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二十一 十行品第二十一之二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2.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1

 

ㅡ십무진장품은 10 가지의 장(藏)을 설하는 십법(十法)에 의거하여 명칭을 세운 것이다.

이 지위에서는 10 가지의 행(行)을 설하는 까닭에 이 10무진장(十無盡藏)이며,

앞의 10행품(十行品)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 무진한 것이고,

나중의 10회향의 법을 성취하여 나아가는 행문(行門)이 걸리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이 품이 온 것이다.
 

ㅡ십종장(十種藏)

爾時(이시) 功德林菩薩(공덕림보살) 復告諸菩薩言(불고제보살언)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有十種藏(유십종장) 

過去未來現在諸佛(과거미래현재제불) 已說當說今說(이설당설금설) 

그때, 공덕림보살이 다시 보살들에게 말하기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10 가지의 십종장(十種藏, 창고)이 있으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설(已說), 이미 말씀하신 것이며,

당설(當說), 장차 말씀하실 것이요,

금설(今說),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ㅡ화엄경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을 통해서 항상 어디에서나 설하고 있는 常說遍說(상설변설)입니다. 

 

何等爲十(하등위십) 所謂信藏(소위신장) 戒藏(계장) 慚藏(참장) 愧藏(괴장) 

聞藏(문장) 施藏(시장) 慧藏(혜장) 念藏(염장) 持藏(지장) 辯藏(변장) 是爲十(시위십) 

慚 부끄러워할 참 愧 부끄러워할 괴

 어떠한 것이 그 10 가지인가? 이른바,
① 믿음의 신장(信藏)과, ② 계행을 갖는 계장(戒藏)과,

③ 스스로의 부끄러운 것을 참회하는, 참장(慚藏)과  
④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의 부끄러운 점을 참회하는 괴장(愧藏)과,

⑤ 많이 듣는 (공부를 많이 하는) 문장(聞藏)과, ⑥ 보시하여 베푸는 시장(施藏)과,  
⑦ 지혜로움의 혜장(慧藏)과, ⑧ (집중하여) 기억하는 염장(念藏)과,  
⑨ 잊지 않고 기억하여 지니는 지장(持藏)과,

⑩ 말을 잘하는 변장(辯藏)이니,이러한 것들이 그열가지 입니다.

 

ㅡ신장(信藏)

佛子何等(불자하등)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信藏(신장) 

此菩薩(차보살) 信一切法空(신일체법공) 信一切法無相(신일체법무상) 

信一切法無願(신일체법무원) 信一切法無作(신일체법무작)

信一切法無分別(신일체법무분별) 信一切法無所依(신일체법무소의)

信一切法不可量(신일체법불가량) 信一切法無有上(신일체법무유상)

信一切法難超越(신일체법난초월) 信一切法無生(신일체법무생) 

불자들이여, 어떠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믿음의 창고인 신장(信藏)이라 하는 것인가!

이 보살은 ① 일체 법이 공(空)하다는 것을 믿는, 신일체법공(信一切法空)이요 → 상(空)

②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모양(형상)이 없는, 무상(無相)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상(無相)  

③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소원하여 바랄 것이 없는, 무원(無願)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원(無願)  

④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조작하여 지을 바도 없는, 무작(無作)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작(無作)

⑤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분별하고 차별하여 가릴 것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분별(無分別)

⑥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의지할 바가 아닌, 무소의(無所依)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소의(無所依)

⑦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헤아릴 수 없는, 불가량(不可量)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불가량(不可量)

⑧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위 (아래)가 없는, 무유상(無有上)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무유상(無有上)

⑨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초월하기도 어려운, 난초월(難超越)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난초월(難超越)

⑩ 일체법은 (공한 것이라서)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무생(無生) 

ㅡ보살은 일체법이 이와 같은 전부 공(空)에 바탕한 10 가지의 이치를 믿고 수순하면 깨끗한 믿음이 생겨서 겁약하지 않게 되고,

 부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경계에 들어가 부처의 집에 머물게 된다.

