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0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첫 번째의 경문의 뜻을 장과한 것에서 “이때” 이하부터 제33권 말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15 단락으로 장과한 것에서의 두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면,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앞으로 설할 것이고 현재 설하고 있다(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當說今說)”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10회향의 명목을 바르게 든 분(分)으로, 이후 해당되는 지위에 따라서는 나중에 해석하겠다.
세 번째, 10회향(十迴向)이 10바라밀(十波羅蜜)을 따라 닦아 나아가는 진수분(進修分)을 바르게 설한 분(分) 중에서,
“불자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회향이다”부터 이하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衆生相)을 여읜 회향이라 말하는가(云何爲菩薩摩訶薩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에 이르기까지 이 한 단락에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 해당 단락의 경문의 뜻을 과(科)하는 것이며,
둘째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인데, 이 열 개의 회향 속 장과(長科)에는 180 단락의 경문이 있다.
1. 해당되는 단락의 경문 뜻을 과(科)한다는 것에서, 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의 단락을 10단락으로 장과하면,
1ㅡ1. “불자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이라 하는 것인가?” 이하 “이같은 등의 한량없는 선근(如是等無量善根)”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6바라밀(六波羅蜜)과 4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서 처음으로 회향을 성취함을 밝힌 분(分)이다.
1ㅡ2. “선근을 닦을 때” 이하 “모두 일체지를 얻게 한다(皆令得一切智)”에 이르기까지 14행반의 경문은,
대원(大願)의 염(念)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함을 밝힌 분이다.
1ㅡ3.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이르기까지 33행 반의 경문은,
친소(親疎, 가까이고 멀리함)와 선악에 평등함을 밝힌 분이다.
1ㅡ4.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문다(住佛所住)“에 이르기까지 20행의 경문은,
모든 불법으로 뛰어난 연(緣)을 삼아서 스스로의 자선근(自善根)을 깊이 심어 중생들에게 주고자 원함을 밝힌 분이다.
1ㅡ5.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해탈을 얻게 했다(令得解脫)”에 이르기까지 38행의 경문은,
보살은 악도(惡道)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겪고 그들이 행복할 있도록 할 것을 밝힌 분이다.
1ㅡ6.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 “해탈을 얻게 했다(使到彼岸)”에 이르기까지 38행의 경문은,
보살이 악도(惡道)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들을 대신하여 고통(苦)을 받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1ㅡ7.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하 “무량선근(無量善根)”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보살이 자기의 선근을 통해 모든 중생에게 열 가지의 심종구경락(十種究竟樂, 궁극적 즐거움)을 얻게 함을 밝힌 분이다.
1ㅡ8.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했다(一切衆生斷疑故)”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비록 중생이 비록 많을지라도 보살의 대원은 다성(多聖)을 빌리지 않고 오직 나 한 사람만이 홀로 능히 모두를 제도하고자 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1ㅡ9.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에 이르기까지 31행의 경문은, 보살이 마치 태양이 널리 두루 비추면서도 은혜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중생법(衆生法)에 집착하지 않고 회향함을 밝힌 분이다.
1ㅡ10. “이때” 이하 “게송을 설한다(說頌)”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대중들을 관찰하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두 번째, 경문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이란,
어째서 명칭을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이라 한 것인가?
이 명목의 해석에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 지위에 따라 수행하는 단계의 법을 밝이며,
둘째 바야흐로 근본 지위의 명호를 밝히는 명본위명호(明本位名號)이다.
첫째, 지위에 따라 수행하는 단계의 법을 밝히는 수위수행차제법(隨位修行次第法)를 설명하면,
10주(十住)에서의 초발심주(住)에서는 일체지를 구하여서, 이 보살이 반연하는 10 가지의 십종난득법(十種難得法)을 발하는 마음이니, 이른바 처(處)와 비처(非處) 등의 열가지 여래의 지력(智力)을 마음에서 발하여 부처님의 불가(佛家)에 태어나 부처님의 참된 진자(眞子)가 되는 것이며,
10행(十行)에서는 환희행(歡喜行)을 행하여 대시주(大施主)가 되어서 무릇 소유한 물건들 모두를 능히 은혜롭게 보시하면서도 인색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서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반연을 삼으며,
이 10회향(十迴向)에서는 첫 회향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迴向)이라 이름한 것은 바로 6바라밀과 4무량심으로 반연을 삼는 것이니,
즉 10주와 10행에서 얻은 대지법신(大智法身)의 집착이 없는 무착(無著)의 정행(淨行)으로 광대한 원행(願行)을 일으켜사 생사에 처하여 6바라밀로서 그 행의 첫머리를 삼고, 자ㆍ비ㆍ희ㆍ사(慈悲喜捨)로서 생사에 처해서 사물을 이롭게 하는 연(緣)을 삼는 것이니, 그러한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이 됨을 밝힌 것이다.
