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8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20)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3 가지의 삼문(三門)으로 나누면,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하면,

야마천궁에 올라서 10행(十行)의 법을 설하는데, 이 품은 공덕림(功德林) 등의 10보살 대중이 해당 지위의 행으로써 게송을 통하여 해당되는 지위의 법을 찬탄한 것이기 때문에 게찬품(偈讚品)이라 칭하는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란,

10행의 법을 설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게송으로 10행에서의 인과법문(因果法門)을 모두 찬탄하기 때문에 이 품이 반드시 오는 것이니, 만약 행한 바의 인과를 먼저 들지 않는다면 10행이 무엇을 의거하여 성취될 수 있겠는가?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함에 있어서, 이 한 품을 대략 두 가지 문으로 나눌 것이니,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문의 뜻을 장과함에 있어서 대략 5 단락으로 장과(長科)하겠으니, 
1. “이때 부처님의 신력(神力) 때문에” 이하 “결과부좌(結跏趺坐)”에 이르기까지 13행 반의 경문은,

그 지위에 따른 보살인 공덕림 등의 10보살들은 스스로의 자행(自行)과 깨달음의 불인과(佛因果)를 진술하는 분(分)이다.
2. “이같은 세계” 이하 “다 동등해서 별다름이 없다(悉等無別)”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시방세계의 보살들이 모두 이와 같이 모여온 것을 거양한 분(分)이다.

 

3. '그때, 세존' 이하  '보지 않음이 없다(靡不皆現)'에 이르기까지의 2행의 경문은, 방광(放光)하는 곳을 거양한 분이다.

4. “이때 공덕림보살”의 1행의 경문은 법을 관하여서 게송을 설함을 밝힌 분(分)이다.
5. 첫 게송 이하 10단락의 게송은, 10행에서 각각의 자행(自行)의 법문으로서 인과를 밝히는 것을 밝힌 분(分)이다.

 

두번 째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하면,

이 품의 처음 제1 단락에 있는 13행 반의 경문의 뜻을 셋으로 나누겠으니, 
1. 보살의 명칭과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진수(進修)의 인과(因果)에 따라 배대한 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2. 찰토의 멀고 가까움(剎土遠近)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3. 셋째로 각각의 보살이 명호가 같은, 동호(同號)가 두루함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보살의 명칭과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진수(進修)의 인과(因果)에 따라 배대한 것을 해석하는 것에 대략 열 가지 십종인과(十種因果)가 있으니, 

1ㅡ1, 공덕림보살이라는 것은, 10주위에서 처음으로 부처님 지혜의 집 안에 태어난 초생불지혜가(初生佛智慧家)이기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법혜(法慧)와 재혜(財慧) 등이었으나,

이 10행의 지위에서는 혜(慧, 지혜)로서 행을 행하여서 복과 지혜의 두 과보가 광대하고 많기 때문에 임(林)으로 명칭을 삼는 것이다.

또한 임(林)이란 광대하고 많다는 뜻으로, 그늘을 드리운다는 뜻이고, 장엄의 뜻이며, 몸통ㆍ줄기ㆍ가지와 꽃ㆍ잎ㆍ열매가 서로 자랑하는 뜻이니, 10행위(十行位)의 보살이 자체성 없는 지혜의 무성지혜(無性智慧)의 만행으로서 줄기와 가지를 장엄하고,

대자비로 잎을 삼아서 일체의 중생들에게 그늘을 드리워 교화하는 것으로서, 자타(自他)의 보리의 꽃과 열매를 모두 열리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마치 냇물이나 연못에 숲이 있으면, 온갖 새들이 돌아오는 것과 같이, 사람에게 행이 있으면 많은 사람이 의지하기 때문에 10행의 보살을 가리켜서 임(林)이라 이름한 것이니, 이는 환희행(歡喜行)의 단바라밀(檀波羅蜜門)에 해당된다.

이는 선재동자 10행 초기의 선지식의 명칭이 선견(善見)이며, 숲 속에서 경행(經行)하는 것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이고,

나라의 명칭이 3안(三眼)인 것은 이 지위의 불과의 명호를 안(眼)이라는 것을 말한다.

