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一 十行品第二十一之二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2.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ㅡ 6
ㅡ제6(第六)의 보시하는 시장(施藏)시의 시장(施藏) 2
ㅡ일체의 모든 것을 보시하는 일체시(一切施)
云何(운하) 爲菩薩(위보살) 一切施(일체시)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亦如上說(역여상설)
處輪王位(처륜왕위) 七寶具足(칠보구족) 王四天下(왕사천하) 時有無量貧窮之人(시유무량빈궁지인)
來詣其前(내예기전) 而作是言(이작시언) 大王名稱(대왕명칭) 周聞十方(주문시방)
我等欽風(아등흠풍) 故來至此(고래지차) 吾曹今者(오조금자) 各有所求(각유소구)
願普垂慈(원보수자) 令得滿足(영득만족) 時諸貧人(시제빈인) 從彼大王(종피대왕)
或乞國土(혹걸국토) 或乞妻子(혹걸처자) 或乞手足(혹걸수족) 血肉心肺(혈육심폐)
頭目髓腦(두목수뇌) 菩薩是時(보살이시) 心作是念(작시념언)
一切恩愛(일체은애) 會當別離(회당별리) 而於衆生(이어중생) 無所饒益(무소요익)
我今爲欲(아금위욕) 永捨貪愛(영사탐애) 以此一切(이차일체) 必離散物(필리산물)
滿衆生願(만중생원) 作是念已(작시념이) 悉皆施與(실개시여) 心無悔恨(심무회한)
亦不於衆生(역불어중생)에 而生厭賤(이생염천) 是名一切施(시명일체시)
무엇을 보살이 일체의 모든 것을 보시하는 일체시(一切施)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전륜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칠보를 구족한 사천하의 왕이 되었을 때,
무량하게 많은 빈궁인(貧窮人, 가난한 사람)들이 그의 앞에 와서 말하기를,
‘대왕의 거룩한 명칭이 시방에 두루하나니, 저희들이 그 덕화를 흠모한 까닭에 이렇게 왔습니다.
지금 저희들 제각각이 구하는 바가 있사오니, 원하오니 자비를 내리시어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면서,
그 가난한 빈궁자들이 그 대왕으로부터, 혹은 국토를 구걸하기도 하고, 혹은 처자를 구걸하기도 하고,
혹은 수족과 혈육(血肉, 피와 살)과 심폐(心肺, 심장과 폐)와 두목(頭目, 머리ㆍ눈)과 수뇌(髓腦, 골수와 뇌)를 구하나니,
그 때에 보살이 생각하기를, ‘모든 은애(恩愛, 은혜와 애정)는 회당별리(會當別離)한 것이라,
만나면 당연히 떠나야 하는 것이라서, 중생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일체의 모든 것이 반드시 흩어지는 것들이니, 나 이제 탐애(貪愛, 탐욕과 애정)를 영원히 버려서,
이러한 것들로서 중생들의 소원하는 바를 모두 채워 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구걸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되,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으며, 중생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도 않나니,
이러한 것을 일체의 모든 것을 보시하는 일체시(一切施)라 하는 것입니다.
ㅡ과거 보시의 과거시(過去施),
云何(운하) 爲菩薩(위보살) 過去施(과거시) 此菩薩(차보살) 聞(문)
過去諸佛菩薩(과거제불보살) 所有功德(소유공덕) 聞已不着(문이불착) 了達非有(요달비유)
不起分別(불기분별) 不貪不味(불탐불미) 亦不求取(역불구취) 無所依倚(무소의의)
見法如夢(견법여몽) 無有堅固(무유견고) 於諸善根(어제선근) 不起有想(불기유상)
亦無所倚(역무소의) 但爲敎化(단위교화) 取着衆生(취착중생) 成熟佛法(성숙불법)
而爲演說(이위연설) 又復觀察(우부관찰) 過去諸法(과거제법) 十方推求(시방추구)
都不可得(도불가득) 作是念已(작시념이) 於過去法(어과거법) 畢竟皆捨(필경개사)
是名過去施(시명과거시)
무엇을 보살의 과거시(過去施)라 하는가?
