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三 兜率宮中偈讚品第二十四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ㅡ 4
ㅡ북방(北方)의 광명당(光明幢) ㅡ 묘금(妙金)세계 ㅡ 위의당불(威儀幢佛)
ㅡ광명당(光明幢)보살이란, 대자비가 정진의 체(體)가 되는 것에 근거한 것이니,
생사의 밤에 길이 처해서 지혜로써 광명을 발하기 때문이다.
ㅡ묘금(妙金)세계란, 정진으로 세속을 이롭게 하면서도 게으름이 없어서 진리를 훼손하지 않고,
황중(黃中)으로 복을 이루는 것이 모두 금색임을 밝힌 것이다.
ㅡ위의당불(威儀幢佛)은 북방을 주재하는 불과(佛果)이니, 신위(信委) 중 북방의 위의지불(威儀智佛)과 명호가 같다.
이는 북방의 사범위(師範位)를 주재하는데,
이 위의가 펼쳐져서 어린 아이를 제접하기 때문에 행을 잡아서 과(果)의 호칭을 삼은 것이다.
爾時(이시) 光明幢菩薩(광명당보살) 承佛神力(승불신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광명당(光明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설하였다.
人間及天上(인간급천상) 一切諸世界(일체제세계)
普見於如來(보견어여래) 淸淨妙色身(청정묘색신)
인간과 천상과 일체의 모든 세계에서
널리 여래의 청정(淸淨, 깨끗하다, 텅 비었다)하고도 미묘한 묘색신(妙色身)을 보는도다.
ㅡ부처님을 인간 세상에서 보고, 천상에서도 보고, 모든 세상에서도 본다는 것은,
산하대지, 삼라만상, 두두 물물, 산천초목에서 곧 여래를 본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아니고, 한 마음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닌,
이 드넓은 우주 안의 모든 존재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는다는 이치로서 그것이 바로 여래의 몸, 진리라는 뜻입니다.
여래는 곧 진리 그 자체입니다. 진리는 이 세상 존재하는 것이나, 존재하지 않는, 유형(有形)ㆍ무형(無形)의 그 어디에도 그 존재의 진실한 바른 이치가 다 있다는 것으로, 여래(如來)라고 한 것입니다.
譬如一心力(비여일심력) 能生種種心(능생종종심)
如是一佛身(여시일불신) 普現이 一切佛(보현일체불)
비유하자면, 마치 한 마음의 일심력(一心力)으로
능히 갖가지 마음의 종종심(種種心)을 낼 수 있는 것과 같이
한 부처님의 일불신(一佛身)으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두루 나타내시는도다.
ㅡ우리가 어제ㆍ그제 쓴 것과 작년ㆍ재작년에 쓴 마음은 그만 두고라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마음을 쓴 것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경계를 만날 때마다, 순간순간 새로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일으키지 않으려 해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 우리 마음의 구조이고 그것이 전부 한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일심력(一心力)으로 능히 갖가지 마음의 종종심(種種心)을 갖가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장갑을 끼고 사물을 만질 경우, 무엇을 만지든, 누구의 몸을 만지든지 나는 그저 장갑을 만질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계를 분별해서 이해하고, 거기서 어떤 작용을 하더라도 전부 나의 한마음이 들어서 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이 없는 사물을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그 사물을 내 마음이 인식함으로 해서 비로소 존재하는 겁니다.
내 마음의 세계에서는 내가 인식함으로부터 비로소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인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저~ 산천초목을 인식함으로부터 있는, 그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菩提無二法(보리무이법) 亦復無諸相(역부무제상)
而於二法中(이어이법중) 現相莊嚴身(현상장엄신)
보리(菩提)에는 두 가지의 이법(二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역시 제상(諸相, 여러 모양)도 없지만
두 가지의 이법(二法) 가운데에서 장엄신(莊嚴身)을 나타내시는도다.
ㅡ보리(菩提), 깨달음에는 두 가지로 차별된 이법(二法)이 없고 상도 없지만,
차별된 이법(二法)의 여러 가지의 형상으로서 보리의 장엄신 차별하게 나타내는도다.
了法性空寂(요법성공적) 如幻而生起(여환이생기)
所行無有盡(소행무유진) 導師如是現(도사여시현)
법성(法性, 법의 성품)이 공적한 것을 분명히 아시지만, 마치 요술과 같이 생기(生起)하시어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이 무진(無盡)하여 다하지 않나니,
도사(導師, 여래, 진리)께서는 이렇게 나타내시는도다.