 

국토의 명칭이 친헤(親慧)세계인 것은, 이 10행이 몸소 부처님의 불혜(佛慧)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인(因)을 삼고,

또한 항상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친근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불과의 명호를 상주안불(常住眼佛)이라 한 것은, 친히 불지혜(佛智慧)로부터 생긴 것이기 때문에, 모든 근기를 알아서 세속을 이롭게 함으로서 항상 상주하는 지혜의 눈인 상주안(常住眼)을 얻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가 여래 지혜안(智慧眼)을 얻어서 중생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남 또한 지혜의 눈을 얻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여래의 지혜로써 근기를 관(觀)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지(智)가 바로 해당 지위의 불과(佛果)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공덕림(功德林)은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친혜(親慧)세계는 해당 지위에서 수행하는 지혜의 인(因)이 되며,

상주안불(常住眼佛)은 해당되는 지위의 근기와 견해를 아는 과(果)이니,

근본지와 더불어 상응하는 것을 ‘상주안불(常住眼佛)’이라 칭하는 것이다.


1ㅡ2, 혜림(慧林)보살은, 지혜가 마치 숲과 같이 광대하고 많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이는 요익행(饒益行)이니 지혜로써 일체 중생을 요익해서 미혹시키지 않는 것이며, 계(戒)바라밀을 행함이니 이 지위가 지혜로써 계율의 체(體)를 삼기 때문이다.

이는 선재동자 10행 중의 선지식인 석천(釋天)동자가 계바라밀을 행할 때 산법(算法)과 상법(相法)과 인법(印法)으로써 바로 촌영성읍(村營城邑)의 길흉의 땅을 안치한 것이 바로 지혜이니,

10주에서는 법신으로 계(戒)의 체(體)로 삼았지만, 이 10행에서는 지혜로써 계(戒)의 체(體)로 삼는 것이다.

혜림보살은 수행하는 사람이며,

당혜(幢慧)세계는 수행하는 바의 인(因)이니 지혜를 계의 체(體)로 삼아서 생사 가운데에서 기울지 않는 것이며,

무승안불(無勝眼佛)은 행하는 과(果)이니 지혜의 눈으로 근기를 앎에 있어서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1ㅡ3. 승림(勝林)보살은, 바로 거스름이 없는 무위역행(無違逆行)으로서 인(忍)바라밀을 주재하나니, 모든 행 중에서 인행(忍行)이 가장 최고이라, 행에 인(忍)이 없으면 행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호가 승림보살인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이 지위의 선지식인 우바이의 명칭이 ‘구족(具足)’인 것은 인(忍)바라밀이 온갖 행을 모두 거두어는 것이니,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가 모두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우바이란 자비행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며, 소복(素服, 흰 옷)와 피발(被髮)은 계인(戒忍)의 상(相)이며,

방 하나에 4개의 문이 열리는 것은 중생을 자비로 기르는 4섭법을 나타낸 것이며,

십천(十千)의 시녀는 만행을 갖춘 것이며,

하나의 작은 그릇으로써도 구제와 은혜가 무궁한 것은, 스스로 높다고 여기는 오만함을 여의고 4섭법이 무한함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하나하나의 바라밀이 서로서로 작용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승림보살은 이 행을 행하는 사람이며,

보혜(寶慧)세계는 수행하는 바의 수행법(修行法)이니, 이는 인(忍)을 온갖 행의 보배로 삼음으로써 귀중함을 밝힌 것이며,

무주안불(無住眼佛)은 바로 인(忍) 중의 불과(佛果)이니, 비록 인행을 행할지라도 행한 바를 마음에  두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ㅡ4. 무외림(無畏林)보살이란 항상 정진을 행하는 것이 바로 생사에서 인천(人天)에게 이익을 주어 두려움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굽힘이나 흔들림이 없는 무굴요행(無屈撓行)을 주재하는 것이니, 지혜로서 때(時)를 알고, 법을 알고, 근기를 알아서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러한 사(事)에 흔들리지 않으며, 그러한 공(功)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선지식인 명지(明智)거사(居士)가 이 지위에서의 선지식이니,

