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9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21)십행품(十行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3 가지의 삼문(三門)으로 나누면,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하면,
이 품은 열 가지의 십종행문(十種行門)을 바르게 설하는 까닭에 그 명칭이 십행품(十行品)인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를 설명하면,
이 야마천궁(夜摩天宮)의 본 뜻이 십행품을 설하는 것에 있는 것은, 이 하늘이 연꽃이 피는 것으로 아침을 삼고, 연꽃이 오므리는 것으로서 밤을 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니,
이 하늘의 천광(天光)이 스스로 서로를 비추어 자상조(自相照)하니, 해나 달이 없이, 다만 연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서 밤과 낮을 가리기 때문에 그 명칭이 시분천(時分天)이며, 야마(夜摩)란 범어(梵語)이다.
가령 이 지위의 보살이 중생심을 개발하고자 할 때에는 그 마땅한 때(應時)를 알아서 그에 응하여 인도하여 제접하고,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는 함께 득도(得度)의 인연을 짓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 처소로서 나타내기 때문에 여기에서 열 가지의 십종행문(十種行門)을 설한 것이다.
앞의 두 품(승야마천궁품, 승야마천궁게찬품) 또한 이 하늘의 처소에 이르러 찬탄함한 것이나,
이 한 품은 10행문을 바르게 설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반드시 이 품이 온 것이니,
앞의 10주는 오히려 수미산의 정상에 의지하였지만,
이 10행은 공(空)에 의거하여 그 행하는 바를 밝히기 때문에 행에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함에 있어서 대략 두 가지로 나누겠으니,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해설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이란, 이 한 품의 경문을 대략 14단락으로 장과(長科)하겠다.
1. “이때” 이하 “이것이 열 가지가 된다(是爲十有)”에 이르기까지 25행의 경문은,
명호가 같은 공덕림불(功德林佛)이 공덕림보살(功德林菩薩)에게 공통으로 가지(加持)함으로써, 10행을 바르게 설함을 밝힌 것이다.
2. “불자야” 이하 “제1 환희행(第一歡喜行)”에 이르기까지 43행의 경문은, 처음의 환희행의 법문을 바르게 설함을 밝힌 것이다.
3. “불자야” 이하 “제2 요익행(第二饒益行)”에 이르기까지 42행의 경문은, 요익행을 밝힌 것이다.
이와 같이 상하(上下)로 품 전체의 게송을 합하여 14단락의 경문이 있으니,
마지막 두 단락의 긴 행 중의 첫 단락은 대지를 진동하는 것과 공양을 일으키는 분(分)이고,
다음 한 단락을 공덕림 보살이 대중을 관해서 게송을 설한 분이며,
다음 202행의 게송은 게송을 설해 법을 찬탄한 분이다.
한 품츼 위아래를 모두 합치면 14단락이 되는데, 경문에서와 같이 스스로 분제(分劑)가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경문을 과(科)하지는 않겠다.
처음의 명호가 같은 동호불(同號佛)께서 가지(加持)한 분(分)을 대략 네4가지 문으로 나누며,
첫째 삼매의 명칭을 밝힌 것이며,
둘째 명호가 같은 부처님의 수(數)를 밝힌 것이며,
셋째 명호가 같은 모든 부처님들이 가지한 바를 밝힌 것이며,
넷째 모든 부처님들께서 선정에 든 보살들과 명호가 같음을 밝힌 것이다.
첫 번째의 삼매의 명칭을 밝히는 것을 설명하면,
어찌하여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라 이름한 것인가?
삼매란 가라앉음이나 들뜸의 침도(沈掉)를 여의는 것이니, 선정(禪定)의 다른 이름이며,
선정(禪定)에는 4종선(四種禪)이 있으니,
첫째는 어리석은 범부가 행하는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이며,
둘째는 뜻을 관찰하는 관찰의선(觀察義禪)이며,
셋째는 진여를 염(念)하는 연진여선(念眞如禪)이며,
넷째는 여래선(如來禪)이다.
