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9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23)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①ㅡ3

 

백만억 사유(思惟)보살” 이하 “일체 중생을 능히  교화한다”에 이르기까지  1단락의 10보살(十菩薩)은 3업(三業)을 청정하게 하거나, 혹은 주지(住地)에 들어가서 법회를 장엄하는 것이니모두 그 명칭으로서 뜻을 이해할  있다.


“백만억 선근이 낳은 바”에서부터 “이로써 찬탄한다(而以讚歎)”에 이러기까지 십백만억의 온갖 선행(善行)이 장엄한 바가 있으니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같은 세계” 이하 “모두  동등하다”에 이륵까지 4 반의 경문은, 시방이 모두 그와 같다는 것으로 매듭지은 것이다

 

이상으로서 도중(徒衆, 대중)이 100종류의 백만억(百萬億)의 대중이 있고

장엄에 187종의 백만억(百萬億) 장엄이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단락(段落)의 도수(都數)가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장엄과 보살ㆍ신ㆍ천녀의 색류(色類)가 서로 섞여서, 혹은 단계를 두고, 혹은 단계를 두지 않는 것은, 곧  10회향의 지위가 지혜로써 자비를 좇아 대자비의 바다를 성취함으로써, 인천(人天)의 6도(六道)에서 무한한 변주법계(遍周法界)의 행문으로 일시에 평등하게 화(化, 교화)하여서 근기에 따라 법을 주는 것이니, 혹은 단계를 두기도 하고, 혹은 초월하기도 하고, 혹은 단지 믿음을 이루기도 하고, 

혹은 지위가 10지를 밟기도 하고, 혹은 인천(人天)의 선근(善根)이  방향으로 단계를 세우지도 못하기 때문에

 장엄과 보살ㆍ신(神)ㆍ천(天)의 법을 나태는 것이 서로 섞여서 단계에 의거하지 않는 것이니,

보살 대중 안에 모든 천(天)이 있기도 하고, 혹은 모든 천중(天衆안에 용이나 신이 있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뜻에 준하여 생각해 보면 경문의 뜻을   있을 것이다.


(1.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에서, 처음의 “이때부터 경문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대략 11 단락으로 나눈 것에서의)

 번째, ‘공양을 일으켜 부처님을 맞이하는(興供迎佛)’ 분(分)에서 10만억(十萬億) 아승기 도솔천자와 더불어 여래를 맞이하는 것에 2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을 청해서 궁전에 들게 하는 청불입궁전(請佛入宮殿)이며

둘은 법을 나타내는 것이니

해탈무의주(解脫無依住)의 대지혜로써 일체의 생사에 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맞이하는 뜻이다.

 

 다른 해석으로는 ‘처음 성위(聖位)에 들어갈 때는 방편 삼매로써 진문(眞門)에 들어가지만 10회향에서는 10주와 10행의 무구(無垢)의 정지(正智)를 취해서 대자비의 방편에 들어가는 것을 부처님을 맞이해 궁전에 들어가는 청불입궁전(請佛入宮殿) 된다’고 하였으니가령 3승에서는 지전(地前) 30심(三十心)으로 방편을 삼아서 10지에서 견도(見道)를 하는 것이지만

 경전에서는 10신심(十信心)이 방편의 자량이 되고,

10주의 초심에서 견도(見道)하여 성불하고, 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의 자량(資糧) 되는 것이니,

이는 10주의 초심에서 견도하여 성불함으로써 이러함에 익숙하게 하여서 자재롭기 때문이다.


3승의 가르침에서는 3승기겁(三僧祇劫)에 비로소 성불하기 때문에, 설사 10 보살이 할지라도  종류의 삼종의생신(三種意生身)을 얻을 뿐, 부처님의 지생신(智生身)을 얻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까닭으로 10 이전의 3현(三賢보살은자량위(資糧位)인 것이며,

10지에서 도를 보는 것은 가행위(加行位)이며,

11지 등각위에서 보현행(普賢行)이 비로소 종결되고, 12지가 바로 묘각(妙覺)의 불과인 것이다

 

그러나  불화엄(佛華嚴)은  뜻이 부처님을 앞세우고 행을 뒤로 하는 선불이후행(先佛而後行)인 것이다

 먼저 불과(佛果)를 깨닫고 나서, 자비 염원의 행으로써 각체(覺體)를 자량하여 자비와 지혜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불화엄(佛華嚴)이 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도솔천왕이 대자비의 방편으로써 10주와 10 속의 대지불과(大智佛果)를 자량하는 것이 부처님을 맞이하는 뜻이 되는 것이니이제  지위의 가르침에서 법을 나타내는 대체(大體)는 대자비의 바다로써 10주와 10행의 부처님 지혜의 정각을 자량하기 때문에  호칭을 ‘부처님을 맞이한다(迎佛)’고 하는 것이다.