ㅡ여래는 법성이 공적한 그 당체입니다. 眞空妙有(진공묘유), 참으로 공한 가운데 미묘하게 있는 것이고 또 空寂靈知(공적영지), 공적해서 찾아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령스럽게 추운지 더운지 다 알고, 해가 뜨는지 지는지 다 알고,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압니다. 그 작용이 활발발 하고 왕성하지만 그 실체를 찾아보면 또한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渾大有(혼대유)입니다.
이 세상에 꽉 차 있는 이것을 석가모니가 무아(無我)라고 소승 불교에서는 불교는 無我라고 하는데,
“無我” 라고 주장하는 그 당체는 부정할 수 없는, 아(我)가 있어서 無我ㆍ無我라고 하는겁니다.
無我는 소승불교에서 하는 주장이지, 불교의 궁극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無我觀(무아관), 내가 없다.’고 관찰해버리는 것이 자신의 괴로움을 없앤다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좋은 치료법이긴 합니다.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法身悉淸淨(법신실청정)
隨其所應化(수기소응화) 普現妙色身(보현묘색신)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법신이 모두 청정하시나
그 교화에 응하는 중생을 따라 묘색신(妙色身)을 널리 나타내시는도다.
ㅡ실청정(悉淸淨), 없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공정(空寂)한 가운데 영지(靈知)하여서 신령스럽게 아는 그것이 청정(淸淨)이고, 입니참 나ㆍ참사람ㆍ참마음입니다.
원효스님은 神解(신해)! 신비로울 神ㆍ이해할 解. “신비하게 안다.”고 했습니다.
손해인지 이익되는 것인지를 금방 계산해서 아는 그것이 그야말로 신해(神解)하는 한 물건인 것입니다.
如來不念言(여래불념언) 我作如是身(아작여시신)
自然而示現(자연이시현) 未嘗起分別(미상기분별)
여래께서는 '내가 이런 몸 짓는다'고 염언(念言)하여 생각하고 말씀하지 않으시나,
자연히 시현(示現)하여 나타내 보이시며, (그러함에)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시는도다.
法界無差別(법계무차별) 亦無所依止(역무소의지)
而於世間中(이어세간중) 示現無量身(시현무량신)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 법성= 진여= 참나)에는 차별이 없으며 또한 의지하는 바도 없지만,
그러나 이 세간에서는 무량하게 많은 무량신(無量身)을 나타내어 보이시는도다
佛身非變化(불신비변화) 亦復非非化(역부비비화)
於無化法中(어무화법중) 示有變化形(시유변화형)
부처님의 불신(佛身)은 변화한 것도 아니요, 또한 변화하지 않은 것도 아니나,
변화가 없는 무화법(無化法) 가운데 변화한 모습의 변화형(變化形)이 있도다.
ㅡ우리들 본성은, 진여자성은 하나이지만, 천 100억 화신, 천변만화(千變萬化) 성(性,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가운데 우리가 표현하는 삶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바뀌고 있고 또 여러 가지로 바뀌어야 마땅한 것으로,
그야말로 굳어 있거나, 변화가 없거나, 작용이 없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죽은 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서 잘 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正覺不可量(정각불가량) 法界虛空等(법계허공등)
深廣無涯底(심광무애저) 言語道悉絶(언어도실절)
바른 깨달음의 정각(正覺)은 헤아릴 수 없는 불가량(不可量)한 것이요,
법계와 허공과 같이 평등하고, 심광(深廣)하여 깊고 넓어서 그 끝이 없는 무애저(無涯底)이라
언어(言語)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모두 끊어진 언어도절(言語道絶)이로다.
ㅡ언어도(言語道)가 다 끊어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音聲敎體(음성교체)라,
이치를 표현하는데에는 언어가 제일인, 언어가 교화의 체입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불합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일 가까운 것이 언어인 것입니다.
如來善通達(여래선통달) 一切處行道(일체처행도)
法界衆國土(법계중국토) 所往皆無碍(소왕개무애)
여래께서는 일체의 모든 곳에 나아 가서 행하는 일체처소행도(一切處行道)를 통달하시어
법계의 모든 국토에 나아가심에 장애가 없으시도다.
ㅡ무비스님의 일화
우리나라에서 딱 한명의 중을 꼽으라면 나는 춘성스님을 꼽겠습니다.
무소유ㆍ무소유해도 정말 그 스님같은 무소유가 없습니다.