여기에서의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라 말한 것은 뜻을 관찰하는 관찰의선(觀察義禪)으로서, 그 법을 살펴서 잘 관찰하고, 정념(正念)으로 사유하여 법문을 안립하며, 나중에 배우는 후학자를 위하여 법칙을 짓는 것이다.
두 번째의 명호가 같은 부처님의 수(數)를 밝히는 것이란,
만불찰(萬佛剎) 미진수 부처님의 명호가 모두 공덕림이라는 것은 선정에 들어간 자와 그 명칭이 같은 것이니,
만약 그 심경(心境)을 미혹하면 무명이 무량한 찰진(刹塵)과 더불어 다르지 않지만, 마음의 근원을 요달한다면 지혜의 공덕이 시방과 동등하여져서 다함이 없는 무진(無盡)함을 밝힌 것이다.
스스로의 자일심(自一心, 한 마음)이 확연하여지면서 법계와 더불어 복과 지혜가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니,
지금 이 보살이 이 선정의 문에 들어가서 일체 부처님과 더불어 복과 지혜가 계합하기 때문에, 마침내 명호가 같은 부처님들께서 와서 가지(加持)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과 더불어 지혜(智慧)의 해행(解行)이 같고, 복덕과 공덕이 같음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의 명호가 같은 부처님께서 와서 가지(加持)하는 것을 설명하면,
여섯 가지의 가지(加持)가 있으니,
첫째, 말로써 가지하는 언가지(言加持)이니, 말로써 찬탄하고 기리기 때문이며,
둘째, 비로자나의 원력으로 가지하는 비로자나원력가지(毘盧遮那願力加持)이니, 왕
원(往願, 왕생의 염원)을 타기 때문이며,
셋째, 비로자나의 신력(神力)으로 가지하는 비로자나신력가지(毘盧遮那神力加持)이니,
부처님의 신력에 계합하기 때문이며,
넷째, 모든 보살 대중의 선근이 가지하는 제보살중선근가지(諸菩薩衆善根加持)이니, 선근이 같은 때문이며,
다섯째, 모든 부처님께서 지혜를 부여하는 불여지가지(佛與智加持)이니,
10 가지의 걸림 없는 십종무애지(十種無礙智)를 얻기 때문이며,
여섯째, 모든 부처님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수마정가지(手摩頂加持)이니,
위로하면서 법을 설함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하는 공덕림보살이 선정에서 일어나 열 가지 십행문(十行門)을 바르게 설함을 밝힌 것이니, 이러한 아래의 10 가지의 행 속에서는 그 각각의 10바라밀로서 체(體)를 삼는다.
1. 환희행(歡喜行)은 단(檀, 보시)바라밀로 체를 삼으며, 그 43행의 경문을 5 단락으로 나누면,
1ㅡ1. “불자야, 어떠한 것이 환희행인가?” 이하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애락(愛樂)하게 하며”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단(보시)바라밀을 행하여서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바를 배우는 것을 밝힌 분(分)이며,
1ㅡ2. “모든 방위와 국토의 궁핍한 곳을 따라서” 이하 “일체 중생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다(不違一切衆生之心)”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궁핍한 곳을 보고서, 맹세코 부귀로운 집안에 태어나기를 염원하여서 재물과 신명(身命)을 모두 버리면서 궁핍한 이들을 요익하게 하는 것을 밝힌 분이며,
1ㅡ3. "다시 생각하기를" 이하 "삼막삼보리"에 이르기까지의 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기아(飢餓)의 겁에 처하여서도 스스로의 광대신을 버려서 빈핍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을 밝히는 분이며,
1ㅡ4. “보살이 이처럼” 이하 “대과(大果)도 보지 않고 소과(小果)도 보지 않고”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진(眞)을 알아서 상념이 없음을 밝힌 분으로,
보특가라(補特伽羅)의 상념은 한역하면 ‘삭삭취(數數趣, 자주자주 취함)하여 (6취를) 취한다’는 뜻이며,
마납파(摩納婆)의 상념에서 마납파를 한역하면 소년(少年) 또한 유동(儒童)이니, 생각하건대 선악과 노소를 분별하지 않고 모두 다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ㅡ5. “이때 보살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하고” 이하 “제1 환희행”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중생은 견고한 몸이 아님을 관하고서 견고한 몸을 구하여 영원히 안온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2. 요익행(饒益行)은 계(戒)바라밀을 체(體)로 삼고 있는데, 42행의 경문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면,
2ㅡ1. “불자야, 어떤 것이 보살의 요익행이라 하는가?” 이하 “부처님께서 찬탄한 평등한 정법을 얻으니”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5진(五塵, 오온)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음을 밝힌 분(分)이다.