 

무릇 법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종(無始終)이라서,  생각의 일념(一念)에 제등(齊等)한 것이라, 만행의 자비와 지혜가 당체(當體)에 원만하게 종결되는 것이지만,

가르침을 시설하는 명언(名言)은 병립할  없는 것이라서, 그 언어의 표현에 앞과 뒤의 뜻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명자(名字)를 체달한 자는 명자에 처음과 끝이 없고가르침을 요달한 자는 경계의 지혜가 옮겨가지 않는 것이다.


 가르침의 뜻은 고금을 융화시켜 일제(一際, 한 순간)을 삼아서 정(情)의 티끌을 당장에 타파하는 것이니

결국 늦고 빠름의 연촉(延促)의 견해나 처음과 끝의 시종(始終)이라는 견해를 지어서는  되는 것이다

 

총체적으로는 때가 없는 무시(無時)의 이(理)로서 하나와 많음의 일다차별문(一多差別門)을 회통함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

무릇 앞의 지위로써 그 뒤의 지위로 향하는 것이 ‘멀리서 보는 요견(遙見) 되고

바르게 계합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오셔서 궁전에 들어가는 불래입궁(佛來入宮) 되는 것이다.

 

청정심으로 아승기에 색화운(色華雲) 비처럼 내리는 것에 2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며둘은 법을 나타내는 것이니, 대자비의 만행이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구름(雲)에 열 종류(十種)를 갖춘 것은, 법행(法行)의 원만함을 밝힌 것이며

모두 천신(天身)으로부터 나온 것은 지신(智身)으로 만행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천자쳔녀(天子天女) 대중이 환희하면서 이마를 땅에 대어 정예(頂禮)하는 것은, 궤도(軌度)의 법칙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 밝힌 것이니보살이 대자비로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즐거움이란 것을 밝힌 것이니, 

마치 세상에서 어머니가 자식이 즐거워하는 것 역시 어머니의 즐거움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솔천궁(兜率天宮) 속에 있는 불가설(不可說)의 모든 보살이 허공에 머물면서 일심으로 정근(精勤)하여,  공양이 하늘을 능가한다는 것은,  법공으로 행을 성취함으로써 세간의 유위행(有爲行)보다 뛰어남을 밝힌 것이니 1단락에 13 종류의 대중이 있다.

 

(1.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에서, 처음의 “이때부터 경문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대략 11 단락으로 나눈 것에서의)
 번째, 모든 하늘이 부처님을 맞이할  저마다 멀리서 여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遙見)하 부처님께 공경의 예배를 일으키는 분(分)을 5 단락으로 나누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遙見)한다’고 말한 것은,

이전의 10행으로부터 회향의 대자비와 대원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 것이며,

‘눈앞에 대한  같다(如對目前)’는 것은 근본지를 여의지 않고 항상 상응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경문의 아래에서 여래께서 일체지를 갖추신 것을 본다고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며,

‘법에 걸림이 없는 정등각(正等覺)’이란 것은 부처님 불지(佛智)의 정각(正覺)과 더불어 합치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이같이 사유했다’ 이하의 4구절은 바르게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며,

‘저마다 천의(天衣)로써 성대히 공양하고’ 이하의 열 가지 십종공양(十種供養)은, 

앞에서 몸으로 신화(身化)하여 공양한 것은 원(願)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 것이지만,

 단락에서 옷으로 성대히 공양하는 것은 신행(身行)이 두루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서 공양을 일으킨 1단락 65행의 경문은 대략 5 문으로 나눈다면, 
1. “이때 여래의 위신력” 이하 “동시에 여래를 받들어 맞이했다(同時奉迎如來)”에 이르기까지 5 반의 경문은,

모든 하늘들이 부처님의 신력(神力)과 스스로의 선근력으로써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하고, 스스로의 지혜에 계합하여  받들어 맞이하는 것을 밝힌 분(分)이다.

2. 저마다 천의(天衣)로써” 이하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供養於佛)”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모든 하늘이 옷으로 향기로운 꽃을 담아서 부처님께 흩뿌려 공양하는 것을 밝힌 분이니 여기에는  종류의 십종공양(十種供養)의  대중들이 있다.

3. 백천억 나유타” 이하 “일체의 영락운을 비내려서 끊김이 없으니(雨一切瓔珞雲無有斷絕)”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모든 하늘이 저마다의 마음으로 일으킨 공양의 구름으로 공양함을 밝힌 분이니

  단락은  가지의 십종공양(十種供養)하는 대중이다.

4. “백천억 나유타” 이하 “하늘의 음악이 묘한 소리를 내서 여래께 공양하고 보배 깃발로 여래께 공양한다(天樂出妙音聲供養 如來寶幡供養如來)”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일으킨 바의  가지를 흩어내림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함과 아울러 진술함을 밝힌 분이다.

5. “백천억 나유타” 이하 “싫증을 내 않는다(無厭足)”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도솔천궁에 예로부터 머문 보살들이 모든 바라밀의 행으로  의과(依果)를 일으켜서 공양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1단락에 17 종류의 공양이 있다.

