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8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18) 명법품(明法品) ㅡ 1


장차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3 가지의 삼문(三門)으로 나누겠으니,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란,

이 품은 승수미산정품(昇須彌頂品)과 게찬품(偈讚品)과 십주품(十住品)과 범행품(梵行品)과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의 다섯 품의 법문이 이미 보리심을 발하여 광대한 대공덕(大功德)을 얻었기에,

이 정진혜(精進慧) 보살로서 법을 묻는 것에 이 2 가지의 뜻이 있는 것이니,

그 하나는 이전의 5 품의 법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다시 밝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나중에 행하는 법으로 하여금, 더욱 더 뛰어나서 전승명백(轉勝明白)하게 하고자 하는 때문에 명법품(明法品)이라 칭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승진(昇進)의 전후(前後)의 법을 밝힌 것이다.

 

즉 정진혜보살이 법혜보살에게 청하여 말씀하기를, ‘지니고 있는 모든 대원(大願)을 모두 만족하게 하고, 모든 보살의 광대한 장(藏)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이전에 얻은 법을 다시 밝게 하고, 나중의 승진을 명백하게 하는 것으로, 10행의 향(向)을 닦아서 근본 지위의 10주법(十住法)을 오래도록 장양(長養)하는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과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란, 앞전과 같으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을 둘로 나눌 것이니,

1.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고,

2.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1.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을 대략 3 단락으로 과(科)할 것이니,

하나, “이때” 이하 긴 행으로 33행 반의 경문과 게송을 합하면 55행이 되는데,

이것은 정진혜보살이 법을 청하는 청법분(請法分)이며,

둘, “이때 법혜보살” 이하 6행의 경문은, 법혜보살이 설법을 허락함을 밝히는 허설분(許說分)이며,

셋, “불자야, 보살마하살” 이하부터 품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는,

게송을 통해서 바르게 법을 설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밝히는 정설법분(正說法分)이다.


처음의 ‘청법분(請法分)’의 뜻을 둘로 나누면,

1ㅡ1, 이 1단락 경문의 뜻을 과(科)하는 것이며,

1ㅡ2,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해(隨文解)이다.

 

1ㅡ1의 1단락 경문의 뜻을 과(科)한다는 것은 대략 세 단락으로 과(科)하겠으니, 
1ㅡ1ㅡ1, “이때” 이하 “다시 다음은(復次)”에 이르기까지 12행의 경문은,

정진혜보살이 처음으로 법을 청함을 일으키는 초기청법문분(初起請法門分)이다.


1ㅡ1ㅡ2, “모든 보살” 이하 “보살이 행하는 바의 차례를 바라건대 모두 연설해 주옵소서(菩薩所行次第願皆演說)”에 이르기까지 21행의 경문은,

정진혜보살이 해당되는 지위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응소수행(應所修行)과 획익(獲益, 이익 얻음)을 들어서 거듭 수호법(守護法)을 설할 것을 권하는 권설분(勸說分)이다.


1ㅡ1ㅡ3, “이때” 이하 1행의 경문은 정진혜가 게송의 설(說)로써 거듭 법을 청함을 밝힌 분(分)이다.

 
2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처음 “이때(爾時)”라는 것에서 ‘이(爾)’는 ‘이것(此)’이니, 이 법을 설하는 때를 말한 것이다.

정진혜(精進慧) 보살이란 지위의 가행(加行)을 잡아서 명칭을 이룬 것이니, 이는 10 개의 혜(慧)에 통하는 통칭이니,

이 지위의 승진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진의 공(功)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혜(慧)라는 것은 비춘다는 뜻이며, 정진(精進)이란 것은 사념이 없다는 뜻이니,

사념이 없는 지혜의 무사혜(無思慧)로서 작위가 있는 유작(有作)의 공(功)을 비추니,

유작(有作)이 본래 스스로 공이 없는 자무공(自無功)이고, 만법이 본래 스스로 청정한 만법본재자정(萬法本來自淨)인 것이다.