2ㅡ2. “불자야, 보살이 이와 같이 청정한 계율을 지닐 때” 이하 “일체지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마(魔)가 천녀(天女)를 거느리고 와서 능히 미혹하여 흐트러뜨리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2ㅡ3. “불자야” 이하 “무여열반”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5욕(五欲)으로써 중생을 괴롭게(惱)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2ㅡ4. “어째서” 이하 “저 쾌락으로 하여금”에 이르기까지 13행의 경문은, 스스로 잘 조복한 후에야 비로소 능히 법을 설하여 타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한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2ㅡ5. “불자야” 이하 “요익행”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세간을 벗어나는 행을 얻어서 깊고깊은 심심지혜(甚深智慧)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3. 무위역행(無違逆行, 거스름이 없는 행)은 인(忍)바라밀로 체(體)를 삼으며, 그 30행의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면,
3ㅡ1. “불자야” 이하 “인욕하고 유화(柔和)해서”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자타(自他)를 해치지 않고 인욕하고 유화함을 밝힌 분이다.
3ㅡ2. ‘불자야“ 이하 ”타자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다“에 이르기까지 13행 반의 경문은, 보살의 신어(身語)로 가해함을 당하여도 감내하고 참는 것을 밝힌 분이다.
3ㅡ3. “보살이 이때” 이하 “무위역행”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공(空)을 관하여 인(忍)을 성취함을 밝힌 분이다.
4. 무굴요행(無屈撓行, 굴복하거나 꺾임이 없는 행)은 정진바라밀을 체(體)로 삼으며,
그 37행 반의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면,
4ㅡ1. “불자야” 이하 “일체 불법의 구의(句義) 때문에 정진을 행하며”에 이르기까지 22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세간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부처님의 일체지를 구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함을 밝힌 분(分)이다.
4ㅡ2. ‘불자야, 보살마하살은“ 이하 ”답하기를, 나는 능히“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러한 수고를 회피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4ㅡ3.“설령 다시 어떤 사람이” 이하 “무굴요행”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을 요익하게 하기 때문에 다겁(多劫) 동안 고통(苦)을 받으면서도 수고로움을 사양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5. 이치란행(離癡亂行, 어리석음이나 혼란을 벗어나는 행)은 선(禪)바라밀을 체(體)로 삼고 있으며,
그 49행의 경문을 6 단락으로 나누면,
5ㅡ1. “불자야” 이하 “보살행을 닦아서 마음에 혼란과 어리석음의 치란(癡亂)이 없으니”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정념으로 생사를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혼란되지 않는 무치란(無散亂)을 밝힌 분이다.
5ㅡ2. “이 보살” 이하 “마음이 늘 억념(憶念)하여 끊어짐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배우고 지녀서 정념이 흐트러지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5ㅡ3. “왜냐 하면” 이하 “일념도 마음이 산란해진 적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좋고 싫어하는 음성에도 정념으로 흐트러짐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5ㅡ4. “이른바 정념이 흐트러지지 않고” 이하 “이 보살심을 능히 무너뜨리지 않고”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법을 듣는 문법(聞法)과 중생을 이롭게 함에 있어서 기타의 장애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5ㅡ5. “보살이 삼매에 들어가” 이하 “똑같이 차별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소리의 체성이 없음을 관(觀)하여서 감인(堪忍)함을 밝힌 분이다.
