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8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3 가지의 삼문(三門)으로 나누면,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하면,
무슨 이유로 명칭이 야마천궁(夜摩天宮)인 것인가?
이는 처소로써 법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며,
이 천(天)의 명칭이 시분천(時分天)인 것은 이 천(天)이 해나 달의 밝고 어두움이 없으므로, 연꽃이 피는 것으로써 아침을 삼고, 연꽃이 오므리는 것으로써 밤을 삼기 때문에 그 명칭이 시분천이 되는 것이다.
이는 10행(十行)의 법문이 때(時)를 알아서 사물에 응하여 화(化)함으로써 때를 알지 못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시분천(時分天)이 되는 것이며, 근기를 알아서 행(行)을 대치함에 있어서 일향(一向)으로 할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 인천(人天)의 종성(種性)과 2승ㆍ3승ㆍ1승의 종성을 어떤 선근으로써 접인(接引)할 수 있는가를 알기 때문에 시분천을 통한 소행의 행이 반드시 때(時)를 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수미산으로 10주(十住)의 법문을 나타낸 것은, 믿음으로부터 승진하여 범부지(凡夫地)를 여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 10주의 지위에서 처음으로 법의 정상에 올라서 사이 다한 상진처(相盡處)에 이른 것을 밝히는 것이며,
또 수미산이 대해(大海)에서도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라서 손과 발로 반연하여 오르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첫 10주의 지위가 유심(有心)의 사려로 찾거나 관행(觀行)으로 반연해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사유(以無思)이고 불위(不爲)의 탕연지(蕩然智, 제멋대로인 지혜)로 응하면서 만법이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어야 비로소 오를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10행위(十行位)가 야마천에 처한 것은 공(空)에 의지하여 머물 뿐, 인간과는 연결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니,
10행(十行)도 마찬가지라서 법공(法空)에 의지하여 행을 행함에 있어서 때를 알아 세속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이 하늘에 처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도솔천에서 10회향(十迴向)을 설한 것은, 이 처소가 욕계천의 처소 가운데에 처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또 이 하늘이 지족(知足)을 즐기는 곳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즉 10회향으로써 바른 지혜를 돌이켜서 세속에 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대비문(大悲門)에 처하여 일체를 이롭게 하면서도 모든 경계에 탐착하는 바가 없음을 나타내고자, 이 하늘에 처하는 것으로 표현을 삼은 것이다.
타화천(他化天)에 올라서 10지법문(十地法門)을 설한 것은, 화락천을 초과(超過)하여 지나지는 것은 욕계의 끝에 다다른 것을 밝힌 것이니, 10지가 자재해서 화락천을 초월하여 욕계의 정상에 이른 때문에 심마왕(心魔王)을 화(化)한 것으로 욕망이 다한 곳에 이르렀음을 나타낸 것이다.
제3선(第三禪)에 올라서 불화(佛華) 법문을 설한 것은 보현행의 원만함을 밝힌 것이니,
행의 법열(法悅)로써 무진한 중생들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여 주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또 제4선(第四禪)이 부처님 지위라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이는 닦아 나아가는 진수(進修)의 승강(昇降, 오르고 내림)을 잡아서 법을 나타내고자 역시 이렇게 세운 것이지만,
그 이지(理智)는 하나하나가 두루하여 가고 옴이 없는 무거래(無去來)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보리도량인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고, 도리천과 야마천과 도솔천 등에 오른다”고 말하는 것이며,
제3선(第三禪)이 초선과 2선을 초월하는 것은, 그 지위가 곱으로 뛰어남을 밝힌 것이다.
이 일회(一會)는 경문이 있지 않으나, 이는 영락본업경(瓔珞本業經)에서 여래께서 성문과 보살 대중을 거느리고 보리수 아래로 향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옛날 이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초성정각(初成正覺)을 성취하였을 때, 법계경(法界經)을 설했다”고 하였으니, 하나하나를 이 순서대로 배열해서 제3선(第三禪)까지 이른 것이므로, 이 야마천에서는 10행(十行)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를 설명하면,
앞에서는 10주(十住)의 승진(昇進)을 밝히고자 수미산의 정상에 오른 것이며,
여기서는 10행(十行)의 승진(昇進)을 밝히고 있기에 야마천에 이르는 것이니, 그 차례를 따라 이 품이 반드시 온 것이다.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하는 그 대의를 둘로 나누겠으니,
하나는 경전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함에 있어서, 이 한 품의 49행의 경문을 대략 10단락으로 장과하겠다.