만법이 스스로 자정(自淨)한 것을 정(精)이라 이름하고,

공용이 없는 지혜의 무공지(無功智)로 응하여서 근기를 알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진(進)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지위를 성취하면서 닦아 나아가는 진수(進修)하는 것을 잡아서 칭한 것이다.

 

보살이란 것은 항상 말하는 그대로 이니,

백법혜(白法慧) 보살이란 것은 백(白)은 밝음(明)이니 명언(名言)을 밝게 드러내어서 그 밝음을 펴는 것이다.

일체지승(一切智乘)을 오른다고 말한 것은 이 지위에 들어가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렇게 함으로써 이 지위의 보살이 일체지승을 타고서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 부처님의 종지(種智)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자식(佛子)이 됨으로써, 항상 모든 부처님의 거두어들이는(攝受) 바가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밝은 지혜로 상응하여 이익을 주기 때문에 ‘거두어들인다(攝受)’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모살의 광대한 장(藏)을 얻는다(獲諸菩薩廣大之藏)고 말한 것은,

저 10회향 중 지장(智藏)과 비장(悲藏) 등 10장(藏)이 이에 해당하며, 
“어떤 방편으로써(何方便)” 이하는 정설(正說) 중 십십(十十)의 법문이 이에 해당된다.

 
6통(六通)이라는 것은 신통(身通)ㆍ천이통(天耳通)ㆍ천안통(天眼通)ㆍ숙명통(宿命通)ㆍ타심통(他心通)ㆍ누진통(漏盡通)이며, 

신통(身通)이란 것은 1찰나에 몸이 지혜의 작용을 따라 시방에 두루한 것으로, 색신(色身)을 대현(對現)하여 근기에 따라 널리 응하는 것이다.

천이통(天耳通)이란, 이근(耳根)이 항상 시방의 일체 모든 소리를 듣는 것이며,

천안통(天眼通)이란, 안근(眼根)이 항상 시방 일체의 거칠고 미세한 색(色)을 보는 것이며,

숙명통(宿命通)이란, 삼세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여기서 죽고 저기서 태어나게 되는 것을 따라서 짓는 업행(業行)의 인과를 지혜로써 능히 모두 아는 것이며,

타심통(他心通)이란, 일념에 능히 삼세 일체 중생의 심념(心念)이 바라는 바를 아는 것이며,

누진통(漏盡通)이란, 지혜를 따라 일체의 모든 법을 두루 알면서도 정욕(情欲)의 어리석음이나 애착을 따르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 경전에는 또한 열 가지 통(通)이 있으니 십통품(十通品)에서 설하는 바와 같은 것이다.

  

3명(三明)이란, 첫째 숙명(宿命)이며, 둘째 천안(天眼)이며, 셋째 누진(漏盡)으로, 그 명칭이 3명이다.


4무외(四無畏)란, 첫째 일체지무외(一切智無畏), 둘째 누진무외(漏盡無畏),

셋째 장애의 길을 설하는 설장도무외(說障道無畏), 넷째 고(苦)의 길이 다함을 설하는 설진고도무외(說盡苦道無畏)이다.

상호(相好)라는 것은 이 경전의 10신상해(十身身相海)이고, 

 

역무소외(力無所畏)라는 것은 10력(十力)으로,

첫째 시처비처력(是處非處力)이며, 둘째 업력(業力)이며, 셋째 정력(定力)이며, 넷째 근력(根力)이며, 다섯째 욕력(欲力)이며, 여섯째 성력(性力)이며, 일곱째 일체지처도력(一切至處道力)아며, 여덟째 숙명력(宿命力)이며, 아홉째 천안력(天眼力)이며, 열째 누진력(漏盡力)이니, 이러한 10 가지이다.