즉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구원하여 보호하고, 6바라밀의 출세간법으로 중생상을 여읨을 삼는 것이니,
6(度, 6 바라밀)의 행문이 출세간의 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세운 단계가 총체적으로 10주의 초발심 지위에서 일시에 모두 갖추어진 것이나, 다만 종이에나 대나무 또는 비단에 쓰는 명언(名言)의 차례 때문에, 단락의 나눔이 생긴 것일 뿐, 이 법에 먼저와 나중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10주에서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내는 가운데에서 해문국(海門國)에서 대해를 관할 때 아수라 등의 10왕이 공양 등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회향의 뜻이다.
그러나 교문(敎門)에서의 단계적 승진을 간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그러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배우는 후학자들로 하여금 행이 침체하여져서 나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잇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근본 지위의 명호를 밝히는 명본위명호(明本位名號)를 설명한다면,
또한 대지법신(大智法身)으로 여읨의 이체(離體)로 삼고,
10바라밀과 4무량심으로서 생사에 처하여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소연(所緣,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이 되는 것이니,
즉 지혜의 지체(智體)가 의지함이 없고, 구원하고 보호하는 바에 머묾이 없고, 중생이라는 상(相)이 없어서, 바르게 구원하면서도 작위하는 자가 없는 무작자(無作者)이기 때문이며,
중생이 스스로 진실되게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는 무출몰(無出沒)이기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이 되는 것이다.
이 첫 회향의 법문을 성취함에 있어서는 5 가지의 오연(五緣)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일연(一緣), 법신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스스로 요달하여 명백히 알아서 해타연(解脫緣)을 갖추는 것이며,
이연(二緣), 대지혜 해탈의 연(大智慧解脫緣)을 얻는 것이며,
삼연(三緣), 대원력으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이중생연(利衆生緣)을 갖추는 것이며,
사연(四緣), 10바라밀을 구족한 뛰어난 승행연(勝行緣)을 갖추는 것이며,
오연(五緣),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불사일체중생연(不捨一切衆生緣)이니,
이러한 다섯 가지의 법을 갖추어야 비로소 능히 이 첫 초회향(初迴向)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떻게 단바라밀을 행하고 계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가(云何行檀波羅蜜淨戒波羅蜜)?’는
능히 악법을 버리기에 계의 계체(戒體)가 스스로 청정한 것이며,
‘어떻게 인바라밀을 닦는가(云何修忍波羅蜜)?’는,
시계(施戒, 보시의 계율)가 이미 이루어져서 반드시 인력(忍力)을 닦아야 하나니, 그 때에 보시의 시체(施體)로서 능히 버릴 수 있으며, 또한 계의 계체(戒體)와 더불어 청정한 정인(淨因)이 되지만,
인체(忍體)는 모름지기 가행(加行)으로서 닦아야 하는 것이니, 인(忍)은 남이 능욕하는 것을 막는 것이나, 자사(自捨)하여 스스로의 버림을 말미암지 않는 것이므로 반드시 가행하여서 인(忍)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는가(云何起精進波羅蜜)?’는 인의 인체(忍體)는 스스로 그 분노와 원한을 쉬는 것일 뿐,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기꺼이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름지기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일으키는 것이 이 지위에서의 정진의 뜻이다.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켜 선바라밀에 들어가는가(云何起精進波羅蜜入禪波羅蜜)?’는
정진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부지런히 함에 있어서, 흐트러진 행동으로 상응함이 많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무는가(云何住般若波羅蜜)?’는 선(禪)이 능히 청정한 정혜(淨慧)를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이 대자(大慈)와 대비(大悲)와 대희(大喜)와 대사(大捨)인가?’는 6바라밀은 출세간의 마음이 많아지기 때문에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법으로써 모든 행이 균형되고 조화 될 수 있도록 가지(加持)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6도(度, 6바라밀)와 4무량심을 균등하게 함으로써 지혜와 자비가 그 처소를 얻어 이 첫 회향의 법문을 이루는 것이다.