5ㅡ6. “보살이 이와 같이 적정한 신(身)과 어(語)와 의(意)의 행을 성취하니” 이하 “어리석고 흐트러딘 행을 여의었다”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신(身)ㆍ구(口)ㆍ의(意)가 청정하여서 능히 모든 것에 들어가면서도 일성(一性, 하나의 성품)을 여의지 않음을 밝힌 분(分)이다.
6. 선현행(善現行)은 반야바라밀을 체(體)로 삼으며, 그 40행 반의 경문을 4 단락으로 나누면,
6ㅡ1. “불자야” 이하 “방편으로 나타내는 생(生)의 상(相)이다”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지성(智性, 지혜의 성품)은 자성이 없는 무성(無性)으로서, 방편을 나타내어 보여주는 것을 밝힌 분이다.
6ㅡ2. “불자야” 이하 “일체 중생의 의지할 곳”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보살이 마음과 경계의 일체법이 자체성이 없는 무성(無性)이고 의지함이 없는 무의(無依)라는 것을 요달하여서, 중생을 교화하여 함께 의처(依處, 의지처)를 짓는 것을 밝힌 분이다.
6ㅡ3. “보살이 이때” 이하 “정도를 행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생각하는 분이다.
6ㅡ4. “보살이 이처럼 모든 중생을 관하니” 이하 “선현행”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중생을 제도함이 다 할때까지 스스로 열반을 증득함을 취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7. 무착행(無着行)은 방편바라밀을 체(體)로 삼으며, 그 55행의 경문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면,
7ㅡ1. “불자야” 이하 “그러나 불법에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으니”에 이르기까지 12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불찰을 청정히 장엄하고 또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나, 그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分)이다.
7ㅡ2. “이 보살” 이하 “능히 이처럼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보살이 부처님께 공양함에 싫증을 내지 않고, 또한 사법(事法)에 처하여 항상 행하면서도 그 가운데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이다.
7ㅡ3. “불법 가운데에서 마음에 장애가 없으니” 이하 “모든 선근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11행의 경문은,
중생의 고통을 관하여 대자비로서 항상 양육함을 밝힌 분이다.
7ㅡ4. “보살이 이때” 이하 “왜냐 하면”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생사에 상주하여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집착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7ㅡ5. “보살이 이런 생각을 지어서” 이하 ‘마음에 무피염(無疲厭)이다“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서도 그 법은 여환(如幻)이라고 관함을 밝힌 분이다.
7ㅡ6. “무피염(無疲厭)이기 때문에” 이하 “집착이 없는 무착행(無著行)”에 이르기까지 7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아직 조복되지 않은 중생을 보고서 그곳에 가서 태어남을 밝힌 분이다.
8. 난득행(亂得行)은 원바라밀을 체(體)로 삼으며, 그 70행의 경문을 6 단락으로 나누면,
8ㅡ1. “불자야” 이하 “하나인 성품의 선근”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이 지위 가운데의 10선근을 밝힌 분(分)이다.
8ㅡ2. “이 보살” 이하 “불퇴전을 얻는다”에 이르기까지 8행 반의 경문은, 괴로움에 처하면서도 싫어함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8ㅡ3. “이 보살이 비록 중생이 유(有)가 아님을 요달하나” 이하 “왜냐 하면”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불사불착(不捨不著) 중생계를 밝힌 분이다.
8ㅡ4. “보살이 깊이 중생계에 들어가” 이하 “과(果)를 얻는 것이 아니다”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보살이 중생계에 들어가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세간에 몸을 나타내어서 중생을 제도함을 폐하지 않음을 밝힌 분(分)이다.
8ㅡ5. “보살이 이같음을 성취해서” 이하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19행 반의 경문은,
설하지 않고서도 법을 설함이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8ㅡ6. “보살이 이처럼” 이하 “제8 난득행”에 이르기까지 14행 반의 경문은,
보살행을 행하면서도 과보를 구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9. 선법행(善法行)은 역(力)바라밀을 체(體)로 삼으며, 이 단락을 5 단락으로 나누면,
9ㅡ1. “불자야” 이하 “선다라니(旋陀羅尼)의 변재가 다함이 없다”에 이르기 까지 12행의 경문은,
열 가지의 다함 없는 십무진변(十無盡辯)을 밝힌 분(分)이다.