삼세업과(三世業果)의 명칭이 처(處)가 되고, 유(有)가 아님을 요달한 것을 이름하여 비처(非處)라 하는 것이니, 논주(論主)의 게송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생 업의 인과를 잘 아시며(善知衆生業因果)
마음이 정(定)하여 움직이지 않음은 산왕(山王, 수미산)과 같으며,(心定不動如山王)
중생의 근기는 상품ㆍ중품ㆍ하품이요(衆生根品上中下)
욕락(欲樂)의 낱낱은 저마다 차별하다.(欲樂種種各差別)

갖가지 세간은 모든 성품이 나누어진 것이며(種種世間諸性分)
일체의 도법(道法)은 저마다 같지가 않으니, (一切道法各不同)
숙명통은 삼세의 업을 두루 아는 것이요(宿命遍知三世業)
천안통은 시방을 막힘 없이 요달하는도다.(天眼十方無㝵了)

온갖 분별을 따라 시방에 충만하면서도(隨諸分別滿十方)
마음은 잡된 오염되지 않아 항상 티가 없노라.(心無雜染常無垢)
이와 같은 열 가지 덕의 자재로움의(如是十種德自在)
그 명칭이 여래의 무외력이로다.(是名如來無畏力)

18불공(十八不共)이란, 1. 부처님 몸에 허물이 없는 불신무과실(佛身無過失),

2.말에 허물이 없는 구무과실(口無過失),

3. 생각에 허물이 없는 염무과실(念無過失),

4. 상(想)에 허물이 없는 상무과실(想無過失),

5. 마음이 정(定) 아님이 없어서 항상 삼매에 있는 심무불정상재삼매(心無不定常在三昧),

6. 알지 못함이 없으면서도 이미 버리는 무불지이사(無不知已捨),

7. 욕(欲)이 감소하지 않는 욕무감(欲無減),

8. 정진에 감퇴가 없는 정진무감(精進無減),

9. 생각에 감퇴가 없는 염무감(念無減),

10. 지혜에 감퇴가 없는 혜무감(慧無減),

11. 해탈에 감퇴하지 않는 해탈무감(解脫無減)

12. 해탈지견에 감퇴가 없는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

13. 신업(身業)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신업수지혜행(身業隨智慧行),

14. 구업(口業)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구업수지혜행(口業隨智慧行),

15. 의업(意業)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의업수지혜행(意業隨智慧行),

16. 지혜가 걸림없이 괴거의 일을 아는 지혜지과거무애사(智慧知過去無㝵事), 

17. 지혜가 걸림없이 미래의 일을 아는 지혜지미래무애사(智慧知未來無㝵事), 

18. 지혜가 걸림없니 현재의 일을 아는 지혜지현재무애사(智慧知現在無㝵事)이다.

 

앞서 말한 ‘허물이 없다는 무과실(無過失)’이라는 것은 묘한 선(善)으로 상응하는 것이며,

앞서 말한 ‘감퇴가 없다는 무감(無減)’이라 하는 것은 지은 선법(善法)을 항상 잊지 않는 것이다.

일체지지(一切智智)라는 것은 종종지(種種智)와 무진지(無盡智)를 말하는 것이니,

이는 차별지의 다함 없음을 밝힌 것이다.

 

수호분(守護分)에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 초발심 보살이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수호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능히 연설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천왕(天王)과 야차왕(夜叉王)과 여래 법왕 등의 수호하여줌을 얻는 것이다.


게송으로 거듭 청하는 중청분(重請分)에 22행의 게송이 있으니,

처음 2 행의 게송은 능히 설하는 법주(法主)를 찬탄한 것이며, 

이하 20행의 게송은 2행이 한 게송으로, 첫 2행은 초발심 보살의 지혜와 복덕이 세간을 초월한 이익을 얻음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승진의 행을 권하여 설한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대지혜가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집착이 없는 무착(無著)임을 밝힌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온갖 행에 결함이 없는 무결(無缺)이라서,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부처님의 불종(佛種)이 끊어지지 않게 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견고하게 공을 성취한 출리법(出離法)과 승법(勝法)을 거듭 권하여 설하기를 청함을 밝힌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어둠을 타파하고 마(魔)를 항복받는 도를 설하여 주기를 바라고 청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여래께서 얻은 법을 역시 권하여 설하기를 청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다음 2행의 게송은 ‘어떻게 여래의 법을 연설하는가’라고 말함을 밝힌 것이며,