이 회향의 법문은 10신ㆍ10주ㆍ10행에서부터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지만, 이 본위(本位, 십회향문)에 이르러야 비로소 제등(齊等)하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만약 해행문(解行門)으로는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만약 이지문(理智門)으로 한다면, 모두가 선후(先後)와 시종(始終)이 없는 법인 것이다.
이하의 해당되는 지위에서 10도(度, 10 바라밀)로 다스리는 법이 있음은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으니, 오로지 경문에서 설하는 바의 행으로써 행해야 하리라.
‘어찌하여 오로지 6바라밀로만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삼는 것인가?(云何但以六波羅蜜,爲利生行?)’는
대비문(大悲門)에서 다만 중생이 세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니, 세간을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생사 가운데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하 게송에서 56행의 게송은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救護衆生離衆生相迴向)을 읊은 것이니,
이 한 단락 안에는 보살이 행하는 행이 균형되고 조화로워서 처소를 얻음을 밝힌 것이다.
2행 1게송이 경문에 스스로 갖춰져 있으니 뜻을 얻어 행으로써 행해야 한다.
이 한 단락은 단라바밀(檀波羅蜜, 보시바라밀)을 주(主)로 삼고 그 나머지의 9 바라밀을 반(伴, 보조)으로 삼는다.
선재 동자가 죽향(鬻香) 장자의 명호인 청련화로써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은, 그 이름 아랫 글자의 뜻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그 가운데 행한 바의 법칙은 죽향장자가 향을 파는 사람이라서 능히 모든 향을 가려내고 모든 향을 화합해서 사람에게 파는 것으로써 이 지위의 행을 나타낸 것이니, 앞에서 이미 해석한 것이다.
제2의 불괴회향(不壞廻向)은 계(戒)바라밀로서 그 체(體)를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반(伴, 보조)을 삼는다.
선재동작 강사(舡師)의 명호인 바시라(婆施羅)로써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은, 한역하면 자재(自在)이니,
누각성(樓閣城) 문 밖의 해안 위에 머물러서 대비당(大悲幢)이 행하는 법문을 닦는 것은, 이 회향위에서 대비를 계체(戒體)로 삼아 일체 생사의 바다를 보아서, 일체 대지혜의 바다를 얻게 하여 생사 바다에 거처하면서 자재로움을 얻기 때문에, 그 명칭이 자재임을 밝힌 것이니, 널리 경전에서 설한 바 그대로이다.
또한 계의 계체(戒體)가 바다의 성품이 청정해서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는 불숙사시(不宿死屍)힌 것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법신이 본래 더러운 번뇌의 오염과 더러운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자세한 뜻은 경문대로이다.
경문에서 “불자야,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불괴회향이 되는가(佛子,云何爲菩薩摩訶薩不壞迴向者)?”한,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둘로 나누면,
첫째는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째는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이 한 단락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불자야” 이하 “게송을 설하다(說頌)”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6 단락으로 과(科)하겠다.
1. “불자야” 이하 “무량무수행(無量無數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행반의 경문은,
보살이 믿음의 불괴(不壞)를 얻음을 밝힌 분(分)이다.
2. “불자야” 이하 “대원이 다 만족하게 하다(大願悉使滿足)”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보살이 주지(住持)하면서 중생을 교화함을 밝힌 분이다.
3. “보살이 이와 같이” 이하 “아승기의 옷이 그 땅에 널려 있다(阿僧祇衣敷布其地)”에 이르기까지 33행의 경문은,
의과보(依果報)의 장엄을 들어 천명함을 밝힌 분이다.
4. “불자야” 이하 “최상의 신해심(信海心) 회향”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위와 같은 의과(依果)의 소유장엄(所有莊嚴)으로써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모두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기 위한 것임을 밝힌 분이다.
5. “불자야” 이하 “제2 불괴회향(第二不壞迴向)”에 이르기까지 24행의 경문은, 보살이 능히 생사를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모든 업에 동사(同事)하여 일체지의 순백 청정한 백정법(白淨法)을 구하여 항상 버리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6. “보살마하살” 이하 “게송을 설하다(說頌)”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묘법(妙法)에 대하여 의심을 끊고서 들은 바대로 스스로 요달하여 능히 상(想)의 힘을 따라서 일체의 찰(刹)에 들어가 중생을 널리 비춤을 밝힌 분이다.
