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三 兜率宮中偈讚品第二十四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ㅡ 2
如此世界(여차세계) 兜率天宮(도솔천궁) 諸菩薩衆(제보살중) 如是來集(여시래집)
十方一切(시방일체) 兜率天宮(도솔천궁) 悉有如是(실유여시) 名號菩薩(명호보살)
而來集會(이래집회) 所從來國(소종래국) 諸佛名號(제불명호) 亦皆同等(역개동등)
無有差別(무유차별)
이 세계의 도솔타 천궁에 이러하게 보살대중들이 내집(來集)하여 모인 것과 같이
시방 세계의 모든 도솔타 천궁에서도 이러한 명호(名號)의 보살들이 내집(來集)하여 모여 있었으니,
그 떠나 온 나라와 부처님들의 명호가 모두 같아서 차별이 없었다
爾時(이시) 世尊(세존) 從兩膝輪(종량슬륜) 放(방) 百千億那由他 光明(백천억나유타 광명)
普照十方(보조시방) 盡法界虛空界一切世界(진법계허공계 일체세계)
彼諸菩薩(피제보살) 皆見(개견) 於此佛(어차불신변상) 此諸菩薩(차제보살)
亦見(역견) 於彼一切如來神變之相(어피일체여래신변지상)
그때 세존께서 양슬륜(兩膝輪, 두 무릎)에서 백천억 나유타의 광명을 놓으시어,
시방의 온 법계와 허공계를 두루 비추시니,
저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이 부처님의 신변상(神變相, 신통 변화하시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었으며,
이 세계의 보살들도 저 부처님의 신변상(神變相, 신통 변화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ㅡ10신에서 발 밑의 족하륜(足下輪)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신(信, 믿음)을 기초로 삼는 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10주에서 발가락 끝의 족지단(足指端)으로 광명을 놓은 것은, 성위(聖位)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을 밝힌 것이며,
10행에서 발 등의 족부(足趺) 광명을 놓은 것은 성성(聖性)의 법신에 의지해 행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며,
10회향에서 무릎의 슬상(膝上) 광명을 놓은 것은, 무릎은 사람이 앉았다, 일어났다, 돌렸다, 굽혔다, 폈다 하는 자재롭게 한다는 것에 말미암는 바이니, 이는 이 회향위의 법문이 진(眞)을 돌이켜 세속에 처해서 해탈하여 물듦이 없는 무염(無染)의 대지(大智)와 비원(悲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함에, 생사에 처하여서도 항상 열반이고, 열반에 처해서도 생사와 함께하는 것에 걸림없이 자재롭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광명을 놓는 처소로써 나타낸 것이며, 10지에서의 미간은 중도(中道)의 과광(果光)을 나타낸 것이다.
ㅡ무릎에서 광명을 놓는다는 것은 회향의 의미입니다. 무릎이 잘 움직여져야 몸이 원활하게 앉고ㆍ눕고ㆍ서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원활하듯이, 사회적으로 돈을 벌었다. 명예를 얻었다. 공부를 많이 했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밖을 향해서 돌아가야 되는데 그것이 들어오기만 하고 정체되어 나가지 않으면 바로 죽음입니다. 호흡도 들이시는= 회, 내 쉬는=향, 회ㆍ향입니다. 공부도, 돈도, 자기 실력과 능력도 회향해서 모든 것들을 원활하게 계속 돌려야 진리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고, 곧 불교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如是菩薩(여시보살) 皆與 毘盧遮那如來(개여 비로자나여래) 於往昔時(어왕석시)