9ㅡ2. “이 보살” 이하 “모두 다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9행 반의 경문은,
대천계(大千界)에 몸을 나타내어 성불함으로써 변재가 걸림이 없음을 밝힌 분이다.
9ㅡ3. “다시 또” 이하 “불사(佛事)를 짓는다”에 이르기까지 16행 반의 경문은, 일모단(一毛端, 하나의 털 끝)에 도량(道場)이 다함이 없음으로써 일체의 모단(毛端, 털 끝)과 불가설의 삼천 세계에 몸을 나타내어 성불함을 밝힌 분이다.
9ㅡ4. “불자야, 이 보살” 이하 “법상을 능히 잘 관찰하기 때문에”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열 가지 자재신(自在身)을 밝힌 분이다.
9ㅡ5. “보살이 이같은 열 가지 몸을 성취해서” 이하 “일체 불법의 원천”에 이르기까지 9행의 경문은,
일체 중생과 더불어 의지처가 되는 바를 밝힌 분이다.
10. 진실행(眞實行)은 지(智)바라밀을 체(體)로 삼고 있으며, 이 단락을 셋으로 나누면,
10ㅡ1. “불자야” 이하 “다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 때문에”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이 지위의 보살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성실한 신(身)ㆍ어(語)ㆍ지(智)를 배워서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을 밝힌 분(分)이다.
10ㅡ2. “이 보살이 다시 이같은 증상심(增上心)을 낳아서” 이하 “법계ㆍ허공계”에 이르기까지 16행 반의 경문은,
원력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보리를 취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10ㅡ3. “이 보살” 이하 “제10 진실행”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몸이 중찰(衆刹)을 포함하여서, 근기를 알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재로움을 밝힌 분이다.
이하 대지를 진동하고 공양을 일으키는 분(分)의 15행 경문의 뜻을 3 단락으로 나누면,
1. “이때” 이하 “하늘의 미묘한 음성”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대지를 진동함과 공양을 일으킴을 밝힌 분(分)이다.
2. “이같은 세계” 이하 “모두 다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1행 반의 경문은, 시방이 모두 그러하다고 매듭지음을 밝힌 분이다.
3. “다시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이하 “시방세계가 다 이와 같다”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시방의 공덕림보살이 모여 와서 증명 지음을 밝힌 분이다.
이는 시방으로 각각 십만불찰(十萬佛剎) 미진수 세계 밖을 지나서 십만불찰(十萬佛剎) 미진수 보살이 있으니, 그 이름이 모두 같은 공덕림인 것은 10행(十行)이 두루함을 밝히는 것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보공덕(普功德)인 것은 이 10행이 두루한 것이 바로 공덕이 두루한 것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즉 이 지위에서 얻은 과(果, 불과)가 행의 두루함으로써 초래한 공덕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보공덕(普功德)인 것이며,
시방으로 각각 십만불찰(十萬佛剎) 미진수를 넘는다고 거양한 것은 지혜가 요달한 법을 밝힌 것이며,
또 행문의 양(量)이 광대한 것이 바로 불과 공덕의 광대함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상 10행은 10바라밀로 승진을 삼은 것에 근거하는 것이니, 법이 스스로 갖추어 분명하므로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이와 같은 10행이 총체적으로 이 일시(一時)ㆍ일념(一念)이며, 전후가 없는 행문(行門)이니, 먼저와 나중이라거나 늦고 빠름의 견해를 짓지 않아야 하며, 모두 법계 지혜의 체용(體用)에 근거하여 닦아 나아가는 법계지체용진수문(法界智體用進修門)으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저 게송을 설하여 법을 찬탄하는 7행의 경문은 열 가지의 십종종성(十種種性)이 끊이지 않음을 밝히고자 게송으로 거듭 말한 것이며, 또한 기우법계(曁于法界)라는 것에서 기(曁)는 미친다는 급(及)을 말하는 것이니 법계에 미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게송을 설하는 분(分)의 202행의 게송은 2행이 하나의 게송인 것으로,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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