명지(明智, 밝은 지혜)로써 중생을 이롭게 함에 있어서의 그 행에 굽힘이나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며,

대흥성(大興城)에 머무는 것은 바로 정진의 뜻이기 때문이며,

시사구도(市四衢道, 저자의 거리)라는 것은 요익(饒益)이 광대하고 많아서 무한하게 이롭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순간적으로 사념하는 것은 작의(作意)의 방편인 것이며,

허공을 우러러보매 곳을 따른 사물이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모두 공(空)으로부터 내리는 것은 지혜가 공과 같아서 지혜의 염(念)에 응함을 밝힌 것이니, 공(空)이 지혜의 근본이 되어서 지혜가 공(空)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문에 공(空)을 관하면 사물이 지혜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따라서 공(空)이란 모든 법의 근본이니, 이로써 관하면 일체의 공덕이 총체적으로 공지(空智)로부터 있게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무외림보살이란 이 지위에서 행을 행하는 사람이며,

승혜(勝慧)세계는 수행법(修行法)이며,

부동안불(不動眼佛)은 이 지위에서의 불과이니, 정진의 지위가 사물을 따라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부동안(不動眼)이며, 경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진이라 칭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1ㅡ5. 참괴림(慘愧林)보살이란 혼란스럽고 어리석은 행이 없는 무치란행(無癡亂行)으로, 선(禪)바라밀을 주재한다. 부끄러움의 참괴(慚愧)를 갖추어서 선을 행하니, 선정이 지혜를 발하여 행에 혼란스러움과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선지식인 보계(寶髻)장자가 이 지위에서 선지식으로, 저자 가운데에 있는 것은 행(行)의 선체(禪體)가 시끄러우면서도 항상 고요함을 밝힌 것이며,

선재의 손을 잡고 장차 거처하는 집(宅)에 나아가는 것은, 인도하여 제접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생사의 저자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제접함으로써 장차 거처할 지혜의 과(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과(果)를 관해서 인(因)을 알게 되는 것을 밝힌 것으로, 그 집의 보배 장엄은 10층이요 8문(門)이다.

원(院)에 8문이 있고 각(閣)에 10층이 있는데, 8개의 문은 8정도(八正道)를 밝힌 것이며,

10층의 각(閣)은 10바라밀의 과보에 근거한 것이니,

10도(度, 10 바라밀)의 행을 한결같이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배열하여서 스스로의 법칙을 갖춘 것이다.

경문에 이르면 밝힐 것이지만, 이는 선체(禪體)가 만행을 모두 거두어들임에 근거한 것이다.

참괴림보살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사람이며,

등혜(燈慧)세계는 행하는 법이니, 선정이 능히 지혜의 밝음을 일으켜서 사물을 비추기 때문에 세계의 명칭이 등(燈)인 것이며,

천안불(天眼佛)이라는 것은 이 지위의 불과이니, 선정이 능히 모든 근(根)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에 명호가 천안불인 것이다.


1ㅡ6, 정진림(精進林)보살이란 선현행(善現行)으로서 반야바라밀문을 주재하며, 

반야로 일체의 중행(衆行)을 잘 나타냄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까닭에 그 명호가 정진림이다.

이는 선재동자가 이 지위의 선지식 명호가 보안(普眼) 장자(長者)인 것은 처음에는 신명(身命)을 구원하고, 다음에는 음식을 베풀며, 마지막에는 함께 법을 설하여서 그 하나하나의 근기에 따르는 것을 밝힌 것은, 지혜의 성취를 밝힌 것이다.

정진림은 수행하는 사람이며,

금강혜(金剛慧)세계는 수행의 법이니 지혜로 번뇌를 타파하는 것을 이름하여 금강임이라 한 것이며,

해탈안불(解脫眼佛)은 이 지위의 불과이다.


