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7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7)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① ㅡ 1
무릇 초발심을 한 선비가 ‘공덕이 측량키 어려워 허공과 동등하다’는 것을 들지라도 그 유(類)를 비교할 수가 없고,
찰진(刹塵)을 갈아서 소진한다 할지라도 그 짝이 될수 없으니,
허공은 다만 무상(無相)의 큼(大)을 밝힌 것이고,
일체의 찰진(刹塵)은 다만 형상의 장애가 드넓음을 밝힌 것이니,
어찌 보리심의 복과지혜의 경계와 대비할 수 있겠는가?
이 지(智, 지혜)라는 것은 찰나에 시방에 가득하게 몸을 나타내는 것을 마치 구름과 같이 하면서도 인다라망(因陀羅網)의 묘한 상(像)이 서로 옮겨 상입(相入)하는 것이 광영(光影, 빛그림자)이 겹겹으로 겹쳐서 다함이 없는 것과 같아서,
제각기 하나의 언일음(一言音)으로 법계에 두루하면서 중생과 동등한 가르침의 문을 설하는 것이 마치 비와 같이 중생의 마음에 뿌려져서 청량한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또 복(福)이라는 것은, 묘한 묘상(妙相)의 장엄이 화장(華藏)과 더불어서 그 체(體)가 같으니,
초발심 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평등하고,
다함이 없는 겁해(劫海)에 머물면서도 찰나 속에서 늦고 빠름이 서로 같은 것이 마치 하나의 작은 냇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 큰 바다와 동등하여질지라도 물의 체(體)는 달라지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초발심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대지혜의 흐름 가운데에 겨우 들어갔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공덕과 같아진 때문에 처음 들어간 초입(初入)과 마지막의 궁극이 시기의 늦고 빠름이 없는 것이며,
또 지혜가 하나(一)이기 때문에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모두 성불하게 하고자 하는 지원(志願)이 동등하기 때문이다.
또 시방세계 모두를 갈아서 티끌을 만들어서, 그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무량한 불찰과 무량한 중생이 있는데,
저 보리심의 대지혜신(大智慧身)이 1찰나에 일체의 찰진(刹塵)과 같아지고, 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일시에 평등하게 두루하는 것은, 단지 지혜력(智慧力)을 쓰기 때문이며,
법여시(法如是)하여 이러하기 때문이며, 지혜가 두루하기 때문이니, 신통변화의 상(想)은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초발심 보살이 지락(志樂)이 광대하여 불계(佛界)와 중생계(衆生界)와 더불어 평등하여 무한량(無限量)하기 때문이니, 따라서 지금 이 품에서 찬탄하는 초발보리심(初發菩提心)은 그 10 가지의 공덕이 비할 바 없이 광대하고, 헤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불과(佛果)의 근본부동대지(根本不動大智)인 부사의법계승(不思議法界乘)에서 발심한 자는,
마치 윤왕(輪王)의 태자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왕의 모습을 구족한 것과 같으며,
사자왕의 사자 새끼의 위세도 그 아비와 더불어 같은 것과 같으니, 그 체(體)가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최초로 여래 지혜 종성(種性)의 가문에 태어날 때,
아는 바의 지혜(智慧)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삼세 시겁(時劫)의 늦고 빠름이 없는 견해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지락(志樂)이 광대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초발심부터 여래의 일체지승(一切智乘)을 타고서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설령 세간의 정(情)을 따르는 3승(三乘)의 가르침에서 3기겁 동안 설하여 성불하는 자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 일체지경계승(一切智境界乘)에 들어가야 비로소 성불을 얻는 것이니,
마치 법화경(法華經)이 바로 이 마음을 돌이키는 3승이 일체지의 경계에 들어가는 가르침인 것과 같으며,
마치 용녀가 1찰나에 일생성불(一生成佛)한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일체 중생 모두가 반드시 이러한 법을 깨달아야 비로소 성불하게 되는 것으로,
여래의 3승 중에서 세간을 따르는 방편의 말을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이 여시(如是)하여 이러한 때문에 이 품 아래의 경문에서 “초발심 보살이 겨우 발심하였 때, 곧각 시방의 일체 부처님들께서 다 함께 칭찬하고, 곧 능히 법을 설함으로써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고, 나아가 성불을 나타내 보이는 것 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품의 경문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이 품 안에서 긴행은 모두 40단락의 경의(經意)가 있고,
게송은 142행이 있어서 초발심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고 있는데, 그 경문은 아래와 같다.
장차 이 범행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세 가지의 삼문(三門)으로 나누겠으니,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하면,
이 품을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이라 했으니,
처음의 초발심부터 옛과 지금이 없는 무고금(無古今)이라는 것을 보는 것을 초(初)라 이름하고,
무심의 지혜가 감응하는 것을 발(發)이라 이름하며,
신변(身邊)의 견해가 소진하는 것을 심(心)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함이 없으면서도 대과(大果)를 성취하는 것을 공(功)이라 이름하고,
다만 일체를 교화하여 이롭게 할 뿐, 장차 받을 과보에 기꺼워하지 않고, 무변한 묘상(妙相)의 장엄을 얻기 때문에 덕(德)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또 복과 지혜가 두루함을 공(功)이라 이름하고,
사(事)를 요달하지 않음이 없음을 덕(德)이라 이름하고,
품(品)이란, 그 뜻을 균등하게 나눈 것이다.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을 해석하며,
앞의 범행품에서 청정한 정행(淨行)의 공이 있음을 설하였고,
이 초발심공덕품에서는 청정한 정행(淨行) 가운데에서 무변한 공덕을 밝히기 때문에 이 품이 반드시 온 것이다.