1. “이때 여래의 위신력 때문에” 이하 “항상 부처님을 마주하다(恒對於佛)”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여래께서 그 처소를 여의지 않음을 시방에서 다 함께 보는 것을 밝힌 분(分)이며,
2. “이때” 이하 “보장엄전(寶莊嚴殿)”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시방 일체 보리도량의 보광명전을 여의지 않고 야마천에 오름을 밝힌 분이며,
3. “때에 야마천왕” 이하 “그때 저 천왕이 법좌를 펼쳐놓고(時彼天王敷置座已)”에 이르기까지 14행의 경문은,
시분천왕(時分天王, 야마천왕)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遙見)하고 법좌를 화(化)하여서 장엄하는 것과 공경함을 밝힌 분이며,
4. “불세존(佛世尊)에게 향하여” 이하 “이 궁전에 들어가다(入此宮殿)”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시분천왕(時分天王)이 부처님을 청하여 전(殿, 궁전)에 들어가서 법좌에 오름을 밝힌 분이며,
5. “그때 부처님께서 청을 받아들여” 이하 “다 역시 이와 같다(悉亦如是)”에 이르기까지 1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청을 받으시자, 시방에서도 모두 그와 같다는 것으로 매듭 지은 것을 밝힌 분이며,
6. “이때 천왕” 이하 1행 반의 경문은, 천왕이 지나간 과거의 석왕인(昔往因)을 상기하고서,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함을 밝힌 분이며,
7. 그 설한 게송 가운데의 20행의 게송은, 10분의 여래께서 일찍이 이 천궁에 들어오셨음 찬탄한 분이며,
8. “이같은 세계” 이하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함(歎佛功德)”에 이르기까지 2행반의 경문은,
시방에서도 모두 이와 똑같이 일시에 부처님을 찬탄함을 밝힌 분(分)이며,
9. “이때 세존” 이하 “모든 머무는 처소(諸所住處)”에 이르기까지 2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청을 받아들여 전(殿)에 들어가시자 그 궁전이 박관(博寬)하여 넓고 커지는 것을 밝힌 분이며,
10. “시방세계가 다 이와 같다”는 것은 시방에서도 모두 이와 같다는 것으로 총체적인 매듭을 지은 분이다.
세 번째의 경문에 따라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란,
처음의 “이때” 이하부터 “항상 부처님을 대하다(恒對於佛)”까지는,
*시방 일체처에 항상 두루하게 충만하여서 늘거나 줄어듦의 증감(增減)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보리수를 여의지 않고 수미산 정상에서 야마천에 오른다(不離菩提樹須彌頂而昇夜摩天)”라고 말한 것은,
지혜가 일체처에 두루하여서 그 몸을 보이면서도 가고 옴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멀리서 부처님께서 옴을 보다(遙見佛來)”는 것은 10주로부터 10행위로 향하여 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곧 신력(神力)으로 법좌를 화하다(卽以神力化座)”란,
행(行)이 공지(空智)에 의거하여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능(能)과 소(所)로 정한 건립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법좌로 행을 나타내서 연화(蓮華)라 호칭한(以座表行,號曰蓮華)” 것은,
작위가 없는 무작행(無作行)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오염의 집착이 없는 무염착(無染著)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장(藏)이란 것은 갈무리한다는 뜻이니,
행이 없는 행의 무앵지행(無行之行)이 온갖 선(善)을 갈무리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사자(師子)라는 것은 무외(無畏)를 밝힌 것이니,
무위(無爲)의 이지(理智)로써 생사에 처하면서도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니, 이는 주(主)에 의거해서 법좌의 명칭을 삼은 것이다.
백만 층급(百萬層級)이란, 10주의 십천(十天)과 10행의 백만(百萬)을 밝힌 것으로, 지위에 따른 승진의 단계를 밝힌 것이다.
백만의 금망(金網)으로 교락(絞絡)을 삼는다는(百萬金網以爲絞絡)것은, 이 지위에서 행망(行網, 행의 그물)으로써 중생을 교화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과보로 얻은 의과(依果)가 되기 때문에 10주의 십천(十千)과 10행의 백만(百萬)은 승진을 밝힌 것이다.