마지막 2행의 게송은 ‘초발심으로 하여금 어떻게 사자와 같이 무외(無畏, 두려움 없음)하고, 연꽃과 같이 무착(無着, 집착 없음)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함을 밝힌 것이며, 


두 번째로 설법을 허락한 허설분(許說分)에서 법혜보살이 찬탄한 ‘능히 묻는 사람’은 경문과 같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올바로 법을 설하는 정설분(正說分)을 다시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은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의 경문의 뜻을 장과한다는 것이란, “불자야, 보살이 이미 일체지심(一切智心)을 발했으니” 이하부터 품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20단락으로 장과(長科)하겠다.


하나, “처음의 불자야” 이하부터 “불방일(不放逸)에 머문다”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열 가지 불방일법에 머묾을 밝힌 분(分)이요,  

둘, “불자야” 이하 “열 가지 청정함(十種淸淨)”에 이르기까지 10행 반의 경문은,

불방일에 머무르니 열 가지 청정한 법을 얻음을 밝힌 분이다.
셋, “불자야” 이하 “능히 일체 여래로 하여금 기쁘게 한다(能令一切如來歡喜)”에 이르기까지 11행 반의 경문은,

열 가지의 십종법(十種法)을 행하니, 모든 부처님께서 환희하신 것을 밝힌 분이다.
넷, “불자야” 이하 “모든 부처님께서 환희하다(諸佛歡喜)”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열 가지의 십종법에 안주(安住)함을 밝힌 분이다.
다섯, “불자야” 이하 “모든 보살로 하여금 조속히 온갖 지(地)에 들어가게 하다(令諸菩薩速入諸地)”까지 8행의 경문은,

이 열 가지 십종법을 행하여서 조속히 일체의 모든 지(地)에 들어감을 밝힌 분이다.
여섯, “다시 다음에 불자야” 이하 “스스로 장엄하여 보살지에 들어가라(而自莊嚴入菩薩地)”까지 10행의 경문은,

지(地)에 들어가 승진함을 밝힌 것이다.
일곱, “불자야,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하 “행한 바의 청정함(所行淸淨)”까지 8행의 경문은,

청정한 정행(淨行)을 밝힌 분이다.
여덟, “보살이 이미 청정을 행하게 되어” 이하 “열 가지 증승법(十增勝法)”에 이르기까지 8행의 경문은,

승진이 더욱 발전함을 밝힌 분이다.
아홉, “불자야” 이하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청정한 원(願)이 된다(是爲菩薩十種淸淨願)”까지 7행의 경문은,

대원(大願)으로 행을 성취하여 중생을 이롭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열, “불자야” 이하 “무상법문을 수호하다(守護無上法門)”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10 가지 십법(十法)을 행하여 대원을 원만하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열 하나, “불자야, 보살이 이 같은 원(願)을 만족할 때” 이하 “응하는 대로 법을 설하는가?(如應說法)”까지 8행의 경문은,

10 가지의 다함 없는 십종무진장(十種無盡藏)을 밝힌 분이다.
열 둘, “이른바 그 지은 바를 알아서” 이하 “바라밀도(道)를 구족해 장엄하여”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보살이 근기를 알아 이롭게 함을 밝힌 분이다.
열 셋, “이때” 이하 “삼보의 종성(種性)을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한다”에 이르기까지 52행 반의 경문은,

10 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모든 대치(對治)를 밝힌 분이다.
열 넷,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하 “생각생각마다 열 가지 장엄을 구족하니”에 이르기까지 18행의 경문은,

삼보의 종성을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함을 밝힌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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