셋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하면,
다시 두 문으로 나누겠으니, 하나는 경문의 뜻을 장과하는 장과경의(長科經意)이며,
다른 하나는 경문에 따라 해설하는 수문해설(隨文解說)이다.
먼저 장과경의(長科經意)를 설명하면,
처음의 “이때” 이하에서부터 품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를 40단락으로 장과(長科)하겠다.
1. “이때” 이하 “그 양이 얼마인가?(其量幾何有)”에 이르기까지 1행 반의 경문은,
천제(天帝)가 발심의 공덕을 설하기를 청한 분이고,
2. “법혜(法慧)보,살이 말하길” 이하 “너를 위해 설하리라(而爲汝說)”에 이르기까지 3행 반의 경문은,
초발심 공덕이 매우 깊어서 알기 어려운, 십종난지(十種難知)와 설함을 허락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3. “불자야” 이하 “능히 측량할 자가 없다(無能量者)”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한 사람이 시방으로 각각 1아승기 세계의 중생을 공양하는 것과 아울러 5계(戒)를 청정히 지니게 하는 것과 또 공덕이 광대해서 측량하기 어려움을 거양한 것을 밝힌 분이다.
4. “법혜보살” 이하 “또한 하나도 미치지 못한다(亦不及一有)”에 이르기까지 5행의 경문은,
앞에서 말한 광대한 공양의 공덕도 초발심의 공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서 비유하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5. “불자야” 이하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안다(唯佛能知)”에 이르기까지 10행의 경문은,
위에서와 같이 공덕이 광대함을 거양하는 것을 밝힌 분이다.
6. “법혜보살” 이하 “또한 하나도 미치지 못한다(亦不及一)”에 이르기까지 2행 반의 경문은,
앞의 공덕으로도 초발심 공덕에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비유를 밝힌 분이다.
7. “왜 그런가?” 이하 ?위가 없는 보리심(無上菩提之心)“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이 무한한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부처님의 종성(種性)은 단절시키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8. “불자야, 이 비유는 놓아 두고” 이하 “변제(邊際)를 알 수 있다(可知邊際)”에 이르기까지 7행의 경문은,
신속한 속행(速行)의 변제를 알 수 있음을 거양한 분이다.
9. “보살의 초발심” 이하 “삼먁삼보리의 마음(三藐三菩提心)”에 이르기까지 15행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이 아는 세계의 경계가 무한해서 알기 어려움을 밝힌 분이다.
10. “불자야, 이 비유는 놓아 두고(可知邊際)” 이하 ‘변제를 알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6행 반의 경문은,
겁수(劫數)의 생성과 파괴를 빠르게 아는 것을 들어서, 그러함이 광대하고 많을지라도 알 수 있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1. “보살의 초바림” 이하 “일체의 겁을 요달해 아는 신통의 지혜이다(了知一切劫神通智)”에 이르기까지 16행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이 겁의 생성과 파괴를 요달하는 것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밝힌 분이다.
12. “다시 이 비유는 놓아 두고” 이하 “변제를 알 수 있다(可知邊際)”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이해하는 것이 광대하지만 그래도 능히 알 수 있다고 거양함을 밝힌 분이다.
13. “보살의 초발심” 이하 “삼먁삼보리의 마음(三藐三菩提心)”에 이르기까지 22행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의 지해(知解)가 광대해서 알기 어려움을 밝힌 분이다.
14.열넷째로 “불자야, 이 비유는 놓아 두고” 이하 “변제를 알 수 있다(可知邊際)”에 이르기 까지 6행의 경문은,
중생의 근기가 광다(廣多)하여 넓고 많긴 하지만 그래도 능히 알 수 있다고 거양함을 밝힌 분이다.
15. “보살의 초발심” 이하 “삼먁삼보리의 마음(三藐三菩提心)”에 이르기까지 5행 반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이 중생의 근성(根性, 근기의 성품)을 잘 아는 것이 광대해서 측량하기 어려움을 밝힌 분이다.
16. “불자야, 다시 이 비유는 놓아 두고” 이하 “변제를 알 수 있다(可知邊際)”에 이르기까지 4행의 경문은,
욕망과 쾌락이 넓고 클지라도 오히려 능히 알 수 있음을 거양한 분이다.
17. “보살의 초발심” 이하 “삼먁삼보리의 마음(三藐三菩提心)”에 이르기까지 6행의 경문은,
초발심 보살이 일체 중생의 욕망과 쾌락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광대해서 알기 어려움을 밝힌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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