同種善根(동종선근) 修菩薩行(수보살행) 悉已悟入(실이오입) 諸佛自在(제불자재)
甚深解脫(심심해탈) 得 無差別法界之身(득 무차별법계지신) 入一切土(입일체토)
而無所住(이무소주) 見無量佛(견무량불) 悉往承事(실왕승사) 於一念中(어일념중)
周行法界(주행법계) 自在無碍(자재무애) 心意淸淨(심의청정) 如無價寶(여무가보)
無量無數(무량무수) 諸佛如來(제불여래) 常加護念(상가호념) 共與其力(공여기력)
到 於究竟第一彼岸(도 어구경제일피안) 恒以淨念(항이정념) 住無上覺(주무상각)
念念恒入(염념항입) 一切智處(일체지처) 以小入大(이소입대) 以大入小(이대입소)
皆得自在(개득자재) 通達無碍(통달무애) 已得佛身(이득불신) 與佛同住(여불동주)
獲一切智(획일체지) 從一切智(종일체지) 而生其身(이생기신) 一切如來(일체여래)
所行之處(소행지처) 悉能隨入(실능수입) 開闡(개천) 無量智慧法門(무량지혜법문)
到(도) 金剛幢大智彼岸(금강당대지피안) 獲金剛定(획금강정) 斷諸疑惑(단제의혹)
已得(이득) 諸佛自在神通(제불자재신통) 普於 一切十方國土(보어 일체시방국토)
敎化調伏(교화조복) 百千萬億無數 衆生(백천만억무수 중생) 於一切數(어일체수)
雖無所着(수무소착) 善能修學(선능수학) 成就究竟(성취구경) 方便安立(방편안립)
一切諸法(일체제법) 如是等(여시득) 百千億那由他(백천억나유타) 不可說 無盡淸淨(불가설 무진청정)
三世一切(삼세일체) 無量功德藏(무량공덕장) 諸菩薩衆(제보살중) 皆來集會(개래집회)
在於佛所(재어불소) 因光所見(인광소견) 一切佛所(일체불소) 悉亦如是(실역여시)
이 모든 보살들은 지난 옛적에 비로자나 여래와 함께 선근을 심으면서 보살행을 닦았으며,
무두가 이미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고 심오한 해탈에 오입(悟入)하여 깨달아 들어갔으며,
무차별한 법계의 몸을 얻었으며, 일체의 모든 국토에 들어가되 머무는 바가 없는 무소주(無所住)이며,
무량한 부처님께 모두 나아가서 승사(承事)하여 섬겼으며,
일념(一念, 잠깐) 동안에 걸림없고 자재하게 법계를 주행(周行)하여 다니며,
마음이 청정하여 마치 값을 따질 수 없는 무가보(無價寶)와 같으며,
무량하고 무수한 부처님들께서 항상 호념하시어 모두 가피하시어 힘을 주시니,
구경제일(究竟第一)의 피안(彼岸,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항상 깨끗한 생각의 정념(淨念)으로 위없는 깨달음의 무상각(無上覺)에 머무르며,
생각생각의 염념(念念)마다 항상 일체지처(一切智處)에 들어가나니,
작은 것으로 큰 것에 들어가는 이소입대(以小入大)이기도 하고,
큰 것이 작은 것에 들어가는 이대입소(以大入小)하되, 모두 자재하여 막힘이 없는 통달무애(通達無碍)하며,
부처님 불신(佛身)을 얻어서 부처님과 함께 동주(同住)하여 머물며,
일체지(一切智)를 얻어서 일체지로부터 그 몸을 내었으며,
일체의 모든 여래들께서 행하시는 소행처(所行處)에 모두 따라 들어가서 무량한 지혜의 법문을 개천(開闡)하여 활짝 열었으며,
금강당(金剛幢)의 대 지혜의 피안(彼岸)에 이르러서 금강정(金剛定, 금강 삼매의 선정)을 얻어 모든 의혹을 끊었으며,
이미 모든 부처님들의 자재한 신통을 얻어서 널리 모든 시방의 국토에서 백천만억의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나,
그러한 일체의 모든 수(數)에 집착하지 않으며,
능히 수학(修學)하여 닦고 배워서 구경을 성취하여서 방편으로 일체의 모든 제법(諸法)을 안립(安立)한 보살들이었다.