1ㅡ7. 역림(力林)보살이란 무착행(無着行)으로서 방편바라밀을 주재하며, 방편으로 세속에 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그 행류(行流)를 같이 하면서도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대자비행을 이루는 것이 역림(力林)이라 하며, 진(眞)으로서 세속에 들어가 속박에 처하여서도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이 역림인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이 지위 중 선지식의 명호가 무염족왕(無厭足王)인 것으로, 대자비를 행할 때 스스로의 몸을 화현해서 모든 불선(不善)을 끊도록 고통으로 다스리는데, 이와 같이 중생이 두려움으로 악을 끊게 함으로써 실로 중생을 구하고 보호하며, 사랑으로 저버리지 않는 것을 무염족이라 칭하는 것이다.

역림보살은 능히 행을 닦는 사람이며,

안락혜(安樂慧)세계는 행하는 바의 법이며, 이 지위는 대자비문을 성취하기 때문에 명칭이 안락세계이며, 이는 중생을 안락하게 함에 근거하여 명칭을 얻은 것이다

심제안불(深諦眼佛)은 이 지위의 과(果)로서, 심제안(審諦眼)은 어떤 법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가를 살펴서 앎으로써 비로소 조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第八行林菩薩者,是難得行,主願波羅蜜,難得能得名爲行林。此智位難可昇故,名難得行。如善財童子,此位善知識王名大光是。

1ㅡ8 행림(行林)보살난득행(難得行)으로서 원(願)바라밀을 주재하나니, 얻기 어려운 것을 능히 얻기 때문에 그 명칭이 행림이 되고, 이 지혜의 지위가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명칭이 난득행인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이 지위중 선지식인 왕의 이름이 대광(大光)인 것은 이 제8의 지혜가 대원을 따라 중생의 뜻을 만족하게 하는 대요익(大饒益)을 행하는데, 널리 중생에게 세간의 낙구(樂具)를 베풀어 주고, 일체의 지보(智寶)를 모두 베풀어 주는 것이다.

행림보살은 능히 행하는 사람이며,

일혜(日慧)세계는 닦는 바의 법이니, 이 지위의 지체(智體)가 더욱 밝아지는 까닭에 명칭이 일혜인 것이며,

명상안불(明相眼佛)은 이 지위의 불과이니, 이 지위의 지체(智體)가 더욱 밝아지기에 불과의 명호가 명상안인 것이다.


1ㅡ9. 각림(覺林)보살선법행(善法行)으로서 역(力)바라밀을 주재한다.

이는 선재동자의 이 지위 중 선지식의 명호가 부동(不動) 우바이(優婆夷)인 것은 제9 법사위(第九法師位)이며,

어찌하여 여신(女身, 여자 몸)인가? 법사위에 처할 때 정결하고 자비롭고 유연함을 밝히는 까닭에 여인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 여인의 발심이 염부제의 미진겁(微塵劫)을 거치면서도 스 스스로의 발심에 일념의 5욕(五欲)의 상념도 없는 것은, 정결과 자비와 유연함이 바로 법사의 덕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각림보살은 행을 행하는 사람이며,

정혜(淨慧)세계는 수행의 법이며,

최상안불(最上眼佛)은 수행하는 바의 블과이니, 지혜가 청정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최상안인 것이다.


1ㅡ10. 지림(智林)보살이란, 진실한 지혜의 진실혜행(眞實慧行)이기 때문에 지(智)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이니, 여기서 명칭과 지위가 서로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재 동자의 이 지위의 선지식의 호(號)가 출가외도(出家外道)이고, 이름이 변행(遍行)인 것은, 지혜를 얻어 자재함으로써 능히 사견(邪見)을 같이 하면서 모든 사견(邪見)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밝힌 것이니, 3천 가지의 경계(境界)와 96 가지외도(九十六種外道)를 모두 다하는 것을 말한다.

자림보살은 수행하는 사람이며,

범헤(梵慧)세계는 닦는 바의 법이며,

감청안불(紺靑眼佛)은 이 지위의 불과이며, 감청은 10행의 지혜가 한번 종결되어 원만해지면서 밝고 청정함의 비춤의 명정조촉(明淨照燭)이 지극한 것이다.