이 보살이 지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들이 가지신 공덕에 대하여 듣고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라는 것을 요달하여서, (불보살의 공덕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달하여서)
분별하지도 않고 탐내어서 (빠져들어) 음미하지도 않으며,
또한 구하여 취하고자 하지도 않고 의지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법은 마치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라서 견고하지 않음을 보며(見, 알며),
모든 선근(善根)에 대하여서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도 않고 또한 의지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집착하여 취하기만 하는 중생들을 교화하여서,
그들의불법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연설하여 줄것이며,
또한 관찰하여 보니, 과거의 제법이라는 것을 시방으로 추구하여도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필경에는 과거의 모든 법들을 버리나니, 이러한 것을 과거시(過去施)라 하는 것입니다.
ㅡ과거의 석가모니 부처님, 비로자나불, 육조대사, 원효대사, 의상대사들께서 하셨다는 일 등은 과거의 이야기이니까, 그러한 것에 매달리고 집착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ㅡ미래시(未來施)
云何(운하) 爲菩薩(위보살) 未來施(미래시) 此菩薩(차보살) 聞(문)
未來諸佛之所修行(미래제불지소수행) 了達非有(요달비유) 不取於相(불취어상)
不別樂往生(불별락왕생) 諸佛國土(제불국토) 不味不着(불미불착) 亦不生厭(역불생염)
不以善根(불이선근) 廻向於彼(회향어피) 亦不於彼(역불어피) 而退善根(이퇴선근)
常勤修行(상근수행) 未曾廢捨(미증폐사) 但欲因彼境界(단욕인피경계) 攝取衆生(섭취중생)
爲說眞實(위설진실) 令成熟佛法(영성숙불법) 然此法者(연차법자) 非有處所(비유처소)
非無處所(비무처소) 非內非外(비내비외) 非近非遠(비근비원) 復作是念(부작시념)
若法非有(약법비유) 不可不捨(불가불사) 是名未來施(시명미래시)
무엇을 보살의 미래시(未來施)라 하는가?
이 보살이 오는 미래에 제불(諸佛)들의 수행하실 것을 듣고서도,
그러한 것은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라는 것을 요달하여서,
(미래의 제불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달하여서)
상(相)을 취하지도 않으며, 불국토(佛國土)에 왕생하는 것을 특별히 즐기지도 않으며,
맛들여서 빠져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으며,
선근으로써 그러한 것에 회향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러함에 대한 선근이 물러나지도 않으나,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일찍이 페사(廢捨)하여 그만두지 않으며,
오로지 그 경계로 인하여 중생들을 섭취(攝取)하여 거두어 들여서,
진실을 설하여서 그들의 불법을 성숙시키고자 할 뿐이라.
그러나 이 법이란 것은 비유처소(非有處所)라서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무처소(非無處所)라서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닌 비내(非內)이고, 밖도 아닌 비외(非外)이며,
가깝지도 않은 비근(非近)이고, 멀지도 않은 비원(非遠)인 것이라,
다시 생각하기를 만약 법이 있는 것 아닌 비유(非有)라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로다.' 하나니,
이러한 것을 미래시(未來施)라 하는 것입니다.
ㅡ있는 것이 아니라면 법에 대한 관념은 버려야 되는 것이 미래시입니다. 존재의 실상이라고 하는 말을 굳이 쓰지는 않으면서도 모든 존재의 실상. 그리고 모든 법은 中道(중도)의 원리로 존재한다는 것이 화엄경 전편에 아주 쫙 깔렸습니다.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란, 과거법이나, 과거 부처님의 불법이나, 미래의 불법들도 전부 중생을 성숙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일 뿐, 그것이 꼭 있다고 집착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없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중도(中道)의 논리에 밝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남자ㆍ여자 또 속인ㆍ출가인을 보더라도, 남자도 여자가 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되고, 또 여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거기에 서로가 걸리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집착해서 치우친 소견을 가지고 “이래야 된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 그리고 원융 자재한 것, 상황에 따라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는 그것이 존재의 실상입니다. 예를 들어서 분필도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무기도 되지만 또 학생을 가르치고 지혜를 열어주는 판서하는 좋은 도구도 되는 겁니다. 이렇게 원융 자재해야 되는 겁니다.
일체사, 일체법이 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존재하고 있으니까 융통자재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화엄경의 논리이고, 중도(中道)인 겁니다.