이러하게 백천억 나유타의 말할 수 없고 무변하게 청정한 삼세 일체의 무량 공덕장(公德藏)의 보살 대중들이 내집(來集)하여 모여서 부처님의 불소(佛所)에 있었으니,
광명으로 인하여 볼 수 있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불소(佛所)도 역시 이와 같았다.
ㅡ이 모든 보살들이 누구로부터 발심한 것인가?(諸菩薩從誰發心)를 밝힌다면,
모두가 스스로의 자심(自心)이 비롯함이 없는 분별무명(分別無明)을 발심의 시초로 삼아서, 이 비롯함이 없는 무시무명(無始無明)이 대원경지(大圓境智)가 된다는 것을 요달한 까닭에 시방의 비로자나 여래와 더불어 선근이 같은 것이니,
만약 이 지혜를 여의었다면 성불할 기약이 없을 것이며, 견불(見佛)할 날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경전에서 “이와 같은 보살들 모두는 비로자나 여래와 더불어 과거에 선근이 같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자기의 무명을 요달하여 대지혜의 체(體)를 성취함으로써 모든 부처님께서 이 지혜화 함께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동방(東方)의 금강당(金剛幢) 보살 ㅡ 묘보(妙寶)세계 ㅡ 무진당불(無盡幢佛)
금강당이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앞의 10행에서 보살을 임(林)이라 이름한 것은 행의 그늘을 드리움이 넓고 많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며,
이 지위의 보살을 당(幢)이라 칭한 것은 생사의 대해(大海)에 처해서 대자비의 행이 능히 일체 중생의 번뇌를 타파하면서도 스스로의 지혜는 기울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0행은 행(行)으로써 스스로를 낮추어 원(怨)을 융화하는 뜻임을 밝힌 것이며,
10회향은 대지혜가 굳고 강해서 자비를 따라 원(怨)을 타파하는 것이 자재롭다는 뜻을 밝힌 것이니,
이는 단(檀, 보시)바라밀의 행에 근거한 것이다.
ㅡ좇아온 국토를 묘보(妙寶)세계라 한 것은, 묘한 법으로 중생들에게 널리 베푸는 것이 고귀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며,
ㅡ무진당불(無盡幢佛)이란 이 10회향 대자비의 지위에서 베푸는 바가 다함이 없음으로써 불과를 성취한 명호를 밝힌 것이니, 그 베풂은 아래의 회향품(迴向品)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爾時(이시) 金剛幢菩薩(금강당보살) 承佛神力(승불신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ㅡ'시방을 관찰한다는 관시방(觀十方)'이란, 일체의 뜻이 같고 다름을 관하는 것이며,
또한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법이 동일해서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如來不出世(여래불출세) 亦無有涅槃(역무유열반)
以本大願力(이본대원력) 示現自在法(시현자재법)
여래는 세상에 나지도 않으시는 불출세(不出世)이시요, 열반에도 들지 않으시나,
본래의 대원력(大願力)으로 자재법(自在法)을 시현(示現)하여 나타내시는도다.
是法難思議(시법난사의) 非心所行處(비심소행처)
智慧到彼岸(지혜도피안) 乃見諸佛境(내견제불경)
이 법은 사의하기 어려운 난사의(難思議)한 것이요, 마음으로 요량하여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라,
지혜로 피안(彼岸)에 이른다면 마침내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를 보게 되리라.
色身非是佛(색신비시불) 音聲亦復然(음성역부연) → 금강경의 이치
亦不離色聲(역불리색성) 見佛神通力(견불신통력) → 화엄경의 이치
색신(色身, 육신)은 부처가 아니요, 음성 역시도 그러하거늘,
색신과 음성을 떠나서 부처님의 신통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로다.
ㅡ이것은 금강경의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만약 색신이나 음성으로 여래를 보고자 한다면, 이는 사도를 행하는 것이라, 여래를 볼 수 없다'의 내용과 같은 뜻입니다.
화엄경은 종합적인 불교이기 때문에 소승교ㆍ대승시교ㆍ대승종교ㆍ대승돈교ㆍ일승원교가 전부 포함 되어있습니다.