80객인데 당신 방이 따로 없고, 당신 이부자리가 따로 없어서, 큰 방에서 같이 정진하다가 3경 치면 어정어정 걸어서 탁자 밑에 가서, 거기에서 당신 목침하나 들고 와서 당신 깔고 앉았던 방석 배에 착 걸치면 그대로 주무십니다. 80객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80먹은 노인이 대중들하고 한방에서 목침하나 뿐이고 당신 깔고 앉았던 방석에 걸치면 주무시는 겁니다.
그것도 한 시간쯤 누웠다가 대중들이 다 잠 들었다 싶으면 다시 일어나서 마당에 나간다든지 법당에 올라가서 한 두시까지 정진하다가 대중들이 깨기 전에 다시 내려와서 누웠던 자리에 살며시 들어가서 누워서 자는 척하는 겁니다.
정말 탈속하고, 진정 무소유로 살았던 스님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스님의 법문이 "봄 바람이 시원하게 코끝을 스치니까 '살아있는 석가가 코끝을 스치는구나!'
그야말로 '춘풍(春風), 봄바람 끝에 석가가 춤을 춘다'고 옛 선시(禪詩)와 같이 설법하시더라고요.
사실 설법도 아닌, 그냥 앉아서 평소 말씀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ㅡ세간(世間)
세(世)는 시간을, 간(間)은 공간을 의미하며,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는 것에는, 필연적인 원인과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2 가지의 원인이 있다.
필연적인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어쩔 수 없는 업보로 생기는 결과로서의 세간을 뜻하고,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은 한계 지어질 아무런 필연적인 원인 없이 이미 인과관계의 멍에를 벗어난 해탈경지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생겨난 세간을 뜻한다.
2종세간은 중생(衆生) · 비중생(非衆生)의 2종세간 또는 유정세간(有情世間) · 기세간(器世間)의 2종세간을 말하며,
3종세간은 화엄종의 기세간(器世間) · 중생세간(衆生世間) ·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또는 중관학파와 천태종의 중생세간(衆生世間) · 국토세간(國土世間) · 5온세간(五蘊世間)으로 나눈다.
3종세간(三種世間), 동일한 하나의 세간 즉 세계를 3 측면, 3가지 관점에서 보아서 3 유형으로 나눈 것으로,
세간(世間)은 무위이자 무루인 출세간(出世間)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유루 · 무루의 유위의 세계를 말한다.
이 중 기세간은 중생을 수용하는 세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대지 등의 물질세계를 뜻하고,
중생세간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변천하고 피차가 서로 간격이 있는 세계로서 오음(五陰, 오온五蘊)으로 구성되며, 인간·천상·지옥 등으로 존재양상에 차별이 있다.
지정각세간은 부처나 보살이 방편으로 열어 보이는 세계로, 부처의 대지혜로써 치우친 견해를 여의고 세간과 출세간의 만법(萬法)을 두루 아는 세간이다.
또한 천태종에서는 중생세간·국토세간(國土世間)·오음세간(五陰世間)으로 분류하는데,
국토세간은 화엄종의 기세간과,
오음세간은 중생세간과 같은 것이며,
오음세간은 중생세간과 국토세간을 다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등 5온의 구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생겨나는 세간을 뜻한다.
ㅡWhy Buddhism is True by Robert Wright (왜 불교가 진실한 것인가! ㅡ 로버트 라이트) Page232
Emptiness, roughly speaking, the idea that things don't have essence. And the perception of essence seems to shaped by the feelings; the essence of anything is shaped by the feeling it evokes. It is when things don't evoke much in the of feelings ㅡ that we see these things as 'empty' or 'formless' . At leaset, that't my view, a view that draws support from psychology and from the testimony of some adept meditators. ~~
Our feelings are in one sense or another dubious guides to reality.
어림잡아 말하자면, '공(空)'이란 사물에 본질이 없다는 개념으로, 사물의 본질 본질(정수)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지각)은 감정에 의해 형성되는 듯합니다. 즉, 어떤 것의 본질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감정(feelings)이 불러일으키는 것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사물에 대한 별다른 (좋다, 싫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어 있다는 공(空)'이라고 거나 '형태가 없다는 무형(無形, 무상 無相)'이라고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과 숙련된 명상가들의 증언이 뒷받침하는 저 (로버트 라이트)의 견해입니다. ~ 생락 ~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의 감정(feelings)은 현실을 파악하는 데 있어 그리 믿을 만한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ㅡ신화엄경론, 무비스님, 다움과 위키 등의 설명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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