화만향보(華鬘香寶)와 네 가지의 사종장(四種帳)이란, 4섭법(四攝法)의 방편행으로써 중생을 내포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네 가지 덮개의 사종개(四種蓋)는 4무량심의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써 중생을 감싸는 것을 밝힌 것이며,
백만광명(百萬光明)으로 조요(照曜)하여 비춘다는 것은, 지혜의 눈으로 근기를 관(觀)해서 교화함을 밝힌 것이다.
천왕(天王)이란 것은 행이 자재로운 행자재(行自在)이며,
공경하여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하는(恭敬頂禮) 것은 행하는 행마다 오만함이 없다는 것이다.
범왕용약(梵王踊躍)이란, 청정한 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구걸하는 자를 보고 기뻐하면서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백만 보살이 칭양(稱揚, 칭송)한다는 (百萬菩薩稱揚)것은, 행으로써 사물을 제도하니 여러 성현들이 환희하면서 찬탄함을 밝힌 것이다.
천악주음(天樂奏音)이란 것은 능히 법을 잘 설함으로서 초래한 과(果)를 밝힌 것이다.
네 가지 구름의 사종운(四種雲)은, 자비를 행해서 세속을 감싼 것이니,
앞에서의 개(蓋)라고 말한 뒤에 사종운(四種雲)이라고 말한 것은 기(器)의 크고 작음을 따라 감싸 기르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마니운(摩尼雲)도 마찬가지이니, 근기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비추는 조촉(照燭)으로 이익을 주는 것이다.
백만의 선근(善根)으로 생긴 바(百萬善根所生)란 것은, 이러한 장엄들이 모두 행(行) 가운데에서의 선근으로서 낳은 바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행이 능히 사물을 이롭게 하고 선(善)을 쌓음으로써, 곧 모든 부처님의 보호와 온갖 복(福)의 장엄을 얻는 것이니, 이하는 경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래선서(善來善逝)라 말한 것은, 선(善)은 온갖 악의 고통과 재앙을 소멸하는 것이며,
서(逝)란 중생을 제도해 속박을 여의게 하는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청을 받아들여 법좌에 오르다(時佛受請昇殿)’란, 승진(昇進)해서 바르게 10행위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이상은 부처님 스스로의 덕(德)에 비추어 보면 시방으로 항상 스스로 두루하지만, 이렇게 오르고 내림의 승강(昇降)을 지은 것은 중생의 닦아 나아감의 오르고 내림의 승강(昇降)을 총체적으로 취한 때문이다.
20행의 게송 안에서 10불(十佛)이 과거에 이 전(殿)에 들어온 적이 있음을 찬탄한 것은, 지금 들어간 10행의 이지(理智)가 옛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밝힌 것으로, 그 10불(十佛)도 또한 행의 승진을 잡아서 성취한 호칭들이며,
앞의 10주위(十住位)에서 수미산 정상에 오른 10분의 10여래(十如來)의 명호들 또한 이 지위를 따라 옛(古)을 회통한 호칭이니, 들어간 바의 법이 고금(古今, 옛날과 지금)의 모든 부처님과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가령 10주위에서 수미산 정상의 제석궁에서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遙見)하고 즉시 전(殿)에 보광명장(寶光明藏)의 사자좌를 안치한 것은, 처음으로 여래 지혜(如來智慧) 안에 들어가 태어나는 것을 곧 방편삼매(方便三昧)의 문으로써 보광명장을 안치한다고 이름한 것을 밝힌 것이니, 바로 지혜가 법계장(境界藏)을 비추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10행위(十行位)에서 시분천왕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요견(遙見)하고 보련화(寶蓮華) 사자좌를 화현해 만든 것은 행화(行華, 행의 꽃)로써 교망(教網, 가르침의 그물)을 시설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여래 지혜장(智慧藏)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연화(蓮華)란, 행의 집착이 없는 행무착(行無著)의 뜻을 나타낸 것이며,
화좌(化座, 화현한 법좌)란 행의 체(體)가 10주 지혜의 허무법신(虛無法身)에 의거함으로써 안립함이 없기 때문에 그 짓는 바의 소작(所作)이 여화(如化)와 같다는 것을 이로써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 5행의 경문은 시방에서 동시에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은 것이며,
여래가 전(殿)에 들어가자 그 전(殿)이 넉넉해져 천(天)이 머무는 바와 같다는 것(如來入殿其殿包容如天所住)은 지위에 들어가서 승진하여, 스스로의 지혜가 넉넉하여지면서 비로소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를 알게 됨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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