ㅡ청량소에 이르기를 믿음으로 인해 무생이 되므로 무생은 불법의 근본이 된다. 

중생이 무진하므로 법계가 끝이 없고, 허공은 의지하지 않으므로 열반에 분별이 없는 것이다

 

ㅡ신력(信力)  

若菩薩(약보살) 能如是隨順一切法(능여시수순일체법) 生淨信已(생정신이)

聞諸佛法不可思議(문제불법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一切佛(문일체불) 不可思議(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衆生界不可思議(문중생계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法界不可思議(문법계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虛空界不可思議(문허공계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涅槃界不可思議(문열반계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過去世不可思議(문과거세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未來世不可思議(문미래세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現在世不可思議(문현재세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聞入一切劫不可思議(문입일체겁불가사의) 心不怯弱(심불겁약) 

만약 보살이 이러한 일체법을 따라서 능히 깨끗한 믿음의 정신(淨信)을 내었다면, 

부처님의 불법(佛法)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중생계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법계(法界)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허공계(虛空界)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열반계(涅槃界)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지난 과거세(過去世)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오는 미래세(未來世)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지금의 현재세(現在世)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일체의 모든 겁(劫, 시간)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들어도 겁약(怯弱)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何以故(하이고) 此菩薩(차보살) 於諸佛所(어제불소) 一向堅信(일향견신) 

知佛智慧(지불지혜) 無邊無盡(무변무진) 十方無量(시방무량) 諸世界中(제세계중) 

一一各有無量諸佛(일일각유무량제불)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已得今得當得(이득금득당득) 已出世今出世當出世(이출세금출세당출세) 

已入涅槃(이입열반) 今入涅槃(금입열반) 當入涅槃(당입열반) 

무슨 까닭으로 그러한 것인가?

이 보살이 부처님의 불소(佛所)에서 한결같이 견심(堅信, 굳은 신심)을 내었으며,

부처님의 불지혜(佛智慧)가 무변하고 무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방으로 무량한 모든 세계 가운데에서 그 낱낱의 세계마다 무량한 부처님이 계시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득(已得)하여 이미 얻었으며,

금득(今得)하여 지금 얻고 계시며,

당득(當得)하여 장차 얻으실 것이며,

이출세(已出世)하시어 이미 세상에 오셨으며,

금출세(今出世)하시어 세상에 지금 오시고 계시며,

당출세(當出世)하시어 장차 세상에 오실 것이며,

이입열반(已入涅槃)하시어 이미 열반에 들었으며,

금입열반(今入涅槃)하시어 지금 열반에 들고 계시며,

당입열반(當入涅槃)하시어 장차 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ㅡ우리는 열반을 떠날려야 떠날 수 없는, 항상 열반입니다.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은 소승적인 해석이고, 화엄경은 이입(已入)열반, 금입(今入)열반, 당입(當入)열반입니다. 우리의 참사람의 경지를 열반으로 표현한 것으로, 열반은 이미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도(道)라는 것은 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리야), 한 순간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라, 

가이(可離)라면 非道(비도)라. 만약 가히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열반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열반이 아닙니다. 진짜열반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 떠날려야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큰스님이 돌아가셨다면, “열반에 들었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 없는 열반입니다.ㅡ무비스님

 

ㅡ열반(涅槃, '니르바나' nirvāṇa), 그 본래의 뜻은 '소멸' 또는 '불어 끔'이나,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진(滅盡)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열반은 생사(生死)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목적이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사상에서도 열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불교의 열반 개념과는 다르다. 더욱 이 불교 내에서도 소승과 대승의 여러 학파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다.