유마경이나 법화경은 소승교를 사정없이 배제하지만, 화엄경도 경향이 가끔 있긴 지만, 큰 흐름은 소승 교리를 모두 포용해서 융화하는 것입겁니다. 그래서 10지 품에는 소승 교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ㅡ무비스님
少智不能知(소지불능지) 諸佛實境界(제불실경계)
久修淸淨業(구수청정업) 於此乃能了(어차내능료)
지혜가 적은 소지자(少智者)는 부처님의 질실한 실경계(實境界)를 알지 못하나니
오랫동안 청정한 업을 닦은 후에야 마침내 이를 분명히 알수 있으리라.
正覺無來處(정각무래처) 去亦無所從(거역무소종)
淸淨妙色身(청정묘색신) 神力故顯現(신력고현현)
정각(正覺)은 오는 곳도 없는 무래처(無來處)이요, 가는 곳 역시도 없지만
(부처님은 오신 곳도 없고 가시는 곳도 없으시나)
신력(神力)으로 청정하고 미묘한 묘색신(妙色身)을 현현(顯現)하여 명백하게 나타내 보이시는도다.
ㅡ앞에서는 여래의 출신과 열반 등등을 이야기하였고, 여기는 깨달음의 정각(正覺)을 말하고 있습니다.
無量世界中(무량세계중) 示現如來身(시현여래신)→ 작용
廣說微妙法(광설미묘법) 其心無所着(기심무소착) → 적멸하고 차별이 없는 자리
무량한 세계 가운데 여래신(如來身)을 시현하여 나타내 보이시어
미묘한 법을 광설(廣說, 자세히 설함)하시나, 그 마음은 집착이 없는 무소착(無所着)이로다.
ㅡ여래신(如來身)은, 진리ㆍ원리, 우주의 존재원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표현할 수 있으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고정 되어있는 것이 아닌, 그대로 우주의 원리라서 모든 곳에 있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智慧無邊際(지혜무변제) 了達一切法(요달일체법)
普入於法界(보입어법계) 示現自在力(시현자재력)
지혜는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하시며, 일체법을 요달(了達)하여 밝게 아시나니,
법계에 두루 널리 들어가시어 자재력(自在力)을 나타내시는도다.
ㅡ우리들의 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자재력(自在力)인 것입니다.
衆生及諸法(중생급제법) 了達皆無碍(요달개무애)
普現衆色像(보현중색상) 遍於一切刹(변어일체찰)
중생과 제법(諸法) 모두를 막힘없이 요달(了達)하여 밝게 아시나니,
여러 모습의 중색상(衆色像)을 널리 두루 나타내시어 일체의 모든 세계에 두루하시는도다.
欲求一切智(욕구일체지) 速成無上覺(속성무상각)
應以淨妙心(응이정묘심) 修習菩提行(수습보리행)
일체지를 구하여 위없는 무상각(無上覺, 무상정등각)을 속히 이루고자 한다면
청정하고 묘한 마음의 정묘심(淨妙心)으로 보리행을 수습(修習)해야 할 것이요,
若有見如來(약유견여래) 如是威神力(여시위신력)
當於最勝尊(당어최승존) 供養勿生疑(공양물생의)
만약 어떤 이가 여래의 이와 같은 위신력(威神力)을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가장 높으신 최승존(最勝尊)께 의심을 내지 않고 공양하여야 하리라.
ㅡ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각자의 최승존(最勝尊)께 공양하는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엄경(華嚴經) 제23권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ㅡ 4 (0) | 2026.07.08 |
|---|---|
| 화엄경(華嚴經) 제23권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ㅡ 3 (0) | 2026.07.08 |
| 화엄경(華嚴經) 제23권 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ㅡ 1 (0) | 2026.07.07 |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4.도솔천궁중게찬품(兜率天宮中偈讚品) (0) | 2026.07.06 |
| 화엄경(華嚴經) 제22권 23.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ㅡ 13 (0) | 2026.07.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