마음을 장식하고자 하는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8. 바다는 몸이 큰 생류들이 사는 곳이니, 대심(大心)을 크게 깨우친 수행자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ㅡ무비스님의 일화

어릴 때, 해인사에서 지월스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학인들 선방의 유나스님으로 오래계셨어요.
그 스님은 경을 보는 스님도 아닌데, 어떻게 도량을 거닐다가 그 스님을 만나면 평소에 보아서 고치고 싶었던 것들을 그 만난 학인에게 계속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학인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얼마나 간절하게 이야기하는지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스님이 6ㆍ25직후에 강원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아무 잘 못도 없이 경찰에게 걸렸어요.
그 때는 도민증인데, 스님이 그런 것도 제대로 안 갖추고 다니니까, 무지몽매한 순경들이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얼마나 구타를 했는지 하루 종일 얻어맞은 겁니다. 

그 때는 6ㆍ25직후니까 ‘빨갱이가 혹시 승복을 입고 절에 숨어들지 않았나?’그런 의혹이 참 많았을 때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구타를 해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니까 나중엔 놔 줬어요.
새벽 두 세 시쯤에 절에 올라온 겁니다. “스님 왜 이제야 왔습니까?” 하니까,

상좌들에게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늦게 왔노라고, 그리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정진하는데,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은 그 몸으로 반듯하게 앉아서 대중들과 똑 같이 정진을 했다는 겁니다.

낮에도 그렇게 정진하고 밤에도 정진하고,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조는 사이에 끙끙 앓아서, 상좌들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보니까 온 몸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어서 거의 송장이 다 되다시피 한 그런 상태인데도, 빳빳하게 앉아서 정진시간을 다 채운 스님입니다. 
별명이 자비보살입니다. 그리고 제일 감동스럽게 들은 축원이 그 스님 축원입니다. 그 축원이 듣기 좋아서, 그 스님축원 들으러 절에 가서 예불하곤 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스님이었습니다. 가리킬 지 指ㆍ달 월月, 지월스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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