‘옛부터 머문 구주(舊住)’란 것은 본위(本位, 근본의 지위)이며,

새로 왔다(新來)’는 것은 가행(加行)으로 지위에 들어간 것이며,

이러한 17 종류의 공양 가운데에서 먼저 개(蓋)로서 우선(先)을 삼은 것은,  지위가 대자비의 보살행에 되돌아 들어가기 때문에 대자비로서 그 첫머리로 삼은 것이며, 모든 바라밀로써 일시에 돕는 것이요,  

화(華) 지혜가 활작 핀다는 뜻이며

장(帳) 포함한다는 뜻이며,

의(衣, 옷) 인내의 뜻이 되며

영망(鈴網) 가르침을 설한다는 뜻이며,

여환심(如幻心)은 견고하다는 뜻이니, 체(體)가 이루어지거나 파괴될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예에 준거하여서 그 명칭의 뜻으로서 알  있을 것이다.


 단락에 33 가지의 백만억 공양 대중이 있고

말후(末後)의 천궁에 17 종의 먼저 머문 보살 대중이 있는 것은, 바라밀의 모든 행으로부터 생긴 것이고, 법신 지혜의 해탈지견으로부터 생긴 것이니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뛰어난 공양은 유위(有爲)의 과보로 얻은 것이 아니라 법신의 작위 없는 무작문(無作門)으로 일으킨 바이니, 정(情)의 작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때 일체의 모든 하늘과 모든 보살” 이하 “아승기 대중이 공경하고 존중하다(阿僧祇衆恭敬尊重)”에 이르기까지의 한 1단락에 105행의 경문은, 총체적으로 부처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함이 무한하고 자재로움을 대중들이 보는 분(分)이니, 그 뜻은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다섯 번째 “몸의 광명이 비추는 것이 무한함(身光照曜無限)” 분(分) 12 경문을 대략 7 가지로 나누면, 
5ㅡ1. “이때 대중 모두가 불신(佛身)을 보고” 이하 “가없는 법계(無邊法界)”에 이르기까지 2 반의 경문은,

부처님의 광명의 경계를 보는 것 밝힌 분이다.
5ㅡ2,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이하 “출세간의 선근이 성취한 바(出世善根之所成就)”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여래의 신력으로 묘한 음성(音聲)을 내어서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이다.
5ㅡ3 “다시 백천억 나유타를 나타내서” 이하 “자재로움의 낳는 바(自在之所出生)”에 이륵까지 2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스스로 과보의 자보상(自報相)의 장엄을 나타냄을 밝힌 분이다.
5ㅡ4, “ 불가설(不可說)을 나타내서” 이하 “깊고 깊은 뜻(甚深義)”에 이르기까지 1 반의 경문은,

다함없이 무진한 부처님의 출현을 나타냄을 밝힌 분이다.
5ㅡ5, “ 불가설을 나타내서” 이하 “평등하고 청정함(平等淸淨)”에 이르기까지 1 반의 경문은,

여래 신력의 신통변화가 두루함을 밝힌 분이다.

5ㅡ6, “이와 같이” 이하 “부사의한 뛰어난 덕이 낳는 바(不思議勝德生)”에 이르기까지 1행의 경문은,

앞에서 나타낸 것은 여래의 뛰어난 지혜의 승지(勝智)와 덕(德)으로 생긴 것임을 밝힌 분이다.
5ㅡ7, “다시 백천억 나유타를 나타내서” 이하 “부처님의 법문(佛法門故)”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부사의한 묘보(妙寶)의 불꽃을 나타내고, 스스로의 자선근(自善根) 대중의 모임을 나타냄을 밝힌 분(分)이다.

 

 일곱 단락의 경문의 문장에서 스스로 뜻을 갖추고 있으니 단락의 뜻은 여래께서 스스로 경계를 나타냄으로써 회향한 자로 하여금 가행(加行)하여서 계합하여 들어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여섯 번째, “이때 여래의 대자비” 이하 “칭송하고 찬탄하여도 다함이 없다(稱揚讚說不可窮盡)”에 이르기까지의 한 단락에 26 반의 경문을 두 단락으로 나누면, 
6ㅡ1, 이때 여래의 대자비가 감싼 ” 이하 “삼세 모든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다(生三世諸如來家)”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장엄과 신력을 나타내어서 불가설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분(分)이다.
6ㅡ2, 세존께서 나타낸 ” 이하 “ 단락의 끝에 이르기까지 13 반의 경문은,

여래소현지덕(如來所現之德, 여래께서 나타낸 덕)이 부처님의 자재로움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원(菩薩願)을 발하여 부처님께서 행한 바의 불소행(佛所行)에 들어가서 본원(本願)을 갚게 함을 밝힌 분이다.

 

일곱 번째 “이때 도솔타천왕” 이하 “일체 세계가 모두  이와 같다(一切世界悉亦如是)”에 이르기까지 13행의 경문은,

도솔천왕이 공양을 마련하여 부처님께 청을 드리니여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청을 받아들이는 것과 아울러 시방이 모두 이와 같다는 것으로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여덟 번째 “이때 일체 보장엄전” 이하 “그리고 게송을 설한다(而說頌言)”에 이르기까지 13 반의 경문을 대략  단락으로 나누겠다.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9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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