 

두 번째의 찰토의 멀고 가까운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경전에서 “시방으로 각각 일대보살(一大菩薩)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저마다 불찰미진수의 보살과 더불어 함께 하여서, 시방으로 십만불찰미진수 국토 밖의 모든 세계로부터 와서 모였다(十方各有一大菩薩,一一各與佛剎微塵數菩薩俱,從十萬佛剎微塵數國土之外諸世界中而來集會)”고 했는데,

10주(十住)에서는 백불찰(百佛剎) 미진이라 말하고,

지위(십행)에서는 10만(十萬)이라 말한 것은 지혜가 승진(昇進)하여 확장된 것을 밝힌 것이다.

미혹된 마음과 모든 경계는 진(塵, 먼지)의 양(量)이 되고,

미혹된 집착이 거처하는 곳은 국(國)이라 칭하고,

마음이 경계를 따라 전전하는 것을 ‘모든 국토의 밖(국토외國土外)’라 칭하고,

집착이 없어지면서 지혜에 계합하는 것을 ‘온다(來)’라고 칭하고,

밝은 지혜가 두루하면서 경계를 요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보살(菩薩)이라 호칭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보살이 예의 그러한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미혹을 요달해서 지혜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의 보살이 각각 같은 호칭의 동호(同號)로 두루한 것을 해석하며,

마음이 모든 경계를 미혹하니 티끌(塵, 먼지)는은 무명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이며,

마음이 깨달아 지혜가 통하는 것은, 찰해에 두루하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견(見)이 같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각각의 명호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니, 미혹할 때는 경계마다 미혹 아님이 없지만 깨닫고 나면 경계마다 지혜 아님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모든 보살” 이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다(諸菩薩已下頂禮佛足明致敬)”는, 법좌에 올라 공경을 바치는 것이며,

“화좌마니장(化座摩尼藏)”은 10행(十行)으로 생사에 처하여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항상 그 행이 무구(無垢, 더러움이 없음)라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마니좌(摩尼座)라는 것은 이구보(離垢寶)요, 장(藏)이란 갈무리한다는 뜻이며,

사자(師子)는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이니, 이는 범부의 행에는 오염이 있는 유염(有染)이나 성인의 행에는 더러움이 없는 무구(無垢)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사자는 주(主)에 의거해서 명칭을 세운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수행자의 지혜와 덕으로 수행할 바의 법을 밝힌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 두 발등으로 백천억 광명을 놓았다(爾時世尊從兩足上放百千億光明)”는 것은,

10신(十信)에서는 족하륜(足下輪, 발밑의 족륜)에서 광명을 놓고,

10주(十住)에서는 족지단(足指端, 발가락 끝)에서 광명을 놓고,

이 10행(十行)에서는 족부상(足趺上, 발 등)에서 광명을 놓는 것은, 차례로 지위에 따라 승진하는 법을 나타내는 광명을 밝힌 것이며, 십천(十千)과 백천(百千)과 백천억(百千億)으로부터의 묘색(妙色)의 광명은 모두 지위에 따른 승진(昇進)을 밝힌 것이니, 대체로 발 밑과 발가락 끝과 발 등 위가 모두 행하는 바의 행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장행(長行)으로부터 이하 10단락의 게송은, 이 10림(十林) 보살들이 각각 스스로가 해당되는 지위의 수행법(修行法)을 읊은 것으로서 이 열 가지의 십법(十法)이 모두 함께 하나의 행을 이루는 것이니, 이와 같은 각각의 하나하나의 행(行) 가운데에 10행(十行)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저마다 각각의 자행(自行)에 따른 이름의 아랫 글자의 뜻으로 법을 찬탄하고 있는 것이니,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명칭의 문(文, 한문)으로 저마다에 해당되는 지위에서의 소행법(所行法, 행하는 법)을 찬탄한 것이니, 명칭을 해석하여서 그 뜻하는 바의 법을 알 수 있다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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