雙遮雙照(쌍차쌍조) 遮照同時(차조동시), 성철 스님이 중도(中道)에 대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쌍으로 부정하고, 쌍으로 긍정하고, 그리고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함께 한다. 그러니까 남자를 두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또 여자를 두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러면서 남자이고 여자이고요. 여자와 남자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인데, 고집만 부리는 것은 모든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ㅡ중도(中道)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고와 낙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
부처님은 출가 전의 낙행(樂行)도 출가 후의 고행의 치우친 극단을 버린, 즉 고와 낙의 양면을 떠나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는 중도에서야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에 의해서 자각해서, 성도(成道) 후 함께 고행하던 5비구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한 것도 중도였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이 생(生)·멸(滅)·단(斷:끊어짐)·상(常:항상함)·일(一:같음)·이(異:다름)·거(去)·내(來)의 여덟 가지 잘못된 견해(八邪)를 떠난 것임을 파악할 때 참다운 공(空)의 진리를 체득할 수 하여서 무소득의 바른 견해에 머무르는 것을 팔부(八不) 중도라 한다.
여기에서 팔부(八不)는 생멸(生滅) 등의 팔사를 부정하는 불생(不生)·불멸(不滅)·부단(不斷)·불상(不常)·불일(不一)·불이(不異)·불거(不去)·불래(不來)를 가리키는 것이다.
ㅡ현재시(現在施)
云何(운하) 爲菩薩(위보살) 현재시(現在施) 此菩薩(차보살) 聞(문)
四天王衆天(사천왕중천) 三十三天(삼십삼천) 夜摩天(야마천) 兜率陀天(도솔타천)
化樂天(화락천) 他化自在天(타화자재천) 梵天(범천) 梵身天(범신천) 梵輔天(범보천)
梵衆天(범중천) 大梵天(대범천) 光天(광천) 少光天(소광천) 無量光天(무량광천)
光音天(광음천) 淨天(정천) 少淨天(소정천) 無量淨天(무량정천) 遍淨天(변정천)
廣天(광천) 少廣天(소광천) 無量廣天(무량광천) 廣果天(광과천) 無煩天(무번천)
無熱天(무열천) 善見天(선견천) 善現天(선현천) 色究竟天(색구경천)
乃至(내지) 聞聲聞緣覺(문성문연각) 具足功德(구족공덕) 聞已其心(문이기심)
不迷不沒(불미불몰) 不聚不散(불취불산) 但觀諸行(단관제행) 如夢不實(여몽부실)
無有貪着(무유탐착) 爲令衆生(위령중생) 捨離惡趣(사리악취) 心無分別(심무분별)
修菩薩道(수보살도) 成就佛法(성취불법) 而爲開演(이위개연) 是名現在施(시명현재시)
무엇을 보살의 현재시(現在施)라 하는가?
이 보살이 사천왕천(四天王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
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陀化自在天)ㆍ범천(梵天)ㆍ범신천(梵身天)ㆍ범보천(梵輔天),
범중천(梵衆天)ㆍ대범천(大梵天)ㆍ광천(光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
광음천(光音天)ㆍ정천(淨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徧淨天)ㆍ광천(廣天),
소광천(少廣天)ㆍ무량광천(無量廣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
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을 듣거나,
또한 성문과 연각의 구족한 공덕에 대하여 듣고서도 그 마음이 불미(不迷)하여 미혹하지 않고,
불몰(不沒)하여 침몰하지 않고, 불취(不聚)하여 모으지 않고, 불산(不散)하여 흩어지지도 않고,
오로지 모든 행이 마치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다는 것을 관찰하여서 탐착하지 않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나쁜 갈래의 악취(惡趣)로부터 벗어나서, 그 마음에 분별함 없이 보살도를 닦아서
불법을 성취하게 하고자 연설하여 주나니, 이러한 것을 현재시(現在施)라 하는 것입니다.