이하 50행의 게송에서 2행 1게송이 모두 해당되는 지위 안에서의 회향을 행할 바의 행을 읊은 것으로, 경문에 스스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으니 경문대로 행하도록 하라.
두 번째의 경문에 따라 해설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어찌하여 불괴회향(不壞迴向)이 되는 것인가?
비록 생사의 바다를 따르지만 법신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법신(不壞法身)이며,
비록 분별을 따르지만 작위 없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무작(不壞無作)이며,
비록 온갖 견해를 따르지만 법안(法眼)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법안(不壞法眼)이며,
비록 온갖 행을 따르지만 보리심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보리심(不壞菩提心)이며,
비록 중생을 교화하고 성숙하게 하여 모두 불과에 이르게 하지만 몸과 마음의 의주(依主)함이 없는 문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신심무의주문(不壞身心無依住門)이며,
비록 일체 중생을 따라 그 근기를 알아 사(事)를 같이 하지만 계의 체(體)가 늘 스스로 순백 청정함을 무너뜨리지 않는 불괴계체항자백정(不壞戒體恒自白淨)이기 때문에 그 명칭이 ‘불괴회향(不壞迴向)’인 것이며,
또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성취나 파괴가 없는 무성괴체(無成壞體)인 것이다.
이와 같은 아승기보(阿僧祇寶)라는 것은 근본행 가운데에서의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의보과(依報果)이며,
아승기화(阿僧祇華)라는 것은 행으로써 능히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여 온갖 선(善)을 꽃피우는 의과(依果)이며,
아승기만(阿僧祇鬘)이라는 것은 인(忍)의 과보(果報)이며,
아승기의(阿僧祇衣)라는 것은 참괴(慙愧)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개(阿僧祇蓋)라는 것은 대자비가 낳은 것이며,
아승기번(阿僧祇幡)이라는 것은 회향심으로 낳은 것이며,
아승기당(阿僧祇幢)이라는 것은 행의 물러나지 않는 불퇴행의 힘을 따라서 생긴 것이며,
아승기장엄구(阿僧祇莊嚴具)라는 것은 모든 조도법(助道法)이 낳은 바이며,
아승기급시(阿僧祇給侍)는 겸손한 공경으로 오만을 여읨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 도식지(阿僧祇 塗飾地)라는 것은 계품(戒品)으로부터 생긴 것이며,
아승기 도향(阿僧祇 塗香)이라는 것은 계가 모든 법에 두루함으로써 생긴 것이며,
아승기 말향(阿僧祇 末香)이라는 것은 과거에 꽃향을 뿌린 과보로써 생기 것이니,
대략의 행으로써 그 과(果)를 아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하나하나가 서로 비슷하니, 물류(物類)에 준하는 뜻으로 이해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일찍이 같은 물건들로 불(佛)ㆍ법(法)ㆍ승(僧)에게 공양할 때, 이와 같은 과(果)를 획득한 것이니, 나머지는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이 회향의 체(體)는 가령 경전에서 “여실한 법인(法印)으로 모든 업문(業門)을 인(印)치고,
법의 무생(無生)을 얻어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물며,
무생의 성품을 관하여 모든 경계를 인(印)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호념(護念)으로 발심해서 회향하는 것이니,
모든 법성과 더불어 상응하는 회향과 작위 없는 무작법(無作法)에 들어가 지은 바를 성취하는 방편회향(方便迴向)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불괴회향(不壞迴向)의 대체(大體)인 것으로,
이는 지혜가 불괴(不壞, 파괴되지 않음)이고, 생사가 불괴이며, 대원(大願)이 불괴이고, 대자비가 불괴로서 모두가 여실한 때문이다.
가령 10주위에서는 오염을 여읜 대자비로서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문국(海門國)의 해운(海雲)비구로서 표상을 삼고,
10행위에서는 곧 공교(工巧)와 산술(算術)을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석천(釋天)동자가 물가에서 하는 산인법(算印法)으로 표상을 삼은 것이니, 행이 강물의 흐름이 되어서 바다로 돌아감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10회향위에서는 세속에 처한 대자비를 계체(戒體)로 삼기 때문에 곧 해강사(海舡師)의 자재함으로써 표상을 삼은 것이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20권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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