소승의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 열반이란 번뇌를 멸해 없앤 상태를 말하고, 여기에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2가지가 있다고 한다. '유여'란 의존해야 할 것, 즉 육신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여열반은 깨달음은 이루었으나 번뇌를 지닌 육신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여열반은 완전한 열반, 즉 반열반(parinirvāṇa)으로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의지하고 있던 육신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법신(法身)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열반을 실체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경량부(經量部)에서는 열반이란 다만 번뇌를 멸한 상태를 기리키는 명칭으로서 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승불교의 열반경에서는 열반은 상(常)·락(樂)·아(我)·정(淨)의 4덕(四德)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상(常)은 항상한 것으로, 열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生)·주(住)·이(異)·멸(滅)의 변화가 없는 것이고,  

낙(樂) 안락의 뜻으로 열반은 번뇌가 다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떠난 진정한 즐거움의 세계이고, 

아(我)는 진아(眞我)를 뜻하는 것으로 열반은 망아(妄我)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에 도달한 세계이고,  

정(淨)은 청정의 뜻으로 염오(染汚)에 덮힌 생사의 세계를 여읜 열반의 세계는 청정한 세계이므로 정이라 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4덕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은 유위열반(有爲涅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4덕을 갖춘 열반을 무위열반(無爲涅槃)이라 하여 이를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彼諸佛智慧(피제불지혜) 不增不減(부증불감) 不生不滅(불생불멸) 

不進不退(부진불퇴) 不近不遠(불근불원) 無知無捨(무지무사) 

저 모든 부처님들의 지혜는 (우리 모두가 이미 본래로 가지고 있는 진여불설, 참 나, 지혜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않는 불진불퇴(不進不退)이며,

가깝지도 멀지 않은 불근불원(不近不遠)이며,

앎도 없고 버림도 없는 무지무사(無知無捨)인 것입니다.

   

此菩薩(차보살 入佛智慧(입불지혜) 成就無邊無盡信(성취무변무진신) 得此信已(득차신이) 

心不退轉(심불퇴전) 心不雜亂(심불잡란) 不可破壞(불가파괴) 無所染着(무소염착) 

常有根本(상유근본) 隨順聖人(수순성인) 住如來家(주여래가)

護持(호지) 一切諸佛種性(일체제불종성) 增長(증장) 一切菩薩信解(일체보살신해) 
隨順(수순) 一切如來善根(일체여래선근) 出生(출생) 一切諸佛方便(일체제불방편) 

이러하게 보살이 부처님의 불지혜(佛智慧)에 들어가서 무변하고 무진한 신심(信心)을 성취하며,

이러한 신심(信心)을 얻고서는, 그 마음이 퇴전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잡란(雜亂, 산란)하지도 않아서 깨뜨릴 수도 없는 불가파괴(不可破壞)이며,

물들지도 않는 무염착(無染着)이며,

항상 근본을 지니고 있어서 있어서 성인을 따라 여래가(如來家, 여래의 가문)에 머무르며,

모든 부처님들의 불종성(佛種性)을 호지(護持)하여 가지고 보호하며,

모든 보살의 신해(信解, 믿음과 이해)를 증장하게 하며, 일체 여래의 선근을 따르며,

일체 부처님의 방편을 내게 합니다.  

 

是名(시명) 菩薩摩訶薩信藏(보살마하살신장) 菩薩(보살) 住此信藏(주차신장)

則能聞持(즉능문지) 一切佛法(일체불법) 爲衆生說(위중생설) 皆令開悟(개령개오) 

이러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믿음의 신장(信藏)이라 하는 것이니, 

보살이 이러한 신장(信藏)에 머문다면, 능히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문지(聞持)하여 듣고 지니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ㅡ수순성인(隨順聖人), 성인을 따는 것이란, 우리의 참 마음, 진여불성의 자리가 바로 성인의 자리이라서, 

여래가(如來家, 여래의 가문)에 머물러 사는 것이고, 

여래의 종자이라서 여래가에 살 수 있고, 부처님의 불종성을 물려 받아서 호지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열반이나 불지혜가 본래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서 떠날 수도 없고, 퇴전할 수도 없고 잡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용맹정진해서 경지를 터득해야만 불지혜를 얻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믿는 것이 신장(信藏)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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