ㅡ구경시(究竟施)
云何(운하) 爲菩薩(위보살) 究竟施(구경시)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假使(가사)
有無量衆生(유무량중생) 或有無眼(혹유무안) 或有無耳(혹유무이) 或無鼻舌(혹무비설)
及以手足(급이수족) 來至其所(내지기소) 告菩薩言(고보살언) 我身薄祜(아신박호)
諸根殘缺(제근잔결) 惟願仁慈(유원인자) 以善方便(이선방편) 捨己所有(사기소유)
令我具足(영아구족) 菩薩聞之(보살문지) 卽便施與(즉편시여) 假使由此(가사유차)
經阿僧祗劫(경아승지겁) 諸根不具(제근불구) 亦不心生(역불심생) 一念悔惜(일념회석)
但自觀身(단자관신) 從初入胎(종초입태) 不淨微形(부정미형) 胞段諸根(포단제근)
生老病死(생로병사) 又觀(우관) 此身無有眞實(차신무유진실) 無有慚愧(무유참괴)
非賢聖物(비현성물) 臭穢不潔(취예불결) 骨節相持(골절상지) 血肉所塗(혈육소도)
九孔常流(구공상류) 人所惡賤(인소오천) 作是觀已(작시관이) 不生一念(불생일념)
愛着之心(애착지심) 復作是念(부작시념) 此身危脆(차신위취) 脆 연할 취
無有堅固(무유견고) 我今云何((아금운하) 而生戀着(이생련착) 應以施彼(응이시피)
充滿其願(충만기원) 如我所作(여아소작) 以此開導(이차개도) 一切衆生(일체중생)
令於身心(영어신심) 不生貪愛(불생탐애) 悉得成就(실득성취) 淸淨智身(청정지신)
是名究竟施(시명구경시)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 第六 施藏(제육시장)
무엇을 보살의 구경시(究竟施)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가령 혹 어떤 이는 눈이 없고, 어떤 이는 귀가 없고,
어떤 이는 코과 혀가 없거나 수족(手足, 손과 발)이 없는 무량하게 많은 중생들이
이 보살이 있는 곳에 와서 말하기를, ‘저희들은 박복하여 제근(諸根)이 잔결(殘缺)하여 불구자가 되었으니,
오로지 바라옵나니, 인자(仁慈)께서는 좋은 선방편(善方便)으로
당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저희들에게 보시하여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구족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거든,
보살이 듣고서는 곧 보시하여 주나니,
가령 그때로부터 아승기겁을 지나는 오랜 세월 동안 제근(육근)이 불구(不具)하여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일념(一念, 잠깐) 동안이라도 회석(悔惜)하여 후회하고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스스로 관하기를 ‘이 몸이 처음 태에 들었을 때부터 부정하고 미형(微形)하여 형태가 미미한 것이며,
포단(胞段, 세포)이나 제근(육근)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것이로다.’ 고 관찰하며,
또 다시 관찰하기를 ‘이 몸은 진실하지도 않고,
무참괴(無慚愧)하여서 부끄러움도 없는 것이라서 성물(聖物, 성현의 물건)이 아니며,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불결하며, 골절(骨節, 뼈 마디)이 서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며,
혈육(血肉, 피와 살)이 그 뼈를 덮고 있으며,
구공(九孔, 아홉의 구멍)에서는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는 것들이 항상 흘러 내리는 것이로다’라고 관찰하고는
일념(一念, 잠깐) 동안이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 다시 생각하기를,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한 것으로 견고하지 않은 것이거늘,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연연할 것인가!
마땅히 저들에게 보시하여 그들의 소원을 채워주리라!
그래서 그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나와 같이 행할 수 있도록 개도(開導)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탐애(貪愛)하지 않도록 하여서 청정한 지신(智身)을 얻게 하리라’고 하나니,
이러한 것을 구경시(究竟施)라 하며,
이러한 것을 보살의 제6(第六)의 보시하는 시장(施藏)이라 하는 것입니다.
ㅡ喫甘愛養(끽감애양) 此身(차신) 定壞(정괴).
아무리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보약을 먹여주며서 몸뚱이를 위할지라도, 이 몸뚱이는 결정코 무너지는 것이다.
着柔守護(착유수호), 아무리 비단옷을 입히고 부드러운 것을 입혀서 이 몸뚱이를 수호할지라도,
命必有終(명필유종),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일 뿐, 잘 입는다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니요,
着柔守護(착유수호), 부드러운 것을 입혀서 잘 보호할지라도,
命必有終(명필유종), 반드시 명을 마칠 것이니,
助響巖穴(조향암혈) 爲念佛堂(위염불당),
메아리가 돌아 나오는 바윗굴을 염불당으로 삼아서,
哀鳴鴨鳥(애명압조) 爲歡心友(위환심우)
슬피 우는 기러기 떼들과 더불어 벗이 되어 환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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